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 회


제 5 장


2


깊은 추억에 잠겨 김윤화는 역전에 당도했다. 경철이 문제를 놓고 다시는 어머니다운 감정에 포로되지 말아야 한다고 자기자신을 타이르며 천천히 차에서 내려섰다. 최현민을 비롯한 몇사람이 눈물이라도 흘릴듯 한 얼굴로 달려왔다. 목이 메여 말도 제대로 못한채 김윤화를 에워쌌다. 김윤화도 눈뿌리가 뜨끈해지는감을 느끼며 그들의 손을 하나하나 마주 잡았다.

문득 경철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순간 김윤화는 저쯤 목재방통앞에 말없이 서있는 한경철을 보았다.

검스레하니 타고 수척해진 얼굴, 물기가 어린 검은 눈이 애처롭고도 순진하게 번득거리고있었다.

김윤화는 가슴이 찌르르해왔다. 천천히 경철이앞으로 다가갔다. 별안간 목이 콱 메는감을 느끼며 조용히 말했다.

《수고했구나!》

《지배인동지!》

한없이 당연하면서도 매번 알길없는 아픔과 당황함을 안겨주는 그 부름소리. 김윤화는 넋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수고했다! 이젠 어서 목욕이랑 하구 집에 가서 좀 쉬거라.》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순간 림봉숙이 지금 생고무때문에 국경도시로 출장을 갔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가슴이 알알해왔다. 타고 수척해진 경철의 얼굴이 마음에 걸려들었다.

《너 어머니가 출장을 갔다는걸 알고왔니?》

한경철은 고개를 저었다. 김윤화는 한경철을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말했다.

《너 차라리 우리 집으로 가거라.》

공장합숙에 두개의 방을 낸 집을 저도 모르게 우리 집이라고 부르게 되는 자기자신에게 놀라며 김윤화는 소리없이 웃었다.

《내가 오늘 저녁은 일찍 들어가겠으니 좀 쉬고 저녁도 먹고 가거라.》

한경철은 밝은 얼굴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김윤화는 서둘러 한경철과 최현민을 비롯한 나무를 싣고온 사람들을 먼저 차에 태워보내고 자기는 다른 차에 통나무를 한가득 싣고 공장에 들어섰다. 그런데 차에서 내려서던 김윤화는 누군가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듯 한 예감이 들어 고개를 돌렸다. 사무청사 마당쪽에 서서 자기를 지켜보며 빙그레 웃고있는 몹시도 낯익은 얼굴을 보았다. 한순간 누구인지 몰라 당황해졌으나 인차 알아보았다. 그는 조인섭직장장의 아들의 결혼식날에 자기의 승용차를 내준 시당부부장이였다.

온몸을 확 휩쓸어가는 기쁨과 반가움을 느끼며 김윤화는 달려가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부부장은 김윤화의 손을 잡아주며 빙그레 웃었다.

《동무한테 차를 뺏기던 그 공장에 다시 왔댔는데 가자고 보니 동무생각이 또 나더구만. 왜 그런지 그 일이 잊혀지지 않아.》

부부장의 눈길은 그 순간을 돌이켜주는 낯익은 미소로 그윽해졌다.

《시간두 좀 있더라니 동무네 공장을 한번 슬그머니 구경하고 가자고 생각했지.》

즐겁고도 친근한 기운을 풍기는 부부장의 말에 김윤화는 웃었다.

《돌아보시니 어떻습니까?》

《동문 끝내 국산화의 길을 선택했더구만. 내 그럴줄 알았소.》

《아직 생각뿐이지 한걸음도 내디디지 못했습니다.》

《결심했다는게 중요한거지.》

김윤화는 아직은 결심일뿐 아무것도 해놓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숙였다. 부부장은 김윤화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힘든게지?》

《힘듭니다!》

《그래, 무엇이 제일 힘드오?》

김윤화는 저도 모르게 몇시간전 협의회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말았다. 협의회에서 론난을 불러일으킨것은 앞골기와 사방압착기를 비롯한 흐름선에 붙어있는 특수설비들을 어떻게 해결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수입하자는 안과 김세천기사장의 능력있는 기계공장들에 주문하여 만들자는 주문안 그리고 강철민이 제기한 수리안으로 하여 엇갈리는 주장들이 협의회장을 떠들썩하게 했었다.

