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회)

제 5 장  의서도적놈들

8

 

허준의 《동의보감》 집필은 여러가지 난관속에서도 끊임없이 계속되였다.

아직도 양례수를 비롯한 내의원의관들은 허준의 《동의보감》집필을 마깝지 않게 여겼다. 틈만 있으면 그에 대하여 시비질을 늘어놓았다.

《전하의 주치의이면 임금님의 강녕을 위해 모든것을 다해야지 의서집필은 또 무슨 의서집필이요? 이게 제 본분을 저버리고 이름을 날리려는 불충불효한 배은망덕행위가 아니요?》

이들은 생각같아서는 임금님의 건강을 해치는 역신이라는 오명까지 서슴없이 붙이고싶었다. 그의 명성과 그의 공로가 나날이 높아져가고있는것이 그들에게는 그지없이 배가 아팠다. 전란이 끝났다고 하지만 아직은 시국이 자못 어수선하던 때였다.

허나 허준은 이를 악물고 이 모든 어려움을 참고 견디며 붓을 한시도 놓지 않았다.

이제에 와서는 《내경편》 네권과 《잡병편》 네권의 집필을 완전히 끝내고 열권이상으로 예상되는 《외형편》도 세권의 집필을 완성하였다. 이 공로로 허준은 1606년(선조39년)에 임금으로부터 《양평군》의 칭호와 《보국숭록대부》라는 정1품 품계를 하사받았다.

《동의보감》의 저자명을 보면 요란스러운 글줄이 기다랗게 붙어있다.

《어의 충군정랑 호성공신 숭록대부 양평군 허준》, 이 요란스러운 칭호와 벼슬은 허준이 이 시기에 받은것들이다.

후날 11권으로 집필된 《외형편》은 허준이 가장 어렵고 곤난한 시기에 완성한것들이다. 실지로 허준은 이 부분의 집필에 특별히 심혈을 기울이였다. 대부분의 질병치료에 관한 자료가 이 부분에 있었다.

허모는 근간에 와서 수미에게 더욱 깊이 빠지고말았다.

발광적이라 할 정도로 허준의 의서를 손에 넣으려는 수미의 행동을 허모는 이상쩍은 눈길로 주시하기 시작하였다. 암만 봐도 수수께끼같은 수미였다. 허나 수미가 전보다 더 교태와 아양을 떨며 색정을 더해주자 허모는 인차 그 모든것을 가뭇없이 잊고 다시금 수미와의 정사에 말려들어갔다. 본태가 녀색에 골이 튼 허모인지라 달리는 될수 없는 운명의 길이였다. 만약 이때 허모가 조금만 각성했더라도 그렇게 처참하게 개죽음을 당하지 않았을것이였다. 그러나 허모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인간의 정직성과 의리를 상실한 짐승으로 전락되였던것이다.

번마다 수미의 치마폭에서 도락을 누릴 때마다 허모에게서는 조선사람의 피와 넋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인간의 본성마저 희미해져갔다. 시궁창의 썩은 구정물이 피가 흘러야 할 혈맥속에 너무도 깊숙이 침투되였다.

어느 하루는 수미가 의술을 배우겠다면서 혜민서에 넣어달라고 졸라댔다.

수미한테 마취되여 소금섬을 강녘으로 끌라고 해도 끌판인 허모는 함치우에게 금전을 찔러주고 수미를 혜민서에 넣었다.

나고야 겐이한테서 의술을 배운 수미여서 그의 수준은 혜민서에 들어간지 얼마 안있어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혜민서에서 제일 의술이 높은것은 예영이였다. 예영이는 수미보다 다섯살이나 우였다.

예영이는 갓 들어온 수미가 의술이 여간 아닌데 대해 관심을 표시하였으며 둘은 인차 친숙해지게 되였다. 이미 시집을 간 예영은 수미를 볼 때마다 어떻게 저리도 곱게 생긴 처녀가 그 나이에 이르도록 시집을 안 갔을가 하고 생각하고 하루는 조용한 기회에 물었다.

《수미, 넌 꽤나 예쁘장하게 생겼는데 왜 아직도 홀몸이니?》

수미는 초리긴 속눈섭밑에 가랑가랑 눈물을 지었다.

