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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19일

평양시간


제 11 회


제 3 장


1


력사학자들이 고증한데 의하면 아득한 원시사회때부터 선조들은 자기의 두발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나무껍질로 발바닥을 동여매는 식의 가장 간단하고 원시적인 《신발》을 만들줄 알았다고 한다. 네발로부터 두발로 일어선 인간에게 있어서 자기 몸을 유지하고 생존해가는데 필요한 모든 힘이 가해지는 두발을 보호하는것은 생사를 판가리하는 사활적인 문제였다. 《신발이 인간의 머리를 쳐들리우게 하였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발밑에 대한 공포를 잊음으로 하여 다른 짐승들과 구별되게 머리를 쳐든 인간의 발전사를 보여주는 말이기도 한것이다.

계급사회가 출현함에 따라 신발은 계층을 가르는 표시로도 되기 시작했다. 고대로마군대에서는 장교들의 관등급을 신발뒤축의 높이에 따라 구분하였는데 신발뒤축이 높을수록 지위가 낮았다. 노예들은 절대로 신발을 신을수 없었다. 유럽의 력사를 보면 강대한 제후들은 종종 자기의 사절들을 파견하여 약한 제후들에게 자기의 낡은 신발을 《선물》하군 하였다. 약한 제후들은 이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신고다녀야 강대한 제후들은 투항을 인정하였다.

신발은 인류문화의 발전시기에 따라 그 모양새가 각이하게 변하기도 했다. 중세유럽을 휩쓴 고지크건축형식은 각양각색의 뾰족탑들과 교회당들을 낳았는데 이것으로 하여 앞끝이 뾰족한 신발이 급속히 류행되였다. 신발의 앞코가 긴가 짧은가에 따라 사람들의 귀천이 구분되였다. 일반백성들은 앞코가 15센치까지 허용되였는데 도시의 서민층은 30센치, 귀족들은 60센치 지어는 그 이상까지 길게 만들어 신고다녔다. 앞코가 뾰족하고 긴 신발은 《위풍》있게 보였지만 걷기에는 매우 불편하였다. 결국 인간의 발전력사는 신발의 발전력사라고도 할만큼 신발은 인간생활과 뗄수 없이 련결되여있다. 사회의 문명과 발전정도는 다름아닌 신발과 신발생산에서 나타난다.

류성신발공장은 바로 이 문명과 발전을 위한 힘겹고도 보람찬 돌격전에 들어선것이였다.

퇴근시간이 지났지만 한경철은 그냥 공장구내를 서성거렸다.

김윤화지배인이 고무바닥운동화생산공정을 수지운동신생산공정으로 바꾸자고 호소한 때로부터 여러날이 흘렀다. 공장은 열띤 흥분을 안고 뒤설레이고있었다. 단 두명이 마주서기만 해도 사람들은 온통 그 이야기뿐이였다. 공장에는 새로운 낱말처럼 《지배인의 손전화번호는 191… 이라네.》라는 말이 떠돌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낮에도 밤에도 지배인을 찾아간다고 했다.

이즈음 한경철의 생각은 몹시도 복잡했다. 그는 불시에 공장에 온 목적과 의의를 잃어버렸던것이였다. 어떻게 하나 증부가마를 개조하여 학위론문을 완성하고 편지를 보낸 처녀도 기어이 찾고싶었던 그였다. 공장에 와서 보니 편지를 보낸 처녀가 이 공장에 있다는 확신이 더더욱 굳어졌다. 편지의 주인공은 공장의 증부가마에 대하여 너무도 잘 알고있었고 방도도 분명 공장의 증부가마실태에 기초하여 제기한것이였다. 그럴수록 처녀가 고마와 그 처녀를 기어이 찾고싶어졌다. 그래서 이모저모로 왼심을 썼다. 그것때문에 본의아닌 실수를 하기도 했다.

어느날 공무동력과에 들어갔다가 설계원처녀가 설계를 하는것을 보고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여겨보았다. 처녀의 설계솜씨나 글씨가 어딘가 편지의것과 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경철은 긴장되여 즘자리면서 처녀에게 이것저것 말을 시켜보았다. 처녀는 눈이 동그래지고 얼굴이 빨개진채 대답을 안하고 서있었다.

한경철은 의아하면서도 부끄러운 심정으로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런데 그것이 처녀에게 색다른 느낌을 준것 같았다. 그 처녀를 책임지고 일하는 설비부원 최현민이 그를 찾아왔다. 다소 재미있다는듯 한 얼굴을 하고 한경철의 나이며 대학생활이며를 묻더니 웃으며 말했다.

