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 회)


제 3 장


임금은 궁궐에서 손님을 맞이하며

나라안에 훌륭한 인재없다 말을 말라네

(리익의 악부시 《서압록의 노래》중에서)


(1)


동부의 안류를 천거하매 임금이 안류를 불러서 나라정사를 맡겼다.

안류가 왕에게 말하기를 《미천한 저는 용렬하고 어리석어서 진실로 중대한 나라일에 참여할수 없나이다. 서압록고을 좌물촌에 사는 을파소라는 사람은 류리왕때의 대신이였던 을소의 후손인데 그의 성질이 굳세고 지혜가 많으나 세상에 쓰이지 못하므로 농사를 지어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고있사온바 대왕께서 정녕 나라를 바로 다스리려고 하신다면 이 사람이 아니고는 안될것이오이다.》라고 하였다.(《삼국사기》권제45 렬전 제5)

해가 서산마루로 기울어질무렵 백마를 탄 안류는 국내성의 동문을 나섰다.

그의 앞뒤로 수십명의 마군들이 따르고있었다.

며칠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안류의 신변을 걱정하며 임금이 붙여준 군사들이였다.

동문앞으로 해자를 가로지른 다리를 건너선 안류는 말을 멈춰세웠다.

그가 아스라하게 높은 동문을 향해 돌아서니 군사들도 말을 멈춰세우고 날카로운 눈길로 사방을 살피였다.

어느 명필이 동문이라고 글을 썼는지는 알수 없으나 글체에는 씩씩한 기백이 어려있었다.

동문의 현판에서 눈길을 뗀 안류는 이어 도성의 유래에 대해서 더듬어보았다.

불내성이라고도 불리우는 국내성은 시조 동명성왕이 부여를 떠나와 처음으로 터를 잡은 고장이였다.

그때는 이 고장을 계루부라고 불렀다.

생각이 깊어진 안류에게 호위군사를 거느린 군교가 나직이 아뢰였다.

《중외대부어른께서는 너무 지체하는것 같소이다.》

중외대부라는 말에 목가적인 감정이 삽시에 식어버린 안류는 후두둑 높뛰는 가슴을 부여안았다.

살아생전 오늘처럼 바쁜 때는 일찌기 없었다.

지금껏 양지가 음지로, 음지가 양지로 되는 불의지변을 적지 않게 목격하였지만 자신의 신상에서 그런 변화를 당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이 바로 국상 다음의 높은 관직에 오르게 될줄이야.… 그것도 연나부의 반란을 평정하는데 품 한자루 바치지 않은 자신이

말없이 말머리를 돌려 집으로 향해가는 안류의 심정은 금의환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제힘으로 이룬것이 아닌 영화인데야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뜻밖의 영화를 생각하면 꿈속을 헤매이는듯싶다.

보름전 연나부가 일으킨 반란은 그날로 평정되고 그 이튿날 임금은 연나부를 제외한 각 부에서 청렴한 인재들을 추천하라는 령을 내렸다.

그러기를 목마르게 기다려온 4부의 대가들이 인재선발명부에 저마다 앞을 다투어 제 이름을 써넣었다.

하면서도 저희들의 이름만을 그려넣기 멋적었던지 안류의 이름자도 한구석에 써주었다.

그 명부에 이름이 올라있는 4부의 대가들을 모두 불러들인 임금은 연나부가 망쳐놓은 정사를 바로잡을 인물, 명림답부와 재주를 견줄만 한 충의지사가 있으면 나서라는 령을 내렸다.

지엄한 령에 제노라던 대가들은 누구도 나서지 못하고 진땀만 흘리였다. 조정대신은 되고싶어도 강대한 고구려의 위엄을 떨칠 능력도 담력도 없었으니 그럴수밖에 없었다.

어전회의에 참가한 안류는 손에 땀을 쥐고 누구인가 나서기를 기다렸다.

