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 회)

 

제 5 장

18

 

레닌그라드, 끼로브, 워로쉴로브… 지나가는 많은 도시들이 전쟁만 없었더라면 그 이름을 어떻게 불렀을가 하는 의혹이 들 정도로 10월혁명과 공민전쟁, 2차 세계대전시기 사회주의쏘련을 위해 싸운 영웅들의 이름으로 불리우고있었다.

세계륙지의 6분의 1을 차지하는 광활한 령토는 자기를 위해 고귀한 삶을 바친 영웅들을 그렇게 품에 안고 영원한 삶을 노래하며 드넓게 펼쳐져있었다.

그 한가운데로 시원하게 뻗어나간 철길을 따라 렬차는 고속으로 달리고있었다.

지난 2월 하순부터 진행하신 40여일간의 쏘련방문을 마치고 귀국하시는 김일성동지를 모신 특별렬차였다.

이제는 이미 밤이 이슥해져 고르로운 렬차의 흔들림과 함께 미쳐오는 차바퀴소리만이 도간도간 울리는데 그이의 부르심을 받은 부수상 홍명희가 부관의 뒤를 따라 조용히 들어섰다.

홍명희는 언젠가 그이께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얄팍한 솜두루마기차림으로 다니는 자기를 보시고 손수 벗어주시였던 목도리를 두르고 김정숙동지께서 장군님께 드리려고 마련했던 천으로 인민군피복공장에 의뢰하여 지어주신 락타직외투를 입고있었다.

모스크바를 눈앞에 보던 도이췰란드군에게 치명적인 첫 타격을 가했던 혹독한 로씨야의 추위를 그는 그것으로 이겨내며 김일성동지를 모시고 먼길을 다녀오고있는것이였다.

한밤중에 부르시는것으로 보아 무슨 급한 일이 생겼다고 짐작했는지 홍명희의 기색은 몹시 긴장되여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도 홍명희를 긴장하여 바라보시였는데 그 리유는 전혀 다른것이였다.

《웬일입니까. 차칸이 춥지는 않은것 같은데 혹시 감기에 드신것은 아닙니까?》

방한장치가 충분히 되여있는 차칸에서 외투에 목도리까지 두르고있는 홍명희의 차림새가 그이의 놀라움을 자아냈던것이다.

《아닙니다. 이건 그저 저…》

홍명희는 대답을 못 드리고 갑자르다가 어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의 심정이 뒤늦게야 헤아려져 《부수상선생도 참…》하며 그에게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키시였다.

홍명희는 장군님과 김정숙동지께서 주신 목도리며 외투를 갑옷처럼 귀히 여기며 차칸안에서도 벗어놓고싶지 않아했던것이다. 마치 그것을 벗어놓는것이 몸안에서 심장을 뽑아내놓는 일처럼 여겨졌던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홍명희가 자리에 앉기를 기다려 별다른 일은 없다고, 그저 조용할 때 함께 한담이나 나누자고 불렀다고 하시였다.

《이번에 그만하면 짧지 않은 기간을 쏘련에서 체류한셈인데 감상이 어떻습니까?》

《글쎄, 어떻다고 해야 할지…》

홍명희는 그이께서 정말 한담이나 나누자고 이 밤중에 자기를 부르신것은 아닐것이라 생각하는지 인차 대답을 올리지 못했다.

《제 생각을 한마디로 말씀드린다면 쏘련사람들도 아직은 퍽 어렵구나 하는것이였습니다.》

《네―》

김일성동지께서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시였다.

《역시 부수상선생의 보는 눈이 다르구만요. 옳습니다. 2차대전때 쏘련이 거둔 정치적성과는 거대하지만 경제적으로는 그와 전혀 딴판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홍명희에게 담배를 권하시고는 차창가에 드리운 창가림을 약간 제끼시고 밤장막이 드리운 로씨야의 대지를 한동안 부감하시였다.

사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번 쏘련방문과정에 많은것을 느끼시였는데 그중의 하나가 우리의 힘으로 반드시 나라의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는것이였다. 모스크바에서 필요한 협정들을 체결하고 쓰딸린까지 만난후 귀로에 오르신 지금 그이께서 한밤중에도 불구하고 홍명희를 부르신것은 이때문이였다. 모스크바에서 보낸 짧지 않은 체류의 나날이 지금도 그이의 눈앞에 생생히 떠오르고있었다.