《특수설비라?! 수입하자는 안과 수리하자는 안, 주문하자는 안이 동시에 제기됐단 말이지?》

부부장은 김윤화를 바라보았다.

《지배인동무 생각엔 어느쪽이 좋을것 같소? 모르긴 하겠지만 난 종업원들을 위해서 국산제고급승용차를 내라고 달려왔던 지배인동무의 생각이 어련할것 같구만.》

김윤화는 고개를 숙였다.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원리적으로 보면 주문안을 선택해야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수리안이 제일 빠르구 가능합니다.》

부부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윤화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래, 기계설비란 생각만으로 되는게 아니지. 하지만 지배인동무, 나라면 주문안을 택할것 같구만. 수입한다거나 혹은 수입설비를 고쳐서 쓰면 그게 절반짜리 국산화가 되지 않을가?》

김윤화는 대답을 못하고 굳어졌다. 《절반짜리 국산화.》하고 입속으로 되뇌여보았다. 두렵고도 엄청난 의미가 가슴을 찌르는것만 같았다. 그들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부부장은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웃으며 말했다.

《이젠 가야겠구만. 난 동무가 모든걸 잘해내리라고 믿겠소.》

부부장은 떠나갔다. 김윤화는 멀어져가는 그 모습을 바래며 오래도록 서있었다. 혹시 이번에도 저 부부장이 자기 승용차를 어떤 절박한 사정에 내여주고 저렇게 걸어서 가는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가 한 말이 자꾸만 귀전에 울려오는것 같았다.

《절반짜리 국산화.》 하고 김윤화는 다시한번 입속말로 되뇌여보았다. 오래도록 움직이지 못하고 서있었다. 통나무를 실어나르는 차를 타고 오가는 동안 그는 내내 부부장의 그 말을 생각했다. 마감에는 역전으로 가지 못하고 어느덧 잎이 무성해진 어린 나무들이 서있는 공장구내길을 자꾸만 걸었다. 정명남당비서가 발기한대로 산뜻한 명찰표를 단 어린 나무들을 여겨보며 바람맞은 나무처럼 갈래없이 흔들리는 마음을 결정하자고 애썼다.

김세천기사장의 주문안을 선택한다는것은 아직은 결과를 예측할수 없는 설비개발에 많은 시간과 정력을 바쳐야 한다는것을 의미하며 그것으로 하여 고무바닥운동화생산을 완전히 포기해야 하는 흐름선개조문제도 다시 심중히 고려해야 한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였다. 하지만 수리안은 보다 현실적인것이며 가능한것이다. 고장난 설비들을 고쳐서 쓰느라면 공장이 한숨 돌리게 될것이고 그러면 힘도 자금도 생길게 아닌가고 협의회장에서 사람들은 말했었다.

김윤화는 모진 번민과 방황을 느끼며 구내길을 자꾸만 걸었다. 그러다가 문득 멎어섰다. 한경철의 이름이 씌여진 명찰표를 본것이였다. 가슴이 아늑하고도 기꺼운 느낌으로 찌르르해온다. 그는 가슴속에 감도는 불안과 위구를 가셔버리는 심정으로 나무를 들여다보며 서있었다. 저도 모르게 가까이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가 그 나무에 주었다. 자기가 경철이를 집에 오라고 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을 생각하자 별안간 마음이 조급해졌다. 모든것을 다 잊고 경철이에 대해서만 생각하고싶어졌다. 그 충동이 얼마나 강했던지 김윤화는 저도 모르게 공장합숙에 있는 자기의 집에 가보기까지 했다.

짐작했던대로 공장은정원에서 목욕을 한 한경철은 정신없이 자고있었다. 가슴에 쿡 마쳐오는 아픔과도 류사한 정을 느끼며 김윤화는 자고있는 한경철을 내려다보았다. 차던진 모포를 여며주고는 저도 모르게 아들의 다리를 만져보았다. 선뜻 일어서지 못한채 오래도록 아들을 지켜보았다. 이윽고 모지름을 써서 자기를 다잡고 사무실로 나갔다. 통나무운반과 보관에 필요한 사업조직을 다시 하고 래일 생산과 관련한 문제들도 깐깐하게 알아보고 대책을 세웠다. 마음을 놓고 경철이를 위해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왜서인지 아직 무엇인가 채 하지 못한것이 있는것만 같은 허전함과 불안이 갈마들었다.

