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 회)



제4장

2

리인모는 친목계의 동료인 상호의 부축을 받으며 수림속을 헤쳐나오고있었다. 잎이 누렇게 변해가는 넓은잎나무가 가득찬 수림속이였다.

그래서인지 수림속은 그 어떤 후광을 받은것처럼 사방이 환했다.

《이 어방이 그럼직해보이는데…》

리인모의 한팔을 어깨우에 걸메고 부축해주던 상호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멈춰섰다.

《잠간 쉬자구.》

그들은 아름이 넘는 쇠스레나무밑에 자리를 잡았다.

《인모, 아직두 아픈가?》

《젠장, 아프지 않은걸 엄살을 부리겠나?》

리인모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는 오늘 상호와 같이 숯구이를 할만한 장소를 찾아 헤매다가 갑자기 큰 곰을 발견하게 되였다. 억대우같은 장정들이라 먼저 인기척을 내면 곰도 피할수 있었으련만 당황한 나머지 들구뛰느라 덤벼치던 리인모가 무릎을 다치였다. 풀덤불에 가리웠던 바위부리에 한켠 무릎을 짓쪼은것이다.

《이 바쁜때 하필이면 무릎을…》

《자네탓이네. 괜히 겁에 질려서…》

상호가 퉁을 주었다. 키는 리인모보다 작았으나 몸집이 대단히 우람지고 뚝심도 센 상호였다. 조가령너머에서 화전농사를 짓다가 황수원수전공사장으로 와 인부노릇을 하고있는 그를 대상하는 과정에 마음이 끌린 리인모가 친목회성원으로 받아들였다.

《인모,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숯구이를 하겠다는건가?》

《자네 눈치가 없군. 이 친목계두령이 장가를 가야겠는데 밑천이 있어야 할게 아닌가?》

《흥, 또 무슨 꿍꿍이를 하자는거겠지.》

상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방금 다녀온 골안을 다시한번 더 돌아봐야겠다는것이다.

숯구이를 하자면 좋은 나무들도 많아야 하지만 샘물도 있고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편리한 조건들도 갖춰져있어야 한다. 농사물계도 밝고 숯구이를 해본 경험도 있는 상호는 처음에는 기막힌 명당자리라 하더니 차츰 도리를 저었었다. 숯구이자리로는 나무랄데 없으나 운반거리가 너무 멀고 길이 험해서 적당치 않을것이라는 주장이였다.

리인모는 속으로 웃었다. 상호의 말은 옳았으나 그대로 따를수는 없었다. 리인모에게 필요한것은 숯구이터가 아니라 오래지 않아 결성될 로동자돌격대의 비밀기지였다.

김정숙동지의 말씀에 의하면 황수원의 친목회를 반군사조직인 로동자돌격대로 개편해놓으면 없어서는 안될것이 비밀기지였다. 비밀기지는 로동자돌격대원들의 군사훈련과 필요한 전투행동을 비롯한 모든 활동거점으로, 후방기지로 되여야 했다. 그 비밀기지는 숯구이막, 약초재배지, 집단적인 농사적지 등으로 위장할수 있으며 지형상 필요한 조건을 갖추고있어야 하는것이다. 방금 돌아본 골안은 비밀기지로서는 아주 적합한 장소였다. 상호는 리인모의 마음속 내막은 모르고있지만 암만해도 미타한 생각을 버릴수 없는 모양이다. 일이 제대로 되여간다고 생각한 리인모였지만 마지못해 응하듯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난 그 자리가 몹시 욕심이 나더라니까. 너무 오래 꾸물거리진 말고 인차 올라오게.》

리인모는 상호가 사라지자 그대로 자리에 드러누웠다. 나무잎이 가득 깔려서 자리도 편안했다.

나무가지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짙푸르고 먼 가장자리에는 커다란 구름덩이가 북극의 얼음산처럼 은빛을 발산하며 까딱않고 걸려있었다. 드넓은 하늘공간으로는 수리개 한마리가 유유히 떠돌고있었다.

