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회


제 3 장


5


김윤화는 자기 방에 굳어진듯 앉아있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정명남당비서의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 얼른거렸다.

《살림집기초를 메워선 안됩니다!》

방금전 종업원아빠트기초를 메우려 한다는것을 알았을 때 정명남은 해쑥해진 얼굴로 조용히 부르짖었다. 김윤화는 타협을 바라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물론 나도 마음이 좋지는 않아요. 하지만 지금 공장에는 자금도 없고 로력도 없고… 또 수지운동신설비보장이라는 큰 문제도 있지 않나요? 수지운동신이나 해놓구나서 아빠트를 짓자요.》

정명남은 어둑한 얼굴로 김윤화를 마주보았다.

《그렇다구 파놓았던 기초를 도로 메워버리면 로동자들에게 그걸 뭐라고 설명하겠습니까?》

《로동자들은 리해해줄거예요. 공장이 너무 힘에 부쳐서 그러는걸 어쩌겠나요?》

정명남은 잠시 침묵했다. 힘들게 중얼거렸다.

《이렇게 말한다고 욕하지 마십시오. 난 왜 그런지 공장의 힘이 아니라 지배인동지의 힘이 모자라는것 같은 생각이 드는군요. 마음의 힘이 말입니다.》

《뭐라구요?!》

김윤화는 놀랍고 노여워져 생면부지의 체취를 풍기는 당비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명남은 김윤화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채 마주보았다.

《지배인동진 공장사람들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 어렵고 힘든 국산화의 길을 택했다고 했는데 과연 로동자들에게 갈 길을 가리켜주고 일감을 주면 힘을 키울수 있다고 생각하는겁니까?》

조용한 말이였지만 왜서인지 가슴이 찔려오는감을 느끼며 김윤화는 대답을 못하고 앉아있었다.

《난 로동자들에게 일감보다 먼저 정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공장로동자들의 집문제를 풀어주겠다고 파놓았던 아빠트의 기초를 다시 메워버린다면 그걸 보는 로동자들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이게 무섭지 않습니까?》

김윤화는 눈길을 떨구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였다.

당비서의 말은 옳다. 하지만 지금 당비서가 요구하고있는것은 누구의 지지나 어떤 타산이 아니라 기적이다. 그에게는 지금 기적이 필요한것이다. 수지운동신설비보장과 계획수행 그리고 살림집건설이라는 기적이 필요하다. 하지만 김윤화는 도저히 랭정한 타산과 수자에서 떠날수가 없는것이다.

이것이 당일군과 행정일군의 차이일가?

《나도 집을 짓고싶어요. 하지만 무슨 힘으로 집을 짓겠나요? 방도가 있으면 좀 대주세요.》

방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정명남은 창밖을 내다보며 조각상마냥 앉아있었다. 침묵의 뻐근한 중압감이 두사람을 아프게 짓누르는듯 했다. 이윽고 정명남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사실은 나도 방도가 떠오르지 않아서… 안타까워서… 지배인동무를 지켜보고있었습니다. 지배인동무는 무슨 방도를 꼭 찾아내겠지 하고… 부끄럽지만 이건 사실입니다!》

다분히 솔직하고 쓸쓸한 그 말에 김윤화는 소리없이 웃었다.

《나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나요. 지금 같아선 건설을 할수 있는 아무런 방도도 나에겐 없어요.》

정명남은 여전히 창밖을 내다보며 굳어진듯 서있었다.

침묵, 속수무책의 막막한 무력감이 고막이 우는듯 한 침묵속에 속속들이 배여있었다. 이윽고 다소 쓸쓸하게 울리는 정명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기초를 메워버리는건 절대로 방도가 아닙니다, 책임회피지. 지배인동무, 우리 꼭 방도를 찾아봅시다. 아니, 꼭 찾아야 합니다. 난 먼저 우리가 살림집때문에 고생하는 종업원들의 가정방문을 하자는걸 제기합니다.》

《가정방문이요?》

정명남은 고개를 끄덕이며 김윤화를 바라보았다.

《지배인동무는 우리 공장 종업원들중에 살림집문제가 제일 어려운 세대가 누구인지 알고있습니까?》

왜서인지 얼굴이 후끈해오는감이 들었다. 정명남이 김윤화의 마음을 풀어주듯 흔연하게 말했다.