《이봐, 경철동무, 아무 미끼나 톡톡 건드려보는 물고기는 인차 낚시에 걸리는 법이라는 말이 있지? 처녀를 대상하려면 먼저 처녀에 대하여 잘 알아야지. 그렇지 않다간 괜히 망신해! 동무가 오늘 말을 건 그 처년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약혼식을 할 처녀야. 그 처녀가 동무에게 이걸 꼭 말해달라고 해서 내가 왔어.》

한경철은 삽시에 얼굴이 빨개졌다.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숨이 다 가쁜것 같았다. 그는 끙끙 말을 갑자르다가 아무 말도 못하고 도망치듯 최현민의 앞을 물러나고 말았었다. 최현민의 웃음소리가 등뒤에서 울려왔다.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는 함부로 처녀들에게 말을 시켜볼수도 없었다. 하지만 처녀를 찾는것을 포기하고싶지 않았다. 그런데 김윤화지배인은 이제와서 그 모든것을 아무런 의의도 없는 불필요하고도 무의미한것으로 만들어버리고만것이였다.

한경철은 학위론문에 대한 미련보다도 공장의 어디선가 자기를 지켜보고있을 처녀앞에 무맥하고도 구슬픈 존재로 비쳐지는것이 참을수 없이 부끄러웠고 괴로왔다. 한경철은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정말 우리 공장의 힘으로 그걸 해낼수 있을가요?》

어머니는 말없이 앉아있었다. 이윽고 천천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이게 다 내가 제구실을 못한 탓이다. 어떻게 하든 생고무를 원만히 대야겠는데… 경철아, 며칠후에 내가 국경도시로 떠나니 지배인에게 조금만 기다리라고 해라.》

한경철은 어머니의 그 말이 김윤화지배인의 결심에 대한 어머니의 불안이고 거부감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도 공장자체의 힘으로 수지운동신생산공정을 완성한다는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의 얼굴을 지켜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경철아, 넌 지금 그 공장 로동자라는걸 명심해라. 상급의 결심과 지시를 존중해버릇해야 한다. 지배인이 바라는대로 너도 고무바닥운동화를 수지운동신으로 바꾸기 위한 방도를 생각해내서 제출해야 한다. 꼭 그래야 한다. 알겠니?》

《알겠어요, 어머니!》

한경철은 공장의 수지운동신생산공정의 완성이 아직은 래일의 일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김윤화지배인을 도와 수지운동신설비보장의 방도를 찾으면서 자기의 학위론문도 계속 완성하리라 결심했다. 래일의 꿀 한사발을 위해서 오늘의 엿 한가락을 외면할수는 없는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현장에서 밤을 패우며 수지운동신을 연구하고 설비들을 파악하기 위해 애썼다. 그리하여 고무바닥운동화설비들을 개조하여 수지운동신설비들로 쓸수 있다는 결론을 찾아냈다. 특히 흐름선문제가 그랬다.

고무바닥운동화나 수지운동신이나 다같이 콘베아식흐름선을 쓴다. 그러나 수지운동신흐름선은 고무바닥운동화흐름선과는 달리 신발의 기술적지표를 맞추기 위한 여러 구간의 건조구간과 온도를 0도씨 아래로 떨구는 급랭구간 그리고 그 모든것을 자동조종하는 종합조종반과 신발을 완성하는 앞골기와 사방압착기 같은 현대적설비들이 붙어있는것이였다. 흐름선이 얼마나 길고 기술적으로 완비되였는가에 따라 수지운동신의 질문제가 결정된다. 흐름선은 수지운동신생산의 선결조건이면서도 막대한 자금이 드는 설비였다.

바로 이 흐름선을 고무바닥운동화흐름선을 개조하여 리용하자는 생각을 한경철은 해낸것이였다. 하지만 자기가 생각해낸 방도가 자기에게도 그리 미덥지 않은 한경철이였다. 그래서 매양 즘자리면서도 지배인을 찾아가지 못하는것이였다.

그는 지배인의 방이 있는 사무청사를 바라보며 움직이지 못한채 서있었다. 문득 자기앞으로 다가오는 직장장 조인섭을 보았다. 자기 직장에 관리국 국장의 아들이며 대학졸업생인 한경철이 왔다고 그는 얼마나 좋아하고 신기해하는지 몰랐다. 금방 직장에 들어온것치고는 말귀를 잘 알아듣고 아무 일에서나 선배들과 기능공들의 말을 귀담아듣는다고 칭찬을 했다. 한경철은 고개를 숙여 그에게 인사를 했다. 조인섭이 웃음을 지었다.

