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 회


제 4 장


2


한경철은 맨 나중에야 통나무를 메고 토장에 도착했다. 나무를 내려놓으려다가 그만 무춤하며 굳어졌다. 무져놓은 통나무무지에 기대여 잠든 김윤화를 보았던것이였다. 어지러워진 붕대가 감긴 손에서 미끄러져내린 작은 수첩이 눈판우에 펼쳐진채로 놓여있었다. 모지름을 쓰는듯 한 곤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가슴이 찌르르해왔다. 그는 김윤화가 자기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다가 잠들었다는것을 알았다. 이렇게 매일과 같이 기다렸을것이라는것도 깨달았다.

첫날 산판에 올라와 일을 끝내고 내려갈 때 남자들은 의례히 통나무 한대를 끌거나 메고 내려가기로 했다. 경철은 그중 짧고 가느다란 통나무 한대를 골라서 어깨에 멨다. 그런데 김윤화가 《경철동무는 좀 남았다 가세요.》하고 자기를 불러세웠다. 모두가 통나무를 메고 끌고 내려간 다음 김윤화는 말없이 한경철과 그가 메고 가려고 내놓은 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무져놓은 나무들에서 보기좋게 굵은 통나무 두대를 끌어냈다. 한대는 끌고 내려가련듯 통나무의 대가리에 바줄에 매달린 꺾쇠를 박았다. 남은 한대를 내려다보다가 한경철을 바라보았다. 조용히 말했다.

《이걸 메거라!》

한경철은 아연하여 숨을 들이킨채 굳어졌다.

《네 나이나 체격을 봐선 이 정도의 나무를 메야 한다. 여기 온 사람들중에서 제일 젊은 네가 그게 뭐니?》

무참해진 심정으로 한경철은 고개를 숙였다.

《저… 전… 나무를 한번도 메보지 못해서…》

《경철아, 남자란 일앞에서 겁을 먹어선 안된다. 정신육체적으로 강해야 해. 그게 남자의 인격이구 존엄이야, 한생을 헤쳐나가야 할 밑천이구. 어서 나와 함께 이걸 메구 내려가자.》

쓸쓸하고도 엄한 기운이 어린 그 눈을 마주보기가 몹시도 힘들었다. 그 눈길에 복종하듯 모지름을 써서 통나무를 메고 일어섰다. 김윤화가 뒤에서 거들어주었다. 한경철은 위태롭게 비척거리며 산을 내리기 시작했다.

통나무는 아프게 어깨를 파고들었다. 힘이 든것보다도 어깨가 물러나는듯 한 아픔을 참기 어려웠다. 그는 헐떡거리고 비칠거렸다. 입에서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같은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힘을… 내거라!》

뒤에서 통나무를 끌고 오는 김윤화가 토막토막 끊기는 소리로 부르짖었다. 한경철은 등뒤에서 풍겨오는 완강한 기운에 떠밀려가듯 이발을 악물고 비척비척 걸었다.

눈에 덮인 비탈길은 미끄러웠다. 끝내 미츠러지며 통나무와 함께 눈속에 처박혔다. 그는 일어서지 못한채 눈판에서 버드럭거렸다. 김윤화지배인이 그를 일으켜세우고 눈을 털어주었다. 한경철은 지독하게 아파오는 어깨를 솜옷을 제치고 내려다보았다. 벌써 벌겋게 피가 몰린것이 보였다.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의 어깨를 내려다 보던 김윤화가 자기의 솜옷을 벗었다. 그것을 한경철의 어깨에 덧대주었다.

《이걸 대면 좀 나을게다.》

《지배인동지, 어쩔려구?…》

《어서 내려가자!》

다시 일어섰다. 통나무는 아프게 어깨를 파고들었다. 눈앞이 흐려들고 숨이 꺽꺽 막혀왔지만 이발을 악물고 걸음을 세면서 걸었다.

《백서른너히, 백서른다섯…》

온 산판이 휘휘 돌아가는듯 했다. 끝내 또다시 발을 걸채이며 통나무를 내던지고 꼬꾸라졌다. 통나무는 길을 벗어나 경사급한 골짜기아래로 데굴데굴 굴러가버렸다.

두사람은 다같이 흠칫 놀라 굳어졌다. 한경철은 어푸러진채 우물처럼 깊어보이는 골짜기를 내려다보았다. 골짜기는 한낮인데도 어둑시근했다. 눈앞이 아뜩해왔다. 온몸의 기운이 삽시에 빠져버리는것 같았다. 애원하는듯 한 눈길로 김윤화를 돌아보았다.

