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 회)


32


불빛이 환한 주물직장작업장에서 목형공들이 고양정뽐프목형제작에 여념이 없었다.

톱으로 썰고 대패로 밀고 하며 설계도면의 요구대로 형타를 가공하여야 하는 작업은 고도의 정밀도를 요구하는것으로서 순간도 잡념에 사로잡혀서는 안된다.

말없이 그들의 작업모습을 돌아보는 리대철의 눈에 창근이가 걸려들었다.

땀을 철철 흘리며 뽐프의 안내몸체형타를 만드는 창근은 마치 섬세한 조각가처럼 근엄하였다.

이윽토록 지켜보느라니 대견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녀석, 처음부터 일을 그렇게 착실히 할것이지.

이번 기회에 제발 사람구실을 했으면…

잔등이라도 두드려주고싶었으나 작업에 방해가 될가봐 조심스럽게 물러선 리대철은 저주파유도로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거기에선 여러명의 사람들이 몰켜서서 무슨 일인지 열들을 올리고있었다. 일이 잘되지 않는 모양이였다.

《무슨 론쟁들을 하고있소?》

리대철의 우선우선한 소리에 이마를 맞대고있던 그들이 얼굴들을 쳐들었다.

《지배인동지, 야단났습니다. 변압기를 뜯었다가 다시 맞추었는데도 전압이 오르지 않습니다.》

《첫술에 배부르겠나. 한번 뜯었다 안되면 두번세번 뜯었다 맞춰서라도 전압을 올려야지.》

말은 그렇게 하였으나 리대철의 마음은 개운치 못하였다.

구상화흑연주철을 위한 개량제를 빨리 뽑아야 목형이 끝나는 차제로 주물을 하겠는데 전압이 딸려 애를 먹고있다.

변압기를 개조하여 전압을 올려보려고 시도했는데 잘되지 않는다니 속타는 일이 아닌가.

《엎어진김에 쉬여간다구 한대씩들 피우며 생각들을 해보기요. 알겠소? 담배 한대 피우는 사이에 귀가 번쩍 하는 기발한 착상이 떠오를지.》

리대철은 주머니에서 담배곽을 꺼내 명선이네한테 내밀며 주물품우에 걸터앉았다.

담배를 한가치씩 뽑아 불을 붙여문 제작조성원들이 연기를 말아올리며 생각들에 잠겨있는데 누군가가 한마디 하였다.

《방법이 한가지 있기는 한데…》

리대철은 물론 모두 호기심이 동해 그를 쳐다보았다.

《어떤 방법이요?》

《변전소에서 새벽에 몇시간정도 공장주변의 전원을 모두 차단하면 전압이 올라갈수도 있을것입니다.》

그럴듯한 소리였지만 공감이 가지 않았다.

공장주변의 전원을 차단한다는것은 련속공정작업을 하는 여러 공장들까지 전기를 꺼야 한다는것인데 그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의견을 제기한 당자도 힘들줄 알면서도 그런 문제를 제기하였으리라고 생각하니 시원한 대답을 주지 못하는 리대철은 더 속이 탔다.

하다면 무슨 방도가 없겠는가.

《명선동무, 아무래도 변압기개조는 변전소동무들의 방조를 받아보기요.》

《알겠습니다.》

현장을 떠나 사무실로 들어서는 리대철을 기다린듯 전화종소리가 울리였다.

얼른 송수화기를 집어드니 귀에 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배인동무! 수고하오.》

김원삼이였다.

《안녕하십니까, 처장동지.》

《뽐프제작은 어떻게 하기로 하였소?》

《제작조는 구성하였지만 이리저리 걸린 문제들이 있어 본격적으로 전개하지 못하고있습니다.》

리대철은 저주파유도로의 전압이 낮아 개량제를 뽑지 못하는 사정을 루루이 설명을 하였다.

한동안 말없이 듣고있던 김원삼이 경고하듯 말하였다.

