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 회)

 

제 18 장

 

1

 

조선총독부 2층 남향방인 총독집무실에는 총독부의 고관들이 모여앉아있었다. 이미 처서가 지났는데도 창문들을 꽉 닫아 무더워서 방안쪽의 커다란 고무나무화분옆에 놓은 대형선풍기가 쉴새없이 윙윙 돌아가고있다.

천정높이 걸린 커다란 액틀에서는 군복차림을 한 금상 왜왕 히로히또가 하관보다 이마가 퍽 좁고 입이 뭉툭한 얼굴에 멍청한 눈을 하고 밑에 모여앉은자들에게는 관심이 없다는듯 허공을 바라보고있다.

방 한복판에 놓인 긴 탁자의 상좌에는 등이 높은 육중한 가죽의자에 총독 고이소가 일본륙군대장의 제복을 차려입고 어마어마하게 틀을 차리고 앉아있다. 누구도 감히 말 한번 붙여보기 어려울만큼 지독하게 험상궂은 낯짝이다. 그는 미나미가 총독을 할 때 조선주둔군사령관을 하면서 미바시 전 경무국장, 《황민화》운동의 선봉장이였던 시오하라 전 학무국장과 함께 넷이서 조선식민지통치를 마음껏 료리하던 인물이다. 바로 그가 이제는 이 방의 주인으로 되였다.

그와 약간 떨어져서 오른쪽에 모로 앉은것은 이다가끼 조선주둔군사령관이다. 일본륙군의 대표적인 음모가로서 만주사변의 도발계획도, 괴뢰만주국수립의 산파역도 그가 했다는것은 이미 알려져있는 사실이다.

그와 마주하여 다나까정무총감이 버티고 앉아있는데 그는 이전에 충청북도 경찰부장, 총독부 경무국장을 력임하다가 총독 미나미의 눈밖에 나서 반년만에 경무국장자리를 떼웠다가 이번에 정무총감으로 뛰여오른 알짜 경찰출신의 관리이다.

말석에 마사끼학무국장이 상좌를 향하여 공손히 앉아있고 그옆에는 단게경무국장이 방금 《대동아전쟁》하에서의 반도치안확보에 관한 정황보고를 하고 자리에 앉아서 고이소총독의 기색을 살피고있다.

고이소는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은지 험상궂은 상판을 잔뜩 찡그린채 입을 꾹 다물고있다. 말을 지분지분하는자보다 불쾌한 얼굴을 하고 말을 안하는자가 더 어려운것이다. 그래서 방안의 공기가 팽팽한채 누그러지지 않는다.

얼굴이 갱핏하고 성미가 몹시 까다로와보이는 다나까정무총감은 총독이 무슨 말을 안하겠는가 하고 잠시 기다리다가 단게경무국장에게 툭 쏘듯이 물었다.

《최근에도 선만국경지대에서 공비의 소수인원에 의한 군사활동이 빈발하고 그 영향하에 올해 반년간에만 해도 174건의 각종 소요사건이 발생했다는것은 전시하의 반도치안확보에서 경찰이 큰 약점을 발로시켰다고는 보지 않소, 경무국장?》

단게는 급소를 찔리운듯 낯이 질리고도 태연하려고 애쓰며 대답했다.

《공비들의 소부대활동이 군사정탐과 주민에 대한 정치공작을 목적으로 하는것인데 이것이 주민들속에 용해되여있는것이 가장 큰 단점입니다. 이런 점을 충분히 고려하여 강력한 <토벌>계획을 세우고 집행해오고 있습니다.》

그제서야 고이소가 홱 돌아보며 한마디 했다.

《경무국장이 구구하게 변명을 하는걸 보니 그 <토벌>계획이라는것도 모호해보인다. 그놈들이 발붙일 주민지대는 몽땅 초토화하라. 북부국경지대를 몽땅 초토화해도 아까울게 없다.》

억지와 강제를 식민지통치의 최선의 방법으로 확신하고있는 다나까조차 이 단세포적인 군인의 사고방식에는 다소 놀랐다. 오늘 김일성장군휘하의 소부대의 활동이 라진 등 국경지대뿐아니라 청진, 함흥, 흥남 등 큰 도시들에까지 뻗어나가고있는 조건에서 그 모든 도시들까지 초토화할수는 없으리라고 생각했기때문이다. 그가 말했다.