리인모는 저도 모르게 빙그레 웃었다.

지금쯤은 《꾀꼬리》가 합승차를 타고 후치령을 넘어가고있을텐데…

그러자 눈앞으로는 갑자기 생글생글 웃는 처녀의 모습이 실재처럼 떠올랐다. 학생복차림의 회초리처럼 날씬한 몸매에 단발머리를 한 처녀의 청초한 모습이였다.

정임이!

그가 바로 발목을 곱질러서 리인모의 잔등에 업힌채 캄캄한 범고개를 넘어갔던 녀학생이였다. 그 처녀가 억대우같은 사나이인 리인모의 마음속에 바위돌처럼 들어앉아서 좀처럼 진정을 못하게 만들어놓고있으니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라 하지 않을수 없었다.

리인모도 한때 장백이며 룡정에서 중학공부를 하면서 거리를 휩쓸며 다니는 녀학생들을 적지 않게 보았었다. 하지만 언제나 혐오와 경멸의 눈길로 그들을 흘겨보군 했었다. 그가 알건대 녀학생들이란 대개 남학생들에게 보내는 련애편지를 몇개씩 가지고 다니는 형편없는 바람둥이들이였다. 그자신이 그런 편지를 받은적이 있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친구에게도 그 녀학생의 편지가 있었다. 겉봉의 주소만 다를뿐 속지의 내용은 토 한자 틀리지 않는 꼭같은것이였다. 그때부터 멋을 부리며 추파를 던지는 녀학생이라면 질색을 하는 리인모였다. 그런데 정임이를 알게 된 다음부터는 녀학생들에 대한 그의 견해가 완전히 뒤집혀지고말았다. 녀학생들도 사람나름이지 하나같이 품행이 방정치 못한것은 아니였다. 정임이야말로 정말 신비스런 녀학생이였다. 언제나 친절한 웃음을 새물새물 앞세우는 명랑하고 발랄하고 다감한 처녀, 퐁퐁 솟아나는 옹달샘마냥 신선미를 안겨주는 정임이를 대할 때면 정신이 말쑥하게 맑아지군 하는것이였다. 게다가 정임은 노래도 기막히게 잘 부른다. 그러고보면 녀학교라는데가 지식뿐아니라 사람의 외모와 행동거지나 성격마저도 새롭게 다듬어주고 세련시켜주는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군 하였다.

리인모는 정임이와 별로 마주서서 이야기도 나누어보지 못했다. 정임이가 될수록이면 그런 기회를 피하군 했기때문이다. 어쩌다 만나는 경우에도 의도하는 말이 잘 통하지 않았다.

어제는 리인모가 이렇게 물은적이 있었다.

《언제면 학교를 졸업하게 되오?》

《래후년에 졸업하게 돼요.》

리인모에게는 그 래후년이 아득히 먼 앞날처럼 느껴졌다.

《졸업하면 뭘하겠소?》

《글쎄요. 가수가 되겠는지 소학교선생을 하겠는지 그건 그때 가봐야 알거예요.》

《가수? 그건 안되겠는데…》

리인모는 걱정스러웠다. 풍산땅에는 가수로 된 정임이를 받아들일만한 극장이 없었기때문이다. 제일 좋기는 정임이가 가수로 되는것을 막는 일이였다. 그것이 쉽사리 성사되겠는지…

《저, 내가 말이요. 정임이가 졸업할 때까지 기다려두 되겠소?》

《그건 왜요?》

정임은 말끄러미 그를 쳐다보았다. 리인모의 말뜻을 빤히 알면서도 아닌보살하고 딴전을 부리는것이다.

요걸 그저…

리인모는 속이 후끈 달아올랐다. 그는 원래 붙임성도 좋고 롱담과 익살로 어떤 사람이든 쉽사리 어울리군 하였다. 또한 구수한 이야기로 사람들의 마음을 끄당길줄 아는 능숙한 선동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안타깨비 《꾀꼬리》한테는 무슨 재주를 부리든 도무지 이가 들지 않는것이다.

