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 회)

 

제 19 장

 

2

 

나까지마는 머리는 모자라도 악랄한데서는 남에게 지지 않아 조선어학회사건 피검자들을 최대한으로 괴롭힐수 있는 방법들을 고안해냈다. 이놈은 경관들의 유도도장인 《무덕전》에 고문시설을 갖추어놓고 여러 사람을 동시에 심문하고 고문하여 서로 보게 함으로써 피검자들에게 공포감을 불러일으키자는것이였다. 또한 갑자기 많은 사람들을 잡아와서 류치장이 초만원이기도 했지만 피검자에게 우선 인간적인 모욕감을 주려고 그들을 류치장앞의 복도에 주런이 앉히고 발에는 조선봉건시대에 쓰던것과 같은 족쇄를 채워두는것이였다.

그래서 리윤재는 류치장을 마주하고 복도 벽가에 리희승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그와 서로 련결된 족쇄를 발에 차고 구부정해서 앉아있었다.

어제 당한 고문으로 다리의 뼈가 잘못되였는지 몹시 부자연스러워 눕고싶었으나 간수의 눈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함께 있는 리희승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억지로 참고 앉아있었다.

벌써 10월 하순이니 이럴 때는 바깥보다 집안이 더 으쓸한데다가 해빛이라곤 한점도 안 드는 류치장이니 벌써 선기정도가 아니라 추위가 몸에 오싹오싹 스며드는것이다. 더우기 운동 한번 못하고 연명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먹이는 급식으로 하루종일 배고픔에 시달려야 하니 추위는 더욱 견디기 어려운것이였다.

류치장에서 피검자들이 서로 이야기하는것이 엄금되여있었고 특히 수감자끼리 이야기를 할 때는 가차없는 벌을 받았다. 눈을 까뒤집고 지켜보고있는 간수에게 들키면 구두발로 마구 채이거나 몽둥이로 두들겨맞거나 찬물세례를 받는것이 통례였다.

이런것을 리윤재는 뻔히 알고있으면서 간수의 감시도 완전히 무시하듯 어떻게 보면 무분별할 정도로 리희승에게 이야기를 거는것이였다. 게다가 간수의 눈치를 보며 소곤소곤 말하는게 아니라 간수가 듣건말건 례사로운 목소리로 말하는것이였다.

《일석(리희승의 호), 림형수씨의 이야기를 들었지요? 그의 상투보다도 그 도도한 기상이 마음에 드는군.》

림형수란 전라도사람인데 조선어에 관심이 높아 자기희생적으로 일하는 어학회에 다소라도 도움을 주려고 5백원을 희사했고 어학회에서는 그 뜻이 고마와 그의 이름을 사전편찬후원회의 명단에 올렸을뿐인데 그것이 계기가 되여 며칠전에 홍원경찰서에까지 잡혀오게 되였던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때까지 상투를 틀고있었으니 그것은 로모앞에서 차마 삭발을 할수없었기때문이였다고 한다. 경찰서에서 형사들이 가위를 들고 그의 상투를 자르려 하자 그는 그들에게 불호령을 내렸다는것이다. 이 이야기가 류치장에까지 전해지자 리윤재는 림형수가 이때까지 상투를 보존한것은 시대의 흐름을 몰라서가 아니라 로모에 대한 효성과 함께 민족의 얼을 지키려는 우국충정에서였으리라고 생각했다.

리희승도 리윤재가 림형수와 어딘지 비슷한데가 있다고 생각했다. 리윤재자신이 의분덩어리같은 사람이기때문이다.

리윤재는 요리조리 수단을 부릴줄 모르고 고지식하기 짝이 없어서 자기가 그르다고 생각한것은 절대 피하고 반대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그의 신조대로 돌진하는 기개와 용기를 가지고있었다.

바로 이 고지식, 더 나아가서는 이 《고집》때문에 그는 수난과 고초를 초래한 일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가 일생을 통하여 저버리지 않은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왜놈의 수중에서 우리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서는 죽음도 두려울것이 없다는것이다.

리희승은 새로운 눈으로 리윤재를 보게 되였다.

리윤재는 타고난 고지식과 정의감때문에 평소에도 삼엄한 왜정치하에서 왜적의 불의와 무도를 기탄없이 매도하여 과격한 언사를 마구 하는것이였는데 이 류치장에 들어와서도 가슴속에서 치미는 의분의 불길은 억제할수 없었던 모양이다.

간수의 발걸음소리가 뚜벅뚜벅 들렸다. 그런데 독사처럼 눈을 할기며 다가왔던 간수가 웬 일인지 갑자기 픽 돌아서서 그냥 가버렸다. 그자도 리윤재는 원래 그런 인물이라고 치부하고있는 모양이였다.