《아니, 왜 그러니?》

전란때 부모를 다 잃고 천애고아가 되였다는 말을 들었던 예영이는 그가 부모님들생각을 하느라고 그러는가부다 생각하며 그의 잔등에 손을 얹었다.

《내가 네 가슴을 아프게 했구나.》

《아니예요. 그런게 아니예요.》

수미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언니, 난 사실…》

수미가 들려준 이야기를 그날 예영은 집에 돌아가 부모님들과 남편에게 들려주었다.

수미의 아버지는 본래 경상도 동래사람인데 젊어서부터 의술이 높았다고 한다. 아버지의 친구가 사량태생인데 하루는 그가 와서 어머니의 병이 위급한데 좀 같이 가서 치료해주지 않겠는가 하기에 아버지는 친구를 따라 사량으로 가게 되였다. 그때가 1544년 봄이였다. 아버지가 사량에 가보니 친구 어머니의 병은 해수병이였다. 아버지가 성의를 다해 치료하여 친구의 어머니가 병이 나아져 다음날 동래로 돌아가려고 하던 바로 그날밤, 갑자기 왜구들이 사량으로 쓸어들어 살인방화와 략탈을 감행하였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친구와 함께 놈들에게 붙들려 쯔시마로 끌려가게 되였다. 아버지가 의술에 능하다는것을 알게 된 왜놈들은 그에게 저들의 병을 보아주는 의원노릇을 하게 하였다. 하여 아버지는 근 수십년간 쯔시마에서 왜놈들의 의원노릇을 하게 되였다.

몇번이나 놈들의 소굴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했지만 번마다 실패하고 매만 죽도록 맞았다. 왜놈들은 함께 끌려갔던 친구를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화형을 하며 다시한번 도망치려 하면 네놈도 이렇게 불태워죽이겠다고 위협하였다. 아버지는 의술이 높았기에 감히 다치지는 못하였다. 대신 엄격한 감시속에서 숨막히는 생활을 강요당하였다. 나이 오십이 넘었건만 그때까지 아버진 홀몸이였다. 동래엔 부모들이 점찍어놓은 처녀가 있었건만 아버지는 그 처녀와 영리별을 했던것이다.

언제인가 아버지가 심하게 앓아눕게 되였다. 아버지가 사는 집은 쯔시마령주의 관아에서 얼마 멀지 않는 곳에 있었는데 거기에는 아버지에게 때식을 보장해주는 늙은 로파와 딸이 함께 살고있었다. 당시 딸의 나이는 거의 서른살이였는데 어찌된지 홀몸이였다. 로파와 딸은 매일밤 아버지의 머리맡에서 밤을 새며 성심으로 간호하였다. 어떤 때는 로파가, 어떤 때는 딸이 번갈아 머리맡을 지키면서 아버지를 돌보았다. 모녀의 진정으로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난 날 로파가 아버지에게 말을 건늬였다.

사연인즉은 제 딸의 남편이 되여달라는것이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딸이 세번씩이나 시집을 갔댔는데 무슨 염병이 붙었는지 한두해도 못되여 남편들이 다 죽었다는것이였다. 아버지가 보기에도 딸은 인물이 퍽 고왔다고 한다. 키가 늘씬하고 눈도 억실억실한게 척박한 이 쯔시마에 저런 미인이 다 있을가 하는 정도로 용모가 아릿다왔다. 그런 미인에게 저런 불상사가 있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로파의 말이 세번씩이나 남편이 죽어버리자 다시는 그 누구도 데려가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울면서 토로하였다.

《내 더 늙기 전에 저애가 맘편히 사는것을 봐야 눈을 감을것 같소이다. 그러니 의원어른이 우리 딸애를 좀 살려주시우다.》

아버지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말이 다 나가지 않았다. 그러니 나는 죽어도 일없다는 소리가 아닌가. 조선사람은 죽어도 일없고 네놈의 왜인들은 살겠다는 말인가 하는 소리가 입에서 튀여나올번 하였다. 허나 아버진 기나긴 삼십년세월을 이 풍토척박한 쯔시마에 잡혀와 왜놈들의 병을 치료하고있었다.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하고있는데 로파가 《에구, 조선사람두 인정이 박하구만. 난 그래두 당신네는 우리와 달리 인정이 많다는 소릴 듣구 겨우 말을 붙인건데… 그러고보면 사내들이란 일본이구 조선이구 다 같구 같지…》 하며 일어서는것이였다.

