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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18일

평양시간


제 42 회


제 10 장


4


해옥은 정신없이 집으로 내려왔다. 집에 들어서는 그의 얼굴을 본 어머니는 기겁을 했다.

《아니, 해옥아?!》

그러나 해옥은 어머니의 그 놀라움을 가셔줄 기운조차 없었다. 그는 대답처럼 머리를 흔들어보이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쓰러져버렸다. 목청껏 울기라도 하고싶었으나 울음도 새여나오지 않았다. 그는 메마르게 번뜩거리는 눈길로 침대에서 괴롭게 몸부림을 쳤다. 문득 손전화기의 착신음이 울렸다. 해옥은 그것이 한경철의 신호라는것을 알았다. 한경철이 사랑하는 노래를 골라 따로 설정해놓은 착신음인것이다. 부드럽고도 명랑한 그 노래소리가 울리는 순간 버릇처럼 벌떡 일어나 손전화기를 들었다. 하지만 다음순간 그 손전화기를 침대에 떨구어버렸다. 엄혹하고도 아픈 현실을 다시금 깨달았던것이다. 가슴이 미여지는듯 했다. 소리없는 울음이 새여나왔다. 노래소리는 계속 울린다. 재촉하듯, 달래듯 계속 울린다. 정신없이 그것을 꺼버렸다. 또다시 침대에 쓰러져버렸다. 무엇을 원망하고싶었으나 무엇을 원망해야 할지 알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겁이 나고 당황한 얼굴로 딸애에게 말했다.

《해옥아, 너 왜 그러니? 왜 전화를 받지 않니? 무슨 일이 있었니? 말이라도 좀 하렴.》

해옥은 나른한 얼굴로 힘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머니, 나 피곤해요. 혼자 있고싶어!》

어머니는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하다가 방안에서 나갔다. 손전화기는 잠잠해있더니 이제는 통보문음을 울린다. 겁이 나서 다시 딸애에게 들어온 어머니가 그 손전화기를 들어 들여다본다. 오래도록 주의깊게 들여다본다. 해옥은 힘없이 만류하듯 불렀다.

《어머니!》

어머니는 말없이 손전화기를 딸의 손에 쥐여주었다. 해옥은 손전화기에 씌여진 글을 보았다.

《김해, 왜 전화를 받지 않아? 어디 있어? 무슨 일이야? 제발 말해줘.》

《너희들 싸웠니?》

어머니가 알만 하다는듯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해옥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문득 자기가 경철과 한번도 싸워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저 행복하기만 했던 며칠간이 눈앞을 흘러갔다.

아, 이렇게 일찍 꺼져버리느라고 그렇듯 열렬하고 뜨겁게 타올랐던 사랑일가?

또다시 소리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머니는 말없이 방을 나갔다. 더운 김이 오르는 차를 들고 들어왔다. 딸애에게 내밀었다. 해옥은 받아들어 마셨다. 덥고 달짝지근하며 향기롭기까지 한 차가 가슴을 한결 진정시켜주는듯싶었다. 어머니는 딸애를 침대에 눕히고 목까지 꽁꽁 이불을 덮어주었다.

《좀 자거라. 나쁜 꿈은 아침이면 다 사라져. 걱정말어라. 처녀시절엔 다 그런 일을 겪게 되는거란다. 넌 아직 이런 일에선 너무 어려!》

《엄마!》

처녀는 어린애마냥 어머니의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눈을 감았다. 자기를 다잡자고 애를 썼다.

그래, 잊어야 한다. 나에게도 어머니가 있어야 하듯이 그에게도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김윤화지배인의 말이 옳다. 나 하나의 행복을 위해 그에게서 어머니의 사랑을 빼앗아낼수는 없는것이다. 그 아들 하나만을 믿고 살아온 어머니의 사랑을…

그는 그렇게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잠이 들었다. 비몽사몽간에 눈을 떴을 때 어느덧 저녁이라는것을 알아차렸다. 문득 집전화기가 울리는것을 들었다. 어머니가 전화를 받는다.

《그 앤 아직 자고있어. 경철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전화를 걸지 말아달라구.》

해옥은 흠칫 놀랐다. 경철이 전화를 걸어왔다는것을 알았다. 손전화를 받지 않으니 집전화를 걸어온것이리라. 그 순간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날 좀 바꿔주오.》

아버지가 들어온것이다. 아버지가 경철과 전화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를 차고일어나 아래방으로 내려갔다. 금방 바꾸어주지 않으려 하는 어머니의 손에서 전화기를 빼앗으려던 아버지가 해옥을 보더니 엉거주춤 굳어진다. 해옥은 말없이 다가가 전화기를 받아들었다. 벌써부터 숨이 차오는듯 한감을 느끼며 흐느끼듯 중얼거렸다.

《저예요!》

경철은 잠시 억이 막힌듯 말을 하지 못했다. 이윽고 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김해, 어떻게 된 일이야? 왜 동무도 어머니도 지배인동지도 다 전화를 받지 않고 피하기만 하는거요? 어째서 동문 한마디 말도 없이 집으로 내려갔어? 말해줘! 무슨 일이야? 우리 어머니가 뭐라고 했어?》

《경철동지!》

눈물이 걷잡을수없이 흘러내리는것을 의식하지 못하며 해옥은 중얼거렸다.

