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회)

 

제 6 장

20

 

시누런 탄알들이 탄창에 재워지고있었다. 침착하고 규칙적인 손동작에 의하여 역시 규칙적인 모양새로 탄창에 들어가배기는 탄알의 알른거림에 눈이 부시였다.

1949년 5월의 어느 저녁이였다. 홍천을 경유하여 38도선으로 나가는 자동차들이 연방 내뿜는 배기가스와 길바닥에서 피여오르는 부연 먼지구름이 혼탁이 되여 휘발유내가 섞인 진황색의 공기흐름이 강태무가 권총을 꺼내놓고 앉아있는 대대부에까지 흘러들었다.

지금 강태무는 비단 총탄만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재워나가고있었다. 운명을 내건 싸움마당을 앞에 두고 나약해지지 않으려는 의지를, 신념을 다져나가고있었다.

마침내 그가 만탄창이 된 권총의 격발기를 떨구고 허리춤에 꽂아넣을 때에는 이미 날이 어두워있었다.

강태무는 자리에서 일어나 군복을 바로잡고나서 련락병을 불렀다.

《대대를 집합시키라!》 하는 짤막한 명령을 내릴 때 그의 눈에는 비장하고도 서슬푸른 기운이 한껏 차오르고있었다.

밖에서 대대장의 긴급명령을 받은 장교와 사병들이 병영에서 뛰쳐나와 분주하게 서두르며 정렬하는 소음이 들려왔다. 강태무는 전화기를 끄당겨 춘천에 있는 련대본부를 찾았다.

《2대대장 강태무입니다. 일선전방의 진지들이 지금 말이 아닙니다. 북조선군이 언제 싸움을 걸어올지 모르는 조건에서 진지보수를 제때에 해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 대대를 이끌고 38선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련대에서는 이북과의 싸움준비를 위한 강태무의 치밀성과 적극성을 높이 평가해주고나서 38도선진지에 대한 보수작업을 승인해주었다. 강태무가 전화기를 내려놓았을 때 련락병이 들어와 대대가 모두 정렬했다고 하였다.

정말 이제는 떠나야 하는가?

강태무는 선뜻 일어설념을 못하고 담배를 뽑아물었다. 심장이 쿵 쿵 소리를 내며 뛰였다. 이 짧은 순간에 그는 자기가 오늘과 같은 엄청난 결심을 하기까지의 나날을 돌이켜보았다.

일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집에 들이닥친 표무원이 《이젠 다요. 전쟁이요.》하고 부르짖은것으로부터 시작되였다고 볼수 있었다.

잠옷바람의 인주가 갑자기 뛰여든 표무원으로 하여 부끄러워 어쩔바를 몰라하다가 건넌방으로 넘어가 미닫이를 꼭 닫았는데 표무원은 그런것도 느끼지 못하고 밤이슬에 축축히 젖은 군모를 바닥에 던져버렸다.

강태무도 저으기 당황하여 이부자리를 거둔다, 담배갑을 내놓는다, 재털이를 찾는다 한동안 부산을 피웠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됐다는거요?》

표무원은 강태무가 가져다준 담배갑에서 담배를 뽑아물고 한바탕 내굴부터 피워댔다.

《오늘 아침 로버트가 새로 〈국방장관〉으로 취임한 신성모를 데리고 갑자기 춘천에 들이닥쳤소.》

표무원은 정신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1대대 전방진지들을 깐깐하게 돌아보고난 뒤 표무원의 대대부로 돌아온 로버트가 불쑥 일제가 쏘몽, 쏘만국경지역에서 조작했던 할힌골사건, 하싼호사건의 경위에 대하여 한참동안 늘어놓았다는것이였다.

표무원은 로버트가 무슨 목적으로 이런 말을 늘어놓는것인지 그 의도가 인차 짚이지 않았지만 겉으로는 그 지루한 소리를 열성스럽게 듣는척 하였다.

로버트는 마지막에야 자기의 의도를 완전히 로출시켰다.

《대륙전쟁과 같은 큰 전쟁도 바로 이렇게 작은 충돌에서 시작되는것이라는걸 알겠소? 말하자면 당신의 결심에 의해서도 이 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수 있다는것이요. 대대장, 음?! 참, 이름이 표무원이라고 한다던가?》

너무도 어망처망한 소리에 대답을 못하고있는 표무원을 대신하여 련대장이 제꺽 대답해주었다.

