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회


제 10 장


3


그것은 활량하고도 을씨년스러워보이는 산길이였다. 바람에 날리는 락엽들의 버스럭소리가 으쓸하게 들리고 앞을 가로막는 앙상한 나무가지들이며 시커먼 바위들이 섬찍하게 느껴지는 이름모를 산길이였다.

모든것이 사납게 눈앞으로 다가들었다가는 어지럽게 뒤로 물러서군 했다. 림봉숙은 그 산길을 앞에서 자꾸 가기만 했다. 헉헉 하는 자기의 가쁜 숨소리를 들으며 김윤화는 사정하듯 림봉숙을 불렀다.

《봉숙아!-》

그러나 림봉숙은 그냥 숲을 헤치며 가기만 했다. 김윤화는 다시금 불렀다.

《봉숙아!-》

림봉숙은 멎어섰다. 고개를 홱 돌렸다. 유별하게 흰자위가 많아진듯한 눈으로 김윤화를 바라보았다. 경계감과 적의로 메마르게 번득거리는 그 눈길에 김윤화는 선뜩하여 서버렸다. 그 눈길로 김윤화를 지켜보며 림봉숙은 싸늘하게 부르짖었다.

《따라오지 말아!》

떠밀치는듯 한 눈빛을 남기고 림봉숙은 다시금 숲을 헤치며 걸어갔다. 멎어선 김윤화는 사정하듯 소리쳤다.

《봉숙아, 내 말을 들어줘. 그건… 내 뜻이 아니였어.》

그러나 림봉숙은 도망치듯 그냥 가기만 했다. 그의 옷자락이 눈앞에서 언듯거리는듯 하더니 그는 어느새 숲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봉- 숙- 아!-》

김윤화는 목이 터지게 소리를 질렀다. 림봉숙을 따라가려고 허둥거렸다. 그러나 잎이 떨어져버린 앙상한 나무가지들이 그의 몸에 회초리질을 하듯 감겨들고 돌서덜과 나무그루터기들이 그의 발에 아프게 마쳐왔다. 그는 넘어질듯 비칠거리며 허둥지둥 발을 옮겼다. 온몸으로 숲을 헤치며 걸었다. 문득 나무들이 사라지고 눈앞이 훤해졌다. 김윤화는 어느덧 공지에 나섰던것이였다. 눈앞에 등을 돌리고 선 림봉숙이 보였다. 마치 돌로 빚은 석상인듯이 무겁고 침침하게 서있다. 목이 타드는듯 한감을 느끼며 그에게 다가섰다.

그러던 김윤화는 찔리운듯 흠칫했다. 한윤걸의 묘를 알아본것이였다. 림봉숙은 다름아닌 한윤걸의 묘앞에 서있었다. 주변에는 싸늘하고도 근엄한 정적이 굳어져있었다. 숨이 컥 막혀오는듯 했다. 어떤 아픈 질책과 호소를 듣는듯 한 심정이였다.

림봉숙은 김윤화를 등진채 말없이 서있었다. 심장을 아프게 그러쥐는듯 한 침묵. 무엇인가 다정하고 평범한 말로 그 침묵을 깨여버리고싶었으나 숨이 꺼져들어간것처럼 아무 말도 새여나오지 않았다. 김윤화는 애원하듯이 림봉숙의 잔등과 그앞의 묘지만을 바라보았다. 림봉숙은 조용히 움쭉거리더니 자기의 품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들었다. 돌아보지 않고 등뒤로 손을 뻗쳐 그것을 김윤화에게 내밀었다. 김윤화는 얼결에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것은 사진들이였다. 김윤화는 그 모든 사진들이 하나같이 처녀들의 사진이라는것을 알아보았다. 림봉숙의 목소리가 마치 그 사진에서 울리듯이 들려왔다.