그가운데서도 인상적인것은 쓰딸린이 김일성동지의 쏘련방문을 축하하여 차린 연회에서 있었던 일들이였다.

그날 김일성동지의 곁에 앉은 쓰딸린은 연회시작부터 시종 미소를 머금고 그이의 잔에 자기가 직접 술을 부어드리군 하였다.

그는 딱딱하고 공식적인 정치문제들이 토의되던 전번 회견때와는 달리 생활적인 분위기에 물젖어 자기의 지나온 시절에 있었던 가지가지 이야기들을 늘어놓았었다.

《짜리찐… 짜리찐에서 전투할 때 일인데 그때 적들의 병력이란게 우리와 비할수 없으리만치 우세했었지요. 아마 군사가로서 내가 두각을 나타낸것이 그 짜리찐전투에서부터였을겁니다.》

정준택이나 홍명희와 같은 우리 대표단 성원들은 물론 쓰띠꼬브와 같은 쏘련사람들도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해하였다. 쓰딸린이 이날 저녁처럼 말을 많이 하는것을 처음 보았고 그처럼 다감해진것을 처음 보는 그들이였던것이다.

아닌게아니라 쓰딸린은 시적인 정서에 푹 잠겨 김일성동지의 잔에 또다시 술을 부어드리였다. 그자신도 자기가 오늘 저녁처럼 말을 많이 해본적이 없다는것을 인식하고있는듯 했다. 김일성동지의 곁에 앉으니 마음이 절로 흥그러워지게 된다고 그자신의 입으로 고백하였던것이다.

《왜 그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건 우리가 공동의 목적과 공동의 리념을 가지고 자기 인민의 행복을 위해 투쟁하는 정치가들이기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사람이란 사상과 뜻을 같이하는 벗을 만날 때가 제일 기쁜 법입니다. 그래서 저 역시 쓰딸린동지와 이렇게 마주앉아있는것이 기쁘고 즐거운 일로 생각됩니다.》

쓰딸린이 두팔을 벌려보이며 소리내여 웃었다.

《그렇게 생각한다니 감사합니다. 김일성동지의 벗으로 불리운다는것은 쉽지 않은 행운을 지니는것으로 되지요. 그런 의미에서 난 자신을 행운아라고 부를수 있습니다.》

확실히 이날의 쓰딸린은 전혀 쓰딸린답지 않았다.

초대연이 시작된지도 시간은 퍼그나 흘렀다. 사실 쓰딸린에게는 이만한 시간동안 한자리에 앉아있는다는것자체가 기적이였다. 그 어느 나라 대통령과의 상봉이든 두시간은커녕 20분도 넘기지 않던 쓰딸린이였다.

그런데 그는 김일성동지의 손목을 꼭 잡아 끌어당기며 이번에는 함께 영화구경을 하지 않겠는가고 하는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놀라시며 얼결에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시였다. 이제 영화를 또 보느라면 새벽이 될것이다.

《피곤하십니까?》하고 쓰딸린이 미소를 허물지 않고 물었다.

《나야 젊었는데 피곤을 느끼겠습니까. 나보다도 쓰딸린동지의 건강이 걱정됩니다.》

《예― 난 이젠 확실히 늙었습니다. 의사들은 날더러 담배도 끊고 휴식시간도 지키라고 자꾸만 권하지요. 많은 경우 난 그들의 요구에 복종하군 합니다. 하지만 오늘은 김일성동지와 인차 헤여지고싶지 않군요. 김일성동지와 함께 있으면 나 역시 젊어지는것 같단 말입니다. 그러니 잠을 좀 설치고 휴식을 못한다해도 의사들을 그렇게 걱정시키지 않으리라 봅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니 쓰딸린동지의 제의를 거절할 다른 구실을 더 찾을수 없군요.》

김일성동지께서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영화가 끝났을 때에는 이미 새벽 2시가 가까와오고있었다. 그런데도 쓰딸린의 얼굴에서는 조금도 피로한 빛을 찾아볼수 없었다.

