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 회)


44


눈물이 가랑가랑해서 매달리던 정향과 헤여져 로동과로 향하는 창근의 가슴속에서는 별의별 생각이 다 엉켜돌아갔다.

제 손으로 제 눈을 찌른 원망, 물에 빠진 사람 꼭뒤 누르는듯 한 이모부에 대한 야속함…

그중에서도 제일 가슴허비는것은 송화와의 영리별이였다.

철없던 시절부터 오늘까지 송화와 맺은 인연은 그 누구도 허물수 없는 천연요새와도 같은것이였다.

그런데 창근이라는 불법무도한 인간이 그 요새를 허물어버리였다.

송화가 그 요새를 지키려고 얼마나 안타까이 모지름을 썼던가.

인간의 존엄을 지키라, 자존심을 귀중히 여기라, 량심을 버리지 말라고 귀에 길이 나도록 웨치던 송화의 충고를 먼산의 우뢰소리만큼도 여기지 않던 자신이 천만번 후회되였다.

창근은 자기라는 인간은 지금 존엄은 고사하고 량심도 줴버린 뼈대없는 인간처럼 여겨졌다.

동무 손재간 좋구만, 그 친구 솜씨 영광가구가 왔다가 울고 가겠는걸 하는 주문자들의 침발린 과찬에 고무풍선처럼 붕 떠서 이 사람, 저 사람이 부르면 달려가 남들이 발편잠을 잘 때 땀을 뻘뻘 흘리며 대패질을 하고…

완성된 제품을 놓고 이것이 마음에 안 드오, 저걸 고쳐야겠소 하면 예, 예 하며 그들의 비위를 맞추던 지난날이 괴롭게 되살아났다.

그것이 과연 무엇을 남기였던가.

로력비로 차례진 몇푼의 돈이였다. 돈밑에 깔린 인생이였다.

바친 땀에 비하여 보잘것 없는 그 돈으로 작업에 빠진 명분을 세운다면서 《통이 크게》 벌린 후방사업… 그 뒤끝에 따르는 몇몇 사람들의 칭찬, 창근이가 괜찮아.…

그것에 기고만장해서 세상에 자기가 똑 제일인체, 남보다 힘이 있는 강자인듯 했던 창근이였다.

아, 나는 세상 천하 바보였구나.

나야말로 정신적인 약자, 정신적인 불구자였다.

이제 공장에서 나가면 어디로 갈가. 당장 갈 곳도 없다.

가구주문자들이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칭찬할 때에는 당장 먹을알 있는 직장, 괜찮은 기관으로 갈것만 같아 지배인인 이모부에게 가겠다, 보내달라며 우둘렁거렸지만 막상 몸 담을 곳을 꼽아보니 발을 들이밀기가 서슴어졌다.

나의 인간됨이 공정하게 평가된 평정서를 본다면 그 누가 나를 품어줄텐가.

그전날 친절했던 가구주문자들은 언제 보았더냐싶게 외면할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창근은 자기야말로 사회와 집단을 위하여 아무 쓸모도 없는 존재라는것을 통절히 느끼였다.

세상의 모든 무거운 짐을 다 짊어진듯 무겁게 계단을 오르는데 웃층에서 투닥투닥 덤벼치는 신발소리가 나더니 누군가가 절벽처럼 앞을 가로막았다.

《왜 이제야 오는거야?》

로동과장의 목소리였다.

창근은 속이 불끈하였다.

이건 뭐야, 만나자바람으로 떡떡거리면서… 소도 도살장에 보낼 땐 잔등을 쓸어준다는데 나같은건 소만도 못하다는거야?

심사가 울뚝해진 창근은 본체도 않고 그냥 계단을 올려짚으려는데 로동과장이 어디서 불이라도 난듯 볶아댔다.

《그 수속용지를 달라구.》

수속용지는 왜 달라는거야?

창근은 주머니를 뒤적거려 수속용지를 내밀었다.

그것을 홱ㅡ 나꾸어챈 로동과장이 퉁명스럽게 내뱉았다.

