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회)

 

제 3 장

9

 

어느덧 가을도 가고 허연 눈가루가 날리는 계절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며칠째 평양역은 북반부에서 철수해가기 시작한 쏘련군장병들을 바래주러 나온 평양시민들로 하여 뜨겁게 달아있었다.

무수한 꽃다발과 꽃보라속에 묻혀 역홈에 서있는 군용렬차의 기관차발브에서는 허연 증기구름이 뭉게뭉게 피여났다.

줄지어 늘어선 방통들마다에는 이국적인 정서를 안겨주는 곱슬머리, 갈색머리, 금발머리 등의 쏘련군병사들이 꽉 차있었고 창문이나 승강대밖으로 나온 파랑눈, 검은 눈들은 쉬임없이 끔뻑이며 자기들을 위해 아낌없는 환성을 올려주는 역홈의 사람들에게 열정넘친 인사를 보내고있었다.

발차시간이 거의 되였다는것을 알리는 기적소리가 울리자 차칸마다에서 쏘련군장병들이 내뱉는 휘파람소리와 《쓰빠씨버》, 《다쓰비다냐》, 《짜리쓰시오》 등 어설핀 조선말까지 뒤섞인 로씨야말소리가 한층 더 고조되였고 그들을 향해 쳐들린 꽃다발들이 더 열광적으로 흔들렸다.

어느 한 차칸에서는 경쾌한 바얀소리와 함께 이미 조선인민들에게도 친근하게 알려진 《까쮸샤》의 노래소리가 합창으로 울려나오고있었다. 그러자 배웅나왔던 평양시민들이 그 노래를 따라불러 작별의 분위기는 더 고조되였다.

역홈의 조용한 한쪽구석에 차를 세워두고 그 모습을 생각깊은 눈길로 바라보고있는 방학세의 등뒤로 누구인가 다가왔다.

그의 밑에서 일하는 젊은 부국장이 방학세의 가까이로 다가서기는 했지만 깊은 사색에 잠긴듯 한 부상에게 방해가 될가보아 말은 붙이지 못하고있었다.

사심없는 석별의 정을 쏟으면서도 밝은 웃음을 짓고 쏘련군장병들에게 열정적으로 손을 흔들고 꽃다발을 흔들어주는 인민들의 모습이 방학세의 속을 쩌릿하게 적셔주었다. 오래동안 쏘련에서 지내며 그 나라의 물과 공기에 습관되여있었던탓인지 아니면 여러해동안 북반부에 진주해있으면서 손잡고 투쟁해온 그들모두가 철수해간다고 생각해서인지 어깨에 무거운 납덩이가 올라앉은듯 한 묵직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방학세는 렬차가 서서히 떠나가기 시작해서야 부국장을 돌아보며 갔던 일은 어떻게 되였는가 물어보았다.

장군님께서 룡당포경비초소를 돌아보고 오신 뒤 방학세는 그곳에서 어떤 말씀을 하시였는지 최현려단장을 통하여 죄다 알아보고나서 각성을 부쩍 높이게 되였다.

그는 우선 쏘미공동위원회라는 얼토당토않은 구실을 댄 미군놈들이 무엇때문에 룡당포를 거쳐 해주와 옹진으로 자주 드나드는지 그 의도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부국장을 해주로 보내여 실태를 알아보게 하였던것이다.

《확실히 요즘 해주쪽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번 길에 룡당포경비초소에 나가 그곳 경비대원들도 만나보고 해주시내무서와 도내무부에서 파견한 일군들과도 련계를 가졌습니다. 내무서와 정치보위부에서 장악하고있는 반동단체들에는 불원간 중요한 작전이 시작되니 일체 행동을 중지하고 대기하라는 지시가 하달되였다고 합니다. 적들의 비밀지령을 가지고 간첩들이 곧 북상할것 같습니다. 그 어떤 대규모적인 작전이 예견됩니다.》

대규모적인 작전… 그것이 구체적으로는 어떤것이겠는가?

방학세는 우선 해주시내무서와 황해도내무부, 38정치보위부와 도정치보위부 일군들에게 주야로 경계를 강화할데 대한 지시를 주라고 하였다.

《특히 인민들속에서 암해분자들의 책동에 대처할데 대한 해설선전사업을 강화하여야겠소. 김일성동지께서는 그 어떤 로련한 원쑤도 인민들의 시야에서만은 절대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시였소. 난 이것이 우리 사업의 철칙으로 되여야 하며 적들의 음모를 짓부실수 있는 유일한 밑천이라고 생각하오. 내무원들에게만 매달리지 말고 광범한 군중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조직사업을 진행해야겠소.》

《알았습니다.》

방학세는 부국장의 보고가 끝난것으로 알고 차에 오르려고 했다.