세계의 운명을 걷어안은 령도자들의 걸음이 크레믈리의 정원길에 천천히 자국을 새겨나가고있었다.

달빛이 내리쏟아지고 크레믈리의 뾰족지붕들마다에서 휘황한 빛이 타번지고있을뿐 그외의 다른 모든것들은 꿈에 잠겨있었다. 군데군데 서있는 정원의 외등빛이 한덩이가 되다싶이한 두 그림자를 바닥에 드리워놓고 호기심을 한껏 도사린채 지켜보고있었다. 고요와 희미한 빛의 세계, 꿈속에서처럼 뻗어나간 포석길… 쓰딸린은 그 포석길을 짚으며 이따금씩 그이의 부축도 무랍없이 받았다.

《그래 우리 동무들과의 회견들은 다 잘되였습니까?》하고 쓰딸린이 그이의 곁에 더 바투 붙어서며 물었다.

《잘되였습니다.》

《우리 쏘련정부는 귀측과의 친선우호관계에 커다란 의의를 부여하고있습니다. 앞으로 호상간의 신뢰와 우의를 더 두터이 해나가기를 기대합니다. 난 우리 두 나라사이의 관계가 오늘만이 아니라 또 우리 대에만이 아니라 먼 후날 우리 다음세대에 가서도 변함없을 그런 공고한 관계가 되기를 바랍니다. 솔직히 이제 내가 김일성동지와 만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 기회가 또 차례지겠습니까.》

《쓰딸린동지,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쓰딸린은 약간 쓸쓸한 웃음을 지으며 몇걸음 앞서 걸어나갔다. 그의 뒤를 따라서시며 김일성동지께서는 오늘따라 쓰딸린이 서방세계가 공포에 떠는 거대한 초대국의 당총비서이며 내각수상이라는 직함에서 벗어난, 어느 꼴호즈농촌에서 흔히 볼수 있는 평범한 로인이 되여버린 리유를 짐작해보려고 애쓰시였다.

《그래 김일성동지 보기엔 이 쓰딸린이 이젠 늙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글쎄, 뭐라고 해야 할지. … 그렇게 생각한적은 없지만 쓰딸린동지가 오늘은 왜서인지 늙어보이려고 애쓰는것 같습니다.》

그이의 솔직하신 답변에 쓰딸린은 손을 내저었다.

《아니, 김일성동지의 곁에 있으니 내 스스로 늙어지는것입니다. 솔직히 난 이젠 늙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전쟁덕분에 우리 쏘련도 많이 늙었습니다. 전쟁… 이 전쟁의 후과가 앞으로 어느만큼 더 오래동안 가겠는지 또 어떤 전쟁이 새롭게 닥쳐오겠는지는 누구도 예측할수 없습니다. 난 지금 같은 군사가로서 김일성동지와 이야기하고있는것입니다. 다른 나라 인민들을 노예화하려고 하는 제국주의강권정치가 존재하는 한 이 땅에서 전쟁의 위협은 사라지지 않을것입니다. 쏘련인민에게 있어서 2천만이라는 수자가 전쟁희생자를 가리키는 마지막수자가 되리라고 장담할수 있는 근거는 아직 없습니다.》

물론 그이께서도 이 지구상에서 전쟁의 위협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해보신적은 한번도 없으시였고 또 그렇게 생각하실수도 없었다. 그러나 쓰딸린이 무엇때문에 이런 말을 새삼스럽게 하는지 알수 없으시였다. 또 어째서 쓰딸린이 이전같지 않게 자기의 로년과 쏘련의 힘겨움을 상대방에게 인식시키려 하는지 그 리유도 아직은 아리숭하시였다.

쓰딸린의 기색을 보아서는 그가 하는 모든 이야기가 그 어떤 외교적인 분석의 자로 재여볼 필요가 없는 진심의 목소리라는것이 석연하게 알렸다.