김윤화는 멎어서서 그것이 무엇때문인가를 생각해내려고 애썼다. 문득 남편이 떠올랐다. 그 애가 곁에 오면 당신이 괴롭지 않겠는가고 묻던 그 얼굴이였다.

김윤화는 그동안 남편이 경철이와 마주서는것을 될수록 피해왔다는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자기자신이 나약하고 무력해질가봐 무던히도 겁을 내는 남편, 그 남편에게는 김윤화의 지금 행동이 불필요하고 지어는 위험하기까지 한 처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순간 김윤화는 자기는 물론 남편도 가슴속에 남아있는 한가닥의 아픔과 불안마저 깡그리 가셔버리고 혼연해졌으면싶었다. 오늘의 자리를 그런 자리로 만들고싶었다. 오래도록 서있던 김윤화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약속전화》였다. 오늘만은 좀 일찍 들어와달라고 했다. 남편은 안해의 목소리에서 무엇인가 색다른것을 느낀듯 했다. 여느때와는 다르게 되물었다.

《무슨 일이 있소?》

김윤화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경철이가 집에 와서 기다리고있어요. 저녁식사를 함께 하자요.》

남편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김윤화는 왜서인지 목이 타드는듯 했다. 이윽고 수화기에서 남편의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겠소. 내 집에 들어가겠소.》

김윤화는 안도감과 기쁨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고마워요!》하고 말했다. 남편은 말없이 전화를 놓았다.

김윤화는 조급해진 심정으로 방을 나섰다. 문득 자재과장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오늘중으로 세멘트공장에 가야겠다는것이였다. 종업원아빠트건설을 위한 방대한 량의 세멘트를 해결하기 위해 김윤화는 자기가 직접 세멘트공장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오늘 저녁 차를 끌고 가자는것이였다. 그러니 저녁식사를 하고는 떠나야 하는것이다.

김윤화는 경철이와 남편을 위해 좀 늦게 떠나기로 했다. 시간을 약속하고 밖으로 향했다. 합숙쪽으로 가다가 문득 승용차가 보이지 않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성실한 운전사는 언제나 그가 퇴근하기 전에는 먼저 퇴근하는 법을 몰랐었다. 정문에 물었다.

《승용차가 어디 갔어요?》

경비성원이 대답했다.

《지배인동지, 저… 아까 집에서 승용차를 꼭 써야 할 일이 있다면서…》

김윤화는 문득 긴장되는 마음을 느꼈다.

《누가 끌구갔어요?》

경비성원은 왜서인지 우물쭈물했다.

《정혜가… 잠간이면 된다구 했습니다. 전화를 걸려는데 운전사동무가 잠간 갔다 오겠다면서 끌구 나갔습니다.》

김윤화는 말없이 서있었다. 울면서 공장합숙으로 들어온 정혜를 김윤화와 남편은 물론 온 공장사람들이 마치 빨갛게 단 쇠덩어리이기라도 한듯이 조심스럽고도 공경스럽게 대해주었다. 모든데서 우선권을 부여해주고 자그마한 일도 그 애를 대신해서 해주려고 애썼다. 정혜는 가정과 공장에 우월하고도 어리광스러운 존재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승용차를 자주 타고 움직이는것은 그동안 정혜에게 새로 붙은 버릇이다.

김윤화는 말없이 서있다가 천천히 합숙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니 시어머니가 전실에서 깨여난 경철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반기며 일어섰다. 김윤화를 향해 마주 나왔다.

《정혜 에미가 오는구나.》

아무리 그러지 말라고 만류해도 며느리를 앉아서 맞는적이 없는 시어머니였다. 일때문에 하루에도 몇번씩 집인지 사무실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여기에 들어와야 하는 김윤화이건만 매번 일어서서 맞는다. 김윤화는 퍼그나 당황하고 불편해지는 마음이였다.