골짜기를 내려다보는 김윤화의 눈길도 어둑했다. 암담한 기운이 내배인 침묵속으로 산바람이 차겁게 휘익 불어지나갔다. 이윽고 김윤화가 갈린듯 한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내려가서 끌구 올라오자.》

한경철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들은 골짜기아래로 내려가 엎어지고 딩굴고 하며 가까스로 통나무를 길우에 끌어올렸다. 다시 메고 가자고 하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한경철은 또 나무와 함께 넘어졌다.

《더… 못 가겠습니다!》

주저앉아 헐떡거리는 경철을 김윤화는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잠시 서있다가 자기가 나무를 끌고 오던 바줄을 한경철의 앞에 놓아주었다. 한경철이 떨군 통나무앞에 다가갔다.

《이 통나무를 끌고 내려가거라. 이건 내가 메겠다.》

한경철은 아연해서 김윤화를 바라보았다. 김윤화는 모지름을 써서 통나무를 세우고는 어깨에 메고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허리를 펴지 못하고 비척거렸다. 그러다가 기울어지는 나무와 함께 뒤로 쓰러졌다.

한경철은 앗 하고 비명을 질렀다. 김윤화는 일어나지 못하고 눈속에서 허우적거렸다. 한경철은 김윤화에게 다가들어 잡아당겨 일으켜세웠다. 눈을 털어주고 놀랄만치 지치고 초췌해진 모습을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저도 모르게 격한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지배인동지, 꼭 이렇게 해야만 합니까?》

김윤화는 울듯이 이그러진 한경철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나직하나 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넌 어쨌으면 좋겠니?》

한경철은 헐떡거리며 그 시선을 외면했다. 시간이 갈수록 김윤화에게서 남과 같은 생면부지의 랭랭한 체취가 풍겨오는것이 놀랍고도 싫었다.

과연 정보기술전문가인 나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것이 육체적학대라고밖에 달리 말할수 없는 이런 험한 일이란 말인가?

한경철은 온몸을 들먹이며 부르짖었다.

《지배인동진 너무합니다! 어째서 자기에게구 남에게구 편한 길을 택하지 못합니까?》

김윤화는 눈빛을 번득이며 한경철을 바라보았다. 찬바람이 휘몰아지나가는 산판에 선 그의 몸이 위태롭게 흔들리는듯이 느껴졌다. 그는 내굴같은 입김을 날리며 조용히 부르짖었다.

《경철아, 너의 아버지가 불속에 뛰여들어 나와 혜성이를 구원해낼 때 그 나이가 지금의 너보다 고작 몇살밖에 더 많지 않았다.》

불시에 그 목소리가 흐느낌에 먹혀드는것을 한경철은 똑똑히 느꼈다. 가슴이 날카로운것에 푹 찔린듯 했다. 한경철은 부르르 몸을 떨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런데 통나무 하나 변변히 메여 못 나르는 네가 위험한 불길속에 두번세번 뛰여들던 그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말할수 있단 말이냐? 난 네가 산같은 지식은 배웠는지 모르겠지만 옳은것, 훌륭한것을 알고도 몸이 움직여지지 않아 해내지 못하는 비겁쟁이가 될가봐 걱정이다. 집단앞에 자기를 떳떳하게 내세우지 못하는 사람이 자기 혼자 있을 때 훌륭하게 처신하는걸 난 보지 못했어. 넌… 넌 분명 아버지보다 못해!》

한경철은 흐득흐득 느끼며 입술을 아프게 깨물었다. 거칠게 반발하고싶었으나 무엇인가 뜨겁고 뻐근한것이 숨길을 콱 막아버려 아무 말도 새여나오지 않았다. 김윤화는 서늘한 시선으로 한경철을 외면하고나서 다시 눈속에 묻힌 통나무앞으로 다가갔다. 위태롭게 비척거리고 애처롭게 다리를 떨면서 끝내 통나무를 메고 일어섰다. 그 서슬로 걸음을 떼려고 하였으나 발이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의 온몸이 바람에 불리운것처럼 흔들리는것을 한경철은 똑똑히 보았다. 하지만 김윤화는 구부정한 자세로 끝내 발걸음을 떼여 걸어갔다.