《그래 김일성동지 보기엔 당면하여 지금 유라시아대륙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는데서 가장 관건적인 고리라고 볼수 있는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어떻게 보면 명백한것 같으면서도 정작 대답을 찾자고 하면 쉽지 않은 질문이였다. 그 대답은 원자탄이나 미싸일, 신형땅크의 개발과 같은 군사적인 측면에서 찾을수도 있고 파괴된 건물을 일떠세우고 새 유전을 개발하는것과 같은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찾을수 있을것이며 새로 사회주의길에 들어선 여러 형제국가들의 단결과 같은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찾을수 있는 문제였다.

이런 문제에 대하여서는 쓰딸린이 이 깊은 밤에 김일성동지를 부디 지체시키며 질문하지 않아도 몰로또브, 베리야 등 한다하는 자기의 측근정치가들과 충분한 협의를 진행할수 있고 일정한 결론도 도출해낼수 있는것이였다. 그래서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신에게서 쓰딸린이 꼭 들어보고싶어하는 대답이 어떤것이겠는가를 잠시동안 생각해보시였다.

물론 쏘련을 비롯하여 지구의 동반구에 자리잡은 여러 민주진영국가들이 정치, 군사, 경제적인 측면에서 한시바삐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는것도 대륙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는 필수적인 요인으로 되고있다는것은 더 따져볼 필요도 없는 명백한 사실이였다.

그러나 김일성동지께서는 문제를 그런 범일반적인 측면에서 분석하고싶지 않으시였다. 쓰딸린이 《당면하여》라고 강조하여 문의한것은 그런 일반적인 개념이나 알자는 목적에서만이 아닐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유라시아대륙의 길목에 위치하고있는 조선반도정세를 놓고 이야기하는것이 쓰딸린의 질문에 대한 가장 정확한 대답일것이라고 생각하시였다.

《제 보기에 지금 유라시아대륙의 평화와 안정에서 가장 관건적인 고리라고 할수 있는것은 조선반도의 통일문제입니다.》

《…》

쓰딸린은 아무러한 표정의 변화도 없이 그이의 말씀을 묵묵히 들었다. 그래서 어찌보면 전혀 듣는것 같지 않았지만 눈귀에 늘어나는 실오리같은 주름살들을 통해 그가 김일성동지의 말씀을 심중하게 새겨듣고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신이 내린 결론에 대한 근거를 피력해나가시였다.

《오늘 유라시아대륙의 민주진영국가들을 위협하는 기본주적은 미국과 그를 추종하는 서방제국주의렬강들입니다. 미국은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심을 품고 일제가 조선을 강점하기 이전부터 벌써 아시아에로의 침략의 길을 닦아왔습니다. 19세기 중엽에 우리 나라에서 있었던 〈셔먼〉호, 〈쉐난도아〉호사건들이 그 대표적인 실례라고 볼수 있습니다. 2차대전이 끝나고 전세계적범위에서 강력한 민주진영이 형성된 오늘날에 와서 미국의 야망은 오히려 더 증가되였습니다. 그래서 서방자본주의국가들로 〈나토〉라는 군사쁠럭을 무어내여 유럽쪽에서 쏘련을 공격하려 하고있으며 태평양방면을 통해서 유라시아대륙으로 뚫고들어갈 교두보를 확보하려 하고있습니다. 그 교두보가 바로 조선입니다. 조선에서 내전이 일어나면 미국은 그를 구실로 이 전쟁에 반드시 참전할것이며 그렇게 되면 장개석도당과 힘겨운 전쟁을 치르고있는 중국공산당은 물론 쏘련의 지역안정에도 커다란 위험이 조성되게 될것입니다. 미국은 바로 이것을 위해 오래전부터 손때묻혀 키워온 리승만역도를 내세움으로써 조선의 분렬을 더욱더 조장하고있는것입니다. 분렬… 분렬된 땅은 내전이라는 시한탄을 항시적으로 품고있는 법입니다. 이 시한탄을 제거하자면 반드시 조선반도가 하나의 민족으로서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통일되여야 합니다. 때문에 오늘날 유라시아대륙의 평화와 안전에서 기본고리로 되는것이 바로 조선에서의 통일문제라고 생각하는것입니다.》

