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 회)


제4장

 

1

날이 어둡자 손님들로 붐비던 초평덕국수집도 조용해졌다. 래일의 영업준비로 부엌간을 쉴새없이 들락날락하던 임북술마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추석달이 문창호지를 희붐하게 비치고있는 너렁청한 정지방에서 김정숙동지께서는 등잔심지를 돋구시고 뜨개질을 하고계시였다.

그이의 발치에는 털실퉁구리가 담긴 반짇고리가 놓여있었다.

그이께서는 지금 겨울나이 털내의를 뜨시는중이였다. 쉴새없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뜨개바늘이 그대로 긴장된 사색의 련속이나 다름없었다.

이제와서 돌이켜보면 어제와 오늘 이틀동안 신정윤의 묘소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그 모든 일들이 벌써 아득히 흘러간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시였다. 아마 초평덕에 돌아오신 순간부터 새로운 일거리들을 두고 사색을 모아야 하는 까닭일것이다. 그 일거리들이란 이미 예정했던대로 흩어져있는 조직관계자들의 비밀모임준비였다. 참가대상들을 선발하는 일들은 크게 문제시될것은 없었다. 행방을 감춘 천도교의 생산유격대성원들을 찾는 일도 사방에 줄을 놓은만큼 성사를 볼수 있었다. 생산유격대의 핵심인물인 리기율이 어제 읍거리에 나타났다질 않는가. 걸린 문제는 비밀모임장소를 정하는것이였다. 신정윤의 묘비사건때문에 그이께서는 옹근 이틀이나 시간을 잃으시였다. 물론 그동안 천도교인들을 상대로 벌리는 놈들의 음모책동을 일시나마 눌러놓았으며 비록 완전무결하다고는 할수 없으나 홍설란의 마음도 눅잦혀 놓았다. 하지만 그이자신은 놈들의 감시속에 들게 되고 그만큼 공작은 어렵게 되였다. 특히 여러 사람들을 모여놓고 비밀모임을 한다는것은 매우 힘든 일이였다.

아무래도 비밀모임장소로는 이 초평덕이 제일 적중할것 같다. 놈들의 주목이 나한테로 집중되고있는만큼 초평덕의 이 국수집이라면 등잔밑이라고 할수 있지 않을가. 그래, 지금 형편에서는 이보다 더 나은 장소란 없어.

가물거리는 등잔불밑에서 그이의 두눈이 새별처럼 빛나고있었다. 오래동안 바재이던 결심을 드디여 내렸다고 할수 있었다.

집주변을 돌아보겠다며 나갔던 용석이가 들어서며 가까이에 다가앉았다. 낯색이 좋지 않았다.

《방금전에 허병팔이란 놈이 자전거를 타고 마을에 나타났는데 잡화가계에 들어가서는 나오지 않고있어요.》

허병팔이 경찰의 밀정이라는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였다. 신정윤의 묘비를 마사버리도록 꼬드긴 놈도 허병팔이고 순박한 천도교청년들에게 몽둥이를 쥐여주며 큰 싸움판을 벌려놓으려 한 놈도 허병팔이였다.

허병팔의 정체를 알게 된 원제민은 천둥같이 노하여 당장 붙잡아다 처단해버리겠다고 펄펄 뛰였다.

《천벌을 맞을 놈 같으니라구. 할짓이 없어 역적질을 한단 말인가? 그놈을 더이상 살려둬선 안되겠네.》

《종리원장님, 그까짓 놈때문에 너무 마음을 쓰실건 없습니다.》

그때 김정숙동지께서 분노로 당장 무슨 일을 낼것 같은 원제민을 겨우 달래여 진정시키시였다.

그놈을 처단해버리면 오히려 놈들한테 탄압의 구실을 주게 된다, 정체가 드러난 이상 허병팔은 놈들의 끄나불노릇도 할수 없게 되여있다, 놈들의 거치장스러운 짐으로밖에 안되는 허병팔이를 처단하는것은 오히려 놈들을 도와주는것으로 될것이다, 그러니 교인들이 굳게 뭉쳐 그놈을 철저히 고립시키면 아무 맥도 추지 못할것이라고 원제민을 차근차근 설득시키시였다.