《지배인동무야 새로 왔으니 모를수 있지요. 내가 알기에는 두 동무인데 그중 한 동무는 준비직장의 차봉남동무입니다. 이 동무의 집에는 지배인동무가 가보십시오. 제화직장에 다른 한 동무가 또 있는데 거기엔 내가 가보겠습니다. 우리 오늘 저녁중으로 꼭 가봅시다. 가보고 와서 다시 방도를 토론해봅시다.》

《저… 난 차봉남동무의 집을 모르는데…》

왜서인지 피하고싶어지는 심정으로 김윤화는 중얼거렸다. 정명남은 정색한 얼굴로 조용히 말했다.

《부지배인동무가 집을 압니다. 차라리 부지배인동무와 함께 가보십시오. 그 동무도 차봉남동무네 집에 한번 가보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더라고 하십시오.》

정명남은 한순간에 딴사람이 되여버린듯 한 얼굴이였다. 그는 다소 엄격해진 얼굴로 방을 나갔다. 그리하여 김윤화는 송명식을 찾게 되였다. 이야기를 들은 송명식도 얼굴색이 질려 굳어졌지만 어쩔수없이 함께 떠났다.

차봉남의 집은 공장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그들은 5층에 자리잡았다는 차봉남의 집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김윤화는 이제 자기가 맞다들게 될 딱하고도 불미스러운 광경을 예상하며 가슴을 조였다.

《차봉남동무네가 식구가 많은가요?》

《자기 식구는 안해하구 딸하구 셋인데 녀동생네와 그리구 어머니를 모시구 살고있습니다. 하지만 집에 넓은 전실과 부엌이 달려있지요.》

그런데 5층에 올라가니 차봉남의 집은 왜서인지 복도가 환하도록 문을 열어놓고있었다. 안에서 음식냄새가 쏟아져나오고있었다. 아마 집안공기를 갈자고 열어놓은 모양이였다. 그들은 약속한것처럼 소리없이 문앞에 다가섰다. 넓은 전실을 통해 집안이 들여다보였다.

두세대가 함께 사는 가정의 체취가 문밖까지 풍겨오고있었다. 부엌에서는 차봉남의 누이동생네가 저녁준비를 하고있는듯 했고 차동무네는 자기네 방에서 가스곤로로 무엇인가 음식을 만들고있는듯 했다. 그의 어머니인듯 한 늙은이가 아이를 업고 부엌과 방을 오락가락하면서 《그런데다는 된장 한숟갈을 넣어야 한다, 남새국을 끓일 때에는…》, 《야, 록두나물을 삶는 법이 어디 있니? 살짝 데쳐내라. 그래야 아삭아삭한 맛도 있고… 제일 보기 멋한게 록두나물 삶은거다.》라고 훈시하고있었다. 방에서는 두집 아이들이 모여 놀고있는듯 한데 사내녀석이 처녀애에게 성화를 먹이는지 도간도간 칭칭대는 처녀애의 소리가 들리고 그러면 부엌쪽에서 차봉남의 누이동생이 심상하나 위세를 보이려는 목소리로 《야, 조혁이! 왜 못되게 노니? 혼나보겠니?》하고 짐짓 으른다. 하지만 그 목소리조차도 마치 노래가락처럼 듣기 좋게 느껴진다. 달각달각 그릇들이 부딪치는 소리와 음식냄새가 풍겨오는 속에 문득 방쪽에서 《아니, 이 애들이?! 두개밖에 없던 파를 다 먹어치웠구나!》하고는 우스운듯 호호 하고 웃는 녀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조금 있더니 아이들이 방에서 달려나오며 《야, 다 됐다! 밥 먹자!》하고 소리쳤다. 전실에 큰상이 놓여지고 부엌이며 방에서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음식내와 그릇소리가 뒤섞이는 속에 떠드는 소리들이 활기롭게 떠올랐다.

《국에는 파를 못 넣었어요, 아이들이 먹어버려서…》

《좀 여유있게 준비해놓을게지.》

차봉남의 힐책에 아이를 업은 늙은이가 며느리를 역성든다.

《됐다! 말양념을 치면 되지. 파맛이 어드렇더라?》

늙은이가 아이들을 둘러보며 능청스레 말하자 아이들은 대답처럼 웃었다.