《그자들이 반일민족통일전선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반도내의 민족주의자들에게까지 손을 뻗치고있는데 그건 묵과할수 없는 일이요. 지금 표면화된 민족주의자외에 많은 민족주의자, 과거의 독립운동자들이 지하에 잠복하고있소. 이들이 공산세력과 손을 잡는다면 대단히 위험한 세력으로 될것이요. 공산군소부대활동은 바로 이 점도 노리고있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조처할 생각이요, 경무국장?》

단게는 이마에 내배는 진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대답했다.

《민족주의자들에 대한 우리의 조치는 명백합니다. 그들을 리광수, 최남선, 최린, 윤치호처럼 철저히 전향시키거나 전향을 거부하는자들은 무조건 개정치안유지법에 걸어 구속처형할것입니다. 그러한 방법으로 이미 수양동우회도 흥업구락부도 진멸해버렸고 그리스도교인들의 저항도 진압해버렸습니다.》

《그런데 조선어학회라는 민족주의자들의 큰 집단이 아직도 서울 한복판에서 뻐젓이 활동하고있는건 어찌된 일이요? 우리 총독부에서는 선어의 교육도 보급도 금지했는데 이들은 선어를 연구고수하며 그 한 방편으로 조선어사전을 편찬하여 이 비상시국하에 그 일부를 출판에 회부했다는데 이건 총독부시책에 대한 항거가 아니요? 학무국장, 그 선어사전의 출판을 승인한게 당신들이 아니요?》

다나까의 쐐기처럼 찌르는 말에 마사끼가 곁불을 맞고 부시시 일어섰다.

《조선어학회가 민족운동단체라는것은 의심할바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조선어학회가 다른 민족운동단체들과는 달리 이 비상시국을 도외시하고 활동을 계속해올수 있은것은 학술연구단체라는 너울을 쓰고있었기때문입니다. 또한 그렇기때문에 조선어학회는 반도의 언론계, 교육계, 종교계 등 각계의 지지고무를 받아왔다는 점이 조선어학회를 손쉽게 다루기 어려운 점의 하나였습니다. 조선어사전편찬회의 발기인만 해도 각계인사 108명이 망라되였고 그 후원회의 구성에는 반도 재계, 언론계의 중진들이 참가하고있습니다. 그러므로 조선어학회는 그 회원 30여명에 그치지 않고 그 관계자는 무려 백여명에 달합니다. 그들이 모두 무시할수 없는 반도의 명사들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조선어학회를 방치해둔건 아닙니다. 우리는 반도인자체의 싸움으로 조선어학회를 붕괴시키려고 계명구락부의 박승빈일파를 조선어학회를 반대하는 돌격대로 내몰았습니다. 그러나 박승빈일파의 리론상, 실천상취약성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을 자인합니다. 그러나 전 국력을 대동아전쟁승리에 총집결해야 할 이 엄중한 시국에 조선어학회와 같은 반국가적단체를 더는 방치해둘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단게는 학무국장이 자신의 실책을 변명하느라고 알지도 못할 어려운 말로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마감에는 조선어학회를 방치해둔 책임을 자기에게 넘겨씌우고 발뺌을 하는것이 아니꼽고 괘씸했으나 상전들앞이라 성도 못 내고 낯만 찌프린채 일어섰다.

《조선어학회가 단순한 학술단체가 아니라는것은 그 성원구성과 활동범위를 보고도 알수 있습니다. 조선어학회 회원가운데 우리 경무국 기밀실에 요시찰인물로 올라있는자가 무려 6명이나 되며(김윤경, 리극로, 리윤재, 리희승, 최현배, 한징) 수양동우회사건으로 검거되였던자가 2명(김윤경, 리윤재), 흥업구락부사건으로 검거되였던자가 3명(리만규, 최현배, 최두선)입니다. 재정적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후원회는 85명의 각계 명사로 구성되여있는데 그중에서 위원장(리우식)은 지난날의 독립운동자이며 5명(김량수, 김도연, 한상억, 서민호, 김동철)은 미국에서 활동하고있는자들이고 2명(안재홍, 장현식)은 반도언론계의 거물급인물들입니다.

