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 회)

제 6 장  《보감》

4

 

참으로 이상한 일이였다. 잠자리에 누워도 허준의 뇌리속에서는 집필할 의서의 내용들이 떠올랐던것이다. 낮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방안에서 마당으로, 마당에서 토방으로, 다시 마당으로 쉼없이 오르내렸다. 그의 모든 생각과 사색은 오직 의서에 가있었다. 그외의 주변환경에는 전혀 무관심하였다.

허준은 의서집필을 떠나서는 자기가 단 하루도 한시도 버텨낼수 없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머리속에서 글줄을 구상하고 써나가는것-그것이 오직 엄혹한 환경에서 허준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기둥이였고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명약이였다.

그가 지금 머리속에서 굴리고있는 의서의 내용은 《잡병편》 6권이였다.

허준은 우선 목차를 구성하고 그 목차에 따르는 내용들을 하나하나 머리속에서 써나갔다. 며칠동안에 걸쳐 첫번째 목차의 내용을 머리속에서 굴리고 또 굴리니 이제는 그 글줄을 뜬금처럼 외울 정도였다. 그럴수록 안타깝기만 하였다.

(이 내용을 어데라도 써놓았으면 좋으련만…)

종이와 필묵만 있으면 의서를 쓸수 있겠는데 이 절해고도에서 어떻게 그 물건들을 얻을수 있으랴. 조바심과 안타까움으로 도무지 진정할수 없었다.

아무리 생활환경이 엄혹하고 일생동안 가시울타리안에 갇혀있다 해도 종이와 필묵만 있으면 의서는 얼마든지 완성할수 있었다. 밖에 있을 때는 늘 모자라는것이 시간이였다. 허나 여기서는 의서를 쓸 시간이 하루종일 있었다.

(어떻게 하나 종이와 필묵을 구해야 한다!)

아무리 생각을 굴리고 또 곱씹어 생각해보아도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여느때나 다름없이 마당을 거닐면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보았지만 방도는 묘연하였다.

생각에 잠겨 걷는 그앞에 가시울타리가 막아섰다. 허준은 그 가시울타리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정녕 의서를 쓸 방도는 없단 말인가?)

얼기설기 겹치고 엉켜든 가시덤불속에서 류달리 큰 주염나무가시가 허준의 눈에 안겨들었다.

(가만!)

불쑥 뇌리를 치며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지, 방안벽에 황해도 감영의 그 누군가가 쓴 글이 있지 않았던가.

허준의 가슴은 흥분으로 뛰기 시작하였다. 그는 다급히 주염나무가지를 한개 꺾어가지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황해도 김영의 관리가 벽면에 쓴 글이 그의 눈앞에 다가왔다.

(됐어! 종이와 필묵이 없으면 이 벽면에 글을 쓰면 되겠구나!)

온몸에 기운이 뻗쳤다. 허준은 주염나무가지를 들고 벽에 다가섰다.

《〈잡병편〉 제6권

목차

적취(종물)

부종

창만(배부르기)

소갈(당뇨병)

황달》

목차를 쓰고난 허준은 뒤로 물러서서 그 글을 바라보았다. 글자를 생생히 알아볼수 있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이런걸 두고 하는 소리였구나!)

허준은 네 벽면의 면적을 가늠해보았다. 그리 푼푼하다고는 말할수 없었다. 한문장이라도 더 써넣으려면 글을 좀더 작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겨우 자기만 알아볼수 있는 작은 글씨로 글발을 달리였다.

《적취, 적취의 원인… 기뻐하는것과 노여워하는것이 지나치면 장을 상하고 장이 상하면 허하여진다. 또 바람과 비가 허한 틈을 타서 들어오면 병이 상부에 발생하여 혈맥에 들어붙어 그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자리잡아 적(종물의 일종)이 된다.》

허준은 좀더 간략하여 요점만 쓰기로 하였다.

《…양명경(위와 련관된 경맥)에 들어붙으면 배꼽옆에 있어서 배가 부를 때에는 더욱 커지고 배가 고플 때에는 작아진다.…》

적에 대한 글을 달리자니 문득 간적(간암)으로 세상을 하직한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놀리던 손을 멈추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어머니가 살아계셔 자기의 이 모습을 보면 얼마나 가슴아파하실가 하는 생각에 허준은 가슴이 찢어지는것 같았다.