《그런데 내 손이 험해서 부엌일은 못했다.》

시어머니는 손님이 오면 자기가 음식을 험하게 한다면서 부엌일을 하려하지 않는다. 시어머니에게는 경철이도 국장의 아들일뿐이다.

경철이가 산바람에 타고 수척해진 얼굴에 어줍은듯 한 미소를 짓고 김윤화를 바라본다. 김윤화는 경철을 향해 웃어보였다.

《오래 기다렸겠구나. 내 인차 저녁을 지어줄게.》

《일없습니다. 푹 자고났더니 온몸이 막 거뜬합니다.》

《네가 좀 못쓰게 됐다. 내 맛있는걸 만들어주지.》

김윤화는 서둘렀다.

《제가 뭘 도울게 없습니까? 그래두 농촌동원이랑 나가서 내가 식당근무를 서면 모두들 맛있다고들 했습니다.》

《그래?!》

김윤화는 웃었다. 오래간만에 남편에게 자기와 경철이가 한 음식을 대접하고싶었다.

《그럼 날 좀 도와주겠니?》

《그러겠습니다!》

김윤화는 서둘러 랭동기문을 열었다. 며칠전에 구해다 보관한 커다란 붕어 몇마리가 보인다. 남편은 생선국을 좋아한다. 서둘러 음식감들을 꺼내며 경철에게 물었다.

《경철아, 너 이 붕어들을 좀 손질해주겠니?》

《알겠습니다.》

경철이가 붕어들을 들고 세면장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깨끗이 손질한 붕어를 들고 나왔다.

《이렇게 손질하면 됩니까?》

《너 이런 일을 많이 해보았구나.》

《별로 해보진 못했지만 그저 깨끗하게 할줄은 압니다.》

《그럼 생선국은 끓일줄 아니?》

《그건 잘…》

경철이가 면구한듯 웃었다. 김윤화도 웃었다.

《하긴 남자가 부엌에 자꾸 드나들면 발뒤꿈치가 물러난다더라.》

《그래도 배고플 땐 부엌에 서서 먹는걸 더 좋아하는데요 뭐.》

그들은 서로들 마주보며 웃었다.

《넌 뭘 젤 좋아하니?》

《난 생선에 남새와 감자를 두고 끓인 남새생선국을 좋아합니다.》

김윤화는 식성마저도 남편과 같은 경철이를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가슴이 그윽해진채 말했다.

《그래, 그럼 내 남새생선국을 끓여주지!》

《그럼 물고기는 제가 썰겠습니다.》

《그래라!》

부엌에서 끓이고 볶는 맛좋은 냄새가 감돌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혜는 왜 아직 안 들어옵니까?》

경철이 물었다. 김윤화는 대답없이 일손을 놀렸다. 승용차를 끌고 어디론가 가버린 정혜가 다시금 마음속에 무겁게 실리는것을 느꼈다. 공장합숙에 어느 정도 안착이 되고 많은 사람들과 친숙해지기는 했으나 아직은 집에 자기가 그린 그림들을 붙여놓지 않는 정혜였다.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래일 학교에 파철을 가지고가야 한다는데 공장에서 누군가가 너무 큰 파철을 주었다누나. 무거워서 그 애가 혼자 못 가져가겠더구나. 파철을 구해준 사람은 뭐 제가 날라다주겠다고 했다는데 그래서야 쓰겠니? 그래서 이모저모로 편안하게 어머니의 차에 싣고 오늘 저녁에 미리 학교에 가져다두라고 했다.》

김윤화는 정혜가 승용차를 끌고나간 리면에 바로 시어머니의 잔정이 작용했다는것을 깨달았다.

《난 정혜가 저렇게 컸는데도 자꾸만 어릴적 생각이 나서 조마조마하구나. 늦어 본 자식이 돼서 그런지 와보면 자꾸만 넘어져서 옷의 무릎이 먼저 시커멓게 나가군 했지.》

이런 자리에서 듣게 되는 시어머니의 말이 의미심장하기도 하고 거북하며 괴롭기도 하다. 그들이 결혼식을 한 후 인차 집을 떠난 시어머니는 아무것도 모르고있었다. 시어머니는 김윤화의 첫아이가 잘못된것으로 알고있었다.

