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회)

 

제 2 장

7

 

길이 막혀 승용차가 더 전진을 할수 없었다. 동쪽으로도 서쪽으로도 갈수가 없었다. 사방에서 길을 꽉 메우며 사람들이 쓸어나오고있었다. 어느 기계앞에서 일하다가 곧장 달려나온듯 목에는 기름묻은 목수건을 그대로 걸치고 손에는 확성기를 든 젊은 로동자의 뒤를 따라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목청껏 구호를 웨치며 전진하고있었다.

《매국단독〈정권〉의 〈미군계속주둔요청안〉을 절대반대한다!》, 《친미괴뢰정부를 반대한다!》, 《리승만 퇴진하라!》 등의 구호가 물결치는 대오속에서 끊임없이 울려퍼지고있었다.

몸에 걸친 회색두루마기와는 어딘가 이상야릇한 조화를 이루는 중절모를 깊숙이 눌러쓴 성시백은 차문을 열고 내려 파업에 떨쳐나선 로동자들의 대오를 불꽃이 번뜩이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생각같아서는 자기도 저들속에 뛰여들어 함께 구호를 부르며 리승만의 경무대나 미국대표부를 향해 달려가고싶었다.

지금 그의 손에는 괴뢰국회에서 미군의 무기한 주둔을 요청하는 《미군계속주둔요청안》이 조작되였다는 소식이 실린 석간신문이 들려있었다. 리승만이 려수군인사건을 트집잡아 북의 《남침》위협을 떠들며 끝끝내 남조선에서의 미군의 주둔을 합법화하고 영구히 하려는 이런 매국적인 《결의안》을 만들어냈던것이다. 성시백은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치를 떨었다. 이것은 결국 조선이 끝내 분렬될것이라는 포고문이나 같은것이였다.

해방직후부터 김일성장군님의 민족구원의 뜻에 공감하고 그 뜻을 받들어 남조선에서의 구국투쟁을 벌리고있는 성시백이였다.

일찌기 소년시절부터 조선독립의 뜻을 품고 3. 1인민봉기에도 참가하였던 그는 22살때 안해와 두 아들을 고향인 황해도 평산에 남겨놓고 반일독립의지를 가다듬으며 조국을 떠나 중국관내로 들어갔다. 그해 상해에서 중국공산당에도 입당하였고 장개석반동군벌에 체포되여 8년간이나 감옥살이도 했었다.

서안사변과 국공합작, 중일전쟁의 발발 등 격변하는 정세속에서 성시백은 주은래, 진의와 같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핵심간부들과 련계를 가지고 반일투쟁을 적극적으로 벌렸다.

그 시기 김구, 조소앙, 최동오, 리범석과 같은 상해《림시정부》의 지도적인물들과 접촉하였고 그러한 연줄로 하여 해방후 서울에 들어와서도 그들과의 긴밀한 련계를 유지할수 있었다.

성시백은 해방전 중국관내에 있을 때부터 보천보전투와 무산지구진공전투 등 김일성장군님의 항일빨찌산의 전과보도들을 들으면서 그이에 대한 무한한 공경과 흠모의 감정을 안고있었다. 더우기 해방후 귀국하여 서울로 나가면서 평양에 들렸을 때 오매에도 그리던 김일성동지를 직접 만나뵙고는 그이의 인품과 고결한 민족정신에 완전히 매혹되여 한생을 그이의 뜻을 받들어 생명이 지는 마지막순간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으리라 속다짐을 했었다.

해방과 함께 들이닥친 민족분렬의 위기를 그 누구보다 먼저 예감하였던 성시백은 스스로 남조선에서의 험난한 구국투쟁의 길에 들어섰고 오늘까지 그 길을 묵묵히 꾸준히 걸어가고있었다. 지난해말 장군님께서 내놓으신 남북련석회의소집제안이 서울에 전달되였을 때 만사를 제쳐놓고 그 실현을 위해 김구, 김규식 등 애국적인 민주인사들을 찾아 발이 닳도록 뛰여다녔다.

4월련석회의이후 평양에서 통일적인 중앙정부가 수립되였으나 민족분렬의 위험은 의연히 사라지지 않고있었다. 이번에 려수에서 발생한 군인들의 대중적폭동과 그 결말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있었다.

당시 도꾜에서 맥아더를 만나고있던 리승만은 려수사태에 관한 통보를 받고 황황히 서울로 돌아와 이번 사건이 북조선의 지시를 받은 남로당이나 북조선 정치보위부계통에서 꾸며낸 음모적반란이라고 기승스럽게 선전해댔다.

