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 회


제 5 장


6


《옥림이, 어째서 이 꽃을 돌려보냈어?》

《난 받고싶지 않아요!》

《옥림이, 이 꽃엔 사실 많은 의미가 있어. 미안하다는 의미, 고맙다는 의미.》

《나에게 뭘 미안하구 고맙구 할게 있어요?》

《옥림이가 아니라면 난 한심한 놈으로 그냥 남아있었을거야. 옥림인 나한테 진심이였어. 난 그게 고맙다는거야. 또 널 깔보았던게 미안하구.》

《이제 와서 그걸 나한테 확인시킬 필요가 뭐가 있나요? 이젠 다 지나간 일이구 나한텐 그게 아무 의의도 없어요.》

《그렇지만 나한텐 있어! 옥림이, 넌 이 꽃을 받아야 해!》

《싫어요, 싫어요!》

퇴근무렵 옥림은 현장창가에 그린듯이 서서 강철민을 생각하고있었다. 오늘따라 왜서인지 그에 대한 생각이 자꾸만 갈마든다. 지배인이 공장의 운명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계기에서 그를 믿고 수리안을 택했다는것이 옥림을 놀래웠다. 더우기는 처녀들이 강철민을 어느덧 공장의 《3쓩》중의 한사람으로 정했다는것이 옥림에게는 야릇한 아픔과 불안을 안겨주는것이였다.

이제와서 아버지는 공장의 모든 사람들에게 거의나 잊혀졌다. 아빠트기초를 메워버리려던 일은 김윤화지배인에 의하여 기초타입을 시작하는것으로 이어졌다. 온 공장이 종업원들의 살림집건설을 위해 자기의 집마저 양보하고 공장으로 나온 김윤화지배인을 두고 놀라움과 감탄을 표시했다. 지금에 와서 옥림은 김윤화지배인의 힘을 느끼는 심정이였고 아버지에게 《힘》이 없다고 하던 어머니의 말을 새삼스럽게 인정하게 되는 마음이였다.

어머니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옥림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결합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였다는것을 어슴푸레 느끼는것이였다. 강철민과 련애는 해도 결혼을 하지 말라던 아버지의 말은 아버지의 사랑관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두렵고도 불안한 인식을 안겨주는것이였다.

인간의 힘은 다름아닌 사랑에 있다. 사랑을 위해서는 죽을수도 있는것이 인간이다. 바로 이 사랑앞에 진실하지 못하다면 그 사람은 힘이 없는 사람인것이다.

이제와서 옥림은 처음과는 달리 아버지에 대한 의문과 불만을 품게 되는것이 놀랍고 두려웠으며 이즈음에 와서 아버지와 어머니사이의 랭전이 더는 감출수 없는것으로 되여버리는것이 겁이 나고 안타까왔다.

오늘은 옥림의 어머니의 생일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틀전 갑자기 출장을 가버렸다. 진실하지 못한 가정분위기에 대한 어머니의 거부감과 질시감의 표현인것만 같아 옥림은 울고싶어졌다.

처녀는 쓸쓸한 마음을 안고 공장을 나섰다. 저녁활기로 끓는 거리를 우울해서 걸었다. 쌍쌍이 웃고 떠들며 걷는 처녀총각들을 보면 공연히 시샘이 나고 자기가 구슬퍼졌다.

아, 이제라도 어머니가 불쑥 나타났으면! 혹시 돌아오지 않았을가? 가슴이 알지 못할 기대로 울렁거리기도 한다. 혹시 오늘만은 아버지도 유쾌한 모습으로 롱지거리를 건네며 헌헌하게 집에 들어서지 않을가? 기대와 련상, 실망과 고적이 련속 뒤바뀌며 가슴에 밀려든다. 착잡한 심정을 안고 아빠트밑에 다달았다. 버릇처럼 자기 집 창문을 올려다보았다. 혹시나 어머니가 와서 불을 켜지 않았을가 하는 기대때문이였다. 하지만 오늘도 자기 집 창가에는 불이 꺼져있다. 무겁게 한숨을 쉬며 계단에 들어섰다. 열쇠를 여는데 옆집에 사는 처녀애가 찾는다.