첫 해산이후 그들에게는 오래도록 아이가 없었다. 그것으로 하여 그들 부부와 림봉숙이 겪은 마음속 고심은 컸었다. 정혜는 그 눈물겨운 마음들에 기쁨과 안도감을 준 고맙고도 귀중한 존재였다.

김윤화는 그 딸애에게 어느 정도의 특혜를 베풀어주는것도 필요하다고 자신을 납득시키려고 애썼다. 모든것을 잊고 부지런히 밥을 짓고 음식을 만들고 마지막에는 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먼저 기름과 간을 두고 남새와 감자를 볶았다. 그다음 물을 두고 한소끔 끓이다가 마감에 물고기를 넣고 끓이면 되는것이다.

문득 문두드리는 소리가 울렸다. 김윤화는 국자를 손에 쥔채 굳어져버렸다. 남편이 왔다! 하지만 아니였다! 문두드리는 소리의 주인은 정혜였다. 그 애는 장난궂은 소리로 웃고 떠들며 집에 들어섰다. 경철이와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김윤화는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남편이 왜 오지 않을가 하고 생각했다. 문득 남편이 오지 않으려는것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전화를 걸고싶었으나 왜서인지 두렵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무엇인가 바라지 않던 대답을 듣게 될것만 같아서였다. 문득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정혜가 먼저 달려가 전화를 받았다.

《어머니, 아버지예요. 어머니를 바꿔달래요.》

딸애가 호들갑을 떤다. 김윤화는 송수화기를 바꿔쥐였다.

《정혜 아버지!》

수화기에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미안하오!》

가슴이 선뜩해오는감, 남편의 목소리가 불현듯 멀고도 낯설게 들려온다.

《갑자기 급한 일이 제기되여 못 들어가겠구만. 꼭 들어가려고 했댔는데…》

김윤화의 가슴속으로 서운하고도 노여우며 절망적인 생각이 번개불처럼 날아지나갔다. 《약속전화》를 어기기는 처음인 남편이다. 남편이 이 자리를 우정 피해버린것만 같은 예감이 갈마들었다. 목이 콱 막힌것처럼 아무 말도 새여나오지 않았다.

《들어가고싶었소! 하지만 우리에게는 사업이 있지 않소. 여보! 당신은 날 리해하겠지?》

몹시도 지친것 같은 남편의 목소리였다. 아직도 삼키기 힘든 덩이가 뻐근하게 남아있는 가슴을 느끼며 김윤화는 자기를 다잡자고 모지름을 썼다. 남의 목소리처럼 느껴지는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저녁식사는 어떻게 하겠어요?》

《공장에서 하겠소.》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알겠소! 미안하오! 어서 저녁을 하고 쉬오.》

남편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온다. 그들은 무엇인가 못다한 말이 있기라도 한것처럼 송수화기를 놓지 못한채 다같이 침묵했다. 이윽고 남편이 먼저 송수화기를 놓았다. 안타까움과 서운함이 가슴을 저릿하게 한다. 김윤화는 송수화기를 든채 자기를 다잡자고 모지름을 썼다. 이윽고 송수화기를 놓고 돌아섰다. 자기를 지켜보는 눈길들앞에 혼연한 얼굴을 지어보이자고 모진 애를 썼다.

《아버지가 급한 일이 제기돼서 못 들어오겠다는구나. 우리끼리 먼저 밥을 먹자.》

김윤화는 자기를 지켜보는 식구들의 눈길을 피하며 부엌으로 들어섰다. 자기가 무엇을 하고있는지 인식하지 못하며 공연히 부엌을 서성거렸다. 국가마가 세게 끓는다는것을 느꼈다. 이제는 식사를 해야 한다. 경철이와 시어머니를 생각해야 하는것이다. 경황없이 국을 퍼들여가고 그다음은 모두가 밥상에 둘러앉았다. 서로 권하고 땀을 흘려가며 맛있게 먹는 식구들을 보며 김윤화도 무의식적으로 수저를 놀렸다.