《동무, 수속 그만두라. 알겠지?》

최종결론처럼 명백하게 하는 로동과장의 말에 창근은 금시에 바자말뚝이 되고말았다.

왜 수속을 그만두라는거야?

《이제 빨리 당비서동지방으로 가라구, 알겠어?》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듯 덤벼치며 말한 로동과장이 홱 바람을 일구며 사라졌다.

창근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당비서아바이가 날 찾는다? 날 왜 찾는다는거야?

의문부호를 풀지 못한채 당비서방에 들어서니 박영식이 기다리고있었다.

《왔구만.》

따뜻한 목소리가 속이 한줌만 해서 들어선 창근을 포근히 감싸안았다.

벌받은 학생처럼 고개를 떨구고 서있는 창근을 한참이나 지켜보던 박영식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심장을 바치자 어머니조국에〉 가사를 알고있나?》

전혀 예상치 못했던 물음이라 가뜩이나 얼친 망둥어꼴이 된 창근의 얼어붙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송화에게 준 그 노래가사 말이다.》

《?!》

창근은 맨발로 불판우에 올라선듯 흠칠 몸을 떨었다.

비서아바이가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계실가. 송화가 말했을가?

그럴수 있다. 이제는 나와 영 남남이 된 그가 당비서에게 무슨 말인들 안했겠는가.

대답을 못하는 창근에게로 다가선 박영식이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덜된 녀석! 누구보고는 조국에 심장을 바치라고 훈시질을 하고는 자기는 돌아앉아서 제 심장에 오물들만 가득 채워?》

《…》

《심장을 바치자 어머니조국에! 얼마나 소중한 부름인가.

자기 심장을 조국에 바치지 않고서는 사는 보람도 행복도 없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강조국건설에 자신들의 피와 땀, 지어는 목숨까지 서슴없이 바치고있느냐. 영웅적최후를 마치고 공장사람들의 아름다운 추억속에 사는 너의 아버지만 보아도 그런 훌륭한 사람들중의 한사람이지. 한발자국만 비켜서도 얼마든지 살수 있었지만 동지들을 위해 자기 심장을 서슴없이 내댔거던. 그런데 네 녀석은 뭐냐? 키워주고 먹여주고 공부시켜준 고마운 조국에 눈곱재기만큼도 보답한것이 없이 저 하나만을 위해 살아왔지, 버러지처럼… 아무 쓸모도 없는 정신적인 병자가 되였거던.》

예리한 칼로 심장을 찌르는듯 한 박영식의 꾸중에 창근은 머리를 들지 못하였다.

여적 아버지의 영웅적최후에 대하여 감감 잊고있었던 창근이였다.

공장사람들이 아버지를 영웅으로 추억할 때면 그처럼 빛나는 위훈을 세운 아버지가 왜 남들처럼 영웅칭호를 못 받았는가고 아쉬워한 창근이였다.

아버지가 진짜로 영웅이 되였다면 자기의 앞날은 창창하였으리라고 허황한 꿈을 꾼적도 그 몇번이였던가.

《그래, 네 잘못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예.》

창근의 목소리는 금방 숨이 넘어갈듯 힘이 없었다.

《송화가 아니였더라면 난 널 만날 생각이 없었다.》

《?!》

송화라는 말에 창근은 소스라쳤다.

송화가 아니였더라면?…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해온 송화가 무슨 말을 했단 말인가.

《내 아무리 궁리가 너그럽다고 해도 공장의 중대사를 망쳐놓은 녀석까지 품어안을 생각이 없었거던. 그건 네 이모부도 마찬가지야. 이모부 소리가 나왔으니 한마디 하자. 내 지배인에게 창근이를 공장에서 내보내는 문제를 고려해보자고 했다가 코를 떼웠다니.