《네, 1대대장 표무원입니다.》

련대장은 직무와 이름만 말하자니 무엇인가 아쉬운감이 들었는지 표무원에 대한 구체적인 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륙사2기졸업생으로서 전도가 양양한 당년 25살의 청년장교라느니, 고향은 경상북도 대구인데 그 용감성과 과감성에서 홍천대대장 강태무와 쌍벽을 이루는 실력자라느니…

물론 표무원은 그런 말은 귀등으로 스치고있었다.

(로버트가 무엇때문에 저런 말을 하는가? 그저 한번 해보는 소리인가? 군대의 전투력을 높이기 위한 술책에 지나지 않는가?)

《25살이면 맨손으로 범도 때려잡을 나이구만. 이런 국군장교들이 있는 한 승리는 확정적이라고 말할수 있소. 안 그렇습니까, 신장관?》

(아니, 저건 결코 로버트 개인의 말이 아니다. 우연히 튀여나온 소리도 아니다. 저건… 미국의 뜻이다.)

신성모가 당장 결사전에 나설듯이 기염을 토했다.

《각하! 이북과의 대결을 각오한 국군장병들의 결의는 철석같습니다.》

《좋습니다. 만단의 전투준비를 갖추고 명령을 기다리시오.》

명령을 기다리라… 명령을…

결국은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달 그날을 기다리라는것이 아닌가. 전쟁! 결국 이것은 상상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고 말로만 그치는것도 아닌 현실이다. 이놈들, 이 전쟁의 사환군, 치졸한 부나비들!

로버트와 신성모가 표무원을 지도앞에 가까이 끌어당겨놓고 당면하게 진행해야 할 훈련과제를 제시하고있었지만 표무원은 더는 아무 소리도 들을수가 없었다. …

《강소령, 그때 로버트의 말을 들으며 내가 생각한게 뭔지 아오? 3월달에 김석원의 부대가 개성앞의 송악산을 공격했다가 녹아났다는 말을 들었댔는데 그걸 그저 무심히 스쳐들을 소리가 아니라는것이였소. 그러루한 전투들이 언제 어느 시각에 전면전쟁으로 번져질지 알수 없다는것을 그때에야 난 깨달았단 말이요. 난 이걸 말하자고 왔댔소.》하고 무시무시한 이야기통의 뚜껑을 막고난 표무원은 올 때처럼 불쑥 일어나 나가버렸다. 마주앉아 이야기를 좀 더 하다가 가라는 강태무의 말에 새벽 5시까지는 춘천에 가닿아서 대대부에 틀고앉아 전화통을 지키고있어야 한다며 떠나갔다. 결국 그는 불과 5시간밖에 차례지지 않은 여유시간에 이곳 홍천에까지 왔다간것이다. 전쟁이 닥쳐왔다는 그 한마디를 알려주기 위해…

표무원이 돌아간 뒤 닫겨있던 미닫이문이 열리고 창백해진 안해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도 다 들은것이였다. 강태무는 갑자기 어쩔바를 몰라했다. 머리우에 전쟁이라는 무서운 불소나기가 떨어진다는 소식을 들은 이 녀인을 어떻게 안심시키고 위로해야 할지 알수 없었다.

차라리 아무 말도 안하는것이 더 나을것이다. 그저 못 본척 하고 자리를 다시 펴고 안해의 손을 잡아 잠자리로 이끌고 그다음은 몹시 피곤한듯 제꺽 잠들어버리는것이 제일 간단한 해결책일듯 했다. 그리하여 강태무는 그렇게 했다. 다만 잠든척 하면서도 전혀 잠들지 못했을뿐이였다.

남편의 요구에 순종하여 곁에 누운 안해도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하며 잠들지 못하고있었다. 남편이 깨여나 무슨 이야기이든 해줄것을 간절히 바라는것 같았다. 강태무는 그가 들으라는듯 우정 코고는 소리를 요란히 냈다.

그러지 않아도 몇달전부터 강태무가 폭동계획을 꾸미고 그 실행을 위해 측근의 장교들을 자주 집에 데리고와 밤새도록 의논을 하다나니 무엇인가 눈치를 채고 제딴의 불안에 시달리고있던 안해였다. 설사 《헌병》대나 《숙군조사반》놈들의 눈초리는 피할수 있어도 안해에게만은 모든것을 고스란히 숨겨낼수가 없는것이였다.