《옥림언니, 이걸 받아요.》

그 애가 무엇인가 길게 포장한 곽을 내민다.

《이게 뭐니?》

《모르겠어요. 언니네 공장사람이라면서 키가 이렇게 큰 아저씨가 와서 계속 기다리다가 갔어요. 언니가 오면 주라고 했어요.》

《권투선수처럼 자세가 이렇지 않던?》

《예, 그래요!》

옥림은 한숨을 쉬였다. 강철민일것이다. 또 무엇을 보내왔을가? 오늘은 곽이 길고 크다. 또 무슨 요란한 고무제품을 보내온것이 아닐가? 흥심이 없어지는 마음으로 그 곽을 받아들고 집으로 들어섰다. 오래동안 비여있던 집인듯이 느껴지는 썰렁하고 고적한 방안을 처음보듯 휘둘러 보았다. 세련된 기호가 느껴지는 값진 가장집물들로 장식된 집안이 마치 처음 들어서는 집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천천히 책상앞에 강철민의 지함을 내려놓고 걸상에 주저앉았다. 마치도 곤역을 치르고난것처럼 지쳐버린것만 같았다. 자기가 한없이 초라하고 불쌍하게 생각된다. 강철민이 또 떠오른다. 그가 무엇을 보내왔을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흥심없이 곽을 열었다. 그 순간 흠칫했다. 곽에는 싱싱한 꽃묶음이 들어있었다. 물기마저 흐르는듯 한 크고도 싱싱한 꽃들이였다. 알지 못할 신선함과 향기가 주변을 흐른다. 옥림은 기가 질린듯 한 심정으로 그 꽃다발을 꺼냈다. 거기에 끼운 자그마한 종이쪽지를 보았다.

《옥림, 어머니의 생일을 축하해.》

옥림은 그 꽃다발을 들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어머니에 대한 생각과 홀로 있는 자기의 처지를 아프게 되새겨주는 꽃다발이다. 옥림은 끝내 어린애처럼 비죽비죽하며 흐느꼈다. 그러다가 그 꽃다발과 함께 책상에 얼굴을 묻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그 시각 부지배인 송명식은 텅빈 사무실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할일도 없고 갈 곳도 없는듯 한 무료한 느낌이다.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책상서랍을 열다가 한쪽구석에 박혀있는 구겨지고 보풀인 종이장을 보았다. 무엇인가 하여 꺼내들다가 얼굴을 찌프렸다. 매부인 고철삼이 지배인에게 전해달라면서 맡겼던 종이장인것이다.

지배인이 고무바닥운동화를 수지운동신으로 바꾸기 위한 안들을 제출해달라고 호소한 다음날 고철삼이 그를 찾아왔었다. 자기를 웬간해서는 찾아오지 않던 그가 방으로 찾아온것이 이상해서 송명식은 긴장되기까지 했었다. 고철삼은 자기 주머니에서 종이장을 꺼내들었다.

《지배인의 말을 듣구 사실은 나도 공장을 위해 될가 생각한게 있긴한데… 이건 꼭 개가죽을 양가죽으로 바꿔쓰자는노릇 같아서 직접은 찾아가지 못하구 이렇게 자네를 찾아온거야. 들고가는게 변변한거라면 또 낫지. 이건 정 내놓을게 없으니 언젠가 내가 풍문에 듣구 보았던걸 써내는 판이야. 강낭떡을 비단보자기에 싸는 격이라고 할가? 어쨌든 변변치 못한 안이래두 자네가 들고가면 좀 나을가 해서 온거네.》

고철삼은 종이장을 송명식앞에 밀어놓았다.

《자네가 보구 뭐 건져볼만 한것 같으면 지배인에게 제출하라구, 내 이름은 말하지 말구.》

송명식은 그가 나간 다음 주고간 종이장을 펴들어보았다. 자기가 관리국 처장시절에 보았던 어느 지방의 축구화와 그 기술자에 대해서 쓴 글이다. 왜서인지 쓰거운 웃음이 새여나갔다.

