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회


제 1 장


5


어느덧 날이 저물었다. 저녁하늘에는 아직 빛이 여물지 못한 풋별들이 떴다. 김윤화는 온몸이 땅속으로 잦아드는것만 같았다. 자기가 몹시도 지쳤다는것을 깨달았다. 쉬고싶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남편 김승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느 한 기업소의 당비서(당시)로 일하는 남편은 김윤화와 마찬가지로 몹시도 바빴다. 그들은 서로가 꼭같이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그들은 꼭 만나고싶을 때에는 서로에게 전화를 걸었다. 딸 정혜는 그런 전화를 두고 《약속전화》라고 했다. 보고싶은 경우보다는 마음이 번거로와 위안을 받고싶거나 조언을 받고싶은 일이 생길 때마다 부부는 그런 전화를 걸군 했다. 그런 전화를 받으면 부부는 아무리 바빠도 집으로 오군 했다. 오늘도 남편은 단마디로 알았노라고 대답했다.

전화를 놓고나서 김윤화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였다. 오늘 자기가 남편에게 할 이야기가 많다는것을 깨달았다. 공장일이 잘되지 않는 이즈음에는 남편보다 자기가 《약속전화》가 더 많다는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으며 천천히 사무실을 나서 집으로 향했다.

집에는 고급중학교 졸업반에 올라간 딸 정혜가 먼저 와있었다. 그 애는 부엌에서 밥을 짓고있다가 나는듯이 달려와 어머니에게 매여달렸다. 전실에 딸애가 붙여놓은 여러가지 그림들이 눈에 띄였다. 김윤화는 그 그림들을 볼 때마다 매번 마음이 야릇해지군 한다. 딸애는 몇년전에 초급중학교를 졸업하며 미술대학(당시) 예비교육학부에 입학하려 했지만 입학하지 못하였다. 딸애가 입학시험을 치던 날도 김윤화는 너무나 바빠 가보지 못했다. 결국 딸애는 입학하지 못했다. 김윤화는 미안해졌고 또 한편으로는 노여워졌다. 그는 딸애가 자기 실력으로 입학하리라고 믿었던것이였다. 김윤화는 딸애에게 그동안 그림련습을 한것을 보자고 했다. 그런데 딸이 내놓는것은 온통 어떤 둥근 원통을 소묘한 한가지 그림뿐이였다. 김윤화는 아연해졌다.

《1년가까이 미술소조를 다녔는데 고작 이 원통 하나 그린게 다란 말이냐? 기가 막히는구나! 그러니 입학하지 못했지.》

순간 어머니의 얼굴을 낯선듯 바라보는 딸애의 눈에는 반짝거리는 눈물방울이 맺혔다. 딸애는 울먹울먹하며 소리쳤다.

《엄만 내 그림을 오늘 처음 봐주니까 그래요. 이 원통 하나를 난 반년동안이나 그렸어요. 여기에 얼마만 한 노력과 시간이 들어갔는지 엄만 몰라! 다른 엄마들은 소조실까지 와서 그림 그리는걸 봐주는데… 엄만 나빠!》

김윤화는 그만 당황해져버렸다. 자기가 일에 파묻혀 딸애에게 너무도 무관심했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 딸애는 자기의 그림들을 전실이나 방안에 붙여놓군 했다. 자기에게 관심을 돌려줄것을 바라는 딸애의 애모쁜 호소인것이다. 그 호소앞에 김윤화는 매번 미안해지고 당황해지는 심정이였다. 오늘도 그는 잘 그렸는지 못 그렸는지 자기로서는 잘 알수가 없는 딸애의 그림들을 다소 당황해서 살펴보았다. 딸은 어머니가 몹시 지쳤다는것을 인차 알아차린듯 했다. 딸애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어머니, 어디 아프나요?》

김윤화는 힘없이 웃어보였다.

《어머닌 좀 힘들구나.》

딸애는 눈이 둥그래서 어머니의 이마를 짚어보더니 방으로 떠밀었다.

《어서 들어가 좀 쉬세요. 참, 〈약속전화〉를 했나요?》

딸애의 앞이지만 면구한 생각이 들어 김윤화는 머리를 가로저어보였다.

