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회


서 장


《어느날 하늘의 옥황상제가 신하를 불러 인간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것 세가지를 골라오라고 분부했다누나. 그래서 신하는 인간세상에 내려와 제일 아름다운것 세가지를 골랐는데 하나는 예쁜 꽃이였고 다른 하나는 웃음짓는 어린애의 얼굴이였고 다른 하나는 자식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얼굴이였다누나. 신하는 인간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이 세가지를 가지고 하늘로 올라갔지. 그런데 신하가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사이에 꽃은 시들어서 볼꼴이 없게 되고 어린애의 웃음도 겁을 먹고 이그러져서 아름다운 기운을 다 잃어버리고말았지. 그런데 땅에서나 하늘에서나 한결같이 변치 않고 아름다운것은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얼굴이였다누나. 옥황상제는 인간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것은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하면서 그것을 받아들였다는구나.》

이른아침 김윤화는 시내의 유축에 자리잡은 친정집마당가의 활짝 핀 정향꽃나무앞에 서서 언젠가 어머니가 들려준 이런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만발한 꽃을 보며 미구하여 태여날 아기와 어머니가 될 자기를 생각하다나니 자연히 그런 이야기가 떠오른것 같았다. 그는 해산을 앞둔 부만한 몸매였다.

멀지 않은 등성이너머 인민군초소에서 군인들이 부르는 씩씩한 군가소리가 들려왔다. 젊은 녀인은 활기찬 군가소리가 벌들의 붕붕거리는 날개짓소리와 어우러지는 정향꽃나무를 바라보며 그린듯이 서있었다.

불현듯 젊은 녀인의 체내에서 아기가, 사소하고도 예민한 움직임으로 어머니에게 자기의 존재를 알리는 그 아기가 세차게 발길질을 했다. 애정과 행복, 공포가 뒤섞인 짜릿한 전률이 온몸으로 달려지나갔다. 아직은 습관되지 않은 행복감과 당혹감에 얼굴을 붉히며 젊은 녀인은 저혼자 조용히 속살거렸다.

《너 이제야 깨여났니? 그런데 깨나자마자 발길질부터 해?》

문득 대문가에 이웃집녀인의 모습이 불쑥 나타났다.

《윤화야, 너 거기서 뭘하니?》

김윤화는 깜짝 놀라 얼굴을 붉혔다. 이웃집녀인은 재미있다는듯, 알만하다는듯 웃어보였다.

《아이와 말을 하댔니?》

《아이참!》

《그래, 그럴 땐 다 그렇단다. 이달이 해산달이라지? 래일모레 동동이로구나. 첫아이는 앞산의 소나무가 새노랗게 보여야 낳는단다.》

부엌에서 김윤화의 어머니가 내다보았다.

《무슨 웃음소리가 이리 높나 했더니 혜성이 어머니가 왔구만. 어떻게 이렇게 일찍 왔나?》

《예. 아침일찍 어디 좀 갔다와야겠는데 우리 늦잠꾸러기가 어디 일어나야지요.》

《오, 그래서.》

《열쇠를 걸구 가는데 좀 봐줘요. 좀체 혼자 두고가자면 맘이 놓이질 않아요. 어제는 글쎄 이웃집 오리를 우리 집 창고에 가두어놓지 않았겠나요. 뭐, 오리가 알을 낳는걸 관찰한다나요.》

그들은 여섯살잡이의 장난꾸러기를 그려보며 소리내여 웃었다.

《요즘은 축구선수가 된다구 온통 발길질에 뿔질이지요 뭐. 회칠한 바람벽에 고무공자리를 내지 않나 장독을 뒤엎어놓지 않나. 그녀석 뒤를 한겻만 쫓아다니면 오금이 다 쑤시구 머리가 핑핑 돌아요. 오늘은 일요일이니 아예 문을 걸어놓고 가지요 뭐.》

《알겠네. 어서 가보라구.》

이웃집녀인은 열쇠를 마당에 선 김윤화의 손에 쥐여주고는 돌아섰다. 김윤화는 열쇠를 쥔채 자기가 이웃집에 가보았다. 머지않아 어머니가 된다는 자각과 기쁨때문인지 그는 이즈음 어린아이들에게 못내 다심해지고 각근해졌다.

