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회)


제 2 장


(2)


유보네 집을 나선 을파소가 큰길로 접어드는데 불쑥 앞을 막는 사람이 있었다.

그를 비켜가려던 을파소의 두눈이 커지였다.

아까 달구지를 타고갈 때 보았던 낯선 사람이였기때문이였다.

흰 얼굴, 넙적한 이마, 눈정기와 함께 친근한 정이 어려있는 크고 둥근 두눈, 날이 선 마늘코… 준수하게 생긴 그 사람이 먼저 말을 걸었다.

《혹시 이 마을의 좌상어른이 아니오이까?》

의문이 가득해진 을파소는 갈길이 급함을 잊고말았다.

《한데 그대는 뉘시오?》

낯선 사람이 반가와하며 《전 도읍의 동부사람 안류라 하오이다.》 하더니 깊숙이 허리를 굽히는것이였다.

초면의 사람이 절을 하니 그에 바빠맞은 을파소는 안류의 팔을 부여잡았다.

《제발 이러지 마오. 난 한갖 농사군이요. 그런데 무슨 일로?》

안류는 오랜 농사군의 체취가 풍기는 을파소를 존경어린 눈길로 바라보았다.

《좌상어른은 젊었을 때 졸본에서 구려경당을 다니지 않았소이까?》

을파소는 자기의 경력을 안류가 알고있는것이 놀라왔다.

《그런데 그건 어째서?…》

《그때 학산사부님에게서 글을 배우지 않았소이까?》

을파소는 40여년전의 아득한 그 시절을 돌이켜보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학산사부님은 나의 잊을수 없는 스승이였소.》

안류는 또다시 허리를 굽히였다.

《전 학산사부님의 마지막제자였소이다. 후배의 절을 받아주시오이다.》

을파소는 십년지기를 만난것처럼 반가왔다.

《허― 어쩐지 초면인데도 마음이 끌린다 했소.》

안류는 농사일로 늙은 을파소를 바라보며 말했다.

《전 사부님의 십년 후배로서 학산사부님의 림종을 지켜드렸소이다. 림종시 사부님은 자신이 키운 제자들중에서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할만한 동량지재로는 을파소와 연학루라 하였소이다.》

을파소는 심심한 애도의 마음으로 북쪽의 하늘을 쳐다보았다.

학산은 정사로부터 병학에 이르는 동서고금의 모든 학문에 도통함으로써 누구도 따를수 없는 큰 봉우리를 이룬 재사였다.

학산의 말이 지금도 을파소의 귀전을 울리는듯싶었다.

《사람은 제 겨레를 위해 존재하며 그를 떠난 생을 론할수 없다.》

또한 구려경당을 하직할 때 멀리에까지 따라나와 바래워주며 하던 스승의 마지막당부도 귀에 쟁쟁하였다.

《난 자네가 반드시 강대한 고구려를 받드는 큰 인재가 되리라 믿네.》

그때를 돌이켜보는 을파소의 두눈에 눈물이 고이였다.

《아, 사실말이지 난 학산사부님을 나의 스승이라고 떳떳이 부를수 없는 사람이요.》

안류도 눈물이 글썽해서 말했다.

《그러기는 저도 마찬가지이오이다.》

이 말은 안류의 진심이기도 하였다.

고구려는 웬만한 마을에도 경당이 있었다. 벌써 고구려건국 초기부터 도처에 경당이 있은것이였다.

그것들중에서 제일로 유명한 경당이 졸본의 구려경당이였다.

구려경당은 겨레의 강토를 통일할 큰뜻을 품은 동명성왕이 구려에서 고구려를 일떠세우려 활약하고있을 때 세워진 경당이였다.

고구려에서는 마을들에 있는 경당을 그 마을의 이름을 붙여 어느 마을의 경당이라고 부르는것이 상례로 되고있었다.

구려경당은 고구려건국전에 부여에서 온 사람들이 구려국에 세운 경당이라는데로부터 누군가가 그렇게 부른것이 이름으로 굳어진것이였다.

그때 이 경당을 동명성왕도 중시하여 자주 찾아왔다고 한다.

오늘도 구려경당을 다니는 젊은이들은 동명성왕의 자취가 어려있는 유명한 경당에서 문무를 배운다는 남다른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있었다.

력사도 오래고 규모도 큰 구려경당은 그로 하여 사부들의 실력이 높았다.

학산과 같은 고구려 제일의 인재들이 바로 이 경당에서 문무를 겸비한 제자들을 키웠다.

《학산사부님은 눈을 감기에 앞서 구려경당을 다닌 인재들이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였소이다.》

안류의 말에 을파소는 탄식해마지않았다.

《난 한일없이 늙고말았으니 사부님을 욕되게 하였소. 그런데 그댄 여기에 무슨 일을 보러 오셨소?》

안류는 벙글 웃었다.

《선배님, 그건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소이다.》

그가 을파소를 찾아온 사연을 선자리에서 말하기는 어려운것이였다.