성시백은 그때 이것이 정말 리승만이 떠드는것처럼 지하에 잠복해있던 남로당이 자기들 식의 계획에 따라 일으킨 사건이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그만큼 그에게도 이번 사건은 충격적이였다.

성시백은 리현상이나 김삼룡 같은 사람들에 대하여 어느 정도 파악하고있었다. 그들이 자기딴의 계획에 따라 려수사건을 처음부터 조직하고 실행했다면 순천까지 장악한 다음 인차 차후행동계획으로 넘어가 있을수 있는 적들의 공격에 기민하게 대응했을것이다.

북조선 정치보위부계통에서 꾸며냈다는 선전도 믿을수가 없었다.

성시백은 언제인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공화국 내무성에서 정치보위사업을 맡아보고있는 방학세도 피뜩 만나본적이 있었다.

쏘련에서 감찰사업을 하다가 나온 사람이였는데 그래서인지 무엇인가 계획하고 실현하는 측면에서 지나치다고도 할수 있는 쏘련식의 랭철성이 많이 슴배여든감은 있었지만 침착하게 사고하고 용의주도하게 행동할줄 아는 방학세가 이번과 같은 폭동을 계획했다고 믿기는 어려웠다. 더우기 방학세 같은 사람은 평양에서도 김일성장군님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있는 일군인데 그가 제 마음대로 이런 큰일을 조직할수는 없는것이다.

리승만이 려수와 순천의 사태가 북조선이 작성한 씨나리오에 의해 연출된것처럼 오도하려 하고있는데는 새로 창건된 공화국의 존엄을 훼손시키고 사람들속에 존재하는 북조선정치에 대한 동경과 흠모의 감정을 짓누르기 위한 불순한 정치적목적이 깔려있는것이 분명했다.

또한 성시백은 미국이나 리승만세력이 려수사태를 구실잡아 새로운 음모를 꾸밀수 있으리라는 짐작도 하고있었다. 그런데 한달도 못되여 사태가 이렇게 급작스럽게 돌변할줄은 미처 몰랐다.

미국이 리승만을 부추겨 려수군인폭동을 북의 《남침》위협의 직접적인 산물이라고 여론을 오도하고 그에 토대하여 《국회》에서 《미군계속주둔요청안》을 강압통과시키였던것이다. 이제는 리승만도 미국도 가면을 벗어던지고 남조선을 철저히 미국의 식민지로 만들려는 자기들의 속심을 드러내놓았다. 그때문에 격분한 서울의 로동자들이 총파업을 선포하고 이렇게 시위에 떨쳐나선것이였다.

길이 열렸다. 사람들의 물결이 지나갔다. 남은것은 흩날리며 딩구는 삐라장들과 벗어진 목수건, 외토리로 벗어져나간 고무신짝이나 맥고모 같은것들이였다.

성시백의 호위 겸 련락보장을 맡고 운전석에 앉아있던 리창우가 젊은이 다운 날쌘 동작으로 차에서 내려 길녘으로 흘러들어온 삐라장가까이로 다가갔다. 무슨 글이 씌여있는지 알고싶은 호기심이 부쩍 든 모양이였다.

《그만하고 어서 차에 타게.》

성시백은 공연히 경찰이나 우익깡패들의 눈에 띄우는 행동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그를 제지시켰다.

별수없이 삐라를 줏지 못하고 그냥 돌아섰지만 이 고수머리청년은 어느새 내용을 훑어본 모양이였다.

《미군 나가라는 구호가 씌여있더군요.》

《그럼 계속 있어달라는 글일줄 알았나, 어서 가자구. 모두가 싸우고있는데 우리도 가만있어서는 안되지.》

성시백은 지금 김구를 찾아가는중이였다. 김구가 현재 남조선에서 리승만독재세력과 합법적으로 맞서고있는 남북협상파세력의 중진인물이기때문에 이번 사태를 놓고 그와 토의를 해볼 생각이였다. 지난해 미제의 조작비호하에 《5. 10단독선거》가 날치기로 강행되고 그에 토대하여 리승만을 《대통령》으로 하는 《대한민국》이라는것이 수립된 후 거미줄같이 갈래를 알수 없게 뒤엉켜있던 남조선정계는 크게 3개의 정치세력으로 그 분화가 뚜렷해졌었다.

