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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9월 20일

평양시간


제 18 회


제 4 장


3


오늘 류성신발공장 사람들은 산판에서 공장창립일을 맞게 되였다. 김윤화는 쌀과 부식물이 긴장한 때였지만 공장창립일만은 쇠여야 한다고 했다. 그날은 일을 일찍 끝내고 유희오락과 체육경기도 하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산판에서 공장창립일을 쇠는 이채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그날도 한경철은 식당에 물을 길어다주려고 이른새벽 일찍 일어났다. 사실은 김윤화지배인이 그에게 당부한 일이였다.

《처녀들을 도와주거라. 너야 이 산판에서 나이가 제일 젊지 않니?》

그리하여 그는 몹시도 힘겨웠지만 이른새벽마다 일어나서 물을 길었다. 더우기 이즈음은 산판에 남아 식당일을 도와주고있는 김해옥이 있어서인지 번지게 되지 않았다.

한경철은 식당칸에 들어섰다. 그런데 김해옥이 쉬지 않고 식당칸에 혼자 앉아있었다. 그는 한경철이 들어온줄도 모르고 무엇인가를 정신없이 들여다보고있었다. 왜서인지 얼굴색이 심상치 않아보였다.

《해옥동무, 왜 그러오?》

한경철이 물었다. 김해옥은 흠칫 놀라 한경철을 바라보더니 안타까운듯 입술을 깨물었다.

《무슨 일이요?》

《경철동지, 이걸 좀 맛보십시오.》

처녀는 노릿노릿해보이는 기름튀기를 내밀었다.

《기름튀기로구만. 그런데 왜 그러오?》

그는 기름튀기를 씹어보았다. 그러다가 그만 오만상을 찌프렸다.

《아니, 이거 무슨 기름튀기가 이렇소? 짜긴 왜 이렇게 짜구.… 여기에 뭘 넣었소?》

《빨리 부풀게 하느라구 밀가루에 식초를 조금… 야, 그런데 이걸 어찌나?》

처녀는 울듯 한 얼굴이였다. 보매 밤늦도록 음식을 한 다른 식당처녀들을 다 쉬우고 혼자서 기름튀기를 한 모양이였다.

《아니, 흔히 밀가루에 식초를 두구 기름튀기를 하기두 하는데… 이럴수가 있나?》

이제 당장 날이 밝겠는데 기름튀기가 이렇게 됐으니 어찌는가고 처녀는 속상해 어쩔줄 몰라했다. 더 하고싶어도 다 이렇게 될가봐 못하겠다는것이였다. 그가 속상해서 떠드는통에 다른 처녀들도 다 깨여났다. 깨여나 기름튀기를 맛보고는 눈이 둥그래졌다. 문득 한 처녀가 빈병 하나를 들고왔다.

《해옥언니, 혹시 이 병에것두 쓰지 않았어요?》

《그것두 썼어.》

기름병을 들고온 처녀는 허리를 들까불며 웃었다.

《언니, 이건 내가 어제 저녁에 양념장을 하려고 식초 남은데다가 소금물 반병을 섞어놓았던거예요.》

폭소가 터졌다. 그 폭소는 아침식사까지 이어졌고 온 하루 산판의 즐거운 일화가 되였다.

해옥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싶어하는듯 한 얼굴이 되였다. 그날 저녁 처녀는 풀이 죽어 경철에게 말했다.

《사실 난 음식을 잘하지 못해요. 우리 어머닌 지금두 말해요. 언젠가 내가 풋고추를 볶으면서두 거기에 고추가루를 살짝 쳤던걸 두고말이예요. 또 언젠가는 글쎄 딸기를 씻어서 접시에 담는데 어머니가 거기에 맛내기를 쳤니 하고 옆에서 음식 하는걸 도와주는 처녀에게 하는 말을 나한테 하는 소리로 듣고 그만 딸기접시에 맛내기를 쳐서 손님한테 드리지 않았겠나요, 아마 딸기에두 맛내기를 치는가부다하구. 그러니 딸기맛이 뭐가 됐겠나요? 내 음식솜씨라는게 바로 이래요.》

경철은 웃고말았다. 언제나 순진하고도 리지적으로 보이는 처녀의 리면에도 그러한 약점과 고민이 있다는것이 왜서인지 즐거워졌다.

