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회


제 7 장


1


한경철은 직장장 조인섭이 찾는다는 련락을 받고 사무실로 갔다. 한경철을 직장의 보배로 여기는 조인섭은 생산현장에서 제기되는 많은 문제를 그와 토론하기 즐긴다. 오늘도 한경철이 들어서자 그는 사람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체육추첨표 두장을 꺼냈다.

《임자 체육추첨을 해봤나?》

한경철은 불현듯 튀여나온 체육추첨소리에 그만 얼떠름해서 조인섭을 바라보았다. 조인섭은 빙그레 웃어보였다.

《명절을 기다리는것두 반명절이라구 좋은 일을 기다리는것두 역시 절반은 좋은 일이야. 추첨표란 좋은거지. 사람이란 추첨표 한장을 사가지고 경기장에 갈만 한 마음의 여유와 정서쯤은 있어야 해.》

한경철은 조인섭을 바라보았다. 이 직장장이 결코 마음의 여유와 정서에 대해 말하고싶어 자기를 찾은것이 아닐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장단을 칠 때에는 맞춰서 춤을 춰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의 본심이 빨리 나오는것이다.

《그런데 언제 뭐 체육추첨표를 사들구 다닐 사이가 있습니까?》

《그랬을테지. 자, 이걸 가지라구. 내가 번호들을 표시해놨는데 난 이런 추첨표로 자전거를 탄 전적까지 있다네.》

조인섭은 만족하게 웃으며 추첨표를 내밀었다. 한경철은 그 추첨표를 받아들었다.

《이걸 정말 절 주는겁니까?》

《가지라는데.》

《그런데 이게 정말루 당선되면?…》

《당선되면 그 상품을 자네가 가지면 되지. 난 정말인데 자네의 그 추첨표가 당선되기를 학수고대하고있겠네.》

조인섭의 얼굴에 사람좋아보이는 웃음이 어렸다.

《그렇게 하자구. 추첨을 하는 날엔 꼭 가봐야 하네.》

조인섭은 말이 끝났다는듯 한 얼굴이였다. 한경철은 추첨표를 들고 다소 얼떠름해졌다.

《가도 됩니까?》

《가도 되지 않구. 왜, 춤이라두 한판 추구 가고싶나?》

《뭐 그런건 아니지만…》

조인섭은 웃었다. 그러더니 다소 신중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실은 관리국에서 료해를 내려왔다니 마음이 번거로워서 샀던거야. 사람이란 자기 마음을 딱히 정할수 없을 땐 우연이나 행운에 맡겨버리는것두 한가지 방법이거던.》

공장에는 관리국에서 실태료해를 내려왔다. 어머니와 한명의 부원이 같이 내려왔다.

《어제 기사장이 하는 말이 실태료해조 책임자루 내려온 임자 어머니가 나를 꼭 만나겠다고 했다는거야.》

한경철은 잠자코 서있었다.

《난 사실 이모저모루 마음이 복잡해. 그래서 그런지 자네 생각이 나더군. 자네야 머리속에 보석같은 지식이 가득찬 사람이 아닌가? 난 자네가 주는 조언대로 대답하구 처신하면 랑패가 없을거라구 생각했네.》

《제가 하라는대로 말입니까?》

조인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만약 자네가 그 문제에서 옳은 견해를 세울수 있다면 그 추첨표는 분명 맞는 추첨푤세. 난 그렇게 생각해.》

한경철은 손에 든 추첨표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거기에 씌여진 수자들에 어떤 운명적인 예시가 있기라도 한듯 골독해서 들여다보았다. 점점 두려워지고 자신이 없어지는 자기를 느꼈다. 사실 이번에 그가 작성한 프로그람이 모두 없어진 사건이 그에게 준 충격과 실망은 몹시도 큰것이였다. 한경철은 망설이다가 그 추첨표를 조인섭에게 다시 내밀었다.

《저… 전 이 추첨표를 안 가지겠습니다. 다른 사람한테나 주십시오.》

그러자 조인섭이 펄쩍 뛰였다.

