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 회


제 7 장


2


눈앞에 얼찐거리는 검고 누르고 푸르고 한 형체들, 그우를 세차게 오르내리는 공구의 푸릿한 번뜩임, 뒤번져지는 땅에서 풍겨오는 시큼하고 씁쓸하며 들치근한 냄새, 몸에서 풍겨오는 땀내인지도 모른다. 귀전에 헉헉하니 들려오는 숨결소리, 마치 남의 숨소리인듯 느껴진다. 불시에 온 천지가 화끈 달고 조용해진 속에 오로지 자기 혼자만이 그 무엇과 모질게 싸우고있는듯 한 느낌이다.

괭이의 날이 커다란 돌멩이와 세차게 부딪친다. 괭이끝에서 불꽃이 일고 자루를 통해 온 내장이 흔들리는듯 한 진동이 전해진다. 손바닥이 얼얼해온다. 그래도 다시금 괭이를 높이 들어 힘껏 박는다. 괭이자루에서 찌그극 소리가 나도록 힘껏 제친다. 거무스레한 돌이 빠져나와 산비탈을 굴러간다. 다시 괭이를 억척같이 휘두른다.

김윤화는 지금 시교외에 자리잡은 공장부업지를 늘구는 개간현장에 나와 일하고있었다. 마음속에 솟구치는 불안과 위구, 배신을 당한듯 한 막막한 아픔을 그것으로 잊자고 모지름을 쓰고있는것이였다.

료해사업을 내려온 림봉숙앞에서 여러 사람들이 차마 믿어지지 않으리만큼 참혹한 배신을 했다. 뜻밖에도 고무바닥운동화흐름선을 수지운동신흐름선으로 개조할것을 발기했던 최현민이 사방압착기와 앞골기를 비롯한 첨단설비들을 관리국에서 해결해주기 전에는 고무바닥운동화흐름선해체가 시기상조라고 했다고 한다. 너무도 믿어지지 않아 두번, 세번 물어보았지만 사실이였다. 제화직장장 조인섭도 알쑹달쑹한 말을 자꾸 늘어놓기에 무슨 소리인지 정확히 말하라고 했더니 《웃돌 빼여 밑돌 고이는 격》이라고 말했다는것이다. 그런데 알아보니 그에게 그런 말을 한것은 다름아닌 한경철이라는것이였다. 송명식은 도망치듯 료양소로 가버렸고 강철민은 아무리 물어봐도 입을 꾹 다물고 앉아 한마디 말도 하지 않더라는것이였다. 림봉숙이 후날 다시 만나자고 했는데 강철민도 역시 휴가를 신청하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김윤화는 참을길 없는 배반감과 분노를 느꼈다. 그리하여 김윤화는 가슴속에 솟구치는 격분과 좌절감을 안은채 부업지로 달려나와 정신없이 일하고있는것이였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서는 죽가마마냥 끓는 가슴을 진정시킬것 같지 못했다. 그저 쓰러질 때까지 자기를 때려몰고싶은 심정이였다.

힘겨움과 격정으로 하여 주체할 길이 없어진 그의 몸이 위태롭게 기울거렸다. 바로 그때였다. 김윤화의 괭이날아래 뒤번져진 가둑나무그루터기밑에서 한마리의 굵은 뱀이 나타났다. 곡괭이날에 얻어맞은 뱀은 몸을 구불떡거리며 김윤화의 발치로 기여나왔다.

《악!-》

김윤화는 비명을 질렀다. 뱀을 피한다는 생각에 경황없이 몸을 돌리며 물러섰다. 하지만 그 순간 균형을 잃어버린 그의 온몸이 산비탈에 그대로 허궁 떠버렸다. 어쩔사이없이 그는 산비탈에 쓰러져 그대로 아래로 굴러내렸다.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지배인에게로 정신없이 달려왔다. 당비서 정명남도 놀라 달려왔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배인을 또아리처럼 둘러싸버려 도무지 안으로 들어갈수 없었다.

《어떻게 됐소, 무슨 일이요?》

《지배인동지가 뱀에게 물렸습니다.》

맨끝에 있는 로동자가 대답한다. 저쪽켠에서는 지배인을 놀라게 한 뱀을 때려죽이느라 야단이였다.

《아니, 괭이로 발을 내리찍는걸 내가 봤어.》

한 로동자가 겁이 난 목소리로 말한다. 도무지 정확한것을 알수가 없었다.

《좀 비켜주오! 비키라는데.》

정명남이 사람들을 왁살스럽게 밀치면서 지배인에게로 다가갔다. 김윤화는 이마에 상처가 났을뿐 별다른 일은 없는듯 하였다. 그는 부끄러워 어쩔줄 몰라하고있었다.

《됐어요, 일없어요!》

그는 넋없이 되뇌였다. 하지만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서던 김윤화는 옆구리와 발목을 싸쥐며 다시금 주저앉았다. 사람들은 지배인의 발목이 당장에 살색이 죽고 부어오르기까지 한것을 보았다.

《이거 발이 부러진게 아닙니까?》

누군가가 울듯이 부르짖었다.