그가 보건대 김해옥은 아름답고 순진하며 총명한 처녀였다. 한 인간에게 고운 마음씨와 미모 그리고 총명한 두뇌가 주어진다는것은 쉽지않은 일이건만 처녀에게는 질투가 나리만치 그 모든것이 구비되여있었다. 처녀가 산판에 가지고와서 읽고있는 외국원서를 보고 경철은 처녀의 외국어수준이 상당하며 그가 다름아닌 신발부문의 기계들을 연구하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거기에는 고무바닥운동화설비인 증부가마에 대한 자료도 있었다. 한경철은 습관처럼 긴장해지는 마음이였다. 자기에게 보내온 정체불명의 편지가 또 떠올랐다. 더우기 처녀가 어느날 경철의 학위론문이야기를 꺼내며 아버지를 리해해달라고, 한생을 그렇게 산분이니 아버지도 기뻐할수 있게 학위론문을 꼭 완성해달라고 했을 때 한경철에게는 어설프면서도 생생한 하나의 모습이 영화화면처럼 머리속을 흘러갔다. 그것은 아버지에게서 한경철의 학위론문이야기를 들은 처녀가 원서를 펼쳐놓고 편지를 쓰고있는 장면이였다. 그것이 어찌나 머리속에 골독하게 새겨졌던지 한경철은 날이 갈수록 그것이 마치 자기가 직접 본 장면처럼 생각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처녀에게 편지와 관련한 이런저런 말을 물었으나 처녀는 모르쇠를 했다.

한경철은 자기의 이름을 감추고 편지를 보낸 처녀이고보면 십분 그럴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은 편지를 보낸 처녀가 명백히 김해옥이라고도 짚을수가 없는 한경철이였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지배인이 김해옥을 데리고 산판에 올라왔다. 김해옥이 자기도 지배인처럼 산판일을 하겠다고 했다는것이였다.

한경철은 어리둥절하고 못미더워진 눈으로 여리여리한 기운을 풍기는 김해옥의 몸매를 바라보았다. 김해옥은 그러는 한경철을 바라보며 방긋 웃었다. 하지만 처녀는 첫날에 벌써 자기가 산판일에 들어서서는 놀랄만큼 무기력하고 암둔하기까지 하다는것을 보여주고말았다.

커다란 나무를 베여넘길 때 나무가 돌면서 미는 방향이 아니라 생뚱같은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런데 처녀는 거기에 서있었다. 모두가 경악하여 뛰라고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처녀는 공포에 질려 움직이지 못했다. 모두가 눈을 딱 감았다. 요란한 소리를 울리며 나무가 넘어가고 눈보라가 가라앉았을 때에야 사람들은 눈을 떴는데 그들의 앞에는 죽은 사람처럼 얼굴이 하얗게 질린 처녀가 서있었다.

나무가 한치만 더 기울어져 넘어갔어도 처녀는 그렇게 서있지 못했을것이다. 사람들은 등판에 즐펀한 땀을 느끼며 펄썩펄썩 주저앉았고 성미급한 축들은 눈을 흡뜨고 당장 산에서 내려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본인 당사자는 더 놀란것 같았다. 그다음부터 처녀는 먼발치에서 나무가 넘어가는것만 보아도 놀라서 달아나군 했는데 어느날은 그렇게 달아나다가 깊은 눈속에 발이 빠져 뭔가 밑에서 자기 발을 끌어당긴다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사람들을 웃겼다. 산속의 깊은 눈에 발이 빠지면 그런 느낌이 드는것이였다.

어느날은 서툰 솜씨로 나무가지를 찍어내다가 그만 도끼가 손에서 빠져나가버렸다. 그다음은 도끼를 찾지 못했다. 모두가 달라붙어 찾아보았으나 도저히 찾을수가 없었다. 주변이 온통 나무가지들과 눈으로 덮인데다가 처녀가 사방 헤매며 돌아가서 도무지 찾을수가 없는것이였다. 공구가 모자라고 귀한 때여서 사람들은 로골적으로 이마를 찌프렸다. 그것이 처녀를 난처하고 질리게 만든듯 했다.

