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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18일

평양시간


제 43 회


제 10 장


5


한경철은 과학원의 구내길을 천천히 걷고있었다. 방금전 전화를 통해 들었던 해옥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그냥 귀전에 울려온다. 자기가 너무 일찍 그리고 렴치없이 행복한것이 아닌가고 걱정하던 그 목소리도 들려오는것만 같았다. 불과 이틀전의 일이다. 한번 번뜩이고 사라진 번개마냥 행복했던 순간이다. 그 순간이 이제는 마음을 태워버린 아픈 과거로 되여버리고말았다. 어머니를 원망하고싶었다. 김윤화지배인도 원망하고싶었다. 그는 김윤화지배인을 믿었었다. 그가 어머니를 리해시키고 자기들의 사랑을 이어줄것이라고 믿었었다. 그러나 김윤화는 그들의 기원과 믿음을 외면해버린채 랭정하게 물러선것이다.

경철은 끝내 발걸음을 멈추고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사람모양 멍하니 서있었다. 서늘한 바람이 그의 머리칼을 날리며 불어지나갔다. 어두운 밤하늘에 한무리의 철새들이 날아지나가는 날개짓소리가 들려왔다. 바쁘게 그러나 태연하게 날아지나가는 날개짓소리였다. 질서정연하게 날아지나가는 새들의 거뭇한 형체가 보이는가싶다.

경철은 그 소리에 커다란 의미가 있기라도 한듯 어두운 밤하늘을 점도록 바라보았다. 노력을 포기하지 말라는 말없는 당부가 그 어두운 하늘에서부터 가슴속으로 날아오는듯싶었다. 그는 밤바람에 흐트러진 머리칼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잘못하는 사랑만이 슬프다고 하던 해옥의 말이 떠오른다.

그렇다! 어머니가 우리들의 사랑에 혐오감을 표시한것은 바로 나에게서 일종의 태만과 방종을 보았기때문일것이다. 재단프레스를 완성하지 못하고 사랑에 빠져버렸던 그 하루를 우리는 응당하게 보상하고있는것이다.

경철은 어금이를 지그시 악물었다. 기어이 재단프레스수자조종화를 완성하고 어머니에게 자기들의 깨끗한 사이를 인정받으리라 마음을 도사려먹었다.

(해옥이! 기다려주오.)

불시에 눈물이 쿡 솟구칠것만 같은감을 느끼며 그는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천천히 돌아섰다. 불이 밝은 연구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다음부터 경철은 모든것을 잊고 자기를 때려몰았다. 식사하는것도 잠자는것마저도 잊었다. 연구하고 토의하고 실험했으며 밤을 패며 프로그람을 완성해나갔다. 그러자 다시금 무서운 불면증이 달려들었다. 처음보다 더 혹심한 불면증이였다. 어떤 날은 단 한순간도 잠을 잘수가 없었다. 며칠새에 그의 눈은 벌겋게 충혈되고 얼굴은 수척해졌다. 하지만 그때 그의 곁에는 그 증세를 알고있는 해옥이도 없었고 도와줄만한 사람도 없었다. 그는 오직 혼자서 모든것과 싸우며 일하고있었던것이였다. 그는 모든것을 잊고 오로지 한가지 열망과 의욕으로 자기의 몸을 혹심하게 때려몰고있는것이였다.

(김해! 기다려줘!)

그는 매일 매 순간마다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공장으로 내려온 경철의 수척해진 얼굴을 보는 순간 김윤화는 가슴이 섬찍해졌다. 그가 다시 불면증에 시달리고있는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김윤화가 물었을 때 경철은 말없이 김윤화를 외면했다. 그 원망과 질시의 눈빛을 보니 가슴이 찢어지는듯 아팠다. 하지만 아직은 아무것도 말해줄수가 없는 김윤화였다.

그날 림봉숙은 김윤화를 만나 그의 진심을 오해하며 옹졸해지고 격해졌던 자기의 잘못을 빌었다. 절대로 경철이를 공장에서 데려갈수 없다고 했다. 그날 그들은 끝내 서로를 끌어안고 울고말았다.

