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 회


제 6 장


3


김세천은 지금처럼 자기의 무능이 한스러워본적은 없었다. 수지운동신설비보장을 위한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였으나 아직은 모든것이 어설프고 불안하기만 하다. 최현민은 사방압착기수리칸에 들어박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고 강철민도 신발뒤축을 꺾어신은 모양새로 여기저기 왔다갔다하기는 하지만 전혀 성과를 내지 못하고있다. 자재보장사업을 맡은 송명식은 이즈음 신경통때문에 움직일수 없다면서 나타나지조차 않는다. 재단프레스수자조종프로그람을 맡은 한경철도 밤길에 들어선 사람처럼 허둥거릴뿐이다. 그와 자기와의 협동이 잘 안되는 점이 김세천을 당황하게 했다.

이즈음 그는 승냥이에게 깨물리웠던 상처자리들이 다시금 쿡쿡 쏘기 시작하는것을 느꼈다. 첫 신발사출기를 만들던 때 생겨난 상처자리들이다.

사출기의 핵심기술인 사출형타의 재질문제는 참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기술적과제였다. 번번이 높은 압력에 견디지 못해 형타가 터져나갔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굳은 강질로 만들면 무겁고 굳어 가공이 힘들고 동작에서 애를 먹었다. 천신만고를 해서 가까스로 가공해놓으니 강질의 미끄럼도가 낮아 고무가 걸려서 나가지 않았다. 고무가 가열된 형타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불이 달리고말았다. 온 현장에 고무연기가 꽉 차서 사람이고 기계고 온통 검둥이가 되고말았다. 형타를 다시 주조하고 또 하며 애를 썼다.

어느날인가 형타주조를 하다가 습기가 찬것을 모르고 쇠물을 붓다나니 폭발이 일어났다. 온몸에 화상을 당했다. 다행히 눈은 다치지 않았으나 이마와 눈등을 비롯하여 온 얼굴이 물집투성이가 되였다. 붕대를 칭칭 감고 병원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앞을 못 보는 속에서도 손으로 만지고 지어는 이발로 깨물어보기까지 하면서 필요한 강질을 찾느라고 애썼다. 그래서인지 그의 이발은 마흔도 못 넘겨서 다 못쓰게 되고말았다. 애쓰다애쓰다 되지 않으니 사출형타만은 수입해오자는 안이 제기되였다. 그러나 수입해오자고 해도 그들이 그린 설계를 그 나라에 보내여 합의를 하고 계약을 맺고 설비를 들여오는데 1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그나마도 가격은 사출기가격의 절반도 넘었다. 김세천은 절대로 수입해올수 없다고, 기어이 우리 힘으로 만들자고 호소했다. 수백번도 넘는 재질시험을 했고 온 나라 곳곳의 신발공장들과 기계공장들을 다녀왔다.

어느날 김세천은 멀리 북변땅의 신발공장에 갔다오다가 깊은 밤 산속에서 승냥이와 맞다들었다. 그 승냥이는 몹시 굶주렸었는지 뒤로부터 달려들며 그의 다리를 물었다. 김세천은 그 승냥이와 오래도록 필사적으로 싸웠다. 산골마을사람들이 달려와 승냥이가 달아났는데 다음날 아침에 보니 그 승냥이는 거기서 얼마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죽어너부러져있었다. 몸에 상처가 난 곳은 없었으나 그와 싸우느라 너무 혼이 나고 맥을 빼서 그만 죽어버린것이였다. 사람들은 모두 혀를 차는데 그는 상한 몸으로 다시 떠나려고 나섰다.

