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5 회)


제 6 장


(9)


승전에는 가슴아픈 희생도 있기마련이였다.

전례에 보기 드문 적의 대군을 도성은커녕 졸본에도 들여놓지 않고 전멸시켰을뿐아니라 적군의 소굴까지 답새겨 무리죽음을 안긴 커다란 승전은 고구려사람들에게 기쁨과 존엄을 백배해주었다.

하지만 이 싸움을 처음부터 주도해온 을파소에게 가슴을 허비는 큰 손실이 있었으니 그것은 우거의 희생이였다.

양평싸움을 선두에서 이끌던 백전로장이 그만 적의 화살에 맞아 쓰러진것이였다.

눈을 감기에 앞서 우거장군은 후한이 차지한 조상의 땅이 굽어보이는 변방의 높은 산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였다.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고 선조의 땅을 되찾는 보루로 남아있겠다는 백전로장의 유언을 전해받았을 때 을파소는 너무도 가슴이 아파 정신을 잃기까지 하였다.

어이하여 로장군의 신변을 지켜주지 못했던가. 미리 로장군의 신변에 각별한 주의를 돌리도록 그의 부하들에게 당부를 하였더라면 이런 큰 손실은 없었을것이였다.

을파소는 우거장군의 유언대로 무덤을 그가 있던 군영의 뒤산에 크게 써주도록 하였다.

승전과 더불어 나라에서는 비여있던 관직들에 관리를 임명하였다.

중외대부로는 고우루가, 그가 맡았던 관직에 연인장군이 임명되였다.

우거장군이 섰던 자리에는 아들 우릉걸이, 연인장군의 자리에는 례복구가, 변방철기군의 군장으로는 마영, 신성고을 태수로는 서압록고을의 처려근지였던 덕문이 등용되였다.

그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조동되였다.

이제는 을파소에게 파악한 사람이 많아 인재선발에 지장이 없었다.

이어 승전에 기여한 관리들에게는 벼슬을 높여주고 군사들과 백성들에게는 상을 내리였다.

특별히 국상부의 내부사인 극실기와 외부사인 왕지길 그리고 졸본태수 대실근에게는 두 품계를 뛰여넘는 높은 벼슬이 하사되였다.

모두가 전승의 기쁨으로 즐길 때 을파소는 여전히 국사로 바삐 돌아갔다.

나라방비, 진대법 등 수많은 국사를 변함없이 밀고나가는 속에서 졸본과 평양을 천자국의 큰 도회로 일신시키는 일을 어느 한시도 잊지 않고있었다.

을파소는 졸본성에 대궐을 짓는 공사를 자신이 직접 내려가 맡아하기로 마음먹었다.

후한의 조정을 꾹 눌러놓았으니 마음놓고 아래에 내려가있어도 될것이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졸본성에 내려온 을파소는 대궐의 설계를 직접 검토하고 부역을 크게 일으켰다.

각지에서 재주가 뛰여난 목공들과 석공들을 불러오고 부역군들로는 졸본과 국내성의 백성들을 동원시키였다.

부역군들을 독려하여 대궐공사를 추진하는 속에 한해도 저물고 새해 무인년(198년)이 왔다.

새해에도 을파소는 여전히 바빴다.

비록 졸본성에 내려와있어도 국상으로서 모든 국사를 주관해야 하니 편안한 날이 없었다.

오늘도 을파소는 안류의 둘째아들 안국과 함께 공사장을 돌아보았다.

벌써 거대한 웅자를 드러낸 아스라하게 높고 산처럼 큰 대궐공사는 마감에 이르고있었다.

서까래를 걸고 붉은 기와를 얹으면 외부공사는 끝나게 될것이였다.

동시에 내부공사를 다그치면 춘삼월에는 임금을 모실수 있었다.

공사장을 돌아보는 을파소의 머리속에는 해야 할 일들이 그물마냥 가로세로 끝없이 엮어져있었다.

3월에는 또 무술인재를 고르는 사냥경기를 해야 하고 4월에는 평양에 가서 대궐을 지을 성자리를 잡고 성쌓기공사를 벌려야 했다.

이런 생각에 묻혀 장대에 오른 을파소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산성의 안팎을 둘러보았다.

뭐니뭐니해도 산성에서 이 장대가 마음에 드는것은 이 자리에서 졸본성의 모양새를 한눈에 볼수 있기때문이였다.

비류수의 맑은 물을 굽어보는 웅장한 산에 쌓은 산성은 천험의 요새였다.

바로 이런 묘한 곳에다 오로지 고구려에서만 보는 특이한 산성을 쌓은 선조들의 안목에 을파소는 감탄을 금할수 없었다.

어쩌면 선조들은 이처럼 기묘하게 성을 쌓았는지…

을파소가 감탄해마지 않는 이 졸본성은 사면이 높고 가운데가 낮은 지형, 즉 이 부근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를 중심으로 여러개의 낮은 봉우리를 얼싸안고 성을 쌓음으로써 성안에는 반드시 골짜기가 있었다.