《내가 그렇게두 미덥지 못하오?》

《예에?…》

《꾀꼬리》는 그 말을 기다리고나 있었던듯 갑자기 까르르 명쾌한 웃음으로 한곡조를 넘겼다. 그리고는 정색해서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래요.》

《꾀꼬리》는 아직도 리인모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노라 했다. 근거도 손으로 꼽았다. 원래는 리인모를 소년시절부터 반일투쟁에서 크게 소문을 낸 매우 뜻이 높은 사람으로 알고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어스름이 내리는 범고개를 넘다가 발목을 접질러 오도가도 못하는 정임이를 업어다준것으로 보아 의협심도 이만저만 아닌 사람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도무지 리해되지 않는 점들을 련이어 드러내보이는 리인모이기도 했다. 그렇게도 뜻이 높다던 사람이 양복점의 옷주문이나 받으러 여기저기 향방없이 다니는 건달군 같다는 세간의 평이 있는가 하면 읍거리에서는 능갈친 과일장사군의 모양새를 보여주기도 했던것이다.

《어느쪽이 진짜 모습인지…》

그러면서도 정임은 새물새물 웃으며 시까슬렀다.

《혹시 연극배우수업을 하시는게 아니예요?》

《아니, 그럼…》

리인모는 말문이 꺽 막혔다. 듣고보니 정임이의 눈에 비쳐든 리인모라는 인간은 도무지 종잡을수 없는 귀신이였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웃지도 울지도 못할 기막힌 일이였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정임인 이 리인모를 천하의 둘도 없는 건달군이고 협잡군으로 알고있단 말이지, 세상의 제일 나쁜 사람으로…》

《아니, 왜 이러세요?》

리인모의 낯색이 달라지는것을 보고 《꾀꼬리》도 겁이 났던 모양이다.

《그렇다구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건 아니예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오?》

《그래요. 난 이번에 만나서 좋은 인상을 가지구 간다는걸 말하면서 작별인사를 하려던 참이예요.》

작별인사? 리인모는 가슴이 덜컥 했다. 그것은 정임이가 떠나간다는 말이며 헤여져야 한다는 말이였다. 또 이제 헤여지면 아주 놓쳐버릴수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는 거칠게 따져물었다.

《왜 그렇게 빨리 떠난다는거요?》

그 말에 정임은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자기는 아버지의 삼년상삼아 추석이여서 집으로 왔는데 이제는 학교에 되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할수 없는 일이였다.

《그럼 래일 바래주겠소.》

《아니, 그러지 마세요. 어머니랑 친척들앞에서 불편하거던요.》

금시 손에 잡힐듯 하던 《꾀꼬리》는 또 어느새 몸을 사리였다.

늘 이런 식이였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리인모의 넋을 사로잡은 정임은 언제 한번 진지한 이야기를 건네지 못하게 요술을 피우더니만 아주 날아가버렸다. 저 하늘아래 정임이가 가닿을 바다가의 도시가 있을것이다.

좋아, 오늘은 날아갔다만 깜찍한 《꾀꼬리》야, 이 리인모가 살아있는 한 넌 어데도 아주 날아가진 못해.…

얼마후 상호가 돌아왔다. 곰발같은 손에는 잣송이를 몇개나 들고있었다. 그는 리인모의 곁에 잣송이를 던져놓고는 지하족을 신은 발로 솜씨있게 짓밟아 알들이 빠져나오게 했다.

《골안을 다시 돌아봤네. 바위샘두 있구 주변을 일구면 땅이 걸어서 농사두 잘되겠더군.》

《그래?》

《길이 험해서 산림간수들두 오자구 안할거구… 하지만 숯구이보다도 비밀모의를 하기에 더 안성맞춤일것 같구만.》

리인모는 잣알을 입에 넣고 깨물다가 멈추고 수상쩍은 눈길로 상호를 바라보았다. 골안이 전민항쟁준비를 위한 로동자돌격대의 비밀기지를 꾸리는데 필요한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있다는것을 이 능구렝이가 눈치챈것이 아닐가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물론 상호도 앞으로는 알게 될것이지만 아직은 때이른 일이였다.