이웃집의 장난꾸러기는 정신없이 자고있었다. 김윤화는 마음을 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잠시후 김윤화는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혜성이의 쟁쟁한 부름소리에 그만 눈이 둥그래졌다.

《아저씨, 아저씨!》

방문을 열고 바라보니 어느새 깨여난 혜성이가 다람쥐마냥 창문에 붙어서서 길쪽에다 대고 냅다 소리를 지르고있었다. 그 애가 소리지르는쪽 길가에서 급하게 걸어가던 인민군군관이 혜성이에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김윤화는 그가 등성이너머에 자리잡은 인민군부대의 중대정치지도원 한윤걸이라는것을 알아보았다. 친정집에 와있는 동안 김윤화는 마을사람들과 친근하게 지내는 중대정치지도원 한윤걸을 알게 되였다. 한윤걸은 매일 아침 이 길을 지나 부대로 간다. 그런데 혜성이는 걸음이 바쁜듯 한 한윤걸을 그냥 찾는다.

한윤걸이 어쩔수 없다는듯 혜성이를 향해 발걸음을 돌린다. 김윤화는 저 애가 왜 저러나싶어 문을 열고 나갔다. 혜성이가 서있는 창문앞으로 다가서던 한윤걸이 김윤화를 알아보고 반색을 했다.

《아, 윤화동무군요!》

《안녕하십니까?》

《아저씨!》

창문가에서 혜성이가 불만인듯, 조급한듯 다시금 소리쳤다. 한윤걸이 어쩔수 없다는듯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혜성이에게 다가갔다.

《왜 그러니?》

《아저씨, 이거 좀 봐요.》

혜성이가 손에 쥐였던것을 한윤걸에게 내밀었다. 그것은 어른손바닥만 한 크기의 사기인형이였는데 체육모를 뒤로 제껴쓴 사내애가 옆구리에 축구공을 끼고 한발은 축구공우에 올려놓고 서있는것이였다. 호기있고 앙증스러운 기운이 풍겨오는 인형이였다. 한윤걸이 인형을 받아들었다. 그러다가 소리쳤다.

《아니, 이게 뭐냐? 너 이거 깨뜨렸구나!》

혜성이는 풀이 죽어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히 보니 정말 축구공을 안고있는 인형의 팔뒤쪽이 깨여져있었다. 볼썽없는 구멍이 뻥하니 뚫려져있었다. 혜성이가 주머니에서 깨여진 쪼각들을 꺼내더니 떨리는듯 한손으로 그것을 맞추었다. 묘하게 깨여진 그 쪼박들은 뚫린 구멍에 꼭 들어맞았다. 웃음을 거두고 아주 대단한 문제에 맞다들리기라도 한듯 그것을 들여다보던 한윤걸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안되겠구나! 내 새걸 하나 사주지.》

그러나 꼬맹이는 시무룩해서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럼 이 축구선수는 내내 이렇게 부상당한채로 있어야 하지 않나요?》

《아!》

한윤걸은 알만한듯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보매 꼬맹이에게는 인형이 사기로 만든 보통인형이 아니라 숨도 쉬고 말도 하며 뛰기도 하는 존재인 모양이다. 환상이 풍부한 꼬맹이인것이다. 한윤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하긴 축구선수가 부상을 당할수도 있지. 용감하게 몰고 들어가서 슛을 해야 하니까. 그런데 부상당한채로 그냥 놔두면 축구를 더는 못하겠지? 어쩐다?! 그럼 우리 부대 군의소에 가서 치료를 해볼가?》

《정말이나요?》

《그래!》

《고쳐주지요?》

꼬맹이는 눈을 빛내이며 다짐을 두었다.

《그래! 내 오늘 저녁에 고쳐다주지.》

혜성이는 환성을 올렸다. 온갖 시름을 다 잊은듯 한 그 기꺼운 고함소리에 김윤화와 한윤걸은 그만 소리내여 웃고말았다. 김윤화가 혜성이한테 눈을 흘겼다.

《정치지도원동지가 바쁘시겠는데 너 이게 뭐니? 이제 어머니한테 욕먹지 않나 봐라.》

혜성이는 당장에 시무룩해졌다. 겁을 내듯, 도움을 청하듯 한윤걸을 바라보았다. 한윤걸이 웃어보였다.