《이보오! 지배인동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두주먹을 부르쥐오. 지금처럼 앉아뭉개다가는 언질을 잡지 못해 몸살을 떠는 윤상배한테 창을 맞을수 있소.》

리대철은 얼떠름해졌다.

윤상배가 언질을 잡지 못해 몸살을 떨다니.

그야 공장에 내려왔을 때 뽐프제작을 동의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가.

《말씀의 뜻이 리해가 안됩니다. 일이란 순차적인 공정이 있는건데 언질이라니 무슨 당치않은 소립니까?》

《손바닥뒤집듯 하는게 장사군이 아니요. 동무네 공장에서 돌아온 윤상배가 어쨌는줄 아오? 동주뽐프공장에서 고양정뽐프생산은 불가능하다고 발칵 뒤집는 바람에 나와 한바탕 맞불질을 했소. 다행히 동무네 웃기관의 차부국장이 놀랍게도 내 립장을 지지하는통에 윤상배가 골탕을 먹었지.》

믿어지지 않는 소리여서 리대철은 벌컥 성을 냈다.

《무엇이 불가능하다는겁니까? 도대체…》

김원삼은 그사이 벌어진 일을 숨김없이 다 털어놓았다.

《…그렇게 되여 뽐프 전량수입을 멈춰세웠소. 말문이 막힌 리석민사장이 타협안을 내놓았는데… 수입뽐프 몇대 들여다가 동무네가 생산한 뽐프와 대비시험을 한 후 동주뽐프를 놓느냐, 수입산을 놓느냐를 결정하자는거요.》

《뭐라구요?》

리대철은 기가 막혔다. 이건 또 무슨 희한한 소식인가. 그러니 끝내 수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것이 아닌가. 우리가 만든 뽐프와 대비시험을 해보고 결론을 하겠다? 세상에 별일도 다 있군. 아직도 우리의 힘, 우리의 기술을 믿지 못하겠다는거겠지? 하기야 남에게 의존하는데 버릇이 되면 제힘을 믿지 못하는것은 당연한 일이지.

윤상배! 공장에 내려와서는 가마목 시에미 며느리흠을 잡지 못해 안달아하듯 이것저것 들춰대며 야질거리다가 마지 못해 뽐프제작을 동의한다고 침발린 소릴 하는게 께름하다 했더니 종시…

너절한 인간!

《좋습니다. 그 사람들의 요구가 정 그렇다면 소원대로 해주지요.》

《그런데 말이요, 사장은 동무네 공장에서 담보서를 내라는거요.》

《담보서라니요?》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책임한계를 명백히 하자는게지.》

리대철은 어이가 없어 그만 앙천대소하고말았다.

《하하하, 그것 또한 기막힌 착상입니다. 좋습니다. 그 사람들이 요구하는 담보서가 어떤것인지 잘 알겠습니다.

내겠습니다, 당장… 그후에도 흡진갑진하면 그가 누구이든 더이상 참지 못하지요.》

전화를 끊은 리대철은 아직도 떨기를 멈추지 않고 후들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담배 한대를 붙여물었다.

담보서를 내는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까마귀 날자 배떨어진다고 공장실태료해 이후에 그런 소리가 나온것이 어쩐지 불쾌하였다.

누가 먼저 담보서소리를 꺼냈을가. 리석민사장일가? 아니면 윤상배?…

이는 분명 윤상배의 발기일것이다. 그의 입김에 리석민사장이 응했을것이고…

그렇게 문제를 세우고보니 리대철은 리석민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뭘 그렇게 심중해서 그럽니까?》

언제 방안으로 들어왔는지 박영식이 리대철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리대철은 잡친 기분을 털지 못한채 어설픈 웃음을 지었다.

《아직 퇴근하지 않았습니까?》

《지배인동무가 퇴근을 안했는데 내가 어떻게 먼저 퇴근하겠습니까. 얼굴색이 좋지 않은걸 보니 무슨 일이 있은게로구만요.》

《예, 그럴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리대철은 방금전에 김원삼과 전화로 주고받은 내용을 이야기하였다.