그 순간 아버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만, 내 결심을 아직 말하지 않았소. 딸을 여기 데려오시우.》

문밖에서 귀를 강구고있던 딸을 로파가 곧 데리고 들어왔다.

《자. 그럼 딸은 이제부터 내 사람이요. 내 한마디 할것은 내 나이 쉰을 넘었소. 기껏 살아야 한 십년 아니 그보다 더 오래 살수도 있고 일찍 죽을수 있소. 그러나 한가지만은 명심하오. 우리 사이에 애가 태여나면 어떤 일이 있어도 조선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거요.》

이렇게 되여 불쌍한 한쌍이 쯔시마에 태여나게 되였다. 사흘후에 로파가 말했는지 쯔시마령주가 직접 아버지가 거처하는 집으로 찾아왔다.

《이제야 의원님이 제정신을 차렸구려. 응당 그랬어야지. 좌우지간 색시를 얻은걸 축하하오.》

하면서 새로 집 한채를 마련해주고 많은 재산을 보내주었다. 아버지의 마음을 사보려고 숱한 계집들과 재물을 들이밀었지만 도저히 그 마음을 움직일수 없었던 령주로서는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었고 또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었던것이다.

이듬해 계집애가 태여났다. 태여난 첫날부터 계집애는 이름이 둘이였다. 집안에서는 수미라 불렀으나 밖에 나가 놀 때에는 후유꼬라 불렀다. 수미는 철이 들면서 아버지에게서 조선글을 익혔고 열살때부터는 의술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수미의 할머니는 수미가 다섯살 잡히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눈을 감으면서 할머니는 자기 딸이 네번째로 택한 사내가 죽은것이 아니라 펀히 살아 자기의 림종을 지켜주는것을 보고 눈물을 머금으며 맘편히 세상을 하직하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가정을 이룬 후 어찌된 일인지 이전과 달리 기력이 왕성해서 의술에 전념하였고 무슨 의서를 쓴다고 모지름을 썼다. 어머니가 후에 말해준데 의하면 쯔시마에 끌려온 조선사람들의 병치료에 적합한 비방에 관한 의서를 집필하려고 했다고 하였다. 쯔시마에는 왜구들에게 끌려온 조선사람들이 많았으며 웬간한 왜인들도 조선말을 번질줄 알았다고 한다.

전란이 일자 아버지는 고향으로 가자고, 죽어도 고향에 묻히고싶다고 하면서 밤중에 몰래 어머니와 수미를 데리고 배에 올랐다. 허나 거제도를 거의 가까이하였을 때 풍랑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바다의 령혼이 되고 수미는 젊은 나이인지라 간신히 섬에 오를수 있었다고 한다. 어부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수미는 혈혈단신이라 어데 갈 곳도 없고 친척도 없는 몸이였다. 그래서 아버지의 고향에 가보았으나 전란의 첫 세례를 받은 동네인지라 아버지의 일가친척들은 하나도 살아남은것이 없었다. 마을사람들이 아버지의 동생되는분의 아들이 한성에서 무슨 황아장사를 하며 살아간다는 뜬소문이 있더라는 말을 하기에 여기 한성에 올라온 수미였다.

넓고넓은 한성시가에서 그야말로 숲속에서 바늘찾기격이였다. 사촌오빠벌이 되는 사내를 어찌 찾는단 말인가. 더구나 전란으로 아비규환이 된 시국이였다.

수미는 사촌오빠라는 사람을 찾기를 단념하였다. 그리고 의술을 련마하기로 결심하였다. 아버지의 소원이 의서를 쓰는것이였으니 내 비록 녀성의 몸이지만 의서를 쓰리라. 하여 수미는 여직껏 가정이란것을 생각해보지 않았다. 오직 아버지의 소원대로 훌륭한 의서를 쓰는것, 이것이 바로 혈혈단신 천애고아인 수미를 지탱하고있는 기둥이였다. 그래서 여태 홀몸으로 지내는 수미였다.