《아직은 멀리에 있는 일인줄 알면서도 경철이곁에 이런 처녀들을 세워주구싶어서 남몰래 두구 보던 사진들이다. 난 힘들구 괴로울 때마다 이 사진들을 들여다보군 했어. 경철이가 끌끌하게 자랐다는 생각과 나에게 어머니의 일이 남아있다는 의무감으로 모든걸 이겨내고싶었어. 이젠 이 사진들을 너에게 돌려주겠다.》

김윤화는 사진들을 손에 든채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봉숙아, 넌 오해하고있어.》

림봉숙은 돌아보지 않은채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윤화야, 그러지 말아. 그동안 정말 고마웠다! 사실 그 애를 너희네 공장으로 보내면서 난 이런 날이 올거라고 생각했댔다. 이젠 그 애가 가장 훌륭한 자기의 친어머니에 대하여 알 때가 되였다구 생각했다.》

《너… 너 어쩌면!》

억이 막히는듯 한 심정으로 김윤화는 부르짖었다.

《다만 그 애의 대상자만은… 내 손으로 얻어주구… 잔치를 차려주어서… 내가 해야 할바를 다하자고 생각했댔다. 그게 나의 마지막의무 아니, 행복이라고 해두자. 그 행복이라고 생각했댔어. 그런데 넌 좀 서두르는구나.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었다가 다시 빼앗는다는 생각을 해봤니? 하긴 어쩔수 없는 일이지. 이젠 시간이 되였다! 넌 그 애의 친어머니다! 난 경철이를 너에게 돌려보내겠다!》

《봉숙아!》

김윤화는 저도 모르게 목청껏 소리를 쳤다. 림봉숙앞으로 왈칵 다가섰다. 그의 잔등을 잡아 자기쪽으로 홱 돌려세우며 목이 터지게 부르짖었다.

《안돼!-》

그러나 그 순간 림봉숙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의 눈앞에는 고요롭고도 정숙한 느낌의 한윤걸의 봉분만이 솟아있을뿐이였다. 묘비에 씌여진 한윤걸영웅의 묘라는 글발이 두렵게 안겨온다. 김윤화는 숨이 막혀오는듯 한 심정으로 온몸을 떨며 다시한번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안돼!-》

김윤화는 소스라쳐 일어섰다. 꿈이였다. 김윤화는 자기의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는것을 깨달았다. 한경철의 전화를 받고 모대기다나니 그런 꿈을 꾼것이였다. 림봉숙은 전화 한마디도 없이 침묵을 지켰다. 그것이 김윤화를 몹시도 두렵게 하고 불안하게 했다. 그래서 그런 괴이쩍은 꿈을 꾼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꿈이라기보다는 김윤화의 가슴속에 자리잡고있는 아픔과 불안이였고 알지 못할 죄의식이였다. 그 꿈으로 하여 김윤화는 불현듯 자기자신을 깨닫는듯 한 느낌이였다.

캄캄한 방안에 땀젖은 몸으로 앉아있는 이 순간 남편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남편은 오늘 저녁 집에 들어오지 못했다. 하지만 이 저녁 김윤화는 그렇게 바재이면서도 끝내 《약속전화》를 하지 못하고말았다.

결국 남편의 불안은 옳은것이였다. 경철이가 공장에 나타난 그 순간부터 김윤화는 수십년세월 자기의 사업과 생활을 지배해왔던 어제날의 선택을 잃어버리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어머니가 되여버린것이였다. 바로 그 어머니의 심정과 어머니다운 눈으로 한경철과 김해옥을 보았고 그래서 아들의 곁에 김해옥을 세워주고싶었던것이였다. 김윤화는 자기의 가슴 한구석에 지금껏 어머니로서의 한가닥 미련이 남아있었다는것을 소스라치게 깨달았다.

인간은 자기가 자신의 적수로 되는 경우도 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면서도 자기의 얼굴부터 먼저 찾게 되는 심리는 인간의 한켠 뒤구석에 남아있는 어두운 구석이다. 이 순간 김윤화는 구름에 싸인 달처럼 어두컴컴해진 자기를 보는듯 한 느낌이였다. 진정으로 자기라는 존재를 깡그리 잊은 결곡하고도 개운한 마음으로 다시금 《너를 선택한다.》라고 말하고싶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그는 그럴 자격을 잃어버린것이였다. 림봉숙은 분노와 허무감을 느꼈을것이다. 두려웠고 미안했다. 내가 왜 경철이를 공장으로 보내달라고 했던가? 그러자 불쑥 경철이를 공장에서 떠나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모든것은 경철이가 공장에 나타난 그때로부터 시작되였다. 원인도 그것이였고 방도도 그것이였다. 그 생각을 하는 순간 김윤화는 저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너무나도 아프고도 두려운 일이였다. 하지만 모든것을 놓고볼 때 그 길밖에 없었다. 림봉숙을 위해서도, 자기자신을 위해서도 한경철을 멀리로 보내야 했다. 김윤화는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듯한 어둠속에 오래도록 앉아있었다.