《어쩌려구 그럽니까? 그러다가 죽습니다.》

《아니, 난 빨리 가야 합니다. 난 누워 앓을 시간이 없습니다.》

《원, 세상에! 독하다독하다한들 선생만큼 독한 사람이 어디 있겠소? 승냥이가 아니라 호랑이와 맞다들었어두 그놈의 호랑이는 죽었을거웨다.》

그의 어깨와 팔, 다리에는 아직도 그때 승냥이에게 물린 자리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바로 그 자리들이 무엇인가 일이 잘되지 않을 때, 몹시도 불안하고 힘겨울 때면 심상치 않은 느낌으로 아파오는것이였다. 그리고 그런 이상한 반응이 일어날 때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안절부절을 못하게 되는것이였다. 오늘도 그는 부속품을 깎는데 필요한 강질을 옳게 가려보지 못하고 비슷한 강질로 소재를 선택한 젊은 기사앞에서 깎아온 부속품을 말없이 던져버리고말았다. 그리고나서는 인차 후회했다. 이래저래 마음이 상해난 그는 공장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집에 전화를 걸었다. 며칠째 보지 못한 딸이 보고싶었던것이였다. 마침 해옥이가 전화를 받는다.

《해옥아, 아버지다.》

《아버지!》

해옥이가 울먹일듯이 부른다. 도움을 청하듯, 설음을 하소하듯 부른다. 김세천은 왜서인지 가슴이 덜컥하는감을 느꼈다.

《해옥아, 무슨 일이 있었니?》

《아버지, 아니예요.》

나른한 기운이 느껴지는 딸애의 목소리였다. 김세천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너 혹시 앓지 않니, 응?》

대답이 없었다. 심장이 깨물리운듯 뜨끔해오는 느낌. 김세천은 몸을 떨었다. 문득 딸애가 어렸을적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어린 딸애가 아버지의 공장에 찾아왔었다. 일이 바빠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아빠가 보고싶어 왔다는것이였다. 그 애를 자기 방에 데려다놓고 잠간 나갔다온다는것이 그만 일에 정신이 팔려 딸애가 온것을 감감 잊어버리고말았다. 사람들과 정신없이 새로 만드는 기계에 대해 토론을 하다가 날이 어둑어둑해서야 딸애생각을 했다. 방으로 달려갔다. 난로불마저 죽어 어둡고 춥던 방. 딸애는 어둠속에서 소리없이 가만가만 울고있었다. 뻐근한 아픔과 후회가 가슴을 쳤다.

《김해야!》

《아빠! 나… 나 오줌 마려워요.》

딸애는 흑흑 흐느끼며 속삭였다. 그제야 딸애가 위생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또 아버지가 금방 올것만 같은 생각에 지금껏 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있었다는것을 깨달았다. 후회와 자책으로 눈물이 솟구칠것만 같았다. 김세천은 딸애를 안고 일어섰다. 그런데 그 저녁부터 딸애는 열을 내며 앓기 시작했다. 감기에 걸렸던것이였다.

김세천은 밤늦게야 집에 들어서서 앓고있는 딸애의 머리맡에 앉았다. 딸애는 금방 잠에서 깨여나고있었다. 나른하고 침울해졌던 눈이 아버지를 보자 반짝 하고 빛났다. 땀에 젖은 머리칼이 달라붙은 얼굴이 불시에 환해졌다. 지금껏 자기앞을 지켜앉아있은 아버지를 깨달은듯 그를 향해 두팔을 벌렸다. 김세천은 딸애를 안아들었다. 속삭이는듯 한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아버지!》

《김해야!》

자기 품에 파고드는 여리고 나른한 몸, 식은땀이 내배인 딸애의 온몸이 바들바들 떨며 동정과 구원을 호소하는듯싶었다. 눈굽이 뜨끈해왔다. 가슴속에 끝없이 솟구치는 련민과 아픔을 느끼며 그 여린 몸을 꼭 그러안았었다.

보호와 사랑이 없으면 살지 못할 어린 새, 이 어린 새를 나는 얼마나 무정하게 홀로 내버려두었던가?

김세천은 끝내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고야말았다. 바로 그때 느끼던것과 꼭같은 련민과 불안이 다시금 가슴을 친다. 딸애에게 분명 무슨 일인가 생긴듯 했다. 김세천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김해야, 무슨 일이냐? 아버지한테 사실대로 말해라!》

수화기를 통해 딸애의 가는 한숨소리가 들렸다.

