제 46 회


제 11 회


1


한경철은 깊은 생각에 잠겨 공장에서 료양소로 떠나는 뻐스옆에 서있었다. 입원치료를 마치고 온 그는 다시 료양소로 떠나게 된것이였다. 한경철은 이것이 공장과 헤여지는 마지막길이라는것을 알고있었다. 이제는 그가 작성하던 프로그람을 최현민이 완전히 인계받았다. 실력이 높은 그는 더할나위없이 잘해낼것이다. 한경철은 모든것을 체념해버렸다. 이제 료양을 끝마치고 돌아오는것과 함께 지배인은 그를 다른 공장으로 떠나보낼것이다. 한경철은 이것을 잘 알고있었다. 모든것을 다 잃어버린듯 한 구슬프고도 두려운 심정. 그의 눈앞에 허울만 남은듯이 아무것도 가려보지 못하고 장례식장에 서있던 김해옥의 모습이 떠올랐다. 뻐근한 아픔으로 가슴이 저릿저릿해온다. 그는 말없이 서있었다. 문득 조인섭이 한경철에게로 다가왔다.

《이거 우리 대학생로동자의 얼굴색이 좋지 않다.》

경철은 애써 웃어보였다. 조인섭이 말했다.

《사실 료양을 간다고 하지만 자넨 휴식하러 가는게 아니라 일하러 가는거지. 이런 말이 있지? 작가의 안해도 한가지만은 모른다. 작가가 창문을 내다보아도 일을 한다는것을! 맞게 말했던가?》

그는 멋스럽게 유식한 소리를 한마디 하고는 미타한듯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러다가 경철을 향해 웃어보였다.

《이젠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기억력두 이전같지 못하다네. 하지만 명백한건 자네두 작가나 다를바 없다는 그거지. 이제 휴식을 하느라면 이 머리속에서 무엇인가 좋은 생각들이 번뜩할거란 말일세. 그러니 이게 오죽 좋은가? 나두 어떤 땐 집에서 휴식을 하다가두 전날에 져버렸던 장기에서 이길 좋은 수가 피뜩하군 한단 말일세. 그래서 내가 공장장기에선 당할 사람이 없는걸세.》

그는 만족하여 웃었다. 하지만 사실 그는 공장 장기팀에선 그저 있으나마나한 보통장기군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 승벽과 입심만은 온 공장에 소문이 나서 그와 이기려고 마음먹는 장기군은 별로 없었다.

그와 이긴다는것은 밤을 새우며 장기를 계속해야 한다는것을 의미하며 칭찬하는것인지 사정하는것인지 알수 없는 그의 말을 귀따갑게 그냥 들어야 한다는것을 의미하기때문이였다. 한 둬판 두어본 장기군은 이런 장사군은 이겨도 소용없고 져도 별로 기분나쁘지 않다는것을 제꺽 알군 한다. 그래서 아예 손을 들고마는것이다. 그런것으로 하여 그는 자기야말로 장기에선 상대가 별로 없는 천성적인 장기군으로 생각하고있는것이다. 그의 말을 들으니 저절로 웃음이 새여나왔다. 그가 웃는것을 본 조인섭도 만족한듯 웃엇다.

《보라구! 웃으니 얼마나 좋은가? 웃으면 사실 제일 좋은건 자기일세. 그다음은 남에게도 나쁘지 않지. 저좋구 남좋으면 나쁜게 뭐 있겠나? 내 말을 들어보게. 실은 나두 지금 수지운동신과 축구화에 대한 공부를 새롭게 하고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뭐라든지 아나? 직장장을 내놓기 싫어서 공부를 한다는거야. 그런들 어떻다는건가? 문제는 내가 배운다는데 있거던, 안 그런가?》

그는 소리내여 껄껄 웃었다. 왜서인지 그를 따라 웃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조인섭은 그의 마음을 헤아린듯 웃어보였다.

《여보게, 웃으라구! 웃으면 마음속 상처도 아물어. 그래서 힘들어도 모두가 웃으며 살아가는지.》

한경철은 처음이라도 보는듯 한 심정으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눈길앞에 조인섭은 웃어보였다.

