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3 회)

 

제 14 장

52

 

서울에서 이틀간을 더 묵은 덜레스는 비행기를 타고 도꾜로 출발하였다. 지금 그곳에서는 맥아더와 함께 합동참모본부 의장 브랫들리와 국방장관 죤슨이 조선전쟁개시의 최종모의를 위해 덜레스를 기다리고있었다.

덜레스는 소음이 요란한 군용비행기의 둥그런 시창아래로 흐르는 현해탄의 검푸른 물결을 내려다보며 이제 시작될 《위대한 연극》의 서막을 그려보고있었다. 어쩐지 공포와도 비슷한 짜릿한 전률이 그의 전신을 휩쓸었다. 왜 이렇게 불안한가? 감히 미국의 힘에 대한 의심이 갈마들어서인가?

생각해보면 그것은 남조선 《국회》개원식에서 연설하던 그때부터 우러나온 불안감이라고 할수 있었다. 그때 덜레스는 침착하면서도 외교관다운 기품을 유지하면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우호》적인 립장을 여러가지 각도에서 이야기해주었지만 연설이 끝나게 된 마감시간쯤에 가서는 회의장에 모여앉은 수백의 눈동자들이 자기를 향해 던지는 무서운 적의를 적지 않게 느꼈었다. 덜레스는 그들이 지금 자기의 말을 하나도 듣지 않고있으며 오히려 붙는 불에 끼얹어지는 기름처럼 간주하고있다는것을 오랜 외교관다운 직감으로 알아차렸다. 그리고는 남모르게 치를 떨었다.

그는 천길낭떠러지에 오른 리승만의 운명을 보았다. 리승만《정권》의 붕괴는 미국의 대조선정책의 총파산을 의미하는것이였다.

그는 자기가 이제 이 《한국》과 미국의 래일을 결정하는 중대한 결심을 내려야 한다는것을 의식했다.

《국회》개원식의 연단에서 내려선 덜레스는 그날중으로 미국대사관에 리승만과 신성모를 불러들였다. 생각같아서는 정치가의 초보적인 행색도 낼줄 모르는 리승만이나 구실을 못하는 《국방장관》을 한바탕 달구고싶었으나 그럴 시간도 없었고 그럴 계제도 못되였다.

그래서 그는 허연 머리칼을 불쌍하게 내리드리우고있는 리승만에게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에게 유리한것은 한가지뿐이요. 그것은 아직까지는 이북 경비대의 무력배치가 공격형이 아니라 방어형으로 전개되여있다는 사실이요.》

덜레스는 자신이 직접 38도선을 시찰하면서 느낀 소감을 이 한마디로 요약함축하고나서 신성모에게 《한국군》이 위대한 시각을 맞이하게 되였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하였다.

감질이 난 리승만이 현재의 상황에서 《북진》전쟁이 필수적이라는 군더더기같은 애원을 던졌다. 덜레스는 시끄러운 파리를 쫓아버리듯 그쪽에 대고 손을 흔들었다.

《중요한것은 북에서 먼저 침입하였다는 역선전과 동시에 북진을 개시하는것이요. 공격은 6월중에 개시되여야 하오. 한국군의 정예무력들과 모든 기술기재들을 은밀히 38도선전역에 전진배치시키시오. 구체적인 공격시간과 방식은 차후에 알려주겠소.》

덜레스는 바로 그 《구체적인 공격시간》과 《방식》을 토론하기 위하여 도꾜로 가고있는것이였다.

(조선전쟁… 이것이 신의 축복일가, 아니면 무서운 유혹일가?)

등받이에 늙은 몸을 깊숙이 기댄 덜레스는 눈을 꾹 감고 불시에 솟구쳐오른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그 해답을 당장은 찾을수 없었다.

비행기아래로는 대전의 페허를 붙안고 새로운 전쟁경기의 축복을 바라며 꿈틀거리고있는듯싶은 일본의 도시들이 내려다보이고있었다.

도꾜상공에 다 왔는지 비행기가 차츰 기수를 낮추기 시작했다.

덜레스는 비행장에 내리자마자 휴식을 권고하는 부하들의 권고를 일축하고 즉시에 맥아더사령부에서 자기를 기다리고있던 브랫들리와 죤슨을 만났다. 여기에 맥아더까지 끼여 도꾜 4자회담이 진행되였다. 회담의 의제는 물론 조선전쟁이였다.