《아니예요, 아버지. 아무 일도 없어요. 그저 좀 피곤해요. 아버진 언제 집에 오시나요? 어머니도 아버질 보고싶어해요.》

《내 이제 당장 집에 가마!》

《아니예요, 아버지. 그러지 말아요! 일때문에 그러신다는거 다 알아요.》

김세천은 대답을 못했다. 이윽고 딸애는 잠시 망설이듯 하더니 조용히 묻는다.

《아버지, 나 아버지 공장에 갈가?》

《해옥아, 오렴! 와서 아버지를 도와주렴!》

딸애는 대답이 없었다. 수화기에서 숨이라도 찬듯 한 딸애의 류다른 숨결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지친듯 한 나른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모르겠어요, 아버지! 아직은 좀더 생각해보고싶어요. 결심이 되면 아버지한테 련락할게요.》

《김해야!》

《아버지, 어서 일해요.》

딸애는 잠시 말이 없더니 떨리는듯 한 목소리로 가느다랗게 속삭였다.

《사랑해요, 아버지!》

전화는 끊어졌다. 김세천은 송수화기를 든채 멍하니 앉아있었다. 왜서인지 놀란듯 한 가슴이 진정되지를 않는다. 아버지의 예감으로 그는 딸애에게 분명 무슨 일인가 생겼다는것을 느꼈던것이였다.

무슨 일일가? 무엇때문에 딸애가 저리도 심란해한단 말인가?

저도 모르게 허둥지둥해지는 심정으로 공장의 이곳저곳을 오고갔다. 경황없이 걸으며 딸애에게 있을수 있는 모든 일들을 생각해보려고 애썼다. 문득 딸애에게 애인이 생긴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우뚝 서버렸다. 방금전 귀전에 울리던 딸애의 속삭임을 돌이켜보았다.

《사랑해요, 아버지!》

왜서인지 더는 어린애가 아닌듯 한 딸애로 느껴지던 목소리였다. 그런데 왜 그렇게 울고싶은듯 한 서글픈 목소리였을가? 그 애는 나에게 정말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작정일가?

그는 불안하고 조급해진 마음으로 서있었다. 한참후에야 한숨을 내쉬며 자기를 다잡았다. 최현민과 강철민이 있는 수리칸으로 갔다. 그런데 최현민 혼자만이 콤퓨터를 들여다보고있을뿐 강철민은 보이지 않는다. 팔을 뻗친채 죽어너부러진 괴물인듯 서있는 사방압착기를 보니 기분이 나빠졌다. 또다시 승냥이에게 깨물린 자리들이 뜨끔거려나는것을 느끼며 얼굴을 찡그렸다. 주변을 휘둘러보았다.

《강철민동문 어디 갔소?》

최현민이 김세천을 알아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왜서인지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못했다. 김세천의 얼굴이 무뚝뚝하게 굳어진것이 심상치 않게 느껴지는 모양이였다.

《합숙에 가있는지… 아니면 거뭐 처녀를 만나러 갔는지… 뭐, 그럴 나이가 아닙니까?》

평소부터 품고있던 강철민에 대한 불만과 질시감이 명치쪽에서 쓰거운 기운을 몰아오는듯 했다. 그는 조용하나 엄격하게 부르짖었다.

《신경이 든든한건 좋은 일이지만 체면을 모르는건 수치스러운 일이요. 여기선 도무지 체면없이 일하고있구만.》

《아니, 그건…》

최현민이 질린듯 한 얼굴로 더듬거렸다. 김세천은 방을 나오고말았다. 그냥 가버릴가 하다가 혹시나 해서 합숙으로 갔다. 강철민이 자주 가있군 하는 동무의 방문을 열었다. 그 순간 김세천이 본것은 온 방안에 가득히 널린 종이장들이였고 바로 그속에 엎드려 무엇인가 열심히 그리고있는 강철민의 모습이였다. 강철민이 종이장을 손에 든채 엉거주춤 일어섰다. 당황해하며 종이장을 감추려 했다.