《내가 전화하겠어요. 어머니가 앓는다고 하겠어요.》

김윤화는 그저 웃어보이고말았다. 딸은 어머니를 방으로 떠밀었다.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여며주고는 방을 나갔다. 그리고도 걱정스러운지 방문을 다시 열고 조심스럽게 들여다본다. 그러더니 전실에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거는것 같았다. 김윤화는 침대에 누운채 소리없이 웃었다. 온몸이 어느덧 아늑하고 따스한 기운에 칭칭 감겨드는것 같았다. 김윤화는 자기가 벌써 반쯤 잠에 취한듯 한 느낌을 받아안았다.

아, 가정이란 얼마나 좋은것인가?

문득 어제날의 화폭이 눈앞을 흘러간다. 밥잦는 냄새가 집안팎을 구수히 흘러가는 저녁녘, 남편은 자기 책상을 뒤적이며 소리친다.

《여보, 내 영어사전을 못 봤소? 이게 어디 들어가박혔을가?》

하지만 부엌에서 저녁준비에 바쁜 김윤화는 대답할 사이조차 없었다. 조급해난 남편은 사정조로 웨친다.

《제발 내 사전을 좀 찾아주오.》

《야, 밥이 타요, 밥이! 당신은 참! 그저 잊어먹구는 날보구만…》

옹알거리는 목소리다. 하지만 그 소리마저 마치 노래가락처럼 곱고도 맑다. 그 순간에 아이가 운다. 오래동안 아이가 없던 그들에게 늦게야 태여난 딸애이다. 순간 남편도 안해도 침대로 달려간다. 딸애는 손에 닿아있던 놀이감이 떨어졌다고 우는것이였다. 그 신비한 소리를 내는 놀이감을 다시 손에 쥐여주자 딸애는 울음을 그친다. 남편과 안해는 나란히 서서 딸애를 들여다본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듯 남편이 《여보,내 사전을 좀 찾아주오!》하고 안해를 돌아본다. 김윤화도 역시 그제야 생각난듯 《어마나, 밥이 타요!》하고는 부엌으로 달려나간다.

몽롱한 기운에 사로잡혀 돌이켜보는 그 생활이 마치도 좋은 꿈인듯이 느껴진다. 그렇게 아름답고 즐거운 꿈을 꾸는듯 한감을 느끼며 김윤화는 어느 순간에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아버지!》하고 반기는 딸의 목소리에 김윤화는 잠에서 깨여났다. 남편이 들어왔다는것을 알았다. 침대에서 일어나앉았다. 그러나 남편은 인차 방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전실에 서서 딸애와 이야기를 나누는듯 했다. 딸애가 과장기가 어린 목소리로 어머니의 상태를 전해주는것 같았다.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 어머니가 공장일때문에 지친것 같구나. 의학술어로 말한다면 스트레스지. 하지만 그걸 해소하는 비방을 아버지는 알고있단다. 자, 내 가방에 뭐가 있나 좀 보자. 닭이다!》

갑자기 부엌이 닭울음소리로 소란해졌다.

《어머니한테 닭고기보신탕을 해주자!》

《야, 좋다! 아버지가 제일이야!》

딸이 소리치고 닭이 큰일이라는듯 야단법석을 한다. 김윤화는 방안에서 그 모든것을 들으며 저도 모르게 웃고말았다. 그다음 전실에서 남편과 딸이 걱정스럽게 수군거리는 소리.

《그런데 잡기는 누가 잡나요? 난 잡는것만은 보지두, 돕지두 못하겠어요.》

《정혜야, 아버지두 역시 아직까지 무얼 죽여본 경험이 없구나. 어쩐다?》

《옆집 아버지에게 가져가서 잡아달라고 할가요?》

남편은 난처한듯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가 다시금 수군거린다.

《정혜야, 너 닭의 유언이라는 말을 들어봤니?》

《닭의 유언이요?》

《그래!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닭을 잡을 때에는 꼭 살아있는 닭들이 보는데서 잡아야 한다누나. 그래야 알낳이률이 부쩍 올라간다나.》

《그건 왜요? 잡혀죽느라고 고아대는 자기 동무를 보면 놀라서 알낳이률이 더 떨어지지 않고요?》

《알 잘 낳는 닭은 절대로 잡지 않는 법이란다. 닭은 마음이 고와서 자기가 알을 못 낳으니 죽는줄을 다 알구 꼬꼬댁거리면서 유언을 한다누나. 여보게들, 알을 많이 낳아서 나처럼 되지 말라구. 알을 많이 낳으면서 오래오래 살라구.》

남편은 제법 슬픔에 잠긴 목소리를 흉내낸다.

