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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17일

평양시간


제 16 회


제 4 장


1


수암산은 우리 나라 북부산악지대의 높고 험한 산들중의 하나이다. 가파로운 산세와 울창한 수림으로 유명한 산이다. 김윤화는 눈덮인 산정에서 안깐힘을 쓰며 커다란 나무를 끌어내리고있었다. 굵고도 기다란 나무는 눈판에 대가리를 틀어박은채 잘 끌려오지 않았다.

김윤화는 매여달리듯 바줄에 온몸을 실은채 애를 썼다. 산바람이 차겁게 불어왔지만 화끈 단 그의 얼굴에서는 뜬김이 솟구쳐올랐다.

어제 김윤화는 종업원아빠트건설을 위한 목재채벌조를 이끌고 이곳 수암산에 왔다. 지배인과 당비서가 다같이 자기들의 집을 내놓고 합숙으로 들어온 일은 온 공장을 깜짝 놀래웠다. 어리둥절해하는 사람, 만류하는 사람, 개중에는 지배인과 당비서의 집으로 이사온 종업원들을 렴치를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죽어라고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배인과 당비서에게 끌려오다싶이 이사를 한 종업원들은 공연히 죄라도 지은 사람들처럼 얼굴을 들지 못하고 다녔다. 그런차에 김윤화의 집에는 시어머니마저 왔다. 아들의 말처럼 지배인인 며느리를 도와주기 위해 온것이였다. 자기 집에 왔다가 낯모를 사람들이 사는것을 보고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래졌다. 사연을 알고는 굳어진 얼굴로 말없이 서있었다. 서글픈 낯색으로 아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내가 안 올 걸음을 한것 같구나!》

하지만 시어머니는 돌아가지 않고 공장합숙으로 들어왔다. 온 공장에 화끈 단 기운이 흘러갔다. 죽으나사나 아빠트를 건설해야 한다는 눈물겹고도 결사적인 기운이였다. 그 흐름을 타고 김윤화는 목재채벌을 위해 수암산으로 온것이였다. 생고무가 도착하여 생산전투에 들어간 공장에서 될수록 현장로동자들을 다치지 않고 후방부서와 관리부서를 비롯한 사무성원들로 무어진 목재채벌조를 이끌고 왔다. 그러면서도 유독 현장로동자인 한경철만은 데리고 왔다. 고철삼도 자기도 가겠다고 제기하여 함께 왔다.

림봉숙은 한경철을 산판에 데리고 가련다는 김윤화의 말에 인차 대답을 못했다.

《왜, 걱정되니?》

림봉숙은 김윤화의 시선을 피하며 한숨을 쉬였다.

《아니, 네가 어련할려구. 하지만 네가 그 애를 너무 혹사시킬가봐 겁이 나는구나. 네 성미에 이런 기회를 놓치겠다고 하겠니? 더 걱정스러운건 네가 이제 그 애를 산판이다 바다다 하면서 어디까지 끌고 가겠는지 알수가 없는거다.》

김윤화는 웃고말았다.

《아니, 넌 왜 내가 그 애한테 그렇게 모질거라고만 생각하니?》

림봉숙은 대답이 없이 김윤화를 바라보았다. 너무도 많은것을 말하고있는 깊은 시선이 가슴을 찔렀다. 김윤화는 더 말을 못하고 그 시선을 피했다. 많은 의미를 담아 조용히 말했다.

《걱정하지 마. 지금 그 애를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선 우리 둘중 누구 한사람은 모질어야 해. 그럴바에는 차라리 내가 모질어지자꾸나. 내 말을 알겠니?》

림봉숙은 경황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맘 다 안다, 알아! 이 세상에 모질기로 하면 너만 한 녀자가 어디 있겠니?》

두 녀인은 깊은 감동과 애정을 안고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한경철이 산판으로 가지고갈 준비품들을 토론하기 시작했다.