이런 때 국구가 있었다면 서슴없이 그의 등을 떠밀었을 안류였다. 왜냐하면 아무리 4부를 둘러보아야 우소만 한 인격과 의기를 갖춘 인물이 없기때문이였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우소가 없었다. 사실 우소는 임금에게 외척이나 처족되는 사람은 어전회의에 참가하지 말라는 임금의 령이 있어 이 자리에 나설수 없었던것이다.

이제부터는 외척이나 처족을 두번다시 권세를 부리는 자리에 들여놓지 않으려는것이 임금의 결심이였다. 안류가 아직은 임금의 그 뜻을 알리 없었다.

종시 첫날의 어전회의는 아무런 결실이 없이 끝나고말았다.

이튿날의 어전회의는 한식경도 못되는 사이에 결속되였다.

어전회의의 참가자들을 깜짝 놀라게 한것은 동부출신의 안류에게 조정정사를 위임한다는 어명이 떨어진 그것이였다.

너무도 놀란 나머지 안류는 어전회의가 끝나 사람들이 모두 돌아갔는지도 모르고 그냥 서있었다.

임금이 부른다고 내시가 일러서야 그를 따라 내전으로 갔던 그였다.…

해가 떨어져버린 서산을 등에 지고 붉은 기와지붕의 웅장한 태묘의 앞으로 나있는 큰길에 들어선 안류의 생각은 내전에서 임금을 만나던 그때에 가있었다.

먼발치에서 몇번 본바 있는 임금을 몸가까이에서 만나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였다.

내시에게 이끌려 어느 방에 들어서니 임금이 반가이 맞아주는것이였다.

공손히 절을 드리는 안류를 바라보며 임금은 못내 만족해하였다.

《짐이 공을 알고있는지는 오래전이였소. 공이 왕후의 스승인데 어찌 모르겠소. 공의 됨됨도 재주도 잘 알고있는 짐은 그대에게 중외대부의 관직을 제수하자고 하오. 물론 왕후도 국구도 공을 추천했소.》

너무도 생각밖의 일에 안류의 몸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말직벼슬조차 차례진적 없는 내가 중외대부라니?! …

한참만에 마음을 다잡은 안류는 머리를 저으며 아뢰였다.

《대왕마마, 소신은 그런 큰 중임을 감당할수 없소이다.》

임금은 너그러운 웃음을 지으며 친근하게 물었다.

《그렇다면 누가 짐을 도와 나라의 정사를 바로잡을만 하오?》

그 순간 안류에게 선참 떠오르는 사람이 제나부의 우소였다.

우소보다 조정을 통솔할만 한 담력과 기개가 있는 사람은 없을것이였다.

《신의 생각엔 국구어른이 적임자인것 같소이다.》

임금이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 터놓고말해서 역적들이 쏟아져나온것은 짐의탓이기도 하오. 자고로 임금의 친족은 말할것도 없고 외척이든 인척이든 조정의 일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여있지 않소.

그런데 짐이 그 법도를 지키지 못했기에 외척을 업은 연나부것들이 조정을 차지할수 있었던거요.

옛말에 눈먼 정을 쏟아붓는 어미에게는 못된 자식이 있어도 주인이 엄한 집에는 거역하는 노복이 없다 하였는데… 짐이 연나부가 외척이라는데로부터 어루만지기만 하였으니 그것들이 역모까지 저지를수가 있었던거요. 그러니 두번다시 그런 실책을 범하리오?》

그 말에 안류는 감탄해마지않았다.

자기의 잘못을 깨달은자는 현명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임금이 잘못한것은 바로 사리에 밝고 청렴한 신하를 구하지 않고 리속만 챙기려드는 탐욕스러운자들을 크게 써준 그것이다.

탐욕스러운자들은 반드시 나라의 정사를 망쳐먹는 법이다.

임금이 뒤늦게나마 그것을 깨달았으니 나라에 통운이 텄다고 할수 있다.

정사를 바른 길로 이끌어나갈 의지가 명백히 엿보이는 임금의 태도에 안류는 가슴을 들먹이며 고개를 들었다.

《대왕마마, 자고로 성현들이 이르기를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떳떳하고 옳바른 도리는 용기보다 썩 중하다고 하였나이다.