하지만 김윤화는 한경철을 공장에서 떠나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경철이 하던 일을 최현민이 대신하게 하리라고 생각했다. 지배인의 지시로 최현민이 한경철의 프로그람작성을 돕기 시작했다. 경철이는 모든것을 예감했다. 떠나갈 날이 다가온다는것을 느끼며 정신없이 자기를 혹사했다. 어떻게 하든 자기의 힘으로 재단프레스의 수자조종화를 완성하고야말 결심이였다. 또 한번의 시험이 있었으나 다시 실패했다. 동작수행이 대체로는 정확했으나 섬세한 부분까지의 기술적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했던것이였다. 좀더 완성해야 한다는것이 명백했다. 가혹하기까지 한 심리적부담을 안고 한경철은 몸부림치듯 일했다.

어느날 김윤화는 복도층계를 내려오던 경철이 비칠거리는것을 보았다. 극도의 피로가 그에게 방향감각마저 없어지게 한것이였다. 그는 비칠거리다가 바람벽에 부딪쳤다. 꼬꾸라질듯 계단에서 허둥거렸다. 가까스로 바람벽을 짚고 서서 자기를 유지했다.

《경철아!》

김윤화는 놀라서 그를 붙잡았다.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 순간 가슴이 쿡 찔려오는듯 한 모진 아픔과 공포를 느꼈다. 그때에야 김윤화는 경철에게 다시 불면증이 달려들었다는것을 알아차렸던것이다. 눈물이 솟구칠것만 같았다. 불면증이 온 그를 두고 눈물을 흘리던 해옥의 모습이 생각났다.

《너 어쩌자고 이러니? 왜 불면증이 왔다는걸 숨기는가 말이야?》

김윤화는 안타깝게 소리쳤다. 경철은 천천히 김윤화의 손을 물리쳤다. 마치 남을 대하듯 한 랭랭하고 딱딱한 얼굴로 조용히 말했다.

《일없습니다!》

경철은 몸자세를 바로하더니 현장으로 걸어갔다. 김윤화는 그 뒤모습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있었다. 잠시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공장진료소소장을 불렀다. 억지다짐으로 경철이가 진찰을 받게 했다. 경철이 돌아간 다음 소장은 놀라움과 근심을 표시했다.

《안되겠습니다, 지배인동지! 저러다간 젊은 사람을 놓치겠습니다. 사업에서 떼서 다문 얼마만이라도 휴식하게 해야 합니다. 그대로 놓아두면 돌이킬수 없는 상태가 옵니다. 어떤 정신적인 충격이 그의 몸안에 있는 생물시계를 완전히 파괴해버렸습니다. 이건 무서운 일입니다!》

김윤화는 굳어진듯 서있었다. 급히 경철의 방으로 갔다. 콤퓨터앞에 마주앉은 경철은 누가 방에 들어서는줄도 모르고 현시화면을 들여다보고있었다. 김윤화는 말없이 다가가 마우스를 쥐고 콤퓨터를 끄기 시작했다.

《아니, 왜 그럽니까?》

놀란 경철이 김윤화의 손을 잡으며 물었으나 더 말을 하지 않고 그 손을 치워버렸다. 콤퓨터가 꺼지기 시작했다. 경철은 놀란 눈으로 김윤화와 콤퓨터를 번갈아보았다. 콤퓨터를 끄고나서 잠시 서있던 김윤화는 콤퓨터본체의 뚜껑을 열고 하드디스크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하드디스크를 뽑아들고 가버렸던 해옥이의 심정이 다시금 헤아려졌다. 눈물이 솟구칠것만 같았다. 성이 난듯 와락와락 하드디스크에 련결된 선들을 해체해버렸다. 놀란듯 지켜보던 경철이 모든것을 알아차리고 김윤화의 손에 달라붙었다.

《이러면 안됩니다!》

김윤화는 힘껏 부여잡은 그 손을 당할수가 없었다. 김윤화는 손을 멈추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엄하고 안타깝게 부르짖었다.

《사내녀석이 그만한 일에 넋을 잃고 덤벼? 못나게 놀지 말아!》

경철은 김윤화의 얼굴을 처음이라도 보는듯 바라보았다. 얼굴이 해쑥해진채 넋없이 되뇌였다.