리윤재는 태연한 얼굴을 하고있었다. 이 태연자약, 만사무심이 어디서 온것인가 하고 리희승은 생각해보았다. 이 인간이하의 생활속에서 래일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이렇게 락천적일수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리윤재에게 있어서 래일에 대한 믿음이란 곧 왜적의 멸망과 조국의 독립이다. 이 믿음이 없기때문에 리광수가 변절했고 최남선이 지조를 꺾었다. 리윤재에게 있어서는 이 믿음이 그의 인생관이고 생활신조이다.

짐작으로 오후 두어시쯤 되였을 때 별안간 간수들이 쓸어들어서 감방안에서 앓아누운 사람까지 몽땅 일으켜서 줄을 맞추어 앉게 하고 복도에 있던 사람들을 립추의 여지도 없는 감방안에 몰아넣는것이였다.

그러자 리윤재는 도리여 변기통옆에 다리를 쭉 뻗고 누우며 리희승에게 말했다.

《일석, 아무래도 내가 좀 누워야겠어요.》

《일없을가요?》

아니나다를가 간수 하나가 달려오더니 누워있는 리윤재를 보고 성이 나서 빨리 일어나라고 소리쳤다. 리윤재가 대꾸도 안하자 그가 감방문을 열려고 하는데 복도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경찰고관인듯 한자가 경찰서장을 대동하고 다가왔다. 그는 감방들에서 유독 혼자만 누워있는 리윤재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는지 서장에게 물었다.

《저자는 왜 누워있는가?》

서장이 당황하여 리윤재에게 주의를 주었다.

《일어나 앉아서 각하에게 대답을 해드리시오.》

리윤재는 여전히 누운채 대답했다.

《당신들이 고문해서 내 다리를 꺾어놓았으니 내가 못 앉는거야 내 잘못이 아니겠지요.》

서장이 고관에게 소곤거리자 그는 거만한 표정을 거두고 다소 상냥하게 말했다.

《아프면 누워서 말하시오. 리윤재씨, 나는 당신을 잘 알고있소. 조서도 읽어보았소. 경찰조사에 당신같이 대하면 그 일이 오래 끌수 있고 그렇게 되면 당신에게도 불리하오.》

리윤재는 억지로 일어나 앉아서 말했다.

《경찰고관인 당신도 조선어학회사건이 사건으로 성립될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조선사람이 조선말을 연구한게 어떻게 내란죄로 된단 말이요? 지금은 당신들이 야만적인 고문으로 거짓을 조작해낸다 해도 후세사람들은 당신들을 두고 뭐라고 말할것 같소?》

고관놈은 얼굴을 붉히고 말없이 잠시 서있다가 돌아서버렸다. 그에게 리성이 다소라도 있었더라면 조선어학회사건이 억지로 조작된 날조극이라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을것이다.

고관일행이 돌아가버리자 누가 부탁한 사람도 없는데 감방사람들이 그 좁은 감방에서 자리를 내더니 리윤재를 변기통옆에서 옮겨뉘워주었다. 모두가 자기밖에 모르는 이 각박한 감방세계에서 더구나 정치범도 아닌 잡범들의 이와 같은 소행은 너무도 례외적인것이라 아니할수 없었다. 이 감방이라는 인간생지옥에서조차 《범인》들은 그를 위해주었다.

그후 리희승은 무엇인지 일어날것만 같은 예감으로 마음이 저으기 불안했다.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저녁녘에 야스다가 와서 리윤재를 불러내갔다. 리희승의 불안은 더욱 커졌고 리윤재의 신상이 몹시 걱정되였다. 리윤재때문에 가뜩이나 골을 썩이고있는 야스다가 낮에 한 그의 행위에 대해 보복을 할것이 뻔했기때문이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며 잠 못 이루고있는데 밤이 이슥해서 야스다와 간수가 리윤재를 맞들고 와서 감방에 던지고 가버렸다.

리희승은 그를 자기 자리에 눕히고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복도천정에 높이 매달린 14촉짜리 백열등이 희미하게 비친 그의 얼굴은 종이장처럼 창백하고 상체가 물에 흠뻑 젖어 그는 와들와들 떨고있었다. 그러나 리희승은 그의 손발을 주물러주는것외에는 간호할 방도도, 도움을 줄 길도 없었다.

이윽고 그가 너무도 기척이 없는데 놀란 리희승이 《환산선생.》 하고 부르며 그의 몸을 흔들어보았다. 그제서야 그는 혼수상태에서 깨여난듯 앙다물었던 입을 벌려 이를 드러내며 눈을 간신히 떴다. 그러나 그 눈은 분명 웃고있었다.

리희승은 그 강자의 웃음을 그후에도 잊을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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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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