《막 맵구 눈물이 나와요.》

《삼촌, 내 입에선 아직 파냄새가 나요. 맡아보라요. 맡아보구 먹으면 말루 듣는것보다 낫지 않나요?》

애녀석이 입을 벌리고 하- 하고 입김을 내뿜었다. 차봉남이 애녀석의 엉치를 갈겼다.

《저리 가, 이녀석아! 말양념인지 코양념인지.》

모두가 소리내여 웃는다. 김윤화의 얼굴에도 저도 모르게 웃음이 어렸다. 출입문을 닫으려고 문가로 다가오던 처녀애가 김윤화네를 띄여보고 멎어섰다.

《아버지, 누가 왔어요.》

그들을 알아본 집안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김윤화는 차봉남의 어머니에게 사죄를 했다.

《어머니, 미안합니다! 제가 집고생을 하는 종업원들의 심정을 너무 몰랐습니다.》

차봉남의 어머니는 두손을 홰홰 내저었다.

《원, 무슨 말을! 지배인이야 응당 그래야지요. 걱정마시우다! 우리 수령님께서 회고록에도 쓰셨지만 사람은 집이 좁아 못사는게 아니라 마음이 좁아 못삽니다. 그걸 마음에 새기고 사느라면 정말이지 집이 좁은 생각은 안 나웨다.》

김윤화는 한없이 소박하지만 그지없이 진실해보이는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회고록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정말 우리 수령님 가문처럼 그렇게 덕이 있고 정이 넘친 가정이 어디 있었겠소? 내 우리 아이들에게 늘 옛말처럼 해주는 이야기가 있쉐다. 혁명사업으로 바쁘시던 김형직선생님께서 어디 멀리 가셨다가 돌아오시며 점심무렵에 집에 련락을 보냈답니다, 세사람분의 식사를 준비해달라구. 밥을 한창 하던 점심무렵이였고 또 쌀도 넉넉치 못한 살림인지라 집에 당도한 혁명가분들에게 밥을 떠올리고 강반석어머님께서는 물동이를 들고 샘터에 나가시여 물 한모금으로 끼니를 에우시지 않으셨겠소. 그런데 상을 물리우면서 보니 글쎄 김형직선생님의 밥그릇은 웃뚜껑두 채 헐지 않으신채 그대로 나오더라지 않습니까. 김형직선생님께서 왜 집안의 형편을 모르시겠소? 그래서 먼길을 걸어오시느라 시장하셨지만 집식구들을 위해 밥을 들지 않으신것이지요. 리보익할머님께서 그 마음을 다 아시고 아드님에게 내 너를 혁명가인줄로만 알았더니 진짜인간이다 하고 칭찬해주셨다지 않습니까. 이게 바로 우리 수령님 가문이지요.》

처음 듣는 이야기는 아니였지만 생각되는바가 깊었다. 전실벽에 높이 건 《가화만사성》이라는 글발이 새삼스럽게 안겨온다.

김윤화와 송명식이 떠날 때 차봉남은 아빠트밑에까지 따라내려왔다. 주저하는듯 하더니 조용히 말했다.

《고맙습니다, 지배인동지, 부지배인동지!》

《동무가 왜 나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거예요? 인사는 오히려 내가 동무에게 해야 해요.》

《아닙니다. 사실 난 공장에서 집문제를 관심해주지 않는다고 내놓고 불평을 부렸는데… 이렇게 찾아와주기까지 하니… 생각되는바가 많습니다. 지배인동지, 부지배인동지, 정말 고맙습니다! 제… 일을 더 잘 하겠습니다.》

김윤화는 아무 말도 못한채 진정이 어린 그 얼굴을 얼없이 바라보았다. 이들은 공장의 책임일군들이 자기의 집을 찾아준 그것만으로도 커다란 힘과 위안을 받으며 감사의 정마저 품는것이였다. 그런데 나는 이들에게 과연 무엇을 주려 했던가? 차디찬 외면과 랭정한 타산으로 기초를 도로 메워버리려 하지 않았던가?

돌아오는 길에 김윤화와 송명식은 다같이 말이 없었다. 오랜 침묵이 흐른 끝에 김윤화는 한숨과 함께 물었다.