한경철은 눈굽이 쿡 쑤시는듯 한감을 느끼며 왈칵 달려갔다. 김윤화에게 다가들어 그 통나무에 자기 어깨를 들이댔다. 아프고 죄스러우며 야속한 심정을 합쳐 뒤손질로 김윤화를 힘껏 떠밀어버렸다. 김윤화는 그만 쓰러져버렸다. 그것을 느끼면서도 한경철은 통나무를 메고 산길을 내렸다. 알지 못할 짜거운 눈물이 입안으로 흘러들었다. 이발을 악물고 온몸을 팽팽하니 긴장시킨채 걸었다. 그러나 얼마 못 가서 어깨가 지독스레 아프고 발이 미끄러져 끝내 또 쓰러졌다. 뒤에서 나무를 끌고 오던 김윤화가 다시 달려왔다. 그의 가쁜 숨결소리가 귀전에 울리는 순간 한경철은 한없는 모멸감으로 가슴이 터져나갈것만 같았다. 그는 어푸러진채로 두주먹으로 눈바닥을 내리쳤다. 소리를 질렀다.

《제발… 제발 지배인동지는 먼저 내려가주십시오. 부탁입니다! 내가 죽으나사나 통나무를 메고 내려가겠으니 제발… 내려가주십시오. 빕니다!》

김윤화는 말없이 서있는것 같았다. 그러더니 통나무를 끌고 내려갔다. 눈판을 짓이기며 멀어져가는 그 무겁고 힘겨운 자취를 느끼며 한경철은 눈판에 어푸러져 까딱하지 않았다. 눈물이 슴배여나와 볼편을 선뜩하게 했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 통나무에로 다가갔다. 이발을 악물고 다시 통나무를 메였다. 이새로 부르짖었다.

《기어이… 기어이 나르고말테다! 나르고말테야!-》

한경철은 넘어지며 딩굴며 끝내 통나무를 메고 토장까지 내려왔다. 김윤화지배인은 보이지 않았고 토장은 텅 비여있었다. 통나무를 토장에 내던져놓고난 한경철은 목청껏 소리를 지르고싶은 거칠고 기꺼운 충동에 몸을 떨었다. 그러나 토장에는 모든것이 범상하고 응당한 일이라는듯 한 고요가 가라앉아있었다.

한경철은 숨을 가다듬고나서 몸에 묻은 눈을 털고 숙소로 갔다. 누구 하나 그가 처음으로 커다란 통나무를 제힘으로 메고 내려온데 대하여 묻지도 놀라지도 않았으며 축하해주지도 않았다. 지배인도 보이지 않았다. 조금 있다가 김윤화가 방에 들어섰다.

한경철은 자기를 바라보는 김윤화의 눈빛이 감동과 애정 그리고 한없는 기쁨으로 빛나는것을 똑똑히 알아보았다. 눈물이 솟구칠것만 같은 심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다음부터 경철이 통나무를 메면 김윤화지배인은 말없이 먼저 내려가군 했다. 물론 한경철은 맨 마지막에야 떠났고 녹초가 되여 마감으로 토장에 도착하군 했다. 그가 맨 마지막으로 내려서는 토장은 언제나 고요하군 했다. 그런데 오늘은 김윤화지배인이 나무무지에 기대여 잠이 들어있는것이였다.

한경철은 자기가 들어온 후에야 숙소에 들어서군 하던 김윤화가 사실은 이렇게 토장에서 자기를 기다렸으며 자기가 나타나면 어딘가에서 자기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다가 들어오군 했다는것을 깨달았다. 가슴이 찌르르해왔다. 어쩔바를 모르고 서있었다. 통나무를 멘 어깨가 몹시도 아팠지만 그대로 내려놓으면 김윤화가 깨날가봐 어쩌지 못하고 그냥 서있었다. 한참후에야 힘들게 무릎을 꺾고 소리가 나지 않게 천천히 통나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곤하게 자고있는 모습을 다시금 내려다보았다. 알지 못할 련민이 가슴속에 그들먹이 차올랐다.

그는 김윤화를 지켜보다가 천천히 자기의 솜옷을 벗었다. 그것을 조심히 지배인에게 씌워주었다. 지배인의 쪽잠을 지켜주는듯 한 심정으로 숨을 죽이고 서있었다. 땀이 났던 몸이 얼어들어왔으나 참았다.