이 아들 하나만을 애오라지 믿으시던 어머니! 저도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숨지는 마지막 그 순간에도 의서가 완성되면 땅속에서라도 보고 기뻐해주겠노라고 당부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안겨왔다.

여려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허준은 팔굽으로 눈물을 닦았다.

(어머니, 그 믿음과 당부를 잊지 않고 숨지는 마지막순간까지 붓을 멈추지 않겠소이다!)

허준은 다시금 글을 써나갔다.

《…여러가지 울증(통하지 못하고 뭉친것)이 적취… 가 된다. 기와 혈이 순조로우면 온갖 병이 나지 않으나 하나라도 넘치고 몰리면 모든 병이 발생한다.

…익국환, 여러가지 울증을 치료한다. (뭉친것을 없앤다.)

창출, 향부자, 천궁, 신곡, 치자 각각 같은 량으로 가루내여 물에 반죽하여 록두알만 하게 알약을 만들어 더운물에 70~90알씩 먹는다.…》

이날부터 허준은 벽에 매달려 글을 쓰기에 여념이 없었다.

험악한 조건에서 생을 재촉하며 비상한 정신력을 발휘하니 집필의 속도는 상상외로 대단히 빨랐다.

어의로 있을 때 허준은 한권의 의서를 쓰는데 보통 여섯달이 걸렸다. 그러나 지금은 그보다 두세배의 속도로 글줄을 달리고있었다.

자기가 이곳에서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것을 허준은 각오하고있었다.

필사의 각오로 단 한글자라도 의서의 내용을 쓰려는 불타는 욕망이 그의 육체를 지탱하고있었다.

며칠 안되여 허준이 쓴 글들은 뒤벽의 절반나마를 차지하게 되였다. 머리속에서 맴돌고있는 글줄들을 놓칠세라 온 심혼을 모아 글을 쓰고 또 써나갔다.

자그마한 초가집의 네벽면은 점차 의서의 내용으로 가득차게 되였다.

밤에는 어두워서 글을 쓸수가 없기에 허준은 허리 한번 굽히거나 다리쉼을 할새없이 부지런히 벽에 글을 썼다. 

오직 하나, 이 나라의 재보로 되는 의서를 만들기 위해, 이 나라의 모든 사람들의 건강에 기여할 의서를 만들기 위해 허준은 비상한 각오를 가지고 초인간적인 힘을 발휘하여 하루하루 생을 장식하고있었다.

곡도의 무심한 하늘도 무정한 바다도 그 하늘밑에, 그 날바다섬속에 어떤 인간이 어떻게 삶과 싸우고있는지 전혀 모르고있었다. 삶을 위한 허준의 싸움은 계속 진행되고있었다.…

 

퇴마루에 앉아 절구로 찹쌀을 찧고있는 설유는 호- 하고 한숨을 쉬였다.

절구질을 하다가는 느닷없이 갈마드는 상념에 잠기게 되는 설유였다. 귀양지에서 갖은 고생을 하고있을 허준의 정상이 눈앞에 안겨와 심장이 쫄아들고 가슴이 저려들었다.

핑 눈물이 그득히 차오르다가 주르륵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너무도 가슴이 쓰리고 심장이 찢기여 무슨 정신에 날이 새고 지는지 몰랐다.

처음엔 살고싶지도 않았다. 그저 죽고싶은 생각뿐이였다.

차차 마음이 진정되면서 자기를 다잡고 일어선 설유였다. 남편이 꼭 살아서 돌아올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이 설유를 일으켜세워주었던것이다.

그는 절구에서 꺼낸 찹살가루를 다시금 정히 채로 쳤다.

또다시 찹쌀을 정히 씻어 한겻동안 깨끗한 물에 불구었다가 김에 찐 다음 말리웠다. 말리운 찹쌀을 다시금 닦아서 절구질을 한 다음 보드랍게 채로 쳐서 가루로 만들었다. 며칠동안 이렇게 정성들여 닦은 찹쌀가루에 일정한 량의 고추가루와 소금을 섞고는 작은 마대에 넣어 포장을 하였다.

