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회)


제 2 장


(4)


이튿날 아침 잠자리에서 깨여 일어난 안류는 머리가 아파서 오만상을 찌프렸다.

안류가 술을 좋아하면서도 많이 마시지 못하는것은 술을 마신 뒤에 오는 머리아픔때문이였다.

체질탓인지 안류는 술을 마신 후 머리아픈 고생을 겪군 하였다.

그러기는 을파소도 마찬가지였다.

오래간만에 술을 과하게 마신 후과로 머리가 아파난 을파소에게 문득 안해가 떠올랐다.

안해가 살아있었다면 이럴 때 술독을 푸는 해정약을 써주었을것이였다.

이부자리를 개여들던 을파소는 얼굴을 찌프린 안류를 보며 물었다.

《혹시 자네도 머리가 아픈게 아닌가?》

《예, 난 원래 술마신 뒤가 깨끗치 않소이다.》

을파소는 허거프게 웃었다.

《자네도 나처럼 술약골이로구만. 이걸 어쩐다?…》

을파소가 딱해하는 바로 그때 량손에 그릇을 든 을파소의 큰아들이 들어서며 문안인사를 하였다.

《밤새 편안하셨소이까?》하더니 그는 안류에게 공손히 그릇을 내밀었다.

《이건 언제인가 이웃마을에 사는 명의어른이 대준 비방으로 만든 술독을 푸는 약이오이다.》

안류가 호기심이 나서 물었다.

《그게 뭔데?》

《미나리즙이오이다.》

을파소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 사람이 대준 비방으로 지었다면 실로 명약이지.》

두사람은 반사발가량의 미나리즙을 단숨에 마시였다.

이윽고 두사람은 서로 마주보며 침묵을 지키였다.

사실 을파소는 술독풀이에 미나리즙이 좋다는것을 의서에서나 읽었을뿐 써본적은 없었다.

과연 미나리즙이 어느 정도 머리아픔을 덜어주겠는지…

이윽고 안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좀 나아진것 같은데… 거 정말 미나리즙같은게 약이 될줄이야.》

을파소도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나도 좀 나은것 같네.》

머리가 한결 거뜬해진 두사람은 밥상에 마주앉았다.

아침상을 물리자 이번에는 주전자를 안고들어온 을파소의 맏며느리가 차잔에 김이 문문 나는 물을 부어주었다.

차잔을 받아든 안류에게는 불쑥 한가지 의문이 고개를 쳐들었다.

시골사람인 을파소가 차까지 마시는가?…

《선배님의 집에 와서 차를 대접받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소이다.》

을파소는 소리없이 웃었다.

《하긴 차야 차지.》

을파소는 어서 마시라는 손짓을 하고 자기도 입에 차잔을 가져갔다.

흥미가 나서 한모금 마신 안류는 미간을 찌프렸다.

《이거야 숭늉이 아니오이까?》

을파소가 대꾸했다.

《자네는 농사나 짓는 시골늙은이가 아직은 우리 나라에 나지 않는 값비싼 차를 마신다고 속으로 나를 비웃었을거네. 중원에서 비싸게 사오는 차를 우리같은 시골농사군이 감히 마실수가 없지.》

안류에게 또 한가지 의문이 번개같이 떠올랐다.

《혹시 이 집의 옛 재상어른께서 차를 즐겨마신것은 아닌지요?》

을파소는 벙글 웃었다.

《이게 바로 우리 집 조상어른이 즐겨마시던 쇠뜨기차일세.》

을파소는 상우에 내려놓은 차잔을 가리켰다.

《의술도 아신 조상어른은 중풍을 막을수도 있고 소갈(당뇨병)을 고치는데도 좋다고 하시면서 쇠뜨기차를 즐겨마셨다고 하네.》

호기심이 더해난 안류는 숨가쁘게 질문을 들이댔다.

《쇠뜨기차를 즐겨마셨다니 이 집 어른들이 장수하셨겠소이다?》

《장수라… 하여간 증조부님도 조부님도 부친께서도 일흔살을 넘겨사시였네.

보통사람들은 쉰살을 살면 쓰러지는게 례상사인데 일흔살을 넘겨 사셨으면 장수했다고 해야 할걸세.

나도 쇠뜨기차를 마신 덕에 별다른 약을 쓴게 없지만 예순살을 넘었어도 아직 살아있지 않나.》

안류는 또 질문을 하였다.

《쇠뜨기차가 왜 구수한 숭늉맛을 내오이까?》

을파소는 벽에 기대앉으며 말했다.

《쇠뜨기를 맹물로 달이면 슴슴하고 풀내가 나서 구수한 숭늉물에서 달이는거라네.