권세를 쥔 사람에게 용기는 있으나 도리가 없으면 악인을 면할수 없으니 도리를 모르는자는 당초에 쓰지 말아야 하나이다.》

미소를 머금은 임금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지당하오.》

안류는 배에 힘을 주어 말했다.

《대왕마마, 옛말에 앉아야 할 자리가 아닌데 그 자리에 앉는것은 탐위요 받아야 할 명예가 아닌데 그것을 받는것은 탐명이라 하였소이다. 나라에 마침 더할나위없이 걸출한 인재가 있사온데 그를 천거하지 않는다면 하늘이 벌을 내릴것이오이다.》

임금이 이만저만 놀라는 표정이 아니였다.

《그가 누구인가?》

《서압록고을의 을파소인줄 아오이다.》

《을파소?!…》

안류는 시간가는줄 모르고 을파소의 뛰여난 재질과 인품에 대해서 보고 듣고 느낀 모든것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아뢰였다.

을파소가 지금은 비록 나이많은 늙은이이고 게다가 오랜 농사일에 시달려 허리마저 구부정하지만 자세히 보면 젊었을 때의 학의 골격에 봉황새의 자태가 의연히 남아있으며 더우기 만리밖의 일을 내다보는 선견지명까지 있다는 안류의 칭찬소리는 임금을 기쁘게 하였다.

하기에 임금은 시간이 어떻게 가는줄도 모르고 안류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탄복해마지않았다.

《아, 옛적의 명재상 을소에게 그런 비범한 후손이 있었단 말인가. 그걸 왜 진작 몰랐을고. 한심할지고… 짐이 그 사람을 만나보리다. 그를 만나보고 중히 쓰겠으니 공은 그대로 중외대부를 맡아하도록 하오.》

즉시 임금은 중리도독을 불러 을파소를 불러들이라는 령을 내리였고 그날부터 안류는 임금을 도와 정사를 바로잡는 일에 전심하였다.

허물어져가던 집을 다시 고쳐짓기가 더 어렵다더니 연나부것들이 망쳐놓은 조정을 바로잡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았다.

무엇보다 골치거리는 인재부족이였다.

악귀가 이끄는 무리는 하나같이 악꾸러기이고 연나부것들이 매관매직으로 채워놓은 관청들마다 탐욕스러운자들이 득실거렸다.

그것들을 싹 다 갈아치우자면 청렴한 인재가 수없이 요구되였다.

돈이나 재물 같은것은 남에게 꿔다 써도 되련만 인재만은 천금을 주고도 사올데가 없었다.

썩어빠진 연나부의 세상에서 정사만 망친것이 아니라 인물까지도 가난에 들었으니 실로 막막하였다.

이 며칠동안 한잠도 자지 못하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여다니며 초야에 있을 때 뜻이 통하던 몇사람을 등용했을뿐이였다.

힘에 부친 그속에서 배심만은 든든하였으니 그것은 이제 곧 을파소가 온다는 믿음이였다.

을파소만 오면 조정을 바로잡는 일이 순풍에 돛단듯 수월하게 풀려나갈것이였다.

하기에 중리도독을 따로 만난 안류는 을파소를 손가락 하나 상하지 않고 데려올것을 부탁하였고 그가 오면 쓰고 살 집도 마련해놓고 홀몸인 그를 돌봐줄 현숙한 녀인도 골라놓았다.

안류의 눈굽이 쩌릿하게 달아올랐다.

오늘 낮 임금은 며칠동안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고생이 많은 안류를 념려하여 오늘만은 일찌감치 집에 가서 부모님의 안부도 알아보고 푹 쉬라는 은총을 베풀었었다.

그리하여 이렇게 집으로 가고있는것이였다.

(?!…)

다시한번 눈여겨보니 집이 말머리앞에 있었다.

하긴 집이 궁성과 이웃한 마을에 있으니 그럴만도 하였다.

동문에서 동쪽으로 불과 수백보에 이르면 태묘가 나지고 거기에서 또 그만큼 동쪽으로 가면 안류가 태를 묻은 동부에 이른다.