문득 숙소가 있는 아래쪽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이쪽으로 오고있는것이 보였다. 경철은 잠시 망설이며 서있었다. 달게 자고있는 지배인을 깨우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련민과 아픔을 자아내는 그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싶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경철은 김윤화앞에 무릎을 끓고앉아 조용히 불렀다.

《지배인동지!》

그러나 김윤화는 깨여나지 못했다. 경철은 눈판우에 떨어진 수첩을 주어들며 김윤화의 어깨를 조용히 흔들었다.

《지배인동지!》

김윤화는 눈을 떴다. 경철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비몽사몽간에 아직 여기가 어딘지 깨닫지 못하는듯 했다. 꿈에 취한듯이 느껴지는 눈동자속에서 기쁨같기도 하고 아픔같기도 하며 그리움같기도 한 몽롱한 기운이 풍겨나왔다. 쓸쓸해보이는 미소가 입가에 그려졌다.

《경철아! 너로구나!》

한없이 나른하고 따스하게 느껴지는 목소리. 왜서인지 어디선가 늘 들어오던 목소리인듯이 느껴진다. 경철은 불현듯 가슴속에 스며드는 차분하고도 따뜻한 느낌을 받아안았다. 찌르르해오는 가슴을 느끼며 김윤화를 마주보았다.

《지배인동지! 그러다가 감기들겠습니다.》

그제야 김윤화는 현실을 깨달은듯 했다.

《아니, 내가 깜박 잠들었댔구나.》

김윤화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어서는 순간에 떨어져내리는 솜옷을 보고 모든것을 깨달은듯 나무랍게 경철을 바라보았다.

《원, 어쩔려구?!》

김윤화는 경철에게 솜옷을 입혀주었다. 김윤화를 알아본 사람들이 거기로 다가왔다. 즐거운 기운에 휩싸여 웅성거리며 다가왔다.

《지배인동지!》

김윤화는 그쪽을 바라보았다.

《들었습니까? 저 산아래 마을에 고철삼동무 아주머니가 왔답니다.》

김윤화의 얼굴에 놀라우면서도 반기는듯 한 미소가 피여올랐다.

《그래요?!》

힘겹고 적막하던 산판에 불시에 아늑하고도 흥뜬 기운이 흘러가는듯 했다.

《고철삼동무는 알아요?》

《벌써 내려갔는걸요. 거 그 나이에두 색시가 왔다니까 좋은지 물만난 오리걸음이던데요 뭐.》

《모르는 소리! 선떡 먹은 상을 하구 찌뿌둥해서 가는걸 내가 봤는데두.》

《그럼 사람들 많은데서 반갑구 기쁜 내색을 하겠나? 간부를 해본 사람 처신은 자네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모를 소리군! 좋으면 좋구 싫으면 싫은거지… 간부를 하면 다 그런가?》

《이랬든저랬든 이거 손님맞을 준비를 해야겠지요? 숙소두 그래, 음식두 그래.》

김윤화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를 하자요.》

《그런데 이거 숙소가 제일 문젭니다. 숙소집 아래웃방은 우리가 다 차지하고 부엌에서까지 식당당번들이 자는판이니.》

《아래칸은 부부에게 내여주구 우린 창고에 나가 자면 되지.》

《추울텐데…》

《색시를 끌어안듯 꽉 끌어안고 자야지.》

《징그러워! 자네같은 사람하구야 돌부처인들 함께 자겠다고 하겠나? 코를 골지, 이발을 갈지, 남의 다리를 제 다리인줄 알고 긁지…》

《그래도 우리 색시는 싫다고 안하던데…》

사람들이 떠들썩 소리내여 웃었다. 흥겹고도 육감적인 기운이 주변을 흘러갔다. 김윤화도 웃었다.

《숙소문제는 내가 좀 알아보자요.》

그런데 고철삼은 오후작업이 시작될무렵 산판으로 다시 올라왔다. 공연히 즐거워지고 지꿎어진 눈길들앞에 면구한듯 고개를 숙이더니 늘 하던대로 나무를 패려 했다. 그렇게 나무를 패고는 짬시간이면 김윤화의 눈을 피해 산으로 올라와 찍어놓은 나무라도 한대 끌어내려야 마음이 편해하는 그였다. 하지만 식당근무처녀들밖에는 그것을 알고있는 사람이 없었다. 말없이 고철삼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제편에서 먼저 조급해지고 궁금해져 물었다.

《아니, 색시는 안 오우?》

고철삼은 씁쓸하게 웃으며 사람들의 시선을 피했다.