찹쌀가루준비가 다 끝나자 설유는 탁자에 마주앉았다. 탁자우에는 종이뭉테기들이 그득히 쌓여있었다. 《잡병편》 집필에 필요한 치료자료들이였다.

설유는 그것들을 세밀하게 분류하여 될수록 간편하게 볼수 있도록 작은 종이우에 깨알같은 글씨로 적어넣기 시작했다.

그는 허준이 절대로 그렇게 쉽게 주저앉을 사람이 아니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이러한 확신과 믿음이 있었기에 그는 허준이 귀양지에서 필요한 간편하면서도 분한있는 닦은 찹쌀가루와 의서집필에 필요한 자료들을 준비하고있는것이였다.

이때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인차 하녀의 뒤를 따라 기동이가 칠성이, 달래와 함께 방안에 들어섰다. 문안인사가 오간 뒤에 기동이 물었다.

《사모님, 응규형님이 왔소이까?》

《오지 않았어요. 오기로 약속이 있었나요?》

달래가 대답하였다.

《선생님이 가계시는 귀양지를 알아가지고 오겠다고 했나이다.》

이들이 잠시 숨을 돌리는데 박응규가 헐떡거리며 들어섰다. 달래가 서두르며 물었다.

《어떻게 됐어요?》

《음, 알아왔소!》

칠성이가 벌떡 일어서며 물었다.

《그래 귀양지가 어데라우?》

《곡도라는 섬으로 귀양갔다누만.》

달래의 눈에 의혹이 실렸다.

《곡도? 곡도가 어디에 있는 섬이래요?》

《예서 약 오백리 떨어져있는 경기도부근의 섬이라더군.》

《그 먼데로?!》

박응규가 다음말을 어떻게 번질지 몰라 갑자르자 모두들 의아해하였다. 성미급한 칠성이가 다우쳐물었다.

《형님은 왜 그렇게 갑자르시우?》

박응규가 힘들게 말을 이었다.

《헌데… 그 곡도라는 섬에서 위리안치되였다누만.…》

《뭐요?》

모두가 깜짝 놀랐다. 달래가 가슴을 두드리며 눈물을 흘렸다.

《우리 선생님이 그런 험한데서 어떻게…》

설유의 얼굴에도 짙은 그늘이 졌다. 그저 귀양살이를 간줄 알았지 차마 위리안치까지 되였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설유였다.

허준이 처한 상태는 설유가 생각했던것보다 더 엄혹한것이였다. 가슴이 미여지는 아픔에 심장이 바늘로 쿡- 쿡- 찌르는것 같더니 다시 활랑거렸다. 애써 자기를 다잡은 설유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침통해하는 그들을 휘둘러보던 기동이가 칠성이를 보고 소리쳤다

《칠성이! 이렇게 가만 앉아있으면 어떻게 해? 선생님이 정배살이하는 곳을 알았으니 빨리 떠날 차비를 하자!》

칠성이가 기동이를 돌아보았다.

《그럼 내가 사모님을 모시고 다녀오는게 어떻겠어요?》

기동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무슨 소릴 하는거야? 너 혼자선 안돼!》

칠성이가 소리를 낮추며 설명을 달았다.

《형님, 내 말 좀 들어보라요. 형님에겐 여기서 해야 할 더 중요한 일이 있어요. 선생님이 형님에게 맡긴 그 의서원고는 어떻게 하겠어요?

전번에도 어떤 놈이 두번씩이나 의서의 원고를 훔치러 들어오지 않았나요. 그러니 형님의 일도 결코 간단하다고는 볼수 없어요.

응규형님이 무술에 능하니 기동형님을 도와 의서의 원고를 지키는것이 옳다고 봐요.》

칠성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기동이가 입을 열었다.

《그럼 여기 일들은 나와 응규형이 처리할터이니 먼저 네가 사모님을 모시구 다녀오거라. 그다음에 내가 가도록 하자.》

달래가 발끈하여 소리쳤다

《아니, 오라버님, 난 왜 빼놓나요? 나도 가겠어요!》

《나인이 그렇게 집을 둬두구 가도 일없을가?》

《일은 무슨 일, 선생님이 당장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에 언제 그런걸 생각할새가 있어요. 선생님이 아니면 나와 저 칠성이는 벌써 죽은 목숨이야요.

