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회)

 

제 8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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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하루를 새겨가면서 생활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기도 힘겹지만 리윤재가 잡지를 편집하면서부터는 생활을 한달단위로 계획하다나니 한달이 어느 사이엔지 모르게 푹푹 달아난다. 더구나 잡지원고를 두달 앞질러 준비하다나니 남보다 두달을 먼저 생활하는것 같기도 하다.

5월에 들어서니 서울의 봄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무르녹는다. 만물이 소생하고 마음이 약동하는 계절이다. 눈부신 해빛, 거무틱틱한 겨울의 허울을 벗고 연록색으로 변한 멀고 가까운 산들, 거리를 치장하는 환한 봄차림들, 어느것 하나 마음에 정서를 불러일으키지 않는것이 없다.

그러나 리윤재는 봄이 오고 가는것을 느껴볼 겨를도 없었다. 다만 아직도 입고 다니는 무명겹두루마기가 좀 무거워진듯이 느낀것이 고작이였다.

《한글》잡지 2호원고를 인쇄소에 넘겨주고나니 3호원고준비가 육박해온다. 그렇다고 잡지 한가지만 하는것도 아니다. 연희전문학교, 중앙고보, 경신학교의 시간강의는 여전히 해야 하고 맞춤법통일안심의는 아직도 계속되고있다.

리윤재는 이렇게 드바쁜 속에서도 때로는 밤을 밝혀가며 짬짬이 조선어사전원고를 완성하였다. 하지만 그로서는 아직도 미흡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며 더 수정보충하고있는터였다.

그런데 하루는 뜻밖에도 문세영이 그의 집을 찾아왔다.

《환산, 그동안 안녕하셨소?》하며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별로 곰살궂게 놀았다.

《청람(문세영의 호), 어떻게 이 루추한 우리 집에까지 오셨소?》

리윤재는 별로 거래가 없던 그가 찾아온것을 놓고 생각을 더듬고있었는데 문세영은 얼굴에 어줍게 미소를 띠우며 말하였다.

《환산, 다름이 아니라 선생이 사전원고를 다 만들었다고 하는데 우리 함께 공동으로 조선어사전을 내지 않겠습니까?》

그가 사전원고가 다되였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모양이였다.

그의 제의에 하루빨리 조선말사전이 나왔으면 그 이상 기쁜 일이 없을것이라고 생각한 리윤재는 자기가 10여년간이나 공들인 자기 인생의 전부나 다름없는 귀중한 원고를 문세영에게 흔연히 내놓았다.

그때로부터 수년이 지난 1938년 10월에 《조선어사전》이 나왔다.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나온 사전으로서 일명 《문세영사전》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사리사욕에 눈이 어둡고 처세술이 능하고 약삭바르기 그지없는 문세영은 리윤재와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사전표지에 자기의 이름만 뻐젓이 박아넣었다.

이렇게 10여년동안 리윤재가 고심분투하여 만든 사전원고는 문세영의 독점물이 되고말았다. 결국 문세영은 고지식하고 순결한 마음을 지닌 리윤재를 롱락하여 그의 정신적재부를 강탈한셈이였다. 이것을 보면 문세영은 티끌의 량심도 없는 철면피한 인간이였다.

그러나 리윤재는 그것을 탓하지도 않았다. 비록 섭섭한 마음이 있었겠는지는 모르지만 그후 《조선어사전》이 나온것을 보고 기뻐했다고 한다.

아직도 일부 학자들과 오래된 사람들은 그 사전의 래력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고있다.

남조선에서 출판된 《국어대사전》 (상, 중, 하, 1999년판)의 올림말에는 《문세영. 사전편찬가(1888-?). 호는 청람, 리윤재의 도움을 받으며 사전편찬에 종사하였고 우리 나라의 최초의 국어사전인 <조선어사전>을 편찬하였다.》라고 씌여있다. 해석이 비교적 사실을 밝힌 셈이다.…

눈코뜰새 없는 그에게도 어찌다가 한가한 날이 다 있었다. 마침 학교강의가 없고 어학회의 모임이 없었기때문이다.

그날따라 집안도 괴괴했다. 어머니는 웃방에서 재털이에 대통만 두드리고 안해는 부엌에서 떠날줄 모르고 막냉이를 내놓고는 아이들이 모두 제각기 학교에 가고나니 빈집같다. 혼자 남은 종주가 심심해서 에미의 치마꼬리에 매달려 칭얼거리다가 마당으로 나가서 갑자기 온 집안이 들썩하게 목청을 뽑는다.

제 누나들이 하는걸 저도 몰래 따라하면서 익힌 노래를 부른다는것이 곡도 곡이지만 가사도 제 식대로 발음하다나니 우습기 그지없었다. 그는 피식 실소하며 철망서류함에 수북이 쌓인 미정리원고들속에서 언젠가 쓰다가 끝내지 못한 변격활용에 관한 원고를 찾아냈다. 《한글》잡지 3호를 철자법특집으로 할 계획이니 이 원고가 꼭 필요할것 같았기때문이다.