《다들 바쁘구 힘들구한데 언제 뭐… 그저 한번 만나봤으면 됐지요. 집사람이 뭘 좀 보낸게 있는데 식당에다 주었으니 저녁에 맛이나 봅시다.》

사람들은 아연하여 고철삼을 지켜보고 김윤화를 바라보았다. 김윤화도 말없이 주의깊은 시선으로 고철삼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조용히 물었다.

《그러니 아주머니는 아래마을에 있는가요?》

순간 주변은 모두의 숨소리가 들리리만큼 조용해졌다. 그 고요앞에 고철삼마저 한순간 당황해진듯싶었다. 그는 자기를 똑바로 지켜보고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며 침울하게 중얼거렸다.

《돌려보냈습니다. 빨리 돌아서야 돌아가는 기차를 탈수 있고해서…》

순간 김윤화는 흠칫 놀랐다. 파릿하게 굳어진 얼굴로 믿어지지 않는듯 고철삼을 바라보았다. 사람들도 아연해진 얼굴이였다. 난감하고 허전한 침묵이 흘렀다. 그속에서 김윤화의 나직한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정말 보냈어요?》

고철삼은 대답이 없이 손에 쥔 도끼자루를 주물렀다. 김윤화는 눈을 가늘게 쪼프리고 고철삼을 처음이라도 보듯 자세히 바라보았다. 경철은 그 눈길에서 미세한 섬광이 이는듯 한 느낌을 받아안았다. 무엇인가 그들사이에 격렬한 언쟁이 터질듯 한 느낌이 들었다. 조마조마해서 서있었다. 그러나 김윤화는 자기를 다잡듯 말없이 서있기만 했다. 한동안 까딱않고 서있던 김윤화가 조용히 말했다.

《됐어요! 다들 일들을 하자요.》

사람들은 까닭모를 허전함과 불안을 안고 말없이 헤쳐져갔다. 김윤화는 대리석마냥 굳어진 얼굴로 고철삼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인가 할듯하더니 그만두고 경철을 향해 돌아섰다.

《경철아, 운전사보고 발동을 걸라고 해라.》

산판에는 나무를 역전에까지 실어나르는 자동차가 올라와있었다. 조용하고 침착하게 느껴지는 목소리였으나 경철도 고철삼도 한순간 흠칫 놀랐다.

《저… 지배인동무!》

고철삼이 주저하듯 불렀다. 그러나 김윤화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자동차가 발동을 걸고 굴러왔다. 김윤화는 자동차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고철삼이 당황한듯 지배인을 뒤따라서며 불렀다.

《지배인동무, 어쩌려구…》

순간 김윤화는 선뜩한 기운이 풍기는 눈길로 고철삼을 바라보았다. 그 눈길앞에 고철삼은 찔리운것처럼 흠칫해서 서버렸다. 김윤화의 조용한 목소리가 울렸다.

《내가 잘못했어요. 동무가 아니라 내가 내려갔어야 했어요. 하지만 동무도 한가지만은 알아야 해요. 동문 오늘 자기 공장사람들을 모욕했어요! 동무에게 방을 내주고 한지잠을 잘 각오까지 한 사람들을 말이예요. 그건 동무가 아직 이 공장사람들과 하나가 되지 못했다는걸 의미해요.》

고철삼은 흠칫하여 굳어졌다. 김윤화의 목소리가 떨렸다.

《수백리길을 찾아왔다가 선자리에서 돌아가는 동무의 안해는 우릴 동무처럼 인정도 감정도 없는 메마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할거예요. 우리 공장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예요! 우리 로동자들은 동무처럼 그렇게 반지빠르게 처신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요!》

고철삼은 질려버린듯 한 얼굴로 김윤화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못했다. 김윤화는 말없이 자동차로 다가가 문을 열고 올랐다. 차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겼다. 자동차는 떠났다. 한줄기의 배기가스가 솟구쳐일어난 눈가루와 함께 뒤에 선 고철삼을 휩싸안았다. 고철삼은 컴컴하게 질린 얼굴로 박아세운듯 서있었다. 그후의 일이 어떻게 되였는지는 누구도 몰랐다. 다만 과묵한 운전사가 《그 아주머니가 지배인을 붙잡고 소리내여 울더구만. 지배인도 함께 울었어.》하고 한마디 했을뿐이였다. 하지만 그 말 한마디면 모든것이 설명되고도 남았다. 김윤화는 이미 떠났던 고철삼의 안해를 기어이 다시 데려왔고 산아래 마을에 숙소를 정하고는 고철삼을 거기로 내려보냈다.