《넋을 잃고 덤빈다구요?!》

경철의 얼굴에 뜻모를 웃음이 흘러갔다.

《그러니 지배인동지도 내가 치졸하고 어리석다는거지요? 어디선가 들은 소리같군요. 그래요! 들은 소리예요.》

한순간 김윤화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눈물이라도 흘릴것 같은 경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일단 동이 터진 경철의 격정이 걷잡을새없이 쏟아져나왔다.

《이젠 지배인동지도 우릴 그렇게 보고싶습니까? 어쩌면 그럴수 있습니까?》

《경철아!》

김윤화는 애타게 불렀다. 그러나 경철은 부정하듯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긴 모든게 다 내 잘못입니다. 그렇지만 난 한 처녀를 잃어버리는 아쉬움때문에 이러는것만은 아닙니다. 자기의 사랑 하나 끝까지 지켜내지 못하는 내가 너무도 보잘것 없구 초라해보여서 이러는겁니다! 난 지금처럼 자기가 허무하구 한스러워보기는 처음입니다.》

《경철아, 너무 속을 쓰지 말거라. 이제 모든 일이 다 잘될거다. 어머니가 이제…》

경철은 쓸쓸하게 웃었다.

《너무 쉽게 말하는군요! 하긴 지배인동지는 우리 문제를 그렇게 쉽게 여겼겠지요. 그래서 그렇게 쉽게 맺어주었구 그렇게 쉽게 포기해버렸겠지요. 난 그래도 지배인동지를 믿었댔습니다. 무엇이든 결심하면 기어이 해내는 지배인동지를 믿었단 말입니다. 하지만 우릴 두고 치욕스러운 말을 만들어낸 사람이나 그 말에 동조해버려서 물러나버린 지배인동지나 다른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경철아!》

김윤화는 동통마냥 가슴속을 휩쓸어가는 무서운 아픔을 느끼며 넋없이 부르짖었다. 그러나 경철은 차거워진 눈길로 김윤화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역시 지배인동지도 남입니다! 남이예요! 아니, 남보다도 못합니다!》

그 순간 김윤화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다.

《뭐라구?!》

《날 더 붙잡지 말아주십시오! 난 일을 해야 합니다! 지배인동지에게 쫓겨가기 전에 재단프레스를 기어이 내 힘으로 완성해야 합니다. 그건 내 인격이구 해옥동무의 인격입니다. 해옥동무의 인격과 행복을 지켜내지 못한다면 난 나자신을 영원히 용서하지 못할겁니다.》

경철은 몸부림치듯 웨쳤다. 김윤화가 뽑아놓았던 하드디스크선들을 와락와락 련결하기 시작했다.

《안돼!》

김윤화는 경철의 손을 부여잡았다. 그러나 경철은 그 손을 뿌리쳤다.

《비키십시오!》

《안된다는데!》

한경철이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지배인동지는 왜 남의 일에 상관하는겁니까? 난 이제 더는 지배인동지의 요구를 따를수 없습니다. 날 건드리지 말아주십시오. 가십시오!》

그 순간 김윤화는 리성을 잃고 아들의 뺨을 후려갈겼다. 뺨을 후려치는 소리가 나직하게 울렸다. 한순간 방안은 고요해졌다. 김윤화도 한경철도 소스라치며 굳어져버렸다. 다음순간 김윤화는 흠칫 놀라며 자기의 손과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들의 얼굴에 난 자기의 손자리를 보는 순간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는 처음으로 아들의 뺨을 친것이였다. 한경철도 한순간 경악하여 굳어졌다. 모질고 격해졌던 자기를 순식간에 깨닫게 해준 김윤화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차츰차츰 그의 눈가에 맑은것이 핑그르르 고여올랐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떨구었다. 짜내듯 조용히 부르짖었다.

《지배인동지!…》

김윤화는 가슴을 비틀었다. 신음소리처럼 부르짖었다.

《경철아!》

김윤화는 더 참지 못하고 소리내여 울음을 터뜨리며 방을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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