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3 회


제 6 장


6


여느날보다 일찍 저녁식사를 끝낸 강명호네 집에서는 려장을 꾸리기에 분주하였다. 선희는 세면도구와 수건, 작업복과 내의, 담배와 성냥 등 할아버지의 객지생활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것들을 빠짐없이 날라왔다. 할아버지는 건망증이 심하여서 곁에서 돌보지 않으면 요긴한 생활용품들을 두고 갈수 있었다. 떠날 준비를 손녀에게 맡겨버린 강명호는 한가로이 담배를 피우다가 아무래도 출장기간에 보아야 할 책은 제손으로 골라야 하겠기에 움쭉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가에서 책 두권을 찾아놓은 그는 일어섰던김에 벽장우에서 큼직한 려행용가방을 내리웠다. 가방거죽에 뽀얗게 먼지가 앉았다. 최근에는 어데로 출장을 다닌 일이 없었던것이다.

《얘 선희야, 걸레를 좀 가져오너라.》

《이리 주세요. 제가 닦겠어요.》

선희가 하얗게 빤 걸레를 들고 올라와 할아버지의 손에서 가방을 앗아냈다. 가방은 여지없이 헐어빠진것이였다. 칠이 벗겨진 가죽은 군데군데 보풀이 일었는데 그나마 모서리들은 다스러지고 터진 곳은 책끈으로 볼품없이 꿰매놓았다. 그 가방만은 누구한테도 맡기지 않는 강명호자신의 솜씨였다.

《할아버지, 이 가방이야 초라해서 어떻게 들고가시겠어요?》

선희는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일없다. 내 나이에 무슨 치레를 보겠느냐.》

강명호는 얼굴에 느슨한 미소를 담고 타이르듯 말하였다.

《새 트렁크를 가지고 가세요.》

선희생각엔 어느 고망년의 낡은 가방때문에 할아버지의 체모가 여지없이 깎일것 같았다.

《손에 익어서 나한테는 그 가방이 들고다니기 편하다.》

강명호는 손녀앞에 더 조르지 말라는듯 손을 내흔들었다.

《가뜩이나 할아버지를 낡은 시대의 학자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행장까지 낡아빠진것으로 갖추면 더구나 그런 뒤소리를 들으실거예요.》

《누가 그따위 소릴 하더냐?》

《언젠가 송금석선생님이 롱담비슷하게 그런 말을 하더군요.》

《그 사람의 눈에야 내가 그렇게 보이겠지.》

《아무튼 낡은 소지품들을 좀 새것으로 갖추시라요.》

《허, 네가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나한테 뭐 그리 낡은 소지품이 많으냐?》

강명호는 손녀와 이런 싱갱이를 하는것이 싫지 않아서 시죽이 웃었다.

《자, 할아버지. 보세요.》

선희는 손가락을 꼽아가며 할아버지의 잡동사니들을 거들기 시작했다.

《가녁이 풀린 부들부채, 헐어빠진 안경갑, 칠이 벗어진 문갑, 망치로 두드려만든 알루미늄필통, 어느 왕년부터 쓰시던것들이 좀 많아요. 버려도 하나 아깝지 않을것들뿐이지요. 할아버지가 돌아오실 땐 그 모든것을 다 새것으로 사다놓겠어요.》

강명호는 자기가 갖추고 쓰는 모든것이 흠할데 없기를 바라는 손녀의 심정이 갸륵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집을 떠난 사이에 저 철딱서니없는것이 그 귀중한 애용품들을 다 버리면 어쩌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제발 새것을 사오느라고 하지 말아라. 너는 보기 흉하다고 나무라지만 그 오랜 소지품들은 나의 지나온 생활과 깊은 인연이 있는것이다. 알루미늄필통으로 말하더라도 전쟁시기 인민대표단으로 전선에 나갔을 때 병사들이 기념품으로 준거야. 나한테는 그 필통이 요즈음 상점들에서 파는 보기 좋은 새 필통보다 소중한거다.》

《그렇다면 그 필통은 그냥 두고 쓰세요. 그렇지만 해방전시절의 혈어빠진 려행용가방이야 뭣때문에 들고 다니신단 말이예요?》

《이 가방에도 낡았다고 훌 버릴수 없는 사연이 있단다.》

《그럼 그 가방도 누가 기념으로 준건가요?》

선희가 호기심이 생겨 할아버지의 곁에 다가앉으며 물었다.