두 녀인이 준비한 준비품들은 여러개의 지함에 나누어야 할만큼 많았다. 그것을 모두 어머니가 준비한것으로 안 한경철은 내가 산판에 아주 살려고 가는줄 아는가고 아연해서 소리쳤다. 그렇게 데리고온 한경철을 도끼를 들려 산으로 올려보냈다. 하지만 고철삼만은 숙소의 화구당번을 시켰다.

이 산속에는 군산림경영소에서 운영하는 산리용반의 건물들이 있었다. 약초와 산과실을 보관하는 커다란 창고와 그것을 관리하는 한개 가족이 살고있는 살림집이였다. 김윤화는 여기에 숙소를 정하였다. 산아래에 있는 마을에서 산판으로 오르내리는 시간을 절약하자는것이였다. 바로 이 식당 겸 숙소의 불을 때는 화구당번을 고철삼에게 시켰다.

사람들앞에서 그것을 발표하는 순간 거쿨진 체구의 고철삼은 한방망이 얻어맞은듯이 흠칫했다. 사람들도 눈이 둥그래졌다. 굳이 데리고 올라온 고철삼에게 화구를 맡긴다는것이 무엇인가 이상했고 마치 값에 쳐주지 않는듯 한 일종의 모욕처럼 느껴졌던것이였다. 아마 어떤 사람들은 지배인이 의식적으로 고철삼에 대한 질시감을 표시한다고 생각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윤화는 그대로 사업조직을 했고 숙소를 전개하게 했다.

모두들 헤쳐져갔을 때 고철삼이 김윤화에게 다가왔다. 망설이는듯 하다가 무겁게 말을 걸었다.

《지배인동무, 날 꼭 화구당번을 시켜야겠소?》

김윤화는 말없이 고철삼을 바라보았다. 키가 크고 얼굴륜곽이 큼직큼직한 고철삼은 외형부터가 무게있고 틀진 사람이였다. 과묵하고 침착해보이는 그의 온몸에서는 알지 못할 어떤 중량감마저 풍겨오는듯 했다. 어쩌면 그것은 그의 온몸에 배여있는 일군다운, 지휘관다운 체취인지도 모른다. 로동자로 일하는 지금에조차 그에게서는 그 체취가 사라지지 않았다. 김윤화는 고철삼자신도 그것을 느끼고있으며 그래서 자기의 체면을 몹시도 중시한다는것을 깨달았다. 고철삼은 얼굴이 벌깃해진채 뜨직뜨직 말했다.

《사람들앞에서 고철삼이를 이렇게까지 무시하지 않아도 이젠 동무마음이 풀릴 때가 되지 않았소? 이젠 지배인인데 좀 크고 넓게 생각해주었으면 하오.》

《크고 넓게 생각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

《날 이렇게까지 무시하지 말고 두사람, 세사람 몫을 할수 있게 해주오.》

김윤화는 주의깊고도 엄격해보이는 시선으로 말없이 고철삼을 여겨보았다. 조용히 말했다.

《그전날의 동무같으면 아마 이렇게 자기 지시를 거부하는 행동에 대해선 용서하지 않았을테지요? 그런데 이젠 동무가 그러는군요.》

조용한 말이였지만 고철삼은 우뜰 몸을 떨었다. 아무 말도 못한채 굳어졌다.

《다른 말을 하지 말고 어서 자기 맡은 일에 착수하세요.》

결국 고철삼은 화구당번이 되였다. 그들은 도착한 그날부터 산판일에 달라붙었다.

3월이지만 해발고가 높은 이 북쪽지방의 산에는 아직 눈이 쌓여있었다. 하지만 계절이 계절이다보니 눈이 녹고있었고 나무들에는 물이 오르고있었다. 그러면 목재채벌은 배로 힘겨워진다. 시간이 급했다.

김윤화도 도끼와 바줄을 차고 산에 올랐다. 베여넘긴 나무들의 가지를 치고 끌어내리는 일을 맡아나섰다.