《왜 아직 퇴근을 안하고있나?》

《저…》

조인섭은 대답을 듣지 않고도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한 얼굴을 지어 보였다.

《난 경철동무를 보면 왜 그런지 대뜸 보물통과 빈통이야기가 생각난단 말이야. 경철이야말루 보물통이지, 소리없이 굴러내리는… 말끝마다 큰일을 한다고 흰소리를 치는 누구하구는 다르거던.》

조인섭은 흰소리를 치는 누군가를 찾는지 주변을 휘둘러보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은밀한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그런데 앞으로 발전해서 어딜 가더라두 그 보물통의 보물은 우리 직장에 다 쏟아놓고 가야 해.》

한경철은 자기를 향해 웃음을 지어보이고있는 조인섭의 얼굴을 다소 불안스럽게 바라보았다. 직장사람들은 그가 별로 살뜰하고 귀맛좋게 이야기할 땐 주의해야 한다고들 말하고있다. 절대로 성을 내거나 남을 모욕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그가 별로 살뜰하게 웃으면서 귀맛이 당기게 이야기할 땐 바싹 긴장해야 한다는것이였다.

강철민의 말에 의하면 그는 이 공장에 들어와서 전공이 되였는데 처음엔 그 직업이 마음에 들지 않고 부끄럽기까지 했다는것이였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에 밤교대를 마치고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조인섭이 그를 자기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가더니 별로 귀맛좋게 이야기를 늘어놓더라는것이였다.

《전공직업이 어때서? 일명 뻰찌공이라고 하기는 하지만 사실 뻰찌질을 배우면 못할게 없어. 공장일이나 가정일이나 뻰찌질 할 일이 여북 많은가? 특수한 재간이지! 온통 녀자들뿐인 우리 공장에선 바로 자네같은 뻰찌공이 진짜 로동계급이야. 전기작업반은 진짜 로동계급으로 꾸려졌거던. 자네 이제 어디 한번 어깨에 전기선을 척 걸치구 거리를 지나보게나. 처녀들이 어떻게 생각할것 같나? 야, 저 사람은 재간두 있구 성실한 사람이구나 하구 생각 안할것 같나. 자넨 작업복차림에 전기선을 어깨에 메구 거리를 지나가두 부끄럽지 않을 사람이란 말이야. 그러니 재간 배워 좋아, 슬슬 다니면서 전기선로를 볼 땐 위신이 있어 좋아! 좋은게 어디 한두가진가? 사실 우리 공장 처녀들두 준비직장 총각들이 있기는 하지만 련애를 거는걸 보면 꼭 전기반총각이더라니까. 오죽하면 전기작업반과 제화직장은 사둔간이라는 말까지 났겠나.》

그의 말을 듣고보니 세상에 전공직업만한것이 없어보였다. 그래서 전기선들을 살펴보며 고장을 퇴치해야 하는 선로작업을 아침도 못 먹고 죽을둥살둥 모르고 해냈다는것이였다. 실은 그날 전기반 사람들이 모두 다른 작업에 동원되고 인원은 몇명 안되는데 전기는 오지 않지 하니 월말생산이 바빴던 조인섭이 그를 시켜 전기를 빨리 오게 하자고 했던것이였다. 조인섭은 이런 사람이였다.

지금도 그는 살가운 표정으로 한경철을 지켜보며 무엇인가 내심의 말을 꺼내들고싶어 조바심을 치는듯 한 얼굴이였다. 한경철은 다소 긴장해졌다. 드디여 조인섭이 정색한 얼굴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자넨 지배인에게 무슨 방도를 제출했나?》

한경철은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못했다.

《제출하지 못한 모양이구만.》

《아직…》

조인섭은 한경철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다시금 물었다.

《그래, 어머니가 우리 공장 일을 두고 뭐라고 하던가?》

이것이 조인섭이 알고싶어하는 기본문제일것이다. 한경철은 대답이 없이 서있었다. 자기가 아무런 안도 제출하지 않은것이 이 공장에 대한 어머니의 태도로까지 오인될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어진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조인섭은 빙그레 웃었다.

《어머니가 무슨 견해가 있을게 아닌가?》

한경철은 잠시 생각하다가 조용히 말했다.