《지배인동지, 맛있게 먹었습니다!》

《나도요!》

김윤화는 웃어보였다. 빈그릇들을 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빈그릇들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서던 김윤화는 그만 아연하여 굳어지고말았다. 부엌 한쪽구석에 경철이가 썰어놓은 물고기가 그대로 있는것을 보았던것이였다. 처음에는 놀라고 어안이 벙벙하여 물고기와 국가마를 번갈아보았고 마지막에는 모든것을 깨닫고 그만 얼굴을 활딱 붉히고말았다. 물고기를 마지막에 넣으려고 경철이가 썬 물고기를 칼도마채로 구석에 놓았다가 그만 국가마에 넣지 못하고만것이였다. 참담하고 당황한 생각에 어쩔바를 몰라 쩔쩔맸다. 자기를 지켜보는 경철이와 정혜의 시선앞에 얼굴을 붉혔고 마지막에는 나무라듯 그 애들을 바라보았다.

《아니, 너희들은 국을 먹으면서 다 알았겠는데 그렇게 아무 말도 안한단 말이냐?》

경철이와 정혜도 놀랍고 당황하여 어쩔줄을 몰라했다.

《아니, 난 물고기가 적으니 어머니가 경철오빠와 할머니의 그릇에 다 넣었겠지 하고 먹었는데… 그래두 물고기가 들어가서 그런지 국이 별로 맛있다 했더니…》

정혜는 허리를 꼬부리고 돌아갔다.

《나두 그랬습니다!》

경철이도 소리내여 웃음을 터뜨렸다. 시어머니도 웃었다.

《결국은 서로들 생각하느라구 남새국을 생선국인줄 알구 먹었구나.》

김윤화도 그만 웃고말았다. 집안에 웃음판이 벌어졌다. 김윤화는 시어머니에게 미안해졌다.

《어머니, 미안해요! 내가 덤비다나니 그만…》

《일없다! 모두가 맛있게 먹었으니 되지 않았니. 결국 사람이란 이 마음이 기본이라는 소리로구나.》

김윤화는 말없이 서있었다. 오늘 저녁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남편을 두고 지나치게 놀라고 노여워졌던 자기가 돌이켜진다. 결코 남편은 경철이를 피하기 위해 들어오지 않은것이 아닐것이다. 인간이 자기를 리해하듯 남을 리해하고 남을 탓하듯이 자기를 탓할줄 안다는것은 참으로 힘겨운 일이다.

《경철아, 미안하구나!》

정문까지 경철을 바래며 김윤화는 진심으로 말했다.

《아닙니다. 오늘 정말 즐거웠습니다.》

김윤화는 경철의 얼굴을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이제 빈집에 가야 할 경철이가 측은해진다. 하지만 경철이는 그렇게 바쁜 어머니를 몹시도 존경하며 따르고있다.

행복에 대한 절대의 자막대기란 없다. 행복은 매 인간의 마음속에 나름대로 존재하는것이다. 이 저녁 김윤화는 경철이와 오래도록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싶어졌다.

문득 대형화물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정문앞에 와선다. 김윤화는 자기를 세멘트공장으로 태워가려고 온 자동차라는것을 알아보았다. 두런두런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자재과장이 이쪽으로 걸어온다. 저쪽 합숙쪽에서는 강철민이가 나오다가 그들을 보더니 무춤 서버린다. 무엇인가를 즘자리는듯 하면서 그들쪽을 바라본다.

또 무슨 노래를 적은 종이장이라도 꺼내들지 않으려나?

사업과 생활은 언제나 멈춰서지도 않고 량해도 구함이 없이 김윤화를 향해 곧추 다가들군 하는것이다. 김윤화는 어둠속에 점점 커지며 다가오는 자재과장의 형체를 다소 두렵고도 서글프게 지켜보았다. 경철이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이젠 어서 집으로 가거라.》

《지배인동지!》

경철이는 모든것을 깨달은듯 자동차와 김윤화를 번갈아보았다. 그들의 눈길이 서로 부딪쳤다. 그 눈빛들은 어둠속을 날아지나 서로를 감싸안았다.