그리구 말이 났으니 말이지 저 덜퉁한 칠성이한테 사모님을 맡기고 난 마음을 못놓겠어요. 선생님을 위리안치시켰다면 분명 그 주변을 수비하는 파수군이 있겠는데 그놈들은 대체 누가 녹여내요?

그런데서야 내가 낫겠지요? 그러니 나도 사모님과 같이 가겠어요!》

의논끝에 그들은 칠성이와 달래가 설유와 함께 귀양지로 찾아가고 기동이와 박응규는 의서를 지키면서 여기 일을 처리하기로 락착지었다. 정성들여 포장한 마대들을 보고 달래가 물었다.

《사모님, 이건 무엇이오이까?》

《음, 고추가루를 약간 섞어 닦은 찹쌀가루예요.》

《아니, 찹쌀가루에 고추가루는 왜 섞소이까?》

《저렇게 험한 생활조건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는 적당한 량의 고추가루가 병도 잘 견디게 하고 강기가 있게 해요.》

《사모님은 참 세심하시오이다.》

설유가 장농에서 꾸레미를 꺼내들었다.

《이 꾸레미도 함께 가지고 가자요. 》

《그건 뭣이오이까?》

《의서들을 쓸 종이과 필묵 그리고 자료들이예요.》

달래는 물론 칠성이도 깜짝 놀랐다.

《아니? 당장 생사도 가늠키 어려운데 의서를 쓰실 경황이 있겠나이까. 귀양지에서 풀려나온 다음에 쓰면 몰라두…》

설유의 그윽한 눈에 이름 못할 회억이 흘렀다.

《선생님을 아직 잘 모르는군요. 그이에겐 찹쌀가루나 음식보다도 이것들이 더 귀할거예요. 아마 이것만 가져가면 금방 쓰러졌다가도 벌떡 일어서실 선생님이예요.》

모두가 감동의 눈빛으로 설유를 바라보았다.

《사모님!》

허준과 설유의 그 마음이 그들의 심금을 울렸다. 잠시후에 응규가 제 이마를 쳤다.

《참, 내 깜빡 잊을번 했소. 곡도에 그냥 가선 발붙이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고 하오.

민가가 약 오십채정도 되는 빤드름한 섬이여서 외인들이 들어오면 제꺽 알린다우.

더구나 위리안치된 중죄인인 경우에는 네댓명이 파수를 서는데 만약 그들에게 들키는 날에는 졸경을 치른다오.

작년도 중죄인호송때문에 곡도에 다녀온 라졸이 있는데 그가 자기가 머물렀던 집주인에게 소개신을 하나 써주었소. 그러니 그들의 친척으로 꾸며서 들어가야 무탈할게요.》

박응규는 칠성에게 소개신을 주었다. 달래가 응규에게 칭찬투로 한마디 하였다.

《이제야 사내답군요.》

달래의 그 말에 게면쩍어하는 응규를 보며 모두들 수긍하였다.

다음날 설유는 칠성, 달래와 함께 수레를 타고 곡도로 향하였다.

수레에 앉아있는 설유는 정작 남편에게로 간다고 하니 수레의 속도가 너무나도 더딘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자꾸만 남편이 앓아누운것 같은 우려와 불안으로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던것이다.

설유의 불안은 공연한것이 아니였다.

필사의 각오로 벽에 매달려 글을 써나가는 허준의 몸이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먹을것도 변변히 먹지 못하는 엄혹한 생활환경과 과중한 정신적소모로 하여 그의 건강은 급속히 악화되였다. 병마가 허약한 그에게 침입하였던것이다.

처음엔 오슬오슬 춥더니 온몸의 뼈마디가 쑤셔나고 팔다리가 매시시하였다.

허준은 자기의 건강상태가 시원치 않다는것을 느끼면서도 일을 멈추지 않았다.

어슬어슬 땅거미가 손바닥만 한 집마당에 깃들고 방안이 어두워 더는 글을 쓸수 없을 때 벽에서 물러서는데 온몸이 떨리면서 줄기침이 연방 터졌다.

(내 몸이 왜 이럴가? 제발 쓰러지지 말아야겠는데.)