지방의 축구화가 뭘 볼만 한게 있겠다고 이런걸 써서 지배인에게 보이려든단 말인가? 무엇인가 지배인에게 새로운 인상을 주고싶었는가? 차라리 가만있는것이 나으련만!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 종이장을 자기 책상서랍에 던져넣고말았었다. 그리고는 감감 잊고만것이였다.

고철삼은 송명식에게 있어서 맏형과도 같은 존재였다. 원래 고아였던 송명식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돌격대에 들어갔는데 그때 고철삼은 그 일판에 손탁이 드세기로 소문난 돌격대대장이였다. 일밖에 모르는 그의 손탁에서 견딜수가 없어 어느날 송명식은 외삼촌네 집으로 도망쳤다. 그것을 안 고철삼이 백여리길을 걸어 그를 찾으러 왔다. 송명식은 다른 집에 숨어버렸다. 외삼촌이 명식이가 어디로 떠났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먼길에 지친듯 얼굴이 거멓게 질린 고철삼이 말없이 퇴마루에 걸터앉았다.

《아버님, 그러지 말구 명식이를 데려오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 애의 전도는 망치고맙니다. 난 명식이가 나타날 때까지 여기서 한걸음도 움직이지 않겠습니다.》

정말로 고철삼은 그 퇴마루에 걸터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식사때조차 음식을 권하면 말없이 고개를 저으며 거절하고는 랭수만 들이켰다. 밤에도 그 퇴마루에 누워잤다. 외삼촌이 한숨을 쉬며 채머리를 떨었다.

《임자, 젊은 사람이 고집이 보통이 아니네그려!》

고철삼이 랭수를 일곱그릇째 들이켰을 때 송명식이 더 견디지 못하고 그의 앞에 나타났다. 머리를 푹 숙이고 나타난 송명식을 보며 고철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이틀동안 뿌리가 내린듯 움직이지 않던 퇴마루에서 무겁게 일어섰다.

《가자!》

돌격대까지 백여리나 되는 길을 고철삼은 송명식과 함께 꼬박 걸었다.

《걸어야 해! 우리 투사들과 인민군전사들이 이렇게 두발로 걸으면서 찾아주구 지켜준 땅이야. 그들이 왜 굶주리구 총에 맞아 쓰러지면서두 이런 길을 두발로 걸었는지 넌 알아야 해.》

발바닥이 아파 절룩거리며 걸었다.

《걸어라, 걸어! 발바닥이 터져도 걸어야 해! 네 발에 굳은살이 배겨봐야 먼저 고생하는 세대가 있어야 다음 세대가 행복하다는걸 알수있어.》

가는 도중에도 고철삼은 음식을 입에 넣지 않았다. 얼마후에야 송명식은 그가 위가 아파서 모지름을 쓰며 걷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들이 돌격대에 도착하였을 때 고철삼은 끝내 입으로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위출혈을 했던것이였다. 그는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맸다. 온 돌격대가 자기의 피를 바쳤다. 부끄럽고 당황해져 얼굴이 까맣게 질린 송명식도 팔을 부르걷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바로 거기서 그는 고철삼의 막내누이동생인 고철옥을 만나게 되였다. 송명식이 누구이며 그와 오빠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안 애어린 처녀의 눈에서는 섬광이 이는듯 했다. 그는 휘파람소리처럼 부르짖었다.

《우리 오빠가 죽으면… 난… 난 이 동질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어요. 가라요! 동진 여기에 와있을 자격이 없어요!》

주변에 둘러선 돌격대원들의 눈빛이 그 처녀의 눈빛과 같다는것을 송명식은 알아보았다. 참을길 없는 수치와 절망감이 온몸을 휩싸안았다. 떠밀치운듯 한감을 느끼며 송명식은 정신없이 거기를 떠났다. 처절한 수치감은 점차 알길없는 반발심과 분노로 바뀌였다. 그는 사람들앞에 자기를 나약하고 몹쓸 인간으로 만들어버린 고철삼과 그의 누이동생을 원망했다. 죄의식과 함께 반발심도 느끼며 정신없이 일했다. 밤낮도 끼니도 잊고 일했다. 표창도 받고 사람들의 칭찬도 받았다.