《그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그저 해보는 소리지.》

상호는 능청스럽게 대답하며 짓이겨놓은 잣송이에서 잣알을 꺼내여 부지런히 까기 시작했다.

리인모는 상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상호도 친목계에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정식으로 조직에 망라시키지는 않았다. 물론 친목계에 받아들인 사람들은 다 조직성원으로 만들수 있다는 전제를 두고있었다. 그러면서 생활을 통해 이모저모로 검열을 하는중이였다. 그런데 상호는 분명 무언가 낌새를 챈것 같았다.

이 능구렝이야, 오늘은 네가 어떤 인물인지 이 리인모형님한테 다 발가놓아야 해.

사실 리인모는 오늘 단순히 비밀기지를 꾸리는데 적합한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서만 상호를 데리고 온것은 아니였다. 그보다 훨씬 절박한 사정이 있었다. 그래서 곰한테 쫓길 때 약간 쓸린 무릎을 크게 다친것처럼 요란스럽게 엄살을 부리면서 말꼭지를 뗄 기회만을 노리고있었던것이다.

《상호, 언제부터 자네하구 조용히 할말이 있었는데…》

《뭘 할말이 있다구…》

상호는 전혀 흥미가 없다는듯 부지런히 잣알을 까기만 했다.

엉큼하기란! 리인모는 어이없이 그 모양을 바라보다가 불쑥 물었다.

《자네 리기율이를 알지? 같은 천남면사람이니까.》

《아네. 》

《그를 만나자면 어떡해야 하나?…》

《글쎄… 어디론지 돈벌일 갔다는 소린 들었는데…》

상호가 리기율이의 행처를 아는지 모르는지는 표정이나 행동거지를 봐서는 가늠할수 없었다.

리인모는 참을성있게 물었다.

《남수는 어데 있나?》

《글쎄 …》

리인모가 몇사람의 이름을 련속 들이댔으나 상호는 다 모른다고 했다. 리인모가 왜 그들을 찾는지도 묻지 않았다. 그러나 리인모는 상호가 그들에 대하여 전혀 모른다고 보지 않았다. 리인모네 친목계에 망라되여있는 천도교청년들이나 친목계밖의 수전공사장 천도교인들은 다 상호의 주위에 뭉쳐있었다. 입이 무거운데다 남한테 싫은 소리 한마디 하는 법을 모르는 상호이지만 천도교청년들은 어디까지나 상호의 눈치를 보며 상호의 의사에 따라 움직이군 했다. 리인모는 벌써부터 이것을 눈치채고는 있었으나 아무 내색도 내지 않고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까닭도 알아야 하고 김정숙동지께서 관심을 두고계시는 사람들도 상호를 통해 찾아내야 했다. 그래서 오늘은 상호를 대상으로 품을 들여 속뽑이를 하는중이다. 김정숙동지의 곡진한 당부야말로 리인모에게는 티끌만큼도 어길수 없는 가장 중대한 혁명과업이였다.

《이제와서 자네한테 내 뭘 숨기겠나? 사실 난 조국광복회 회원이라네.》

《그건 뭐라는건가?》

상호는 여전히 잣알을 입에 넣고 까고있었다. 리인모가 조국광복회 회원이라는 소리에도 그저 덤덤해있을뿐이였다. 그것은 상호도 이미 그쯤한것은 알고있었다는것을 말해준다.

어디 보자, 네가 얼마나 버티는가.

리인모는 한수 더 뜨기 시작했다.

《우린 자네를 믿을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하구 매우 중요한 회의에 참가시키려구 했었네.》

《…》

《그런데 아쉽게두 그렇게 되지 못할것 같네. 천도교인이라면 기율이나 남수네 같은 사람들만 참가시키라는거네.》

《별소릴 다 듣겠군.》

상호는 코웃음을 쳤다. 무슨 회의길래 사람을 그렇게 가리느냐는것이다.

