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0 회)

 

제 19 장

 

1

 

리윤재는 일생 미신이라는것을 믿어본 일이 없었지만 때때로 직감을 느끼는 일은 있었다. 요즘 바쁜 나머지 텁수룩해진 수염을 오늘 아침에 면도질하다가 피끗 칼을 잘못 놀려 귀밑뺨에 조그만 상처를 내였다. 이런 일은 그에게 어쩌다가 있는 일인데 오늘따라 그는 어쩐지 불길한 생각이 들었고 오늘은 조심해야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사소한 실수를 두고 그가 이렇게까지 생각한것은 정태진이 잡혀간것을 생각하다가 칼이 빗나가 상처를 내였기때문인지도 모른다. 정태진이 홍원경찰서에 잡혀간것이 9월 5일이고 오늘이 10월 초하루이니 벌써 스무닷새나 지났는데도 그는 돌아오지도 않고 편지 한장 없다. 혹 구류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다면야 그렇게도 례절바른 사람이 소식 한번 전하지 않을리가 없다. 구류된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무엇때문일가? 형사의 말마따나 영생녀중 녀학생들의 비밀결사사건에 련루되였다는게 사실일가? 그런데 그가 그 학교를 그만둔지 두해가 넘는다. 학교란 원래 신진대사가 심한 곳이여서 두해쯤 지나면 학생구성이 많이 달라진다. 그러니 두해전에 학생비밀결사를 무은 녀학생들은 십중팔구 학교에 아직 남아있을수 없다. 그후에 무어진 비밀결사라면 정태진과 아무 관계도 없을것이다. 홍원에서 온 형사의 말이 도무지 리치에 맞지 않는다. 그렇다면 홍원경찰서에서 무엇때문에 정태진을 련행해가서 구류까지 시키는가? 정태진은 사회에서 직업을 가진것이 영생녀중과 조선어학회 두곳밖에 없다. 그러니 그가 영생녀중의 일로 잡혀간게 아니라면 조선어학회일때문이 아닐가 하는 직감이 들었다.

그런데 홍원경찰서가 조선어학회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아니, 조선어학회사람들가운데서 함남도와 최근까지 관계가 있은 사람은 정태진 하나밖에 없다. 그러니 그를 연줄로 왜놈경찰이 무슨 음모를 꾸미는것이나 아닐가? 아리숭하지만 마음속에 불안은 남는다.

이런 생각을 하며 기동차를 타려고 광나루정거장으로 걸어가는데 막냉이 종주가 따라와서 쭈밋쭈밋하다가 말했다.

《아버지, 어제 각반과 군대식혁띠를 착용하지 않았다고 최재현훈육주임에게 불려가서 벌을 받았어요. 전 돈을 안 냈다고 그걸 받지 못했으니까요. 아버지, 5원 없어요?》

리윤재는 난처했다. 호주머니에 돈 한푼 없었던것이다. 모든것을 《신체제》에 맞게 군사화하다나니 중학생들의 차림새까지 왜놈군대처럼 만드는데 대해서는 크게 반발을 느꼈지만 그것을 어린 아들에게 말했자 소용없는노릇이다. 각반을 치지 않은 아들의 맨 바지를 서글프게 바라보며 오늘도 또 그때문에 불리워가겠구나 하고 괴롭게 생각하는 아버지에게 종주가 말했다.

《일없어요, 아버지. 훈육주임이 오늘도 또 때리면 래일부턴 학교에 안나가겠어요.》

아버지에게 돈이 없는줄 알고 도리여 아버지를 안심시키려는 어린 아들이 보기에도 애처로왔다.

《오늘 돈을 꼭 가져다줄테니 학교에는 나가도록 해라.》 하고 리윤재는 아들에게 빌듯이 말했다.

《그럼 아버지, 잊지 마세요.》 하고 종주는 제또래들이 있는데로 달려가버렸다.

그리스도신보사에 나가니 아침부터 불쾌한 일이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어제 저녁에 학무국 도서과에 갔다온 허월이 막 일을 마치려고 하는데 문기척소리도 없이 안국동교회 목사 김우현이 뛰여들어와서 성이 독같이 나가지고 야료를 부리기 시작했다.

