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8 회)


제 6 장


(2)


부하들을 손짓으로 물러가게 한 을파소가 락도상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 생겼소?》

두눈에 눈물이 고인 락도상이 울먹이며 말했다.

《국상어른, 대왕님의 병세가 갑자기 대단히 심해졌소이다.》

《뭐라구?》

소스라치게 놀라는 을파소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였다.

임금님의 병세가 그리 나쁘지 않았는데…

이틀전에도 을파소는 국동대혈을 일신시키는 문제를 가지고 임금을 만났었다.

그날도 임금의 혈색이 그리 나쁘지 않았었다.

《대왕께서는 국상어른을 급히 모셔오라고 했소이다.》

병든 임금의 수명은 좀 늘일수 있어도 병을 고칠수 없고 어느때건 병세가 악화되면 천하명의일지라도 어쩔수 없다던 의신의 말이 생각난 을파소는 숨이 꺽 막히였다.

(그럼 오늘이?!…)

《어서 가시오이다.》

락도상의 재촉에 을파소는 다급히 수레에 올라탔다.

인우가 채찍을 휘둘렀다.

쏜살같이 달리는 수레의 뒤로 락도상이 말에 박차를 가하며 따랐다.

대궐앞에 이르니 길높은 궁성의 성벽을 빙 돌아가며 창을 꼬나든 왕궁호위군사들이 진을 치고있었다.

대궐문에서 을파소를 기다리던 내시들이 그를 안내했다.

내시들을 따라 침전에 들어서니 임금이 침상에 누워있었다.

임금의 머리맡에 울상이 된 우왕후가 서있고 의신은 임금앞에 무릎을 꿇고있었다.

황황히 다가간 을파소는 임금의 손을 덥석 부여잡았다. 손에서는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가슴이 철렁하는 동시에 눈물이 솟구쳤다.

제발 불행이 없어주었으면…

속으로 빌며 의신을 바라보니 그는 말없이 고개를 젓는것이였다.

더는 가망이 없다는 그 뜻에 을파소는 가슴이 터질것만 같았다.

지금은 울고있을 때가 아님을 속으로 뇌인 을파소가 눈굽을 닦으며 조심히 입을 열었다.

《대왕마마, 신 을파소 어명을 기다리오이다.》

창백한 얼굴에 한가닥 미소를 지은 임금이 힘겹게 말을 떼였다.

《국상과 왕후만 남고 다들 나가오.》

락도상과 의신이 나가서야 임금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짐은 국상을 더없이 믿소. 국상이 아니였다면 짐이 어찌 정사를 바로잡을수 있었겠소.》

그 말에 을파소는 격정이 솟구쳤다.

어찌 그런 과찬을… 지금껏 언제한번 의심이나 불신을 가진적 없이 자기를 내세워주고 믿어준 임금이 아니였던가. 그 임금이 지켜주고 떠밀어주는데야 누구인들 국상의 직분을 감당할수 없겠는가.

《아니오이다. 정사를 바로잡은것은 다 대왕마마께서 덕이 있기때문이오이다.》

《고맙소. 나에게는 인복이 있었소. 늦긴 했어도 국상을 만났기에 뜻대로 나라일을 바로잡을수 있은거요. 나와 국상사이에는 충신의 사이라기보다 부자지간의 정이 흘렀다고 해야 옳을게요. 난 그렇게 생각하오. 후― 아마 오늘이 국상과 마지막인것 같소. 간밤에도 졸도를 했는데… 어의의 말이 한번만 더 졸도를 하면 그땐…》

임금의 손을 꼭 잡고있는 을파소의 얼굴에서 눈물이 흐르고있었다.

어쩜 나라의 복이 이다지도 짧단 말인가. 옳바른 임금이 먼저 가려하다니… 늙마에 조정에 나와가지고 젊은 임금을 앞세우는 불충한 신하가 되였구나.

《국상, 울지 마오. 난 아버지와도 같이 친근한 그대를 국상으로 둔것을 큰 복으로 여기오. 국상이 아니였다면 난 벌써 잘못되였을것이고… 나라도 오늘과 같이 강해지지 못했을거요.》

《대왕마마.…》

《국상은 왕위를 누구에게 물려주었으면 하오?》

을파소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국상으로서 나라의 흥망이 결정되는 이 귀중한 순간에 잘못된 선택이 내려지게 한다면 두고두고 온 나라의 지탄을 면치 못하게 될것이다.

누구에게 대를 물려주어야 하는가고?…

이런 때 국상으로서 똑똑한 주견을 내놓아야 한다. 임금에게 덕이 있고없는가에 따라 나라가 흥하기도 하고 국운이 기울기도 한다.

을파소는 동시에 임금의 동생들인 발기와 연우, 계수를 그려보았다.

그 세명의 동생들가운데서 을파소의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은 연우였다.

순서를 따지면 마땅히 발기에게 대를 물려주어야 하지만 심술사나운 그가 나라를 가진다면 나라를 망쳐놓을것이였다.

안된다, 안돼!

《대왕마마, 신은 둘째전하만이 대왕님의 뜻을 옳바로 받들어나갈수 있다고 생각하오이다.》

임금의 얼굴에 홍조가 어리였다.

《국상의 생각이 천만번 지당하오. 난 그전에 발기를 태제로 점찍었댔소. 몸도 든든하고 무술에도 뛰여났기에 말이요. 그러나 지내보니… 아니더란 말이요.》

꺼져가는 생을 간신히 부여잡고 임금은 온몸의 힘을 모아 말을 이었다.

《내가 연우에게 뒤를 물려준다는 유언을 남기였다고 해도 사나운 발기가 반드시 가만있지 않을거요. 하지만 국상이 있으니 마음이 놓이오.

국상, 어련하겠지만 연우를 받들어 고구려를 보다 강대한 나라로 만들어주오.》

자기의 몸을 깡그리 태워서라도 이 길에서 물러서지 않을 을파소는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임금의 눈길이 다치면 오열을 터칠듯싶은 우왕후에게로 옮겨졌다.

한동안 그를 바라보던 임금의 눈길이 을파소에게 되돌아왔다.

《국상, 왕후를 잘 돌봐주오.》

《알겠소이다.》

미소를 지은 임금이 말했다.

《국상, 날 좀 일으켜주오.》

을파소는 눈물을 씹어삼키며 임금을 안아일으켰다.

을파소의 품에 안긴 임금은 마지막힘을 모아 입을 열었다.

《나의 장례를 간소하게 하오. 그리고 부디… 나를 잊지 말아주오.》

《대왕마마!》

을파소의 눈물이 임금의 얼굴에 떨어졌다.

이어 잠든듯 눈을 감은 임금에게서는 가는 숨결만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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