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 회)

제 6 장  《보감》

1

 

곡도는 그 둘레가 약 150리정도 되는 섬이다.

높지 않은 산들과 벌들이 교차되여 펼쳐져있는 이 섬에는 약 50여호의 민가들이 있었다. 섬에는 크지 않은 릉선과 골짜기들이 많았다. 서쪽해안은 높은 벼랑으로 이루어져있었고 해안가까이에는 험한 바위들이 많아 배들이 접근하기조차 힘들었다. 섬주변은 미세기흐름속도도 대단히 빨랐으며 사리때의 만조높이는 열다섯자정도(4.4메터), 조금때의 만조높이는 아홉자정도(2.5메터)였다. 섬에는 동백나무와 후박나무를 비롯한 사철푸른 넓은잎나무들과 소나무가 빼곡이 자라고있었다.

허준은 아직도 자기의 운명이 이렇게 된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마치 악몽속에서 헤매는것 같았다.

함거에 짐짝처럼 실려 의금부 라졸들에게 압송되여 한성부에서 북쪽으로 류배갔다가 다시 여기 곡도까지 오면서도 그는 어떻게 되여 자기가 정배를 가는지 미처 인식도 못하고있었다.

다만 의금부에서 죄목을 불러주던 일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허준은 듣거라! 네놈은 임금의 은총을 입어 공신으로 되였건만 자기의 명예와 사리사욕을 추구하면서 지엄한 성상의 강녕에 심신을 쏟아붓지 않았다. 임금이 있어 나라가 있고 백성도 있거늘 네놈의 그 불충불경죄는 천추만대 씻을수 없는 대역모죄와 다름없다. 의서를 쓴다고 헛소문만 퍼뜨리면서 성상을 속이고 전하의 강녕을 소홀히 하여 국상을 초래했으니 그 죄는 응당 죽어야 한다. 허나 성상의 은총을 많이 받아왔고 또 지난 시기 세운 공을 봐서 위리안치의 형벌을 내리노라!》

무슨 소리인지 귀가 웅웅거리고 눈앞이 어질어질하기만 하였다. 미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어안이 벙벙해서 함거에 실려온 자기였다. 곡도에서 제일 가까운 구미포에 도착하여 다시금 매생이를 타고 곡도에 오른 다음 높고낮은 등성이를 넘어 라졸들에게 끌리워가면서도 허준은 정신이 없었다.

어느 산등성이의 음침한 중턱에 가시울타리로 겹겹이 둘러싼 자그마한 초가집이 있었다. 그 초가집에 허준을 처넣고 라졸들은 바람같이 사라졌다.

허준은 빈 초가집에 까딱 않고 죽은듯이 굳어져버렸다. 거의 한식경이 지나서야 허준은 점차 리성을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형장으로 찢겨진 몸을 끌고 밖으로 나가 자기의 거처지를 눈여겨 살펴보았다. 지붕과 이영이 고삭을대로 고삭은 자그마한 초가집둘레는 온통 가시나무들로 둘러쳐있었다.

그는 그 가시장벽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카시아나무와 주염나무를 비롯한 여리가지의 가시나무들이 네겹, 다섯겹으로 빽빽이 진을 친 가시울타리가 그의 키를 훨씬 더 넘게 앞을 가로막고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밑둥을 잘라버리고 가시가 촘촘한 가지들이 무성하게 뻗어간 아카시아나무들이 목책(나무울타리)처럼 깊숙이 땅에 박혀 무려 세겹씩이나 렬을 지어 둘러쳐있었으며 그 목책들사이에는 다시 아카시아나무가지들과 가시를 잔뜩 도사린 주염나무가지들이 수없이 얼기설기 엉켜져 가로세로 겹겹이 싸여져있었다.

밖에는 죄인이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게 감시하는 파수군졸까지 주야로 지키고있다. 이곳에 갇힌 죄인들이 한걸음도 나갈수 없는 곳, 추호의 자유도 주지 않는 형벌이 다름아닌 위리안치라는 형벌이다.

허준은 라졸들이 자기를 이안에 짐짝처럼 던지고 가던 모습이 생각났다. 차츰 눈앞의 현실이 인정되였다. 얼마나 모질고 무자비하며 참혹한 환경속에 자기의 목숨이 놓여있는지를 비로소 깨달았던것이다.

(아, 이게 바로 위리안치라는 정배살이로구나!)