《그놈을 공개적인 교인들의 모임을 열고 엄정한 천도교의 륜리를 파괴한데 대해 죄상을 폭로한 다음 교단에서 추방시키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역시 생각이 다르군. 그렇게 하겠네.》

일은 그렇게 되였다. 천도교인들의 긴급모임이 열리고 허병팔의 온갖 비행들이 륜리도덕적측면에서 신랄히 론의되였다. 그리고 천도교인들의 낯에 흙칠을 한 허병팔을 교단에서 내쫓아버렸다. 그런데 허병팔이 초평덕에 나타나 역시 밀정인 가게주인네 집으로 들어가배겼다고 하니 무심히 대할 일이 아니였다.

《누나.》

용석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뗐다.

《누난 비밀근거지에 가있고 대신 내가 통신을 나르는 방법으로 공작을 밀고나가자는 생각이예요.》

생각을 많이 하고 내비치는 말이였다. 아무리 위험하다 해도 임무수행만은 잊지 않고있는 용석이였다.

《용석이의 마음은 알만 하지만 내가 여기를 떠선 안돼.》

《그건 왜요?》

《놈들이 큰 소동을 일으킬테니까.》

김정숙동지께서는 그 근거를 차근차근 설명해주시였다.

신정윤은 특수회원으로서 피치 못할 사정때문에 정체가 드러나 체포된것 같다. 놈들로서는 체포한 신정윤을 두고 몹시 놀랐을것이다.

지난해 풍산지구조직이 드러났지만 신정윤의 이름은 어느 조직명단에도 올라있지 않았기때문이다. 그래서 놈들은 신정윤을 우리 사령부와의 련계를 가지고 깊숙이 잠복해있은 공작원이라 단정했을수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하나 굴복시키려 별의별 악행을 다한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신정윤은 끝까지 싸우다가 희생되였다고 추측된다. 크게 실수를 한 놈들은 홍설란을 원제민이와 천도교인들을 비방중상하는 리용물로 써먹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함풍려관에 물샐틈없는 감시망을 꾸려놓았다. 반드시 우리 사령부에서 사람이 올것이라 타산하고 그물을 쳐놓은셈이다. 동시에 묘비파괴사건도 조작했다. 홍설란을 더욱 단단히 틀어쥐고 천도교인들을 짓밟아버릴 속심이였을것이다. 그런데 추석날이라는 구실을 내들고 그이께서 의도적으로 홍설란이와 접촉하여 흉계가 꾸며지는 묘소현장까지 가시였다. 또한 사건현장에서 쓰러진 홍설란을 꺼리낌없이 업어다 시중을 들어주셨을뿐아니라 원제민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내세워 실로 눈깜빡할 사이에 새 묘비까지 가져다 세워주시였다. 이것은 놈들의 주목을 끌지 않을수 없는 일이다. 놈들은 그이의 정체를 확인하고 움직임을 지켜보기 위해 묘소에서 체포된 사람들까지 다 내놓았다. 그리고는 그이의 일거일동을 숨죽이고 감시하고있는것이다.…

《이런 때 내가 자취를 감추면 대소동이 일어나 숱한 사람들이 붙잡혀갈게구 나중엔 사령부에서 받은 임무도 수행 못하게 될수 있어.》

《정말 그럴수 있겠군요.》

용석이도 동감을 표시했다. 그만큼 용석이도 대세를 가려볼줄 아는 눈을 가지고있다고 할수 있었다. 그러나 처음보다 더 불안해하였다.

《그럼 공작을 어떻게 해나간단 말이예요?》

《임무야 어떡하든 수행해내야지.》

그이께서는 미소를 지으시였다.

《난 어려운 일에 부닥칠 때마다 장군님께서라면 이 정황을 어떻게 풀어나가실가 하고 생각하군 해.》

그이께서는 또다시 뜨개질에 집념하시는듯 했다. 뜻하지 않은 일로 공작에 난관이 조성되고 자신까지도 놈들의 감시를 받게 된 때로부터 장군님의 안목으로 타개책을 열어나가기 위해 무척이나 고심해온 그이이시였다.

《난 놈들과 숨박곡질을 해보자는거야. 말하자면 놈들의 시선을 나한테 모으는 그사이에 원제민종리원장이랑 황수원과 련두평쪽에서 마음 놓구 제 할바를 하게 하자는거지. 여기서 비밀모임두 하구…》

용석은 그이의 말씀을 마디마디 새겨보는듯 하더니 그만 손을 내저었다. 터무니없는 모험이며 위험한 줄타기라는것이다.