《부를 때까지 올라오지 마세요!》

김윤화는 이 한마디만을 했을뿐이였다. 고철삼은 더 말을 못하고 내려갔다. 하지만 다음날 안해와 함께 다시 산판으로 올라왔다. 그의 안해는 매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고 제 손으로 밥 한끼라도 지어 대접하겠다고 마련해온 쌀과 부식물을 들고 식당으로 들어섰다.

산판의 분위기는 한결 따뜻해졌다. 진정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서로를 위해주고싶어하는 후더운 기운이 산판을 감돌았다.

고철삼의 안해는 3일간이나 산판일을 돕다가 돌아갔다. 그런데 그 일이 공장에도 전해진것 같았다. 산판에 남편을 보낸 안해들과 가족들이 경쟁적으로 산판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 흐름을 타고 기사장의 안해와 딸 김해옥이 산판으로 찾아왔다. 김세천이 떠밀어보낸것이였다. 그들은 많은 식량과 부식물을 가지고 왔다. 사람들은 푸짐한 식탁을 마주하고 모두가 즐거워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문득 한경철을 놀려대기 시작했다. 한경철이 시금치를 먹었다는것이였다.

한경철은 시금치를 먹지 않는다. 어릴적에 그가 밥상에서 뜨거운 시금치국을 뒤엎어 허벅다리를 덴적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그의 어머니는 시금치라면 아예 치를 떨었다. 경철의 허벅다리에는 아직도 그때 생긴 허물자리가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한순간 방심한탓에 아들의 시력이 나빠졌다고 자신을 타매하고있는 어머니에게 있어서 이것은 두고두고 자신을 용서할수 없는 엄청난 일이였다. 어머니는 시금치를 아예 원쑤취급하듯 했다. 그러다나니 경철도 자연히 그렇게 되였다. 시금치라고 생각하면 통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부식물이 없어 시금치 말린것으로 찬을 굼때는 때가 많은 산판에서 그는 자기의 편식때문에 못내 괴로와해야 했다. 그러는 그를 두고 식당성원들을 비롯한 옆사람들도 몹시 신경을 썼다. 그런데 그가 시금치를 먹었다는것이였다.

《시금치를 못 먹는다는것두 다 헛소리야, 잘만 먹던데 뭐.》

《기사장동지 딸이 식당일을 도와주면서 쑥갓을 무쳐서 거기에 시금치를 살짝 섞었단 말이야. 그런데 경철동문 어 맛있다, 어 맵다 하며 잘만 먹더구만.》

사람들은 웃음을 터쳤다. 경철도 얼굴을 붉히며 웃고말았다. 김세천의 안해와 딸은 산판에 올라오면서 지금 계절에 보기드문 부루, 쑥갓, 시금치도 가지고 올라왔다. 그것때문에 일이 벌어진것이다.

한경철은 몹시도 불쾌해지고 어색해져 도망치듯 식사칸을 나섰다. 김윤화지배인이 그를 찾아왔다.

《경철아, 편식때문에 자기도 불편해하구 사람들에게도 불편을 준다는게 좋은 일같지 않구나. 여기는 집이 아니라 대중생활장소가 아니냐? 난 네가 나약한 인간처럼 비쳐지는게 싫다! 넌… 너의 아버지는… 한윤걸동지다.》

아, 고마우면서도 야속한 아버지. 어찌하여 사람들은 나를 아버지라는 조명으로만 비쳐보려고 하는가?

그날 저녁이였다. 일을 끝내고 물을 길러 샘터에 가니 힘겹게 곡팽이질을 하는 처녀가 보였다. 김세천기사장의 딸이였다. 처녀는 앓음소리같은 소리를 내지르며 곡괭이를 휘두르고있었다. 아직 눈이 덮인 산판이라 양지쪽이긴 해도 샘터는 얼어붙어있었다. 얼어붙은 땅쪼각들이 튀여올라 얼굴을 때리는지 곡괭이를 내리찍을 때마다 얼굴을 돌린다. 서툴고도 연약한 기운이 풍겨왔다. 한경철은 어쩔수없이 처녀에게로 다가갔다.

