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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25일

평양시간


제 31 회


제 7 장


4


김윤화는 책상우에 놓인 약통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있었다. 고철삼이 돌려보냈다는 약이다. 돌이킬수 없게 헝클어져버린 사업과 생활의 불안한 그늘이 그 약통우에 얼른거리는것 같았다. 되돌아온 약과 떠나가버린 시어머니가 무심하게 안겨오지 않는다. 마음은 어쨌든 이것은 자기의 실패와 곡절, 실수와 약점을 말해주고있는것이다.

일이 잘되지 않을 때 인간은 더더욱 자기를 다잡아야 한다. 노여움이 앞서면 인간미는 뒤에 숨는다.

김윤화는 모든것을 바로잡고싶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다. 지금 병원에 입원한 고철삼의 상태는 점점 더 나빠진다고 했다.

《자기 과오를 씻고 떳떳하게 살자던 사람인데 몸이 저렇게 됐으니… 마음이 먼저 쓰러진거야.》

림봉숙이 한 말이다. 김윤화는 알지 못할 충동으로 고철삼이 돌려보낸 약을 품에 넣고 당비서를 찾아갔다. 그러나 당비서는 회의를 가고 없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현장으로 나갔다. 저도 모르게 발길이 고철삼이 일하던 파고무분쇄장으로 향해졌다. 파고무를 미분하여 생고무에 섞기 위해 세척하고 분류하고 분쇄하는 곳이다. 작업장은 기계들의 소음으로 소란하고 고무냄새와 먼지가 떠돌았다.

말없이 서있던 김윤화는 분쇄기에 파고무를 퍼넣고있는 나이지숙한 아바이에게 다가갔다. 지배인을 본 아바이가 꿈쩍 놀라고 긴장해서 멎어섰다. 김윤화는 말없이 아바이의 손에서 삽을 당겨들었다. 분쇄기에 파고무를 퍼넣기 시작했다. 아바이가 눈이 둥그래서 말을 못하고 김윤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김윤화의 심상치 않아보이는 얼굴을 흘끔흘끔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김윤화는 말없이 일을 했다. 세척장에서 파고무가 넘어오지 않아 잠시 쉬는 짬에 김윤화는 옆에 서있는 아바이에게 물었다.

《고철삼동무가 여기서 일을 잘했습니까?》

아바이는 김윤화를 바라보았다. 즐거워보이고 너그러워보이는 미소가 아바이의 얼굴로 흘러갔다.

《잘했지요. 지내보니 사람이 일을 무서워 안하는 사람입디다, 성미도 좋고.》

남에 대해서 좋은 말을 해주는것이 기쁜듯 한 너누룩한 표정이 아바이의 얼굴로 흘러간다.

《물론 처음에야 사무실에서 손끝이 붓초리같아진 사람이니 좀 당황해하구 허둥지둥했지요. 우리 분쇄장사람들은 일을 다하구는 얼굴이 따끔따끔하도록 온도를 높여놓은 한증탕에 들어가서 목욕을 하는게 맛인데 어느 하루 사람이 없어서 그 사람에게 맡겨놓으니 한증탕온도가 글쎄 아이들 코김만 한게 아니겠소. 성미가 불끈한 젊은것들이 막 야단을 했지요, 로동자를 업수이 보는 사람이니 이런다구. 그런데 거쿨진 그 사람이 울면서 머리를 조아려 사죄를 하구는 그담부터 자기가 매일 한증탕화구를 맡아서 보면서 일을 하겠다는게 아니겠소. 결국 두몫을 했수다. 그 사람이 있을 때는 우리가 한증탕맛을 톡톡히 잘 봤지요.》

아, 그것을 조금만 일찍 알았어도 산판에 올라가 화구당번을 세우는것과 같은 일이 없었을것을!

분쇄장사람들이 모여왔다. 그들이 고철삼에 대하여 떠들썩 말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이 머리가 무진 좋은 사람이지요. 뭘 모르는게 없구 한번 본걸 잊어버리는 법이 없습디다. 그래서 지배인에게 공장의 국산화와 관련한 무슨 좋은 안을 제기한다구 했수다.》

《아니, 뭘 제출했단 말인가요?》

김윤화는 의아해서 물었다.

《아니, 그 사람이 아무 안도 안 냈단 말입니까? 그럴수가 없겠는데… 뭘 자꾸 궁싯거리구 긁적거리면서 지배인이 나같은 놈이 제기한 안을 탐탐하게 보겠나 하던데…》

김윤화는 굳어졌다. 분명 고철삼이 제기한 어떤 안도 들어온것이 없었다. 그리고 사실 김윤화는 기다리지도 않았다. 공장의 모든 사람들이 혁신적인 안을 내놓을것을 바라면서도 어느 순간에 고철삼을 잊어버렸고 눈여겨보지도 않았던것이였다.

이 순간 자기의 힘이 공장의 현실을 이겨낼만큼 되지 못했다고 하던 림봉숙의 말이 다시금 떠오르는것 같았다. 모든 인간들의 열정과 능력을 자기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일군, 결국 나는 고철삼 하나로 하여 송명식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잃은것이다. 일군은 인간들을 잃은것만큼 힘이 줄어드는 법이다.

그는 분쇄장에서 오래도록 일을 했다. 그리고는 분쇄장에서 일하던 그 차림으로 아픈 발을 끌며 병원을 찾아갔다. 병원에는 고철삼의 안해와 그의 누이동생인 송명식의 안해 고철옥도 있었다. 김윤화는 고철삼을 마주하고앉았다. 조용히 말했다.