불안에 시달리면서도 안해는 지금껏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이따금씩 무엇인가 대답해주기를 기대하는 간절한 눈빛을 던졌을뿐이였다. 그런 안해였다. 괴로운 일은 속에 품고있으면서 절대로 내색하지 않는것이 그의 성미였다. 그런 안해를 그냥 속이자니 괴로왔지만 별수 없었다. 뭐라고 한단 말인가. 폭동계획은 극비에 붙이고있는것이였다. 아무리 안해라고 해도 함부로 루설할수 없었다. 사실을 알게 되면 마음이 여린 안해는 남편의 신상에 대한 걱정때문에 무슨 일을 저지를지 알수 없었다.

이렇게 두사람이 서로 다른 고민거리를 안고 지내다나니 나중에는 그처럼 다정했던 부부간에 서로가 서로를 피하려고 하는 서먹서먹한 분위기가 흐르게 되였다.

그러나 밤에 잠자리에 들 때에는 여느때처럼 베개를 나란히 하고 함께 잤다. 심지어 여느때보다 더 다정해진듯싶기도 했다. 이따금 인주는 잠투정을 하며 베개를 잠자리밖으로 밀어놓고 그대신 남편의 팔을 베고 자군 했는데 그럴 때마다 강태무가 깨여나 살펴보면 안해가 결코 자고있는것이 아니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안해는 남편이 자기를 버리고 어디론가 떠나갈가봐 걱정하고있는것이였다.

강태무는 오로지 자기만을 믿고 따르며 모든것을 맡기고사는 이 녀인을 하루밤에도 몇번씩 품에 껴안고싶었고 설사 세상이 열백번 뒤집힌다 해도 당신만은 절대로 버리지 않겠다고 솔직한 심정을 터놓고싶었다.

그러는 나날에 차츰 폭동계획은 무르익어갔고 대대안에서 믿을수 있는 장병들도 적지 않게 선발하여 뜻을 같이하기로 약속을 하였다. 강태무가 표무원과 함께 무르익힌 폭동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먼저 강태무가 대대에 내려와있는 미군고문관과 악질장교들을 처단하고 대대전체를 집합시켜놓은 다음 그 자리에서 미제의 침략책동과 리승만괴뢰도배의 매국배족적범죄행위를 폭로하는 힘있는 연설을 하고 대대를 이끌어 련대본부가 자리잡은 춘천까지 점령하는것이 계획의 첫 단계였다. 이때 표무원도 강태무와 같은 방식으로 춘천을 장악하여야 하였다.

두번째 단계는 강태무와 표무원의 대대가 합세하여 서울을 향해 남하하면서 폭동을 지지하는 다른 부대와 지역의 군인들과 인민들로 대오를 확대강화하는것이였다. 서울의 관문인 의정부까지 점령한 다음 미군당국과 리승만《정부》에 동족상쟁을 그만두고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날데 대한 요구조건을 제기하기로 하였다. 이때 려수군인폭동의 교훈으로 비추어 반드시 있을수 있는 미제와 리승만세력의 반격에 대처하기 위해 강원도일대에서 활동하는 빨찌산부대들과 련계를 취하며 만일의 경우에는 강원도의 깊은 수림속으로 들어가 38도선에 배비된 북조선경비대와 인민군부대들과 손을 잡고 힘으로 서울을 타고앉자는것이였다.

이렇게 통이 큰 계획을 세우고보니 강태무자신도 절로 피가 끓어올랐고 대대장병들도 흥분하여 거사를 당장 치르자고 윽윽하였다.

강태무는 이 계획을 표무원과 최종적으로 합의하고 실천에 옮기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때 서울에서 찾아온 강태렬이 거사계획을 즉시에 철회하라는 놀라운 권고를 하는것이였다.

한편으로 놀라고 한편으로 격분해하는 강태무에게 강태렬은 더 놀라운 소리만 했다.

《이건 내 개인의 생각이 아니다. 이건… 김일성장군님의 뜻이라고 한다.》

강태무는 돌미륵처럼 굳어졌다. 형의 사람됨을 잘 아는 강태무로서는 그가 거짓말을 꾸며낸다고는 생각할수 없었다. 그런데 극비에 붙였던 자기들의 폭동계획을 서울에 사는 형이 어떻게 알게 되였는가 하는것이였다. 그때문에 한동안 옥신각신했다.