《고구려의 옛 유적을 찾아서 중국 동북지방을 편답하던 시절에 독립군들이 나에게 준거란다.》

《어떻게 되여 그들이 할아버지에게 그 가방을 주게 되였나요?》

선희의 눈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왕년에 고구려의 유적을 탐사한 일이 있다는것은 알고있었으나 그 과정에 있었던 구체적인 사실들에 대해서는 들어본 일이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독서나 집필에만 전심하는 할아버지여서 감히 무슨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졸라보지 못했었다. 다행히도 오늘 저녁에는 여유시간이 있고 떼를 써볼 실마리도 잡았다.

《이 가방이 어떤거예요? 손녀야 알아야지요 뭐.》

선희는 응석을 섞어가며 무작정 졸라댔다. 강명호가 느슨한 미소를 그리며 마침내 이야기의 꼭지를 떼려고 하는 찰나에 조심스레 출입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얘, 누가 찾는구나. 어서 나가보아라.》

강명호는 빠질 구멍이 생겼다는듯 껄껄 웃었다. 선희는 하는수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전실을 지나서 출입문을 연 선희는 저도 모르게 환성을 올리였다. 복도에 김정일동지께서 서계시였던것이다.

《어서 들어오세요.》

선희는 그이를 반겨맞으며 집안으로 안내해드리였다.

《선생님 계시오?》

김정일동지께서 선희를 따라서며 조용히 물으시였다.

《계십니다.》

《선희동무한테서 집주소를 들었던 일이 있는데 딱히 기억이 나지 않아서 한참이나 찾았소.》

김정일동지께서는 웃으시며 말씀하시였다.

《언제부터 우리 집에 한번 놀러오라고 했는데 명심하지 않았으니까 그랬지요 뭐. 집을 찾느라고 고생을 할만도 해요. 오래전부터 우리 할머니가 정일동무의 모습이라도 한번 보고싶다고 했어요.》

선희의 기쁨에 넘치는 목소리를 듣고 부엌에서 설겆이를 하던 김씨가 황황히 나왔다.

《사모님 , 안녕하십니까. 》

김정일동지께서는 김씨에게 깊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시였다.

김씨는 황홀하도록 준수하신 그이의 용모에 놀랐는지 아니면 방금 손녀의 말을 귀결에 듣기는 했으나 딱히 누구라는것을 확인할수가 없어서 그러는지 어정쩡하게 인사를 받았다.

《할머니두 참… 할머니가 늘 보고싶다던 김정일동무예요.》

선희가 김씨에게 눈을 할기며 소개를 하였다. 김씨의 주름진 얼굴이 금시 밝아졌다.

《그랬댔군, 내 어쩐지!》

그는 일순 어쩔줄을 몰라하더니 그이의 손을 부둥켜잡았다.

《그 모습이 참 영준하구만. 우리 령감과 선희한테서 학생얘기를 들었다우. 오늘 우리 령감이 찾으러가는 구석기라는것이 우리 나라에 있을것이라고 한것도 실은 학생이였다더군. 그새 고마운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더군 그래. 무슨 말로 감사를 보내야 할지.》

《사모님, 그건 지나친 말씀입니다. 사실은 제가 오히려 진작 찾아와서 사모님께 용서를 빌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피줄이 얼기설기 드러난 김씨의 손을 두손으로 포개여잡고 어루만지시였다.

《용서라니? 나한테 무슨 용서받을 일이 있다구…》

《지난해 말 우리가 조선사시험을 친 날이 선생님생일이였더군요. 사모님께서 정성다해 차리신 생일상을 선생님께서 받지 않으셨다니 얼마나 섭섭하셨겠습니까. 제가 그날 선생님에게 외람되게 굴었습니다.》

《아이구, 난 또 … 내막을 몰랐던 그날 저녁에야 좀 섭섭하기야 했지요. 후에 우리 령감님이 그때 일을 돌이켜보면서 그날이야말로 력사학자로 이 세상에 새롭게 태여난 생일이였다고 했다우. 우리 령감이 그날 깨달은바가 컸던가봐요.》

《사모님, 올해 선생님생일에는 제가 꼭 찾아와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그날이 아니더라도 우리 집에 종종 와주오. 바쁘기 그지없다는 얘길 들었소만 내 마음이 그렇다우. 최정택선생과 진희어머니한테서도 얘길 들었소. 진희어머니가 하는 얘길 듣고 나도 울었다우. 그래서 언제면 나도 한번 학생을 볼수 있을가하고 기다려왔는데 그 소원이 오늘저녁에 풀릴줄이야…》

김씨는 무슨 말인가 자꾸 하고싶어 그이의 손을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그는 성미가 과묵한 편이였으나 이 저녁에는 흉중에 넘치는 말을 그냥 쏟고싶어하는 다사한 로파로 되여버렸다. 그이를 방안에 모시지 않고 전실에 세워두신채 이야기를 나누고있다는것도 망각해버렸다.

