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 회)

제 2 부. 국강상의 전설

제 2 장. 국강상의 가을

2

그렇게도 기대했던 백제군의 지원이 예상외로 늦어지자 전선형편은 차츰 역전되기 시작했다.

불의의 역습에 참담한 패배를 당하고 뿔뿔이 흩어졌던 신라군이 3개 방면으로 집결하여 반공격에로 나서고있었다.

거기에 고구려에서 지원군이 곧 당도한다는 소문이 흉흉하게 나돌아 가야-왜군의 군사들은 모두 사기를 잃고있었다.

시급하게 백제의 대군이 들어오지 않으면 모처럼 얻은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될것이였다. 연우는 련합군의 수장으로서 련사흘째 꼬박 밝히고있었다. 그처럼 열망했던 야망이 이루어지고있을 때에 만에 하나 실수하여 모든 기대가 무너진다면 어찌될것인가. 끝까지 버티여내야 했다. 신라군이 전렬을 정비하고 반격에로 나오고있는이상 순간도 해이될수 없었다. 아신왕이 약조를 지켜 3만의 대군을 들이밀어 신라로 진격해준다면 승전은 기필코 이룰것이였다. 허나 약조한 기일이 지났는데도 백제군의 진격은 진행되지 않고있었다. 어찌된 일인가.

그동안 백제땅에서 무슨 사변이라도 일어났단 말인가? 아니면 아신왕의 생각이 바뀌였다면?…

그럴수 없었다. 한산의 치욕을 통탄하며 복수를 갈망하고있는 아신왕이 다 익은 밤알을 불속에서 끌어내기만 하면 되는 이때에 물러설수는 없을것이였다.

연우는 불안과 초조감에 안정을 잃었다.

가뜩이나 신라군의 기습으로 전선이 뒤흔들리고있을 때 고구려군이 곧 진격해온다는 소문까지 떠돌아 군심이 뒤숭숭해지고있었다.

하여 연우는 전령을 거퍼 한산성으로 떠나보내는 한편 이렇듯 밤을 꼬박 밝혀가면서 전선을 지휘하고있는것이였다.

연우가 직접 이끌고있는 별동대는 여전히 굳건했다.

매 군사가 아무런 동요도 없이 묵묵히 자기 위치를 지키고있어 믿음직했던것이다. 허나 이웃하고있는 왜군의 실태는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불의의 기습으로 생각지도 않았던 승리를 거둔 왜군은 날이 갈수록 전선형편이 뒤바뀌여 신라군이 반격으로 나오자 극도로 당황해하고있었다.

사실상 전략적우세로 초기의 승전을 거두었을망정 엄연한 리치로 따진다면 가야군과 왜군으로 무어진 련합군은 행동거지에서는 오합지졸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런 면에서는 아라인의 국가를 부활시킨다는 일종의 집착된 리념으로 굳게 단결되여있는 아라인별동대와 전혀 달랐다.

연우가 수차례에 걸쳐 신칙하지 않았다면 신라군의 반격을 받아 가야-왜군의 전선은 이미 무너지고말았을것이였다.

연우는 사사히꼬와 같은 무지하고 미개한 야만인과 한전장에서 어깨를 겯고 싸워야 한다는 생각에 수치감을 느끼고있었다.

자기가 한생의 운명을 걸고 전념해온 소원을 이루는 길에 사사히꼬를 앞세워야 하며 한갖 왜인의 야망이나 충족시키는데 자신이 리용된다고 생각하니 분노가 치솟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것을 참아내야만 했다. 신라의 도성을 함락하고 신라를 병탄하면 고대하던 꿈은 현실로 될것이였다.

연우가 가장 두려워하는것은 지금 군영내에 떠돌고있는 소문이였다.