《그렇다면…》

쓰딸린은 김일성동지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도 한참이나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김일성동지는 앞으로 조선의 통일을 어떻게 이룩하실 생각입니까?》

《나는 이미전부터 나라의 통일을 민족자체의 힘으로 외세의 간섭이 없이 자주적으로 또 평화적으로 이루어야 한다는것을 시종일관 주장해왔고 앞으로도 그럴것입니다. 그러자면 정견과 신앙, 당파에 관계없이 조국통일을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이라면 리념이나 주의주장을 초월하여 하나로 굳게 단결하여야 합니다. 나는 요즘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통일을 향해 가는 지름길을 열자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머리속을 늘 떠나지 않고있습니다. 허… 이거 내가 지나치게 제 말만 제 말이라고 하는것 같군요. 어떻습니까, 전쟁과 평화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내놓아 유명해진 레브 똘스또이도 살아있다면 나의 이 고심을 리해하고 공감하리라고 생각하는데 쓰딸린동지의 견해는 어떤지…》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신의 론리와 주장에 심취되신 속에서도 세계를 움직인다는 거대한 자부심을 안고있는 쓰딸린의 자존심을 존중하여 우정 반롱조의 질문으로 말씀의 끝을 맺으시였다.

쓰딸린은 진중한 기색으로 달빛과 외등빛이 버무려진 포석길을 한동안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숙이고있는 그의 표정이 어떤지는 전혀 알길이 없으시였다. 잠시후 그는 커다란 덮개가 달린 양복웃주머니에서 대통을 꺼내들며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피여오르고있었다.

《만약 레브 똘스또이가 살아있었다면 김일성동지께 허리를 굽혀 인사를 드렸을것입니다. 백발의 늙은 작가가 바라던 평화로운 미래를 김일성동지께서 건설해주시기를 부탁했을것입니다. 사실 김일성동지에겐 그만한 능력이 있습니다. 난 이것을 확신합니다.》

《허… 젊은 사람을 앞에 놓고 추어주니 그건 전혀 쓰딸린동지답지 않습니다.》하고 김일성동지께서는 짐짓 서운하신 기색으로 돌아서려 하시였다.

그 순간 대통을 쥔 쓰딸린의 손이 허공을 한번 힘있게 그었다. 중대한 결심을 채택할 때마다 따라서는 습관적인 동작이였다.

김일성동지, 이건 롱담이 아닙니다. 이제 세계의 평화와 안전은 당신의 어깨우에 무겁게 실려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세계의 운명을 인계인수하자는 엄숙한 제기인듯 했다.

쓰딸린이 자신의 로년을 새삼스럽게 강조하며 시작한 이야기의 기본 취지를 이제야 비로소 드러내놓은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마음속에 둔중한 충격이 가해지는듯 하시였다. 모스크바로 오는 차창밖으로 지나쳤던 로씨야의 상처입은 수림과 가설건물들, 피로에 지친 사람들에 대하여 상기하시였다. 인류사상 가장 가혹했던 전쟁으로 하여 참혹하게 파괴된 경제를 추세우느라 가쁜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전진하고있는 쏘련의 모습이였다.

이러한 중하를 한몸에 걸메고있는 쓰딸린은 갓 창건된 공화국을 이끌고나가고계시는 김일성동지를 더 도와줄수 없는것을 아쉬워하면서 한편으로는 김일성동지께서 자신의 힘만으로도 나라의 통일위업을 이룩할 희세의 활로를 펼쳐놓을수 있으리라는것을 확신하고있는것이였다.

사실상 지금 조선은 쏘련은 물론 유라시아대륙의 방파제와 같은 위치에 있었다. 조선이라는 방파제가 무너져나간다면 세계는 또다시 전쟁의 참화에 말려들것이며 미국의 원자탄독점이 지속되고있는 오늘의 이 시대에 2천만이나 5천만정도가 아닌, 지구의 생존까지도 위태로울 참혹한 희생을 가져올것이였다. 김일성동지께서 방금 말씀하신것처럼 서유럽에서는 미국의 조종밑에 동방의 민주진영국가들을 겨냥한 침략적인 군사쁠럭인 《북대서양조약기구》창설움직임이 쏘련정부의 강력한 항의와 규탄에도 불구하고 더 활발히 벌어지고있는데 가까운 앞날에 세칭 《나토》라고 하는 이 군사기구가 정식으로 발족될것이였다. 이 모든 움직임을 결코 방관할수 없었던 쓰딸린이기에 새벽이 되도록 김일성동지와 함께 거닐며 이런 의미심장한 부탁을 하고있는것이였다.