리인모는 코웃음을 치는 그에게 오금을 박았다.

《그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천도교인들은 믿을수 없다는거네. 자네도 알지 않나, 추석날의 묘비파괴사건 말이네.》

《할수 없지.》

상호는 끄떡도 안했다. 우리 교인들을 믿을수 없다면 자네들끼리 회의를 하라는 빈정거림이였다.

이런, 젠장!

《이번 회의는 김일성장군님께서 보내신분이 소집하는 회의라네.》

《어엉?…》

상호의 손에서 잣알들이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지금까지 덤덤해있던 무표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뚫어지게 리인모를 바라보다가 입을 뗐다.

《좀 다시 말해주게. 이자 무어라구?…》

《자네가 정 참가하구싶다면 그 친구들을 찾아보게. 그 친구들의 보증이 있어야만 자네두 회의에 참가할수 있다 그 말이네.》

《보증?》

리인모의 말에 감질이 난 상호도 마침내 손을 들고말았다.

《이보게 인모, 하루이틀만 말미를 줄수 없겠나? 내 꼭 알아볼테니…》

《오늘 밤까진 대답을 주어야 하네.》

리인모는 더욱 바싹 죄여댔다. 래일엔 벌써 늦을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상호는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알겠네. 그럼 난 먼저 가겠네.》

《아니, 날 혼자 놔두구?》

《지팽이를 만들어가지구 천천히 오게.》

상호는 정신없이 산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리인모의 입가에서는 가벼운 웃음이 떠올랐다.

상호, 이 오줌싸개같은 친구야. 아무렴 이 리인모가 너희들한테 업히워 놀아날줄 알았나, 어림두 없지.

리인모는 리기율이며 남수와 같은 천도교인들이 제발로 찾아오리라는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결국 김정숙동지께서 주신 과업은 전망이 내다보이기 시작했다.

인젠 군복문제에 달라붙어야지.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릎이 약간 시큰거리기는 했으나 성큼성큼 수림속으로 걸어갔다.

저녁무렵에 그는 황수원의 신광양복점으로 찾아갔다.

마침 주인인 성룡이가 있었다. 눈썰미가 있고 손재간이 유별나서 무어나 다 만들어낼줄 아는 성룡은 리인모의 요구에 따라 이 양복점을 차려놓았다. 처음 해보는 일이지만 양복점을 내온지 얼마 안 가서 어느새 재봉질은 물론 재단까지 척척 해내는 사람으로 되였다. 리인모의 오른팔이라 할수 있는 그는 지금 조직의 련락책임자의 직분까지 맡아안고 있었다.

그는 도깨비바늘들이 어지럽게 달라붙은 리인모의 바지가랭이며 옷주제를 의아쩍게 바라보며 온종일 어데 갔다가 인제야 오느냐고 물었다. 리인모를 찾는 사람들이 한둘만도 아니라는것이다.

《재봉침은 제대루 돌아가겠지?》

《다 보면서 뭘 그러우?》

《군복을 만들어야겠네, 겨울군복을…》

성룡은 대뜸 눈쌀을 찌프렸다. 양복점을 꾸리자고 해서 애써 꾸려놓았더니 나중엔 왜놈군대 군복까지 지으라는가고 볼부은 소리를 했다.

《난 못하겠으니 인모형이나 해보우.》

《내가 말하는건 혁명군의 군복이네.》

《아니, 혁명군이 조선으로 나왔소?》

《쉿!》

리인모는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다세웠다. 눈섭을 곤두세우며 그런 내막은 묻지 않게 되여있지 않느냐는 으름장에 성룡은 뻐꾹소리 한마디 못하고 시쁘둥해졌다.

