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 회)

 

제 9 장

35

 

평화통일을 부르짖는 거리의 격렬한 함성은 노아의 홍수가 터진듯 한 무시무시한 괴성으로 변하여 리승만의 경무대에도 흘러들어왔다.

격분한 리승만은 합동수사본부를 책임지고있는 오제도를 전화로 찾아 거리에 떨쳐나선자들이 몽땅 공산비적들이 분명하다고 하며 당장 경찰들을 내몰아 김구의 장례식에 모여든자들을 매모조리 잡아들이라고 마구 호통쳤다.

리성을 잃은 리승만의 망발을 들은 오제도가 아직은 그렇게 할만 한 증거가 없고 그렇게 되는 경우에는 더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할것이라고 조리있게 설명하려들자 그것은 또 그것대로 부아를 돋구어 무엇이라고 입에 담지 못할 쌍욕을 퍼붓다가 송수화기를 내동댕이쳤다.

때마침 미군사고문단장 로버트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전화기를 다시 끄당겨 오제도까지 공산분자라며 잡아들이라는 지시를 주었을지 몰랐다. 사람을 죽인 다음에는 건전한 리성이 살아있을수가 없다. 사람을 죽인 살인자는 얼혼이 나가고 후과가 두려워 더 큰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법이다. 지금 리승만은 자기가 죽인 김구를 비호하거나 자기의 말을 잘 듣지 않는 모든 사람들이 다 원쑤처럼 생각되였다.

무쵸나 노블이 바로 리승만의 이러한 심기를 알아차리고 로버트를 보냈던것이다. 물론 로버트가 리승만의 리성을 되찾아주려는 《애바른》심정에서 찾아온것은 아니였다. 미국의 목적은 미치광이에게 어울리는 그럴듯한 입김을 불어넣어주자는것이였다.

로버트는 리승만이 방금전에 집어던진 송수화기를 내려다보며 그렇게 맹목적인 분노만 가지고서는 권력을 유지하지 못한다고 점잖게 권유했다.

《오제도부장의 말이 옳습니다. 서울에 있는 말공부쟁이정치가들 몇명을 걷어넣는다고 일이 해결될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당신은 그래 이 늙은이에게 정치를 배워주려고 왔소?》

《정치는 말공부가 아니라 힘에 의해 창조된다는것을 상기시키려고 왔습니다.》

《당신은 역시 군인이니까…》

로버트는 리승만의 말을 자르며 한손을 내들었다.

《오늘도 각하의 영용한 군대는 38도선이북의 은파산을 타고앉기 위해 치렬한 전투를 벌리고있습니다. 대통령각하는 지금도 북진통일을 주장하고있겠지요?》

《그건 나의 변함없는 주장이요. 다만 당신들 미국사람들의 신사연하는 태도때문에 결심을 못 내리고있는거요. 당신들의 후원이 없이 한국군 혼자의 힘으로야 북조선과 맞설수 없지 않소. 당신들은 이 리승만을 진심으로 생각해주는것 같지 않소.》

로버트는 웃었다. 그래도 명색이 《대통령》이고 서로 속이고 속히우는 정치계에서 오래동안 굴러먹었다는 리승만이 그 무슨 《진심》이라는 소리를 뇌이는것이 발육이 되지 못한 미숙아의 모양을 련상시켰던것이다.

《전쟁을 하자면 명분과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김구의 죽음을 놓고 격분한 민중에게 또다시 그 무슨 탄압을 하려든다면 북진통일은커녕 오히려 당신자신이 북조선군대에 서울남하구실을 주는것으로 됩니다. 지금 필요한것은 평양의 조국전선결성제안으로 흥분된 남조선민중의 격앙을 눅잦히는것이고 한국군의 전투력을 높이면서 북진을 위한 군사적교두보들을 확보해놓는것입니다. 은파산에서는 이미 작전이 시작되였고 두번이나 점령하려다가 실패한 송악산작전도 마무리를 해야지요. 그래서 내 1사단장 김석원대령을 여기로 불렀습니다. 그가 오면 대통령각하가 직접 송악산공격명령을 내리십시오.》

로버트의 《각근한》 권고에 리승만의 광증은 한결 가라앉는듯싶었다. 비서를 불러 커피를 가져오도록 하고는 로버트와 마주앉아 커피를 마시며 한동안 진정을 했다.

그들이 커피를 한잔씩 다 마시고났을 때 화약내를 물씬 풍기며 남조선군부의 중진이라고 하는 1사단장 김석원이 들어섰다.