《부탁합니다, 김일성동지. 당신에게 이 세계의 평화를 부탁합니다.》

말을 많이 하는 법이 없어 그 내심을 전혀 들여다볼수 없는 《음험한 정치가》로 서방세계가 일컫는 쓰딸린의 입에서 재삼 흘러나오는 이 한마디는 장군님의 심중을 자못 무겁게 두드렸다. …

대륙을 꽁꽁 얼구고있는 야밤의 공기를 뒤흔들며 렬차의 기적소리가 길게 울려퍼진다.

홍명희는 여전히 그이의 곁에 앉아 그이의 사색깊은 모습을 우러르고있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에게 쓰딸린과 나누었던 이야기의 세부까지 빼놓지 않고 다 들려주고계시였다.

부관이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와 워로쉴로브역에 거의 다 도착했다고 알려드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차창쪽으로 얼핏 시선을 보내시였다가 홍명희의 손을 더듬어잡으시였다.

《부수상선생, 좀 힘들구만요.》하고 그이께서는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터놓으시였다. 그것은 먼 려독에서 오는 육체적피로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자신의 어깨에 짊어진 많은 사람들의 운명과 미래를 념려하여 하시는 뜨겁고도 절절한 호소이시였다.

《생각하면 기가 막히고 분한 일입니다.》

그이께서는 홍명희의 손을 잡았던 불덩이처럼 달아오른 자신의 손을 몹시도 힘들게 탁자우로 옮겨놓으시였다. 거의 무의식적인 동작으로 탁자우에 놓여있던 철필대를 집어드시였다.

《우리는 지난해 나라의 영구분렬을 막고 동족상쟁의 근원을 가셔버리기 위해 품을 들여 남북련석회의를 실현시켰고 민족자체의 힘으로 전조선적인 단일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데 대하여 남북의 정치인들이 의견을 합치시켰댔습니다. 그런데 리승만도당은 끝끝내 〈5. 10단독선거〉를 통하여 남조선에서 단독〈정부〉를 수립함으로써 평양련석회의 정신에 도전해나섰습니다. 그리고 또 오늘은 그 단독〈정부〉를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해 미국의 손발이 되여 북침전쟁열에 들떠있습니다. 정말 기가 막히고 분한 일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심호흡을 크게 하시였다가 불을 토하듯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래 우리가 지금 38도선의 군용지도를 펼쳐놓고앉아 갑론을박할 때입니까? 2차대전이 끝난 후 온 세계가 희망에 부푼 가슴을 안고 파괴된 경제복구와 건설에 힘을 집중하고있는데 우리는 지금 3년간의 신고끝에 가장 참다운 민주주의적인 나라를 세우고도 알곡증산이나 강철생산량을 두고 고심하는것이 아니라 38도선의 총포성과 침략자들의 분렬리간책동때문에 신고하고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그래야 하는 나라인가.》

김일성동지께서는 격하게 부르짖으시였다. 그이의 손에 잡혀있던 철필대가 부르르 떨렸다.

《오랜 세월 대국들의 틈에 끼여 봉건의 질곡과 식민지노예의 운명을 멍에처럼 걸머지고 살아온 인민입니다. 사대와 쇄국이 가져다준 락후한 터밭에서 보리밥 한술마저 제대로 먹지 못하고 지지리도 고생하며 살아온 조선이고 조선의 인민입니다. 가장 못사는 나라, 가장 헐벗은 나라, 현대문명의 대렬에서 뒤떨어져 남의 동정보다는 오히려 비웃음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20세기의 전반기에 들어섰던 나라가 바로 우리 조선입니다. 해방이 되여 남부럽지 않은 새 제도도 세우고 경제도 복구하여 마음놓고 잘살아볼만 하니 이젠 또 미국이 뛰여들어 나라를 둘로 갈라놓아 남들이 안 겪는 고통과 희생을 당하고있습니다. 더 격분하게 되는것은 한시바삐 나라를 남부럽지 않게 일떠세울 생각보다는 일개인의 권세욕이나 주의주장때문에 분렬을 고취하고 전란을 가져올 음모를 꾸미는 친미사대주의자들의 책동입니다. 도대체 분렬된 나라의 운명을 앞에 두고 개인의 권세욕은 뭐고 주의주장은 또 뭐란 말입니까. 정말 안타깝고 분한 일입니다.》