첫날부터 사람들이 지쳐 허덕거리기 시작했다. 주로 사무실에 앉아 일하던 그들에게는 생소하고 힘겨운 작업이였던것이였다. 산판에서 휴식참에 누가 이런 말을 해서 사람들을 웃겼다.

《사람이 지내 힘들구 또 지내 자기 몸을 아끼면 똑똑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 따로 없어요. 내 누구라구 말은 안하겠는데 어제밤에 갑자기 두번이나 변소에 들락날락하더란 말이야. 매번 끝에 누운 내 발을 아프게 밟아놓으면서 말이야. 왜 그렇게 자꾸 들락날락하는가고 했더니 눈이 종지만 해져서 이상하다는거야. 뭐 잠자리에만 누우면 배가 끓고 밖에만 나오면 언제 끓던가싶게 편안하고 변소에 들어가 앉아도 다른 일이 없다는거야. 그런데 조금 있다가 또 나가, 이게 무슨 병이 단단히 온게라구 울상이 되여서 말이야. 나두 걱정이 돼서 잠이 싹 달아났지. 배낭을 뒤져서 약을 찾아가지고 벌렁벌렁 기여서 누워있는걸 찾아갔지. 약을 먹으라고 말이야. 그런데 이런 변덕이라구야! 일없다는거야! 사람을 놀리는가고 했더니 면구한지 자기 자리에 한번 누워보라는거야. 하두 권해서 누워보니 과연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지 않겠나? 무엇이 알릴듯말듯 끓는 소리야. 알구보니 주인집 어머니가 남편의 약에 쓰기 위해 약주를 담가놓은 작은 독에서 나는 소리거던. 바로 그 독에서 약주가 발효되는 소리가 그렇게 들렸던거야. 결국은 그 약주독에서 나는 소리를 그옆에서 자던 사람은 잠에 취해서 제 배가 끓는 소리로 듣고 들락날락한거야.》

사람들은 산판이 떠나가게 웃었다. 그게 사실인가고, 그 사람이 누구인가고 물었다. 그 사람은 본인이 하도 말하지 말아달라고 사정해서 이름을 안 밝히겠다고 했다. 하지만 매일 좋은 담배 한곽을 주지 않으면 자기도 자기 입을 통제할수 없노라고 했다. 얼마만큼이 사실이고 얼마만큼이 거짓인지 알수가 없었으나 아래목에 약주독이 있는것은 사실이고 또 그가 매일 아침 산판에 올라와서는 《약주독 끓는 소리를 제 배가 끓는것으로 안》사람이 고인 담배라면서 담배를 나누어주군 해서 사람들은 그것이 영 지어낸 소리가 아니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약주독곁에 누워자는 사람들을 놀려주는 풍이 생겨나서 저녁마다 약주독곁에서는 서로 안 자겠다고 싱갱이질이였다. 하지만 집단생활에 비밀이란 없는 법이여서 얼마후에는 그 사람이 다름아닌 설비부원 최현민이라는것이 알려졌다. 사람들은 무르팍을 치며 웃었다.

의지가 박약한 사람들은 그렇게 자기 몸에 대한 공포를 느낄만치 일은 힘겨웠다. 사실 하루일을 끝내고나면 온몸이 안 아픈데가 없이 쑤시고 온통 땅으로 잦아드는것 같은게 꼭 무슨 병이 난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 우스운 일도 생겨난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루 휴식을 줄 여유도 없을만큼 시간은 촉박했다.

김윤화는 모든 힘을 다해 한치한치 나무를 끌어내렸다. 그러다가 발을 헛디디고 그만 넘어졌다. 온통 눈투성이가 된채 주저앉았다. 조금 쉬고 일어서리라 결심했다. 눈판에 맥을 놓고 노그라져버렸다.

문득 아래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김윤화는 몸을 일으켜세웠다. 그 순간 산아래쪽에서 올라오던 고철삼이 후뜰 놀라며 멈춰서는것이 보였다. 지배인을 보더니 그는 마치 못된짓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얼굴이 벌개서 어쩔바를 몰라했다.