처녀는 온통 허둥지둥하며 련속 실수와 재구를 저질렀다. 지배인이 석대의 나무를 끌어내릴 때 그는 겨우 한대의 나무를 끌어내렸으며 그나마도 어떤 때는 길이 아닌 깊은 골짜기에 처박아버리고는 혼자 울기도 했다. 며칠사이에 산바람에 타고 거칠어진 얼굴에 눈만 걸린듯 한 처녀는 아름다와보이지 않았으며 그나마 우울해져 사람들과 잘 섞이지도 않았다. 경철은 난처해지고 아연해져 어쩔바를 모르고 그를 지켜보았다.

《책상물림이 그렇지 뭐!》

어느날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을 때 경철은 알지 못할 격분마저 느꼈다. 꼭 자기에게 하는 말처럼 여겨졌던것이였다. 그날 일을 끝내고 산판에서 내려오며 한경철은 여느때처럼 맨 마지막이 아니라 처음으로 통나무를 메고 일어섰다. 공구를 가지고 산을 내리는 김해옥에게 다가갔다. 그의 곁에서 모지름을 쓰며 말없이 걸었다. 조용히 물었다.

《해옥동무, 힘드오?》

《힘들어요!》

김해옥은 가는 한숨같이 대답했다. 통나무를 메고 걷고있는 한경철을 새삼스럽고도 두렵게 바라보았다. 한경철은 몹시도 아파오는 어깨를 참으며 걸었다. 조용히 말했다.

《힘들거요. 나도 말하기는 멋하지만… 참 힘이 드오! 하지만 우린 대학졸업생들이요. 모르고는 어떨지 몰라두 알면서도 의지와 육체가 따라서지 못해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그런 인간이 되여서는 안된다고 보오.》

자기가 어느 순간에 김윤화지배인이 하던 말을 하고있다는것을 깨달았으나 어쩔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 우린 그동안 배운 모든 지식이 불필요하다는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나약하고 쓸모없는 인간이 되고마오.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힘을 내오.》

그 순간 경철은 자기를 처음이라도 보듯 지켜보는 해옥의 눈빛을 보았다. 문득 그 눈가에 핑그르르 물기가 어렸다. 처녀는 무슨 말인가 할듯 하더니 고개를 숙이고 제 먼저 산길로 달려가버렸다. 경철은 그 뒤모습을 바라보며 굳어진듯 서있었다. 그날 뜻밖에도 한경철은 두번밖에 쉬지 않고 토장까지 나무를 메고 왔다.

날과 날은 빠르게도 흘렀다. 처녀는 여전히 힘에 겹고 생소한 일에 몰려 눈에 띄게 허둥거렸다. 어느날인가는 나무를 끌어내리다가 어디를 상했는지 지배인의 잔등에 업히워 내려왔다. 지배인은 처녀를 다른 사람들이 다치지 못하게 하고 자기가 업고 내려왔으며 처녀도 지배인의 잔등에 얼굴을 묻은채 꼼짝을 하지 않았다. 넘어져 어딘가를 상했다고 했는데 녀자들의 세계인듯 남자들은 얼씬도 못하게 했다.

한경철은 처녀가 다시는 산판에 올라오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후 처녀는 다시 산판으로 올라왔다. 여전히 일이 몸에 붙지 않아 민망스러울만치 허덕거렸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사실 정도상차이일 따름이지 일이 힘겹고 생소하기는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지쳤다. 사람들은 몰라보게 꺼칠해졌고 밤마다 잠자리에서 잠꼬대소리처럼 신음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한경철은 새벽에 물을 길러 선뜻 일어나지 못해 잠자리에 끓어엎드려 마치 악몽에 가위눌린 사람처럼 오래동안 몸부림을 하다가야 가까스로 일어나군 했다.

끝내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사람이 생겨났다. 고철삼이였다. 화구당번을 하면서도 땔나무를 하러 온다고 하고는 남모르게 산판에 올라와 통나무를 끌어내리군 하던 그였다. 바로 그렇게 일하던 그가 어느날 눈판우에 천천히 주저앉더니 식은땀을 흘리다가 그만 정신을 잃고말았다. 사람들이 뒤늦게야 그를 발견하고 숙소로 업고 달려왔다.

그는 오래도록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김윤화가 자동차를 끌고 군에까지 나가 의사들을 데려왔다. 하지만 그의 병은 이미 몸에 깊어질대로 깊어진 병이였다. 산판이라 치료조건도 불리했다. 고철삼은 의식을 차렸지만 몸을 움직일수 없었다. 그는 모든것을 체념해버린듯 두눈을 꾹 감은채 말이 없었고 음식도 잘 들지 않았다.