《철삼동무, 난 동무가 생각한 국산화안을 들으러 왔어요.》

멍해보이던 고철삼의 눈동자속에서 미세한 불꽃이 일어나는듯싶었다. 그는 김윤화를 처음이라도 보듯이 바라보았다.

《미안해요! 내가 좁아지구 교만해졌댔어요. 자기 혼자만이 제일인것처럼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의 심정을 알려고 하지 않았어요. 난… 난 정말 지배인의 자격이 없어요. 날 용서해주세요!》

《지배인동무!》

고철삼은 목쉰 소리로 불렀다. 그의 턱이 눈에 띄게 후들거렸다. 김윤화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용서를 비는 의미에서두 동무의 안을 꼭 들어봐야겠어요. 날 용서해줄수 있다면 그 안에 대해 말해주세요.》

고철삼은 무엇인가를 힘들게 꿀꺽 삼켰다. 그러나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용히 중얼거렸다.

《지배인동무, 고맙소! 하지만 내가 말해주지 않았어두 지배인은 벌써 시작을 하지 않았소.》

《?!》

《사실 내가 생각했던 안이라는게 공장이 개발하려고 하는 축구화에 내가 언젠가 보았던 사실을 한마디 더하자는건데… 사실은 객적은 노릇이요.》

《그래도 말해줘요.》

고철삼은 다소 활기를 띤 어조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3년전에 3대혁명전시관에서 전국 체육부문 과학기술성과전시회가 열렸댔소. 난 우연히 거기 갔다가 놀라운걸 보았소. 글쎄 어느 한 산골군의 신발공장에서 축구화를 만들어 내놓은게 아니겠소?》

김윤화는 놀라서 고철삼을 바라보았다.

《산골군에서 축구화를요?》

《그렇소! 자기 군안의 학생들을 위해서 생산해낸 축구화였는데 겉모양은 화려하지 못해두 기술적지표가 축구화로서의 기준지표에 닿는거였소. 더욱 놀라운것은 수입자재가 아니라 흔한 염화비닐로 축구화의 바닥과 뒤심을 만든다는거였소.》

김윤화는 깜짝 놀란듯 한 심정으로 고철삼을 바라보았다. 세계적수준의 축구화를 개발하는데서 제일 걸린 문제는 축구화의 무게문제와 흔한 염화비닐로 만드는 문제였다. 그런데 공장에서 고심하면서도 해결하지 못한 그 문제를 지방의 신발공장에서 해결하다니?

김윤화는 잘 믿어지지 않는 눈길로 고철삼을 바라보았다. 고철삼도 김윤화의 심정을 알만한듯 웃었다.

《글쎄 나도 처음에는 잘 믿어지지 않았소. 하지만 겉모양이 투박하고 무게는 좀 무겁지만 분명 염화비닐로 바닥과 뒤심을 댄 축구화였소. 알아보니 그 산골군에 한생을 축구화를 만드는데 바친 나이많은 기술자가 있다는게 아니겠소. 우리 나라가 축구신화를 창조하던 때에 뽈을 찬 많은 선수들이 어린시절에 그 사람이 만든 축구화를 신고 훈련을 했다는거였소.》

김윤화는 굳어진듯 앉아있었다. 긴장하여 고철삼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 이상은 더 알아보지 못했소. 하지만 행여나해서 그 기술자의 이름과 주소는 적어두었댔소.》

김윤화는 고철삼이 말해주는 주소를 적었다.

아, 좀더 일찌기 고철삼의 안을 알았더라면!

편견과 옹졸함으로 인간이 얻을수 있는것이란 무지뿐이다. 그리고 그 무지는 언제한번도 인간을 도와준적이 없다.

김윤화는 뻐근한 후회와 자책을 느끼며 말없이 앉아있었다. 이윽고 조용히 말했다.

《모든게 다 내가 어리석구 편협했던탓이예요. 다시한번 동무에게 용서를 빌어요.》

《지배인동무!》

《철삼동무, 이제라도 모든걸 바로잡자요. 우리의 축구선수들을 위해서뿐만이 아니라 동무자신을 위해서두 세계적인 축구화를 꼭 개발해야 해요. 부탁해요! 어서 일어나주세요. 이번에 공장에 축구화개발실도 새로 내왔는데 난 동무가 거기서 일했으면 좋겠어요.》

고철삼은 믿어지지 않는듯 김윤화를 바라보았다.

《정말 나한테 그 일을 맡길 생각이요?》

《해야 해요. 힘을 내요. 축구화가 동물 기다려요!》

고철삼은 다시한번 무엇인가를 소리나게 꿀꺽 삼켰다. 무척도 수척해진 그의 얼굴에 불그스레한 홍조가 피여올랐다.

《지배인동무!》

고철삼은 쉰 목소리로 불렀다. 김윤화는 고철삼의 안해에게 숟가락과 물을 떠오라고 했다. 그리고 고철삼이 되돌려보냈던 약통의 봉인을 뜯고 뚜껑을 열었다. 약을 고뿌의 물에 풀어 숟가락에 떠들었다.

《우선 병부터 고쳐야 해요. 병은 마음먹기에 달린거예요. 자, 입을 벌려요.》

《지배인!》

고철삼은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부르짖었다. 온몸을 떨었다. 김윤화가 먹여주는 약을 어린애처럼 공손히 받아먹었다. 고철삼의 안해가 김윤화의 잔등을 어루쓸며 흐느껴울었다. 송명식의 안해도 입을 싸쥐고 몸을 떨며 흐느꼈다. 고철삼의 안해는 눈물속에 부르짖었다.

《이런 사람을 글쎄…》

《지배인, 이런 약을… 이런 약을 더 구해달라구. 응?!》

《철삼동무!》

호실에는 화끈 단 기운이 흘러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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