예영의 이야기는 끝났으나 방안엔 정숙만이 흘렀다. 허준은 너무도 크나큰 충격으로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았다. 젊었을적에 읽었던 동봉대사 (김시습)가 세조의 왕위찬탈에 항거하여 벼슬을 버리고 방황하면서 경주 금오산에 들어가 썼다는 《리생규장전(리생의 사랑)》의 이야기인들 이보다 더 비극적이랴.

설유도 믿어지지 않는 수미의 경력을 들으며 눈물을 머금었고 례조에 다니는 예영이의 남편도 눈을 슴벅거리기만 하였다.

《듣고보니 기막힌 얘기로구나. 그 랑자가 용하긴 용타. 이 세월에 의지가지할데 없는 랑자의 몸으로 의서를 쓰겠다니 그게 어디 쉬우냐? 헌데… 참 모를 일이야.… 그런 랑자라면 내 우정 찾아가서 만나보자꾸나.》

후진들에 대한 관심이 보통이 아닌 허준이다. 스승인 류이태로부터 물려받은 품성이라고도 볼수 있었다. 허준은 후진을 키우는데 절대로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전의감에서 운영하는 의원양성소에 아무리 일이 바빠도 나가보는 허준이다. 죽순이를 대신하여 지금은 선복이가 전의감에서 양성생들을 가르치고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수미가 아버지를 만나보았으면 하오이다. 자기가 이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의원은 아버지라고 하면서…》

그 말을 꺼내면서 예영이는 어머니를 힐끗 건너다보았다. 아무런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 예영은 이 자리에서 수미가 한 딴 말은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분명 수미는 그 고운 얼굴이 붉게 상기되여 이렇게 말하였다.

《언니, 내가 이렇게 속을 터놓은 사람은 이 세상에 언니 한명뿐이예요. 그리고 내가 이 세상에 마음두고있는 사내가 누군지 아세요?》

수미의 일생담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던 예영은 눈굽을 닦으며 놀라 되물었다.

《너에게도 마음드는 사내가 있니?! 그게 누군데? 내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사람을 찾아다 네앞에 세워줄게. 그게 누구니?》

한참 수미는 머밋머밋거렸다. 그럴 때의 수미의 모습은 참말로 고왔다.

《부끄러워하긴, 어서 말해!》

수미가 고운 눈을 할깃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나, 이 말 하면 욕 안하지요?》

《그건 무슨 소리야? 내가 왜 널 욕한단 말이냐?》

《그럼 내 말할게 언닌 욕해선 안돼요. 그 사내는 언니네 아버지!》

내가 잘못 듣지 않았는가? 내 귀가 잘못된게 아닌가? 예영은 다시금 물었다.

《누구라구? 너 이자 누구라구 했니?》

이번엔 수미가 큰소리로 웨쳤다.

《허준선생님이라고 했어요!》

세상에 이런 기막힌 일도 다 있는가? 이렇게 젊디젊고 아릿다운 수미가 다름아닌 우리 아버지를 맘속에 두다니?! 이애가 지금 제정신인가.

《너 실성하지 않았니? 우리 아버지를?… 얘, 웃기지 말아! 난 또 무슨 호동왕자쯤 되는줄 알았더니 환갑이 다 된 우리 아버지를 마음에 두었다니 그것두 말이라구 하니?》

수미가 왈칵 눈물을 쏟는다. 자기의 부모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렇게까지 슬피 울지 않던 수미가 목을 놓아 흐느끼자 예영은 당황하여 소리쳤다.

《얘, 넌 왜 이러니? 어린애처럼 소리내여 울긴?》

그러나 수미의 흐느낌소리는 그칠줄 몰랐다. 예영이는 수미를 달래였다.

《됐어. 내가 잘못했어. 그만 그쳐.》

이윽고 얼굴을 든 수미가 못을 박듯 또박또박 말하였다.

《언니가 욕할줄 알면서두 말했어요, 우리 어머니도 그랬고 나도 그래요. 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이가 많든 가정이 있든 상관 안해요. 그리고 남의 가정을 파할 생각도 남의 첩으로 들어갈 생각도 없어요. 그저 한생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속에 간직하면 족해요.》

예영은 지금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못할짓을 한것 같은 죄의식이 들었으나 차마 그 말은 꺼내놓을수가 없었다. 그저 아버지를 한번 만나고싶어 한다고만 말하였을뿐이다. 고개를 끄덕거리는 허준의 눈에 무엇인가 섬광같은 빛이 언뜻거렸다.