《어머니한테 말하지 않으면 되지. 그렇지?》

김윤화는 웃고말았다.

《정치지도원동진 그저 아이들 편역이군요.》

《허리를 굽히고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사실은 제일 높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김윤화는 새삼스럽게 한윤걸을 바라보았다.

《정치지도원동진 집에 아이들이 몇입니까?》

한윤걸은 부만한 몸매의 김윤화를 일별하며 쑥스러운듯 웃었다.

《난 아직 아버지후보인걸요.》

《아버지후보요?》

《이제 두달을 더 있어야 아버지가 될수 있으니 아버지후보지요.》

김윤화는 소리내여 웃었다.

《정치지도원동진 자기 자식이 태여나면 무척 고와하겠군요.》

한윤걸은 소리없이 웃었다.

《그렇겠지요. 하지만 난 앞으로도 제 아이, 남의 아이 가려서 고와할것 같지 못합니다. 난 내가 군복을 입었다는 긍지를 내가 저 아이들의 웃음과 꿈을 지켜주고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느끼군 하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자기자신이 긍지스럽듯이 아이들이 막 곱거던요.》

한윤걸은 자기를 바라보는 김윤화와 혜성이의 시선앞에 빙긋 웃어보였다.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혜성아, 저녁에 만나자.》

한윤걸은 씨엉씨엉 걸어갔다. 등성이너머로 사라져가는 한윤걸을 바래우고난 김윤화는 창문가의 꼬마에게로 돌아섰다. 한윤걸과는 다르게 자기 편역을 들어주지 않은 자기를 다소 경계심과 불만에 차서 바라보는 꼬마의 시선에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짓고말았다.

《요, 장난꾸러기! 얌전하게 있지 않으면 혼내주겠어. 열쇠를 열어주겠으니 어서 나와. 우리 집에 가자.》

《안 가겠어요!》

뜻밖에도 꼬마는 당돌하고도 완강하게 거절했다.

《안 가겠어?》

《그래요!》

《너 또 무슨 장난을 치구싶어서 그러니?》

《장난이 아니예요. 그림을 그려야 해요. 축구선수를 그려야 하거던요.》

《그래! 그거 참 좋은 그림이로구나. 그럼 그림을 다 그린 다음 나한테 보여주겠니? 오늘은 내가 네 유치원선생님이 된셈치자꾸나.》

《쳇, 유치원선생님이 뭐 지주놈처럼 배가 나왔나 뭐.》

김윤화는 그만 입을 가리고 소리내여 웃고말았다. 자기에 대한 완강한 거부감을 나타내고있는 꼬마를 집밖으로 끌어내기를 단념하고말았다. 그래서 열쇠를 열어주지 않은채 장난질을 치지 말고 그림을 잘 그리라고 이르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어머니와 한윤걸을 만났던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가 한윤걸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한윤걸은 결혼한지 여러해가 지났지만 지금껏 자식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안해가 평양산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고 임신을 하게 되였다는것이였다.

《원체 인상이 좋은 사람인데 이즈음은 노상 싱글벙글해서 다니지. 전사들 사정, 마을사람들 사정을 그 사람만큼 속속들이 헤아리는 사람이 어디 있겠니? 그런 사람한테 생긴 기쁜 일이니 모두가 남의 일 같지 않아서 좋아하지.》

김윤화는 한윤걸정치지도원의 안해는 어떤 녀자일가 하고 저혼자 생각해보았다. 이윽고 혜성이가 무엇을 하고있을가 하는 걱정이 들어 다시 가보았다. 꼬맹이는 종이장들을 방 한가득 널어놓고 엎드린채 그림을 그리고있었다. 김윤화는 마음놓고 집으로 돌아갔다. 어머니도 어디엔가 갔다오겠다면서 집을 나섰다. 김윤화는 제나름의 공상과 상념에 잠겨 혼자 앉아있었다. 저혼자의 생각에 소리없이 웃기도 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혜성이가 구겨진 종이장들을 펴서 그림을 그리겠다며 전기다리미질을 하고있을줄은 꿈에도 알수 없었다.