《그래서 그 닭의 유언을 듣구 다른 닭들은 알을 더 잘 낳는다는거야.》

《정말일가요?》

《글쎄 이 닭한테 물어보자꾸나.》

또다시 부엌이 닭울음소리로 소란해지고 남편과 딸은 소리내여 웃었다.

《유언을 두번 하는 법은 없다만 이놈이 이 부엌에서 어머니를 위해서 유언을 한번 더 하도록 하자꾸나. 쓰러지면 다시 못 일어나구 못일어나면 이 닭처럼 되는 수밖에 없다구.》

《좋아요! 그럼 어머니를 위해서 이 닭이 다시한번 유언을 하게 하자요. 아버지, 우리 이 닭을 잡자요! 내가 날개죽지와 발을 꽉 잡을테니 목은 아버지가 따요.》

딸애의 목소리는 결사전에라도 나가는것처럼 결연하고 비장하기까지 하다. 남편은 소리내여 웃었다.

《하하… 우리 정혜가 제법이구나.》

남편과 딸은 서툰 솜씨때문에 온 부엌을 법석하게 만들며 닭을 잡는듯 했다. 끝내 김윤화는 견디지 못하고 일어서서 부엌으로 나가고말았다. 딸애가 환성을 질렀다.

《야, 어머니가 닭의 유언을 듣구 일어섰구나!》

모두가 소리내여 웃었다. 결국 세식구가 부엌에 나와 서서 함께 음식을 만들며 웃고 떠들었다. 저녁식사는 즐겁게 끝났다. 어느덧 밤도 이슥해 부부는 단둘이 마주앉았다. 남편 김승진이 안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여보, 힘든 모양이구만?》

《힘들어요!》

김윤화는 한숨처럼 속삭였다. 림봉숙이 공장을 찾아왔던 이야기와 기사장이야기 그리고 기사장이 염화비닐탄성체문제를 물어와서 옛날로 다시 돌아가는감이 들긴 했지만 별수없이 보통염화비닐로 후퇴하기로 한 일을 이야기했다.

김승진은 말없이 앉아있었다. 새삼스러운 눈길로 안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어깨를 잡은 손에 지그시 힘을 주었다.

《여보, 힘을 내오! 당신이야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 일을 끝까지 해내는 녀인이 아니요.》

《아니, 난 녀자예요. 약해요!》

《그래도 내가 늘 바라보면서 힘을 얻는 녀성은 오직 당신뿐이요.》

《거짓말이예요! 당신 나 듣기 좋게 말하느라고 그러지요?》

《정말이요!》

빙그레 웃는 그 얼굴에서 온몸을 어루쓰는듯 한 기운이 풍겨온다. 저도 모르게 남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부부는 그렇게 한몸이 된채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이윽고 김윤화가 조용히 말했다.

《정혜 아버지, 난 봉숙이에게 경철이를 우리 공장에 보내달라고 했어요. 봉숙이도 그러겠다고 했어요.》

그 순간 김윤화는 기대였던 자기의 몸이 넘어질듯이 휘친하는것을 느꼈다. 남편이 놀라 몸을 빼며 김윤화를 바라보았던것이였다.

놀라움과 의혹이 비낀 남편의 눈은 별안간 낯설어보였다. 절박하고도 절절해진 그 눈빛앞에 김윤화도 당황해졌다. 남편은 안해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채 겁이라도 내듯 더듬거리며 물었다.

《정말 그랬다는거요?》

김윤화는 남편에게 림봉숙에게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해주었다. 남편은 고개를 수굿한채 말없이 앉아있었다. 방금전까지 남편의 온몸에 차넘치던 사려깊고 여유작작하던 기운은 사라져버렸다. 김윤화의 눈앞에는 마음속 고뇌가 비쳐진 늙고 낯설어진 모습이 앉아있었다. 남편의 조용한 목소리가 먼데서 울려오는것처럼 들려왔다.