《부지배인동무, 어떻게 해야 종업원들의 집문제를 풀수 있을가요? 기초를 메우지 않구 종업원아빠트를 그대로 올릴 무슨 방도가 없을가요?》

송명식은 대답이 없이 묵묵히 걸었다. 이윽고 시름기가 내밴 무뚝뚝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집문제야 어디 마음 하나만 가지고 됩니까? 지금은 누가 집을 양보하겠다는 사람도 없구요. 지금처럼 공장이 빈손일 때에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소원 하나만 가지고서는 죽겠다는 소원도 못 푼다고 하더군요.》

다소 침울하고도 퉁명스럽게 울리는 그 말에 김윤화는 흠칫 놀라 걸음을 멈추기까지 하며 송명식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송명식은 김윤화의 시선을 피한채 걷기만 했다. 그들은 다시금 말없이 걸었다.

송명식은 집으로 돌아갔지만 김윤화는 집으로 가지 못하고 다시 사무실로 왔다. 밤이 깊어가건만 움직이지 못한채 책상앞에 그린듯이 앉아있었다. 못 다 푼 숙제문제를 돌이키는 중학생마냥 불안하고도 죄스러워지는 마음이였다. 저도 모르게 당비서에게 손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는동안 왜서인지 조마조마해지는 마음이였다. 정명남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화받습니다.》

《지금 어디 있어요, 비서동무?》

정명남은 잠시 침묵했다. 이윽고 조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종업원의 가정방문을 하고 방금 집에 들어서는 길입니다.》

두사람은 서로의 심정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침묵속에 오래도록 앉아있었다. 이윽고 정명남이 조용히 말했다.

《지배인동무, 당일군인 제가 행정일군의 고충을 너무 몰라준다고 욕하겠지요? 당비서가 강연제강을 읽듯이 훌륭한 말을 너무 쉽게 한다고 생각하겠지요?》

김윤화는 대답을 못했다. 손전화기를 통해 모지름쓰는듯 한 당비서의 숨소리가 전해져왔다.

《나도 지금 막 괴롭습니다. 난 지금 우리 네식구가 사는 넓은 집을 자꾸만 둘러보고있습니다. 이런 집에서 걱정없이 사는 당비서가 어떻게 종업원아빠트의 기초를 메워버리는데 동의할수 있단 말입니까? 난 지금 자기가 정말 한심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느껴집니다.》

정명남의 목소리가 불시에 숨이라도 찬것처럼 빠르고도 격해졌다.

《지배인동무, 지배인동무가 흔들리구 주저하면 공장이 흔들립니다. 다시 말하지만 난 지금 공장의 힘이 아니라 지배인동무의 마음의 힘이 흔들리는것 같아 겁이 납니다. 마음의 힘과 선택은 서로 비례하는겁니다.》

김윤화는 가슴이 쿡 찔려오는감을 느끼며 아무 말도 못하고 앉아있었다. 손전화기에서 정명남의 곡진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지배인동무, 힘을 내십시오. 그리구 나에게도 힘을 주십시오.》

김윤화는 손전화기를 든 손이 가늘게 떨리는것을 느꼈다. 정명남의 조용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나에게 종업원들의 살림집문제를 해결하구 아빠트를 지을수 있는 방도가 하나 있기는 한데 그건… 그건 지배인동무가 먼저 결심해야 하는 일이여서 난 차마 말을 못하겠습니다.》

불현듯 힘들게 울리는 정명남의 말에 김윤화는 흠칫하기까지 했다. 귀안에 전류가 흐르는듯 한 침묵. 정명남이 조용히 말했다.

《지배인동무, 우리 자기자신들부터가 종업원들의 살림집건설에 운명을 걸어봅시다. 결심이… 방도가 떠오르면 언제든지 저에게 전화를 걸어주십시오. 밤이 깊어두 일없습니다. 지배인동무, 난… 전화를… 기다리겠습니다!》

정명남은 먼저 전화를 놓았다. 김윤화는 손전화기를 손에 든채 굳어진듯 앉아있었다. 네식구가 사는 자기의 넓은 집을 자꾸만 둘러본다던 당비서의 말이 의미심장한 느낌을 흘리며 귀전에 울려왔다. 이번에는 다소 침울하고 퉁명스럽던 송명식의 말이 떠올랐다.

《지금은 누가 집을 양보하겠다는 사람도 없구요.》

《양보!》하고 김윤화는 참으로 짧고 단순하지만 소스라치도록 두려워지는 그 말을 입에 올렸다. 그러자 왜서인지 온몸이 얼음물속에 빠져든것처럼 차거워지고 힘껏 짓눌리운것처럼 뻐근해온다.