《가만있소!》

정명남은 지배인의 발을 조심히 만져보고 잡아당겨보았다. 지배인이 비명을 질렀다.

《부러진것 같지는 않소. 곱질린것 같소.》

사람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어서빨리 병원에 갑시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사람들이 지배인을 맞들고 갈듯 윽 하며 일어섰다. 김윤화가 당황하여 손을 내저었다.

《그만두세요. 일없어요! 난 조금 쉬기만 하면 돼요.》

하지만 사람들은 걱정스러워 선뜻 헤쳐갈념을 하지 않았다.

《아니, 병원에 빨리 가야지 그러다 그 발이 오래갑니다.》

정명남도 김윤화에게 권고했다.

《자동차를 타고 병원에 갑시다. 그러구 있어선 안되겠습니다.》

산아래길에는 그들이 타고온 공장 자동차가 서있었다. 여기서 공장까지는 시오리남짓했다. 김윤화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됐습니다. 조금 있으면 작업이 끝나겠는데 사람들이 돌아갈 때 그때 타고 가서 치료를 받겠어요.》

《아니, 지배인동지! 휘발유때문에 그럽니까? 시오리길에 휘발유가 들면 얼마나 들겠다구… 정 그렇다면 우린 다 걸어가도 일없으니 지배인동진 어서 차를 타고 들어가십시오.》

로동자들이 옆에서 떠들었다. 하지만 김윤화는 파릿해진 얼굴로 말없이 도리머리를 저을뿐이였다. 세멘트공장으로 가다가 되돌아설 일이 생겼을 때에도 자기 돈으로 택시를 타고 오는 김윤화였다. 정명남이 말했다.

《됐소! 동무들, 빨리 가서 일들을 마저 끝내오. 그래야 지배인동무가 빨리 갈수 있소. 거 누가 약초물계를 좀 알면 지배인동무의 발을 찜질할 약초같은걸 좀 찾아보오.》

사람들은 사방으로 달려갔다. 조용해진 산비탈에 지배인과 당비서만이 남아있었다. 정명남은 김윤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지배인동무, 너무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모든 일이 다 잘될겁니다. 우리가 정말로 옳은 결심을 했다면 관리국에서도 우릴 지지해줄겁니다.》

김윤화의 숨결이 빨라졌다. 그는 자기를 다잡느라고 모지름쓰며 가슴을 들먹거렸다. 그러나 끝내 자기를 다잡지 못하고 눈물이 핑 서려도는 두눈을 감추느라고 얼굴을 한쪽으로 돌려버렸다. 그의 어깨가 눈에 띄게 오르내렸다. 정명남은 가슴이 저릿해와 그 모습을 외면한채 앉아있었다. 억이 막힌듯 한 침묵이 흘렀다. 오랜 침묵이 흐른 끝에 정명남이 조용히 말했다.

《지배인동무, 진정하십시오. 로동자들이 봅니다!》

김윤화는 이윽고 흐느낌이 배인 숨을 길게 들이그었다. 탄식하듯 조용히 부르짖었다.

《어쩌면 사람들이 그럴수 있어요?!》

《지배인동무, 부지배인동무나 설비부원동무, 강철민동무와 조인섭동무는 이제 앞으로 우리가 어떤 난관을 헤치고나가야 하며 또 어떤 점을 주의하고 어떤 점을 멀리해야 하는가를 깨우쳐주는 존재라고 할수 있습니다. 경고를 받은 삶은 절반은 구원된 삶이라는 말도 있는데 우리 한번 경고를 받은셈칩시다.》

김윤화는 새삼스럽게 당비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부러움 반, 서글픔 반의 조용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비서동문 오래 살겠어요!》

《왜 말입니까?》

《성격이 좋아서!》

정명남은 소리없이 웃었다.

《우리야 일군들이 아닙니까?》

김윤화는 정명남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다시금 길게 한숨을 내쉬였다. 무엇인가 자기 마음속을 골똘해서 들여다보고있는듯 한 표정으로 잠잠해 앉아있었다. 이때 사람들이 약초들을 안고 달려왔다. 별의별 약초가 다 있었고 별의별 의원들이 다 있었다. 법석을 떠는 그들에게 싸여 김윤화는 한참동안이나 곤역을 치르어야 했다. 발을 절구통만큼이나 감고 산비탈에 앉아있어야 했다.

이때였다. 산아래쪽 소로길을 따라 한대의 승용차가 차체를 들까불며 달려왔다. 김윤화는 그 승용차가 공장승용차라는것을 알아보았다.

무슨 일때문에 저 승용차가 여기로 오는것일가?

오늘 승용차운전사는 차를 수리하겠다고 했었다.

공장 승용차운전사는 차관리와 수리에서 손꼽히는 사람이였다. 자재과장은 승용차운전사를 고장난 화물차운전사로 보내달라고 김윤화에게 계속 제기하고있다. 고장난 화물자동차를 살릴 사람은 그 사람밖에 없다는것이였다. 하지만 김윤화는 그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고있었다. 그가 아니면 밤낮없이 뛰는 승용차를 맡아 책임적으로 사업을 보장할 운전사가 없는것이였다. 운전사가 차를 수리해야겠다면 김윤화는 군말없이 시간을 보장해주군 했다. 그런데 오늘 수리를 해야겠다던 승용차가 오고있는것이다. 웬일인지 불안했다.

