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회)


제 2 장


(3)


그날 저녁 을파소의 집에서 음식상을 마주한 안류는 호기심이 이만저만 아니였다.

밥상에 차려놓은 음식들이 옛적의 이름높은 명재상이 즐겨먹던것이라니 그럴만도 하였다.

을파소는 조찰떡이며 붕어졸임, 더덕장절임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안류에게 허물없이 말했다.

《허― 큰상받은 새신랑같이 언제까지 눈요기만 하겠나?》

그제서야 안류는 조찰떡부터 집어들었다.

둥글게 빚은 조찰떡은 팥고물을 묻힌것인데 맛을 보니 집에서 해먹던 조찰떡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옛 재상이 즐겨먹던 음식이라기에 그 맛이 별맛일거라고 생각했던 안류는 웃고말았다.

명재상의 입도 보통사람과 다를바 없군.

이번에는 무심히 붕어졸임을 입에 넣던 안류는 놀라왔다.

짭짤하면서도 달고 고소하면서도 씹는 맛이 좋은 이런 붕어졸임은 먹다 처음이였다.

개울에 흔한 붕어이기에 이 집의 붕어졸임도 맛이 그럴것이라고 생각한 안류였다.

방에 겨릅등이나마 두개씩 켜있어 붕어졸임을 자세히 보는데는 지장이 없었다.

어떻게 손을 댔기에 이다지도 별맛일가.

유심히 살펴보니 이 집의 붕어졸임은 확실히 다른 점이 있었다.

대개 붕어졸임을 만들려면 밸따위는 물론 비늘까지도 깨끗이 긁어버리는것이 일상사이건만 이 집의 붕어졸임에는 비늘이 붙어있었다.

그렇다고 비늘을 그대로 둔건 아니고 비늘이 된장에 섞여 졸인 붕어의 겉에 발려있었다.

안류는 을파소에게 물었다.

《비늘이 있는 이런 붕어졸임은 먹다 처음이오이다. 씹는 맛도 참 좋소이다. 흔하디흔한 붕어를 맛있게 졸인걸 보니 놀랍소이다.》

을파소는 눈섭을 쫑긋하며 웃었다.

《그래서 재상가문의 음식이 아니겠나. 허― 이건 롱말일세. 우리 집에서는 예로부터 붕어졸임을 이렇게 해먹었네. 사람들은 흔히 비늘을 긁어버리고 붕어를 졸여먹는데 그건 붕어비늘이 몸보신에 좋은 보약인줄 모르기때문일세.

명의들의 말에 의하면 붕어비늘에는 피를 맑게 해주고 중풍도 막아주는 약효가 있다고 하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붕어비늘을 버리지 않는다네. 붕어비늘을 그대로 두고 졸이면 맛이 떨어지네. 그래서 긁어낸 비늘을 따로 모아가지고 참기름에 튀기고 그다음 장에 볶아서 장졸임한 붕어의 겉에 발라낸다네. 이게 우리 집 비방일세.》

안류는 감탄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었다.

《이 음식비방이 좋기는 하지만 품이 너무 많이 드는게 탈이오이다. 그렇게 품이 들어가지고서야 어느 하가에 그런걸 만들어먹겠소이까.》

을파소는 고개를 저었다.

《그대 생각이 짧은것 같네. 값지고 희귀한 음식감일지라도 품을 적게 들이면 훌륭한 음식이 될수 없고 흔하고 값눅은 음식감이지만 품을 바치면 훌륭한 음식으로 될수가 있네. 누구나 만사를 직심스레 품을 들여 대하는 좋은 습관을 가질 때 그만큼 나라의 부강도 문명도 더 좋아질게 아닌가.》

안류는 그만 코를 떼운듯싶었다.

지금껏 어데를 가나 남의 흠을 거들어 훈시는 했어도 훈시를 당한 일은 없었던 안류였다.

확실히 을파소는 보통사람같지 않았다.

이윽고 을파소가 《아직 그게 안되였느냐?》 하고 소리치기 바쁘게 질화로를 안아든 맏아들이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버님, 늦어서 죄송하오이다.》

상곁에 질화로를 내려놓고 놋소래까지 들여다놓은 맏아들이 나가자 을파소는 숯불이 좋은 질화로와 고기점을 꿴 꼬챙이들이 가득한 놋소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오늘 이 선배가 후배인 그대에게 맛보이자고 하는 우리 집의 진짜 별식일세. 고구려사람치고 소고기나 양고기로 만든 불고기를 싫어할 사람이 어데 있으랴만 우리 가문의 사람들은 예로부터 양불고기를 아주 좋아했다네. 그래서 난 아무리 힘들어도 해마다 열댓마리의 양을 기르는것일세.》

을파소는 숙련된 솜씨로 적쇠우에 고기꼬챙이들을 올려놓고 구워냈다.

