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회)


제 1 장


(6)


을파소가 음식점에서 밥 한그릇을 사먹고 오후에 관가를 찾아가니 마침 호구를 맡아보는 관속이 있었다.

을파소가 찾아온 사연을 안 그는 아주 좋아하였다.

호구를 하나라도 늘이면 조세는 말할것도 없고 관가에서 긁어들이는 재물도 늘어나니 그럴수밖에 없는것이였다.

을파소는 종으로 부려오던 정우와 인우를 호적에 올리고(물론 속량문서를 먼저 만들었다.) 그들의 몫으로 서너마지기의 땅도 관가의 장부에 쪼아박았다.

사실 그 땅은 장차 그들을 장가들이면 나누어줄 생각으로 몇해전부터 개간해온 새땅이였다.

뜻대로 일을 마친 을파소는 관가에 온김에 량인으로 만든 정우와 인우를 군적에 올려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량인은 누구나 군적에 이름을 올려야 하는것이 나라의 법이였다.

그런데 아쉽게도 군적을 맡은 구실아치가 보이지 않았다.

그냥 돌아서자니 수십리길을 또 군걸음해야겠고 그래서 객지에서 하루밤 묵더라도 일을 보고 갈가 하는 생각으로 관가의 대문밖에서 서성거리는데 문지기가 말을 걸었다.

《로인장은 무슨 일이 있기에 서성대는것이오이까?》

그제서야 을파소는 검은 수건을 쓴 문지기를 알아보았다.

그동안 관가를 자주 드나들다보니 고을의 우두머리인 처려근지(고구려의 군급고을의 장관)로부터 심부름군에 이르기까지 을파소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문지기는 악독한 동생을 처형하고 그의 죄를 바로잡느라 뛰여다니는 을파소를 존경하고있었다.

《글쎄 군적에 올려야 할 일이 있는데 그 일을 해줄 사람이 없으니 이러는것일세.》

문지기는 존경하는 사람을 도울 일이 생긴것이 기뻐 친절하게 대꾸했다.

《그 어른이 요즘 바쁘오이다.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군적에 빠진 사람들을 장부에 올려야 하니 다리에서 꿀물이 빠지게는 되였지요. 소인이 꼭 기별을 해서 그 어른이 래일 아침 관가에 들려가도록 하겠으니 주막에서 쉬고 래일 아침 오시오이다.》

뜻밖에 문지기까지 도와나서는 바람에 을파소는 하루밤 객지에서 묵기로 결심하였다.

고을의 주막에서 하루밤 묵은 을파소는 이튿날 아침 관가를 찾아갔다.

체격이 크고 준수하게 생긴 을파소가 긴 덧옷을 깨끗이 차려입고 나서니 자못 위풍이 있었다.

관청마당에 군사를 맡아보는 구실아치임즉한 사람이 서있었다.

그가 먼저 허리굽혀 인사를 하는것을 보아 문지기의 기별을 받고 기다리는 모양이였다.

《로인장께서 먼길에 고생이 많았겠소이다.》

관속의 곰살궂은 인사에 을파소는 감동되였다.

모든 구실아치들이 이 사람처럼 례절에 밝으면 얼마나 좋을가.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만나자고 했소이까?》

관가로 들어가자는 말도 없이 직판 찾아온 용건을 말하라고 하는것을 보아 그가 문지기의 말대로 몹시 바쁜것 같았다.

을파소는 직판 말하였다.

《내 집에서 부리던 두명의 종을 군적에 올려주오.》

구실아치는 어이없어하더니 씩 웃었다.

《종은 군적에 올릴수 없소이다.》

을파소는 어줍게 웃으며 말했다.

《내 그만 순서가 헛갈리는 말을 했소그려. 사실 그 애들은 어제 속량을 하고 호적에 올렸네.》

구실아치는 고집스레 고개를 저었다.

《제 알기에 그들은 로인장이 전장에 나갔다가 상으로 받은 종이 아니오이까.》

사실이 그러했다.

스무해전 그해는 을파소의 한생에서 가장 잊을수 없는 한해였다.

바로 스무해전 그해 고구려군이 국경에 침입한 후한군을 요정내라는 조정의 령을 받고 만리장성일대에 진격하여 수많은 적을 요정낸것이였다.

그때 군교로 출전했던 을파소가 속한 선두진은 만리장성을 넘어가 패주하는 적군의 퇴로를 끊고 많은 적을 소멸하였다.