《어머니는 공장의 결심을 지지하고있습니다.》

조인섭은 확인하는듯 한 눈길로 한경철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알만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불일간 우리 공장이 완전히 수지운동신공장으로 될수 있다 그 소린가?》

한경철은 대답을 못한채 서있었다. 그때 등뒤에서 울리는 목소리가 그를 곤경에서 구원해주었다.

《밤은 아직 익지도 않았는데 밤청대에 손 델 걱정을 하고있군요, 제화직장장동지.》

뒤를 돌아보았다. 그들의 등뒤에 설비부원 최현민이 서있었다. 그를 보자마자 또 설계원처녀 생각이 나서 한경철의 얼굴은 절로 후끈해졌다. 최현민은 유쾌한 어조로 말했다.

《수지운동신은 말입니다, 공장의 전망입니다. 1년후가 될수도 있고 3년이 될수도 있고…》

밥도 아니고 죽도 아닌 그 말에 조인섭은 아연한듯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말했다.

《설비부원이야 눈이 보석같은 사람인데 좀 적실하게 말해보게나. 그래 이제 일이 어떻게 될것 같나? 사실 공장이 온통으루 다 멋쟁이수지운동신설비를 갖춘다면 나같이 늙은 놈이야 자리를 내놔야지.》

어쩌면 그것이 조인섭직장장의 본심인지도 모른다. 최현민은 대답이 궁한지 딴전을 피우며 서있었다. 그들사이에 거북한 침묵이 흘렀다. 최현민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조인섭이 한숨을 내쉬였다.

《임잔 보나마나 지배인에게 좋은 안을 제출했겠지? 자네야 수재가 아닌가?》

최현민은 시틋한 표정을 지었다.

《뭐, 관리국이나 공장에 수재가 없어서 그동안 수지운동신설비를 다 못갖추었나요?》

조인섭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최현민이 조인섭에게 물었다.

《직장장동진 지배인동지에게 무슨 안을 제출했습니까?》

조인섭은 빙그레 웃었다.

《난 세전토끼처럼 집에서 공장으로, 공장에서 집으로만 왔다갔다하는 사람이 돼서 그런지 다른 길은 통 뵈질 않누만.》

모두가 소리없이 웃었다.

《실은 밤마다 집에서 베개를 그러안구 끙끙거려두 아무 방도두 떠오르지 않거던. 절벽앞에 선것처럼 눈앞만 아뜩한게… 나두 이젠 늙어서 아무짝에두 쓸모가 없는 페물이 되구만것 같애. 하두 답답해서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머리속이 훤하지 않겠나 해서 물어본거지.》

조인섭은 다시금 묻는듯이 한경철과 최현민을 바라보았다. 그들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조인섭은 얼굴을 찌프렸다.

《하지만 늙은 말이 길을 안다구 나두 이제 길을 찾게 될걸세. 그저 하두 답답해서 수재라구 생각되는 사람들을 찾아왔댔는데 이건 빈집 문을 두드리다가 돌아가는 심정이구만.》

그 소리에 한경철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조인섭은 간다는 소리도 없이 멀어져갔다. 그를 지켜보던 최현민이 경철에게로 돌아섰다.

《지금 공장이 온통 지배인이 제기한 문제로 뒤숭숭해. 그래, 경철동문 지배인에게 무슨 안을 제출했나?》

한경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뭐 생각해둔것두 없나?》

한경철은 다소 주저하며 자기의 생각을 최현민에게 이야기했다. 최현민은 알릴듯말듯 고개를 끄덕이며 새삼스러운 눈길로 한경철을 바라보았다.

《그러니 동문 고무바닥운동화를 뜯어서 수지운동신을 한다 이거구만.》

《설비부원동진 어떤 안을 제출했습니까?》

《글쎄…》

최현민은 왜서인지 한경철의 시선을 피하며 말끝을 얼버무렸다. 그러다가 고개를 쳐들고 한경철을 바라보았다.

《실은 나도 그 비슷한 견해인데 우려되는 점이 있어서 동무에게 좀 물어보겠어. 다르게 생각하지 말구 대답해보라구. 수지운동신흐름선을 고무바닥운동화걸 뜯어서 한다면 건조구간이나 급랭구간, 종합조종반같은건 공장에서 만든다치고 그 흐름선에 장비되여있어야 하는 앞골기와 사방압착기 같은 특수설비들은 어떻게 해결할수 있다고 보나?》

역시 최현민은 한경철의 안이 가지고있는 불합리한 점들을 제꺽 알아차린것이였다. 한경철은 다소 면구하여 중얼거렸다.