《지배인동지, 너무 무리하지 마십시오!》

《그래!》

별안간 목이 메여오는듯 한감을 느끼며 김윤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철의 온몸에서, 어조에서 풍겨오는 따뜻한 기운을 느낀것이였다. 이상한 행복감이 가슴을 흘러간다. 김윤화는 자기에게 닿아있는 경철이의 시선을 느끼며 자동차에 올랐다. 자동차가 윙 하고 떠나는 순간 아직도 그 자리에 거뭇한 그림자처럼 서있는 한경철을 다시금 돌아보았다. 굳어진듯 서있는 한경철옆으로 강철민이 다가서는것을 보았다. 나란히 선 그들은 점점 멀어지다가 사라져버렸다. 그래도 김윤화는 자기의 온몸으로 경철이를 느끼며 앉아있었다. 그런데 아직 시내도 채 벗어나지 못했는데 문득 림봉숙에게서 손전화가 걸려왔다.

《너 지금 어디 있니?》

《난 지금 세멘트공장으로 가고있다.》

림봉숙은 잠시 주저하는듯 하더니 조용히 물었다.

《경철이가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겠니?》

《그 앤 지금 집으로 가고있을거다. 저녁을 우리 집에서 먹여보냈다.》

《그래! 그 애가 오늘쯤 도착할것 같다구 그 공장 설비부원이 알려주길래 부랴부랴 일을 마치고 돌아온다는게 지금에야 왔구나.》

김윤화는 가슴이 찌르르해왔다. 왜서인지 온통 땀에 젖어 집에 들어섰을 림봉숙이 보여오는것 같았다. 그는 목이 메인듯 한감을 느끼며 아무 말도 못하고 손전화기를 든채 앉아있었다. 림봉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애가 이번에 산에 가면서 손전화기를 집에 두고 가서 련계가 안되니 막 안타깝더구나. 그래, 그 애 건강은 일없니?》

《그래, 일없다. 이제 만나보렴!》

《알겠다! 그 애를 너무 혹사시켰으면 너하구 열흘은 말을 안하겠다.》

림봉숙은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김윤화는 그가 경철이를 위해 옷이며 음식이며를 사들고 왔으리라는것을 알았다. 그 모든것을 그려보듯 손전화기를 내려다보며 앉아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가슴속에 기여드는 서늘한 불안을 느끼며 흠칫했다. 떠나던 순간에 본 강철민의 모습이 떠올랐던것이였다.

늘 합숙에 들이박혀 무엇인가 조마조마한 일거리를 만들어내군 하는 강철민이가 오늘은 왜 경철이옆에 어물거렸을가?

그가 경철이를 합숙으로 끌고갈수도 있다는 생각이 온몸에 선뜩한 기운을 몰아오는듯 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운전칸안에서 엉거주춤 일어서기까지 했다. 강철민을 찾고싶었으나 그의 손전화기에는 강철민의 주소가 없었다. 집에 전화를 걸었으나 무슨 영문인지 집에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김윤화는 점점 당황해지기 시작했다. 앞쪽에서 마주 오는 택시를 보자 저도 모르게 말했다.

《차를 세워요!》

차에서 내려선 김윤화는 무작정 택시를 막아섰다. 택시가 선 다음 자재과장에게 량해를 구했다.

《미안해요. 공장에 다시 갔다올 일이 생겼어요.》

《아니, 그럼 이 차로 가면 되지…》

김윤화는 대답처럼 웃어보이고는 택시에 올랐다. 공장으로 달렸다. 짐작했던것처럼 한경철은 강철민과 함께 공장합숙에 있었다. 콤퓨터를 펴놓고 무엇인가 하고있었다. 방심하고있었으면 어쩔번 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떠름해서 자기를 바라보는 한경철과 강철민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경철아, 어머니가 방금 집에 도착해서 널 기다리고있다.》

《그렇습니까?!》

경철이의 얼굴에 웃음이 확 피여올랐다. 그는 덤벼치며 옷을 입고 나섰다. 김윤화는 그를 택시에 태우고 림봉숙의 집으로 달렸다. 택시가 멎어섰을 때 한경철은 김윤화에게 인사를 하고 한달음에 현관으로 뛰여들었다. 우당탕거리며 계단을 달려올라가는 경철이의 발자욱소리를 들으며 김윤화는 말없이 서있었다. 녀인의 얼굴에는 착잡하고도 멍한 표정이 어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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