그 애는 다리미를 끄지 않은채 그대로 놓았고 그래서 거기서 연기가 나기 시작하자 겁이 나서 물을 가져다가 다리미에 끼얹었다. 다리미에서 불꽃이 튀였고 지붕우의 전기선에서도 불꽃이 튀였다. 알길없는 연기냄새를 느끼며 김윤화가 마당에 나왔을 때 혜성이네 집지붕에서는 벌써 뻘건 불길이 널름거리고있었다. 김윤화는 한순간 믿어지지 않아 두눈을 흡뜬채 굳어졌다. 온몸이 얼어드는듯 했다. 저도모르게 비명을 지르듯 웨쳤다.

《혜성아!》

김윤화는 어쩔바를 몰라 한자리를 뱅뱅 돌았다. 바로 그때 불길이 너울거리는 집안에서 목을 움켜쥐인듯 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혜성이의 울음소리였다. 그 소리는 김윤화의 가슴속을 화끈 단 손으로 세차게 쥐여박는듯 했다. 더 생각할 사이없이 김윤화는 불길이 솟구쳐오르는 집으로 달려갔다. 열쇠를 열려고 했다. 그러나 열쇠가 도무지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더더욱 자지러졌다. 엄마를 찾다가 선생님을 찾고 그다음은 윤화이모 하고 자기를 찾는다.

《혜성아, 조금만… 조금만… 내 이제…》

김윤화는 경황없이 중얼거리며 열쇠를 열려고 모지름을 썼다. 말을 듣지 않는 열쇠를 마구 잡아당기고 흔들었다.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듯 소리를 지르며 마구 당기고 비틀었다. 드디여 열쇠가 열렸다. 문을 열었다. 그 순간 김윤화는 밖으로 확 하고 뿜어져나오는 불길에 밀치운것처럼 비칠거리며 물러섰다. 문을 여는 서슬에 더더욱 세차진 불길이 온 집을 감싸는것을 공포에 질려 바라보았다.

안에서 울리던 아이의 울음소리가 뚝 끊어졌다. 무엇이라고 소리를 지르고싶었으나 연기를 마신탓인지 목이 확 막혀들어와 아무 소리도 낼수 없었다.

김윤화는 두눈을 흡뜨고 악몽처럼 무서워지는 그 광경만을 넋없이 바라보았다.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도움을 청하듯 주변을 휘둘러보았다. 그 순간 방안에서 다시금 울리는 혜성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손만 내뻗치면 그 애를 끌어내올듯싶은 다급하고도 무분별한 욕망이 가슴을 화끈 달게 했다.

김윤화는 몸부림치듯이 불길속으로 뛰여들었다. 그러나 단 두걸음도 못 가서 윤화는 자기가 이 불길앞에 너무도 무기력하고 암둔하다는것을 공포속에 절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숨길을 콱 틀어막는듯 한 짙은 연기와 온몸을 죄이는 열기에 어디가 어딘지도 가려보지 못하고 두팔을 마구 휘저으며 헛되이 맴돌이를 쳤다. 허둥거리다가 어떤 벽에 힘껏 부딪치고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벌써 자기의 머리우로 떨어져내리는 불덩이를 보며 다시금 비명을 질렀다. 밖으로 뛰여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허겁지겁 돌아서는 순간 뒤쪽에서 신음소리마냥 들려오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저도 모르게 몸을 떨며 타성처럼 다시 그쪽으로 돌아섰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면서 오로지 그 울음소리가 들려오는쪽만 바라고 몸부림치듯 걸어갔다. 드디여 방 한구석에 모포를 뒤집어쓰고 박혀든 희미한 형체를 보았다. 달려들듯 다가들어 모포를 벗겼다. 아이는 흰자위만 남은듯 한 눈으로 목청껏 울음을 터치며 그의 품으로 와락 안겨들었다.