어느날 패주하는 적군이 부역군들을 죽인다는 급보가 날아들었다.

부역군들로 말하면 적군에게 포로되여 끌려다니던 후부여국사람들이였다.

고구려군의 드센 공격으로 녹아나는 적들이 패전의 앙갚음으로 고구려와 동족인 그들을 죽이려 하는것이였다.

적진의 지척에 진을 쳤던 을파소의 부대는 지체없이 출전하여 무고한 부역군들을 죽이는짓에 미쳐돌아가는 적을 들이쳤다.

검술에 능한 을파소는 선두에서 말을 달리여 닥치는대로 적군을 베이였다.

그날 고구려군은 적지 않은 부역군들을 구원했다.

천하의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고구려에서도 군공을 세운 군사들에게 포로를 상으로 주고있었다.

후한군에게 끌려다니던 부역군들은 포로로 취급되였고 결국 을파소는 그중 나이가 제일 적은 애젊은이들을 상으로 받게 되였던것이다.

《그건 그렇네. 하지만 주인인 내가 그 애들을 속량시키자고 하였기에 관가에서도 량인으로 호적에 올린게 아닌가.》

구실아치는 한결 누그러진 어조로 대꾸했다.

《나도 요즘 나라가 돼가고있는 형편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오이다. 우리 고을에만도 수천의 호구를 헤아리는데 군적에 올라있는 사람은 많지 못하오이다. 이런 때 후한군이 쳐들어오면 어찌 되겠소이까.》

을파소도 후한과 대치한 서쪽의 형편을 모르는바 아니였다.

후한이 차지한 료동에서 공손도라는자가 태수노릇을 하면서 변방정세가 더욱 악화되고있었다.

아전출신이라는 공손도는 한때 후한조정을 쥐락펴락했던 동탁의 눈에 들어 료동태수로 된자인데 처음에는 고구려와 사이좋게 지내려 굽신거렸다.

그러나 중원에서 터진 황건농민폭동으로 후한조정이 맥을 추지 못하는 기회에 산동일대의 넓은 땅까지 타고앉아 제왕노릇을 하더니 고구려를 엿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공손도야말로 어느때건 후한조정을 등에 업고 전란을 일으킬수 있는 위험한 적수였다.

《그렇지 않아도 우에서는 해마다 군적에 루락된자가 없게 하라는 독촉이 불같소이다.》

늘 가슴 한켠에 나라 근심이 가득한 을파소에게는 자못 귀맛이 도는 소리였다.

해마다 우에서 군적에 이름을 올리지 않는자가 생겨날세라 고을들에 독촉하는것은 잘하는 조치가 아닐수 없다.

무예를 숭상하는것이 고구려사람들의 풍습이라고는 하지만 관가들에서 건달을 부리면 나이든 젊은이들이 미처 군적에 이름을 올리지 못할수도 있고 또 제살궁리밖에 모르는 부자들이 고의로 군적에서 빠져나갈수도 있는것이다.

을파소는 구실아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어서 그 애들을 군적에 올려주게.》

구실아치는 딱해하는 기색이였다.

《나도 로인장네가 어떤 가문이고 또 어떻게 사는지 다 알고있소이다. 어이하여 나라에서는 로인장과 같은 어른을 조정대신으로 등용하지 않는지…》

을파소는 구실아치의 손을 부여잡았다.

《말만 들어도 기쁘이. 이 고을에 나라를 생각하는 자네같은 사람이 있으니 다행일세. 내가 조정대신이라면 자네같은 사람을 크게 쓰겠네.》

이 말은 롱말이 아닌 진심이였다.

벼슬아치들을 떼고붙이는 권한이 있다면 바로 이런 사람들을 찾아내여 고을뿐아니라 나라의 중요한 관직들을 맡겨줄 을파소였다.

인재란 별사람이랴. 나라를 진정으로 생각하고 나라를 위해 몸바쳐 일하려고 하는 사람이 인재인것이다.

《그럼 난 그 애들을 군적에 올린것으로 알겠네.》

이전부터 을파소를 공경해온 구실아치는 악한 동생을 결단코 처형한 일로 하여 살림이 궁색해진 을파소를 돕고싶었다.

그러나 본인이 강경하게 나오니 물러서지 않을수 없었다.

《그럼 그렇게 하겠소이다.》

마지못해 응하는 구실아치를 보면서 을파소는 관가에 나쁜 사람도 많지만 의로운 사람도 있다는것을 느끼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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