《누나에게 놈들의 시선을 모은다는게 말이 돼요? 어느 순간에 어떻게 체포될지도 모르는데… 이번에도 도천리때처럼 무사할것 같아요?》

그이께서는 지난해 여름 도천리공작때 불의의 정황에서 어쩔수없이 《정안군》놈들에게 체포되시였던 일을 회상하시였다.

하지만 놈들도 정확한 단서는 쥐고있지 못하고있었고 도천리와 하강구전반에 걸쳐 꾸려진 조직들은 매우 튼튼했다. 하기에 며칠동안 그이께서 무서운 고초를 이겨내실 때 조직은 수많은 군중을 발동시켜 《량민보증서》를 만드는 등 적극적이고 주동적인 활동으로 무사히 놓여나오시게 했던것이다.

지금은 그때와 사정이 정반대이다. 조직들은 파괴된채 수습되지 못한 상태이다. 게다가 상대는 《정안군》이나 위만경찰이 아니라 악질적인 일본경찰들이다. 그리고 그이께서는 여기 풍산지구의 공작을 인차 마무리하실 계획을 가지고 오셨기때문에 자신의 신원에 대한 준비를 면밀하게 갖추지 못하고계시였다. 이제라도 경찰이 그이의 신원확인에 달라붙는다면 며칠 안 가 폭로될판이였다. 용석이도 그것을 너무나 잘 알기때문에 이렇게 완강하게 반대할것이다.

《용석아, 나도 다 타산해봤어. 승산이 있는 일이니 마음놓아도 일없을것 같다.》

《난 그런 타산이니 승산이니 하는건 몰라요. 그러나 누나에게 함부로 모험할 권리가 없다는것만은 잘 알아요.》

《내 말을 마저 들어봐. 놈들은 서뿔리 나를 다치지 못해. 물론 인제는 놈들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은 하겠지만 무슨 증거는 아직 못잡았을거야. 또 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어떤 사람들과 련계를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는 조건에서 그걸 파악할 때까진 지켜보기나 하겠지. 난 놈들의 이 음흉한 속심을 유리하게 써먹자는거야.》

용석은 그래도 불안을 털어버리지 못했다. 한참동안이나 무엇을 생각하는듯 하더니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예요. 내가 왜놈들을 몰라서요? 그놈들은 성급하고 조폭해서 자그마한 단서라도 잡으면 대뜸 칼을 뽑아든단 말이예요. 저 앞집의 박순기 같은 놈도 누나한테서 티끌만큼 수상한 기미만 발견하기 바쁘게 총을 내대며 묶어가자고 하겠는데… 누난 지금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자기자신도 속이고있어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대견한 눈길로 용석을 지켜보시였다. 자신의 속마음을 너무도 환히 들여다보는것이 놀라우실뿐이였다. 용석이가 그저 신변안전만 마음을 쓴것이 아니라 여기 풍산땅에서의 공작을 두고 나름대로 마음을 많이 썼다는것이 력력히 알리였다.

《그러지 말아.》

그이께서는 여전히 뜨개바늘을 멈추지 않으시였다.

《우리야 장군님만을 믿고 사는 전사들이 아니냐? 그런데 힘들고 위험하다고 해서 장군님의 기대에 어긋나는짓이야 할수 없지. 우린 죽으나사나 임무만은 꼭 해내야 해.》

《그건 나도 다 알아요. 난 그저 누나가…》

《그럼 우린 합의를 본셈이구나.》

그이께서는 공작수행에서 용석이의 의견을 충분히 받아들이겠노라 하시였다. 오직 용석이를 통해서만 모든 사람들과의 련계를 가지고 공작을 밀고나가실 작정이였다. 당장은 핵심적인 조직관계자들의 비밀모임부터 성사시키기로 하시였다.

《비밀모임은 바로 이 집에서 가지자는거야.》

《이 집에서요?》

《놈들로서는 감시를 받고있는 내가 여기서 비밀모임을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할거야. 그래서 숨박곡질이라는거지.》

그이께서는 비밀련락에 분이도 인입시킬 작정이시였다.

《분이가 인입되면 용석이의 부담도 훨씬 줄어들거야.》

《분이누나가 우리편으로 되리라고는 생각질 못했어요.》

《나에게 잡화가게주인을 주의하라고 귀띔해준것도 분이야.》

이때 어디론가 나갔던 임북술이 방안으로 들어왔다.