또다시 종이장우에 무엇인가를 넋없이 쓰고싶은 알길 없는 충동. 그것은 가장 힘든것을 결심할 때마다 온몸을 사로잡군 하는 두려우면서도 기꺼운 충동이다.

《우리 집.》하고 김윤화는 넋없이 불러보았다. 자기가 무엇인가 할수 있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남편과 딸애의 얼굴이 날카로운 아픔을 안겨주며 눈앞을 날아지나갔다. 김윤화는 저도 모르게 경황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번에는 시어머니의 얼굴이 커다랗게 떠올랐다. 그들의 집은 시어머니가 살다가 넘겨준 집이였다.

성실하며 고지식하게 살아온 시어머니.

남편의 어머니는 한생을 제사공장에서 일했다. 늘 일이 바빠 아이들과 오래 마주앉아있을 시간조차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침과 저녁에 만나 가슴속의 정을 단꺼번에 쏟아놓듯 그렇게 아이들을 사랑했고 교양했다는것이였다. 녀인은 자기가 키가 쭉 빠지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좋은것에 대한 평가기준을 언제나 큰 키에 놓군 했다고 한다.

《승진아!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밥을 먹어야 한단다. 그래야 키가 큰단다!》

늦잠을 자는 아들애를 타이르는 말이였다.

《저녁에 자기 전에 발을 꼭 씻어야 한단다. 그래야 키가 큰단다!》

위생을 잘 지키지 않는 아들을 타이르는 말이였다.

《아무리 동무가 잘못을 했어두 제가 먼저 결별하고 돌아서는 일이 없어야 한단다. 사람은 언제나 마음이 너그럽구 고와야 해! 그래야 키가 커!》

동무들과의 관계에서 극단적인 아들을 타이르는 말이였다. 정말로 아들은 키가 컸다. 하지만 키보다도 마음이 더 큰것은 바로 그 어머니의 다심하고 웅심깊은 사랑때문이리라.

그들이 결혼식을 한 후 년로보장을 받은 시어머니는 그들에게 집을 넘겨주고 인민군군관에게 시집간 딸을 도와주기 위하여 먼 전연지구로 떠나갔다. 이번에 남편과 김윤화는 그 시어머니를 집에 모셔오기로 토론했다. 늘 아직은 너희들의 짐이 되지 않겠다고 하던 시어머니가 지배인사업을 하느라고 힘들고 바쁜 정혜 어머니를 도와달라는 남편의 말에는 고개를 끄덕였다고 했다. 이제 머지않아 시어머니는 집으로 올것이다.

이 순간 김윤화는 거기에 매여달리고싶었고 그것으로 극단적이고 충동적인 자기의 결심을 철회하고싶었다. 녀인의 귀전에는 부엌을 울리던 닭울음소리가 들려오는것만 같았고 남편과 정혜의 랑랑한 웃음소리도 들려오는듯 했다.

《야, 어머니가 닭의 유언을 듣구 일어섰구나!》

딸애가 전실이며 방에 붙여놓은 그림들도 떠오른다.

아, 나의 온몸에 맨 그 소중하고 아름다운 생활을 내스스로가 마다하고 거부할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 순간 야속하게도 그의 귀전에는 27년전의 아기의 울음소리가 또다시 생생하게 들려왔다. 김윤화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온 생을 다하여 한 인간의 행복을 선택하던 그날의 힘겹고도 처절하던 느낌이 다시금 온몸을 사로잡는듯 했다.

김윤화는 저도 모르게 넋없이 《너를 선택한다.》라고 되뇌여보았다. 그러자 아프고도 기꺼운 느낌속에서 차봉남의 얼굴이 커다랗게 떠올랐다. 자기들의 집에 책임일군들이 찾아왔다는 그것만으로도 감사해하고 기뻐하던 그 순진하고 정스러운 얼굴, 이것이 우리 로동자들이다.

이 순간 김윤화는 자기가 기어이 살림집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종업원들에게 그 힘겹고 어려운 일을 호소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집을 차봉남에게 주고 자기는 공장합숙으로 들어와야 한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당비서도 바로 그러한 결심을 내렸으리라는것도 알았다.