그의 손발을 주물러주며 한경철은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불행을 예감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어둑했다.

《야단났구만. 이 산판에서 어쩌나?》

《아주머니가 이걸 알면 얼마나 기가 막히겠소? 왔던게 고작 며칠전인데…》

《지배인이 보성신발공장시절에 저 사람과 단단히 척이 졌다지?》

《글쎄 어쩐지 보는 눈이 이상하다 했더니…》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저렇게 장기질환이 있는 사람을 산판으루 데려오지 말았어야 하는건데…》

《제가 왔다는데 뭐.》

《그래두 식당화구당번을 시킨건 잘한것 같지 않구만. 그러니 사람이 정신적으로두 그래 육체적으로도 너무 무리했잖아.》

《어쨌든 안됐어!》

《난 지배인이 너무했다고봐, 아무리 전날의 감정은 어쨌든…》

《여!》

누군가가 뒤에서 급한 소리를 질렀다. 모두가 놀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뜻밖에도 한사람과 함께 지배인이 서있었다. 모두가 당황해서 어쩔줄을 몰라했다. 김윤화는 모든것을 다 들었는지 얼굴색이 달라져서 고개를 숙이고 서있었다. 그러다가 눈을 내려깐채 그들을 스쳐지나 걸어갔다. 모두가 썰렁한 기운과 면구함을 느끼며 굳어진듯 서있었다.

그날 밤 고철삼의 손발을 주물러주다가 밖으로 나왔던 한경철은 숙소앞 나무밑을 거닐고있는 김윤화를 보았다. 그는 고개를 깊이 숙인채 무엇인가를 고심하는 사람처럼 어둠속을 오가고있었다.

한경철은 지배인에게로 다가갔다. 그러다가 흠칫 굳어졌다. 어둠속을 말없이 오가는 김윤화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는것을 보았던것이였다. 싸늘한 대기속으로 뿜어져나와 흩어져가는 내굴같은 입김이 똑똑히 보였다. 한경철은 가슴이 쿡 찔려오는감을 느끼며 굳어져버렸다. 김윤화는 울고있는것이였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 한없는 힘겨움과 안타까움에 지쳐 홀로 울고있는것이였다. 눈굽이 뜨끈해왔다.

《지배인동지!》

한경철은 젖은 목소리로 불렀다. 그러나 김윤화는 멎어선채 대답을 하지 않았고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그러나 한경철에게는 자기가 보던중 제일 험하고 수척해진 김윤화의 얼굴과 그 얼굴을 적시며 흘러내리는 눈물이 똑똑히 보이는듯 했다. 나무진에 얼룩지고 창대같은 나무가지들에 찢겨 몇군데나 기운, 그래서 람루하다고밖에 말할수 없는 그 차림새도 아프게 눈을 찔렀다.

한경철은 자기도 울어버릴것만 같았다. 한경철이 지켜본다는것을 느낀듯 김윤화지배인은 가버렸다. 한경철은 어둠속으로 잠겨드는 김윤화의 뒤모습을 얼없이 바라보았다.

찬바람이 휘익 하고 불어지나갔다. 그러자 왜서인지 어둠속에서 울리는 김윤화의 흐느낌소리를 듣는듯 했고 어느 구석에선가 또다시 울고있는 지배인의 모습이 보여오는듯 했다. 한경철은 오래도록 서있었다.

고철삼을 후송하기 위해 한경철이 함께 가기로 하였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지배인도 함께 떠나게 되였다. 관리국에서 지배인을 급히 부르고있었던것이였다. 경철은 떠날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날 아침 해옥이 걱정스러워진듯 한 얼굴로 경철에게 좀 만나자고 했다. 그들은 숙소 가까이의 물황철나무밑에서 만났다. 경철과 마주선 해옥은 좀 당황해진듯 한 목소리로 래일 떠난다는것이 사실인가고 물었다.

《들어가야 할것 같소.》

《다시 못 나오겠지요?》

《글쎄…》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즘자리며 서있던 해옥이 고개를 쳐들었다. 순간 경철은 처녀의 눈빛이 그 어떤 애절한 기운을 안고 번득거리고있는것을 알아보았다. 마치도 애써 울음을 참고있는듯 한 얼굴이였다. 가냘프고도 나른하게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경철동지! 나도 며칠만 있다가 들어가려는데 그때 함께 들어가면 안되겠습니까?》

경철은 그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한채 굳어졌다. 왜서인지 그 어조에서 풍겨오는 애처로운 기운이 싫었다. 대답없는 경철을 바라보던 해옥이 쓸쓸한 어조로 말했다.