라이터불이 벙긋 일더니 박영식의 입에 물려있는 담배에 불이 달렸다.

페장깊이 연기를 들이켰다가 내뿜는 그의 얼굴에 이지러진 웃음이 스치였다.

《리해가 안되거던요. 우리 로동자들은 당의 의도라면 자신들의 운명적인것으로 받아들이고 결사집행하기 위하여 온넋을 다 바치는데 그사람들은 어떻게 돼먹었길래 갖은 구실과 조건을 내걸면서 제동을 거는지. 수입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단순히 우리 공장을 믿지 못해서겠는가, 아니면 다 챙겼다 했던 재물보따리가 우리때문에 나무아미타불이 될가봐서인가. 문제를 이렇게 세워놓고보면 모호한게 많습니다. 수입병에 빠진 사람치고 청백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 사장이라는 사람이야 그렇지 않겠지요.》

《예. 그는 지금 윤상배의 입김에 골머리를 앓는것 같습니다. 윤상배 그 사람이 이미 결정된 수입안을 취소하는것은 나라의 존엄을 훼손시키는것이라고 물고늘어지니까 자기 주견을 세우지 못하고 좌왕우왕하는것이지요.》

《이런 때 일군의 결심이 중요한데…》

갑자기 박영식이 줄기침을 하기 시작하였다.

리대철이 황급히 박영식의 잔등을 두드리며 원망하였다.

《기관지가 나쁜데 담배는 왜 자꾸 피웁니까. 그만큼 끊으라는데…》

기침이 멎자 박영식은 재털이에 담배불을 비벼끄며 허허 웃었다.

《끊자고 했다가도 기분나쁜 일이 생기면 안 피우고 못 견디겠습니다.》

《그건 구실입니다. 결단성이 없으니까 못 끊는거지요.》

《허 이런, 나중에 못하는 소리가 없군요. 내가 결단성이 없다, 좋습니다! 끊겠습니다.》

《정말입니까?》

《끊되 고양정뽐프를 성공한 다음에 끊겠습니다. 그때까지 또 무슨 불쾌한 일이 있을지 알겠습니까? 허허허.》

《좋습니다. 두고봅시다.》

《담보서를 쓰십시오. 거기에 나도 수표를 하겠습니다.》

《비서동지까지야 무슨 수표를 하겠습니까?》

《무슨 소릴 합니까. 그들이 요구하는 담보서라는게 기술적인 문제만 책임지라는것이 아니라 실패하는 경우 목을 내대라는건데 그런 심각한 운명문제를 놓고 이 박영식이 수표를 안할수가 있습니까. 우리야 한배를 탄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러니 죽어도 살아도 운명을 같이해야지요.》

리대철은 흠칫 몸을 떨었다. 박영식의 말을 듣고보니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가 가슴을 서늘하게 하였다.

《내 생각엔 말입니다, 담보서는 지배인동무가 가지고갈것이 아니라 누구 다른 사람을 보내는게 어떨가요?》

박영식의 의견에 리대철은 어리둥절해졌다.

《그건 무슨 말입니까?》

《이번에 그 사람들과 부딪쳤다가 무슨 일이 날가봐 그럽니다. 분노와 참을성을 한심장에 품고있다는것은 힘든 일이지요. 굴레벗은 말과 바람은 멈출수 없다고 갖은 수단을 다 써서라도 수입을 성사시키려는 그 사람들이 깔지락거리면서 오그랑수를 쓰면 지배인동무의 그 욱하는 성미에 참아내겠습니까.》

《걱정마십시오. 남을 이기려면 먼저 자기를 이겨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옳습니다. 웃으면서 빰을 친다고 이번엔 꼭 항복서를 받아내십시오.》

《받아내야지요. 아직 진리가 자리를 양보한적은 없으니까요.》

《그래 언제 떠나겠습니까?》

《래일 아침 떠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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