다음날 김윤화는 과학원으로 가는 뻐스에 올랐다. 아무래도 해옥이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것이였다. 녀자로서 속을 터놓고 솔직한 이야기를 하고싶어졌다. 그는 과학원앞에 있는 공원에서 손전화기로 해옥이를 찾았다. 손전화기에서 해옥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배인어머니!》

정에 차넘친 즐겁고 깨끗한 목소리.

아, 이 처녀에게 나는 이제 무엇이라고 이야기를 한단 말인가?

해옥이는 바람에 불린듯이 순식간에 달려왔다. 하지만 김윤화는 선뜻 말을 못 떼고 즘자렸다. 힘들게 더듬거리며 찾아온 사연을 이야기했다. 처녀의 얼굴은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버렸다. 공포와 경악에 한껏 이지러진 처녀의 얼굴은 낯설어보이기까지 했다. 처녀는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참는듯이 입술을 깨물며 넋없이 중얼거렸다.

《그러니… 그러니…》

《진정해라! 모든걸 나한테 사실대로 이야기해주렴.》

처녀는 화들화들 몸을 떨며 김윤화에게 모든것을 이야기해주었다. 김윤화는 다름아닌 최현민이 그 이야기를 림봉숙에게 했다는것을 깨달았다. 뻐근한 격분이 가슴속을 흘러갔다.

아, 어쩌면 깨끗한 처녀의 인생에 오욕의 아픈 상처를 남기는 그런말을 무책임하게 할수 있단 말인가?

마치 자기자신이 모욕을 받은듯 한 느낌이였다.

그는 어쩔수 없는 충동으로 김해옥앞에서 조금 물러나서 림봉숙에게 손전화를 걸었다. 림봉숙이 전화를 받았다. 벌써부터 격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려고 모지름을 쓰며 김윤화는 조용히 말했다.

《봉숙아, 넌 잘못 알고있어. 해옥이가 경철이의 방에 들어갔던것은 사실이지만…》

문득 림봉숙이 조용한 어조로 김윤화의 말을 끊어버렸다.

《윤화야, 그만둬라! 그런 말은 입에 올리는것조차두 부끄럽고 거북하구나. 난 경철이를 믿는다. 너도 믿구! 걱정말아. 난 모든걸 너와 경철이에게 맡기겠다.》

조용한 말이였으나 알지 못할 서글픔과 체념이 느껴지는 어조였다. 김윤화는 왜서인지 온몸이 얼어드는듯 했다. 저도 모르게 더듬거리듯 말했다.

《너 지금… 나한테 하고싶은 말이 많은걸 감추고있지? 왜 자기를 숨기는거냐?》

림봉숙은 나직하게 웃었다.

《너 흥분했구나. 그러지 말아.》

《봉숙이, 나에게도 자기 속을 다 말 못할만큼 네가 모질어지구 멀어졌니?》

림봉숙은 잠시 침묵했다. 이윽고 떨리는듯 한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윤화야, 난 이젠 시간이 되였다고 생각한다. 난 경철이에게 모든 사연을 다 이야기해주련다.》

앗 하고 비명을 지르고싶은 느낌. 간밤의 꿈이 머리속을 홱 스쳐지나가는듯 했다. 김윤화는 손전화를 든 자기의 손이 화들화들 떨리는것을 느꼈다. 림봉숙의 목소리가 먼데서 울리는것처럼 들려왔다.

《이제는 그 애가 모든걸 다 알 때가 되였다. 자기의 친어머니가 누구이구 얼마나 흘륭하구 아름다운 인간인지를…》

《안돼!》

김윤화는 간밤의 꿈속에서처럼 소리를 쳤다.