홍명희에게 하소연하시듯 말씀하시는 김일성동지의 안광에는 말할수 없는 괴로움과 진통이 비껴있었다.

홍명희는 그이의 괴로움을 다소나마 짐작할수 있었으며 그로 하여 그이의 괴로움속에 자신도 함께 잠겨들고있었다.

방금 나라를 세우고 경제건설을 본때있게 내밀어 인민생활을 부쩍 추세워야 하겠는데 민족분렬의 검은구름장들이 갓 창건된 공화국의 하늘가를 메우고있는것이다.

홍명희는 그이께 다문 몇마디라도 위로와 안심이 될수 있는 말씀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형편에서 그런 말마디들을 골라낼수 있다는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다. 나라의 운명을 한몸에 안고 괴로와하시는 그이께 휴식하셔야겠다는 권고도 차마 드릴수가 없었다.

《통일을… 어떻게 해서나 분렬된 나라의 통일을 이룩해야 합니다. 쓰딸린동지와 만난 후 난 우리 나라뿐아니라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민족의 통일을 이룩하여 조선반도의 긴장상태를 해소해야 한다는것을 새삼스럽게 더 절감하였습니다.》

지정학적으로 놓고볼 때 세계대양면적의 약 50프로를 차지하는 세계에서 가장 넓고 깊은 태평양을 통해 유라시아대륙에 들어서는 첫 기슭에 자리잡고있는 조선은 지금 정치전략적견지에서도 유라시아대륙의 정세를 좌우하는 기슭으로, 관문으로 되고있는것이였다. 이 기슭이 전쟁의 파도에 휘말려드는가 마는가에 따라 전체 대륙의 미래가 좌우될수도 있는것이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나라에 조성되고있는 현실태를 랭정하게 돌이켜보시였다. 북과 남이 갈라져있고 그러다나니 사람들도 정당들도 단체들도 갈라져있다. 그들모두를 조국통일이라는 하나의 지향으로 결속시키기에는 매우 불리한 조건이였다.

북반부지역의 실태만 보아도 이런저런 결점들이 있었다. 해주사건때 방학세가 석반월에 대한 불신의 근거를 두고 《더 중요하게는》 부모들이 아직도 교회당에 례배보러 다니는 예수쟁이집이였다고 말하던 일이 떠오르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이것이 비단 방학세 한사람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라는것을 알고계시였다. 그리고 이러한 편견적인 태도가 종교인들에게뿐만이 아니라 강영창, 최만현, 정준택같이 당이 아끼고 내세우는 자산계급출신의 지식인들이나 해방후 이런저런 기회와 경로를 통하여 남쪽에서 들어온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돌려지고있다는것을 느끼시였다. 간고하고 복잡했던 조선혁명의 특수성으로 하여 산생된 이러한 불신의 감정들을 단결과 단합이라는 하나의 위대한 목적으로 용해시키기 위해서도 무엇인가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하시였다.

《이제는 북과 남에 존재하는 민전조직들을 하나로 결속시켜야 할 때가 된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적인 통일전선체로서 북과 남은 물론 해외의 정당, 사회단체들까지 포괄하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이 결성되여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쿵!― 하고 가슴을 치는 그 어떤 거대한 힘을 느끼며 홍명희는 그이께서 말씀하신 그 이름을 입속으로 외워보았다. 분렬된 민족의 운명을 두고 누구보다 가슴아파하시며 잠 못 이루고 고심하시는 그이의 번뇌와 열망이 그 부름속에 그대로 깃들어있는것이다.