훤칠한 키에 어깨가 군인답게 버그러진 김석원이 절도있게 경례를 붙이고는 먼저 리승만을, 다음에는 로버트에게 눈인사를 해보였다. 리승만은 사실 언제봐야 타고난 군인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김석원을 상당히 신임하고있었다.

그가 두번이나 있은 송악산전투에서 북조선의 최현경비려단장에게 참패를 당한것은 참을수 없는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이였지만 그래도 전방에서 그를 대신할만 한 적격자는 더 찾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통령》의 너그러운 도량의 표시라는듯이 송악산을 또다시 공격할데 대한 지시를 주었다. 그런데 김석원은 리승만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태도로 나왔다. 골살을 찡그리며 《대통령》의 명령에 대한 불만을 로골적으로 표현하였던것이다.

《이미전에 있은 두차례의 대규모전투들의 경험과 교훈에 비추어볼 때 송악산을 타고앉는다는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뭣이?》

리승만의 허연 눈섭이 당장에 곤두섰지만 김석원은 그런것쯤은 개의치 않고 로버트에게로 돌아서서 북조선경비대의 우수한 전투력에 대하여 설명해나갔다.

리승만이 듣다못해 꿱 소리질렀다.

《이랬건저랬건 그들은 정규군이 아니라 한갖 경비대란 말이야. 석원이 너는 미국제무기로 장비한 아시아 제1위의 정규무력을 지휘하는 사단장이고… 그런데 그런 말을 하기가 부끄럽지도 않아?》

물론 김석원도 그런 말을 하기가 떳떳한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지금 김석원의 가슴속에서는 온갖 수치감과 함께 엄습해드는 공포의 의식도 자리잡고있었다. 지금 그에게는 개성에서 마주바라보이는 송악산의 한포기 풀도, 하나의 바위돌도 다 자기를 위협하는 무서운 항거자로 보이고있었다.

올해초 38도선전방의 1려단장으로 부임된 이래 송악산전투를 비롯한 여러 전투들에서 번마다 참패를 당하면서 김석원은 점점 앞으로 있게 될 전쟁의 승리에 대한 회의심이 갈마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해방전에는 뛰여난 군사적자질로 하여 조선사람으로서 일본군의 련대장으로까지 승진했던 그가 반생을 전장터에서 보낸 군인으로서 수치를 맛보았던적이 있다면 그것은 37년도에 김일성장군항일빨찌산과 진행했던 간삼봉전투일것이다. 운명의 희롱이라고 해야 할지 그때 수많은 병졸들을 잃고 무졸장군이 되여 저 하나의 목숨만을 간신히 건졌던 김석원은 오늘날 그날의 전투에서 자기에게 수치를 안겼던 최현과 또다시 38도선에서 마주서게 되였다. 그래서 10여년전에 당했던 수치를 씻고싶은 열망속에 송악산에로 병력을 내몰며 그자신이 직접 전방에 나가 전투를 지휘해보았지만 그때마다 오히려 더 큰 패자의 치욕을 들쓰지 않으면 안되였다. 어제날의 김일성부대는 오늘도 여전히 강대하고 남조선은 물론 미국도 어쩔수 없는 무한대한 힘을 지니고있다는것을 통절하게 느끼게 되였다.

확실히 이 세상에는 인간의 머리로는 풀수 없는 불가사의한 방정식들이 무수한것 같았다.

과연 그들에게 있는것은 무엇이고 나에게 부족한것은 무엇인가?

김석원은 오래동안 이 수수께끼를 풀어보려고 애쓰고있었다. 이 수수께끼를 풀기 전에는 승산없는 전투에 나가 참패를 당하고싶지 않았다. 더우기 그는 이전 일본군대좌였던 자기가 한갖 소좌에 불과했던 채병덕과 같은 인간에게서 멸시를 받는것이 죽기보다 더 싫었다. 채병덕이 리승만의 신임을 얻어 륙군참모총장으로 벼락출세를 한 다음부터 직속상관이라는 만만한 배심에 넘쳐 공개적인 장소에서까지 서슴없이 김석원을 타매하고 무능한 지휘관이라는 모욕적인 발언까지 탕탕 하고있는데 이것이 또한 김석원의 심기를 참을수 없이 자극하는것이였다.

그래서 그는 리승만이나 로버트의 명령에 무엄한 반발을 서슴없이 할수 있었던것이다.