허준은 귀양살이에 위리안치가 있다는 말은 들어왔으나 난생처음으로 제 눈으로 그것이 어떤것인가를 목격하였던것이다.

그에 비하면 이전의 류배지는 한창 나은 곳이였다.

자기의 처지가 인정되자 허준은 꺼져버리듯 풀썩 마당에 주저앉았다. 너무도 상상 못한 일이였다. 실로 무서운 운명의 희롱이였다. 하늘을 쳐다보며 허준은 목놓아 울부짖었다.

《아아!- 아아!-》

두주먹으로 땅바닥을 쾅쾅 두드렸다. 손가락이 터져 피가 흘렀으나 허준은 미친듯이 울부짖으며 땅을 쳐댔다. 곡도의 하늘가에 절망에 빠진 사나이의 통곡소리가 처량하게 울려퍼졌다.

《이 무슨 일이냐? 내 어째서,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아- 아-》

허준은 선조의 급작스러운 붕어는 심장사라고 믿고있었다.

근 한달전부터 선조에게서는 자주 결대맥(부정맥)이 간간이 나타나군 하였다.

하여 허준은 최선을 다하여 좋다는 약들을 여러가지로 써왔고 자기의 의술을 최대로 발휘하여 치료하였다.

일반적으로 병은 치료와 함께 섭생과 마음안정이라는 또 하나의 중요한 비방이 있다. 이 리치를 홀시하고 잘 지키지 않으면 그것은 병주고 약주는 격으로 되고만다. 더우기 심장병인 경우는 더욱 그러하였다. 심주신명(심장이 정신을 주관하다.)의 리치로부터 심장이 정신상태를 주관하고있다고 하지만 그 정신상태는 반대로 심장병에 자못 큰 영향을 주는것이다.

이것이 선조의 건강에 치명적인 후과를 가져왔다고 허준은 확신하고있었다.

그러나 선조가 붕어한 후 주치의인 허준은 질병과 사망원인에 대한 론거를 단 한마디도 말 못해보고 벼락같이 옥에 갇히웠고 얼마후에는 함거에 실리워 근 이틀동안 미처 정신을 차릴새도 없이 압송되였고 나중에는 이 외진 섬인 곡도에 처참하게 위리안치되였다.

허준은 이것이 권좌를 노리는 왕궁내부의 작간과 자기를 반목질시하는 의관들과 관리들의 소행이라는것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고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가혹한 형벌에로 이어질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허준은 근 이틀째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자그마한 마당에서 오락가락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는 더는 재생할수도 살아날수도 없는 무서운 나락이였다. 그는 또다시 집앞의 자그마한 토방우에 털썩 주저앉아 절망적인 비명소리를 내였다.

(아! 이젠 끝장이로구나! 내 한평생 나라와 백성을 빛내이고 만사람들의 건강에 기여하는 의서를 내놓으려고 했건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무주고혼이 된단말인가!)

허준은 또 그날밤을 꼬박 뜬눈으로 지새였다.

다음날이였다.

날이 밝자 허준은 다시금 자기가 거처하게 될 방안을 둘러보았다. 자그마한 방바닥에는 때가 반질반질한 낡은 노전이 펴있었고 방안의 웃쪽에는 목침 한개가 나딩굴고있었다.

허준은 방안의 벽면을 유심히 주시해보았다.

진흙이 그대로 보이는 네 벽면이 굶주린 승냥이마냥 입을 쩍 벌리고 허준을 마주하고있었다.

벽면을 바라보던 허준은 어느 한 곳에 눈길을 모았다. 분명 무슨 글이 씌여져있었던것이다. 허준은 그앞에 바싹 다가가 미간을 쪼프리고 글자를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나는 억울하게 죽는다. 역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역신으로 몰려 이렇게 참혹하고 억울하게 죽는다. 무신년(16O8년) x월 x일. 황해감영 최지우 서》

등골이 오싹하고 머리칼이 쭈밋하였다. 쓴지 얼마 오래지 않은 글이였다.

(그러니 이 사람도 억울하게 루명을 쓰고 이곳에서 비참하게 살다가 죽음을 당했구나!)

모골이 송연하고 공포와 무섬증으로 하여 온몸이 싸늘해졌다. 이것이 바로 미구에 닥쳐올 자기의 운명이였다. 공포증에 뒤이어 허무감과 고독감이 들물마냥 엄습하였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하는가?)