《아지민 뜨개질솜씨두 귀신같구만. 어느새 벌써 반나마 떴구만.》

임북술이 다가와 모양이 잡혀가는 털내의를 끄당겨 찬찬히 살펴보며 감탄하여 혀를 끌끌 찼다.

그이께서는 미소를 지으시였다.

《어머니가 주신 털실이 얼마나 좋은지 뜨개질도 신바람이 나거던요.》

《털실이야 나무랄데 없지.》

임북술은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사실 털실은 햇솜같이 희고 깨끗한 고급품이였다. 이런 털실을 얻자면 품질이 좋은 양털이 있어야 하고 또 가공기술도 높아야 했다. 우선 양털을 재물에 삶아서 기름기와 때를 제거하고 잘 말리워야 한다. 그리고 골고루 피루어놓은 다음 뺑뺑이를 돌려 실을 뽑아내는 재간도 비상해야 되는것이다. 그만큼 많은 공력과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얻어내기 힘든 털실이였다. 자기 손으로 가공해낸 털실을 고이 간수해오던 임북술은 오래지 않아 겨울도 올터인데 털내의를 떠입으라고 그이께 서슴없이 내주었다.

임북술은 반나마 떠진 털내의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허리품이 너무 솔지 않은가고 머리를 기웃거렸다.

《그럴가요?》

그이께서는 방긋 웃으시였다. 그러나 자신께서 입을것이 아니라는 말은 차마 하실수 없었다.

《어머니,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시겠어요?》

《나보구 어머니라면서 그런 말도 하나?》

임북술은 짐짓 노여운 기색을 지었다.

《어서 말하라구. 아지미의 부탁이라면 하늘에 가서 별두 따오지 않으리.》

《종리원장님때문에 그러는데…》

임북술의 얼굴에서는 대뜸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는 잠시 뜨개질을 하시는 그이의 손놀림만을 바라보더니 바투 다가앉으며 조심스레 물었다.

《원장어른한테 무슨 일이 생겼수?》

《별일은 아닌데 좀 걱정거리들이 생겼나봐요.》

《그러지 않아도 요즘은 늘 무거운 기색이던데 언제 한번 마음 펴일 때가 있겠는지…》

원제민에 대한 관심이 유별난 임북술이였다. 읍과는 멀리 떨어진 초평덕에서 살지만 원제민의 신상에서 나타나는 사소한 변화도 놓침없이 알아차리고는 왼심을 쓰군 하는것이다. 구실만 생기면 무어든 보따리에 꿍져가지고 종리원으로 다녀와야 마음을 놓는 임북술이였다. 원제민이도 역시 임북술이라면 자신처럼 믿는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 두사람은 그 이상 더 가까와지기를 꺼리는듯 매우 조심스럽게 대하며 일정한 간격을 두고있는것이 눈에 헨둥하게 알리였다. 임북술은 그렇지 않은데 원제민의쪽에서 더 자중하는것 같았다. 아마 엄혹한 정세의 요구도 그렇고 또 자기를 질시하는 주경포의 비위를 거슬릴가봐 무척 마음을 쓰는듯도 하였다.

《종리원장님은 마땅히 다정한 이웃처럼 가까이 지내면서 마음을 합쳐야 할 사람들이 서로 등을 돌려대고 엇나가는 일때문에 괴로와하는것 같아요.》

《그러게 말이요. 그 어른이 어쨌다구 뒤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자꾸 생기는지… 난 우리 경포때문에 늘 원장어른을 대하는게 바늘방석에 앉은것만 같아서 속상하다오.》

《어머니, 그래서 한번 음식상이랑 푸짐히 차려놓고 종리원장님이랑 여러 사람들이 모여앉아 서로 옥맺힌 마음들을 풀었으면 하는 생각인데 어때요?》

《되놀이를 하자구?》

임북술의 두눈이 커졌다. 되놀이란 마을의 녀인네들이 함께 모여서 음식도 나누고 노래와 춤으로 한때를 즐기는 소박한 민속놀이를 말한다. 임북술은 그이의 생각이 좋기는 하지만 남정네들이 선뜻 응해나서겠는지 몰라서 걱정하였다.