《몇벌이나 만들어야 되오?》

《서른벌쯤…》

《치수를 대주오.》

《적어두게. 나만 한 꺽다리군복은 네벌, 상호만 한 사람은 세벌, 조꼬맹이 태섭이가 입을만 한건 다섯벌, 나머지는 다 자네 몸을 기준하면 돼.》

성룡은 긴장된 표정으로 수자들을 적어나갔다. 그리고나서는 치수를 적던 공책이며 연필을 집어던졌다.

《정 이럴내기요? 같은 조직성원이라면서 자기만 혁명군부대에 가보구선 나같은건 알기를…》

《아, 아니야. 자넨 별난 오해를 다하는군.》

《말 마우. 가보지두 않구 꺽다리, 뚱보, 조꼬맹이가 몇이라는걸 어떻게 아오? 난 인모형이 그런 사람인줄 몰랐소.》

성룡은 그냥 우둘렁거렸다. 리인모가 늘 자기를 오른팔이요 뭐요 하다가도 요긴한 대목에서는 쏙 빼놓는다고 불만을 터뜨리는것이다.

리인모는 말문이 막혔다. 혁명군의 겨울군복을 만들라는것은 김정숙동지의 부탁이였다. 리인모네가 신광양복점을 가지고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신 그이께서는 재봉기의 성능이며 재봉사의 능력을 알아보시고 그런 과업을 주셨던것이다. 군복의 수량이며 개개의 치수에 대해서까지… 그이께서는 조직관계자들의 모임이 있은 다음에는 군복제작과 관련한 자금지원 같은것도 조직하겠노라 하시였다. 그렇다고 리인모는 그 사연을 그대로 말할수도 없어서 상급의 지시를 받았노라며 한참이나 성룡이를 구슬리느라 땀을 뺐다.

《우린 군복만이 아니라 털모자두 만들어야 하구 솜장갑과 버선, 행전까지 다 만들어야 한다는걸 알아두게.》

《인모형은 셈평이 좋게 대답을 잘했는데 자금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오?》

《인차 숯구이를 해서 자금을 뽑아내자는거야. 오늘 그래서 상호하구 같이 산판을 뒤지다가 멋진 자리두 골랐으니 걱정말라니까.》

《모르겠소, 난…》

성룡은 그냥 성이 풀리지 않아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때 문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용석이가 나타났다.

《아, 용석이구나.》

리인모도 용석이가 김정숙동지와 함께 온 혁명군의 소년대원이라는것을 알고있었다.

《누나가 보내는거예요.》

용석은 어느새 꺼내들었는지 손에서 바늘처럼 돌돌만 미농지를 리인모에게 넘겨주었다.

거기에는 비밀모임을 모레 저녁에 진행한다는것과 임북술어머니의 생일을 축하하러 사람들이 모여오는것처럼 위장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적혀있었다.

《모레 저녁이라? 임북술이모님의 생일놀이란 말이지? 생각두 참…》

《그리고 여기 공사장에 남수란 사람이 있을수 있대요. 천도교사람 말이예요.》

용석은 홍군쪽에서 온 통보이니 꼭 찾아보라는 김정숙동지의 당부를 전하였다.

리인모는 천도교인들을 찾는 문제는 풀릴것 같다고 했다.

《모레면 공작원동지가 그들을 만나보시게 될거라구 알려드려라.》

《고마와요. 누나가 그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데…》

용석은 기쁜 소식을 빨리 전해야겠다며 급히 되돌아갔다.

리인모는 멀어져가는 용석을 바라보며 풍산주인인 자기의 본분을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멀리 련두평쪽에 가있는 주경포가 지금 무엇을 하고있는지 자못 걱정스러웠다.

그 친구도 공작원동지의 말씀을 어기지 말아야겠는데…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mypeople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이전페지   다음페지

도서련재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39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38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37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36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35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34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33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32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31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30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29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28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27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26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25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24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23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22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21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20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19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18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17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16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15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14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13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12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11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10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9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8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7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6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4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5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3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2회 총서 《충성의 한길에서》 중에서 장편소설 《사령부의 특사》 제1회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