두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누운 허준은 생각해보았다.

아무리 생각을 굴려보아야 앞이 보이지 않았다. 망망대해에 뿌려진듯 한 자기의 신세가 새삼스레 현실적인 감각으로 가슴에 마쳐왔던것이다.

허준은 그자리에 누운채로 초점없는 눈으로 멍하니 천정만을 쳐다보았다.

이렇게 뜬눈으로 사흘째 되는 날 늘 준수하고 끼끗하던 그의 얼굴은 며칠새에 더욱 훌쭉해졌으며 더부룩한 수염은 온 얼굴을 덮었다. 이른새벽 바람소리가 하도 요란해 허준은 겨우 풋잠에 들었다가 깨여나 밖으로 나왔다.

선들선들 불어오는 해풍이 그의 옷자락을 가만히 들추어놓는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다. 그 별들을 바라보는 허준의 눈가에 눈물이 괴여올랐다. 불현듯 설유의 얼굴이 별무리속에 우렷이 떠올랐다. 졸지에 생사를 기약할길 없는 이 류배지에 남편을 보내놓고 이밤도 눈물로 지새울 설유를 그려보느라니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았다. 새삼스레 허준은 자기의 뒤에 사랑하는 안해와 딸애가 있다는 생각, 그들이 일구월심 자기 하나만을 믿고 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 허준아, 너에게는 주저앉을 권리가 없다! 그렇게 맥을 놓고 한탄만 할 권리가 없다!

누군가의 질책이였다. 사람이 살아 한생에 무슨 일인들 없으랴. 옳은 뜻이 있고 진실한 정이 있으면 꼭 살아날수 있고 살아야 나라와 백성을 위해 하나라도 좋은 일을 할수 있지 않겠는가. 둘러보면 세상리치는 단순하였다. 선과 악, 정의와 부정의, 진실과 허위와의 싸움이다. 선은 악을 이기고 정의는 부정의를 이기며 진실은 허위를 이기는 법이다. 이 자명한 리치는 어제오늘에 생겨난것도 아니다. 장구한 인류력사가 그걸 말해주고있었다. 설사 그 시대에는 역적으로 몰려 죽을수도 있고 오명을 벗지 못하고 수치스럽게 생을 마칠수도 있다. 허나 력사는 공정하고 세월은 그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그 당대에는 권력과 신분과 금전으로 선이 말살되고 정의가 짓눌리며 진실이 입을 다물수 있어도 력사와 세월은 그런 불의를 사정없이 일소해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력사의 공정한 평가를 높이 사고 또 두려워하는것이다.

무변광대한 이 땅을 둘러보라!

그 땅우에 수많은 왕궁과 나라가 세워졌고 권력자들이 치부를 위해 얼마나 그 땅을 혹사했던가. 허나 종당에는 한줌의 재가 되여 그 땅에 묻히고있다. 땅은 거짓을 모른다. 땀을 흘리고 피를 바친것만큼 열매를 준다.

허준은 비로소 설유와 예영이 그리고 어머니와 류이태, 죽순이와 선복이, 기동이와 칠성이, 달래를 비롯한 자기의 마음속에 가장 소중히 자리잡혀있는 그들이 자기를 지켜보고있다는 생각, 이 시각도 그들이 자기에게 참다운 선과 정의를 호소하고있음을 절감하였다.

그렇다! 제일 무서운것은 위리안치라는 이 현실이 아니라 자기자신을 잃는것이였다.

설사 역적으로 몰려죽어도 사람들은 이 허준이가 나라와 정의를 위해, 평범한 백성들을 위해 진실로 몸부림쳤으며 참답게 생을 마쳤다는것을 기억할것이다!

허준은 두주먹을 불끈 쥐고 이발을 사려물고 속으로 부르짖었다.

(이대로 죽어서는 안된다! 아니, 나에겐 이대로 거꾸러질 권리가 없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내 기어이 의서의 집필을 완성할것이다! 설사 여기서 무주고혼이 된다 하여도 이 허준이는 죽는 마지막순간까지 품은 뜻을 굽히지 않을테다!

설유와 예영이앞에 그리고 어머니와 스승앞에, 죽순이와 기동이를 비롯한 이 나라 백성들앞에 떳떳하기 위해서 내 기어이 살아 의서를 완성하리라!)