고철삼은 위출혈을 한 다음부터 건강이 씨원치 않아 이전처럼 일을 하지 못하고 자주 앓았다. 그는 대학으로 가게 되였다. 그런데 고철삼이 자기 후임으로 송명식을 추천하였다. 결국 송명식은 돌격대대장이 되여 떠나는 고철삼을 바래주게 되였다. 떠나는 날 고철삼은 말했다.

《명식이, 널 걸리워 데리고오던 그때부터 난 어디 가든 너를 도와주자구 결심했다. 아무데든 너와 함께 있으면서 부모가 되여주구 형이 되여주려구 했다. 그런데 이렇게 내가 먼저 대학에 가게 되는구나. 미안하다!》

《대장동지!》

《일을 잘해라. 다시 만나자!》

고철삼은 그렇게 떠나갔다. 그런데 몇해후에 송명식도 대학에 가게 되였다. 고철삼이 그렇게 한것이였다. 송명식은 자기의 인생에 고철삼이 무시할수 없는 힘과 의지를 안고 비껴있음을 불현듯 깨달았다. 그가 대학을 졸업했을 때 이미 중앙기관 일군이 된 고철삼이 자기 누이동생을 데리고 명식의 앞에 나타났다. 사로청(당시)지도원으로 사업하고있는 처녀는 아름답고 자신만만하며 리지적인 처녀로 변했었다. 처녀는 철없던 시절에 명식의 마음에 상처를 입힌 일을 내내 미안해하고있었다. 그리고 무쇠같은 의지를 가진 송명식에 대한 호감도 숨기지 않았다. 고철삼은 송명식에게 자기 누이동생을 안해로 삼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것은 일종의 유혹이였으며 또 자신만만한 강박이였다. 고철삼은 송명식이 자기 누이동생을 마다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는것이였다.

송명식에게는 아직도 고철삼의 누이동생에 대한 질시감이 남아있었고 또 그에게는 이미 마음속으로 사랑하는 처녀가 있었다. 돌격대시절에 가까와진 처녀였다. 하지만 불현듯 나타난 고철삼의 누이동생은 자기의 인생에 대하여 생각하게 했으며 돌격대처녀를 새삼스럽게 돌아보게 했다. 고철옥으로 하여 그 처녀는 마치 아침해빛에 빛이 희미해진 동녘의 마지막별과도 같이 송명식의 눈에 비쳐들었다.

송명식은 불현듯 그 처녀가 평범한 처녀이며 그 처녀가 자기에게 줄것이란 돌격대시절 힘겨움에 지친 자기에게 말없이 내밀던 작업장갑처럼 근면하고 성실한 노력밖에 없다는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에 비하면 고철옥은 열매 주렁진 과원에 서있는 처녀처럼 손쉽게 많은것을 따줄수 있는 우월한 존재였다. 결국 송명식은 돌격대처녀라는 작은 소로길을 떠나 고철옥이라는 넓고 탄탄한 도로에 들어서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불현듯 차거워진 자기의 태도에 어리둥절해진 돌격대시절의 처녀앞에서 고철옥에게로 돌아서버렸다.

그의 인생에 처음으로 되는 배반이였다.

인생의 첫 실수는 첫사랑에서 실패하는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인생의 첫 기슭에서 생겨난 실수나 배반이 돌이킬수 없는 힘으로 온 인생을 지배하기때문이다. 결국 송명식의 인생이 그렇게 되였다. 고철삼이 로동자가 되여 공장으로 내려오고 자기가 아닌 김윤화가 지배인이 되였을 때 송명식은 눈앞이 캄캄한 심정이였다.