《내 기회를 타서 너희네 혜민서에 한번 가마. 그때 그 수미라는 의원을 만나보자꾸나.》

그후 허준은 혜민서에 간 기회에 수미를 만나보고 집으로 돌아와서 설유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예영이가 말하던 수미를 오늘 혜민서에 일이 있어 갔다가 만나보았더니 녀자로 태여난게 아깝더군. 눈썰미가 있구 또 학문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더구만. 헌데 말이요. 너무 곱게 생겼어. 사내들이 줄지어 따라다니겠더구만. 젊었을 때 내가 선생님의 집에 갔을 때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의 감정이 생각나더군.》

설유가 손을 입가에 가져가며 가볍게 웃었다.

《왜 웃소?》

《어의님의 입에서 녀인들이 곱다는 소릴 살면서 첨 들어보니 그러지요. 그렇게도 미인이던가요?》

《정말 미인이요. 아마 이 한성부중에 그런 미인은 보기 드물거요. 남남북녀라니 저 회령이나 강계에는 몰라두 말이요.

그런데 어딘가 날 대하는 태도라던가 말하는걸 가만히 보면 무슨 내속이 있어보이더군. 어쩐지 당신이나 우리 예영이, 죽순의원님이나 선복이같지 않더란 말이요. 그 고운 용모밑에 뭐인가 숨기고있는것이 느껴지더란 말이요.》

설유는 피뜩 집에 급한 환자라고 업혀들어왔던 왜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왜년도 굉장한 미인이였다. 그땐 너무 경황이 없어 자세히 뜯어보지 않았지만 설유의 눈엔 분명 그 왜년이 비록 인사불성이였으나 꽤 곱구나 하고 생각했던것이다.

왜 갑자기 이 자리에서 그 왜년이 생각났는지 설유로서는 알수 없었다. 만약 그때 설유가 수미의 인상표징을 물어보았더라면 일은 달리 될수도 있었다. 허나 설유는 남편에 대한 믿음이 너무도 강했고 부부사이에 티만한 오해도 원치 않는 녀인이라 더 캐묻지 않았다. 괜히 제가 시샘하는것처럼 여겨져 머리속에 떠오른 생각을 지워버리고 수미란 불쌍한 녀인이 어떻게 생겼기에 남편이 저리도 평가할가 생각했을뿐이였다.…

허준을 만나고난 수미는 그날밤 불안하기만 하였다. 놀란 토끼처럼 밤새 안절부절하였다. 허모의 이복동생이니 그렇겠거니 했는데 정작 만나보니 그 인품과 의학지식앞에 주눅이 들어 할 말도 제대로 못한 수미였다. 여태껏 수미가 대상한 사내들은 나고야 겐이와 마나세 쇼링, 고니시 유끼나가를 비롯한 왜나라의 한다하는 사내들이였다. 그들은 제나름대로의 도와 인격이 있는 거물급인물들이였다. 그러나 수미앞에서는 한갖 사내였다. 조선에 건너와서 대면한 허모도 비록 수미의 치마폭에 감겨돌지만 여간내기가 아니였다. 보아하니 자기를 욕구를 만족시키는 계집으로밖에 여기지 않는것 같았다. 조정사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는다.

근간에 와서는 자기를 대하는 태도가 미적지근하다. 무슨 냄새를 맡은것 같기도 한데 절대로 입밖에 꺼내지는 않는다. 한차례의 도락이 끝나면 실눈을 짓고 자기를 무슨 관상용앵무새나 되듯이 찬찬히 주시해보는데 그럴 때면 실눈이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분명 자기의 언행에서 뭐인가 기미를 챈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수미는 자기의 미모와 갖은 교태로 허모를 제 치마폭에 더 깊이 끌어들이리라 생각하면서도 어떻게 허준이를 줌안에 넣을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암만해도 자신심이 없었다. 준수하고 영채도는 두눈이 자기를 홀연 아이로 보는듯 했고 또 그 사색깊은 눈길은 자기의 속내를 빤히 들여다보는것 같았다. 그리고 부모없는 자기 처지를 진심으로 위해주는 그 인정과 덕앞에선 별안간 실지로 눈물이 쏟아질번 하였다. 실지 수미에게는 부모가 없었다. 수미가 예영이한테 말한 가정사는 거의 진실에 가까왔다.