소잔등처럼 생긴 크지 않은 동산을 끼고 넓은 평지에 대가들의 큰집이 즐비하게 들어앉은 동부의 한켠에 안류가 나서자란 집이 있었다.

안류는 크지는 않아도 기와를 얹은 아담한 고향집에 이어 그 둘레로 높이 자란 아름드리 잣나무를 쳐다보았다.

증조부가 자손들이 잘되기를 바래서 심었다는 잣나무숲에서 어떤 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쪽박― 쪽박―

해마다 봄이 오면 나무가 무성한 집주변에 날아들어 구슬프게 우는 쪽박새였다.

쪽박― 쪽박―

안류의 두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누구보다도 안류 자기를 아껴주고 애지중지 길러준 외할머니가 생각났기때문이였다.

안류의 외가집은 시골에 있었다.

외손자를 몹시 귀여워한 외할머니가 어린 안류를 맡아 키워주었다.

그때 외가집주변에서도 쪽박새가 울군 하였다.

쪽박새가 구슬프게 울 때면 외할머니는 안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군 하였다.

《저 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깨진 쪽박이라도 바꾸어주고싶어서 〈쪽박 바꿔주어.〉하고 운단다. 너는 어서 커서 나라를 받드는 큰사람이 되거라.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악독한 놈들이 날뛰지 못하도록 하여라. 그러면 쪽박새도 기뻐서 눈물을 흘릴게다.》

안류의 두볼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였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mypeople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도서련재
국상 을파소 (제64회)​​​​​ 국상 을파소 (제63회)​​​​​ 국상 을파소 (제62회)​​​​​ 국상 을파소 (제61회)​​​​​ 국상 을파소 (제60회)​​​​​ 국상 을파소 (제59회)​​​​​ 국상 을파소 (제58회)​​​​​ 국상 을파소 (제57회)​​​​​ 국상 을파소 (제56회)​​​​​ 국상 을파소 (제55회)​​​​ 국상 을파소 (제54회)​​​​ 국상 을파소 (제53회)​​​​ 국상 을파소 (제52회)​​​​ 국상 을파소 (제51회)​​​​ 국상 을파소 (제50회)​​​​ 국상 을파소 (제49회)​​​​ 국상 을파소 (제48회)​​​​ 국상 을파소 (제47회)​​​​ 국상 을파소 (제46회)​​​​ 국상 을파소 (제45회)​​​​ 국상 을파소 (제44회)​​​​ 국상 을파소 (제43회)​​​​ 국상 을파소 (제42회)​​​​ 국상 을파소 (제41회)​​​ 국상 을파소 (제40회)​​​ 국상 을파소 (제39회)​​​ 국상 을파소 (제38회)​​​ 국상 을파소 (제37회)​​​ 국상 을파소 (제36회)​​​ 국상 을파소 (제35회)​​ 국상 을파소 (제34회)​​ 국상 을파소 (제33회)​​ 국상 을파소 (제32회)​​ 국상 을파소 (제31회)​​ 국상 을파소 (제30회)​​ 국상 을파소 (제29회)​​ 국상 을파소 (제28회)​​ 국상 을파소 (제27회)​​ 국상 을파소 (제26회)​​ 국상 을파소 (제25회)​​ 국상 을파소 (제24회)​​ 국상 을파소 (제23회)​​ 국상 을파소 (제22회)​​ 국상 을파소 (제21회)​​ 국상 을파소 (제20회)​​ 국상 을파소 (제19회)​​ 국상 을파소 (제18회)​​ 국상 을파소 (제17회)​​ 국상 을파소 (제16회)​​ 국상 을파소 (제15회)​ 국상 을파소 (제14회)​ 국상 을파소 (제13회)​​ 국상 을파소 (제12회)​​ 국상 을파소 (제11회)​​ 국상 을파소 (제10회)​​ 국상 을파소 (제9회)​ 국상 을파소 (제8회)​ 국상 을파소 (제7회) 국상 을파소 (제6회) 국상 을파소 (제5회) 국상 을파소 (제4회) 국상 을파소 (제3회) 국상 을파소 (제2회) 국상 을파소 (제1회)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