골짜기가 있으면 물이 흐르는 개울이 있기마련이다.

고구려에서는 그전부터 이런 모양의 산성을 쌓고있었다.

이런 산성은 규모가 비교적 크고 특히는 먹는 물원천이 풍부한것으로 하여 고구려의 우월한 청야수성전으로 성을 지켜싸우는데 가장 부합되는것이였다.

난공불락의 요새로서 이런 산성은 세상에서 유일한 고구려의것으로서 다른 나라들에서는 찾아볼수가 없었다.

그래서 고구려에서는 이런 산성이 주류를 이루는것이였다.

을파소의 눈길은 성벽을 더듬고있었다.

성의 서쪽과 북쪽은 깎아지른 절벽이고 군데군데 절벽사이의 밋밋한 경사지에 커다란 바위돌을 끌어올려 성벽을 쌓았다.

산 경사가 완만한 동쪽에는 산허리를 따라가며 바위돌로 계단모양의 굽도리를 만들고 그우에 몇길 높은 성벽을 쌓았다.

그리고 남쪽에는 칼벼랑우에까지 성벽을 쌓았으니 날개가 없이는 성을 넘어들어올수 없었다.

성문은 지세와 어울리도록 동쪽과 서쪽, 남쪽에만 내였다.

산발을 둘러보는 을파소는 흡족하여 환한 웃음을 지었다.

혼자서도 적을 열놈, 백놈도 물리칠수 있는 이런 곳에 대궐을 일떠세우니 얼마나 잘한 일인가.

을파소는 만족한 눈길로 못의 한가운데 두둥실 떠있는 정자를 바라보았다.

꽃배모양으로 만든 정자는 웅장한 대궐에 잘 어울리였다.

이윽고 을파소는 뒤에 선 안국에게로 눈길을 옮겼다.

갸름하고 흰 얼굴에 쌍까풀진 반달눈, 오똑한 코, 얇은 입술로 하여 담대한 사나이가 아니라 아녀자처럼 보이기만 하는 안국이였다.

그것은 아마도 제 어머니를 닮았기때문일것이였다.

안국과 지내보니 무엇이든 묻기 좋아하는 명림어수와 딴판이였다.

먼저 말을 건네지 않으면 하루종일이라도 입을 다물고있으니 과묵하기란 이루 말할수 없었다.

《자네 지금 무엇을 생각하나?》

이번에도 을파소가 먼저 말을 건네서야 안국이 꾹 다물고있던 입을 뗐다.

《저… 옛적에 국내성으로 천도한것이 하늘제사에 쓸 돼지때문이였다는게 사실이오이까?》

을파소는 빙그레 웃었다.

그에 대한 해명은 자못 흥미있는 일이라고 할수 있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류리명왕때 도성이던 졸본에서 하늘제사에 쓰려 했던 돼지가 우리에서 도망쳤다고 한다.

나라의 제사에 쓸 짐승을 기르는 일을 맡고있던 설지라는 관리는 다급히 부하들을 데리고 돼지를 찾아나섰다.

돼지의 자취를 따라가보니 국내의 위나암에서 그 고장 사람들이 돼지를 붙잡아 우리속에 가두어넣고있었다.

돼지를 찾은 설지는 국내의 지세가 졸본보다 좋은것이 마음에 들었다.

졸본으로 돌아온 설지는 류리명왕에게 국내는 산도 크고 험하며 들도 넓고 비옥해서 곡식이 잘되고 산짐승과 물고기가 흔한 고장으로서 임금이 웅거할만 한 명당자리같다고 아뢰였다.

그 말을 들은 류리명왕이 직접 국내를 돌아보고 마음에 들어 천도를 했다는것이다.

을파소는 수염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 국내성은 압록강을 가까이에 끼고있기에 도처의 물산을 실어들이기에 유리하고 변방에서도 좀더 멀리에 떨어져있으니 방위에도 유리하다.

그러나 국내성은 시조임금님이 부여를 떠나 구려국으로 왔을 때 처음으로 터를 잡았던 고장이다.

그래서 천도를 했다고 보아야 더 옳을것이다.

그때 벌써 류리명왕께서는 천자국으로서 대궐을 가진 여러개의 큰 고을을 두려 한것 같다.

우리 나라는 천자국으로서 여러개의 큰 도회를 가져야 한다. 졸본에도 평양에도…》

이 말은 을파소자신에게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였다.

그만큼 을파소는 그 일에 온 정신이 쏠려있었다.

을파소는 정찬 눈길로 안국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 벼슬길에서 시종 놓치지 않은것은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것이다. 국상에게는 만인을 용의주도하게 다스리는 드센 손탁과 함께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줄도 아는 기질이 있어야 한다.

《그건 그렇고… 네 보건대 이 성에 무엇이 부족한것 같으냐?》

안국은 별로 생각을 더듬지 않고 대꾸했다.

《제 보기에는 옹청구뎅이가 좀 적은것 같소이다.》

《옹청이라…》

옹청구뎅이란 땅에 세길정도 깊이의 구뎅이를 파고 그안에 독을 들여놓은것을 말한다.