《저… 부상동지, 또 한가지 보고할 일이 있는데…》

웬일인지 부국장은 약간 갑자르다가 방학세가 차문을 열어제낀채 재촉하는 눈길을 보내서야 말을 이었다.

《다른게 아니라… 제 해주에 나갔다 오던 길에 금천군내무서에도 들렸댔는데 거기서 월권행위로 한 농민의 토지를 몰수하여 신소가 제기되였습니다.》

방학세는 습관처럼 미간을 쪼프렸다. 《좀 간단히…》하고 약간 시답지 않은 태도로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정치보위사업을 담당한 부국장이 민사소송에나 속할 난데없는 문제거리를 들고나오는 바람에 비위가 상했던것이다.

《제가 금천군내무서에 들렸을 때 웬 로인이 거기 찾아와 서장에게 무슨 하소연을 하고있었습니다. 저를 보더니만 평양에서 내려온 한급 높은 간부라고 짐작했는지 서장을 제껴놓고 저에게 또 매달려 몰수된 토지를 되찾게 해달라고 하소연하던데… 거의 제정신을 잃다싶이 하고 허둥거리는 모양을 보자니 저으기 딱하더군요.》

《그래 거기서 토지는 왜 몰수했다오? 부농이였는가?》

《지금이야 농민들이 모두 옛날 부농 못지 않게 잘살지요. 알아보니 해방전에는 소작농으로서 토지분여대상에는 속했던 사람이더군요. 헌데 장군님께서 얼마전에 금천군을 현지지도하시면서 관개공사를 다그쳐 몽리면적을 늘이라고 가르치심을 주시였는데 그 과업을 관철하기 위해 군인민위원회가 벌려놓은 관개공사에 로력동원도 안 나오고 공사에 소요되는 자재확보를 위해 포치한 추가현물세도 물지 않아 그곳 군인민위원회 위원장이 내무서를 시켜 토지몰수처분을 주었던것입니다.》

《군위원장이 그랬다. … 하긴 군내무서야 원칙적으로 군인민위원회 지시를 집행하게 되여있지.》

《물론 그건 옳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집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감리교신자들이라는데 있습니다. 잘못하면 군위원회나 군내무서의 그런 극단한 처리가 단순히 관개공사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인식을 줄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사람들속에 우리 당이 겉으로는 종교인들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실지로는 편견적으로 대하면서 압박한다는…》

《뭐, 그리스도교신자라고?》

차라리 그런 말을 듣지 않았으면 방학세는 웬간하면 땅을 돌려주는 방향에서 어떻게 못하겠느냐 지나가는 소리로라도 해당 부서에 한마디 비쳤을지 모른다.

쏘련에서 일하다가 해방후 귀국해온 때로부터 지금까지 국가정치안전의 일선에서 활약해온 방학세는 우리 인민정권에 대하여 악의를 품고 달려드는 반동분자들속에 종교인들, 특히 그리스도교신자들이 적지 않게 섞여있는것을 자주 보아왔다.

그 원인은 미국이 이미전부터 언더우드1세를 비롯한 저들의 첩자들을 목사요 전도사요 하는 명목으로 조선에 들여보내여 종교와 함께 자기 나라에 대한 환상을 체계적으로 퍼뜨려온데 있다고 볼수 있었다. 미국선교사들은 자기들의 선전에 속아넘어가 신자로 들어오는 사람들중에서 미래의 저들의 조선침략에서 돌격대역할을 할수 있는 주구들을 품을 들여 선택육성해왔다. 때문에 천도교나 불교도와는 달리 그리스도교를 숭상하는 사람들속에서는 많은 경우 미국에 대한 환상을 적지 않게 가지고있게 되였다. 그래서 해방후 그리스도교의 교직자나 신자들속에서 적지 않은 반동분자들이 나타나 인민정권을 반대하는 암해활동을 벌렸다.

방학세는 북조선에서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이 결성되고 거기에 종교단체들까지 포함시키고 당적으로나 법적으로 종교인들의 활동을 보장해주는 등 여러가지 조치를 취하는것을 다 그들이 새 조국건설에 저애가 되는 적대행위를 더이상 감행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예방책일것이라는 제딴의 생각을 품고있었다. 설사 그것이 아니라고 해도 내무성 부상인 자기까지 무작정 그런 너누룩한 감정에 휩싸이다가는 어떤 큰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고 단단히 자각하고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선량함과 너그러움이 지나치게 많이 배여있는듯싶은 젊은 부국장의 두리뭉실한 얼굴을 마뜩지 않게 흘겨보며 발동을 건 차안에 올라앉아 약간 신경질적인 어조로 맵짜게 내쏘았다.