《내 선배로서 한마디 하는데 사랑하구 과일은 서리를 맞을수록 더 달다네. 젊었을 땐 사랑에서 생겨난 별치 않은 일을 놓고도 울고불고 하게 되지. 하지만 세월이 흘러가면 그 모든게 오히려 잊지 못할 추억으로 되거던. 내 말이 틀리는가 두고보라구.》

경철은 이 직장장이 자기와 해옥이사이의 모든것을 다 알고있으며 바로 이 말을 하기 위해서 자기를 우정 찾아왔다는것을 깨달았다. 고마왔고 목이 메는듯 한 심정이였다. 조인섭은 버릇처럼 손사래를 치며 말을 번졌다.

《자네 이런 경우를 체험해봤나? 목욕탕에 들어가서 욕조에 두사람이 들어갔다고 하세. 목욕물을 자기에게로 필사적으로 끌어당긴다고 해보잔 말이야. 어떻게 될것 같나? 그럼 한쪽켠으로 전부 몰려가버리지. 대신 상대방에게 주어버리자고 밀어보내면 어떻게 되겠나? 전부 되돌아서 자기에게 오거던. 세상리치란 언제나 이래. 아무리 주고주어두 자기에게로 되돌아오는게 바로 사랑이거던. 진짜로 사랑을 했다면 걱정을 맡게!》

경철은 거의 탄복하는 눈길로 늙은 직장장을 바라보았다. 그 눈길앞에 조인섭은 면구한듯 웃어보였다.

《이거 배운 사람앞에서 내가 유식자랑을 하는게 아닌가? 그저 이 나이쯤 살구나면 하구싶은 말이 많아서 수다스러워진다네.》

그러나 경철은 진정으로 감동되여 말했다.

《아닙니다. 직장장동지, 고맙습니다!》

조인섭은 얼굴이 환해지도록 웃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진정이였다면 기다리라구. 기다리면서 자기를 다잡게. 가만, 그러자면…》

직장장은 불현듯 자기 주머니를 뒤졌다. 그러더니 자기가 쓰던것인듯한 라이터를 꺼냈다. 별다른것이 없는 보통라이터였다. 그러나 그는 마치 커다란 보물이기라도 한듯 기이하게 여겨보다가는 그것을 경철에게 내밀었다. 경철은 어정쩡해서 받아들었다.

《괴로울 때마다, 걱정이 생길 때마다 이 라이터를 들여다보라구. 들여다보면서 생각하라구. 난 남자다, 실패와 슬픔에 울것이 아니라 사랑과 희망을 안고 분투해야 한다, 그러자면… 잠간!》

저쪽에서 누군가가 자기를 찾는 바람에 조인섭은 엄숙하게 뇌이던 말을 다 하지 못한채 그쪽으로 달려갔다. 경철은 그 보통라이터를 다소 어이없는듯 한 심정으로 들고 서있었다. 그다음 료양소까지 함께 갔다가 돌아오겠다고 나선 당비서가 뻐스에 오르자고 하는 바람에 조인섭과 더 말을 나눌새가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그 라이터가 점점 마음에 알길 없는 안정감을 가져다주는것을 느꼈다. 어떻게 생각하면 어이없고 몰지각하기까지 한 일이기도 했으나 그 라이터를 보기만 하면 조인섭의 웃는 얼굴과 의미심장한 말이 떠오르고 마음이 한결 진정되는것이였다. 그래서 자꾸만 그 라이터를 들여다보게 되였다.

경철은 마치 벼랑끝에 선것처럼 마음의 여유가 없이 자신도 남도 괴롭혔다는것을 깨달았다. 김윤화지배인에게 모진 말을 한것이 몹시도 후회되였다. 뻐근한 가책과 후회가 가슴을 친다. 그는 저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며 지배인의 얼굴을 찾았다. 어쩌면 공장에 있게 되는 마지막순간이 될지도 모를 이때 지배인을 만나고 가고싶어졌다. 그러나 지배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나를 피해버린것이 아닐가?

부르릉 발동이 걸리며 뻐스는 떠났다. 그 순간 한경철의 눈가에는 아프고도 괴로운 물기가 핑그르르 고여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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