김세천은 그가 들고있는 종이장을 잡아당겨 들여다보았다. 한송이의 꽃이였다. 정성을 들여 그린듯 한 그 꽃이 김세천의 가슴속에 불길같이 화끈한 기운을 몰아왔다. 그의 얼굴이 얼음덩이마냥 써늘한 기운을 풍기며 굳어졌다. 그는 온몸의 상처자리들이 뜨끔거리는것을 느끼며 나직하게 부르짖었다.

《이건 뭐요? 꽃이나 그릴것 같으면 집에 가든가 아니면 처녀한테 가든가!》

강철민은 두눈을 똑바로 뜨고 김세천을 바라보았다.

《기사장동지, 내가 꽃을 그려도 그건 일을 하는겁니다. 너무 사람을 업수이보지 마십시오.》

《뭐, 꽃을 그려도 일을 해? 허허…》

김세천은 어이없어 소리내여 웃었다. 그러나 이내 웃음을 거두고 보통사람들은 마주보기 힘들어지는 엄격한 눈빛으로 강철민을 바라보았다. 자기를 다잡자고 무진 애를 쓰며 굳은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사람을 업수이보는건… 내가 아니라 동무야! 동문 지금… 일군들의 믿음을 우롱하고있단 말이야. 이게 수입설비들을 고쳐서 특수설비들을 보장할수 있다고 장담한 동무가 하는 일이야?》

김세천이 한번만 더 허리를 굽혀 방바닥에 널린 종이장들을 훑어보았다면 아마 애를 쓰며 그려놓은 회로도형들을 보았을것이다. 강철민은 사방압착기의 종합조종단회로방식을 그려보다가 옥림에 대한 생각이 나서 한순간 꽃을 그렸던것이였다. 하지만 이미 흥분해버린 김세천은 그것을 가려보지 못했다. 그는 싸늘하게 부르짖었다.

《지배인동무가 동물 믿은게 아무래도 잘못된 일인것 같구만!》

《예?!》

《차라리 동무를 믿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거라는 생각이 드오.》

김세천은 돌아서버렸다. 문을 열고 나갔다. 마음과는 다르게 등뒤에서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겼다. 그 소리에 한순간 흠칫 했으나 그대로 걸어가버렸다. 마치 모욕이라도 받은듯 한 심정이였다. 정신없이 걸었다. 하지만 차츰 자기가 어린 사람을 너무 거칠고 모욕적으로 대했다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끝내 멎어서고말았다. 그러나 발길이 돌아서지 않았다. 그는 길을 잃은 사람마냥 멍하니 서있다가 무겁게 한숨을 쉬고나서 다시 천천히 걸어갔다.

강철민의 눈앞에서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겼다. 한순간 강철민은 멍하니 서있었다. 그러나 다음순간 온몸을 확 불사르는듯 한 모욕감과 분노에 어찌할바를 모르는 사람처럼 눈을 힘껏 치떴다. 그런 모습으로 한참동안을 서있었다. 그러다가 막힌 숨을 터치듯이 숨을 내불며 힘껏 손을 내리그었다.

《에잇!》

강철민은 방안에 널렸던 종이장들을 와락와락 그러모아 휴지통에 처박아버리고는 방안을 뛰쳐나갔다. 정신없이 오토바이에 발동을 걸고 공장을 나와 거리로 나섰다. 집으로 가려고 결심한것이였다. 오토바이를 살같이 달렸다. 그런데 그렇게 바람을 맞받아 정신없이 오토바이를 달리느라니 격분이 잦아들고 주저감과 자책이 솟구쳐올랐다.

이제 무엇이라고 하면서 집으로 들어간단 말인가? 이 모양으로 들어가면 아버지는 또 걱정을 할것이다. 혹시 집에 지금 그 녀인이 와있을수도 있다.