《동지가 들어가면 나도 가고말겠어요!》

경철은 놀라움과 실망을 느끼며 처녀의 얼굴을 처음보듯 자세히 바라보았다. 깊은 밤 혼자 울고있던 지배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쓰러진 고철삼과 그를 후송하기 위해 가야만 하는 자기가 돌이켜진다. 지금이야말로 산판일이 제대로 끝나는가 끝나지 못하는가 하는 결정적인 시각이다. 한경철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해옥동무! 지금이 산판에서 제일 힘겨울 땐데… 이렇게 가면… 어떻게 하오? 아버지나 대학생들의 얼굴을 위해서두 동문 이렇게 가면 안된다고 생각하오.》

《하지만 동지도 가는데… 난… 정말 힘들어요! 못 견디겠어요! 함께 있을수 없다면 나도 가겠어요.》

처녀의 마지막말은 마치도 신음소리처럼 들렸다. 경철은 처녀를 처음이라도 보듯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천천히 그 얼굴을 외면해버렸다. 왜서인지 가슴이 싸늘해지는듯 한 느낌이였다. 어쩔수 없는 처녀, 온실과도 같은 리상적인 조건에서만 령리하고 아름다우며 마음고운 처녀. 그는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동문 차라리 올라오지 말았을걸 그랬소. 할수 없지! 이 산판의 일이 그렇게두 지겹구 자기를 희생하는것처럼 생각된다면 가오! 누구도 붙잡지 않으니 지금이라두 당장 내려가오! 동무야말로 정말로 책상물림이요!》

해옥의 얼굴은 해쓱해졌다. 산바람에 타고 거칠어진 얼굴에서 유표한 검은 눈이 물기에 젖어 번쩍거렸다. 그는 숨이라도 찬 모양으로 가슴을 들먹거리더니 더운숨을 흑 하고 내뿜었다. 그러더니 몸을 홱 돌려 가버렸다.

한경철은 멍하니 서있었다. 허전하고 괴로운 심정이였다. 그런데 그날 오후 일하다가 휴식참에 보니 처녀가 혼자서 먼곳에 있는 샘터에 가서 물 한바께쯔를 떠들고 오는것이 보였다. 여느때 같으면 녹초가 되여 주저앉아있었을 그였다. 그런데 일이 안될 때라 그때 식당의 처녀들이 콩국을 해들고 올라왔다. 콩국을 들며 해옥을 찾던 사람들이 물을 떠들고 오는 그를 보고 굳어졌다. 힘들게 손을 엇바꾸어가면서 마치 물바께쯔와 무슨 당길내기라도 하듯이 오고있는 그를 보니 마음들이 별내졌다.

지배인이 처녀들에게 가서 도와주라고 했다. 그렇게 물바께쯔가 당도했을 때 사람들은 어색하여 어쩔바를 몰라했다. 경철이마저 당황해졌다. 차라리 본래대로 그냥 있었으면 좋았을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콩국바께쯔가 와있는것을 본 해옥의 얼굴도 검붉어졌다. 김윤화가 어색해진 분위기를 풀어버리려는듯 해옥이 떠온 물을 마셨다.

《에이, 난 콩국보다 시원한 물생각이 더 났댔는데 마침이로구나.》

경철은 자기도 그 물을 마셔야 한다는것을 깨달았다. 해옥이 힘겹게 물을 떠온 심정을 그만은 잘 알고있는것이였다.

문득 해옥이 구원을 청하듯 경철을 바라보았다. 자기를 피끗 스친 그 눈길을 보는 순간 해야 할바를 깨달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최현민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런데 콩국을 먹고 찬물을 먹으면 배가 끓어서…》

순간 경철은 무춤했다. 해옥이가 떠온 찬물을 먹는 자기를 이제 모든 사람들이 지켜볼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것이였다. 왜서인지 부끄럽고 주저되였다. 아침에 느꼈던 처녀에 대한 질시감이 그를 주저하게 한것인지도 모른다.