당비서가 바라고 요구하는 기적은 바로 남을 위하여 자기의 소중한 모든것을 다 바치는 우리의 사회주의대륜리가 안아오는 기적이고 혁신인것이였다.

오래도록 앉아있던 김윤화는 천천히 송수화기를 들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약속전화》였다. 남편은 깊은 밤 《약속전화》를 걸어오는 안해의 심상치 않은 내심을 느낀듯 했다. 더 묻지 않고 대답했다.

《내 이제 곧 집으로 가겠소.》

전화는 끊어졌지만 김윤화는 송수화기를 든채 굳어진듯 앉아있었다.

얼마후 방을 나섰다. 불을 환하게 켠 마지막 궤도전차가 정류소에 도착했으나 왜서인지 혼자 걷고싶어 타지 않았다. 오랜 시간을 걸어 아빠트앞에 당도했다. 올려다보니 집 창가에는 불이 꺼져있었다.

계단을 올라 집앞에 당도했다. 초인종을 눌렀으나 응답이 없었다. 가지고있는 열쇠로 문을 열려고 했으나 문이 열리지 않았다. 보매 수동걸쇠로 문을 걸어놓은것 같았다. 처음에는 조심히 그다음에는 별수 없이 큰소리를 내여 문을 두드렸다. 그래도 집안에서는 기척이 없었다.

김윤화는 남편이 오지 않았으며 정혜가 잠들어버렸다는것을 깨달았다. 정혜는 초저녁에 잠이 들면 좀처럼 깨여나지 못한다. 밤이 깊어지면 빈집에 혼자 있기 무서워하는 딸은 수동걸쇠로 문을 걸어놓군 한다. 당황하고 조급해난 김윤화는 좀더 크게 집문을 두드렸다. 소리쳐 딸을 찾았다. 하도 문을 두드리니 옆집이 먼저 깨났다. 옆집 녀인은 문을 열고 내다보기까지 했다. 문을 닫고 들어가는 녀인의 나직한 푸념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지금이 몇시라구?… 잠을 푹 자야 래일 일을 더 잘하는건 너나 나나 다 같구 같겠는데…》

김윤화는 얼굴이 다는듯 한감을 느끼며 굳어졌다. 지금이 모두가 단잠에 든 깊은 밤이며 자기가 무례하게 처신하고있다는 생각에 더 문을 두드릴수 없었다. 그는 복도에 굳어지고말았다. 어쩔바를 몰라하다가 그대로 복도에 주저앉았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 남편이 나타났다. 복도에 앉아있는 안해를 보고 눈이 둥그래졌다. 남편이 계속 초인종을 누르고 열쇠를 열려고 모지름을 쓰다가 난감하여 두손을 내리드리웠다. 한숨처럼 조용히 말했다.

《안되겠구만!》

부부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문앞에서 물러나 복도계단에 나란히 앉았다. 김윤화는 남편의 어깨에 살며시 머리를 기댔다. 어깨를 통해 들려오는 남편의 심장의 박동소리가 마치 의미심장한 호소와 질책처럼 느껴졌다. 왜서인지 울고싶어지는 심정이였다. 남편은 김윤화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구만.》

김윤화는 가까스로 더듬거렸다.

《당신… 나같은 녀자 만난거… 후회하지요? 이렇게 늦게야 오다나니 집에도 못 들어가구 또…》

김윤화는 뒤말을 더 할수가 없었다. 남편은 안해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웃었다.

《여보, 그거야 나도 같지. 만약 미안하고 죄스러운 감정도 사랑이라면 우린 아마 세상에서 사랑이 그중 깊은 부부일거요.》

《여보!》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힘을 내오. 오, 이럴 땐 차라리 내 어깨에 기대구 한잠 푹 자오. 그럼 머리가 거뜬해지구 방도도 떠오를거요.》

김윤화는 정말로 남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자고싶은 강렬한 욕망을 느꼈다. 불시에 현실도 처지도 무시해버린 무서운 피로가 달려들었다. 그는 반쯤 졸음에 취한듯 한감을 느끼며 남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죄스러움과 고마움이 섞인 이상한 안도감속에 조용히 중얼거렸다.