그는 오토바이의 속도를 죽여버렸다. 그러다가 끝내 길을 잃어먹은 사람처럼 서버렸다. 고개를 떨군채 우두커니 서있었다. 이윽고 다시 발동을 걸고 천천히 오토바이를 몰아갔다. 갈 곳이 없는듯 한 심정으로 경황없이 오토바이를 몰아갔다. 낯익은 아빠트밑에 서서야 강철민은 자기가 저도 모르게 옥림이 살고있는 아빠트로 왔다는것을 깨달았다.

나는 어째서 여기로 왔는가? 무엇을 바라서?

강철민은 오토바이에 올라앉은채 처녀가 있는 방 창문을 바라보았다. 불이 켜져있는 창문이다. 그 밝은 창문을 보니 서럽고 부러운 생각이 동시에 갈마든다.

자기와 옥림의 처지는 너무도 다르다. 자기는 밤거리에 홀로 서있고 처녀는 불밝은 집안에 부모들과 함께 있는것처럼.

문득 처녀의 방 창문가에 그림자가 언뜻하였다. 다음순간 창가에 처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강철민은 저도 모르게 우뜰 몸을 떨었다. 알길 없는 수치감이 온몸을 확 불태우는듯싶었다. 처녀가 자기를 알아볼것만 같았다. 피하고싶어졌다. 하지만 두발을 파고 묻기라도 한것처럼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처녀도 밖을 내다보는것이 아니라 창가에 서서 무슨 생각엔가 잠긴것 같았다. 그들은 어두운 공간을 사이에 두고 그렇게 서있었다.

하늘에서 진한 금빛을 그으며 별찌가 떨어져내렸다. 건드리면 오롱조롱 소리를 낼것 같은 별들이 밤하늘에 가득 널렸다. 고요하고 유정한 밤이였다. 강철민은 왜서인지 울고싶어지는 심정이였다. 이 순간 처녀가 그 고즈넉한 밤의 정적과 불빛속에서 온몸으로 자기에게 애틋한 호소를 하는것처럼 느껴졌다. 다시는 에잇 하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방금도 에잇 해버리고 오지 않았는가?

그의 길지 않은 인생에 부모 다음으로 그에게 가장 아프고도 소중한 질책을 해주었던 처녀의 존재가 순식간에 모든것을 다시 돌이키게 해준다. 강철민은 고개를 떨군채 오토바이에 다시 발동을 걸었다. 천천히 돌아서 달려갔다. 자기의 잔등에 처녀의 시선이 닿아있는듯 한감을 느끼며 다시금 공장으로 돌아왔다. 격분인지 아픔인지 아니면 두려움인지 모를 뻐근한 감정을 눅잦히느라 크게 심호흡을 했다.

한경철이 있는 방으로 갔다. 한경철의 방은 비여있었다. 재단프레스에 나가있을것이다. 한바탕 큰일이라도 치른듯 한 심정으로 멍하니 앉아있었다. 문득 문소리가 들리더니 최현민이 들어섰다. 손에 무엇인가 자그마한 전자부속품을 들고있었다. 방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강철민을 보더니 웃었다.

《기사장동지한테 욕을 먹었다면서?》

강철민은 그를 힐끗 바라보았을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뭐 꽃을 그리다가 욕을 먹었다는데 동무도 참… 정 머리를 쉬우면서 꽃을 그리고싶으면 콤퓨터로 그리란 말이야. 그러면 꽃을 그려도 일한다는 말을 할수 있지만 종이장에 꽃을 그리면서 일한다고 소리치면 그걸 누가 믿겠어?》

최현민이라면 분명 그렇게 했을것이다. 하지만 지금 강철민의 콤퓨터는 비루스때문에 동작수행이 멎어버렸다. 강철민이 콤퓨터능력을 높이기 위해 자기식으로 비루스왁찐을 개발한다면서 그중 악성인 비루스를 가져다가 콤퓨터에 넣고 연구해보다가 실패해서 콤퓨터가 못쓰게 된것이였다.

