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0 회)

 

제 13 장

49

 

남조선에서 조국통일을 위하여 목숨걸고 투쟁하던 김삼룡, 리주하에 뒤이어 성시백까지 체포구금되였다는 소식은 김정숙동지를 잃은 상실의 아픔이 그대로 남아있는 김일성동지의 가슴에 또다시 쓰라린 고통을 안겨주었다.

늦은 저녁녘에 적들이 떠들고있는 《성시백사건》과 관련한 자료가 그이의 집무탁우에 올랐다. 그이께서는 오래동안 그 자료들을 읽어보시였다. 몇글자 안되는 보도기사에 불과했지만 그것이 한 인간의 일대기를 묶은 두툼한 목책이라도 되는듯 보고 또 보시며 글줄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시였다. 그러느라니 자연히 번열이 나며 땀발이 솟고 심지어 어지럼증까지 느껴지시였다.

김정숙동지를 잃은지 몇달도 되지 않는 사이에 련이어 들이닥치는 불행한 소식들로 하여 그이께서는 자신을 더 지탱해낼것 같지 못하시였다.

극도의 피로가 그이의 온몸을 휩쓸었다. 못 견디게 자고싶으시였다. 만사를 다 잊고 끝모르는 깊은 잠에 들고싶으시였다. 그래서 눈을 감으시였다. 꿈속에서도 집요하게 온갖 근심덩이들이 넋을 휘감았다. 오히려 본래의것보다 더 확대되고 늘어난 하많은 고민거리들이 덮쳐든다. 하여 그이께서는 계속 생각하시였다.

(귀중한 사람들이… 잃어서는 안되는 민족의 재사들이 한사람, 두사람 적들의 손에 체포처형되고있다. 이제는 성시백까지 놈들의 손에 잡혀 들어갔다.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나의 한쪽팔처럼 여기던 그가…)

김일성동지께서는 꿈속같은 희미한 세계속에 안겨오는 성시백의 모습을 그려보시며 두주먹을 불끈 틀어쥐시였다.

(나는 지금 왜 이러고만 있는가. 다른 사람들의 일은 토지를 잃거나 부부가 갈라졌거나 사랑이 깨여진 생활상의 문제들도 용허하지 않고 바로잡도록 하면서도 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가장 귀중한 생명안전을 놓고는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있어야 한단 말인가. 정숙동무에게도 그랬었고 오늘은 또 성시백에게도… 과연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이 모든 민족수난의 비극을 과연 언제까지 참고만 있어야 하는가. 가만, 내가 서기가 가져온 신문자료들을 보고있었지? 그런데 서기는 어디 갔는가? 나는 또 무엇을 하려댔는가? 여기는 어디고?…)

그이께서는 내리드리우시였던 시선을 들고 앞을 보시였다. 무거운 피로로 하여 처음에는 연막같은것에 둘러싸인듯 앞이 잘 보이지 않으시였다. 이윽고 차츰 선명해지는 시선에 비껴든것은 이미 김을 다 날리고 식어버린 밥사발과 국사발, 절인 오이와 된장 한종지가 놓인 쪽상이였고 그너머에 앉아계시는 어리신 아드님의 모습이였다.

비로소 그이께서는 여기가 집무실이 아니라 저택이며 성시백에 대한 문건을 읽어보다가 저택으로 돌아오시여 저녁상을 받고있었다는것을 깨달으시였다. 수저를 몇번 놀리다가 그만 깜빡 잠에 취하시였던것이다.

잠에 취하시여서도 손은 그냥 수저를 움직이고있었는지 밥사발의 밥알 몇알이 헤쳐져있고 흘려서 떨어져있는것도 드문드문 보였다.

그이께서는 커다란 눈물방울이 흘러내리다 붉게 상기된 아드님의 볼우에 맺혀있는것을 보시였다.

어머니를 잃은지 몇달밖에 되지 않는 아드님이시였다. 쓰라린 아픔이, 애써 잊으려 했던 아픔과 슬픔이 소낙구름처럼 몰려들어 주위를 꽉 메웠다. 너무도 일찍 철이 든 아이들, 너무도 일찍 철이 들어야 할 자제분들이였다.