역시 불고기를 좋아하는 안류는 을파소가 내미는 꼬치불고기를 사양없이 받아 입에 넣었다.

《맛이 어떤가?》

고기점을 급히 씹으며 안류는 고개를 끄덕이는것으로 좋다는 대답을 대신했다.

을파소는 청주를 가득 부은 술잔을 안류에게 내밀었다.

《불고기에 술이 없으면 안되지.》

술을 좋아는 하지만 많이 마시지 않던 안류이지만 오늘만은 실컷 취하도록 마시고싶었다.

《좋소이다. 선배님을 만난 이런 기쁜 날에 어찌 술을 사양하오리까.》

노릿노릿 고기를 구워내며 을파소가 말했다.

《나보고 천하에서 제일 맛있는 고기붙이를 꼽으라고 한다면 난 서슴없이 우리 고구려의 불고기를 단연 첫손가락에 꼽겠네. 자넨?》

그사이 몇개의 꼬치불고기를 축낸 안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나도 물론이오이다.》

《자넨 우리의 불고기가 중원의 불고기와 어떤 차이가 있기에 더 별맛이라고 생각하나?》

그에 대해 별로 아는것이 깊지 못한 안류는 고개를 젓고말았다.

술을 마시고난 을파소가 말했다.

《옛책을 보니 중원사람들은 고기를 굽거나 삶은 다음 소금이나 조미료를 찍어먹는다고 하였네. 그러나 우리의 불고기는 미리 날고기에 마늘과 파를 두고 만든 양념장에 푹 재워두었다가 이렇게 꼬챙이에 꿰서 숯불에 구워먹거던. 그래서 맛이 별스러운것이고 그래서 중원사람들이 우리의 불고기를 가리켜 맥적이라고 하는거네.》

흥미진진한 태도로 귀를 기울이는 안류를 바라보던 을파소의 목소리가 좀 높아졌다.

《고약한것은 감히 중원것들이 우리 겨레를 가리켜 맥족이라고 하는거네. 언제인가 중원것들이 쓴 〈시경〉이라는 책을 보았는데 그것들이 감히 우리의 박달겨레를 가리키는 글로서 흰 백자에 짐승을 의미하는 치자를 가져다붙이질 않았겠나. 그 글이 바로 맥이란 말일세. 괘씸한것들, 그런데로부터 우리 고구려의 불고기를 가리켜 그것들이 맥적이라고 부르는거네.》

그 말에 안류는 을파소가 고금의 력사에도 환할뿐더러 제 겨레에 대한 애착과 자존심이 이만저만 아님을 다시한번 확신할수 있었다.

두사람은 서로 술을 권하며 불고기를 맛있게 들었다.

이윽고 주기가 오른 안류는 이제는 옛일로 되여버린 구려경당의 애젊은 시절을 감회깊이 생각했다.

청운의 뜻을 품고 마음껏 배우던 좋은 시절이였다.

《선배님도 구려경당시절이 생각나오이까?》

을파소도 아득한 그때를 돌이켜보느라니 눈굽이 축축해졌다.

한생에서 제일로 즐거웠고 제일로 생기발랄하던 그때를 어찌 잊을수 있단 말인가.

더우기 가고싶다고 해서 아무나 갈수 있는 경당이 아닌 구려경당의 시절을…

구려경당은 나라에서 제일로 중시하는 특수한 경당이였다.

마을들에 있는 경당에는 가고싶으면 누구나 갈수 있지만 구려경당만은 그렇지 않았다.

구려경당에서는 출신은 별로 따지지 않아도 인재가 아닌 사람은 애당초 받지 않았다.

나라가 중시하는 구려경당이 출신을 별로 따지지 않는것은 이 경당이 나온 옛적부터 그러했기때문이였다.

동명성왕이 초야에 있으면서 구려경당을 처음 내왔을 때 여기에 받아들인 사람들은 귀족이 아닌 평민들 지어 노예출신도 적지 않았다.

그럴수밖에 없는것은 고구려를 세우려 활약하던 동명성왕을 떠받든 사람들의 다수가 비천했기때문이였다.

그런 까닭에 구려경당의 사부들 역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평민출신이였다.

구려경당의 시절을 감회롭게 돌이켜보던 안류가 물었다.

《선배님은 오늘도 우리 나라가 강하다고 생각하오이까?》

을파소는 정색해졌다.