《정혜 아버지, 이럴 때 보니 이렇게 깊은 밤에 문을 두드려두 남의 눈치 볼것 없구 또 아무 집이나 문을 열구 들어서도 일없을 그런 종업원아빠트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나도 그런 생각이 드는구만.》

《정혜 아버지, 내 꼭 그런 종업원아빠트를 짓겠어요. 일년동안에 꼭 짓겠어요. 그런데… 난… 난…》

온몸에 갖풀처럼 끈덕지게 달라붙는것은 피로일가 죄스러움일가? 남편의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무슨 일이 있었지, 응? 말해보오!》

숨소리가 흐느낌소리처럼 떨렸다. 자기의 얼굴을 긴장해서 들여다보고있는 남편의 시선을 느꼈으나 눈을 뜰수도, 입을 열수도 없었다.

《다품종화때문에?…아니면?…》

남편은 말을 더듬었다.

《혹시… 당신 경철이때문에 무슨 일이… 생긴게 아니요?》

김윤화는 눈을 뜨지 않은채 고개를 가로저어보였다. 조급해진듯 한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해보오, 무슨 일이요? 내가 무엇을 도와야 하오?》

숨이 차올라왔다.

《또 무슨 집재산을 들고나갈 일이 생겼는가? 이번엔 뭘 들고나가야 하기에 이렇게 옆사람까지 긴장시키는가?》

드디여 소리없는 눈물이 동을 터치고 흘러나왔다. 젖어드는 두볼을 감추려고 김윤화는 몸을 일어 고개를 숙였다. 숨을 톺아내며 흐느낌처럼 중얼거렸다.

《집재산이 아니라… 다름아닌 이 집이예요. 난… 난 이 집을… 공장종업원에게… 주기로 결심했어요.》

남편의 온몸이 흠칫 떨리는것이 알린다. 심장을 그러쥐는듯 한 침묵. 이윽고 남편의 목소리가 먼 곳에서 울리는것처럼 들려왔다.

《집을 준다는건 무슨 소리요?》

김윤화는 사연을 설명했다. 침묵. 남편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러다간 우리가 집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이 오직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 정혜만 남게 되는게 아니요?》

김윤화는 눈물을 보이지 말자고 필사적으로 모지름을 썼다. 자기 몸이 애처로울만치 떨리고있다는것을 알지 못한채 넋없이 중얼거렸다.

《그 셋이면 돼요! 셋이면! 안 그래요?! 여보, 당신은 늘 날 리해해주었지요?》

침묵, 침묵… 그것은 무던히도 길어보이는 침묵이였다. 이윽고 남편은 한숨을 내쉬더니 뜨겁고 억세인 손으로 김윤화의 어깨를 꽉 잡아준다.

《어쨌든 당신은 특이한 녀자요. 어쩌겠소? 그렇게 살아온걸! 당신이 정 그렇게 결심했다면 막지 않겠소. 하지만 일년내로 집은 꼭 지어야 하오.》

《정혜 아버지!》

드디여 더는 어쩌지 못하고 눈물젖은 두볼을 쳐들며 김윤화는 부르짖었다.

《고마워요, 정혜 아버지!》

《그런 인사를 한 백번쯤 하면 이렇게 딱한 일이 더는 없을가?》

김윤화는 남편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채 저도 모르게 울며 웃었다. 그런데 그다음은 그만 어이없게도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심신을 괴롭히던 모진 번민과 방황에서 벗어나자 그만 피곤에 져버린것이였다. 눈물자국을 지우지 못한채 김윤화는 어쩔수 없는 깊은 잠에 들어버렸다. 김승진은 꼼짝을 않고 앉아있었다. 새벽녘 김승진이 자꾸만 손전화기로 집전화에 전화를 걸어서야 정혜가 깨여났다. 문을 열라고 소곤소곤 말하는 김승진의 옆에서는 김윤화가 아직도 남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채 깊은 잠에 들어있었다.

이사가는 날은 정혜때문에 한동안 지체되여야 했다.

《엄마, 내가… 내가 그날 밤에 문을 못 열어줘서?!… 내가 잘못했어요! 내 다시는… 아니, 내가 이제 당장 그 수동걸쇠를 아예 떼버리겠어요. 다시는 그걸로 문을 걸지 않겠어요.》

정혜는 제잡담 덤벼치며 웃방으로 달려올라가 공구함을 통채로 들고 와서는 뻰찌와 망치를 찾아들기까지 했다.