이 3대정치세력은 리승만, 김성수 등을 망라하는 친미우익반동보수세력과 지난 4월에 평양에서 진행된 남북련석회의 참가자들인 김구, 김규식, 조소앙 등으로 이루어진 남북협상파 그리고 이미 비법화되여 지하로 들어간 남조선민전안에 소속된 좌익정당, 단체들을 망라하는 지하혁명세력이였다.

김구, 김규식, 엄항섭, 최동오 등 4월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하고 돌아온 애국적인사들은 그후 련석회의정신과 김일성장군님의 애국애족의 뜻을 받들어 《통일촉진협의회》(처음에는 《통일독립촉진회》)라는 새로운 평화통일기구를 꾸리고 남조선에서의 단독《정부》수립을 반대하여 견결하게 싸워왔다.

그들은 남조선정치권내에서의 자기들의 합법적인 지위를 허물지 않는 방향에서 리승만의 단독《정부》조작책동에 불참석, 반대의 립장을 취하고 김일성동지의 통일정부수립방안에 대하여서는 불참석, 불반대의 립장을 취함으로써 미국과 리승만세력에게 탄압의 구실을 주지 않으면서 실제상 리승만의 단독《정부》수립책동에 반기를 들었던것이다.

성시백은 현재 남조선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다고 볼수 있는 이 남북협상파세력이 앞으로 조국의 통일독립을 위한 투쟁에서 커다란 역할을 수행할수 있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무엇보다먼저 김구를 비롯한 남북협상파의 민주인사들이 격변하는 정세의 흐름속에서 대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조국통일을 위한 실질적이며 효과있는 정치활동을 벌리도록 하는데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있었다.

성시백은 이것이 나라의 통일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하여 김일성장군님까지 만나뵙고 가르치심을 받은 이들이 장군님과 맺은 인간적인 신의를 끝까지 지켜나가도록 하는데서도 의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리승만은 장면, 모윤숙과 같은 친미분자들을 빠리에서 진행중인 유엔3차총회에 보내여 《대통령》으로서의 자기의 지위와 《대한민국》의 합법성을 인정받으려고 꾀하고있었다. 미국의 적극적인 뒤받침을 받는 리승만의 이 책동이 역시 미국의 막후조종하에 움직이는 유엔으로부터 배격을 당할리는 없을것이니 결국 국제무대에서까지 조선의 분렬은 더욱더 기정사실화되게 될것이다.

미국은 100여년동안 축적해온 자기의 금권과 군권, 온갖 권모술수의 묘기를 다 동원하여 조선을 절대로 자기의 발톱밑에서 놓치려 하지 않고있는것이였다.

이런 때일수록 이 땅의 주인들이 너나없이 제구실을 해나가야 하였다. 이 땅에 태여난 남아라면 분렬된 조국의 아픔을 두고 괴로와할줄 알아야 하며 눈물을 흘릴줄 알아야 하며 투쟁할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서울의 로동계급이 오늘 이와 같은 시위투쟁에 떨쳐나선것이 아니겠는가.

성시백은 김구, 김규식, 조소앙을 비롯한 남북협상파의 명망있는 정치인들도 그들처럼 반미구국투쟁을 중단없이 줄기차게 벌리기를 기대하고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시간마다 달라지는 남조선정계의 변화무쌍한 정치지진의 소용돌이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고있는듯 했다. 서로 다른 주견을 가진 완고한 민족주의자들인지라 앞으로의 정치활동방향을 정하는 문제에서도 제나름의 분석과 결론을 내리며 충돌도 없지 않았다. 정세가 어려워질수록 놓치지 말아야 할것이 광범한 애국적력량의 단합이다. 남북협상파내에서 알릴듯말듯 내돋고있는 불신과 분렬의 싹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그냥 둘수는 없었다. 통일로 향해가는 유일한 길은 전민족의 대단합에 있는것이였다. 사람들을 그 길로 이끌수 있는 구체적인 방도는 아직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당장 명백한것은 남조선《국회》의 《미군계속주둔요청안》이 던져준 충격파를 발화점으로 하여 남북협상파의 정치가들을 남조선주둔 미군반대투쟁에로 불러일으켜야 한다는것이였다. 미국, 평화와 통일의 교살자, 민족분렬의 장본인인 미국의 간섭을 짓부셔버리는것이 단합에로 가는 길이고 통일에로 가는 길이고 우리 민족의 구성이신 김일성장군님께로 가는 길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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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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