구려경당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안류는 수십년세월 스승의 기대에 보답하려 애써왔다.

그러나 세상이 그를 알아주지 않았다.

연나부의 대가들이 조정에서 살판치는 한 설사 벼슬길에 오른다고 해도 큰일을 할수 없다는것을 절감한 안류는 몇해전부터 그것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남몰래 다른 부의 대가들을 찾아다니며 좌가려네를 몰아낼만 한 힘과 담력을 지닌 사람들을 찾고있었다.

하지만 연나부의 세력이 너무도 강하고 다른 부의 대가들 역시 바람따라 돛을 다는 소인들이라 그런 사람을 찾을수 없었던것이다.

뒤늦게야 도읍의 대가들과는 큰일을 할수 없다는것을 깨닫고보니 스승이 크게 믿었던 두사람이 생각났다.

그래서 먼저 구려경당에서 글을 가르치는 학루를 찾아갔다.

전국각지에 많은 제자를 두고있는 학루와 손을 잡으면 인차 뜻을 같이할 벗들을 모을것 같았다.

허나 뜻이 다른 학루는 벼슬길에 나서자는 안류의 청을 거절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내 본명은 학루가 아닐세. 난 당초에 학산사부님의 뒤를 이어 한생 여기서 문무재덕을 갖춘 제자들을 키우리라 뜻을 세웠기에 학루라 개명한거네. 말하자면 스승께서 정사와 법의 시행은 물론 병학에 이르는 거대한 학문의 봉우리를 이루었다면 난 그 봉우리에로 제자들을 이끌어간다고 할가… 그러니 그런 부탁을 말게.》

큰 기대를 안고 학루를 찾아갔다가 실망을 안고 돌아선 안류는 마지막으로 을파소를 만나보기로 마음먹은것이였다.

처음 안류는 을파소를 저 하나 먹고 살기 위해 농사나 짓는 소인으로 여기였다.

그러나 을파소에 대해서 알아보니 생각과는 달리 기대가 가는것이였다.

불의한짓을 일삼는 동생을 가차없이 처형한거며 고향마을을 화목하도록 이끌어가는거며… 그런 사람이 조정에 나와 그렇게 정사를 본다면 국운이 기우는 나라를 바로잡을수 있을것이였다.

그래서 을파소를 찾아온 안류였다.

먼길을 찾아온 손님을 잘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에 을파소는 안류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쨌든 우리 집으로 가세.》

안류는 고개를 저었다.

《가을걷이때에는 코흘리개아이들도 곡식짐을 지고다닌다는데 내 어찌 바쁜 농사일을 지체시키겠소이까. 그럴것없이 밭일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것이 어떻소이까?》

을파소는 쾌히 말했다.

《좋네. 그럼 조가을을 하러 가세.》

두사람은 인차 재등너머의 골안에 이르렀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조밭에 무겁게 실린 조이삭이 바람에 설레이는것을 본 안류는 탄복해마지않았다.

다른 마을과 달리 농사가 잘된 이 하나의 사실을 가지고서도 좌물촌을 이끌고있는 을파소가 어떤 사람임을 엿볼수 있었다.

마을이 화목하면 흥겨운 노래소리 울리고 그 소리에 나라가 흥하는것이 아니겠는가.

을파소의 자식들과 인사를 나눈 안류는 낫을 집어들었다.

서툴기는 해도 탐스러운 조이삭을 베여나가는 안류는 먹지 않아도 배부른 심정이였다.

이런 맛에 농사를 지을것이였다.

흥이 난 안류는 제법 목청을 돋구어 노래가락을 뽑았다.


훨훨 나는 저 꾀꼬리

짝을 지어 즐기는데

외로울사 이내 몸

뉘 함께 돌아가랴


구성지게 한곡조 뽑고난 안류는 허리쉼을 하는 을파소에게 물었다.

《선배님, 이 노래를 을씨가문이 그토록 좋아한다는게 맞소이까?》

을파소는 저으기 놀라왔다.

저 사람이 어떻게 남의 집 취미까지 아는것일가?…

을씨가문이 항간에서도 불리우고있는 꾀꼬리노래를 남달리 좋아하는것은 을소때문이였다.

이 노래는 을소가 모시였던 류리명왕이 지은 노래이다.

을씨가문에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을소와 함께 고을들을 돌아보던 류리명왕이 어느날 나무밑에서 쉬는데 꾀꼴새 한쌍이 날아들었다.

그것을 본 류리명왕은 불쑥 먼저 간 왕후가 그리워 안해를 잃은 슬픈 마음을 담아 이 노래를 지었다고 한다.

늘그막에 좌물촌으로 이사를 온 을소는 임금이 그리울 때면 이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였으니 그때문에 꾀꼬리노래는 을씨가문이 즐기는 노래로 전해진것이였다.

을파소는 웃으며 대꾸했다.

《자네 그런 내막까지 아는걸 보니 렴탐군 한가지일세.》

이때라고 안류는 화제를 돌리였다.