《할머니, 이젠 그만하세요.… 정일동무, 어서 방안으로 들어가자요.》

선희는 더는 잠자코 있을수 없어서 김정일동지의 손을 잡아끌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선희의 뒤를 따라 서재로 들어가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 서재에 들어서시니 강명호가 행장을 옆으로 밀어놓으며 일어섰다.

《아니, 정일학생이 어떻게 왔소? 기별도 없이 이 저녁에.》

《선생님을 바래워드리려고 왔습니다.》

《시간이 없을텐데 수고로이 걸음을 했구만. 여기 좀 앉으시오.》

강명호는 감심하여 말을 더듬었다. 자리에 앉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서재를 주의깊게 둘러보시였다. 두 벽을 꽉 메우며 천정에 닿는 서가들이 서있는데 해방후 우리 나라에서 출판된 책들은 물론 민족고전들과 양장을 한 외국문책들도 많았다. 처음 보시는 책들도 적지 않았다. 그 책들에는 한평생 쉼없이 지식의 탑을 쌓아온 로학자의 탐구의 력사가 깃들어있으리라는 생각이 드시였다.

정일동무, 우리 집에 왔던김에 할아버지가 고구려유적을 탐사하시던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겠어요?》

선희가 미소를 머금고 그이께 속삭이였다.

《원 저런, 철딱서니없다구야.》

강명호는 손녀를 흘겨보며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김정일동지께서 자리에 앉으시기 바쁘게 둘사이에 펴려던 고담을 다시 꺼내려고 서두르는 손녀가 한심스레 생각되였다.

《선생님, 어떤 이야긴지 저에게도 좀 들려주십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부쩍 호기심을 드러내시였다. 워낙 그이께서는 누구의 이야기도 다 즐겨들으시였다. 설사 다른 사람의 귀에는 시답지 않게 들리는 범상한 이야기일지라도 그이께서는 시간을 아끼지 않고 들으시였다. 그러시고는 이야기군도 미처 몰랐던 귀중한 점을 찾아내군 하시였다.

《할아버지, 어서 말씀하세요.》

좀처럼 입을 열상싶지 않은 할아버지를 안타까이 바라보며 선희가 보챘다.

《그런데 이제는 시간이 없지 않느냐. 역에까지 나가자면 한시간쯤 실히 걸릴게다.》

할아버지의 말에 선희는 책상우에 놓인 자명종을 쳐다보았다. 아닌게아니라 렬차시간이 박두해오고있었다. 선희는 저으기 상심했다. 그런데 김정일동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제가 역까지 선생님을 모셔가려고 승용차를 몰고왔습니다. 10분정도면 역에까지 나갈수 있습니다.》

《아니, 나때문에 차까지 몰고왔단 말인가? 그렇다면 하는수 없지. 내 고마운김에 이 가방에 깃든 이야길 해보겠소.》

강명호는 해묵은 가방을 김정일동지앞에 밀어놓으며 추억에 잠겨들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자세를 바로가지고 강명호를 바라보시였다. 어느결엔가 김씨가 들어와 그이의 곁에 앉았다.