신라군의 반격은 어떻게 해서든 막아낼수 있어도 소문 그대로 고구려군이 들어온다면 막아낼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아직 백제에서는 군사를 움직이는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연우는 지금 고구려군의 적극적인 공세로 한수이북지역에서 대격전이 벌어지고있는것도 또 영락태왕이 수만의 기마군사들을 거느리고 료하를 건너 료서지방을 무자비하게 휩쓸고있는줄 꿈에도 알수 없었다.

더우기는 영락태왕의 령을 받은 평양성 태수 맹광이 무려 5만의 대군을 이끌고 3개 방면에서 신라변경을 넘어선줄은 짐작도 못하고있었다.

고구려 영락태왕의 단호한 결단에 의하여 고구려는 다시 대지를 박차고 일어나 천하를 놀래우는 사변을 창조하고있었던것이다.

고구려군의 예상치 못했던 선제공격에 철벽이라 일컫는 백제의 변경방어선이 갈기갈기 찢어져나갔고 후연의 수십만대군은 비참한 패전을 당하고 유주계선까지 쫓겨달아났다. 연우가 그토록 고대하던 꿈은 또다시 깨여지고있었다.…

 

고구려 영락태왕 10년인 400년 2월 중순, 신라도성에서 신라군과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리고있는 가야-왜군전선에 지원무력이 당도했다. 그러나 지원군은 연우가 그토록 기다리던 백제의 대군이 아니라 이또가야국의 왕인 시마가 이끄는 2천여명의 보병집단이였다.

비록 고대하던 백제의 지원군은 아니였으나 수십차례의 대소격전에서 전투력이 쇠약할대로 쇠약해진 가야-왜군에게 있어서 이것은 참으로 반가운것이 아닐수 없었다.

시마는 한때 구노국 사사히꼬의 반란을 겪었으나 왜땅의 가야이주민들의 영향력을 리용하여 다시 일어섰던것이다.

구노국 왜인들은 반란을 일으켜 김지수를 제거할수는 있었으나 선진문명과 막강한 힘을 가지고있는 가야이주민세력을 억제할수 없었다.

시마는 비록 김지수와는 한때 반목하는 사이였으나 미개한 야만인들이 김지수를 죽이고 이또가야국을 쑥밭으로 짓밟아버린데 대해서 속으로는 좋지 않게 생각하고있었다.

허나 교활하기 그지없는 구노국왕 사사히꼬가 재빨리 변신하여 백제국의 신임을 받고있는데다가 이또가야국 또한 그전날의 위세와 힘을 잃어 쇠퇴하였는지라 시마는 할수없이 때를 기다리고있지 않으면 안되였던것이다.

시마의 이번 신라원정은 표면상으로는 왜군을 지원한다는 목적을 두고있었으나 실상은 다시한번 이또가야국의 힘과 위세를 보여 중요하게는 백제 아신왕의 인정을 받으려는데 있었다.

시마는 전선에 도착하자바람으로 수하장수들과 함께 왜군의 병영이 아니라 백제좌장 연우가 있는 장막부터 찾았다.

연통을 받고 장막밖으로 뛰여나온 연우는 시마의 손을 반갑게 잡아쥐였다. 시마와 연우가 만난것은 실로 한산대격전이후 4년만의 상봉이였던것이다.

《외삼촌, 이 조카는 멀리에서 외삼촌이 무사하기를 고대하였소이다.》

장군이 불행을 당하였는가싶어 편히 발편잠을 자보지 못한 이 늙은이가 이렇듯 오늘은 한시름을 놓게 되였소.》

시마는 외조카인 연우를 이렇게 존대하며 감개무량한듯 마음껏 웃었다.

역시 나이는 속일수 없는것이였다. 어느덧 시마의 주름덮인 볼로 눈물이 흘러내리고있었다.

한산성대격전때 고구려진영을 향해 말을 달려가던 연우의 모습이 4년전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였던것이다.