이날부터 삶을 위한 싸움이 시작되였다. 가시울타리로 둘러막힌 이 집과 마당이 허준의 삶의 전장이였다.

허준은 이 험악한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사의 생존싸움부터 시작하였다. 자기의 넋을 지키고 의서의 집필을 완성하려 해도 우선 여기서 살아남아야 하였다. 이런 험악한 조건에서 조금이라도 의지와 긴장을 늦추면 영낙없이 병에 걸리거나 쓰러져버린다는것도 허준은 잘 알고있었다. 오랜 기간의 치료경험을 통하여 허준은 질병도 의지박약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기승을 부리며 달려든다는것을 절감하고있었던것이다.

허준은 명의다운 눈길로 지금의 렬악한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책을 모색하였다. 살아갈 방책이 생기면 그다음에는 의서의 집필방도를 찾기로 하였다.

물론 험악한 이곳에서 의서집필이라는것은 상상조차도 할수 없었지만 하자고 독을 품고 달라붙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방도가 나질것이다. 허준은 언젠가 설유가 자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읊던 시조를 외워보았다.

 

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로다

오르고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만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맨먼저 허준의 눈길이 가닿은것은 곰팽이가 잔뜩 낀 허줄한 보리쌀자루였다.

이곳에 당도한 다음날에 수비군졸이 던져주고간것이였다.

허준은 자루안의 보리쌀을 토방우에 다 쏟아놓았다. 말이 보리쌀이지 짚검부레기와 돌, 모래알이 수두룩하였다. 허준은 쌀알을 하나하나 골라냈다. 그리고는 깨끗이 선별한 보리쌀들을 토방우에 골고루 펴놓고 해빛에 바싹 말리웠다. 사흘정도 지나니 보리쌀은 수분 하나 없이 깨끗이 말랐다. 허준은 마른 보리쌀들을 손바닥으로 비벼 그우에 낀 곰팽이를 벗겨냈다. 보리쌀의 량을 가늠해보니 자루속에 들어있었던 량의 7할이 되나마나하였다.

이것이 아마 한달분량의 식량인듯싶었다.

허준은 깨끗이 말리워 손으로 알알이 비벼낸 보리쌀을 다시 서른등분으로 나누었다. 그리고는 마당주변에서 맞춤한 차돌 두개를 얻어가지고 그 보리쌀들을 짓찧기 시작했다. 가볍게 두드리기도 하고 맞비벼 짓뭉개기도 하니 제법 누르끼레하면서도 보드라운 가루가 흘러나왔다. 그 가루를 입에 넣어보니 씁쓸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느껴졌다. 가마도 없고 부뚜막도 없는 이 집에서 생쌀로 먹기보다는 한결 더 감칠맛이 있었다. 이렇게 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량의 식량을 가지고서도 소화흡수률을 높이고 배고픈것도 면할수 있는것이다. 보리쌀가루를 입에 넣고 씹는 허준의 입에서 허거픈 웃음이 나왔다.

(이런 귀양지가 아니면 어데 가서 이런걸 먹어볼고?)

곰팽이가 낀 그 보리쌀도 금처럼 귀해보였다. 그래서인지 생보리쌀가루의 맛이 여간 고소하지 않았다.

참으로 사람은 환경과 조건에 따라 같은 음식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서로 다르게 감수하는가부다. 기아와 굶주림에 시달리고 극단한 경우에 부닥치면 여느때에는 감히 입에 넣을 생각도 못하던 천한 음식도 다 달게 느껴지는것이요 또 흥청스러운 생활속에서는 진귀한 음식도 귀찮게 보이는 법인것이다.

허준은 명백한 그 리치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한참 보리가루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니 목이 깔깔해왔다. 그 순간 허준은 문득 이 가시울타리안에 먹을 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이 섬찍하였다. 물이 없다는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것이다. 의원으로서 사람의 생활에서 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너무도 잘 알고있는 허준이였다. 입에 넣고 씹고있는 보리쌀가루보다도 어떤 측면에서는 물이 더 중요하였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기아와 굶주림에 시달릴 때 그것을 견디는 힘은 남자들보다 녀자들이 더 강한 법이다. 낟알을 전혀 입에다 대지 못하는 극단한 상황에 처했을 때 남자들은 기껏해야 열흘을 넘기지 못하지만 녀자들은 보름이상까지 견디여낸다.