당비서가 그렇게 속이 넓은줄은 미처 모르고있었다는게 아니겠소. 얼마나 격분했으면 그랬겠어. 그래 송화의 말도 안 듣겠는가 했더니… 하, 금시까지 범처럼 펄펄 뛰던 지배인이 벙어리가 되고말더라니까. 새겨들어. 송화가 날보고 뭐라고 한줄 알아? 오작난 날개바퀴는 다시 만들면 되지만 공장에서 몹쓸놈이라고 버린 사람은 누가 맡아안겠는가, 그러면 창근이라는 인간은 영영 사회와 집단의 버림을 받는 쓸모없는 인간이 되고만다고 하더란 말이야. 듣고보니 생각이 많았어. 도대체 송화가 너처럼 못난 녀석이 뭐길래 이 당비서의 가슴을 울렸는지 모르겠거던.》

《비서동지!》

창근은 그 자리에 주저앉을듯 비칠거리며 떨어지는 눈물을 팔소매로 연신 벅벅 닦았다.

《허, 그래도 가슴이 영 메마르지는 않았군. 진정해라.》

박영식이 창근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하였다.

《생나무에 불이 붙으면 무섭게 타번진다는데 강심을 먹고 새 출발을 해야 해. 알겠니?》

《알겠습니다.》

《가보라구.》

굽석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창근에게 박영식이 넌지시 한마디 던졌다.

《그 돌의자를 제자리에 가져다놓을수 있을가?》

《…》

창근은 못 들은체 방을 나섰다. 심장이 다시 세차게 고동쳤다.

당비서가 던진 그 말이 큰 파문을 일으키며 감정의 파도가 출렁이게 했다.

정말 돌의자가 다시 제자리에 놓일수 있을가?

아니, 난 송화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놈이야.

죽자 하구 일을 해서 잘못을 씻는데만 정신을 집중해야 해.

당위원회청사를 나서니 공장의 모든것이 새로운 눈으로 안겨왔다.

주물직장, 가공직장… 그리고 비록 마가을이여서 잎들을 털어버렸지만 돛대처럼 곧추 자란 수삼나무들이 무척 정답게 보였다.

그전에는 정을 느껴보지 못한것들이였다.

심호흡을 가다듬는 창근의 가슴은 뻐근해났다.

공장사람들의 버림을 받았던 자기가 그들과 함께 다시 일하게 되였다는 기쁨이 가슴을 달구었다.

당비서아바이가 말했지, 생나무에 불이 달리면 무섭게 타번진다고.

그래, 내 꼭 무섭게 타번지는 불이 되리라.

정향인 또 뭐라고 했던가. 그렇지, 나보다 더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도 정신을 차리고 분발해서 영웅이 되였다고 했지.

영웅은 못된다 해도 혁신자야 왜 못되겠는가.

정향에게 자기 소식을 알려주고싶었다.

그가 알면 얼마나 기뻐할텐가.

마냥 들먹이는 마음을 걷잡지 못하고 향방없는 걸음을 옮기는데 손전화기신호음이 울리였다.

손전화기를 보니 현시판에 알지 못할 번호가 찍혀있었다.

《누굴 찾습니까?》

《정창근동무 아니예요?》

가구주문자 같았다.

그전 같으면 장타령을 하며 요구하는 가구형태를 물어보고 시간을 약속하였을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먼 과거의 일로 되고말았다.

창근은 단호히 뿌리쳤다.

《그 정창근은 죽었수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상대방의 목소리.

《어마나, 그게 사실이예요?》

《사실이요.》

《야! 참 안됐군요. 그 재간이 아깝다.》

전화를 끊은 창근은 어이가 없어 허허 웃고말았다.

또다시 걸음을 내짚던 창근은 누군가가 자기를 지켜보는것만 같아 주물직장쪽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그 자리에 굳어졌다.

저기 주물직장앞 수삼나무옆에 송화가 서있는것을 본것이다.

그를 보는 순간 창근의 가슴은 숨죽었던 자동차기관이 발동이 걸리듯 와당탕거리였다.

심장이 밖으로 튀여나올듯 사정없이 가슴을 걷어찼다.

송화, 고마와 하는 소리가 입안에서 맴돌다가 잦아들었다.

그전처럼 스스럼없이 송화를 부를수 없음을 느낀 창근은 강잉히 머리를 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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