다른것이 있다면 부모들의 출신이였다. 아버지는 제포에서 일본거류민들의 의원노릇을 하다가 사량왜변이후 일본과 조선과의 통상이 끊어진 다음 쯔시마에 옮겨왔고 그곳에서 어머니를 만났다. 실지로 어머니에게는 아버지가 네번째 남편이였는데 쯔시마령주의 소개로 함께 살았던것이다. 당시 어머니는 령주의 하녀였다. 쯔시마엔 조선사람들이 많아 후유꼬는 어려서부터 조선말을 잘하였다. 그에게 글을 배워준것도 사실은 쯔시마에 와있는 조선인 훈장이였다.

후유꼬가 다섯살때 아버지가 돌아가고 열두살때 어머니는 바람같이 사라져버렸다. 어머니가 행불되기 전 어느날 밤 어머니를 기다리다가 지쳐서 잠이 든 후유꼬는 한밤중에 어머니와 웬 사내가 웃방에서 얘기하는 소리에 깨여났다. 사내의 웅글은 말소리가 잠결에 깨여난 후유꼬의 귀전에 들려왔다.

《이애를 두고 일없겠소?》

울먹이며 하는 어머니의 말소리가 그뒤를 따랐다.

《어쩌겠어요. 별수가 있나요.》

동 닿지 않는 그 말들이 무슨 소린지 후유꼬는 며칠후에야 알았다. 그로부터 나흘후 어머니가 온다간다 소리없이 사라져버렸다. 후유꼬는 닷새동안 어머니를 찾으며 슬피 울었으나 어머니는 끝끝내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열흘후 령주가 보냈다는 두억시니같은 장정 둘이 집으로 와서 어머니를 만나게 해준다면서 그를 배에 태웠다. 어린 후유꼬는 《정말 우리 어머니를 만날수 있나요?》 하고 몇번이나 물었다. 장정들은 《그럼, 만날수 있구말구.》 하며 선선히 대답하였다. 그러나 후유꼬가 당도한 곳은 어머니의 품이 아니라 병부에서 운영하는 무슨 군대련무장이였다. 그곳에서 후유꼬는 몇해동안 온갖 고통을 참으며 훈련을 받다가 나고야 겐이한테 소개되여 오늘과 같은 녀인이 되였던것이다.

허준이 인자한 아버지마냥 자기를 굽어보며 《부모들이 살아계셨으면 이렇게 혼기를 흘려보내고 홀로 사는 임자를 보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나. 의술을 닦고 의서를 쓰는것도 좋지만 좋은 대상을 골라 가정을 이루게.》 하고 말할 때 후유꼬는 진정으로 감동되여 눈물을 떨구었다.

후유꼬의 눈으로 볼 때 허준은 단순한 명의일뿐아니라 어찌 보면 인자한 부모같고 너그러운 스승같았으며 대신들도 무색할 아량과 웅지를 지닌 도와 격이 있는 사내였다. 그런 사내를 홀린다는것이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오히려 후유꼬 자기가 허준이한테 동화될것 같은 당혹감이 머리를 쳐들었다. 허나 물러서면 안될 도박이 이미 시작된셈이다. 물러서면 뒤에는 아찔한 낭떠러지였다. 더 물러설 자리가 없지 않는가. 어쨌든 칼 물고 뜀뛰기를 해보자. 이왕 시작한 도박이니 결말이 있어야 한다!

한편 곤도에게 허준을 시야에서 놓치지 말라고 오금을 박을 생각이였다. 이 나라 속담에 꿩 잡는게 매라고 종당에는 의서를 손에 넣으면 그저그만이였다. 그들이 노리는것은 바로 의서의 보관장소였다. 아직은 후유꼬도 곤도도 그 실마리를 잡지 못한 상태였다.

 

때로는 그렇게 고대하던 일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이 전혀 예상치 않게 불시에 맞아지는 경우도 있는 법이다.

허모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였다.

1608년 초봄 어느날 여느날과 다름없이 례사롭게 흘러가던 이날밤에 조정과 궁궐안을 들썩하게 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날은 허모에게는 두번다시 없을 행운의 날로, 허준에게는 일생에 다시 없는 비극과 불행의 날로 되였다.