《주었다가 도로 달래는 법도 없지만 가졌다가 도로 주는 법도 없는게 추첨표야.》

《아니, 그건…》

《일없어. 물어볼 사람한테 다 물어보구 들을 말 다 들은 다음에 나에게 조언을 주면 돼.》

한경철은 아무 말도 못한채 물러나고말았다. 추첨표를 넣은 가슴 앞노리가 별스레 묵직해오는감을 느꼈다. 그는 일을 하면서도 그 중압감에 전전긍긍했다. 바로 그때 설비부원 최현민이 그를 찾아왔다. 증부가마 밑받침대 용접문제가 제기되였던것이였다. 이번에 한경철의 발기로 개조한 증부가마는 밀페상태와 용적상태를 크게 하여 몹시도 육중해졌다. 그런데 그것을 받쳐주는 쇠받침대 하나가 녹이 쓸어 증부가마가 기울어질 위험에 처했다. 빨리 새로운 받침대를 교체해야 하는것이였다. 그것을 위해 최현민은 우정 한경철을 찾아왔다. 증부가마의 개조자인 한경철과 응당 토론을 해야 한다는 자세였다.

최현민은 청하지 않은 성의를 보여 증부가마문제를 토론하며 슬그머니 공장을 료해하는 어머니의 견해를 알아보려고 했다. 그만큼 관리국의 료해사업을 두고 생각이 복잡해진 공장의 분위기인것이다. 또다시 조인섭직장장이 준 추첨표가 떠올랐다. 마음속에 알길없는 압박감을 안겨주는 그 추첨표를 최현민에게 주어버리고싶었다. 그는 추첨표를 꺼내들었다.

《설비부원동진 추첨표를 사보았습니까?》

그다음부터는 별로 자신이 없는대로 조인섭직장장이 하던 말을 그대로 따라했다. 역시 조인섭은 인간심리에 도통한 사람이였다. 최현민은 한경철이 그러했듯 얼결에 그 추첨표를 받아들었고 도로 내놓으려 하다가 《주었다가 도로 달래는 법도 없지만 가졌다가 도로 주는 법도 없는게 추첨표》라는 말에 몰려 끝내 가슴주머니에 넣고말았다. 그런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점심무렵에는 그 추첨표가 다시 조인섭에게로 왔다. 조인섭은 아연해졌다. 그 추첨표를 가지고 다시 한경철을 찾아왔다.

《자네 그동안 숱한 추첨표들을 팔았더구만.》

《제가 무슨 추첨표들을 팔았단 말입니까?》

《아니 참, 판게 아니구 샀던가?》

조인섭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추첨표를 보고 한경철은 굳어졌다. 참혹해지고 난처해진 심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난 공장 로동자로서 자네의 견해를 똑똑히 말해달라는 의미로 추첨표를 주었는데…》

서운한듯 울리는 그 말을 들으며 한경철은 아무 말도 못하고 서있었다. 자기가 잘못 처신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할수도, 침묵할수도 없는 현실을 똑바로 느끼는 심정이였다. 그는 자기의 손이 한없이 무거워진듯 한감을 느끼며 천천히 추첨표를 가슴주머니에 넣었다.

《미안합니다, 직장장동지! 제가 생각을 깊이 해보고 대답을 드리겠습니다.》

오후에는 증부가마 밑받침대를 용접해야 했다. 증부가마의 다리를 하나 떼내야 하기때문에 안전대책으로 증부가마를 쇠바줄로 묶고 쇠바줄을 천정에 걸었다.

용접공이 증부가마밑의 제구실을 못하는 받침대를 용접으로 잘라냈을 때였다. 문득 증부가마가 쇠가 갈리는듯 한 아츠러운 소리를 내며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기울어지는 무게를 못이긴듯 증부가마를 묶은 쇠바줄 하나가 탕 소리를 내며 튀여나갔다. 사람들이 앗 하고 비명을 질렀다. 증부가마는 기웃해진채 서있었다.