혹시 공장에 무슨 일이 생긴것이 아닐가?

그는 승용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승용차가 화물자동차뒤에 섰다. 그 순간 차문이 열리며 그안에서 딸 정혜가 뛰여내렸다. 그 애는 허둥지둥하는 눈길로 산판을 쭉 훑어본다. 그 순간 김윤화는 알지 못할 예감에 흠칫 몸을 떨었다. 누군가가 손전화로 집에 자기가 상한 소식을 알렸으며 그래서 정혜가 승용차를 끌고 달려왔다는것을 깨달았다. 딸애가 김윤화를 발견하고 황급히 달려올라온다.

김윤화의 얼굴이 삽시에 검붉어졌다. 정명남도 뜻밖의 일에 다소 당황해진듯싶었다. 그는 달려올라오는 정혜와 얼굴이 붉어진채 어쩔바를 몰라하는 지배인 그리고 그들쪽을 바라보는 공장사람들을 번갈아보다가 타협하듯 조용히 말했다.

《어쩌겠습니까, 이왕 온걸! 타고 가십시오, 사람들의 성의로 알고.》

하지만 김윤화의 얼굴은 점점 더 심상치 않게 굳어졌다. 그는 눈물을 쏟을것만 같은 얼굴로 서있었다. 어머니의 그 침통해보이는 얼굴앞에 놀란 정혜는 겁이 나서 소리쳤다.

《어머니!》

김윤화는 참을길없는 고통을 당하는 사람처럼 이지러진 얼굴을 숙였다.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승용차에 올랐다. 승용차가 떠나기 전 사람들은 힘들게 중얼거리는 지배인의 목소리를 들었다.

《미안해요!》

승용차는 떠났다. 하지만 차가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이르렀을 때 김윤화는 모지름을 써서 참고참았던 분노를 터뜨리고야말았다.

《차를 세워요!》

승용차는 멎어섰다.

《이게 뭐예요? 누가 승용차를 이리로 끌고오라고 했어요? 누가 그런 지시를 주었어요? 난 왜 조금 참았다가 화물차를 타고 오면 안되는가 말이예요? 사람들앞에서 날 뭘루 만들자는거예요?》

김윤화의 얼굴에서는 당장 눈물이 쏟아질것만 같았다. 운전사는 참혹해진 얼굴을 숙였다.

《지배인동지!》

정혜가 당황한듯 중얼거렸다.

《어머니, 사실은 내가… 어머니가 상했다구 하길래…》

김윤화는 딸애의 얼굴을 처음이라도 보는것처럼 내려다보았다. 겁이 난 속에서도 딸은 웃어보이려고 하는것 같았다. 가슴이 아픔과 분노로 뻐근해왔다. 자기가 지금 정도이상으로 흥분하고있다는것을 느꼈으나 어쩔수 없었다. 믿음과 신의를 배반한 사람들에게 쏟을수 없었던 격분과 질시가 여기로 승용차를 끌고온 딸과 운전사에 대한 노여움으로 번져졌다. 김윤화의 가슴은 터져나갈듯 뻐근해졌다. 그는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가까스로 자기를 다잡았다. 지친듯 한 어조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가자요.》

승용차가 공장에 당도할 때까지 김윤화는 말이 없었다. 차에서 내리기 전에 김윤화는 조용히 말했다.

《운전사동무! 차를 차고에 세워두고 동문 고장나서 세워놓은 06호를 인계받을 준비를 하세요.》

운전사는 흠칫 놀랐다. 정혜도 놀랐다. 그들은 당황한 시선으로 해쓱하게 굳어진 김윤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수고많았어요! 이 승용차를 몰던 때처럼 그 차도 잘해내리라고 믿어요. 이 승용차는 당분간 세워두겠어요.》

운전사는 모든것을 깨달았다. 무엇인가를 힘들게 꿀꺽 삼켰다. 그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지배인동지,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그 발이 나을 때까지만이라두… 그 발로야 어떻게…》

김윤화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예요!》

《지배인동지!》

《어머니!》

운전사와 정혜는 동시에 불렀다. 김윤화는 그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운전사동무, 모든게 내 잘못이예요. 내가 그동안 머리는 아플지언정 육신은 편안한 존재가 되여버렸댔어요. 쩍하면 승용차를 불러내여 타고다녀야 일을 하는것처럼 여기면서… 내가 그러다나니 우리 딸까지 나쁜 물이 들었군요. 내가 우리 딸대신 용서를 빌어요.》

《지배인동지!》

김윤화는 힘들게 승용차에서 내려섰다. 몹시도 아프고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천천히 걸어갔다.

《어머니!》

정혜가 목메여 불렀다. 그러나 김윤화는 듣지 못한듯 걸어갔다.

《엄마, 내가 잘못했어!》

정혜가 울면서 소리쳤다. 운전칸안에서는 운전사가 주먹으로 눈굽을 씻으며 소리없이 울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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