마침 사헌부에서 나오던 허모의 눈에 수많은 대신들이 사색이 되여 분주히 오고가는것이 띄였다.

무슨 큰일이 생겨서 지체높은 대신들이 허둥지둥하는지 영문을 알길 없었다. 허모의 앞으로 마침 면식이 있는 한 례조의 관리가 지나가기에 붙들고 물어보았다.

《무슨 일이 생겼수?》

그 관리가 주위를 일별하더니 소리를 낮추었다.

《방금전에 전하께서 붕어(임금이 죽은것)하셨소.》

《?!》

허모는 순식간에 머리칼이 쭈빗 일어서는것 같았다. 온몸에 전률이 일었다. 그는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다급히 자기 방으로 들어섰다.

(임금이 죽었으니 어의인 허준이놈도 무사치 못하겠구나. 드디여 내가 기다리고 또 기다리던 그날이 왔구나!)

그의 눈에서는 무서운 독기가 뿜어져나오기 시작하였다.

임금이 죽은것을 허준이에게 죄를 몰아붙이면 그놈은 영낙없이 역적의 루명을 뒤집어쓸것이 불보듯 뻔한 일이였다.

허모는 급히 돌아서서 내의원의 함치우를 찾아갔다. 임금의 붕어로 내의원은 그야말로 초상난 집이였다. 복새통속에서 신고해서야 겨우 함치우를 만날수 있었다.

허모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으슥진 곳으로 함치우를 끌고갔다. 보아하니 함치우도 어지간히 흥분되여있었다.

《판관어른은 전하의 붕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오?》

한 나라의 최고권력자인 왕이 세상을 떠나면 제일 볶이우는 곳이 내의원이였다. 모든 의관들이 야밤삼경에 불리워나와 바삐 돌아치는데 난데없이 불쑥 나타나 구석진 곳에 데리고가서 이렇게 묻는 허모가 함치우에게는 이상스러웠다.

왜 이자가 날 찾아왔을가? 그런것이나 물어보려고 이 밤중에 찾아왔을리 만무하였다. 이는 분명 임금의 주치의인 허준을 념두에 두고 묻는 수작질이였다. 함치우는 얼핏 허모의 얼굴을 넘겨다보고는 거침없이 횡설수설하였다.

《전하께서 급사하신것은 명백히 주치어의인 허준에게 책임이 있다고 보네. 어의가 눈을 펀히 뜨고있으면서 이런 불상사를 가져왔으니 이게 어디 있을번 한 일인가? 허준이 어의로서의 구실을 똑바로 했다면 어찌 전하께서 비명에 붕어하셨겠소? 그가 하는 일이 대체 뭐요? 밤낮 의서를 쓴다고 돌아치면서 어의로서의 본분을 제대로 수행 못했으니 그 어찌 허투루 대할 문제겠소.》

앓던 어금이를 뽑아던진것만큼 마음후련한 소리였다. 허모는 실눈에 웃음을 머금고 붙는 불에 키질하였다.

《옳소이다! 이건 대역부도한 죄에 못지 않은 역신의 행실이지요! 내게 떠오르는 수가 있으니 판관어른은 빨리 이러한 자료들을 문서에 담아 의관들의 지장을 받아오는게 좋겠소이다!》

한식경도 안되여 함치우가 문서를 들고 나타났다. 어의로서 자기 임무를 태공하여 임금님을 붕어하게 한 역신이라는 어마어마한 죄목과 그를 의학적으로 보증하는 론거들이 장황하게 적혀있는 문서에는 함치우와 내의원 의관들의 지장들이 찍혀있었다.

임금을 사망케 한 역신을 조금이라도 두둔하는자는 그 역신과 꼭같이 취급한다는 소리에 내의원 의관들이 마지못해 지장을 누른것이였다.

허모는 이 일을 누가 시야비야 할새없이 속전속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계책이 서있다고 해도 질질 늦추면 어느 모퉁이에서 어떻게 예상밖으로 일이 찌그러져나갈지 몰랐다.

함치우의 문서를 받아든 허모는 거기에 자기의 처리안을 덧붙여 대사헌을 찾아갔다. 대사헌이 놀란 눈길로 허모를 바라보았다.