《그대는 요즘의 어지러워진 조정의 정사를 보고 락심천만해하는것 같은데… 그게 옳네.

천하없이 강대한 나라일지라도 정사가 어지러워지면 무너졌다는것이 력사의 대답이 아닌가. 정사가 어지러워지면 간신들과 역신들이 득세하여 저마다 머리를 쳐들기에 그런 나라는 오래가지 못하는것일세.

국력을 론할 때 반드시 제 겨레와 제 강토를 지켜내려 하는 그 나라 사람들의 마음부터 론해야 할걸세.》

그 말에 안류는 귀맛이 끌리였다.

지금껏 안류자신은 을파소와 달리 국력을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 국력이란 강토의 크기와 군사의 머리수라고 생각한것이였다.

《그러나 아직 우리 고구려가 무너질 정도로 병들었다고는 생각지 않네. 임금님도 건재하시고 백성들도 건재해있거던.

들려오는 소문에 임금께서도 정사를 어지럽히고있는 연나부를 미워하고있다는데 그렇다면 반드시 그자들을 쳐부실 날이 올걸세. 그리고 군심도 아직은 나쁘다고 볼수 없네. 우리를 넘보는 외적이 기여들면 결단코 쳐부시려 하고있으니 말일세. 그런 군사를 수십만명이나 가지고있기에 고구려가 강대한것일세.

박달겨레의 강토를 하나로 이으려 분발하는 그런 군사가 없었다면 우리의 강토가 오늘에 이르지 못했을거네.》

그 당시 고구려는 백두산을 중심으로 동서 3 000리, 남북 2 000리로 령토를 넓히였었다.

을파소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물론 우리 겨레의 강토에 비기면 고구려의 땅이 넓지 못한건 사실일세. 그건 그렇고… 우리 고구려사람들은 박달임금의 후손답게 그 누구보다도 자기의 힘으로 나라를 지켜가려는 마음이 강하단 말일세. 우리에게는 겨레의 넋이 어려있는 조종의 산이 있네.

겨레의 넋이라고 할 때 그것은 하늘나라의 천제였던 환인의 자손이라는 자부심과 박달임금이 물려준 강토에 보다 강대한 나라를 일떠세우려는 만만한 배짱이 아니겠나.

바로 그 넋을 지켜주고 분발시켜주는 조종의 산이 바로 개마산(백두산)임은 고구려사람모두가 알고있네. 그런즉 조종의 산이 없었다면 고구려는 강대한 나라로 될수 없었을걸세.》

론박할 여지가 없는 그 말에 안류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난 잠자리에 누울 때면 가끔 강대하던 선조의 나라 박달임금의 강토를 그려보군 하네. 그러면 가슴이 뿌듯해지면서 나라를 위해 무엇인가 하고싶은 충동이 솟구친다네.》

그 말에 안류도 가슴이 뿌듯해졌다.

박달임금시기 최대로 번성했던 강토가 바로 자손만대로 물려주고 물려받아야 하는 우리의 강토라고 할수 있었다.

흑수를 끼고있는 머나먼 북방으로부터 저 남해끝까지의 광활한 령토가 박달임금의 강토일것이였다.

천제의 자손이 세운 고구려의 사람으로서 이것을 잊고산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겨레의 정신이 간직되여있다고 볼수 없다.

안류는 두눈을 뜨며 물었다.

《그렇다면 요즘의 세상을 어떻게 보아야 한다는것이오이까?》

을파소는 결단이 어린 어조로 대꾸했다.

《좌가려와 같은 악독한 탐관들때문에 어지러워진 세상을 보고 그저 고구려라고 한다면 그건 잘못일세. 짐승같은 탐관들은 옛적에도 있었고 다른 나라들에도 있다네. 그런 무리는 여름철의 독버섯처럼 때가 되면 생겨났다가 없어지고 또 생겨났다가 없어지고마네.

옛말에도 있지. 불의를 선도하고 법도를 해치는 불법무도한자가 있다면 멸족시켜 살아남지 못하게 하라. 그래서 좌가려와 같이 국법을 어기고 정사를 망치는자는 죽음을 당할수밖에 없다는것을…

문제는 그런자들이 일시 판을 칠지라도 나라의 다수를 이루는 사람들의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되는거네. 그들이 외적에게 짓밟혀 살지 않으려는 마음이 변치 않으면 고구려는 언제나 강대할거네.》

안류는 묻고싶은것이 많았지만 밤이 퍼그나 깊어진것을 고려하여 나직이 말했다.

《이젠 쉬는게 어떻소이까?》

《그러합세.》

두사람은 곧 자리를 펴고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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