자신께서 어머니를 잃으시던 1932년의 소사하가 사무쳐오시였다. 고삭은 이영을 붙들고 오열을 터뜨리던 이국의 그밤…

(그래도 나는 나이 스물에 어머니를 잃었는데 이 애들은… 엄마없인 단 한순간도 살수 없는 너무도 어린 나이에 이런 불행을 당했구나. 그리고 또 나는…)

그이께서는 사랑하는 부모님들과 수많은 전우들의 고결한 희생의 대가로 찾은 귀중한 조국을 원쑤들의 전쟁도발책동으로부터 지켜내야 하는 준엄한 시기에 힘을 보태주고 용기를 북돋아주고 사색을 정립해주던 마음의 기둥을 잃으시였다. 아, 아버지로서 가정을 지키기가, 령도자로서 나라를 이끌기가 이다지도 힘들고 어려운것인가…

몹시도 힘겹게 그이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시원한 밤바람을 쏘이고싶으시였다.

저택의 뒤정원에 봄을 맞으며 심어놓은 여러그루의 애어린 살구나무들이 바람결에 파릇파릇한 새 움을 흔들며 서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중의 한 나무에로 다가가시였다. 바람피해를 막느라 벋쳐놓은 세가닥의 버팀목을 매놓은 노끈의 매듭이 풀어져 한쪽끝이 바닥에 닿아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앞에 앉아 매듭을 다시 해주기 시작하시였다.

뒤에서 인적기가 났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책의 발걸음소리라는것을 보지 않고도 느끼시였다.

김책도 성시백의 체포가 이제 이룩해야 할 통일위업수행에서 어떤 커다란 손실과 후과를 가져올수 있는가를 누구보다 못지 않게 잘 알고있었다. 그래서 이밤 괴로움에 잠 못 이루실 장군님의 심정도 잘 알고있는것이고 그때문에 더욱 괴로와 이렇게 찾아온 길인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풀어진 버팀목의 매듭을 다시 해주시고 단단히 조여주시였다.

일이 다 끝났으나 그이께서는 여전히 일어서지 않으시였다. 애어린 나무줄기를 애틋하게 쓸어보시였다. 마치 그 나무와 이야기하듯 그이께서는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난 지금까지… 나라의 통일을 위하여 분렬주의자들의 만행에 대하여… 참을수 있는껏 참아왔습니다. 우린 마지막까지…》

그이께서는 잠시 말씀을 끊고 손을 툭툭 터시며 일어나시였다.

김책의 가까이로 다가서시여서는 그가 아니라 뒤쪽으로 시선을 돌려 방금 자신께서 손질해주신 애어린 그 살구나무를 바라보시였다.

《마지막까지 나라의 통일을 위하여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인내성을 발휘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실 때 그이께서는 참기 어려운 동통을 느끼시였다.

《언제인가 공화국창건을 경축하자고 김책동무랑 최용건동무랑 모여앉았던 일이 생각나는구만. 그때 솔직히 동무들이 너무 급작스럽게 들이닥치는 바람에 내가 얼마나 바빠났던줄 압니까? 하지만 처음으로 만시름을 잊고 동무들과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댔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저택에 모여앉아 웃고 떠들던 그날의 광경을 그려보시는듯 살구나무주위를 한동안 조용히 거니시였다.

김책은 장군님께서 무엇때문에 그때를 새삼스럽게 상기시키시는지 아직은 리해가 되지 않아 침묵만 지켰다.

《그때 누가 그랬던가? 삼일포에 휴양을 가자고 했댔지? 김일동무였던지 강건동무였던지 삼일포보다 모란봉에 가는것이 더 낫다고 그랬고. 아마 삼일포처럼 먼곳이 아니라 가까운 곳의 모란봉이면 래일이라도 당장 갈수 있지 않겠냐 하는 기대를 가지고 그런 말을 했댔을겁니다. 그런데 난 동무들이 삼일포는커녕 눈앞에 있는 모란봉에도 한번 마음놓고 올라가 즐기게 해주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어쩐지 마음에 걸리는구만.》

장군님, 왜 그러십니까? 누구도 그것을 탓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어째서 새삼스럽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아니, 아닙니다. 만약 이제 전쟁이 일어난다면 전선에 나가 싸울 사람들은 바로 그들입니다. 그래서 난 그때 우리 동무들이 다시는 죽음의 그림자가 뒤따르는 포화속을 걷지 않기를 기대했고 우리 인민전체가 오로지 평화롭고 즐거운 환경속에서 들놀이도 산놀이도 마음껏 할수 있게 나라를 통일하리라 마음다지였댔습니다. 그런데 그 소원을 오늘까지 이루지 못했습니다. 나라는 의연히 분렬되여있고 요즘 와서는 전쟁의 위험도 더 가증되였습니다. 더우기 우린 그동안에 귀중한 혁명동지들을 잃는 아픔을 겪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김정숙동지와 성시백에 대한 생각으로 하여 말씀을 겨우 이으시였다.