사실 이번에 수암산에 데리고 갈 사람들을 뽑으면서 김윤화는 고철삼도 데리고 가려고 했다. 왜서인지 그를 단련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버릴수가 없는 김윤화였다. 정명남당비서는 김윤화에게 고철삼이 몸이 아파 약을 먹으며 일한다는것을 말해주었다. 김윤화는 고철삼을 산판에 데리고 가려던 생각을 포기했다.

《그럼 빨리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게 해야지요.》

《그런데 본인이 절대로 안정이나 치료를 하려고 하지 않으니 야단이 아닙니까? 자기는 남보다 배로 일해야 한다는거지요.》

《그럼 억지로라도 병원에 가게 해야지요.》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단순할가요?》

김윤화는 새삼스럽게 정명남을 바라보았다.

《비서동문 내가 고철삼동무를 위해 뭔가 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싶어 그러는것 같군요.》

《병신자식, 상처입은 자식 더 마음쓰는게 부모의 심정이 아닙니까?》

《난 비서동무에게 모든걸 맡기겠어요. 집안으로 치면 비서동무는 어머니니까. 자식들은 어머니에게 더 의지하더군요. 고철삼동무 문젠 전적으로 비서동무가 알아서 해주세요.》

정명남의 얼굴에 서운한 기색이 흘러갔다.

《그럼 지배인동무는 외면하겠습니까?》

김윤화는 고철삼을 생각할 때마다 목구멍에 고여오르는 쓰거운 덩이를 힘들게 삼켰다. 말없이 앉아있었다. 정명남은 김윤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공장사람들을 자기처럼 위해주는 지배인동무의 마음에 고철삼동무는 없구만요. 옛날 일때문이겠지요? 지배인동무, 난 일군이라면 공장에 별의별 애꾸러기, 도깨비 다 있을수 있어도 고운 사람, 미운 사람이 따로 있어선 안된다고 봅니다. 눈밖에 내놓은 사람이 없이 모든 사람들을 다 가슴에 안는게 일군의 힘이 아니겠습니까?》

김윤화는 말없이 앉아있었다. 이번에 종업원아빠트문제를 통하여 김윤화는 이 결곡하고도 강의한 당비서에게 탄복하게 되고 또 주눅이 들기까지 하는 심정이였다. 김윤화는 당비서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한숨을 쉬였다.

《알겠어요. 고철삼동무 문젤 언제나 관심하고 도와주겠어요. 그럼 됐지요?》

그런데 고철삼이 자기도 목재채벌장에 가겠다고 굳이 제기했다. 고집을 쓰는 바람에 데리고 왔지만 건강을 념려하여 그중 쉬운 일인 화구당번으로 임명한것이였다. 그런데 식당에 있어야 할 그가 지금 못된짓을 하다 들킨 사람모양으로 김윤화앞에 서있는것이다.

한순간 당황하여 굳어졌던 고철삼이 자기를 다잡듯 헛기침을 했다. 손에 들었던 바줄을 어깨에 걸치며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마른 나무가 좀 필요해서…》

그리고나서 그는 김윤화를 피해가듯 길에서 벗어나 눈에 푹푹 빠져가며 수림속으로 들어가버렸다. 김윤화는 그의 뒤모습을 바라보다가 마른나무를 보장하기 위한 대책도 세워야겠다고 생각하며 돌아섰다.

다시 통나무를 끌기 시작했다. 그는 점심참까지 혼자서 여러대의 나무를 끌어내렸다. 마지막으로 한대 더 끌어내리려고 생각했는데 힘이 들어서 다리에 쥐가 올랐다. 눈판에 주저앉았던 김윤화는 좀 쉬고싶어 가까이의 바위에 등을 기대고앉았다.