《그에 대하여서는 너무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너에게 말하자는건 현시기 남북조선의 전체 인민앞에 나서는 첫째가는 과업은 민족의 안전과 평화를 위해 남북이 협상하는 방법으로 내란없이 나라의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는것이다. 이것이 바로 김일성장군님의 뜻이라고 한다. 때문에 려수에서와 같은 폭동을 일으켜 그곳에서처럼 수많은 군인들과 인민들이 귀중한 피를 흘리지 않도록 해달라고 나를 찾아왔던 한 은사가 간절히 당부했다. 그는 네가 사관학교시절을 어떻게 보냈으며 어떤 마음을 안고 어떤 계획을 꾸미고있는지 손금보듯 다 알고있더라. 통일을 위해 투쟁하는 어떤 범상치 않은 위력한 조직의 한 성원이 분명한것 같더라. 그래서 난 그의 말을 믿게 되였다. 그리고 이젠 또 네가 내 말을 믿어야 한다. 믿는 길밖에 없다.》

형의 말처럼 믿는 길밖에 없었다. 형을 여기로 보냈다는 그 사람이 리승만편에 있는 사람이라면 폭동계획은 벌써 《헌병》대에 알려졌을것이고 강태무나 표무원이 지금껏 무사할리가 없는것이였던것이다. 강태무는 민족의 운명을 진정으로 걱정하시는 김일성장군님의 위대하고 웅심깊은 사상에 공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표무원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김일성장군님의 참다운 애국애족의 사상을 받들어 동족상쟁을 막고 조국의 통일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할 새로운 결심을 가다듬었고 그 결심을 실천할수 있는 길이 과연 무엇이겠는가를 생각하며 모대겨왔다.

이런 찰나에 표무원이 들이닥쳐 화약내가 밴 전쟁의 선풍을 불어넣고 사라진것이였다.

끝내 강태무는 자기가 《자고》있어야 한다는것을 까맣게 잊고 벌떡 일어나앉았다.

무엇이든 해야 한다. 전쟁이 코밑에 닥쳐왔는데 속수무책으로 가만 앉아있을수가 없다.

강태무는 어느새 따라일어난 안해가 자기를 찬찬히 지켜보고있다는것도 모르고 부시럭거리며 옷을 찾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춘천에 가서 표무원과 다시 만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겠는지 의논하자는것이였다.

춘천에 이른 강태무는 곧장 표무원의 집으로 향했다. 거기서 근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표무원을 기다렸다.

두사람은 이날 온종일 문을 닫아걸고 앞으로의 일을 론의했다.

오랜 론의끝에 마침내 결단을 내려 대대전원을 통채로 이끌고 북으로 의거해들어가자는것으로 합의를 이루었다. 물론 뜻이 맞는 몇몇사람들끼리 월북을 시도하는것보다 수백명이나 되는 대대전원을 이끌고 38도선을 넘는것은 어느 모로 보나 위험하였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현재의 자신들의 위치에서 미제와 괴뢰들에게 큰 타격을 주어 전쟁을 일으킬 엄두를 못 내게 할수 있었다. 38연선의 전연지대에서 두개 대대의 장병들이 통채로 의거를 단행한다면 미국과 리승만역적에게 안겨주는 충격파가 간단치 않을것임에 틀림없었다. 강태무도 그렇고 표무원도 그렇고 김일성장군님께서 내세우신 평화통일의지에 자그마한 보탬이라도 할수 있는 길은 이 길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계획을 따지고 또 따져보고나서 이것이야말로 해볼만 한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강태무는 그러지 않아도 대대장병들의 대부분이 38도선너머의 이북소식에 귀기울이며 싱숭생숭해있는 참인데 그들까지 모두 참다운 애국의 길로 인도하는것이 대대장으로서의 자기의 본분이라고도 생각되였다.

이날부터 강태무는 며칠동안 이북경비대의 동향정찰이라는 구실로 일선참호에 나가살다싶이 하며 38도선부근의 지형지물들을 지도와 꼼꼼히 대조하였다. 강태무는 일단 의거를 단행할 때에 택해야 할 로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머리속에 단단히 새겨넣었다.

5월달에 들어서면서 38도선부근의 괴뢰군부대들은 림전태세준비로 더 볶이였다.

일선참호들의 진지보수작업도 많이 제기되였다.

강태무는 이것을 절호의 기회로 보았던것이다. 그래서 표무원과도 이미 거사날자를 확정하였고 오늘 그 실행을 위하여 대대를 불의에 집합시켰던것이다.

강태무는 피우던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그 꽁초를 군화발로 비벼버렸다.

《대대를 출발시키라!》

이미 강태무는 표무원에게 사전에 약속했던대로 당장 기동을 시작할데 대한 련락을 보냈었다.