그것은 녀자들은 엉뎅이부위와 배부위에 지방질 즉 기름질의 축적량이 남자들보다 훨씬 더 많기때문이다. 녀자들의 이와 같은 생리적특성은 태생기때에 새 생명을 키우고 탄생시켜야 할 모체로서의 중임을 지니고있기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상황속에서는 낟알보다 물이 더 중요한 작용을 하게 된다. 아무것도 안 먹고 굶는 경우 기껏해야 한주일을 넘기지 못해도 물이 있으면 근 한달이상 살수 있다. 이처럼 사람은 물과 떨어져서는 단 하루도 견디기 힘든것이다.

허준은 이 리치를 잘 알고있었다.

한편 허준은 내의원의 의관으로 있을 때에 위리안치에 대한 소문을 드문히 듣군 하였었다. 그에 의하면 위리안치된 죄인들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몇달만에, 어떤 사람들은 1년만에 또 어떤 사람들은 3년 지어는 5년까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물이 없으면 도저히 이렇게 생존할수 없는것이다.

허준은 일어서서 마당의 곳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물원천으로 될만 한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문득 이 집도 뒤울이 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뒤로 돌아가니 석자가량 되는 자그마한 뒤울이 있었다. 허준은 그곳에 눈길을 주었다. 어느 한 곳을 응시하던 그는 정신을 집중하였다. 분명히 해빛에 반짝거리는것은 물이였다.

(아! 물!)

다급히 가까이에 다가가보니 작은 솥만 한 물웅뎅이가 가시울타리의 착 밑에 붙어있었다.

자그마한 샘이였다. 당당하게 샘이라고는 말할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곳에는 정갈하고 깨끗한 물이 찰랑거리고있었다. 아마 근근히 이 정도의 물을 먹고 살라고 위리안치시키는 집의 위치를 샘이 있는 곳에 정한듯싶었다. 허준은 샘터에 엎드려 정신없이 물을 들이켰다. 쩡하고 답답하던 가슴이 시원해왔다. 이윽고 머리를 들고 샘물의 물면을 바라보던 허준은 깜짝 놀랐다. 전혀 자기의 모습을 찾아볼수 없는 낯선 사람이 올려다보고있었다. 눈확과 볼은 훌쭉해졌으며 얼굴에는 수염이 더부룩하게 나있었다. 피골이 상접한 그 모습을 보니 가슴이 쓰렸다.

《하하하!》

그 모습을 보며 미친듯이 웃어댔다. 한참 웃다가 다시 샘물을 들여다보니 귀신같은 자기의 몰골에 꺼이꺼이 울음이 나갔다.

잠시후 허준은 입술을 옥물었다. 살자면 자기 몸부터 깨끗이 거두어야 한다. 절제없는 생활, 그것은 곧 타락이고 죽음이였다.

허준은 두손으로 맑은 물을 떠서 얼굴을 씻기 시작했다. 귀양지에 온 이래 처음으로 하는 세면이였다. 보매 이 가시울타리안에서 가장 정갈하고 깨끗한것은 이 샘물밖에 없는듯싶었다. 허준은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었다.

(꼭 일어서야 한다! 반드시 견디여내야 한다!)

허준은 위리안치된 귀양지의 생활에 안착되고 익숙되기 위하여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다. 차차 그 생활환경에 익숙되면서 마음이 안정되여갔다. 허준은 매일 아침 일어나면 가볍게 운동하는것으로 일과를 시작하였다. 지나친 운동은 영양이 보장되지 않는 보리가루나 먹는 육체에는 손상되지만 적당한 몸놀림은 부족되는 영양을 대신할수 있었다.

그리고는 보리가루를 돌에 다시 짓찧어 더 보드랍게 갈아내는 일을 하군 하였다.

밤이 되면 될수록 깊은 잠에 들려고 의식적으로 애썼다.

이런 생활일과를 반복하느라니 점차 마음의 안정이 회복되였다. 안정이 되자 허준은 의서집필방도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아무런 방책도 떠오르지 않았다. 생존자체의 엄혹성보다도 의서집필의 방도가 없는것이 괴로왔다.

정녕 가시울타리로 둘러막힌 이 자그마한 공간에서, 외부세계와 완전히 격페된 고립무원한 이 섬에서 의서를 집필할 방책이 더는 없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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