어색한 침묵과 외면의 한순간. 한경철을 지켜보는 처녀의 얼굴빛이 서서히 달라져갔다. 처녀는 천천히 바께쯔의 물을 쏟아버렸다. 경철은 물론 사람들도 흠칫 놀랐다. 한경철은 급기야 가슴속에 갈마드는 자기자신에 대한 환멸과 후회, 처녀에 대한 미안함을 느꼈으나 물은 이미 쏟아진 뒤였다.

다음날은 떠나는 날이였다. 떠날 준비는 끝났다. 경철은 해옥을 찾았다. 왜서인지 그냥은 떠날것 같지 못했다. 그런데 그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소리쳐 찾을수도 없었다. 그는 공연히 불안해지고 울적해져 왔다갔다했다. 김윤화가 그러는 경철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자동차에 올라 한참동안을 달렸을 때 김윤화가 물었다.

《경철아, 너 왜 그러니? 뭘 잃어먹었니?》

경철은 쓸쓸하게 대꾸했다.

《해옥동무가 자기두 오늘 가겠다고 했댔는데…》

김윤화는 놀라는듯 하더니 경철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까 내가 내려가자고 하니까 자긴 이 산판일이 다 끝날 때까지 안내려가겠다고 하던데.》

경철은 대답을 못했다. 해옥의 심정이 리해되였다. 자기가 너무한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김윤화는 경철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이윽고 조용히 물었다.

《경철아, 너희들사이에 무슨 일이 있은게 아니니?》

경철은 해옥과 있은 일을 모두 이야기했다. 김윤화는 말이 없었다. 굳어진 얼굴로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경철은 왜서인지 김윤화의 그 침묵이 두려워났다. 그렇게 수십리를 달려왔을 때 그때까지 말없이 앉아있던 김윤화가 갑자기 운전사에게 말했다.

《차를 좀 세워요.》

차는 멎어섰다. 김윤화는 경철을 데리고 차에서 내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해옥이 일이 마음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구나. 경철아, 넌 잘못 처신한것 같다.》

《예?!》

김윤화는 떠나온 산판쪽에 눈을 준채 말없이 서있었다.

《산판일이 얼마나 힘드니? 사실은 나두 너무 힘들어서 몇번이나 주저앉을번 했댔다. 하지만 그 애가 용케도 견디는걸 보구 난 놀랐어. 산판에서 그 애를 업구 내려오면서 난 마음속으로 울었다. 넌 그 애가 어린 처녀애구 온 집안이 애지중지 떠받들어 키운 외동딸이라는걸 생각해봤니?》

경철은 대답을 못한채 서있었다.

《그 앤 지금 너무 힘들어서 너한테 의지가 되여달라고 한거야. 제일 믿구 따르던 나두 가구 너두 가는게 무서워서… 인간이란 힘들 때 손을 내밀게 되고 의지하게 되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그렇게 내밀고 잡아주는게 인간의 생활이구. 그 앤 제일 힘들 때 너에게 손을 내밀었어. 이건 고맙고 깨끗한 마음이다. 그래, 넌 이걸 모르겠니?》

격한듯이 울리는 김윤화의 말이였다. 경철은 질린듯이 서있었다.

《인간이란 자기보다 먼저 남을 생각하고 위해줄줄 알아야 해. 그것이 자기를 완성하는 길이야. 그런데 넌 자기를 오빠처럼 믿고 도와달라고 부탁한 처녀의 진심을 어떻게 대하구 왔니?》

김윤화는 문득 말을 끊었다. 불시에 목이 메인 사람처럼 괴롭게 모지름을 쓰며 무엇인가를 힘들게 삼켰다.

《나두… 나두 이 산판에서 후회되는 일이 너무도 많다!》

경철은 자기를 지켜보는 물기에 젖은 두눈을 보았다.