《이모!-》

대답조차 할새가 없었다. 화들화들 떠는 아이를 가슴에 안고 돌아섰다. 그러나 그 순간 무섭게 타오르는 불길과 숨막히는 연기로 하여 정신이 핑 돌고 아무것도 볼수가 없었다. 무턱대고 문이 있다고 생각되는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길다랗게 보이는 불줄기가 그들을 향해 떨어져내렸다. 눈을 꽉 감으며 주저앉았다. 화끈한것이 머리어방을 스쳐지나가는것을 느꼈으며 그 순간 발밑에서 무엇이 튀여나가는듯 한 요란한 소리를 들었다. 그다음은 숨이 꺽 막혀왔다. 무서운 손길이 목을 꽉 움켜잡은듯 했다.

그 순간 김윤화는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은것만 같이 느껴졌다. 그것이 자기의 가슴팍에 안겨 울고있는 혜성이의 울음소리인지 아니면 자기 귀전에 울려오는 배안의 생명의 울음소리인지 알수가 없었다. 비몽사몽간의 그 울음소리가 이제 자기가 죽을것이라는 처절한 최후의식을 안겨주는것만 같았다.

안된다! 죽어서는 안된다! 여보, 도와줘요!

김윤화는 저도 모르게 남편을 향해 목이 터져라 구원을 울부짖었다. 그러나 목에서는 아무 소리도 새여나가지 않았다. 온통 벌건 화염밖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로 이때였다. 김윤화는 문득 한줄기의 바람같은것이 자기를 휩싸안는듯 한 기운을 느끼며 소스라쳐 눈을 떴다. 거밋하고 후끈한 형체가 무슨 소리인가를 목청껏 웨치며 김윤화를 떠일으켜세우고있었다. 온몸을 확 태우는 구원의 예감. 덮어놓고 그 형체에 매여달리는 순간 그는 그것이 다름아닌 정치지도원 한윤걸이라는것을 알아보았다. 눈물이 확 솟구칠것만 같았다. 그의 가슴팍에 아이를 안은채로 안겨들었다. 바로 그찰나 또다시 머리우에서 불이 쏟아져내렸다.

어깨쪽에 와닿는 무서운 타격과 숨길을 막는듯 한 뜨거운 기운. 김윤화는 또다시 쓰러졌다. 무엇이라고 웨치는 소리를 들었으나 이제 자기가 더는 움직일수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경황없이 그의 가슴속에 혜성이를 내밀었다. 문쪽으로 힘껏 떠밀었다.

《아이를, 아이를…》

그 순간 김윤화는 불길보다 더 황황 타고있는듯 한 한윤걸의 두눈을 보았다. 두려우리만치 번뜩거리는 두눈이 김윤화의 가까이에서 이글거렸다. 그 두눈은 김윤화를 이끌고 불길속을 빠져나가려고 헛되이 애를 쓰다가 그만에야 저도 불을 들쓰고 넘어지고말았다. 그가 무엇이라고 목청껏 소리쳤으나 지붕에서 터져나가는 기와장소리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그다음 그가 몸을 날리듯 아이를 안고 사라지는것을 보았다. 안도감과 불시에 몸을 싸안는 서러움을 느끼며 김윤화는 불길이 덜한 구석쪽으로 몸을 옹송그렸다. 처절한 최후의 감각속에 어머니와 남편 그리고 자기 배속의 생명에게 용서를 빌고 리별을 고했다. 모든것을 체념하듯 눈을 감았다.

다음순간 김윤화는 자기의 온몸이 허궁 뜨는것을 알았다. 화끈하면서도 거친 숨소리가 자기의 얼굴에 와닿는것을 똑똑히 느꼈다. 눈을 떴다. 그 순간 김윤화는 자기를 안고 불길속을 헤쳐나가고있는 무서우리만치 험해지고 람루해진 얼굴을 보았다. 한윤걸이였다. 아이를 구원하고 그는 또다시 자기를 위해 뛰여든것이였다. 온몸으로 불길을 떠밀고 나가는 억센 육체를 너무도 가까이에서 느꼈다. 안도감과 고마움속에 스며드는 한줄기 부끄러움마저 안고 어서어서 하고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바로 그 순간이였다. 김윤화는 불덩어리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크고 무시무시한 불줄기가 자기들의 머리우로 곧추 떨어져내리는것을 똑똑히 보았다. 불에 휩싸인 보짱이 통채로 떨어져내리는것이였다. 비명을 지르며 눈을 꽉 감아버렸다. 다음순간 자기를 힘껏 덮싸안는 후덥고 막중한 무엇인가를 느꼈다. 그것은 한윤걸의 온몸이였다. 한윤걸이 김윤화를 덮싸안고 엎드린것이였다. 한덩어리로 이어진듯 한 몸을 통해 빠르게 그리고 힘있게 뛰는 심장의 고동소리를 들은듯 했고 무서운 타격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그 처절한 모지름과 전률이 전해져오는듯 했다. 김윤화는 의식을 잃어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그가 의식을 차렸을 때 주변은 아무 일도 없은듯 고요했다. 유난히도 따뜻한 해빛이 그의 얼굴을 어루쓸고있었다. 그를 내려다보는 어머니며 사람들이며 그리고 의사의 모습이 부옇게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한 생의 느낌이였고 모습이였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기쁨보다 먼저 공포와 위구가 가슴을 휩쓸어갔다. 자기의 귀전에 울리던 한윤걸의 숨소리며 목소리가 똑똑히 상기되였다.