조선어학회의 대외활동도 자못 주목을 끄는바 1926년에 벨지끄에서 열린 제1차 세계약소민족대회에 대표단으로 참가한자 2명(리극로, 김범린), 태평양대회에 대표로 참가한자 1명이며 1935년에는 영국에서 열린 국제음성학회 제2차대회에 직접 대표를 파견했으며(김선기) 1936년에는 단마르크에서 열린 제4차 세계언어학자대회에 대표를 파견했습니다.(정인섭) 그리고 상해림시정부에도 대표를 파견한바 있습니다.(리윤재) 조선어학회는 이상과 같은 성원구성과 대내외활동으로 보아 조선어연구를 가장한 조선독립운동단체로서 더는 묵과할수 없음은 명백하나 이들에 대하여 경찰에 의한 단호한 조치를 취할 때 우리는 서울의 거의 모든 각계 지명인사들을 적으로 돌려야 하고 그들의 영향력에 의한 여론의 비등도 고려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그러니 어쩌자는거요? 학무국장도 경무국장도 빈소리만 자꾸 하는군.》 하고 다나까가 드디여 짜증을 내였다.

《가만있소.》 하고 입을 꾹 다물고있던 조선주둔군사령관 이다가끼가 비로소 끼여들었다.

《대동아전쟁수행에 거치장스러운것들은 단 한놈도 내버려둘수 없소. 다 잡아넣되 구태여 그자들의 지반이 있는 서울에서 떠들썩하게 할건 뭐있소. 어느 지방경찰에 명령하여 모조리 거기에 쓸어넣으면 한다리가 천리라고 서울은 조용할거요. 또 우둔한 놈이 곰 잡는다고 그런 지식인들을 다루는데는 무지막지한자들이 더 나을수 있소.》

다나까는 수긍하듯 빙그레 웃으면서 과연 음모가다운 묘안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별로 관심이 없는듯 고개를 외로 돌리고 지루하게 듣고있던 고이소가 그제서야 눈을 똑바로 뜨고 소리쳤다.

《더 말할것 없다. 모조리 잡아넣어라. 반도의 무력한 명사따위 백명이면 어떻고 2백명이면 상관있느냐. 지방경찰에 넘겨 엄하게 다루게하라.》

더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결론이 내렸고 조선어학회의 운명은 결정된것이다.

그날 오후 경무국 특고과에서는 토의를 거듭한 후 경무국장의 명의로 다음과 같은 비밀지령이 함경남도경찰부로 내려갔다.

《서울의 조선어학회관계자들을 총검거하게 된다. 어느 한 군경찰서를 선정하고 지시하여 준비케 하라. 차후행동방향은 따로 지시한다.》

함경남도경찰부 고등과에서는 뜻밖에 노다지를 만난듯 떠들썩하다가 거리가 비교적 가까운 홍원경찰서에 같은 내용의 비밀지령을 내려보냈다.

이리하여 조선어학회사건이라는 나치스의 만행도 무색케 할 세계에 류례가 없는 모략사건이 벌어지게 되였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mypeople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이전페지   다음페지

도서련재
민족의 얼 제71회 민족의 얼 제70회 민족의 얼 제69회 민족의 얼 제68회 민족의 얼 제67회 민족의 얼 제66회 민족의 얼 제65회 민족의 얼 제64회 민족의 얼 제63회 민족의 얼 제62회 민족의 얼 제61회 민족의 얼 제60회 민족의 얼 제59회 민족의 얼 제58회 민족의 얼 제50회 민족의 얼 제57회 민족의 얼 제56회 민족의 얼 제55회 민족의 얼 제54회 민족의 얼 제53회 민족의 얼 제52회 민족의 얼 제51회 민족의 얼 제49회 민족의 얼 제48회 민족의 얼 제47회 민족의 얼 제46회 민족의 얼 제45회 민족의 얼 제44회 민족의 얼 제43회 민족의 얼 제42회 민족의 얼 제41회 민족의 얼 제40회 민족의 얼 제39회 민족의 얼 제38회 민족의 얼 제37회 민족의 얼 제36회 민족의 얼 제35회 민족의 얼 제34회 민족의 얼 제33회 민족의 얼 제32회 민족의 얼 제31회 민족의 얼 제30회 민족의 얼 제29회 민족의 얼 제28회 민족의 얼 제27회 민족의 얼 제26회 민족의 얼 제25회 민족의 얼 제24회 민족의 얼 제23회 민족의 얼 제22회 민족의 얼 제21회 민족의 얼 제20회 민족의 얼 제19회 민족의 얼 제18회 민족의 얼 제17회 민족의 얼 제16회 민족의 얼 제15회 민족의 얼 제14회 민족의 얼 제13회 민족의 얼 제12회 민족의 얼 제11회 민족의 얼 제10회 민족의 얼 제9회 민족의 얼 제8회 민족의 얼 제7회 민족의 얼 제6회 민족의 얼 제5회 민족의 얼 제4회 민족의 얼 제3회 민족의 얼 제2회 민족의 얼 제1회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