《아니 주필선생,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남의 글을 안 내보내면 말았지 그렇게 병신을 만들어내는 법이 어디 있어요. 그게 어디 내글이요? 손질한자의 글이지.》

《그러기에 우리가 사전에 지면상관계로 좀 줄인다고 량해를 구하지 않았소. 신문글이란 원래 그런거요.》 하고 리윤재가 좋은 말로 량해를 구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섬찍했다. 밀고를 잘하는 이자가 이 일로 무슨 소동을 일으켜놓을지 모르기때문이였다.

《그거야 알지요. 허나 남의 글을 외곡해놓은거야 고의적인 행위가 아닌가요.》

《아, 그렇게 나쁘게만 생각지 마시오. 혹 실수는 있을수 있어도 고의적으로 외곡이야 하겠소. 그 글에서 글자 한자, 반점 하나 더 써넣은건 없지 않소. 다소 줄이다나니 필자의 의사가 충분히 전달되지 못한 점은 있을수 있지만.》

《아니요, 신궁참배에 대한 나의 주장을 쏙 빼버렸으니 이건 신궁참배를 거부하는자들의 고의적인 행위지요.》 하고 김우현이 드디여 요진통을 말했다.

리윤재는 그를 무시하듯 더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참고있던 허월의 얼굴에 울기가 올랐다. 이런자는 1대1로 짓누르는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그가 말했다.

《김우현씨, 남잡이가 제잡이가 된다는걸 알아야 하오. 당신이 신문사를 그렇게 모함한다면 신문사에서도 교회에서의 당신의 비행을 부득이 공개하지 않을수 없을거요.》

《그건 또 무슨 생뚱같은 소린가요?》 하고 김우현이 눈이 동그래서 허월을 돌아보았다.

《당신이 교회적립금의 상당한 액수를 착복했다는 사실을 당신네 교회역원이 우리에게 통지해왔소. 우리는 당신의 명예를 생각해서 이걸 비밀에 붙여두었댔소.》

《아니, 그건 중상이요.》

《당신이 방금 한 말은 중상이 아니요?》

《헤헤헤, 한번 해본 말이지요.》 하고 김우현이 손을 살래살래 흔들며 서로 막치기하자는듯이 눈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도적고양이처럼 살그머니 방에서 나가버렸다.

한동안 방안에서는 불쾌한 기분이 가셔지지 않았다. 그런데 허월의 입에서는 엄청난 말이 튀여나왔다.

《학무국 도서과에서는 오늘호 신문에 쓰신 선생님의 사설에 전문삭제처분을 내렸습니다.》

졸지에 리윤재의 얼굴이 새까매졌다. 지금 인쇄소에서는 조판을 다 끝냈겠는데 이제 와서 사설을 삭제하자면 복자로 내는수밖에 없다. 한구석의 기사 같으면 몰라도 사설을 복자로 내고서야 신문꼴이 무엇이 되겠는가!

허월이 분노를 새기며 말했다.

《<동아일보>나 <조선일보>와 같은 탄압의 시작이 아닐가요? 사실 그 사설에는 당국의 비위에 거슬릴만 한 문구 하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막무가내더군요. 혹시 집필하신 선생님을 념두에 둔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리윤재도 바로 그렇게 생각했다. 신문사나 주필인 자기에 대한 탄압의 신호 같았다.

고개를 수굿하고 생각하던 리윤재가 이윽고 고개를 들고 단호하게 말했다.

《차라리 잘됐소. 사설을 복자로 내보냅시다. 사설에 쓰인 글에서보다도 복자에서 독자들은 더 많은 뜻을 읽을거요. 복자의 항거, 허허허. 우리의 신세는 이 꼴이 됐소.》

허월의 눈에는 분노의 섬광이 번쩍이였다. 그러나 그는 말없이 나가버렸다.

이러다나니 오전은 원고 한장 변변히 못 보고 어수선한 가운데 지나가버렸다. 다 못 본 원고를 또다시 집에 가져가려고 보에 싸는수밖에 없었다.

오후에 조선어학회에 나가니 여기서도 변고가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리극로가 아침부터 나오지 않아서 어제 밤에 그가 잠근 서류함의 자물쇠를 열지 못해 원고를 꺼내지 못했다는것이다. 무쇠같이 든든한 그가 갑자기 앓아누울리는 없고 무슨 사정이 있어서 못 나온다면 서류함의 열쇠라도 보내고 사유를 전했을것이 아닌가. 그를 기다리다 못해 리극로의 집으로 사람을 보내보니 그는 여느날과 다름없이 아침에 어학회에 나갔고 점심시간에도 들어오지 않았다는것이다. 이 무슨 수수께끼같은 실종사건인가?