기침은 점점 더 심해지고 온몸의 뼈마디가 쑤시는듯 아팠다.

(분명 풍열감모에 걸렸구나. 하루밤 지나면 일없지 않을가.)

그 다음날 아침에는 고열이 나기 시작했다.

이제 이 단계를 조금 더 벗어나면 병사가 내장깊이까지 들어가 페염과 같은 위중한 병이 올수 있다는것을 허준은 잘 알고있었다.

그러나 이 가시울타리안에는 아무런 약재도 치료수단도 없으니 어찌한단 말인가.

얼마나 열이 나고 온몸이 쏘는지 더는 일어날래야 일어날수도 없었다. 저도모르게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대개 귀양지에 있는 사람들은 험악한 생활조건에 시달리다가 신체가 약해지면서 여러가지 병에 걸렸고 그 병을 빌미로 하루이틀사이에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

의식이 가물가물 사라지는 속에서도 허준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여기서 맥을 놓으면 죽는 길밖에 없다. 죽어서는 안된다!

의서도 완성 못하고 요쯤한 병에 죽는다면 내가 구암(허준의 호. 바위라는 의미)이 아니지, 어떻게 하나 일어나야 한다!》

온몸이 우들우들 떨렸다.

의원인 허준은 이제 자기가 맥을 놓고 의식을 잃으면 영낙없이 죽고만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안깐힘을 쓰며 허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안이 빙글빙글 돌면서 어지럼증으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발더듬으로 벽쪽으로 다가선 허준은 벽을 짚고 한걸음한걸음 밖으로 향했다.

휘청거리며 마당에 내려선 허준은 가시울타리로 걸음을 뗐다. 주염나무의 마른 열매를 본 기억이 났던것이다.

한참이나 신고해서야 허준은 엉키고 뒤섞인 아카시아나무사이에 있는 주염나무속에서 바싹 말라버린 주염나무열매를 찾을수 있었다.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열매를 하나하나 뜯어내기 시작했다. 다 뜯어내니 한줌가량은 될상싶었다. 열매를 뜯고난 허준은 간신히 방으로 들어와 다시 자리에 누웠다.

주염나무열매는 해소와 천식, 가슴아픔 등에 좋은 효과를 나타내는 약재이다. 다행히도 가시울타리를 주염나무로 세웠고 그 주염나무에 열매가 있었던것이다.

허준은 오한으로 가다드는 손을 겨우 움직여 껍질을 발가내고 그속의 열매를 꺼내 입에다 넣고 우물거렸다. 싸하고 씁쓸한 맛이 느껴졌다.

그 다음날이 되니 기침과 가래가 한결 가라앉기 시작하였고 숨가쁨도 뚜렷하게 덜하여졌다. 그러나 뼈마디아픔과 고열은 여전하였다.

그의 입술은 산열로 터갈라져있었다.

허준은 다시금 휘청거리는 몸으로 가시울타리쪽으로 다가갔다. 나무가지끝에 매달린 가지들속을 훑던 허준은 그중 탐탁하고 긴 가시 두개를 꺾어들었다. 방안에 들어온 그는 이를 악물고 손의 합곡혈과 곡지혈에 가시를 들이찌르기 시작했다.

동침이라면 순식간에 피부를 관통하였겠지만 나무가시인지라 피부를 길게 늘구면서 질리게 살속으로 들어갔다. 심한 아픔으로 허준은 얼굴을 찌프렸다.

합곡혈은 청열(해열, 독풀이작용)작용이 강한 침혈이고 곡지혈은 염증을 없애는 작용이 센 침혈이였다.

침을 다 놓은 허준은 후- 하고 숨을 길게 내쉬였다. 이 가시울타리속에서 병치료를 위하여 할 일은 다한것이다. 병이 낫기를 기다리는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지금의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달빛이 간간이 비치는 빈방에 홀로 누워있는 허준의 눈귀에선 저도모르게 짭짤한 눈물이 슴새여나왔다. 새삼스레 자기의 처지가 가긍해보였다.

곡도의 하늘가에 떠오른 마늘쪽같은 하현달이 애처롭게 떨면서 빈방에 가느다란 빛을 뿌려주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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