《괜한 일을 한게 아니요? 봉숙동무 스스로가 맡긴게 아니고 당신이 제기했다는게… 봉숙동무가 어떻게 생각하고있을지 걱정되는구만.》

김윤화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일어서 창가로 다가갔다. 창가림을 제끼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면서도 창밖을 물끄러미 내다보았다. 이윽고 저도 모르게 창유리에 손가락으로 《림봉숙》하고 써보았다. 그러자 이제는 아득하게 멀어져간 인생의 첫 기슭에서 그 이름을 써넣던 하얀 종이장과 두눈이 새별같던 한 처녀애가 우렷이 떠오르는것이였다.

학교적으로 한명만 추천받을수 있는 김일성종합대학 시험응시자격을 놓고 전과목 최우등생인 두명의 녀학생이 동시에 지망해나섰다. 김윤화와 림봉숙이였다. 림봉숙의 큰아버지는 구역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고있었다. 학교 전기간 1, 2등을 다투어온 그들은 다같이 자기들의 지망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어느날 어머니가 김윤화를 불러 앉혔다. 일생을 도시건설미장공으로 일하고있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인 어머니였다.

《윤화야, 넌 그 애가 왜 김일성종합대학에 가려고 하는지 알고있니?》

《몰라요. 그 애는 아마 자기 큰아버지가 인민위원장이니까 날 이길수 있다고 생각할거예요. 하지만 난 그 애한테 절대로 지지 않겠어요.》

어머니는 서늘한 눈매로 딸을 바라보았다.

《넌 마음이 너무 좁구나, 좁아! 좁은 마음으로는 큰 일을 못한다. 윤화야, 잘 들어둬라. 그 애의 아버지는 영예군인이다. 김일성종합대학을 다니다가 〈푸에불로〉호사건때 인민군대에 탄원했다. 분계선으로 기여드는 원쑤놈들과 싸우다가 그만 부상을 입구 영예군인이 되였어. 딸이 자기가 끝까지 다니지 못한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해서 공부하는건 그 애 아버지의 소원이다.》

김윤화는 흠칫해서 굳어지고말았다.

《윤화야, 넌 중학교를 졸업했는데 아직 제일 큰걸 못 배웠구나. 네가 봉숙이한테 양보를 해라.》

김윤화는 고개를 돌리고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애와 그 애 아버지의 심정이 리해되기는 했지만 희망을 꺾고 쉽게 양보하고싶지는 않았다. 고집스럽게 대답을 하지 않는 딸애를 바라보던 어머니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였다. 그런데 양보는 뜻밖에도 림봉숙이 했다. 큰아버지가 그 애를 설복했다는것이였다.

《네가 양보해다오. 나두 너나 너희 아버지를 생각하면 너를 보내고싶다. 하지만 그러면 사람들은 내가 구역인민위원회 위원장이기때문에 자기 조카를 먼저 내세웠다고 할거다. 인민들의 신뢰를 잃은 다음에 내가 무엇을 더 잃을게 있겠니? 날 리해해다오!》

결국은 큰아버지가 인민위원장이기때문에 림봉숙이 양보를 한것이였다. 그 애는 김일성종합대학이 아니라 학교의 많은 학생들이 탄원한 돌격대로 나가겠다고 제기했다. 정작 림봉숙이 그렇게 물러서버리자 김윤화는 알지 못할 미안함과 모멸감에 시달렸다. 자기가 림봉숙과 그의 아버지의 소원을 헛된것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생각을 도무지 버릴수가 없었다. 그러는 윤화를 어머니는 다시금 불러앉혔다. 오래도록 말이 없다가 조용히 말했다.

《윤화야, 봉숙이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이 어머니가 평범한 로동자라고 너에게 양보를 해주었다. 얼마나 큰 사람들이냐? 살아보니 마음의 힘이 큰 사람이 훌륭한 선택을 하구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이 사람들앞에 돋보이게 살더구나. 윤화야, 난 네가 그런 큰 힘을 가진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어머니는 딸애를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한장의 하얀 종이장을 꺼내놓았다. 잠시 생각하다가 거기에 김윤화의 이름과 림봉숙의 이름을 나란히 썼다.

《이걸 보면서 잘 생각해봐라. 누가 가는것이 옳겠는지, 누구를 선택할것인지 네스스로 정해보아라.》

김윤화는 그 종이장을 들여다보다가 그만 저도 모르게 자기 이름과 림봉숙의 이름을 다시 써보았다. 이어 그 이름들을 자꾸 써보며 안타깝고도 괴로운 생각에 모대겼다. 종이장우에는 크고 작고 진하고 가느다란 두 이름이 자꾸만 새겨졌다.