모두 영문모를 일에 어리둥절해서 앉아있을뿐이였다.

일도 못하고 리극로를 기다리다 못해 사전편찬실의 사람들이 거의 돌아간 다음에도 리윤재는 행여나 하여 저녁까지 신문원고를 보며 리극로를 기다렸다. 그러나 리극로는 창이 어슬어슬해질 때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리윤재의 마음에는 불안이 땅거미처럼 기여들었다.

그도 하는수없이 이 방에서 마지막으로 일어섰다. 그러자 그제서야 (아차, 종주가 부탁한 돈을 잊고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리극로라도 나오면 그에게서 변통해볼 생각이였는데 이제는 그러기도 글렀다. 오늘은 시시콜콜히 일이 안되는 날이다. 직감이 우연한것이 아니였다. 그런데 돈을 어디서 구한다? 그 돈때문에 종주가 또 학교에서 매를 맞아야 하지않는가. 최재현 그놈이 아직도 그 학교에서 종주에게까지 행악질을 한다는것을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었다. 왜놈을 끼고 악한짓을 하는 놈들에게는 지금 세상이 천당과 같을것이다. 그런 놈들이 벼락을 맞을 날도 멀지는 않을것이라고 그는 자기 위로를 하는수밖에 없었다.

리윤재가 어학회의 나들문에 자물쇠를 잠그고 열쇠를 약속한 장소에 감추고 나무계단을 내려서 마당에 나서니 어스크레한 속에서 낯모를 사나이 둘이 다가섰다.

《리윤재씨지요?》

《그렇소.》

《우린 경찰서사람이요.》

리윤재는 대답도 질문도 하지 않았다. 자기가 경찰에 검거되였다는것을 곧 알아차렸기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종종 당하는 예비검속일가 아니면 무슨 사건이 또 터졌을가? 그것은 알길이 없었고 그렇다고 형사에게 물어보는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그는 량쪽에 바투 다가선 형사를 따라 총독부에서 길건너 맞은쪽에 있는 경기도경찰부로 갔다.

류치장에 들어서자 거기서 비로소 리윤재는 이미 구류되여있는 리극로를 보았고 리희승도 알아보았다.

그제서야 그는 조선어학회사건이 터졌다는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언제건 닥쳐오리라고 위구하던 일이 드디여 오고야만것이다.

날이 어두워지자 조선어학회관계로 검거된 사람들을 불러내여 경기도경찰부 뒤마당에 앉히였다. 모두 11명인데 조선어학회 간부급인물들이였다.

어디서 갑자기 그렇게 많이 나타났는지 형사들이 쭉 늘어섰고 피검자들이 호상간에 이야기 한마디 못하게 했다. 매 사람에게 수갑을 채우고 포승으로 묶었다. 그들은 그길로 서울역으로 끌려나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렬차에 올랐다. 간혹 역홈의 어둠속에서 역원이 역이름을 왜말로 늘어지게 부르는 소리를 듣고 이것이 북행렬차라는것을 짐작할따름이였다.

소슬한 늦가을바람이 처절하게 부는 이밤에 수갑을 차고 기차에 실려 어딘지 모를 북방으로 끝없이 끌려가면서 리윤재는 과연 무엇을 생각했을가? 고립무원한 고독이였을가? 가족과의 뜻아닌 리별에서 오는 슬픔이였을가? 물론 그런 마음의 아픔도 있었을것이다.

그러나 이 순간에 그가 먼저 생각한것은 어제와 오늘을 잇는 생활의 일체 련계는 일순간에 끊어지고 오는 날은 인간세상이 아니라 지옥에서의 끝없는 죽음의 연장이 있을뿐이라는 생각이였다.

여기서는 조선사람이 왜놈과, 인간이 짐승과 대결하게 되는것이다. 짐승에게 물릴 때 인간의 정신적인 힘에도, 육체적인 인내력에도 한계가 있다는것을 그는 알고있다. 그러나 조선사람으로서의 자부심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상실한다면 그는 짐승과 같아질것이다. 그러나 지옥에서의 끝없는 죽음을 이겨낼 때 비로소 조선독립을 위한 대격류속에 그자신도 하나의 물방울로 합류하게 되리라. 이렇게 그는 비장한 생각을 했다.

리윤재는 마음의 안정을 되찾으려고 눈을 감았다. 기차는 밑창모를 나락으로 끝없이 굴러가는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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