그건 그렇고… 그대가 이런 시골에까지 일부러 나를 찾아온것을 보면 분명 무엇인가 알고싶어서 온것 같은데 숨기지 말고 털어놓게.》

안류는 속이 뜨끔하였다.

사실 을파소를 찾아온것은 그의 됨됨을 타진해보고 마음에 들면 연나부를 뒤엎으려고 세력을 늘이는 우소의 편에 끌어당기기 위해서였다.

제나부의 우두머리로서 임금의 가시아버지인 우소는 연나부의 반대파를 이끄는 거두였다. 우소와 아주 가까운 사이인 안류는 그의 모사라고 할만큼 중요한 역할을 놀고있었다.

그 짧은 순간에 아직은 진속을 털어놓기 이르다는 결론을 내린 안류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전 선배님한테서 알고싶은것이 아주 많소이다. 그걸 다 알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으려고 하오이다.》

을파소는 안류의 심정이 리해되였다.

아직은 초면에 불과한 사람에게 남들이 알지 말아야 하는 그런것을 어찌 입밖에 낼수 있겠는가.

을파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고싶은게 많다는데 아무거나 묻게나.》

안류는 정색해서 물었다.

《만일 나라에서 선배님에게 연나부의 악행으로 땅바닥에 떨어진 정사를 바로잡으라고 한다면 한두해안으로 그렇게 할수 있겠소이까?》

을파소는 자못 긴장해졌다.

이 사람이 나를 떠보려고 이러는것은 아닌지.…

을파소는 곧 속으로 웃고말았다.

나야 벼슬길에 올랐다고 해도 이제는 늙은 몸이라 벼슬을 바쳐야 할 때이다. 그러나 안류 이 사람은 아직 벼슬을 해도 되니 그를 위해 돕는 말이야 못해주겠는가.

《그건 어렵지 않다고 보네. 연나부가 정사를 망쳐먹은 수법을 거꾸로 뒤집으면 되니까. 즉 국법을 어기고 탐관오리들이 빼앗아가진 땅과 재물과 사람을 본래의 주인에게 넘겨주고 마구 불구어 받던 조세를 국법대로 낮추어 받고 오로지 국법을 지켜 이 조치를 두해사이에 해치운다면 망쳐버린 정사가 바로잡힐수 있을거네.

한마디 더 보태여 말할것은 아무리 좋은 궁냥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제때에 실천에 옮기는 손탁이 없다면 그게 다 공연한 입방아질에 불과하다는것일세.》

안류는 또 다른 질문을 꺼냈다.

《우리 고구려가 조상의 땅을 하나로 이을수 있다고 생각하오이까?》

《조상의 땅이라…》 하고 뇌이는 을파소의 생각은 깊어졌다.

광활한 강토우에 크게 일떠섰던 단군성왕의 나라가 무너진 후 그 땅에는 수많은 소국들이 생겨났다.

그것은 실로 겨레에게 있어서 고통거리였다.

일신의 권세와 부귀영화나 바라는 여러 소국의 군주들때문에 동족분쟁이 일어나고 그것은 온 겨레에게 헤아릴수 없는 재난을 가져다주고있었다.

이것을 누구보다도 가슴아파한 성인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천제의 자손이라 일컫는 동명성왕이였다.

조상의 땅을 하나로 이어놓으려는 뜻을 품은 동명성왕은 고구려를 일떠세운 그날부터 그를 성취하는 일을 밀고나갔다.

하여 그 시절에 비류국, 행인국, 북옥저와 같은 동족의 나라들이 고구려에 귀속되여 겨레의 전도를 밝게 해주었다.

동명성왕이 돌아간 후에도 국토통일의 성업이 힘있게 추진됨으로써 량맥국, 황룡국, 안평국, 개마국, 구다국, 조나국, 주나국, 동옥저, 갈사국 등 수많은 소국들이 귀속되였다.

그러나 국토통일은 중원땅의 후한때문에 힘겨워지고있었다.

조선(만조선)을 멸망시킨 그들이 아직도 료동과 그 서쪽의 조상의 땅을 차지하고 박달겨레의 통일을 한사코 방해하고있는것이였다.

을파소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난 우리 고구려가 언제인가는 조상의 땅을 모두 하나로 이어놓으리라는것을 믿네. 지금껏 그러했듯 앞으로도 동족을 이끌어나갈 나라는 우리 고구려밖에 없네. 그러나 그것은 말처럼 쉽지는 않을거네.》

시간이 갈수록 안류에게는 을파소가 세상에 다시없을 스승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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