《그러게 되놀이라 하지 말고 어머니의 생신날이라고 하는게 어때요?》

《에그, 난 생일이 어느날인지두 모르구 생일이란걸 쇠본적두 없다우.》

《그건 저두 알아요. 하지만 종리원장님이랑 여러 사람들을 모셔오자면 아무래두 어머니의 생일이라 하는게 제일 합당할것 같아요. 사람들이 모두 화목하게 지낼수만 있다면야 무얼 주저할게 있어요?》

《글쎄 그렇긴 한데…》

임북술은 귀가 솔깃해하면서도 주저하는 기색이였다. 소문을 크게 내여 손님들을 청해다놓구 변변히 대접을 못하면 야단이라는 걱정이였다.

단순하고도 인심 후한 임북술이다운 걱정이라 할수 있었다.

《그런 걱정은 마세요. 저두 다 생각이 있으니 어머닌 그저 찬성만 해주세요.》

《그럼 아지미덕에 나두 생일을 한번 쇠본다?》

이리하여 임북술의 생일날을 구실로 사람들을 초청하는 문제가 락착되였다. 이것은 그이께서 깊이 무르익혀오신 생각이였다. 그이한테서 감시의 눈초리를 떼지 않고있는 놈들로서는 대단히 수상쩍게 여길 일이였다. 그러나 사람들을 모여놓고 비밀모임을 가지자면 이런 공개적인 방법보다 더 좋은 뾰족한 수는 없었다. 생일놀이와 같이 적중한 구실을 내대고 필요한 대책을 세우면 못해낼것도 없었다.

임북술은 원제민이도 초청하자는 소리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 싱글벙글했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표정을 바꾸었다.

《그런데 걱정거리가 하나 있다우. 저 문조리에서 기별을 보내왔는데…》

임북술은 문조리에서 보내온 소식을 전하였다. 집안의 막내녀석이 부모의 승낙도 받지 않고 제멋대로 혼약을 파기해버렸다는 소문을 얻어들은 주경포의 아버지는 노발대발하였다고 한다. 60나이를 훨씬 넘기였으나 아직 기가 펄펄 살아있는 그는 막내녀석이 집까지 뛰쳐나가서 인륜에 어긋나는짓을 하는것을 그저 앉아서 보고만 있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파혼이란 있을수 없으며 초평덕의 색시감을 무작정 가마에 태워다놓고 신랑없는 외짝결혼잔치라도 벌려놓겠노라고 대소동이라는것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이 사실에 무어라 말씀을 잇지 못하시였다.

주경포의 즉흥적인 혼약파기가 이런 후과까지 몰아올줄이야 어찌 짐작이나 했으랴.

《문조리아버님이 혼약을 파기한다는 소식에 너무 노여워서 하시는 말씀이겠지 아무렴 정말로 가마를 보내오기야 하겠어요?》

《에그, 말도 마오. 경포 애비란 늙은인 한번 입밖에 낸 말은 거둘줄 모르는 하늘소발통이라오.》

임북술의 말에 의하면 주경포의 아버지는 한때 독립군노릇도 한적이 있다는데 성나면 분별을 잃고 어떤 일도 가리지 않는다고 했다. 정말 분이를 태워가려고 가마를 보내올수도 있다는것이다.

《경포의 형되는 사람도 그래서 나더러 분이를 구슬려보라고 기별을 보내왔는데 족제비도 낯짝이 있다구 내 무슨 체면에 분이를…》

《난사는 난사로군요.》

그이께서는 그런 해괴한 일은 생기지 않겠지만 문조리의 소동을 꺼버리지 않는다면 주경포의 처지가 매우 딱해질수 있다고 생각하시였다. 장군님을 받들어 혁명을 한다는 주경포가, 또 사람들을 깨우쳐주고 이끌어주어야 할 주경포가 세상의 웃음거리를 만들어낸다면 인격상 커다란 허물로 될수 있었다. 그것은 풍산지구에서의 전민항쟁준비에 한몫 크게 해야 할 주경포의 활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기마련이다.

《어머니, 우리 힘을 합쳐 그 재난도 막아보자요. 그리고 모레는 꼭 어머니의 생일잔치를 하도록 준비를 잘 갖춰놓자요.》

《아니, 그렇게 빨리?》

《빠를수록 좋지요.》

김정숙동지의 눈가에서는 밝은 미소가 해빛처럼 활짝 피여났다. 비밀모임장소까지 정해진만큼 일을 전격적으로 밀고나가실수 있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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