그는 비여둔 제목란에 《변격활용의 례》라고 써넣고 쓴데까지 쭉 읽어보고는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펜을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일부러 불규칙을 만들어놓자거나 또는 불규칙문제를 해결치 말자는 말은 아니다. 될수만 있으면 구음에 어그러져 말에 구속을 주지 않는 한에서 이 불규칙을 없이 하기에 노력하여야 할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바에는 차라리 그 불규칙을 호의로 대해주며 그것과 정들임이 소극적이나마 도리여 량책이란 말이다. 하물며 우리 말의 불규칙은 다른 나라의 그것과 같지 아니하며, 그리 많지 아니하며, 또 몹시 복잡하지 아니하며 불규칙으로서도 일종 불규칙의 규칙이 있어서 깨닫기에 그리 힘들지 않음에랴…》

그리고 불규칙용언처리에서 여러가지 편향을 실례를 들어 지적한 다음 끝으로 우리 말의 불규칙변격활용의 례를 들었다.

리윤재는 펜을 놓고 벽에 기대여앉아 변격활용에 대하여 더 쓸것이 없는가 하고 생각을 구불리고있는데 안해가 살며시 방문을 열고 방금 온 《동아일보》를 가져다주고는 사색에 잠기고 피로가 서린 남편의 얼굴을 일별하고는 잠자코 나가버렸다. 이럴 때는 남편이 말하기도 싫어한다는것을 정씨는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다만 이렇게 무리를 하다가 또 토혈이나 하지 않겠는가 하고 근심했을뿐이다.

리윤재는 머리를 쉴겸 신문을 끄당겨서 큰 제목만 피끗피끗 읽어가다가 갑자기 놀라서 눈이 둥그래졌다. 3면 맨우에 큰 활자로 찍은 《세종대왕시 반포한 훈민정음원본 박승빈씨 서고중에서 발견》이라는 놀라운 제목이 눈에 띄였던것이다. 그리고 그옆에는 《훈민정음원본 사진판 간행, 조선어학연구회 계명구락부 합력》이라는 제목을 역시 크게 내걸고 기사가 실려있었다.

훈민정음원본이 세상에 전해지지 못하고있음을 늘 유감으로 여겨오던 리윤재는 이 기사가 사실이라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하고 생각하다가 머리를 저었다. 5년전에 조선어연구회에서는 훈민정음원본을 구하던 끝에 광문회의 장서인 《월인천강지곡》머리에 들어있는 훈민정음목각판과 등사본, 박승빈의 장서인 단행본 훈민정음목각판의 3종을 얻어서 각 판본의 진본여부를 상세히 분석한 후 박의 목각판이 진본에 가까운것임을 인정하여 그 목각판을 주로 하고 다른 두 판본을 참작하여 훈민정음원본을 사진판으로 만들어 《한글》잡지 창간호에 그 부록으로 세상에 내보냈었다. 그리하여 이것이 수천부나 독자속에 퍼졌고 그후 사회의 요구에 응하여 이것을 단행본으로까지 간행하였었다.

그런데 공명심이 류달리 강하고 야심이 남다른 박승빈이 진본에 가깝다고 인정된 훈민정음판본을 허술히 남에게 빌려주어 세상에 공개케 한 실수를 깨닫고 후회막급하여 이제라도 그것을 혼자 차지하는 영예를 회복하고 동시에 그것으로 온 세상을 놀래우는 공을 세우려는 마음이 움텄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조선어학회에 훈민정음사진판동판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이번에는 돈으로 매수하려고 교섭했는데 그것도 안되자 한동안 치를 떨며 침묵을 지키더니 요사이 료정에서 제 돈으로 연회를 자주 차리고 친지들과 기자들을 초청하여 자기의 학설을 소개하고 또 훈민정음원본을 발견했다는 희떠운 소리를 한다더니 끝내 《동아일보》 1932년 5월 14일부에 세상을 놀라게 하는 기사가 나간것이다.

참고기사를 읽어가던 리윤재는 《막연하여 애매한 학설이 일소되고 그 정확합리의 길을 얻을 기인이 될것으로 신뢰되는 점에 있어서 얼마나 큰 의의와 사명을 가질것인지 알수 있는것》이라는 문구에 신경을 모았다. 이 훈민정음원본의 발견으로 조선어학회의 학설이 일소되고 박승빈의 학설이 옳다는것을 주장할 근거가 생겼다는 말이다.

리윤재는 훈민정음원본의 이 《우연한 발견》이 지난해말에 조선어학회에 대립하여 조직된 조선어학연구회와 련관시켜볼 때 결코 우연한것이 아니며 그 원본이라는것이 5년전에 《한글》잡지에 실린 훈민정음사진판과 같은것이라는것을 의심치 않았다.

정상배의 권모술수와 같은 이런 놀음이 과연 학자의 량심으로써 할수 있는 일일가? 이런 속임수를 써가면서까지 조선어학회에 맞서려는 그가 사실 학자이기나 한가? 조선어문운동의 통일을 이렇도록 집요하게 방해하여나서는 그의 진의도는 무엇인가?

이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박승빈은 수수께끼의 인물로 생각되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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