그때로부터 다난한 4년세월 아라인들의 기둥인 동시에 자신의 기둥이기도 한 연우를 잃었는가싶어 가슴을 조이며 발편잠을 자보지 못한 시마였다. 시마가 구노국의 반란을 겪은 후에 다시 힘을 가다듬어 일어설수 있은것은 그후 연우가 한산성대격전때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소문때문이였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연우는 여전히 백제조정의 신임을 받아 좌장으로 승진되였고 새로운 박력으로 아라를 위해 전념하고있다는 소식은 구노국에 짓밟혀 쑥대밭이 되여버린 이또가야국에서 탄식으로 세월을 보내고있는 시마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주었다.

연우는 시마의 두손을 부여잡고 그간의 회포를 나누면서도 자꾸만 시선은 시마의 등뒤로 향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연우의 심정을 눈치챈 시마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이 늙은게 또 실수를 하는군. 장군, 마음놓으시오. 내 이번길에 치희를 데리고왔소. 하긴 내가 데리고 떠나지 않았다 해도 기어이 따라설 처녀이지.… 참으로 장군은 복을 타고났소. 치희와 같은 처녀의 사랑을 받는다는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

연우는 시까스르는듯싶은 시마의 말에 어줍게 웃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어느새 얼굴이 달아오르며 가슴도 거칠게 뛰놀았다.

《이제 만나면 그간의 회포를 나누시오. 장군과 헤여진 후로는 눈물로 세월을 보낸 치희요. 장군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번이나 백제땅으로 건너가겠다는것을 내가 눌러앉히군 하였다오.…》

시마는 연우의 심정을 안다는듯 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지금 어디에 있소이까?》

연우의 성급한 물음에 시마는 여전히 빙그레 웃으며 손으로 남쪽을 가리켰다.

《혹시라도 전선에 데리고오면 화를 입을가싶어 저기 성염성에 치중병과 함께 떨구어두었네.》

연우는 손으로 얼굴을 한번 쓸고나서 그제야 이때까지 시마와 이또가야국의 장수들을 밖에 세워두었다는것을 깨닫고 안으로 청하였다.

《이거 내가 무례했군요. 어서 안으로 드소이다.》

장막안에서 자리가 정돈되자 연우는 이또가야국의 여러 장수들에게 전선형편을 간단히 설명하였다.

시마는 고개를 끄덕여 수긍하기도 하고 또 모를것이 있으면 주저없이 묻기도 하였다. 이윽고 연우의 말이 모두 끝나자 시마는 전장지도에서 눈을 떼더니 이렇게 입을 열었다.

《역시 듣던바 그대로이군. 내 생각에는 사흘안으로 백제군이 들어오지 않으면 하는수없이 아라성방향으로 철수하는수밖에 없을것 같소.》

《외삼촌의 말씀이 옳소이다. 저 역시 사흘안에 병력이 지원되지 않으면 퇴군할 결심이오이다.…》

연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장막밖이 소란스러워지더니 전령이 뛰여들어왔다.

《급보요! 고구려의 5만대군이 신라변경을 넘어 도성을 향해 진격해 오고있소이다. 고구려군의 수장은 평양성 태수 맹광이라 하오이다.》

 

영락태왕 10년 2월에 드디여 고구려는 행동을 개시했다.

영락태왕의 총애를 받는 평양성 태수이며 왕당군의 중리도독인 맹광이 대군을 이끌고 평양성을 떠나 열흘만에 신라변경을 넘어섰던것이다. 신라 나물왕의 청병에 따른 고구려군은 보군, 기마군 모두해서 5만의 대군이였다.

한편으로는 이와 병행하여 2만명의 고구려군이 남부변경일대에서 백제군의 방어선을 뚫고 한수를 향해 파죽지세로 진격하여 백제가 감히 신라방면으로 무력을 동원시킬수 없게 발목을 붙잡고있었다.