김윤화는 두려움에 몸을 떨며 속삭이듯이 물었다.

《정치지도원동진?…》

누구도 대답이 없었다. 귀안이 막혀든것이라고 생각될만큼 그렇게 조용하고 고요했다. 가슴을 아프게 깨무는 무서운 예감에 김윤화는 몸을 떨었다. 얼없이 자기를 에워싼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몸부림치듯 몸을 일으켰다. 연기만 피워올리고있는 집을 보았고 그다음은 한쪽켠에 쪼그리고앉아 울고있는 혜성이를 보았다. 불에 그슬리고 재티에 람투해진 모습으로 울고있는 모습이였으나 기쁨과 안도감에 가슴이 쩌릿해오는듯 했다. 한윤걸의 모습도 어디엔가 있을것 같았다. 주변을 휘둘러보았다. 다음순간 혜성이와 좀 떨어져 사람들이 누군가를 둘러싸고 울고있는것을 알아보았다. 섬찍한 예감이 온몸을 얼구는듯 했다. 만류하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다가 숨을 들이키며 멎어서고말았다.

누워있는 사람은 한윤걸이였다. 한윤걸은 마치 잠든것처럼 누워있었다. 참혹하리만치 상하고 람루해진 모습으로 마치 힘들어서 쉬고있는듯이 누워있었다. 사람들과 군인들이 그를 둘러싸고 억이 막혀 몸부림을 치고있었다.

《정치지도원동지! 눈을 뜨십시오! 눈을 뜨십시오!》

그 애통한 곡성이 모든것을 깨닫게 했다. 김윤화는 비명을 질렀다. 비칠비칠 다가가 정신없이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믿고싶지 않은 그 무서운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눈앞이 아찔해와 발을 꼬며 비칠거렸다. 한없는 공포에 잠겨 얼없이 중얼거렸다.

《정치지도원동지, 정치지도원동지!》

그 순간이였다. 문득 사람들의 절통한 울음소리가 멎어버렸다.

주변은 한순간 귀안이 웅 하고 우는듯 한 정적속에 잠겨버렸다. 김윤화는 놀라 얼굴을 들었다. 그 순간 흠칫 몸을 떨었다. 승용차에서 내려서는 어떤 녀인을 보았던것이였다. 그 녀인은 임신부였다. 김윤화는 숨을 삼킨채 굳어져버렸다. 그가 한윤걸의 안해라는것을 알아차렸다. 한순간 그 녀인이 몹시도 낯이 익다는것을 느꼈으나 창황중이라 어디서 만났었는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한없는 아픔과 절망, 련민과 죄의식으로 하여 주변은 순식간에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녀인은 너무나도 고요해진 주변을 겁이 난 시선으로 둘러보았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술을 떨면서 묻듯이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보고있었다. 한 군관이 다가가 목쉰 소리로 무엇이라고 말하는듯 했다. 녀인은 넋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믿을수 없는듯, 모든것을 거부하듯 고개를 가로저어보였다. 애절하고 황겁하게 사람들을 더듬는 그 녀인의 눈길이 김윤화의 얼굴도 스쳐지나갔다.