《아니, 언땅은 왜 파오?》

처녀는 말을 못하고 서있었다. 눈을 쓸어내고 손바닥 몇개 합친것만큼 번져놓은 땅을 부끄러운듯 내려다보았다. 한경철은 더 묻지 않고 처녀의 손에서 곡괭이를 빼앗아들었다. 힘껏 곡괭이질을 하기 시작했다. 힘이 들었으나 처녀앞이라 헉헉 단숨을 뿜어가며 그냥 세괃게 곡괭이질을 했다.

《이젠 됐습니다.》

처녀가 만류했다. 번져놓은 땅에 주저앉더니 손으로 헤집었다. 문득 처녀의 입에서 가느다란 탄성이 울려나왔다.

《야, 정말 있군요!》

섬섬옥수라고 느껴지는 처녀의 가느다란 손이 번져진 검스레한 땅에서 어떤 하얀 뿌리들을 집어낸다.

《주인집 어머니가 여기를 파면 달래가 있을거라고 하더군요.》

한경철은 처녀가 부식물을 해결하기 위해 달래를 캐려 언땅을 뚜졌다는것을 깨달았다. 놀라움과 감동을 안고 처음이라도 보듯 처녀를 바라보았다. 처녀는 온몸으로 어머니와도 같은 사려깊은 기운을 풍기며 산달래에 취해있었다. 손가락으로 흙속에 묻힌 산달래를 파내다가 손이 시린지 호 하고 입김을 분다.

한경철은 가슴이 무엇인가에 쿡 찔려오는듯 한 심정을 안고 얼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서있었다. 한경철이 자기를 지켜본다는것을 느끼자 처녀는 부끄러운듯 얼굴을 활딱 붉혔다. 그러더니 혀아래소리로 중얼거렸다.

《사실 낮에 쑥갓에 시금치를 섞은건 몰라서… 식당동무들이 그대루 내가자구 하는 바람에…》

한경철은 처녀가 언땅을 뚜지고 산달래를 캐는 리면에 바로 낮에 있은 그 일이 작용했다는것을 깨달았다. 고맙기 전에 얼굴이 화끈 다는 느낌이였다. 불현듯 갈마든 자기자신에 대한 의문과 렬등감이 가슴을 구깃구깃하게 만드는듯싶었다. 한경철은 고맙다는것인지 불만스럽다는것인지 알지 못할 중언부언을 남겨놓은채 도망치듯 샘터를 떠났다. 저녁식탁에는 바로 그 산달래가 올라있었다.

한경철은 저가락질을 하지 못한채 앉아있었다. 자기를 지켜보고있을 처녀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 산달래찬옆에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마른 시금치찬도 놓여있었다. 한경철은 어금이를 지그시 깨물었다. 저가락을 마른 시금치찬에로 가져갔다. 시금치를 입에 넣는 순간 욕지기가 울컥 솟구쳤다. 흠칫했다. 그러나 온몸에 굳은 힘을 준채 씹어삼켰다. 그 다음은 마치 자기 몸에 반발하기라도 하듯 정신없이 시금치찬에 저가락을 가져갔다. 옆에서 함께 식사하던 사람들이 눈이 둥그래서 저가락질을 멈춘채 한경철을 바라보았다.

한경철은 순식간에 시금치찬 한접시를 다 비워버렸다. 놀라고 어리둥절해진 사람들앞에서 《마른 시금치찬 한접시 더 주십시오.》라고 호기있게 소리쳤다. 배식구문이 열리더니 식당처녀들의 얼굴이 다매체편집물처럼 동시에 나타났고 그뒤에서 바라보고있는 김해옥의 얼굴이 보였다. 사람들이 눈이 둥그래진채 웃고 떠들었다. 다시 시금치찬 한접시가 들어왔다.

한경철은 거기에도 주저없이 저가락을 가져갔다. 제일먼저 식사를 끝내고 입술을 씻으며 일어서서 한경철은 싱긋 웃었다. 그 순간 그는 밝고도 순진한 기운을 안고 마주 웃고있는 김해옥을 보았다. 온몸이 후련해지는듯 한 해방감과 자기성숙감이 갈마들었다. 그때부터 한경철은 시금치를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떠나갔지만 김해옥은 산판에 남았다. 졸업배치를 기다리고있는 동안에 산판에 남아 일을 돕겠다고 했다는것이였다. 아버지가 산판에 오지 못한 미안함때문이라고 했다. 수많은 인간들의 만단사연을 품어안고 수암산은 들끓기 시작했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이전페지   다음페지

도서련재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