강철민은 최현민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저으기 풀이 죽어버렸다. 어쩐지 자기가 옥림을 모욕한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일이 잘못되여 그의 귀에 자기가 종이장에다 꽃을 그리다가 욕을 먹었다는 소리가 들어가면 그가 자기를 얼마나 한심하게 여길것인가!

막연하고 울적한 생각에 사로잡힌 그는 최현민이 나가버리자 한경철의 콤퓨터를 켰다. 정말로 무엇을 그리려면 콤퓨터로 그려야 한다고 생각한것이였다. 아까 성이 나서 휴지통에 구겨박아버린 종이장에 그렸던 사방압착기종합조종단 회로방식을 다시 그려보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전자요소들의 동작과 작용원리가 머리속에서 도형으로, 선으로 그려지는 천부의 재간이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그는 드디여 사방압착기의 종합조종단회로방식을 자기식으로 그려내고말았다. 어찌나 기쁘고 흥분했던지 손이 막 떨리는듯 했다. 그는 콤퓨터화면의 도형이 지워지기라도 할가봐 조바심을 치며 품속에서 기억기를 꺼내 콤퓨터에 련결했다. 그리고 자기가 그린 그 회로방식을 기억기에 기억시켰다. 너무 기뻐 혼자서 벙글거렸다. 그런데 그 기억기를 뽑으려다가 콤퓨터가 기억기제거를 제대로 하지 못하며 이상하게 동작하는 바람에 놀랐고 그러다가 그만 이마를 탁 쳤다. 기억기에 자기의 콤퓨터도 마비시켜버린 악성비루스가 있다는 생각을 못하고 한경철의 콤퓨터에 련결했다는것을 깨달은것이였다. 한경철의 콤퓨터가 이상하게 동작하기 시작했다.

이런 큰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강철민은 당황하고 다급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제거능력이 강한 비루스왁찐을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시금 오토바이로 달려갔다. 헐레벌떡 비루스왁찐을 가지고 와서는 한경철의 콤퓨터의 체계를 다시 설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고 왁찐을 실행시켜야 효력을 볼수있는것이였다. 하지만 지금 그는 자기가 너무도 큰 재구를 저지르고있다는것을 모르고있었다. 그는 한경철이 체계구역인 C구동기안에 자기가 작성하고있는 재단프레스수자조종프로그람을 보관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것이다.

한경철은 다른 구동기들에 공작기계수자조종화에 관한 자료들을 너무 많이 입력하다나니 리용공간이 좁아 별수없이 사용공간이 많이 남아있는 C구동기에 자기 프로그람을 넣어두었던것이였다.

콤퓨터는 빠르게 기동했다. 그와 함께 한경철의 프로그람도 쏜살같이 지워지고있는것이였다. 바로 이때 한경철이 방에 들어섰다. 자기 콤퓨터앞에 마주앉아있는 강철민을 보고 놀라서 멎어섰다. 자기 콤퓨터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체계설치가 다 끝났다는것을 알리는 화면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앗 소리를 질렀다.

《철민이!》

그는 당황하여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그다음은 요란한 파렬음이 청사를 울렸다.

한경철은 너무도 통절하여 고개를 떨군채 온몸을 떨고있었다. 그동안 그렇게도 고심하여 작성한 프로그람을 모두 잃어버린것이였다. 콤퓨터현시장치도 깨여져나가버렸다. 그가 《철민이, 내 프로그람!》하고 소리치는 바람에 황겁하여 벌떡 일어서던 강철민은 무릎으로 콤퓨터탁을 세차게 들이찼다. 콤퓨터탁에 세워졌던 액정현시장치는 바닥에 나가떨어져 박산이 났다.

요란한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모여온 사람들은 아연하여 입을 딱 벌렸다. 맥을 놓고 주저앉아있던 한경철이 천천히 일어섰다. 피가 오른듯 한 눈으로 강철민을 바라보았다. 격분과 허무감으로 하여 그의 눈이 불시에 사무럽게 번뜩거렸다. 그는 자기를 다잡기 어려운듯 숨을 거칠게 내쉬다가 조용히 한마디 내뱉았다.