사람들이 난처하고 불안하여 어름어름하며 증부가마주위에 모여들었다. 증부가마를 쟈끼로 떠야 한다고 했다. 기울어진 다른쪽 다리마저도 하나 더 떼내고 새로 대야 한다고 했다. 모두가 서둘렀다. 그러나 안전대책때문에 벗겨진 쇠바줄을 다시 걸어야 한다고 조인섭직장장이 고집을 썼다. 결국 쇠바줄을 걸기 위해 누군가 한명은 증부가마우로 올라가야 했다.

《제가 올라가겠습니다.》

알지 못할 미안함과 의무감을 느끼며 한경철은 큰소리로 말했다. 결국 쟈끼로 떠놓은 불안스러운 증부가마 꼭대기로 짤막한 지레대를 들고 한경철이 올라가게 되였다. 육중한 증부가마우였지만 마치 얼음판에 들어서기라도 한것처럼 어름거리며 한경철은 지레대로 쇠바줄을 다시 걸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손에 땀을 쥐고 숨을 죽였다. 증부가마가 통채로 무너져내릴것만 같은 불안과 위구에 가슴을 조였다. 쇠바줄은 몹시도 팽팽했고 무거웠다. 한경철은 이발을 악물었다. 온몸을 떨며 모진 힘을 썼다. 지레대와 함께 손까지 써야 했다. 쇠바줄이 그의 손에 아프게 박혀들었다. 살이 찢기는 모진 아픔을 느꼈으나 그대로 힘을 썼다. 작업장갑을 물들이며 벌겋게 내배는 피자국을 보았다. 드디여 쇠바줄을 걸었다. 사람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한경철은 다리맥이 풀려 증부가마꼭대기에 그대로 풀썩 주저앉았다. 그 순간 그는 진을 치고 선 사람들속에 서서 자기를 지켜보고있는 어머니를 보았다.

어머니와 한경철의 눈길이 서로 부딪쳤다. 한경철은 어머니의 눈길에서 말없는 감사와 부탁을 본듯싶었다. 천천히 그 시선을 외면했다. 추첨표를 넣어둔 가슴쪽이 짓눌리운듯 뻐근해온다. 이윽고 한경철은 천천히 증부가마에서 내려섰다. 용접공이 용접을 하기 시작했다. 일은 빨리 끝났다.

문득 어머니가 조인섭직장장에게로 다가가는것이 보였다. 무엇이라고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어머니와 부원은 직장사무실쪽으로 걸어갔다. 조인섭직장장이 한경철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시험준비를 잘하지 못한 철부지 중학생마냥 긴장해지고 다급해진 표정이였다. 하면서도 그는 버릇처럼 우스개소리를 꺼내들려고 했다.

《이젠 추첨을 진행해야 할것 같구만. 사실 추첨이란건 아예 모르고있다가 결과를 아는게 제격인데…》

그러나 볼편이 굳어져서 하는 그의 군소리는 듣기에도 보기에도 어색했다. 조인섭도 그것을 느낀듯 면구한 웃음을 짓더니 긴장한 눈길로 한경철을 바라보았다.

《그래, 자넨 나한테 무슨 조언을 줄텐가?》

그는 마치 무엇을 달라고 할 때처럼 한경철에게 한손을 내밀기까지 했다. 한경철은 모진 방황과 고민을 느끼며 쇠바줄에 찢겨진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문득 주변을 울리는 고무바닥운동화설비들의 동음을 들었다. 그것은 방금전 그가 한몸을 내대고 바로잡은 증부가마의 소리였고 그의 콤퓨터를 리용하여 증부가마를 조종하고있는 사람들의 소리였다. 그는 몹시도 무겁게 느껴지는 고개를 천천히 들고 띠염띠염 말했다.

《전… 잘 돌아가고있는 설비를 뜯어서 수지운동신으로 전환한다는건… 웃돌 빼서 아래돌 고이는 일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조인섭은 무엇인가를 소리나게 꿀꺽 삼켰다. 아무 말도 못하고 한경철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니 자넨 반대라는 소리구만.》

한경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따라 조인섭도 의미를 알수 없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무슨 말인가 할듯 하다가 돌아서더니 어머니와 관리국부원이 사라져간 사무실쪽으로 가버렸다. 한경철은 가슴을 뻐근하게 그러잡는듯 한 알지 못할 죄의식을 느끼며 굳어진듯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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