온몸이 땅속으로 잦아드는듯 했다. 이대로 잠들어버리고싶었다. 김윤화는 노그라진채 맞은켠 산비탈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던 그의 눈이 문득 생기있게 빛났다. 맞은켠 비탈에 솟아있는 평퍼짐하고 거무스름한 바위에서 눈에 익은 풀줄기가 설렁거리는것을 보았던것이였다. 말라버린 풀줄기이지만 김윤화는 그것이 무슨 풀인지 잘 알고있다. 그것은 골담초라는 약초이다. 꼭 바위벼랑이나 돌짬에만 돋는다. 신경통과 골증치료에 좋다는 약초이다. 김윤화는 남편의 허리증치료를 위해 젊은 시절부터 그 약초를 찾아 무수히도 산판을 오르내렸다.

김윤화가 김승진을 처음 알게 된것은 대학을 졸업하던 때였다. 그때 김윤화는 자기 학위론문의 현장도입을 위해 평양제사공장(당시)에 나가게 되였다. 이때 나이많은 조사공이던 김승진의 어머니가 그를 많이 도와주었다. 그때 김승진의 어머니는 아들을 가진 어머니의 눈으로 김윤화를 살펴보았던것이였다. 그가 대학을 졸업했을 때 김승진의 어머니는 처녀를 며느리로 삼고싶은 심정이였지만 차마 말을 떼지 못해 그냥 속을 앓았다. 그러다가 자기 인민반장에게 사연을 이야기했다. 마음 곱고 성실한 김승진의 어머니를 잘 알고있던 인민반장은 처녀가 사는 구역의 인민반장을 찾아갔다. 결국 두 구역의 인민반장들이 떨쳐나섰다. 그들의 표현을 빌면 《선교구역과 만경대구역이 떨쳐나선 덕에》 김윤화는 어느 한 기계공장에서 사로청위원장(당시)으로 일하는 김승진을 만나보게 되였다. 그런데 그들은 서로 만나서 잠간 이야기를 나누었을뿐인데 두 인민반장들은 몹시도 기뻐하고 조급해했다. 그들은 김승진에게 말은 언제나 남자쪽에서 먼저 떼야 한다며 처녀에 대한 심정이 어떤지 어서 첫 말을 떼라고 자꾸만 성화를 먹였다. 순진하기 그지없는 김승진이 그들의 드살에 몰리워 첫 말을 떼였다. 그런데 그 첫말이라는것이 참으로 이상하고 서툴기 짝이 없는것이였다.

김승진은 김윤화를 만나 새로 출판된 소설책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그 책을 빌려주었는데 거기에 자기 집안의 가계표를 정성스럽게 적어넣은 종이장을 끼워주었던것이였다. 책을 펼치다가 본 그 가계표가 불현듯 처녀의 가슴에 이상한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왜 이걸 나한테 준것일가? 우연한 실수일가?

처녀는 그것이 총각의 우연한 실수이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자기에게 온 그 가계표에 자꾸만 신경이 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훌륭하게 산 총각의 집안사람들에 대한 존경심마저 느꼈다. 총각에게 어떻게 말을 뗐느냐고 자꾸 성화를 먹이다가 그것을 알게 된 인민반장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그들은 김윤화에게 달려와 너도 어서 가계표를 써서 총각한테 주라고 떠들썩했다. 그제야 김윤화는 그것이 총각의 사랑의 고백이라는것을 알고 그만 웃고말았다.

바로 그 가계표를 싣고왔던 책이 장편소설 《청춘송가》였다. 결국 《청춘송가》가 그들의 사랑을 담아싣고 오가게 되였다. 인민반장들의 불같은 성화에 못이겨 김윤화도 그 소설책에 자기 집안의 가계표를 써서 총각에게 보내고말았던것이였다. 그들은 그렇게 사랑을 맺었다.

그들은 행복하였다. 그런데 얼마후 《청춘송가》가 뜻밖의 편지를 싣고 김윤화에게로 왔다. 총각은 편지에 자기를 잊어달라고 썼다. 그리고 김윤화를 피하는지 나타나지도 않았다.