홍명희는 벙어리가 된듯 말이 없었다. 그저 금시에 눈물이 쏟아질듯한 격정에 잠긴 눈길로 그이를 우러러보기만 하였다.

《그렇습니다. 북남의 민전을 합쳐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가 그저 미군 나가라, 리승만 퇴진하라고 규탄하는 식의 피동적인 방법에만 매달리여서는 아무런 성과도 거둘수 없습니다. 나라의 통일을 전쟁이 아니라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룩하기 위하여서는 우리가 주동적으로 여러가지 대책들과 조치들을 취해야 하는데 그중의 하나가 남북에 갈라져 존재하는 민전을 합치는것이라고 봅니다.》

홍명희는 차츰 사색짙은 얼굴의 실주름들을 미간에 모아잡으며 그이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되새겨보았다.

《현재로서는 북과 남에 서로 다른 사회제도가 존재하는데다가 이곳의 기본정치단체라고 볼수 있는 민전조직들도 북과 남에 따로따로 조직되여있고 이 조직들을 선두에서 이끌어야 할 로동당도 북로당과 남로당으로 갈라져있는데 그러다나니 북남의 정치단체들이 합심하지 못하고있고 또 공화국북반부내에서도 이런저런 불신의 감정과 마찰이 일어나군 합니다. 이와 같은 편향을 없애고 북남을 통일할수 있는 든든한 기틀을 마련하는 최선의 방도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을 결성하는것이라고 봅니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을 결성하는것은 하루아침에 결단 낼 일이 아니므로 품을 들여 준비를 철저히 갖추고있다가 정세가 요구할 때 그 결성을 선포하여 미군의 남조선주둔과 리승만의 전쟁도발행위에 결정적인 반격을 가하자는것입니다.》

갑자기 홍명희의 입에서는 급작스러운 줄기침이 터져나왔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서둘러 홍명희의 가느다란 손목을 잡아보시였다.

《손이 차군요. 감기에 걸린게 아닙니까.》

《아, 아닙니다.》

홍명희는 벅찬 흥분에 겨워 벌떡 일어서려다가 그이의 손에 잡혀 다시 주저앉았다.

《방금 내가 이야기한 문제들이 너무 뜻밖이라고 생각된다면 생각을 좀 더 깊이 해보시고 후에 의견을 제기해주어도 됩니다.》

홍명희는 그이의 말씀을 전혀 듣지 못한듯 했다. 이후의 다른 그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고 오직 자기자신이 해야 할 이야기, 하고싶은 이야기만이 맴도는지 평소에 비해 엄청나게 큰소리로 덤벼치며 말씀올렸다.

장군님뜻을 알겠습니다. 저는 적극 지지합니다. 장군님께서 벌써 북남에 조성된 현실은 물론 린근나라들의 형편까지도 다 통찰하고 내리신 결심인데 제게 무슨 이의가 있겠습니까?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결성이야말로 둘로 되여가는 우리 민족에게 소생의 출로를 열어주는 명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장군님, 저는 더 무엇이라 올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저 장군님의 로고와 심혈때문에… 그것을 덜어드리지 못하는 제자신이 민망스럽기만 합니다. 이번 조국전선결성사업과 관련되는 문제는 제가 전적으로 도맡아 처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우선 남조선에 있는 여러 민주인사들에게 부수상선생이 편지를 써서 우리의 조국전선결성의 취지를 먼저 알려드립시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르로운 렬차의 진동에 몸을 맡기신 김일성동지께서는 홍명희가 아니라 그가 소중히 어루쓸고있는 외투자락이며 육신은 물론 마음까지도 덥히고있는듯 언제나 품에 지니고있는 회색목도리를 눈여겨보고계시였다.

그의 절절한 마음이 그 소박한 옷차림에 모두 배여있었다.

렬차의 기적소리가 높아지고있었다. 차가 워로쉴로브역에 들어서고있었다. 이곳에서 비행기를 타고 조국으로 돌아가야 하시였다. 사랑하는 인민이 있고 귀중한 동지들이 있는 조국, 세계의 안전과 평화를 그 크지 않은 땅에 걷어안은 분렬된 조국이 그이를 목마르게 기다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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