《그건 관리국에서…》

최현민은 웃었다.

《어머니한테 부탁한다 이거구만.》

한경철은 왜서인지 부끄럽고도 불쾌한 생각이 들었다. 최현민의 어조며 표정에서 자기를 철부지로 여기는듯 한 기운이 풍겨왔던것이였다. 그것을 느낀듯 최현민은 빙그레 웃었다.

《내 말을 고깝게 듣지 말라구. 동무가 현실을 너무 단순하게 보는것 같아서 그래. 우리 공장에 고장난 앞골기 한대가 있는데 관리국에서 공장에 보내준 이름난 회사의 설비야. 그런데 다루는게 서툴다나니 고장이 났지. 관리국에서까지 기술자들이 내려와서 살리려다 살리려다 못 살리구말았어, 뇌수가 나갔으니까. 그래서 관리국이 부랴부랴 다시 설비를 해결해준게 1년후야. 오죽하면 관리국이 고장난 설비 한대를 놓고두 고치겠다구 사람들을 보냈구 다시 해주는데도 그렇게 긴 시간이 걸렸겠나? 값이 상당한 설비니 그런거야. 이걸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거야.》

한경철은 말을 못한채 서있었다.

《그리구 또 한가지 고무바닥운동화흐름선을 뜯어서 수지운동신을 한다 하면 수지운동신설비들이 다 될 때까지 고무바닥운동화는 아예 할수 없다는 소린데 이게 산토끼 잡으려다가 집토끼 놓치는 격이 아닐가? 지금도 우리 공장이 계획미달문제때문에 관리국의 말밥에 오르고있다는걸 동문 알고있나?》

한경철은 정통을 찔린듯 한 심정으로 대답을 못하고 서있었다. 암담하고도 부끄러운 생각이 갈마들었다.

내가 혹시 귀 막고 방울도적질 하는것만큼이나 어리석고도 무책임한 생각을 하고있는것이 아닐가?

한경철이 대답을 못하고 서있자 최현민은 실망한듯 고개를 숙인채 잠자코 서있었다. 그러더니 돌아섰다. 시들하게 느껴지는 목소리가 그의 잔등에서 들려왔다.

《우리 한번 생각을 깊이 해보자구.》

한경철은 그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있었다. 아무래도 자기가 지배인에게 아무런 안도 제출하지 못할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밥도 아니고 죽도 아닌 절반짜리 해결책, 지어는 위태롭기까지 한 방안을 김윤화지배인에게 제기하지 말아야 한다. 자칫하면 그것이 김윤화지배인을 해치는 일로도 될수 있다.

한경철은 사무청사쪽을 바라고 섰던 걸음을 천천히 정문쪽으로 돌렸다. 그가 몇걸음 걸었을 때였다. 문득 뒤쪽에서 오토바이 발동소리가 들리더니 그의 앞에 오토바이를 탄 강철민이 불쑥 나타났다. 웃고있는 그의 얼굴에서 해넣은 이발이 유표하게 반짝거린다.

합숙 김치사건이 있은 다음 한동안 콤퓨터를 배우던것도 걷어치우고 그를 도끼눈으로 대하던 강철민이 이즈음에 와서는 다시 콤퓨터도 배우고 각근하게 따른다. 경철은 솔직하고 정열적이며 마음 깨끗한 이 청년이 마음에 들었다. 강철민이 물었다.

《집에 가려고 그래요?》

한경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저기에 무슨 안을 제출했나요?》

강철민은 멋을 부리는듯 한 턱짓으로 사무청사를 가리켜보였다. 이즈음은 그런 말과 동작이 공장사람들의 인사고 멋이라고 한다.

한경철은 대답없이 서있었다. 알지 못할 시름과 모멸감이 갈마든다. 강철민이 무슨 말인가 할듯말듯하며 한경철을 바라보았다. 한경철은 그를 여겨보았다.

《철민인 무슨 안을 제출했어?》

강철민은 웃어보였다.

《사실은 그것때문에 조언을 좀 받으려구요. 그래두 이거 공장에서 일하는 이름값이라두 하려구 뭘 쓰긴 썼는데 고양이를 그렸는지 강아지를 그렸는지 알수가 있더라구요. 그래서 좀 보고 의견을 말해줬으면 해서요.》

한경철은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강철민이 자기의 옆가방에서 종이한장을 꺼내들었다. 한경철은 읽었다. 그리고는 놀랐다. 강철민의 글은 짧았는데 그처럼 방도도 단순하리만치 명백했다. 그것은 지금 현재 공장이 고장이 나서 페기하고있는 앞골기를 비롯한 수지운동신설비들을 모두 고쳐서 쓴다는것이였다. 첫 순간에는 어이없는 생각이 들었으나 차츰 긴장해졌다.