공격방식에서 맥아더는 이미 여러차례 조선의 지리를 잘 알고있는 이전 일본군부관계자들의 도움을 받으며 작성했던 작전계획들의 우단점을 론하고나서 38도선에 대한 정면돌파를 위주로 하는 륙상대형의 편성이 가장 합리적이라는것을 인정하였다.

《우리가 지난해에 계획했던 동서량해안에 대한 동시상륙작전은 현실성이 부족합니다. 리승만군대가 북조선을 공격하여 적어도 3일만 견제하면 우리는 그 기간에 유엔의 힘을 빌어 미군의 합법적인 개입을 성사시킬수 있습니다.》

덜레스가 정치가다운 립장에서 맥아더의 주장에 반주를 울려주었다.

《다 아시는것처럼 지난 5월 30일에 있은 남조선국회선거에서 리승만계가 대참패를 당하는 사태가 빚어졌습니다. 결과 남조선국회에는 나라의 평화통일을 요구하는 좌익경향의 세력들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들어앉게 되는 〈서울의 위기〉가 발생하였습니다. 이것을 그대로 둔다면 한국은 불피코 한달이내로 붕괴되여 북조선공화국에 통합되고말것입니다. 때문에 대통령은 나에게 사태를 수습할 전권을 위임하여 서울로 파견하였던것입니다. 그 수습책이라는것이 오직 전쟁뿐이라는것을 나는 구태여 강조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시작은 되도록 빨라야 합니다.》

토의끝에 전쟁날자는 6월 하순, 구체적으로는 25일 일요일로 결정되였다. 그리스도교국가인 미국이나 남조선이 일요일에 전쟁을 일으켰다고 보기는 힘들것이라는것이 리유의 첫째였다. 다른 하나의 리유는 히틀러의 쏘련침공이나 일본군의 진주만기습 등 일요일에 벌어진 주요 사변들을 돌이켜볼 때 불의적공격의 위력이 배가된다는것이였다. 일요일에는 어느 나라, 어느 군대이든지 해이되기마련인것이다. 뿐만아니라 이번 전쟁이 철저히 북조선의 선제공격에 의한것이였다는것을 세계앞에 널리 선전하기 위하여 맥아더를 비롯한 극동군사령부의 고관들이 피서지에서 주말휴식을 보낼데 대한 세부적인 문제들도 론의되였다. 문제는 25일까지 남조선이나 미국에서 전쟁을 위한 사전준비를 빈틈없이 해놓는것이였다.

기일이 지나치게 촉박하기때문에 전쟁날자를 얼마간이라도 미루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의견도 제기되였다.

전형적인 참모일군인 브랫들리가 일본군으로부터 넘겨받은 조선의 구체적인 자연지리적조건에 대한 정보에 기초한 세부적인 작전안들을 깐깐하게 검토하며 과연 25일까지 해당한 준비를 갖출수 있겠는가를 타산하고있을 때 맥아더의 부관이 조용히 들어와 월로우비정보국장이 긴급한 일로 찾아왔다는것을 맥아더에게 조심히 전달해주었다.

맥아더는 조선전쟁문제를 토의하는 이 중대한 회담장에서 서슴없이 자기를 불러낼 용단을 내릴적에는 월로우비가 찾아온 목적이 무척 긴급한것이라고는 리해되였지만 불쾌하게 골살을 찡그리며 손을 내저어 부관을 내쫓았다.

그리고는 한참동안 브랫들리가 물어보는 몇가지 문제들에 대하여 대답을 더 주고나서 모여앉은 사람들에게 량해를 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기실에 나온 그는 그곳에 앉아있던 월로우비가 자리를 차고 일어서는것을 보고는 무슨 일인지 빨리 말하라는 태도로 파이프를 입에 물었다.

《서울에서 리승만대통령이 급전을 보내왔습니다.》

《급전이라… 그래 북조선군이 38도선을 넘어 남하하기라도 했다오?》

전쟁만큼 더 급한 일이 어디 있겠느냐는 힐난이였다. 리승만의 그 무슨 《급전》이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지금 저 음침한 방안에서 벌어지고있는 중대모임보다 더 중요할리가 없는것이였다.

어쨌든 내용은 들어보기로 하고 월로우비에게 독촉하는 눈짓을 보냈다.