…강명호는 로자도 없이 고구려의 유적을 찾아 대륙의 황막한 들판으로 탐사의 길을 걸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중국인집에서 필담으로 한끼 끼니를 빌다가 알아들을수 없는 쌍욕을 들으며 쫓겨나기도 했고 옛성터의 성돌에 새겨진 글발을 옮겨쓰다가 한지잠을 자기도 하였다. 단순한 학술람사의 길이 아니라 일제에게 빼앗긴 민족의 얼을 되찾는 투쟁의 길이라는 자각이 랭대와 모욕도, 주림과 추위도 참고 견디게 했다. 자신이 당하는 고역과 고통에서 망국의 설음이 얼마나 큰가를 통감할수록 기치창검을 높이 추켜들고 어떤 강적도 경멸의 눈으로 굽어보며 통쾌하게 징벌하던 고구려의 기개를 겨레의 의식속에 되살려주려는 각오가 높아갔다. 찬이슬 내리는 초원에서 잠을 자면서도 대륙을 질풍같이 내닫던 선조들의 말발굽소리를 련상하며 가슴을 설레였고 기진한 몸을 가눌수 없어 고분옆에 쓰러졌다가도 왜적에게 나라를 빼앗긴 오늘의 후예들을 엄히 꾸짖는 고분주인의 호령소리에 소스라쳐 다시 정신을 차리군 했다. 이럭저럭 몇달동안 탐사를 하며 귀중한 사료들을 적지 않게 걷어모았다. 그런데 뜻하지 않았던 불행이 닥치였다. 하루는 또 새로운 고적을 찾아 황토길을 걸어가다가 작두날같은 칼을 허리에 찬 마적떼를 만났다. 놈들은 무작정 강명호의 손에서 애써 모은 사료들이 들어있는 가방을 빼앗았다. 대학시절에 들고다니던 가방은 아직 새것이여서 탐이 날만도 하였지만 마적들한테는 그 가방자체가 소용에 닿을리는 없었다. 놈들은 필경 그안에 돈이나 귀중품이 들어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강명호는 돌려주기를 애원하며 그속에 력사자료가 들어있다고 한자로 써보이였다. 그러나 패당중에는 글을 아는자가 없었다. 글을 써보인것이 오히려 반대의 결과를 가져왔다. 능숙히 글을 쓰는것으로 보아 돈냥이나 있음직한 도련님으로 여긴 놈들은 불룩한 가방을 두드려보며 큰 횡재를 하였다고 기뻐하였다. 놈들이 떠나가버리자 강명호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가슴을 치며 울었다. 이윽하여 화승대를 메고 말을 탄 또 한패의 사람들이 길에 나타났다. 필시 그들도 마적이 아니면 토비일것이라고 짐작했다. 극도의 절망과 허탈에 빠진 강명호는 굳이 몸을 피할 생각이 없었다. 질풍같이 달려오던 그들이 강명호의 옆에 멈춰섰다. 투레질을 하며 제자리걸음을 하는 여러필의 말발굽밑에서 피여오르는 먼지가 얼굴에 덮씌워졌다.

《웬 사람이요?》

성깔사납게 목을 휘젓는 가라말을 탄 사람이 조선말로 물었다. 강명호는 튕겨나듯 일어섰다.

《당신들은 조선사람들이요?》

《그렇소, 우린 독립군들이요.》

이번에도 그 사람이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허벅다리에 륙혈포를 드리운것으로 보아 대장이 분명했다. 강명호는 반가움이 북받쳤다. 이역땅에서 방금 언어가 통하지 않는 마적들한테 변을 당한 뒤에 겨레를 만나니 그야말로 오래동안 헤여졌던 친혈육을 찾은듯 한 심정이였다.

대장이 말에서 내리였다. 20대초반의 젊은이였는데 이를데없이 름름한 체구였다.

《보아하니 신색이 말이 아닌데 어찌된 일이요?》

강명호는 자기가 어떤 사람인가를 소개하고 눈물겨운 노력으로 걷어모은 사료들을 마적떼한테 털리운 사실을 말하였다.

《알고보니 뜻이 높은 학자선생이구만!》

독립군대장은 감심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병사들의 얼굴에도 감동의 빛이 떠올랐다. 총을 잡고 싸우는것밖에 반일항전의 다른 길이 없는줄로 알고있던 그들은 붓을 들고 자기들과 함께 그 길을 걷고있는 학자를 보는것이 놀라왔고 그래서 더구나 경건함과 동정을 느끼였다.

《그래 그 마적떼가 사라진지 오랩니까?》

대장이 물었다.

《방금전이였습니다.》

강명호의 대답을 들은 대장은 서둘러 말잔등에 오르며 번쩍이는 눈으로 동료들을 둘러보았다.

《형제들, 마적떼를 추격하자!》

웅글진 구령소리가 떨어지기 바쁘게 독립군들은 말고삐를 나꿔채며 앞으로 내달렸다.