《필요하다면 전 채참모총장에게 나의 부대에 대한 지휘권을 넘겨줄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번 전투에서는 그가 직접 나서서 승리의 군가를 부를수 있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김석원의 잔뜩 비틀린 심사가 그대로 우러나온 말을 듣고나서 로버트는 무엇인가 짐작되는바가 있는지 얼굴이 시뻘개서 씩씩대고있는 리승만에게 의미있는 눈짓을 하였다. 그리고나서 김석원을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버트는 김석원의 가까이로 다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난… 당신의 심정을 알만 합니다. 하지만 대령, 생각해보시오. 당신은 군인이요. 군인에게서 가장 수치스러운것은 패전하는것이 아니라 패전을 회복하지 못하는것이요. 당신은 12년전에도 38도선의 저 최현려단장과 결투했다가 패전한 전적이 있지 않소? 직업적인 군인으로서 그 수치를 씻지 못하고서야 군복을 입고있을 필요는 무엇이고 또 살아있을 필요는 무엇인가 말이요. 난 같은 군인으로서 당신의 군인답지 못한 생각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오. 싸워서 승리할 자신이 없다는 타산보다 이번에는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각오를 앞세워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요. 그래 당신에겐 군인의 명예도 존엄도 없소?》

군인으로서의 명예와 존엄을 건드리는 바람에 김석원은 흠칠했다.

《이번전투에서 성공만 하시오. 그러면 우리는 여기 한국군부의 인사정책에 대하여 재고려하게 될것이라는것을 군인의 명예를 걸고 약속할수 있소.》

로버트의 말은 이번전투에서 승리하면 채병덕의 륙군참모총장자리까지도 차례질수 있다는 명백한 암시였다.

로버트는 창가로 돌아서며 자기를 바라보는 김석원의 의혹에 싸인 눈길을 느끼고 넌지시 말을 이었다.

《사실 채총장이야 당신에 비해볼 때 진짜군인이라고 볼수야 없지. 안 그렇습니까, 대통령각하?》

로버트의 의미있는 질문에 리승만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송악산만 타고앉아라. 그러면 넌 장성이 되고 륙군의 통수권을 틀어쥐게 될것이다.》

《!…》

김석원은 무슨 정신에 리승만의 방을 나섰는지 몰랐다. 미군이 먹다버린 통졸임통들과 별의별 쓰레기들이 떠도는 어지러운 거리를 한참동안 걸어가느라니 자기가 걸어온 포연에 절은 인생길을 돌이켜보게 되였다. 수치도 있었고 《영광》도 있었던 과거를 추억해보느라니 자신이 걸어온 한생이 명예욕과 출세욕에 넋을 빼앗겨 무모하게 돌진해온 부나비의 한생처럼 여겨졌다. 조선사람으로서 일본군의 련대장으로 《승진》의 길을 걸을 때에도 그의 체내에서 끓고있는것은 아시아의 맹주로 자처하는 일본사람들도 어쩌지 못할 군사지휘관으로서의 명성을 떨치는것이였다. 그가 필생의 목적으로 삼고 살아온 이 권력에 대한 욕망이 오늘 또다시 피를 끓이게 하였다. 그래서 결국은 채병덕의 자리를 선사하겠다는 로버트나 리승만의 얼림수에 꼼짝 못하고 붙잡혀버린것이였다.

과연 인간은 무엇을 위하여 사는것인가? 이것은 인류가 수백만년동안 존재해오면서 항시적인 숙제로 제기하고 풀어오며 별의별 주장을 다 만들어낸 문제였다.

권력의지… 김석원은 이제야 비로소 서방에서 니체를 철학의 대가로 칭송하여마지않는 원인을 깨닫는것 같았다.

당자가 인정하든 안하든 그의 피속에는 그의 넋을 지배하는 야수적인 초인이 반드시 존재하는듯싶었다.

그러나 야수가 된다고 하여 반드시 승리한다는 법은 없다. 히틀러도 무쏠리니도 도죠 히데끼도 그 야수성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지려고 하지 않는 악마들이였지만 운명은 그들을 배신하지 않았는가.

그러면… 과연 나는 장차 어떻게 해야 하는가?

김석원은 별안간 입술을 윽깨물며 쓰고있던 군모의 채양을 사납게 내리눌렀다. 그리고는 자기의 뒤를 천천히 뒤따라오던 찌프차우에 올라앉으며 운전사에게 사납게 호령하였다.

《가자!》

《어디로 가시렵니까? 집으로요?》

《아니, 38선으로!》

김석원은 마침내 운명을 내건 마지막싸움을 해보리라 결심하였던것이다.

이제 있게 될 38도선이북 송악산에 대한 세번째 공격은 그가 자기 한생의 좌우명과 니체의 권력의지를 대고 진행하는 마지막도박장으로 될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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