《다음주 월요일인 6월 26일에 남조선국회에서 북조선 최고인민회의가 제기한 련합국회제의를 가결하고 남북통일을 실현시킨다는 결의안을 통과시키기로 했다는것입니다.》

맥아더는 흘끔 월로우비를 치떠보았다. 듣고보니 전쟁모의보다 더 급한 소식임에 틀림없었다. 이 정보가 사실이라면 결국은 전쟁을 하기도 전에 상대방에게 완전히 패전하게 되는셈이였다. 중국의 손자병법에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것이 가장 큰 승리라는 말이 있다는데 지금의 조성된 정황이 북조선에 바로 그런 월계관을 안겨주게 되여있는것이였다.

리승만도 그것이 급하여 긴급전문을 보내온 모양이였다.

《전문은 정확한거요?》

《네!》

《서울과는 아직 련계를 가지고있소?》

《끊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갑시다.》

맥아더는 제잡담 앞장에 서서 월로우비의 정보국으로 향했다. 그곳의 통신실에서 전문의 내용을 다시한번 확인해보려는것이였다. 혹시 리승만이 미국을 압박하고 부추겨대기 위해 꾸며낸 거짓말일수도 있다는 예감이 들었던것이다.

그래서 정보의 구체적인 출처를 묻는 전문을 서울로 보내였다. 회답은 곧 날아왔는데 정보는 남조선《국회》에 있는 친리승만계의 《국회》부의장 장택상이 《국회》의사당의 《의원》대기실에 모여앉은 평화통일세력《국회의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는것이였다. 조소앙, 조봉암을 비롯한 평화통일세력《국회의원》들이 이미 《국회의장》인 신익희까지 회유매수하여 오는 6월 26일 월요일에 열리는 《국회》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와 남조선《국회》가 련합하는 방법으로 평화적통일을 실현시킬데 대한 평양의 제의를 심의하고 통과시키기로 락착지었다는것이였다. 일단 그 문제가 《국회》에 상정된다면 반리승만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국회》에서 그것이 통과되리라는것은 불보듯 명백한 사실이였다. 이 계획이 실행된다면 늦잡아도 한두달이내에 리승만을 제껴놓고 조선사람끼리 아무런 내란없이 협상의 방법으로 민족통일을 실현하게 될것이다. 그렇게 되는 경우 미국은 군인이건 정치가이건 더는 조선의 내정에 간섭할수가 없어지며 전쟁도 개시할수 없게 된다.

일이 이렇게까지 급진될줄은 맥아더도 생각 못했었다. 과연 북조선의 정치수완이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신실에서 나와 월로우비의 응접실에 들어선 맥아더의 시야에는 전신지를 쥔 손으로 땀발이 돋은 제 얼굴을 세차게 문질러대는 월로우비가 아니라 그의 등너머에 걸린 레비딴의 《영원한 적막》이 곧바로 들어와 배겼다.

넓은 볼가강의 물결과 검은구름이 뒤엉켜 저희들끼리 마구 엇갈리며 어디론가 거침없이 밀려가는 하늘, 퇴색되고 낡아빠져 금시 무너져버릴것만 같은 사원과 종류를 알수 없는 몇그루의 나무, 검은 십자가와 누구의것인지 알수 없는 묘비… 오늘따라 저 모든 음침한 색채가 속을 섬찍하게 찌르는듯 했다.

《소장, 그래 저 그림에 대한 해설문은 준비해놓았소?》

《네?!》

느닷없는 질문이였지만 방안의 긴장해진 분위기와 어느 정도 어울리는 질문이라고 생각했던지 월로우비는 세차게 문질러대여 시뻘개진 얼굴을 들고 중얼거리듯이 대답했다.

《네, 알아보긴 했습니다만…》

월로우비는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한동안 망설이다가 지금의 이 시각에는 오직 그 대답만이 중요하다는 태도로 진지한 눈빛을 보내고있는 맥아더의 모습에서 입을 열 용기를 얻었다.