《학자선생, 가방을 찾아올테니 이 자리에서 기다리시오.》

대장이 뒤를 돌아보며 웨쳤다. 강명호는 창졸간에 결심을 내리고 대오를 추격전에로 이끄는 그의 행동이 뜻밖이여서 미처 대답도 못하고 얼없이 서있었다. 한시간쯤 기다리니 독립군들이 돌아왔다. 헌데 그들이 찾아온 가방은 칼날에 찢겨서 만신창이 되였다.

《그 무지한것들이 자물쇠를 열수 없으니까 가방을 이 꼴로 만들었습니다. 가방안에 글 쓴 종이만 들어있는것을 보자 화가 난 놈들이 마구 찢어버리려는 찰나에 우리가 갔습니다. 한발 늦었더라면 귀중한 사료들이 결딴날번 했습니다.》

가방을 돌려주며 대장이 하는 말이였다. 키가 작고 몸매가 날씬한 나어린 독립군이 대장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대장의 전령병인듯싶었다.

《저 학자선생님의 가방이 못 쓰게 되였는데 우리것을 대신 드릴가요?》

《네가 좋은 생각을 했구나.》

대장이 그에게 눈웃음을 보내였다. 나어린 병사가 자기의 말안장에 매달린 려행용가죽가방을 떼냈다. 그리고는 가방안에 들어있던 소지품들을 보자기에 옮겨쌌다.

《그 가방은 당신들한테도 소중할텐데 이러지 마오.》

강명호는 병사가 내미는 가방을 얼른 받지 못했다. 곁에 섰던 대장이 병사의 손에서 가방을 앗아서 강명호의 손에 쥐여주었다.

《얼마전 왜놈자동차를 습격했을 때 생긴 전리품인데 우리의 행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치한 물건입니다. 받아주십시오.》

강명호는 목이 메여와서 눈을 슴뻑이였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뜻깊은 선물이였다.

《감사합니다.》

그는 감격을 금치 못하며 가방을 받았다. 숙연한 표정들로 서있는 독립군들을 통하여 온 겨레가 보내는 뜨거운 마음을 받아안은듯 한 느낌이였다. 무엇인가 답례를 하려고 서둘던 강명호는 자기가 수집했던 유물중에서 활촉 하나를 대장에게 주었다.

《용맹했던 고구려의 어느 장수나 병졸이 원쑤에게 날렸던 활촉입니다. 기념으로 간수해주십시오.》

대장은 서슴지 않고 활촉을 받았다. 오랜 력사의 흐름속에 녹이 쓸대로 쓴것이였다.…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으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사연깊은 가방을 소중히 쓸어보시였다. 그 가방을 들고 그후에도 계속 고구려의 유적을 찾아 대륙의 산야를 끝없이 걸었을 강명호를 그려보시였다. 그는 비록 원쑤를 겨누어 총탄 한발 날려보지 못했지만 그가 만났던 독립군병사들에 못지 않은 애국투사였다. 그 시절에 그가 고누어들었던 붓은 그대로 조국의 력사와 민족의 넋을 수호하여 억세게 비껴들었던 애국의 장검이였다. 강명호에 대한 존경심이 새삼스레 끓어오르시였다. 동시에 우리 지식인들을 믿으시고 그들을 혁명의 동력으로 내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뜻이 보다 깊이 리해되는듯 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바로 강명호와 같은 우리 지식인들이 지녔던 그 애국심과 민족적량심을 믿으셨기에 해방직후 당을 창건하실 때 당기의 붉은 기폭에 마치와 낫과 더불어 붓을 새겨넣도록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어떻게 하면 강명호선생님이 몸성히 귀중한 성공을 이루고 돌아오도록 도와드릴수 있을가 하고 생각하며 가방에서 시선을 드시고 로학자를 뜨거운 눈길로 바라보시였다.

《여보, 이젠 떠나야 하지 않수?》

김씨가 강명호에게 귀띔했다. 강명호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아닌게아니라 렬차가 떠날 시간이 반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떠나야 할가보우.》

강명호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중절모를 찾아썼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얼른 강명호의 려행용가방을 들고 일어서시였다.

《함께 들자요.》

선희가 김정일동지를 따라 일어섰다.

《사모님도 역에까지 선생님을 바래워드리지 않겠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 김씨에게 물으시였다. 김씨는 따라서고싶은 생각이 간절하였으나 령감의 생각이 어떤지 몰라 잠시 머뭇거리였다.

《선희가 가는데 로친네까지 뭘 따라서겠나.》

김씨의 눈길을 외면하며 강명호가 하는 말이였다.