적정을 눈으로 볼수 없는 밤이나 흐린 날에 옹청구뎅이속의 독에다 귀를 대여보면 말발굽소리는 말할것도 없고 사람의 발걸음소리까지 가려들을수 있는데 이것을 가리켜 옹청이라고 한다.

《음… 하긴 그래, 몇개쯤 더 파면 좋을게다. 또 뭐가 미흡하냐?》

안국은 어줍게 웃었다.

《국상어른께서 하시는 일인데 어련하겠소이까. 이제 임금님께서 이곳으로 오시여 정사를 보시면 졸본은 흥하는 도회로 될것이오이다.》

《흥하는 도회라…》 하고 뇌이며 졸본의 거리를 내다보는 을파소에게 한가지 생각이 이어졌다.

이 거대한 도회를 에워싼 산봉우리들을 빙 돌아가면서 하나로 이어지도록 성을 쌓고 사면팔방으로 성문을 내면 천하에 으뜸가는 도성으로 될것이였다.

을파소는 몇해전부터 이 생각을 해오고있었다.

그는 다시한번 이 생각을 굳히고싶어 산봉우리들을 가리켰다.

《안국아, 내 생각에는 말이다, 앞으로 너희들의 대에 가서 저 산들마다 봉우리를 잇는 성을 쌓았으면 한다.》

을파소의 이 구상은 후날 거대한 평양성을 일떠세우는데로 이어졌으니 이처럼 자나깨나 나라를 위해 애쓰는 사람은 겨레앞에 반드시 훌륭한 자욱을 남기는 법이다.

주전자를 든 시중군이 조심히 다가와 을파소에게 아뢰였다.

《국상어른, 물을 가져왔소이다.》

그렇지 않아도 목이 말라하던 참이라 을파소는 벌씬 웃었다.

《물론 쇠뜨기차겠다?》

《그렇소이다.》

시중군이 부어주는 쇠뜨기달인물을 한보시기 마신 을파소는 능청스러운 눈길로 안국을 바라보았다.

《자넨 길가에 흔한 쇠뜨기를 뜯어 달인걸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지?》

안국은 《저의 부친께서도 쇠뜨기차가 좋다 하였는데 왜 마다하겠소이까?》하더니 거퍼 두보시기나 마시는것이였다.

을파소는 껄껄 웃으며 안국의 등을 두드렸다.

《괜찮아. 자, 또 돌아봅세.》

을파소가 장대를 내려서는데 외부사인 왕지길이 컴컴한 얼굴로 나타났다.

여느때와 달리 그가 직접 나타났고 또 초상을 당한 기색이니 을파소는 가슴이 활랑거렸다.

무슨 일이 생겼는가?!…

《국상어른…》

왕지길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을파소는 정녕 아주 불길한 일이 생겼다는것을 알아차렸다.

적국에 나가있는 우리 사람들이?!…

아니나다를가 왕지길의 입에서 제일 바라지 않는 말이 흘러나왔다.

《허도에서… 다 잡혀죽고 한사람만이 빠져나왔소이다.》

너무도 가슴아픈 소식에 을파소는 손을 내저었다.

들어보나마나 조조의 작간일것이였다. 병법에 밝노라 으시대던 그자가 패전후 저희 소굴에 우리의 간자들이 박혀있다는것을 알아차렸을것이였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들을 살려낼수 있다면 만금인들 마다하겠는가.

을파소는 왕지길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피를 흘리지 않고서는 나라를 지킬수 없어. 돈은 얼마든지 대주겠으니 다시 시작해보게.》

마침 발기의 집뜨락에서 파낸 막대한 보물이 있었다.

극실기가 발기의 부엌데기한테서 보물의 행처를 알아낸것이였다.

《이 사람, 자네들이 하는 일은 목숨을 아끼면 못하는 일일세. 열번 죽어도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닌가. 새 사람들을 들여보내게.》

《알겠소이다.》

을파소가 눈굽을 닦으며 떠나가는 왕지길을 바래우는데 안국이 아뢰이는것이였다.

《국상어른, 소인에게 그 일을 맡겨줄수 없소이까?》

《?!…》

묻는 질문에나 대답하던 안국에게서 절절한 말이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한순간에 큰 리치를 깨달을수 있다는 말이 있소이다. 소인은 국상어른의 말씀을 들으며 적국의 실정을 알아내는것이 누구든 나라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하고 또 그 일은 사내대장부들이 해야 하는 해볼만 한 일임을 알았소이다.

소인은 한어도 알고 중원사람들의 풍습도 알고있으니 적임자라고 할수 있소이다.》

총명하기로 소문난 안국은 구려경당에서 한어를 배운것이였다.

그가 남달리 한어를 열심히 배운것은 앞으로 장수가 되여 공을 세우자고 하여도 이웃나라들의 말을 잘 알아야 한다는 생각때문이였다.

(안국을 곁에 두고 키워서 제 아버지의 뒤를 잇게 하자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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