《이 그림에서 기본은 바로 저 검은구름사이로 비쳐드는 해빛이라고 합니다. 물론 화가는 숨죽은듯이 고요한 자연을 통하여 당시 짜리의 압제하에 있던 로씨야의 침체한 사회상을 보여주려고 시도했는데 검은구름을 뚫고 대지우에 비치기 시작한 밝은 해빛에 대한 묘사를 통해 낡고 부패한 모든것이 사멸하고 즉 짜리시대의 무덤속같은 적막이 끝장나고 새로운 생활이 시작될것이라는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저 태양의 빛은 약동하는 밝은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작품은 하나의 작은 풍경화를 통하여 혁명전 로씨야의 침체한 사회상을 반영하고 도래할 밝은 세계를 생동하게 보여줌으로써 로씨야의 사실주의적풍경화발전에 기여하였습니다.》

태양, 태양이란 말이지. …》

《네, 태양이 구름을 뚫고 대지를 비치는것은 누구도 멈춰세울수 없는 자연현상인데 레비딴은 아마도 이 작품에서 그것을 애타게 강조하려고 한것 같습니다.》

언제인가 월로우비와 마주앉았을 때 저 그림을 보며 상상했던것과는 전혀 다른 해설이였다. 월로우비의 해설을 따른다면 조선반도라는 기슭에 상륙하여 광활한 유라시아대륙을 손아귀에 거머쥐려던 자신의 꿈이 태양의 강렬한 광선에 밀려 지구밖으로 던져지는 영원한 적막속에 묻혀버리지 않을가 하는 우려심을 품게 되는것이다. 태양의 솟구침, 혹시 그것이 저 조선땅에서 벌어지고있는 자주평화통일운동의 예시는 아니겠는가.

불현듯 맥아더의 눈앞에서 그림속의 검은 십자가가 갑자기 흰빛으로 살아오르다 활활 불타며 볼가강의 깊은 물에 거꾸로 처박혔다.

구름을 뚫고 들어오는 한줄기 해빛이 더 강렬해지며 어둠에 묻혔던 차디찬 볼가강물까지 몽땅 태워버리는듯 하다.

(아니, 그럴수는 없다. 력사의 시간표는 이미 우리에게 쥐여져있다.)

맥아더는 무섭게 반발하듯 늙은이답지 않은 빠른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월로우비가 황급히 그를 뒤따랐다.

총사령부의 응접실에 도착한 맥아더는 자기를 기다리고있던 오마 브랫들리와 죤슨, 덜레스에게 서울에서 날아온 전문의 내용을 알려주고나서 주먹을 부르쥐고 부르짖었다.

《6월 25일은 하늘이 계시한 운명적인 날이요. 날자를 하루도 더 드티여서는 안되겠소. 26일에는 벌써 우리가 아무런 손도 쓸수 없게 될것이요.》

그리고는 자기를 뒤따라온 월로우비를 찌르는듯 한 눈길로 돌아보며 작고도 빠른 소리로 권고했다.

《내 생각엔 당신의 둥지에 걸려있는 레비딴의 그림이 불필요한 치장물인것 같소. 우리 미국에는 지구를 정지시켜 태양의 솟구침도 막을수 있는 힘이 있소. 세계는 머지않아 조선반도를 통해 그 거대한 힘을 보게 될것이요.》

월로우비는 책상을 짓누른 맥아더의 손아귀에 잡혀 조선반도가 그려진 대형지도가 쭈그러들고있는것을 똑똑히 보았다.

이날 도꾜의 궁성광장에서는 미극동군사령부 관하 장병들 3만여명과 240대의 비행기가 동원된 열병식이 있었다.

조선전쟁을 위해 모여든 정계와 군부의 한다하는 인물들과 나란히 서서 그들에게 자기 군대의 위용을 보여주는 맥아더의 입가에서는 거만한 미소가 피여올랐다. 종대장교들의 경례에 답례를 붙이는 맥아더의 눈앞에는 도꾜의 궁성광장이 아니라 평양의 모란봉밑을 행진해가는 자기 군대의 모습이 펼쳐지고있었다. 모란봉뿐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크레믈리의 붉은광장과 베이징의 천안문광장을 지나가는 영용한 《맥아더군대》의 상상화가 떠올랐다.

맥아더는 이것이 결코 자기의 광적인 상상에 불과하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에게는 자기의 힘과 미국의 힘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비록 1949년에 계획했던 《북벌작전》들이 실패를 하고 평양의 자주통일기운에 몰려 리승만과 더불어 일시 위기에 직면하기는 했으나 종국적인 승리에 대한 확신과 반드시 승리할것이라는 의지에는 변함이 없었다.

광장을 행진해가는 이 대오는 인류사상 최대의 세계대전을 치르며 불패의 위력을 떨친 세계에서 가장 정예롭고 우수한 군대인것이다.

조선전쟁! 맥아더는 인생의 황혼기에 맞이하게 된 이 력사적인 사변이 자유세계앞에서 자기의 인생을 빛나게 총화짓는 계기로 되리라는것을 굳게 믿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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