《정혜야!》

남편이 정혜의 손에서 뻰찌와 망치를 빼앗아들었다.

《그래서 그러는게 아니란다. 우린 공장합숙으로 가야 한다.》

망연하여 굳어진 정혜의 눈에는 눈물이 핑 고여올랐다.

《왜, 왜 그래야 하나요? 이사 안 가면 안되나요?》

《그건… 그건…》

남편은 정혜를 품에 안고 대답을 고르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건 어머니가… 지배인이여서… 그렇단다.》

《지배인이면 꼭 그렇게 해야 하나요?》

《이제 일년만 있으면 새 집이 생긴다.》

《난 새 집두… 어머니가 지배인인것두 다 싫어요. 난 여기서 살면서 내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파요.》

《정혜야, 그림은 거기서두 그릴수 있다.》

정혜는 모든것을 부정하듯 온몸을 흔들며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김윤화는 아무 말도 못하고 서있었다. 남편도 질린듯 한 얼굴로 말없이 서있었다. 달래듯, 호소하듯 서있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일별하고나서 정혜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이윽고 눈물을 흘리며 자기가 전실에 붙여놓았던 그림들을 떼기 시작했다. 떨리는 손으로 하나하나 떼였다. 부부는 가슴을 쿡 쥐여박는듯 한 모진 아픔과 당황함을 느끼며 어쩔바를 모르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김윤화는 자기가 지금껏 한번도 품들여 보아주지 못한 딸의 그림들이 생동하고도 부드러운 기운을 풍기는 그림들이라는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거기에는 어머니의 얼굴을 품들여 소묘한 그림도 있었다. 분명 재간과 정열이 느껴지는 그림들이였다.

그것을 느끼는 순간 목이 콱 메여왔다.

왜 이 순간에야 그것을 느꼈단 말인가?

지켜보아주지 못했고 관심해주지 못했던 딸애의 재능과 사랑의 호소가 이 순간처럼 가슴에 찔려오기는 처음이였다. 뻐근해오는 아픔을 느끼며 김윤화는 경황없이 딸애에게 다가섰다. 저로서도 당치않고 어색한 손놀림으로 그림을 떼는 딸애의 손을 잡았다.

《이제 보니 이 그림들이 정말 잘된 그림들이로구나. 이젠 이 그림을 내가 내 사무실에 걸어두고 보겠다.》

일껏 보여준 그 관심과 성의가 딸애의 가슴에 더 아픈 못을 박는다는것을 안것은 다음순간이였다. 딸애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한없는 원망과 아픔이 그 눈에서 끓고있었다. 딸애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엄만 거짓말을 하고있어. 날 얼리느라고 그러지? 엄만 언제 한번두 내 그림을 관심해본적이 없어. 엄만 공장밖에 몰라! 난… 난 다신… 엄마한테… 그림을 보아달라고 안할래!》

딸애는 그림을 떼내느라고 경황없이 손을 힘껏 잡아챘다. 그 순간 벽에 한쪽이 붙어있던 그림은 엇비스듬하게 쭉 찢겨져나갔다. 정혜도 김윤화도 남편도 한순간 소스라쳐 굳어져버렸다. 찢어진 그림과 자기 손에 들린 그림을 들여다보던 정혜가 그것을 바닥에 내던지며 어린애처럼 소리내여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밖으로 달려나가버렸다.

김윤화는 숨이 막히는듯 한감을 느끼며 움직이지 못하고 서있었다. 이윽고 땅바닥에 떨어진 딸애의 그림들을 하나하나 주어들었다. 그의 손이 눈에 띄게 후들거렸다.

《여보, 너무 속쓰지 마오. 아이가 아직 철이 없어서 그런걸…》

남편이 달래듯 말했다. 무엇이라고 말하고싶었으나 울음에 목이 메여 아무 말도 새여나오지 않았다. 김윤화는 그림들을 한장한장 주어들고 찢어진 그림도 주어들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찢겨진 그림에 붙이려고 헛되이 애썼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붙어있는 그림쪼각을 조심스럽게 떼여냈다. 떼여내고는 그만 고개를 떨구고 소리없이 흐느꼈다. 그의 두볼로 맑은 눈물이 줄을 그으며 그냥 흘러내렸다.

《여보!》

《정혜 아버지!》

부부는 말없이 서로를 힘껏 그러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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