한순간 김윤화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 순간에야 바로 그 녀인이 왜 그렇게도 낯이 익은가를 깨달았던것이였다. 그는 김윤화가 중학시절부터 너무도 잘 알고있는 녀인이였다.

이 순간 김윤화는 어딘가 그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 숨어버리고싶었다. 한없는 아픔과 죄의식으로 목놓아울며 어디론가 도망쳐가고싶었다. 한윤걸을 둘러싼 군인들과 사람들은 너무도 절통하여 땅을 치며 울었다.

《정치지도원동지! 아주머니가 왔습니다. 한번만… 한번만 눈을 뜨십시오!》

《이렇게 가면 우린 어쩝니까? 이제 아들이 태여날거라구 그렇게두 기뻐하더니… 아주머니가 왔는데 왜 이러고있습니까? 정치지도원동지!-》

눈을 흡뜨고 굳어졌던 녀인이 정신없이 남편앞으로 달려왔다. 무엇인가 목갈린 소리를 내지르며 달려오다가 발을 헛짚는듯 하더니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땅바닥에 온몸을 세차게 부딪치며 손쓸새없이 쓰러져버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아, 가슴아픈 순간이여!

녀인은 병원으로 실려갔다. 망연하여 굳어진 사람들의 귀전에 혜성이의 목갈린 소리가 들려왔다.

《정치지도원아저씨 정말 죽었나요?》

혜성이의 부모들이 목놓아울었다. 김윤화의 어머니가 한윤걸의 온몸을 흔들며 몸부림을 쳤다.

《정치지도원! 눈을 뜨오! 세상에 이런 일도 있소?》

혜성이가 무릎걸음으로 한윤걸에게 다가갔다. 한윤걸의 얼굴을 정신없이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소리쳤다.

《아저씨 눈섭이 움직였어요! 아저씨가 살아나요!》

주위는 한순간 고요해졌다. 숨을 멈추어버린 사람들의 눈길이 한윤걸에게로 쏠렸다. 하지만 심장을 움켜쥐는듯 한 정적속에 바람결에 설레이는 백양나무의 그림자가 그 얼굴에 얼른거릴뿐이였다. 눈부신 정오의 해빛이 나무가지사이로 흘러들어 한윤걸의 얼굴을 환하게 감싸안고있었다. 다시금 울음소리가 터졌다. 혜성이가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듯 더 바투 다가앉으며 자기의 두손으로 험해진 한윤걸의 얼굴을 살며시 닦아주었다. 정성을 담아서, 놀랄가봐 저어하듯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나두… 죽을번 하다가 살아났는데…》

울음소리가 주변을 흘렀다. 애오라지 한가닥 기대를 안고 온몸으로 한윤걸을 지켜보던 혜성이도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아저씨, 죽지 말라요!》

그 애는 한윤걸의 온몸을 흔들었다. 모두를 휘둘러보며 구원을 청하듯 애절하게 부르짖었다.

《정치지도원아저씨… 살려달라요!》

모두의 가슴을 찢어발기는듯 한 애통한 울음소리가 울려갔다.

《아저씨이!-》

한윤걸의 품속에서 어느 순간에 깨끗이 고쳐놓은 사기인형이 나졌다. 한 군관이 눈물속에 그 인형을 내밀었을 때 혜성이는 받아들념을 못하고 비실비실 뒤로 물러서기까지 했다.

《널 위해서 정치지도원동지가 고친거다. 어서 받아라! 네가 받아야… 정치지도원동지두 좋아한다!》

사기인형을 든 군관의 콱 갈린 목소리였다. 혜성이는 구원을 청하듯 김윤화를 바라보았다. 김윤화는 목이 콱 메여 그저 고개만 끄덕여보였다. 혜성이가 사기인형을 받아들었다. 그 인형을 들여다보며 비죽비죽하다가 왕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축구선수두 살아나는데 아저씬 왜 죽었나요? 인민군대두 죽나요?》

《얘야!-》

김윤화는 혜성이를 끌어안고 소리내여 울었다. 바로 그 순간 김윤화는 아래배에 가해지는 무서운 동통에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지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날 두 녀인이 실려갔던 구역인민병원 산부인과의 한 의사는 두 녀인의 병력서중에 한 녀인의 병력서에만 갓난 아기의 몸무게와 성별을 적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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