어머니가 해주던 말이 귀전에 그냥 울려오는것만 같았다. 자기를 지켜보고있는 어머니와 림봉숙 그리고 그의 아버지와 큰아버지의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 얼른거렸다. 그러자 자기의 이름을 쓰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서슴어졌다. 종이장우에 차츰 림봉숙의 이름만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마감에 림봉숙의 이름은 마치 붓으로 써놓은것처럼 굵고 진해졌다. 김윤화는 오래도록 그 이름을 들여다보았다. 저도 모를 충동으로 입속으로 중얼거려보았다.

(너를 선택한다!)

그러자 불쑥 애달프면서도 가슴 후련한 성숙감이 갈마들었다. 한순간 자기가 커다랗게 자라오르는듯 했다. 김윤화는 어리둥절하고도 놀라운 마음으로 다시금 되뇌였다.

(너를 선택한다!)

《용타, 윤화야!》

김윤화는 림봉숙이 선택했던 돌격대로 나가기로 했다. 결국 그는 림봉숙과 인생을 바꾸어가진셈이였다. 하지만 대학입학시험장과 돌격대로 떠나며 그들은 알지 못할 미안함과 자격지심때문에 눈을 내려깐채 짤막한 인사말만을 나누고 헤여졌다. 그후 대학에 입학한 림봉숙은 다른 구역으로 이사를 갔고 김윤화는 돌격대와 함께 멀리 북변으로 떠나게 되였다. 그후 그들은 오래도록 다시 만나지 못했다. 김윤화는 림봉숙이 대학을 졸업했고 어느 중앙기관에 배치를 받았으며 시집을 갔다는 정도의 소식만을 귀결에 듣군 했다. 그러한 림봉숙을 김윤화는 한윤걸이 희생된 자리에서 그의 안해로 다시 만났다. 그 시각으로부터 그는 림봉숙의 운명을 다시금 자기의것으로 받아들였던것이였다.

김윤화는 또다시 버릇처럼 창유리에 림봉숙의 이름을 새겨썼다. 그러자 자기자신에 대한 믿음이 갈마들었다. 김윤화는 아직도 불안하고도 시름겨운 생각에 잠겨있는듯 한 남편을 바라보았다. 두사람의 눈길이 서로 부딪쳤다. 김윤화는 남편의 눈길앞에 웃어보였다.

《정혜 아버지, 마음을 놔요. 난 정말 진심이예요. 난 경철이를 한윤걸동지의 아들로 훌륭하게 키울거예요.》

남편은 윤화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이 괴롭지 않겠소?》

김윤화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 문득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두사람은 다같이 흠칫 놀랐다. 김윤화는 자기를 다잡자고 모지름 쓰며 천천히 전화를 들었다.

《전화받습니다.》

《지배인동무, 밤늦게 전화를 걸어 미안합니다!》

그것은 공장당비서 정명남이 걸어오는 전화였다. 수화기에서 정명남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지배인동무, 소식을 들었습니까?》

《무슨 소식 말입니까?》

《이번에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직접적인 발기루 전국경공업대회가 성대하게 열리게 됩니다. 우리 공장에서는 지배인동무가 참가하게 되였습니다.》

김윤화는 한순간 자기 귀를 의심하며 굳어져버렸다. 원쑤들의 핵잠수함이 우리 나라 바다에 기여들고 하늘에서는 원쑤들의 전략핵폭격기들이 핵폭탄투하연습을 하는 이 엄혹한 시기에, 그리하여 온 나라 천만군민이 최후결전의 명령을 기다리는 이 시각에 경공업대회라니?

《지배인동무, 축하합니다!》

《비서동무!》

목이 메여오는감을 느끼며 김윤화는 말을 더듬었다.

《우리 원수님께서 얼마나… 얼마나 인민생활에 마음을 쓰시였으면 이런 때에 경공업대회를…》

《지배인동무,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우리 인민들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만복을 마음껏 누리게 하시려는것이 우리 원수님의 결심입니다. 원수님의 그 결심은 그 무엇으로써도 막을수 없습니다. 지배인동무! 우린 벌써 이긴 싸움을 하고있습니다.》

《비서동무!》

가슴이 화끈 달아오르는듯 한 크낙한 감격속에 김윤화는 몸을 떨었다. 송수화기를 선뜻 내려놓지 못한채 그는 오래도록 굳어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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