38도선을 향해 대대를 출발시킨 강태무는 병영밖을 나와 차를 달려 집으로 향했다. 음침한 달빛이 강태무가 가는 길을 죽어라고 앞지르며 따라왔다. 집까지 가는 5분도 안되는 그 길에서 별의별 구정물과 날카로운 잔돌따위들이 튀여올라 시창을 부지런히 때렸다.

인주는 한밤중에 선뜩한 기운을 풍기며 느닷없이 들이닥친 남편을 잠옷바람으로 일어나 멍하니 쳐다볼뿐이였다. 달빛이 흘러드는 뙤창을 통해 처녀시절의 애모쁨과 싱싱한 향기가 그대로 흘러넘치는 안해의 하얀 얼굴이 어슴푸레 안겨들었다. 사랑하는 녀인과 1년가까이 살아오건만 그를 마주보기가 이처럼 딱하고 가슴저민 때는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 동창생처녀의 깨끗한 사랑을 지켜준데 대한 사의를 표하며 가볍게 고개를 숙여보이고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어디도 가지 않은채 오도카니 서있던 처녀…

강태무의 가슴속에 순결과 미덕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그때의 그 순박하고 깨끗하고 단아했던 처녀가 지금 어떤 운명의 회오리에 말려들었는지도 모르고 겁먹은 눈길로 바라보고있다.

그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는가? 안해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있다. 남편이 무엇인가 무서운것을 계획하고있다는것을 눈치챈 그날부터 안해는 남편이 자기를 버리지 않도록, 버릴수 없도록 필사적으로 붙안고있었다. 그러니 이제 곧 헤여져야 한다는데 대하여 입이 닳도록 설복하고 리해시키고 용서를 빌어도 그에게 가해질 정신적타격의 백분의 하나라도 씻어줄수 있겠는가?

시간… 시간이 흐르고있었다. 피같은 한초한초가,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안은 한초한초가 흐르고있었다.

《난 떠나려고 하오. 혹시 이번 길이 오래 걸릴수도 있는데 만일을 생각해서 이제 당장 짐을 꾸려가지고 친정으로 떠나야겠소.》

《…》

《내 말 듣소?》

《…》

녀인은 앙탈을 부리지 않았다. 어디로 떠나는가 묻지도 않았고 울며 가지 말라고 매달리지도 않았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짐작하고 혼자 묵새기고있었다. 입안에 가득찬 무엇인가를 씹어삼키느라 옥문 입술사이로 피방울이 점점이 내배고있었다. 강태무는 더는 보고있을수 없었다. 그러다가는 자신이 먼저 미쳐버릴것 같았다.

함께 가고싶었다. 그런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생사를 기약할수 없는 길이다. 더우기 수백명의 대오를 이끌고 가야 하는 길이다. 그 많은 장병들의 앞장에서 저 하나의 처만을 데리고 떠날수는 없었다. 혼자 가는 길이였다면 안해도 가산까지도 다 등에 지고 산도 강도 넘으며 38도선의 철조망도 얼마든지 뚫고나갈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저 하나의 리기심을 위한 떳떳치 못한 길일것이다.

안해여, 믿어달라! 기다려달라! 우리는 꼭 다시 돌아오리라.

강태무는 정다운 집과 꽃밭과 흰저고리고름이 바람에 나붓기는 안해의 작고도 섬약한 형체가 점점 멀어져가는것을 달리는 찌프차우에 앉아 오래도록 돌아보았다. 강심을 먹고 떠나는 길이건만 설음같은것이 걷잡을수 없이 울컥 치밀어올라 주먹으로 입술을 모질게 눌러놓았다.

몸이 제것같지 않게 별로 무거웠고 그런가 하면 이상하리만치 가볍게도 느껴졌다. 자기를 태운 자동차가 땅우를 달리는것이 아니라 하늘우에서 면바로 인주가 있는 집을 향해 추락하고있는것 같았다. 표무원도 지금쯤 사랑하는 가족과 헤여지는 이런 모진 아픔을 겪고있을것이다.

잠시후 강태무는 대대장의 긴급기동명령을 받고 소리없이 움직이고있는 자기 대대를 따라잡았다.

전선동부에서 강태무와 표무원의 대대가 강원도 린제와 화천방면으로 각기 기동을 하고있던 그 시각 김석원이 지휘하는 괴뢰1려단의 기본전투집단이 송악산의 경비대초소에 대한 불의의 공격을 개시하였다. 매국적인 《5. 10단독선거》 1돐을 기념한다고 하면서 적들이 벌린 이 공격작전으로 하여 우리 조국의 력사에서 제2차 송악산전투로 알려진 피의 결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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