그날 저녁 송명식은 술을 마시고 안해에게 화풀이를 했다. 당신 오빠때문에 내 발전이 막혔다고 소리쳤다. 그날 자기를 놀란듯, 의심스러운듯 그리고 멸시하는듯 바라보던 안해의 눈빛을 잊을수가 없었다.

송명식은 자기에게 이미 사랑하는 처녀가 있었다는것을 알았을 때 자기를 지켜보던 안해의 눈빛이 그러했었다는것을 깨달았다. 부부사이의 신뢰와 믿음은 사실상 그때에 벌써 깨여진것이였다. 바로 그것이 새 지배인의 임명으로 하여 더는 감출수 없고 돌이킬수 없는것으로 되여버렸던것이였다. 이제와서 송명식은 자기의 어제날의 선택을 탓하게 되는 마음이였으며 새 지배인에 대한 알지 못할 거부감과 반발심으로 하여 공장의 모든 일들에 심드렁해지는 마음이였다.

송명식은 구겨지고 보풀진 고철삼의 종이장을 들여다보다가 이번에는 그것을 휴지통에 넣어버리고말았다.

문득 문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방으로 김윤화가 들어섰다. 송명식은 거북해지고 당황해져 구부정한채 김윤화를 바라보았다.

《부지배인동무와 토론할 문제가 있어서 왔어요.》

송명식은 말없이 의자를 권했다. 김윤화가 말했다.

《실은 부지배인동무에게 중요한 일감을 하나 맡기자고 왔어요.》

《뭡니까?》

김윤화는 그의 앞에 한장의 종이장을 내놓았다. 문득 고철삼의 종이장이 생각나 심장이 뜨끔해오는듯 한 느낌이다. 그러나 김윤화는 그것을 느끼지 못한듯 밝은 어조로 말했다.

《부지배인동무, 우린 이제 공장의 고무바닥운동화흐름선을 수지운동신흐름선으로 개조하려고 해요.》

송명식은 심드렁해서 그 종이장을 펴들었다. 자재명세들이 적혀져있었다.

《고무바닥운동화흐름선을 수지운동신흐름선으로 만들자니 필요되는 자재와 설비들이 너무 많군요. 건조구간과 급랭구간, 통풍장치와 종합조종반… 거기다가 만들바에는 불수강판을 구해다가 온통 번쩍번쩍하는 멋쟁이로 만들자는거예요. 아무래도 부지배인동무가 뛰여주어야 할것 같군요.》

역시 내가 없으면 안되겠지 하는 자부심이 갈마들었다. 그러면서도 왜서인지 속이 편안치 않았다. 내가 이런데 나서는게 옳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명분도 없고 리득도 없는 일이다.

사실 고철삼이 산판에서 쓰러져 치명적인 상태에 처한것으로 하여 송명식은 김윤화지배인에 대한 반감마저 느끼고있었다. 물론 고철삼이 쓰러진것이 지배인의탓이 아니라는것은 알고있지만 김윤화지배인이 어제날의 감정때문에 고철삼을 너무 무관심했고 지어는 혹사시켰다는 생각을 버릴수가 없었다.

지배인은 지금 자기 이름을 내자고 너무도 많은것을 희생시키고있다. 인간들뿐만이 아니라 국가계획마저 지배인의 공명심에 녹아나고있다. 공명심이 있는 곳엔 정직성이 있을 자리가 없다.

지금에 와서 송명식은 지배인의 장점보다 약점이나 실수에 더 매여달리고싶어졌다. 이런 지배인을 위해 바지가 벗겨지는줄 모르고 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사심은 인간의 마음을 오해와 몰리해, 리기적인 타산쪽으로는 곧잘 몰고가도 용기와 정직성쪽으로는 이끌어가지 못하는것이다.

그는 종이장을 접어 고철삼의 종이장을 넣었던 책상서랍에 넣으며 한번 구해보자고 시들하게 대답했다. 그의 내심을 알리없는 김윤화는 밝고도 여유있어보이는 얼굴이였다. 그는 자기의 가방을 열더니 책상우에 한통의 약을 꺼내놓았다. 구하기가 쉽지 않은 귀한 약이였다.