영락태왕 담덕은 남부전선의 일을 자신이 믿고 아끼는 부하인 맹광에게 맡기고는 곧바로 서북지방으로 북상하여 5만의 서북군을 이끌고서 후연과 전면전에 진입했다.

담덕은 이렇게 다시한번 천하를 놀래웠다.

먼저 전쟁의 불을 지른것은 후연이였다.

후연의 승상 모용가를 우두머리로 하는 20만의 대군이 불의에 고구려지경을 넘어서서 고구려 서북지방의 중심지인 신성과 남도성을 공략하고 일시적으로 700여리의 령토를 타고앉았다.

허나 후연군은 영락태왕 담덕이 이끄는 고구려 서북군의 맹렬한 반공격에 련전련패하여 무질서하게 패주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담덕은 무자비한 보복타격으로 지경을 넘어왔던 후연군을 거의 전멸시켜버렸다.

후연군은 영락태왕의 위력에 혼비백산하여 전전선에 걸쳐 쫓겨달아나고있었다.

담덕은 대고구려의 지경을 침범한 적에게는 꼬물만큼도 용서를 몰랐다.

최정예의 철기군을 앞세운 5만의 고구려군은 패주에 정신이 없는 후연군의 뒤를 무섭게 다그어대며 밀고나갔다.

후연군은 자기들의 발뒤꿈치를 물고 추격하는 고구려군에게 맞아죽고 찔려죽고 짓밟혀죽었다.

료서는 고구려군의 수중에 완전히 장악되고 근 20만의 후연군이 처참하게 전멸되였다. 전선이 유주를 가까이하자 후연은 당황망조하지 않을수 없었다.

고구려가 남부전선에서 일시 어려움을 겪게 되자 이것을 절호의 기회로 여겨 20만의 대군을 발동하여 지경을 침범하였다가 오히려 고구려군의 반공격에 참담한 패배를 당했던것이다.

수중에 장악했던 료서지방을 빼앗기고 나라의 중심지인 유주가 위협당하고있었다. 자칫하면 나라가 멸망할수도 있었다.

후연은 지경을 지켜내기 위하여 전국 각지에서 수십만의 대군을 불러올리는 한편 유주계선에서 저지선을 긋고 필사적으로 저항해나섰다.

하지만 고구려의 영락태왕이 이끄는 고구려군은 무적의 강군이였다. 바빠맞은 후연은 련일 전선에 증원무력을 들이밀어 어떻게 해서든 장성으로 밀리지 않으려고 갖은 발악을 다했다.

전쟁이 차츰 장기화되고 보급로가 길어진 조건에서 싸움을 치를수 없게 된 고구려군은 잠시 후연에 대한 징벌을 뒤로 미루고 군사를 돌렸다. 하여 후연은 가까스로 나라의 멸망을 면할수 있었던것이다.

고구려군은 이번 전쟁에서 수백리 광대한 료서땅을 완전히 장악했다.

남부지방에서도 하늘땅을 뒤집는 대격전이 벌어지고있었다.

한수를 넘어선 고구려의 타격집단은 맞다드는 백제군을 짓밟으며 겹겹한 방어선들을 두들겨부시고 어느덧 한산성을 가까이하고있었다.

극도로 당황해난 백제는 신라를 공격하기 위해 동부지역에 집결시켜놓았던 3만의 정예무력을 급히 한산성으로 불러올려 고구려군의 진격을 막기 위한데 급급하였다.

철벽이라고 일컫던 백제의 방어선이 이렇듯 허무하게 무너져내린 원인은 다른데 있지 않았다.

백제는 변경에 배비되여있는 정예무력을 은밀히 동쪽으로 이동시키고 방어선에는 전투력이 그리 강하지 못한 지방군을 배치하여놓고 허장성세하였던것이다.

이 무력은 고구려의 눈을 속여 신라로 지원무력을 감히 파하지 못하게 하려는 백제의 위장전술이였다.