《이제와서 무엇때문에 그걸 이야기하겠다는거냐? 내가 훌륭해지기 위해서? 아니면 네가 도리를 아는 큰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러면 그동안의 일은 다 뭐가 되니? 경철이는 뭐가 되구? 어떻게 올라선 언덕이기에 이제 다시 아래로 내려서겠다는거냐? 그것이 과연 아름다운 일이니? 아니, 그건 날 모독하는거구 한윤걸동지를 모독하는거다. 그 애는 영원히 한윤걸동지의 아들이야.》

김윤화는 울고싶은 심정을 느끼며 숨을 톺았다. 조용히 부르짖었다.

《너… 너… 내가 처신을 잘못한것때문에 성이 나서 그러지? 너를 무시하구 내 감정만 앞세운것때문에 날 벌하고싶어 그러지?》

《윤화야!》

림봉숙은 당황한듯 불렀다. 김윤화는 숨이라도 찬것처럼 가슴을 들먹이며 속삭였다.

《내 너한테 사죄하겠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지만 이젠 난 경철이를… 경철이를 공장에서 떠나보내겠다, 알겠니? 그 애를 보내겠어!》

김윤화는 눈이 둥그래서 한발자국 한발자국 자기곁으로 다가온 처녀가 얻어맞은듯이 휘청거리며 나직하게 비명을 올리는것을 알지 못한채 울듯이 부르짖었다.

《아름다운 일은 영원히 아름답게 남아야 해. 내 너한테 빈다. 그동안 흘린 우리의 눈물을 모독하고싶지 않거든 네 결심을 철회해라.》

《윤화야!》

림봉숙은 목메인 소리로 부르짖었다. 울기라도 하는듯 잠시 침묵했다. 이윽고 조용히 말했다.

《됐다, 윤화야! 흥분하지 말아. 나에게로 와! 와서 이야기를 하자.》

림봉숙은 전화를 꺼버렸다. 김윤화는 손전화기를 든채 굳어진듯 서있었다. 문득 곁에서 울리는 흐느낌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김해옥이 고개를 숙인채 아프게 흐느끼고있었다. 자기가 처녀의 존재를 잊고있었다는것을 느끼며 김윤화는 괴로운 시선으로 처녀를 바라보았다. 처녀는 쓰러질듯 휘청거리며 그리고 숨이 막힌듯 온몸을 뒤틀며 가늘게 부르짖었다.

《지배인동지! 경철동지를 그렇게 보내선… 안됩니다! 차라리… 제가… 제가 가겠습니다.》

김윤화는 흠칫했다. 어쩔바를 몰라 처녀를 바라보았다. 아프고도 절박한 현실을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처녀의 존재에 눈앞이 캄캄해지는것을 느끼며 얼없이 중얼거렸다. 자기의 목소리가 콱 쉬여버린것 같이 느껴졌다.

《해옥아, 우린… 우린 경철이 어머니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 애는… 그 애는 그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다.》

그것은 자기자신에게 한 말이였다. 하지만 해옥은 그것을 자기에게 하는 아프고도 솔직한 부탁으로 받아들였다. 그토록 존경하고 믿었던 김윤화인것으로 하여 그의 한마디 말은 김해옥의 가슴속의 한가닥 버팀목마저 순식간에 찍어넘긴 무서운 도끼질이였다.

처녀는 나직한 비명을 지르며 넘어질듯 비칠거렸다. 눈물은 흘러내렸지만 울음소리는 새여나오지 않았다. 괴롭게 몸부림치던 처녀는 돌아섰다. 신음소리를 지르며 경황없이 몇발자국 걸었다. 그제야 해옥에게 눈을 돌린 김윤화가 불렀다.

《해옥아!》

하지만 그 순간 처녀는 목청껏 오열을 터치고싶은 자기를 다잡느라 손으로 입을 막고 정신없이 달려갔다. 도간도간 끊기는 아픈 울음소리가 처녀의 등뒤에서 울려왔다. 그 울음소리를 남기고 처녀는 멀어져갔다. 넘어질듯 달려 점으로 사라져버렸다.

《해옥아!-》

김윤화는 목메여 불렀다. 그러나 한줄기 차거운 바람만이 휘익 불어왔다. 김윤화는 찢기는듯 한 가슴을 안고 굳어진듯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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