《다행히 고철삼동무한테 좋다는 약을 한통 구했어요. 요즘 바빠서 병원에 못 가보았는데 동무가 고철삼동무에게 전해줘요.》

송명식은 흠칫해진채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약통을 내려다보았다.

《힘을 내서 병치료를 잘하란다고 전해주세요. 그럼 수고해주세요.》

지배인은 일어서서 방을 나갔다. 송명식은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러다가 그 약을 책상서랍속에 넣어버리고말았다. 고철삼이 이 약을 받아도 고마와하지 않을것이며 오히려 불쾌해할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자기 마음의 징검돌을 짚고야 남의 마음에로 건너가는 법이다. 송명식이라면 그렇게밖에 달리 처신할수 없는것이였다. 하지만 왜서인지 마음이 편치않았다.

문득 문이 열리더니 몸집이 뚱뚱한 온실관리원녀자가 타는듯이 빨갛고 물기가 싱싱한 꽃 한송이를 들고 들어섰다. 그 녀인은 왜서인지 볼이 부어있었다.

《원, 온실에 꽃이 피면 귀먹은 욕에 숨은 눈총을 받느라고 난 살이 다 내리는것 같아요.》

《그건 무슨 소리요?》

《한겨울에 꽃을 피우느라고 애쓸 땐 석탄 한삽 지원 안하던 사람들이 꽃이 피며는 저 혼자만 정서가 있는 사람처럼 꽃을 내라 내라 하니… 아까는 강철민이 그녀석이 와서 성화를 먹이는걸 욕사발을 안겨 쫓아보냈더니 그녀석이 글쎄 지배인동지한테 부지배인동지의 아주머니가 오늘 생일이라는걸 말하지 않았겠나요. 결국 꽃을 뺏겼지요.》

송명식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프리며 흠칫하고 굳어졌다. 안해의 얼굴이 눈앞을 날아지나가는듯 했다. 자기의 생일을 뻔히 알면서도 출장을 가버린 안해. 안해가 오늘도 돌아오지 않으리라는것은 불보듯 명백하다. 사람들의 눈에, 지어는 딸애의 눈에조차 모순과 불화를 품고 있는 부부로 비쳐지기를 원하지 않는 두사람에게 있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은 명절날이나 생일날은 참으로 괴로운 날이다. 찾아오는 사람들앞에서 다정한 부부처럼 처신해야 하는 그 심리적부담이 상당히 견디기 어려운것이였던것이다. 결국 안해는 그것을 피해 떠나버리고만것이였다.

《사실은 나두 부지배인동지한테 좋은 꽃 한송이 골라드리자구 생각했댔는데 그 부산스러운 강철민이녀석때문에 앞발을 밟히고말았지요. 지배인동지가 온실을 다 돌아보고나서 내가 감춰두었던 제일 멋있는 이 꽃을 골라들구는 부지배인동지한테 가져다드리라는게 아니겠나요, 부지배인동지가 제 손으로 아주머니한테 드리게 하라구. 결국 내 맘, 지배인동지맘 다 합쳐서 한송이 가져왔어요. 곱지요? 아니, 그런데 얼굴이 왜 그렇나요? 혹시 이발이 쏘는게 아니나요?》

송명식은 얼굴을 붉히며 손을 내저었다.

《됐소! 난 그 꽃이 필요없으니 도로 가져가오.》

온실관리원은 의아한 눈길로 송명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송명식은 괴로운 심정으로 그 얼굴을 외면했다. 온실을 돌면서 이 꽃을 골라주었을 지배인의 얼굴이 눈앞에 얼른거렸다. 별안간 패배의식과도 같은것이 가슴속을 아프게 허비며 갈마들었다. 그는 공연히 역증을 내며 소리쳤다.

《필요없다지 않소. 어서 가져가오!》

그는 고개를 숙여버린채 굳어진듯 앉아있었다. 하지만 눈가에는 타는듯이 붉고 싱싱한 꽃이 그냥 얼른거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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