《한심한 자식!》

그리고나서 그는 비칠거리며 사람들을 헤치고 걸어나갔다.

《동냥은 못 줄망정 쪽박은 깨지 말랬다구 이런 법이 어디 있어, 응?》

김세천이 후들후들 손을 떨며 소리를 쳤다. 억이 막혀 더 말을 못했다. 모여들었던 사람들이 격분하여 소리치기 시작했다.

《거 고의적으로 그런게 아니요?》

《말 주의해요!》

《대신집 송아지 백정 무서운줄 모른다구… 저런 녀석들때문에 어디 심장이 떨려서 맘놓구 일을 하겠어요? 수지운동신을 시작하자마자 이게 무슨 일이요?》

《아버지가 얼마나 속상하겠소? 원체 저녀석이 심통이 바르지 않은 녀석이요. 아버지가 새 가정을 꾸리려 한다구 집을 뛰쳐나가는 녀석이니 알만 하지 않소?》

강철민은 숨이 끊어진듯 서있었다. 구부정해보이는 자세가 이제 금방 쓰러질듯 했다. 김윤화도 얼굴이 컴컴하게 질려 말없이 서있었다. 그저 절통한 눈길로 깨여져나간 콤퓨터만을 바라볼뿐이였다. 자기를 다잡자고 모지름쓰는 그의 가슴이 눈에 띄게 오르내렸다. 이윽고 그는 침통한 어조로 조용히 말했다.

《내 잘못이예요. 경철동무에게 어떻게 하든 기억용량이 최대로 큰 콤퓨터를 해결해주었어야 하는건데… 그랬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걸…》

일이 이렇게 되니 그는 다름아닌 자기자신을 탓하고싶어진것이였다. 그는 오래도록 자기를 다잡느라고 애를 쓰다가 다시금 조용히 말했다.

《모두가 이번 일을 통해서 교훈을 찾아야겠어요. 다시는 이런 일이 있으면 안되겠어요. 자, 다들 헤쳐가자요.》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헤쳐갔다. 고개를 푹 떨군채 서있던 강철민도 힘들게 몸을 돌리더니 나가버렸다. 누구도 그를 부르지 않았다. 김윤화도 돌아서 밖으로 나갔다. 말없이 공장구내를 걸었다. 기사장 김세천이 말없이 나타나 옆에 섰다. 그들은 오래도록 말없이 걷기만 했다. 이윽고 김세천의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래일 관리국에서 료해를 내려오겠다고 련락이 왔구만.》

공장의 고무바닥운동화설비를 수지운동신설비로 개조하는 문제는 심각한 문제로 관리국에서 론의되고있었다. 그리하여 관리국에서 공장에 료해를 내려오는것이였다. 김세천이 말이 없이 걷기만 하는 김윤화를 바라보다가 시름겹게 말했다.

《지배인, 부지배인이 날 찾아왔댔는데 자기는 신경통때문에 온천료양을 가야겠다는구만. 벌써 료양권이 나왔다나. 래일 떠나겠다고 하더구만. 욕두 안 나가서 말을 못하고말았어.》

김윤화는 그냥 걸었다. 모욕이라도 받은것처럼 가슴이 빠르게 뛴다. 그다음 울리는 김세천기사장의 말은 더더욱 가슴에 아프게 박혀들었다.

《나한테 지배인이 고철삼동무한테 갖다주라구 했다던 약을 다시 가져왔더구만, 뭐 고철삼동무가 받지 않는다나.》

김윤화는 쓰러질듯 비청이며 끝내 멎어서고말았다. 김세천도 멎어선채 말이 없었다. 그들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지금같은 때 관리국에서 료해를 내려와야 우릴 지지해주겠는지 모르겠구만.》

침울한 김세천의 목소리가 끝없는 아픔과 불안을 안겨주며 먼곳에서 울려오는것처럼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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