《오늘은 성시백동무까지 적들의 손에 잡혀들어갔습니다. 오로지 통일을 바랬다는 리유로, 민족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투쟁했다는 리유로 체포되였습니다. 김책동무, 이런 때 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보위상에게 군대를 서울로 진격시켜 체포된 혁명가들을 모두 구출해오라고 명령을 내리고싶습니다. 사실 우리가 일단 결심을 품고 진격한다면 서울을 타고앉는것쯤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우리의 군력도 국력도 인민들도 그렇게 준비되여있습니다. 그래 어쩌면 좋겠습니까?》

김책은 한동안 동안을 두었다가 대답을 올렸다.

《전 장군님의 심중을 다 압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고개를 돌려 김책을 면바로 바라보시였다. 타는듯 한 기대와 번민, 아픔이 엉켜도는 착잡한 시선이시였다.

《그건 어떻게 하는 소리입니까?》

《방금전에 전 조국전선중앙위원회의 김창준서기국장과 허헌, 홍명희선생도 만나보았습니다. 그들은 장군님께서 이제 있게 될 조국전선중앙위원회 확대회의에서 채택할 호소문을 잘 준비해야겠다고 말씀하시여 그 준비때문에 모여앉아있었습니다. 전… 알고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지금도 나라의 통일문제를 먼저 생각하고계십니다. 북과 남의 대화와 협상에 대하여 생각하고계십니다. 장군님,장군님께서 어떤 새로운 로선을 제시하신다 해도 모두 지지할것이며 심신을 다해 받들겠습니다. 부탁컨대 먼저 건강부터 돌봐주십시오. 김정숙동무를 잃은 다음부터 신색이 정말…》

김책은 말끝을 맺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가까이 다가서시여 김책의 어깨를 으깨여지도록 힘껏 잡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자신의 아픔보다도 나라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시였고 민족이 당하는 수난을 먼저 생각하고계시였다. 자신께서 이보다 더한 아픔과 고통을 겪는다 해도 하루빨리 조국통일의 전환적국면을 열어놓아야겠다는 결심을 더욱더 굳히시였다.

그래서 그이께서는 김책의 어깨를 꼭 잡으신채 《김책동무의 말이 옳습니다.》하고 대답하시며 뜨거운 숨결을 내뿜으시였다.

《나는 전쟁이나 전투보다먼저 평화에 대하여, 통일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나의 뒤에는 수많은 인민들의 귀중한 생명과 생활이 있습니다. 갓 전쟁을 끝내고 새생활창조에 들어선 유라시아대륙의 수많은 민족들의 운명도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한번 우리의 아량과 성의를 남조선괴뢰정부에 보이자고 생각했습니다. 6월 7일에 열리는 조국전선확대회의에서 온 겨레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채택하기로 했습니다. 전쟁을 할것이 아니라 통일을 이루자는것을 다시한번 열렬히 호소하자는것입니다. 조국전선확대회의에서 평화통일호소문이 채택되면 그것을 남조선의 제 정당, 사회단체들에 배포해주기 위해 조국전선위원회가 서울에 대표를 파견할것입니다. 물론 신문과 방송으로도 공개하겠지만 그래도 우리의 대표들을 직접 파견하여 우리의 평화통일의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

《조국통일에 대한 우리 공화국정부의 의지는 드팀이 없습니다. 이번에 진행된 남조선의 5. 30〈국회선거〉에서 리승만의 반통일세력이 대참패를 당하고 〈국회〉무대에서 정치적지반을 완전히 잃어버린것도 다 겨레의 통일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온 우리 공화국 당과 정부의 립장에 대한 인민들의 지지와 공감의 발현입니다. 우린 리승만의 친미사대주의세력이 력사의 교수대로 향하고있는 이 유리한 정세에 토대하여 조국통일의 전환적국면을 열어나가야 합니다.》

김책은 그이를 경건히 우러르며 그이께서 천천히 옮기시는 걸음을 따라섰다.

밤은 점점 깊어가고 저택의 정원에는 고요가 깃들었다. 그이께서 버팀목을 해주신 애어린 살구나무가 바람결에 하느적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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