공장에는 앞골기와 사방압착기를 비롯하여 고장이 나서 살리지 못한 여러대의 수지운동신설비들이 있다고 했다. 그 설비들은 낡고 못쓰게 된것도 있지만 핵심적인 분야의 기술을 몰라서 되살리지 못한 설비도 있다. 바로 그것을 강철민은 살려낼수 있으며 살려내야 한다고 주장한것이다. 그의 말대로 된다면 가장 난문제인 앞골기나 사방압착기문제에서 돌파구가 열리는것이다. 강철민이 제기한 안에는 수지운동신을 하겠다는 사람들을 유혹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한경철은 새삼스러운 눈길로 강철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단순하고 즉흥적인듯 한 이 청년에게서 문득 알지 못할 힘과 예지가 풍겨오는듯 느껴졌다. 이런 청년들까지 수지운동신을 하겠다고 머리를 쓰고 노력을 하는데 비해선 자기가 너무 손님처럼 처신한다는 부끄러움이 갈마들었다.

《철민이, 이걸 그대로 지배인동지에게 제출하라구.》

《웃지 않을가요?》

《이 문제가 어디 웃을 문제야?》

《좋아요! 그럼 내겠어요! 난 사실 만드는건 어떨지 몰라두 고쳐내는것만은 정말 자신이 있어요. 중학교때부터 그랬어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해본건데 웃겠으면 웃으라지요 뭐.》

그러면서도 종이장을 받아든 강철민은 미타한듯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리고나서는 도움을 청하듯이 경철을 향해 웃어보였다. 종이장을 도로 내밀었다.

《그래두 제출하기는… 좀 해줘요. 난 아무래두 자신이 없어서… 먼저번에 노래가사를 적은 종이장을 꺼내들었던 일을 생각하면… 지배인동지나 기사장동지가 그걸 잊었을게 뭐나요? 또 그때처럼 덤비다가 종이장이 바뀔지도 모르는 일이구요.》

한경철은 웃고말았다. 그 순간 한경철은 자기도 생각했던 안을 지배인에게 그대로 말하리라 마음먹었다. 강철민의 안을 보고나니 갈래없이 흔들리던 마음이 한결 진정되는것 같았다.

《좋아! 그럼 내가 생각했던것을 이야기하면서 동무의것두 함께 제출하겠어.》

《그렇게 해줘요.》

강철민은 한시름 놓인다는듯 웃었다.

《그럼 부탁해요! 난 가겠어요.》

강철민은 윙 하는 발동소리를 토해내며 멀어져갔다.

《속도를 놓지 말아!》

한경철은 그의 등뒤에 대고 소리쳤다. 한동안 서있던 한경철은 발걸음을 돌려 사무청사로 향했다. 그가 사무청사 출입문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유리문 안쪽에서 누군가가 나오는것이 보였다. 한경철은 그가 먼저 나오게 하려고 멎어선채 기다렸다. 안쪽에서 누군가가 문을 열고 나왔다. 어떤 처녀였다. 두사람의 눈길이 서로 부딪쳤다. 그 순간 처녀는 흠칫 놀라더니 무심결에 그런것처럼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한경철은 당황하여 굳어졌다. 무엇인가 아리숭한 추억의 한귀퉁이를 들추고 미지의 처녀가 다가서는듯 한 느낌, 하지만 당장은 이 처녀가 누구이며 자기가 지금 어떤 인연과 명목으로 인사를 받는것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당황하여 얼굴을 붉힌채 인사를 받는것인지 물리는것인지 모를 엉거주춤한 자세로 처녀를 바라보았다. 처녀는 당황하여 굳어진 한경철을 보더니 자기도 역시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고 그의 곁을 스쳐지나 총총히 가버렸다. 한경철은 멍하니 선채 멀어져가는 처녀를 바라보았다.

내가 저 처녀를 어디서 봤던가?

한경철은 기억을 더듬어내려고 애썼다. 불시에 어떤 빛과도 같은것이 흘러들며 머리속이 훤해지는듯 한감. 2년전 경기장에서 오늘처럼 자기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던 처녀의 모습이 우렷이 떠오른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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