《더 묻지 말아주십시오. 날… 날 잊어주십시오!》

수화기를 통해 경철의 급한 숨결소리가 들려왔다. 아연해진듯 말을 하지 못하는 그의 격한 몸부림이 수화기를 통해 똑똑히 전해져오는듯 싶었다. 이윽고 달래는듯 한 그의 목소리가 귀가에 울려왔다.

《해옥이, 그러지 마오. 이제 모든게 다 잘 될거요. 이제 지배인동지가 우리 어머니를 만날테니까 모든걸 다 설명해주구 어머니를 납득시킬거요.》

해옥은 경철이 눈앞에 있기라도 한듯 고개를 가로저어보였다.

《지배인동지가… 지배인동지가… 날 찾아왔댔어요. 지배인동지는 동지의 어머니를 먼저 생각하자고 했어요. 내가 물러서지 않는다면 지배인동지는 경철동질 공장에서 떠나보낼거예요.》

《뭐?!》

깜짝 놀라는 한경철의 체취가 전화기를 통해서도 느껴지는듯 했다.

《지배인동지가 옳아요! 모두가 동지에게서 어머니를 빼앗지 말걸 바라고있어요. 경철동지, 우린 어머니나 지배인동지의 뜻을 따라야 해요. 그건… 그건 우리의 도덕이예요. 그건… 사랑보다 더 중해요.》

해옥은 송수화기를 쥔채 아프게 흐느꼈다. 경철이 경황없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수화기에서 들려왔다.

《그러니 지배인동지가… 지배인동지까지두?!…》

배반감에 시달리는듯 한 그 목소리가 더더욱 가슴을 저리게 하는듯 싶었다.

《경철동지! 사랑은 절대로 슬프지 않다고 했어요. 잘못하는 사랑만이 슬프다고 했어요. 우리의 사랑은 잘못된 사랑이예요.》

《어쩌면 그럴수 있어? 어떻게 그렇게 말할수 있어? 고작 며칠이나 됐다구? 그만한 곡절도 이겨낼수 없는게 동무의 사랑이야, 응?! 말해봐!》

울부짖는듯 한 경철의 목소리가 가슴을 찢는듯싶었다. 해옥은 송수화기를 안은채 몸부림을 쳤다.

《나한테 그걸 묻지 말아요! 묻지 말아줘요! 내앞엔 동지의 어머니가 있어요. 알겠어요? 어머니예요! 반생을 오로지 동지 하나만을 믿고 살아온 어머니란 말이예요. 난 견딜수 없어요. 날 잊어줘요!》

해옥은 끝내 소리내여 울음을 터뜨렸다. 듣고있던 어머니가 신음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아버지도 컴컴하게 질린 얼굴로 서있었다. 수화기에서 경철의 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좋소. 기다리오! 내 기어이 어머니를 납득시키겠소. 백날천날을 노력해서라두 아니, 일생을 노력해서라두 어머니가 동물 받아들이게 하겠소. 알겠소? 동무가 아니라면 난 일생 그 어떤 녀동무도 받아들이지 않겠소.》

《안돼요!》

《기다리오!》

경철은 송수화기를 덜컥 놓아버렸다. 해옥은 송수화기를 안은채 흐느껴 울었다. 어머니가 그를 불렀다.

《해옥아!》

그 순간 해옥은 눈물을 흘리며 두눈을 꼭 감아버렸다. 그렇게 감아버린 두눈을 쳐들고 경황없이 부르짖었다.

《어머니, 나… 나 시집보내줘요! 아무데라도 좋으니 날… 날 시집보내줘요!》

《해옥아!》

아버지와 어머니가 동시에 불렀다. 하지만 두눈을 감은채 해옥은 꼼짝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흠칫 놀라며 굳어졌다. 한없이 무기력해진 애달픈 침묵…

김세천은 고개를 떨군채 말없이 서있었다. 컴컴해진 얼굴이 무엇에 빌기라도 하듯 무겁게 숙어졌다. 이윽고 그는 천천히 머리를 쳐들었다. 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픔에 흐려져 부옇게 느껴지는 눈으로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갈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해옥아, 진짜 사랑은 두사람중 어느 한사람도 불행하게 만들지 않는다!》

《아버지!》

애원하듯, 호소하듯 울리는 딸의 목소리. 김세천의 목소리도 떨렸다.

《너무 마음쓰지 말구 좀 쉬거라!》

김세천은 천천히 돌아섰다. 무거운 걸음으로 문가를 향해 걸어갔다.

《여보, 어딜 가시나요?》

안해가 겁을 내듯 물었다. 김세천은 잠시 머밋거리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미안하오! 난… 난 공장에 가봐야 하오.》

억이 막힌듯 한 침묵. 그 침묵은 쇠덩이마냥 김세천의 가슴에 무겁게 매여달리는듯싶었다.

《당신은… 당신은… 이렇게 울고있는 딸애를 두고도 공장에 나간단말이요?》

설분하듯 울리는 안해의 목소리였지만 차라리 그 소리가 침묵보다 나았다. 그것은 안해가 눈물을 흘릴지언정 언제나와 같이 어머니의 의무를 혼자서 해내리라는것을 의미하기때문이였다. 죄스러움과 아픔으로 가슴이 저릿해왔다. 김세천은 조용히 한숨을 내긋고는 그대로 천천히 문가로 향했다.

《아버지!》

《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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