김윤화의 얼굴은 삽시에 하얗게 질려버렸다. 사랑을 약속한지 얼마되지도 않아서 그는 배반을 당했던것이였다. 어머니는 총각을 아예 잊어버리고말라고 했다. 벌써부터 그러는 남자를 믿을수가 없다는것이였다. 하지만 김윤화는 그럴수 없었다. 그는 자기의 선택을 책임져야 했던것이다.

《이건 나에게 그 동지를 불쾌하게 만드는 어떤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걸 의미해요. 난 그걸 꼭 알아야겠어요. 그리고 꼭 고쳐야겠어요. 난 고치겠어요! 그래도 그 동지가 날 받아들일수 없다면 난 일생 시집가지 않겠어요. 그래요, 안 가겠어요!》

어머니가 김윤화도 모르게 슬그머니 총각의 집을 찾아갔다. 그때 어머니가 가져온 소식은 놀라운것이였다. 처녀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총각이 입원치료를 받는 병원을 찾아갔다.

김승진은 오래전 공장건설과정에 허리를 심하게 상했었다. 그때 치료를 하고 완쾌되였었는데 그것이 다시 재발하였다. 의사들은 김승진의 허리가 치명적인 결과를 빚어낼수 있다고 걱정했다. 처녀와의 사랑을 시작했을 때 불쑥 나타난 그 치명적인 병마는 순박한 청년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처녀를 생각하여 제편에서 먼저 결별의 편지를 써보냈던것이였다.

모든것을 알게 된 김윤화는 울면서 총각을 찾아왔고 말없이 총각의 시중을 들었다. 총각이 거절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밤새워 약초를 찧고 찜질을 해주었다. 끝내 총각은 그의 지성에 눈물을 흘리고야말았다.

《후회하지 않겠소?》

총각이 물었다. 김윤화는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정을 이룬 후에도 김승진은 이따금 허리때문에 자리에 누워 운신을 못하는 때가 있었다. 그때면 김윤화는 온갖 정성을 다하여 그의 시중을 들고 약을 구하러 수십리 밤길을 걷군 했다.

사람들은 새각시인 김윤화가 엎드려 움직이지 못하는 남편을 어린애마냥 머리마저 감겨주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것을 여러번 볼수 있었다. 그리고 남편의 입에 밥을 떠넣어주는것도 볼수 있었다. 그 정성으로 김승진은 난치의 병이라던 허리를 고쳤다. 그 모든 사연을 가슴속에 이어주는 사연깊은 약초인것이다.

이 순간 왜서인지 김윤화는 그 약초를 캐고싶어졌다. 아직도 그게 필요할지는 몰라도 어제날의 그 사랑의 충동으로 지쳐버린 자기의 몸을 일으켜세우고싶었다. 그리고 집문제로 하여 남편과 시어머니앞에 미안해진 마음을 풀고싶었다.

그는 몸을 일어 앞에 보이는 산비탈로 올라갔다. 약초를 캐내기 시작했다. 눈을 파헤쳤지만 땅은 아직 꽁꽁 얼어있었다. 더우기 돌짬에 돋은 약초인지라 맨손으로 어떻게 할수가 없었다. 별수없이 손톱을 박고 무진 애를 써서 바위에서 육중하고 삐죽한 돌덩이를 떼냈다. 그것을 가지고 바닥을 짓쪼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만 잘못 내리쳐 손이 바위에 부딪쳐 찢겨졌다. 피가 흘렀지만 어느덧 젊은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인 녀인은 그런것쯤은 개의치 않았다. 정신없이 돌을 내리치느라니 약초의 뿌리가 거의다 드러났다. 녀인은 약초를 거머잡고 힘껏 당겼다. 바로 그 순간 약초가 뿌리채 뽑혀나왔다. 녀인은 약초를 손에 쥔채 산등성이아래로 데굴데굴 굴러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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