그러나 고구려 영락태왕은 백제의 속심을 간파하고 불의에 대군을 발동하여 기습공격을 들이댄것이다.

백제는 제가 판 함정에 제가 뛰여든격이 되였다.

한편 평양성을 떠나 동쪽으로 신라변경을 넘어 진격하고있는 고구려 지원군은 3개 방면으로 밀고내려가고있었다.

고구려 5만대군의 엄청난 위력에 질겁한 가야-왜군은 맞서싸우기는커녕 맞다드는 곳마다에서 들고뛰였다.

고구려군의 질풍같은 진격에 힘을 얻은 신라군이 력량을 재수습하여 반격함으로써 신라의 도성이 포위에서 벗어났다.

눈깜빡할 사이에 전쟁의 국면이 뒤바뀌여졌다.

이번 신라원정에서 고구려군이 수행해야 할 사명은 우선 가야군과 왜군을 신라령토에서 몰아내며 전쟁이 끝난 후에도 반수의 무력을 신라땅에 주둔시키는것이였다.

그 목적은 혼란된 신라의 정국을 안정시키는 한편 백제-가야가 왜와 결탁하여 고구려에 다시 반기를 드는 순간 응징을 가하는데 있었다.

만약 백제가 또다시 이번과 같은 배신행위를 한다면 고구려와 신라의 두개의 전선에서 전쟁을 치르지 않으면 안될것이였다.

고구려군이 신라에 주둔하면 남쪽의 3국(백제, 가야, 신라)을 모두 수중에 장악하게 될것이니 겨레의 통일은 멀지 않은 앞날에 이루어질것이였다.

사실상 고구려가 후연과 백제와 동시에 전쟁을 치르면서 신라에 또 대군을 파한다는것은 아무리 강국일지라도 힘에 부치는 일이 아닐수 없었다. 신라에서 청병사신단이 도착한지 두달도 못되는 짧은 기간에 보병, 기병 5만이라는 대군을 모집한다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다.

이것은 항시적으로 전시체계를 갖추고있는 고구려의 막강한 힘이 있고 영락태왕의 결단이 있어 가능했던것이다.

영락태왕이 신라에 지원군을 파할 결심을 내린 후에 맹광은 따로 지방의 군사를 불러올린것이 아니라 평양과 그 일대의 청장년들을 군사로 모집했다.

평양지방은 영락태왕이 수년전 거란을 징벌하는 원정군을 모집했던적이 있는 고장이였다.

그때 영락태왕은 큰 무예시합을 벌려 평양지방에서 많은 무사를 골라 뽑았었다. 이를 계기로 영락태왕은 평양지방의 백성들이 누구보다도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적열의가 높고 용맹하다는것을 잘 알게 되였다.

평양지방에서 입대한 군사들모두가 거란원정과 백제전쟁때 용맹하게 싸워 대고구려의 위용을 떨치였다.

이번에도 영락태왕은 맹광의 의견대로 평양과 그 일대에서 수만의 대군을 모집하여 신라에 파견하였다.

고구려는 건국초기부터 일단 유사시에 전국의 모든 장정들을 군사로 동원시키는 전시체계를 갖추고있었다.

유사시에 모든 남정들이 군사가 되여 출전하는것은 의무적인것으로 전통화되여있었다. 따라서 고구려남자라면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며 창검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무예를 습득해야만 했다.

경당마다 향촌의 장정들의 명부가 있어 일단 유사시에는 하루이틀사이에 수십만의 대군을 모집할수 있었다.

또한 고구려사람들은 나라를 지키는 싸움, 전쟁을 통해서 명예와 지위를 얻을수 있었기때문에 무예를 습득한 장정이라면 누구나 할것없이 군사가 되기를 자원하는 전통이 강하였다.

고구려는 조상전래의 전통으로 두달도 못되는 사이에 평양과 그 일대에서 무려 5만명의 대군을 모집하여 시급히 신라를 지원할수 있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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