《난 고철삼동무가 저 지경이 될 때까지 외면했던걸 평생을 두고 후회할것 같구나. 옥한 심정을 품은 녀자가 되기 전에 사람들을 책임진 일군이 되였더라면! 그런데 그 가슴아픈 일을 두고 눈물까지 흘린 네가… 네가 어떻게 그렇게 차거운 가슴으로 의지가 돼달라구 내민 손을 뿌리치고 모욕까지 하고 올수 있느냐 말이다. 그 앤 아마 지금 어디선가 울고있을게다. 철없는 녀석!》

경철은 불시에 모든것을 깨달았다. 모든것이 깡그리 리해되였다. 자기가 무지하게 처신했다는 뻐근한 자책이 가슴속에 흘러들었다. 김윤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녀성을 차별하구 녀성을 도와줄줄 모르는 사람은 다 정신적힘이 협소한 인간이라고 했어. 그런 사람은 일생 훌륭한 녀성을 만나지 못해.》

《지배인동지!》

자책과 두려움을 안고 경철은 불렀다. 김윤화는 파릿하게 굳어진 얼굴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차거운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돌아가거라! 가서 산판일이 다 끝난 다음에 오거라.》

말을 마치고 김윤화는 차에 올랐다. 자동차는 눈바람을 들씌워주며 떠났다.

《지배인동지!-》

당황하고 겁이 난 한경철은 소리를 쳤다. 그러나 자동차는 속도를 놓았다.

《지- 배- 인- 동- 지!-》

공포와 격분으로 눈앞이 캄캄해진채 몇걸음 따라서며 목이 터지게 소리쳤다. 그러나 자동차는 사라져버렸다. 경철은 우두커니 서버렸다. 아연해진 심정이였으나 차츰차츰 마음이 가라앉았다. 지배인의 말이 옳다는것을 깨달았다. 불시에 산판 어디선가 울고있을 해옥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아픔과 죄스러움으로 가슴이 뻐근해졌다.

그는 산판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몇걸음 못 가서 멎어섰다. 이제 산판으로 다시 갈 일이 난처하고 어색했다. 자기를 두고 오해와 억측을 할지도 모를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최현민의 얼굴이 제일 크게 떠오르는것 같았다. 불시에 두다리가 납으로 만들어진듯 무거워졌다. 그는 우두커니 서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다름아닌 녀성의 심정을 안고 자기를 타매하던 김윤화지배인의 말이 또다시 귀전에 울려왔다. 해옥의 얼굴도 눈앞에 어른거렸다. 경철은 가야 한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고 마지막에는 씨엉씨엉 산판을 향해 걸어갔다.

그가 다시 산판에 나타났을 때 사람들은 놀랐다. 최현민은 어이없어하는듯 한 얼굴이였으나 한경철은 관계하지 않았다. 해옥을 만나고싶었다. 그러나 처녀는 몹시 성이 난듯 했다. 기를 쓰고 경철을 피했다. 마주 오다가도 경철을 보면 도망이라도 치듯 사라져버리군 했다. 경철은 이제 산판일이 끝난 다음 처녀에게 용서를 빌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평양에서 련락이 왔다. 대학에서 졸업배치문제로 하여 해옥을 찾고있으니 빨리 돌아오라는 련락이였다.

해옥은 급히 산판에서 내려갔고 점심참에 가보니 그는 벌써 떠난 뒤였다. 경철은 모진 후회와 서운함을 안고 그가 떠나간 하늘쪽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바로 그런 속에서 그들은 끝내 계획된 목재채벌을 다 끝내고야말았다. 사람들은 모두가 울고싶은듯 한 얼굴로 서로를 얼싸안고 돌아갔다. 바로 그날 그들은 김해옥이 잃어버렸던 도끼도 찾았다. 잘 보이지 않아 손으로 더듬어서 찾는다는 최현민이 눈속에서 도끼자루가 비죽이 내민것을 알아보았던것이였다. 그만큼 산판의 눈도 많이 녹았었다.

최현민은 왜서인지 얼굴을 찌프리며 그것을 말없이 한경철에게 내밀었다. 한경철은 도끼를 받아든채 아무 말도 못하고 서있었다. 사람들이 산을 내려간 다음에도 그는 도끼를 손에 쥔채 멀리 평양쪽 하늘을 바라보며 그냥 서있었다. 이날을 위하여 그리도 힘겹게 몸부림친 김윤화와 해옥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 산판에서 쓰러지던 고철삼의 얼굴도 눈앞에 어른거렸다. 모진 힘겨움을 이겨내고 승리자가 된 이 순간에는 그토록 아프고 괴롭고 불만족스럽던 모든것이 가슴을 유정하게 해주는 추억으로 되여버리는것이 놀라왔다.

먼 하늘가에 그려지는 그 얼굴들을 그려보며 한경철은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미안해!》

다음순간 그는 자기도 모를 충동으로 평양의 하늘쪽을 향해 목청껏 소리쳤다.

《미-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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