《이게 정말이냐?》

《사실이옵니다. 소인이 전하가 붕어하셨다는 비보를 접하고 그 원인을 알아보니 내의원 의관들이 한결같이 어의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공동으로 증빙문서를 보내왔소이다.》

대사헌은 허모가 내민 문서를 점도록 응시해보았다. 어쨌든 쉽게 결심할 문제가 아니였다.

불쑥 허준이 이전 내의원 제주 류희춘의 소개로 내의원에 들어왔고 나중에는 어의로 등용되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게다가 요즘에는 서인들이 외직으로 쫓겨갔다가 다시 조정의 내직에 들어온 리해수를 다시 대사헌으로 추천하려 한다는 뛰뛰한 소문도 나돌고있었다. 리해수나 류희춘은 어쨌든 리이와 같은 서인이 아닌가.

《그렇다?! 헌데 위리안치형벌을 주자는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을가?》

허모는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고 기염을 토했다.

《하루사이에 임금을 비명으로 붕어시킨 그 죄야 사실 역모죄나 다름이 없다고 보오이다. 그러니 부디 심사숙고하시길 바라나이다.》

온 대궐안에 팽팽한 분위기가 감도는 속에서 혀바닥을 잘못 놀리였다가 누가 언제 어떻게 역신이라는 감투를 뒤집어쓸지 모르는 판이였다.

하여 허준은 불충불경죄로 선조가 세상을 떠난 그날로 옥에 갇히우게 되였다. 내의원의 의관들이 보증했다는 그 증빙문서가 큰 효력을 나타냈다. 허모 못지 않게 함치우는 양례수를 추동하여 의금부로 드나들면서 허준의 유죄를 떠들었다.

허나 양례수네들의 주장과 달리 선조의 사망은 불치의 병과 관련된것이였다.

당시의 기록들에는 선조가 편치 않은지 해포 즉 1년이 되였다고 씌여있다.

《광해군일기》권1 무신년 2월 초하루 무오일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여있다.

《미시(오후 1~3시)에 임금이 찹쌀밥을 들다가 갑자기 병이 나서 숨이 막히면서 위급하게 되였다. 대신들이 대궐의원인 허준 등을 데리고 들어와서 진찰했으나 임금의 병세는 이미 더는 어찌할수 없게 되였다. 모든 대신들이 다 울면서 나갔다. 조금 뒤에 임금이 세상을 떠났는데 때는 신시(오후 3~5시)였다.》

그리고 그뒤에서는 임금이 편치 않은지 해포가 되였다고 쓰고있다.

앞에서는 찹쌀밥을 들다가 갑자기 병이 나서 숨막히면서 위급하게 되였다고 기록하고는 뒤에서는 앓은지 1년이 되였다고 쓰고있다. 앞뒤론리가 맞지 않지만 총적으로는 이미전부터 앓고있었다는것이다.

당시 선조는 57살이고 왕위에 있은지는 41년이였다.

어느 설이 맞는지는 정확히 알수 없으나 어쨌든 그 당시 당쟁의 와중으로 복잡다단했던 조정의 실상을 보여준 비화라고 말할수 있을것이다. 물론 임금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어의인 허준에게 그 책임을 따지는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만약 선조가 불치의 병이라면 그 당시 의학의 발전수준에서 고쳐낼수 없을것은 자명하였다.

허나 허준은 어의라는 그 한가지 리유로 하여 또 의서집필에만 몰두하면서 존귀한 성상의 옥체를 잘 돌보지 못했다는 무근거한 죄명을 쓰고 정배살이를 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처음에는 북방으로 갔다가 후에 대간들의 제의로 곡도로 끌려가 위리안치라는 형을 받게 되였다.

《감찰나리! 허준이 함거(수레우에 나무를 둘러대여 죄인이 달아나지 못하게 한것)에 실려 정배지로 떠난다 하오이다.》

심복부하가 떠올리는 그 말을 듣는 허모의 실눈에서는 시퍼런 독기와 함께 승리자연한 삵의 웃음이 흘렀다.

허나 아직은 탕개를 늦추고 마음을 놓을수 없었다. 댓새가 지나서 자기가 파한 심복으로부터 허준이 형리들의 압송하에 정배지로 떠났다는 보고를 듣고서야 허모는 쾌재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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