《선배님은 요즘세상을 어떻게 보시오이까?》

을파소는 쓴웃음을 지었다.

요즘세상이라고 할 때 그것은 좌가려와 어비류의 손에서 골병이 든 조정을 념두에 둔것이다.

《아무리 세력이 크다 해도 인심도 잃고 나라님의 버림을 받는 무리는 반드시 망하기마련일세.》

《그럼 연나부의 세상이 언제까지 갈것 같소이까?》

을파소는 웃으며 숨을 한껏 들이켰다.

《썰물이 지면 미구에 밀물이 들기마련이고 십년가는 권세 없다는것은 초부도 아는것이라 그런건 문제가 아닐세. 문제는 그것들이 더럽혀놓은 조정을 쇄신하는것인데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네. 오죽했으면 나라를 세우기보다 세운 나라를 다스리는것이 더 힘들다는 말이 생기였겠나. 어지러워진 세상을 바로잡자면 먼저 나라를 위하려는 마음으로 저자신부터가 청렴해야 하고 제 집안부터가 사리사욕이 없어야 하며 남들의 거울이 될수 있는 정직한 사람들을 찾아내여 그들로 조정신하들을 갈아치우고 오로지 국법대로 정사를 펼쳐야 할것이네. 자, 그런 큰 국사를 어찌 낫가락이나 들고 론하겠나. 후에 허리띠를 풀어놓고 의논하기로 하세.》

손바닥에 침을 뱉아 낫자루를 꽉 거머쥔 을파소는 조를 베여나갔다.

까끈하게 조를 베여눕히는 을파소를 따라잡느라 안류는 땀을 흘리였다.

한번도 허리를 펴지 않고 한이랑의 조를 다 베여눕히고서야 을파소는 일어섰다.

《도읍사람치고 그만하면 낫질솜씨가 괜찮으이.》

한이랑을 채 베여눕히지 못한 안류는 얼굴의 땀을 팔굽으로 문대며 대꾸했다.

《내 이래뵈두 내 손으로 곡식을 심어먹는 사람이오이다. 우리 집뒤에 해묵은 대추나무들이 널려있는 밭이 있는데 난 거기에다 보리를 심어먹소이다. 해마다 보리풍년이라 이웃들은 나를 가리켜 농사물계에 환하다고 칭찬이 자자하오이다.》

을파소는 크게 웃음을 터치였다.

유쾌하게 웃고난 을파소는 말했다.

《그대가 농사물계에 환하다? 거참 듣기 좋소. 대추나무밭에서 보리풍년이 드는건 그대의 덕이 아니라 대추나무의 덕분이라는걸 모르는가부지.》

안류는 곧이들리지 않는다는듯 고개를 저었다.

《허― 이 사람이 잘 믿지 않는군. 그러니 긴말을 해야겠군. 대개 보리이삭이 패는 시기에는 메마른 바람이 불기마련일세. 바로 그때 한창 잎이 무성해지는 대추나무가 다른 나무들과 달리 많은 물기를 잎에 머금고있기때문에 그 몹쓸 메마른 바람을 막아주는거네. 그래서 보리가 시들지 않고 잘 여물수 있는걸세.

때문에 예로부터 보리밭에 대추나무가 있으면 일거량득이라고 하는거네.》

안류는 보리농사의 비결을 즉시에 일깨워주는 을파소의 학식에 감탄을 금할수 없었다.

이번에는 을파소가 물었다.

《댁에선 수수농사도 짓소?》

안류는 멋적게 웃었다.

《허참, 보리는 잘되는데 수수는 그렇지 않소이다.》

《혹시 수수밭에 참깨를 섞어심는건 아닌가?》

《그걸 어떻게 아오이까?》

을파소는 새 이랑의 조를 베여눕히며 대꾸했다.

《농사를 짓는데서도 요령이 있어야 하네. 수수와 참깨는 수화상극이라 그것들을 섞어심으면 수수농사가 잘 안되네.》

연방 감탄을 터치던 안류는 정색해졌다.

《선배님은 연나부의 세상이 언제까지 간다고 생각하오이까?》

거듭되는 질문에 을파소는 허리를 펴고 웃었다.

《이보게 안공, 조석거리도 없는 주제에 천하를 걱정한다는 말이 있지. 옛말이라고 다 옳은건 아닐세. 조석거리가 없기때문에 조석거리를 얻기 위해서라도 천하를 걱정해야 한단 말일세. 그래서 난 남들이 농사군따위가 세상형편을 운운하는건 주제넘는 일이라고 비웃더라도 요즘 되여가는 조정의 꼴을 보기만 할수 없네. 그렇다고 이런데서까지야…

그건 그렇고 후배가 선배네 집에 놀러왔은즉 내 한턱 쓰지. 오늘 점심은 밭에서 대충 하고 저녁에 우리 가문의 별식을 대접하지.》

안류는 조급해졌다.

을파소도 학루처럼 벼슬길에 등을 돌려댄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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