《여보, 부국장동무! 우리의 사업은 아무 사람에게나 무턱대고 값눅은 동정심을 베푸는것으로 되여서는 안되오. 정치보위사업이라는것이 우는 아이들 젖먹이는 식의 얼림으로만 이루어지고 유지되는것은 아니지 않소. 동무도 10여년전에 쏘련에서 있었던 대숙청깜빠니야에 대하여 알고있겠지?》

방학세는 새로 자기 수하에 들어온 이 지나치게 감성적인듯싶은 부국장에게 품을 좀 들여서라도 신발을 단단히 신겨줘야겠다고만 생각하다나니 자기로서도 뜻밖의 이야기를 불쑥 내뱉았다.

방학세가 말한 쏘련에서의 대숙청이란 공민전쟁의 영웅이였던 뚜하쳅스끼를 포함한 3명의 원수와 수많은 붉은군대 군관들을 대렬내에서 제거하여 세계를 들썩하게 만들었던 1937년도의 사건을 말하는것이였다.

사실 방학세에게 있어서 1937년을 추억한다는것은 괴로운 일이였다. 그때 쏘련에서는 군부내에서의 대숙청사업과 함께 민족리간을 목적으로 왜놈들이 퍼뜨린 요언때문에 쏘만국경류역에서 살던 조선사람들을 일본간첩으로 의심하면서 전부 이주시키는 조치를 취했었다. 그리하여 연해변강지역에서 살던 방학세의 가족도 중앙아시아의 알마아따로 강제이주되게 되였으며 당시 스웨르들롭스크법률대학에서 공부를 하고있던 방학세에게 커다란 심리적고충을 안겨주었다. 결국 방학세는 졸업후 가족이 가있는 알마아따의 검찰소에 배치받지 않으면 안되였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손꼽히는 인재로 인정받았다 해도 타향에서 또 다른 타향으로 쫓겨가는 신세를 면할수가 없었던것이다.

그때 방학세의 뇌리를 지배한것은 쏘베트로씨야가 좋은 제도가 수립된 훌륭한 나라인것만은 사실이지만 역시 남의 나라는 남의 나라라는 통절한 감정이였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는 그 모든 일이 응당한 일이였다는듯 오히려 제편에서 먼저 입에 올려 자기 견해를 립증하는 근거로 리용하고있는것이 아닌가.

방학세는 스스로 빠져든 이 모순에 종지부를 찍으려는듯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흔들었다.

이제는 자신이 어느 법률대학의 일개 학생이나 어느 구역검찰소의 감찰부장이 아니라 한 나라의 안전보위사업을 책임진 일군이라는것을 다시한번 자각하였다. 때문에 모든 사물현상을 단순하게 보고 대하던 이전날 학생의 눈으로가 아니라 보다 심도있는 전략적인 견지에서 모든것을 재평가, 재분석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방학세는 그때 당시 쏘련에서 벌어졌던 군부내의 대숙청사업이라든가 조선사람들에 대한 집단이주조치가 다 어쩔수 없는 일들이였다고 재평가하게 되였다. 물론 그 조치들이 애매한 운명들까지 가혹한 희생을 당하게 한 측면도 있었지만 쏘련이라는 거대한 사회정치적구조물을 유지하고 운영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필요한 조치였던것만은 사실이라고 보았다. 국가를 세운 다음 그것을 유지하고 운영해나가기 위해서는 때로 그런 단호한 결단을 내릴줄도 알아야 하는것이였다. 이것이 내무성 부상의 중책을 지닌 현위치에서 방학세가 내리게 되는 결론이였다. 바로 이런 리유들로 하여 방학세는 금천군에서 있었다는 어느 그리스도교신자에 대한 토지몰수사건도 국가안전의 견지에서 볼 때 일종의 예방대책으로 될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던것이다.

《금천군내무서장에게 전하시오. 그런 신소는 관심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이요. 지금은 모든것을 조국수호에 복종시켜야 하는 준엄한 때요. 여기에 개인의 불만이나 리기심 같은것이 뛰여들 자리가 있을수 없소. 때문에 당과 정부의 로선과 지시를 흥정하려 하는 사소한 모든 편향도 단호히 대책하고 징계해야 하는거요.》

방학세는 자기의 견해와 립장이 내무일군의 자각과 의무에 어긋나는것일수 있다고는 조금도 생각지 않았다.

독초는 제때에 뿌리채 뽑아야 하듯이 사소한 비정치적인 요소의 싹도 시초에 짓눌러버려야 하는것이 정세가 어려울 때일수록 내무기관이 놓치지 말고 틀어쥐고나가야 할 선차적인 과업인것이다.

석고명…

그가 그리스도를 숭배하는 신자라는 생각이 다시한번 가슴에 사무쳐왔다. 예수쟁이는 역시 어쩔수 없는 족속들이란 말인가?

방학세는 차에 올라 문을 세차게 후려닫았다. 그 서슬에 급제동을 하기라도 한것처럼 차체가 통채로 움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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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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