《승용차에 자리가 있는데 사모님도 함께 가십시다.》

김정일동지께서 다시금 부추기자 김씨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황황히 머리를 비다듬었다. 집을 나선 강명호의 일가는 김정일동지와 함께 계단을 내리였다. 현관앞에 검은색승용차가 서있었다. 가로등빛이 승용차를 선명하게 비쳐주었다.

《이런 좋은 승용차를 타보기는 평생 처음이구만.》

김씨가 승용차앞에서 문을 열어주길 기다리며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수령님 찹니다. 제가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수령님께서는 저더러 선생님을 역전까지 잘 모셔다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 자세를 바로하고 말씀하시였다. 모두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강명호는 너무나 뜻밖의 일이여서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서있었다.

《그럼 수령님께서 학술탐사를 떠나는 우리 령감의 걸음을 그렇게 중히 여기신단 말인가?》

김씨는 격동된 나머지 김정일동지의 팔굽을 덥석 잡으며 물었다.

《수령님께서는 선생님이 늙으신 몸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의의있는 탐사의 길을 떠난다고 높이 평가하시였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김씨에게 다정히 말씀하시였다. 김씨는 꿈결에서 그 말씀을 듣는듯 했다. 평생에 언제 이런 일이 있었던가? 지금에야 비로소 남편이 하는 일이 그렇게도 중한것임을 알게 된듯싶었다. 남편의 글이 말썽을 일으킬 때마다 왜 하필이면 시비가 많은 력사학을 전공하였는가고 번번이 불만을 토하군 하던 김씨였다. 지나온 생애에 그를 바래워준것은 항상 자기 혼자뿐이였다. 그것도 문밖까지 따라나섰을뿐이였고 역에까지 나가본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이 저녁에 강명호는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일동지의 축복속에 탐사의 길을 떠나고있는것이다. 눈굽에 흐르는 눈물을 훔치던 김씨는 선희의 눈시울도 젖어있는것을 보았다. 강명호는 얼굴을 돌리고 서있어서 표정은 볼수 없으나 건기침을 톺는것으로 보아 목이 메여오는 모양이다.

《자, 어서들 차에 오릅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차실 문들을 열어주시였다. 김씨는 교수보다 먼저 차에 올라앉았다. 강명호는 마누라의 행동을 곱지 않게 지켜보다가 갑자기 속빈 웃음을 터뜨리며 선희와 함께 뒤따라 올랐다. 승용차는 서평양역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검푸른 밤하늘에는 별무리가 찬란히 흐르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문득 지난해 조선사강의시간에 우리 나라에는 구석기시대유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던 강명호의 모습이 생각나시였다. 그때로부터 몇개월이 흘렀다. 그러던 그가 오늘은 새로운 확신을 가지고 구석기발굴의 길에 나섰다. 그가 이번 걸음에 성공을 하겠는지 실패를 하겠는지는 알수 없다. 물론 성공을 하고 돌아오면 그이상 더 기쁜 일은 없다. 그러나 학술탐사나 과학적실험이란 대체로 무수한 실패를 거치는것이 상례이다. 설사 실패를 하고 돌아와도 좋다. 그가 주체의 력사관이 튼튼히 선 사학자로 성장하였다는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것이다. 역두에서 작별할 때에는 성공을 축원하기보다 실패를 하고 돌아온다 하여도 상심하지 말라고 당부해야 하겠다. 성공만을 축원한다면 실패를 하는 경우 결곡한 로인이 겪어야 할 심적고뇌를 더해주는것으로 될것이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그는 이번 걸음에 자기 생애의 마지막목적을 두었을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시는데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거리를 황홀한 심경에 잠겨 살펴보던 김씨가 불쑥 말을 걸어왔다.

《너무 빨리 가는듯싶구만. 시간이 아직 있는데…》

《예, 천천히 갑시다.》

인정깊고 소박한 할머니와 사사로운 이야기를 나누는것도 그이한테는 무등 즐거우신 일이였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mypeople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도서련재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49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48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47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46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45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44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43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42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41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40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39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38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37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36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35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34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33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32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31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30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29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28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27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26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25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24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23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22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21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20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19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18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17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16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15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14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13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12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11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10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9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8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7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6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5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4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3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2회 총서 《불멸의 향도》 중에서 장편소설 《아침노을》 제1회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