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 회)

제 3 장  한성에 나타난 시골의원

8

 

평상에 기대앉은 선조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한마디로 선조의 심기는 편안치 않았다. 어찌된 일인지 조정의 분위기가 평온치 못한것이다. 무슨 염병이 들었는지 궁실과 조정의 측근신하들속에서 상가가 잦았다. 지난해 가을에만도 전날까지도 아무런 일이 없었던가싶던 동부 승지 류도가 급사하더니 그로부터 닷새후엔 임금집안의 풍성군이 덜컥하였다. 전날까지도 펀펀하던 류도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선조는 너무도 믿어지지 않아 경연까지 파하였다.

그런데 올해에 들어와서도 상가가 꼬리를 물었다. 정초부터 참판 김계가 죽더니 겨울에 들어서면서 임금집안의 의성대비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였다.

의성대비란 선임금 명종(리환)의 비였던 돈녕부 령사 심강의 딸인 인순왕후 심씨를 말한다. 리환에게 시집온 후 범같은 시어머니인 문정왕후의 밑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살아온 심씨는 그에게서 순회세자를 보았으나 세자가 13살에 비명으로 횡사하고 또 명종이 세른네살의 젊은 나이에 붕어한 후 홀몸으로 고독하게 살고있었는데 당시 나이는 마흔을 갓 넘었었다. 왕비라고 하지만 오랜 기간 문정왕후의 등쌀에 기도 못 펴고 숨소리마저 죽이며 살아왔다. 문정왕후가 죽은 후 이젠 마음편안히 재미나게 살아보자던 노릇이 그만에야 2년만에 명종이 돌아가자 자식 하나 없이 외롭게 살고있는 의성대비를 선조는 친어머니이상으로 돌봐주고있었다. 허나 어찌 된 일인지 대비의 병은 호전될줄 몰랐다.

선조는 류희춘을 불러 의성대비의 병상태를 알아보고 제가 직접 병문안까지 하였다. 궁실담당 녀의원인 선복에게 대비의 병치료를 잘하라고 분부하고 돌아온 선조는 평상에 기대여 근간에 자기의 몸상태도 여의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금의 나이는 이해를 넘기면 스물네살, 열여섯살나이에 옥좌에 올랐는데 어언 8년이 되여온다. 허나 자기의 몸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정작 옥좌에 올라보니 여간 불편스럽지 않은것이 임금자리였다. 왕이라고 하면 문무백관들과 백성들이 감히 얼굴을 쳐들고 마주보지도 못하는 신성불가침의 존재여서 제 하고픈대로 할것 같지만 전혀 그와 딴판이다. 매사건건 대간들이 간언하는데 막 시끄러울 정도이다. 어데 가고싶어도 《전하의 옥체를 돌보셔야 하오이다.》, 《전하의 지체에 어울리지 않소이다.》 하는가 하면 임금자신은 간편한 옷차림을 하고다니고싶으나 《전하, 곤룡포를 입으셔야 하오이다.》, 《전하는 만민의 거울이니 허술히 차려입고 나서면 안되오이다.》 하며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한다.

요즘 선조는 류희춘과 더불어 경전에 대한 론의를 하는것이 흥미있었다. 확실히 류희춘은 나라안의 재사임이 틀림없었다. 모르는것이 없었다. 그 어떤 문제를 물어봐도 막히는것이 없이 일사천리로 언변을 토하는데 신기할 정도였다. 흠이 좀 있다면 인생경륜을 다 겪은 환갑나이의 류희춘이라 너무 심중하게 발언하는것이다.

허나 선조는 그것이 싫지 않았다. 박학다식한 그 학문뿐아니라 종묘사직을 진실로 위하는 충의가 마음에 들었기때문이다.

복잡한 조정사를 생각하던 선조는 갑자기 얼굴을 찌프렸다. 뜨문히 머리가 지끈거리고 명치가 무죽한게 심상치 않았다.

이때 류희춘이 왔노라고 내시가 알려주었다.

《어서 들여보내라!》

자기의 아픔을 보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선조는 아무 내색없이 평상에 정히 앉아 류희춘을 맞아들였다.

《대비마마의 병증세에 대해 의원이 말한 내용을 아뢰려고 왔소이다.》

《그래 대비의 증세가 어떠하오?》

《대비마마를 치료하는 선복이 말하기를 <대비마마의 병증세가 사시초에는 오한기로 다시 몸을 떨더니 목구멍에서 담이 끓는 소리가 약간 있었다.>고 하였소이다.》

선조는 자기의 몸상태를 류희춘이 알아차릴가봐 그와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럼 제주가 시약청에 말해서 대비의 병증세에 해당한 의서를 궁성안으로 들여오는것이 좋겠소.》

류희준이 머뭇거렸다.

《과인에게 무슨 할 말이 있소?》

《저, 대비마마의 병증에 들어맞는 그런 의서가 없는줄로 아옵니다. 소신이 미리전에 내의원에 그런 병증세와 관련한 치료비방이 들어있는 의서가 없는가를 알아본데 의하면 이전에는 그 비슷한 병과 관련한 의서가 있었는데 지금은 보기 힘들다고 하오이다.》

《경의 선견지명 있는 일처리가 마음에 드오. 그러면 대비의 병은 못고친다는 소리가 아닌가. 대비를 치료하는 녀의원이 의술이 퍽 용하다지만 나이가 어리니 아직 경험이 없겠구만. 그 의원의 모친이 의술이 높다던데 그를 초청하면 어떻겠소?》

선조의 말에 류희춘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그가 보기에도 대비의 병은 이미 기울어진 상태였다. 오랜 기간 앓은 병이니 어쩔수 없었다.

허나 희춘은 이 시각 다 기울어진 대비로 하여 죽순이까지 이 일에 개입시키고싶지 않았다. 분명 대비의 목숨은 하루이틀내에 판결날것이다. 이제 그러면 무슨 구실이 없어 눈을 밝히는 사간들이 벌둥지 쑤셔놓은듯 왁 일어나 대비를 치료한 의원을 잡아먹자고 할것이 명백하다. 아직 앞길이 구만리같은 선복이 옥에 갇힌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하였다. 그 판에 그의 에미까지 끌어넣어서는 안된다.

《아룁기 황송하오나 그 모친은 나이가 들어 의술이 이전같지 않다고 하옵니다. 오히려 딸보다도 의술이 못한것으로 보아지니 그만둠이 어떻겠소이까?》

선조는 류희춘의 대책에 심드렁해서 그리하라구 응낙하였다. 돌아서던 류희춘이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전하, 근래에 전하의 옥체가 여의치 않아보입니다. 부디 옥체를 돌봐주사이다. 소신이 용한 의원 하나를 물색했는데 그한테 병을 보이지 않으시렵니까?》

선조는 머리를 저었다. 대비의 병이 심한데 저까지 앓는다고 하면 궁실안이 무슨 판이 되겠는가. 대비 한명의 병으로 해서 신하들이 들볶는데 임금인 선조마저 앓는다고 해보라. 충의를 부르짖는 신하들이 저저마다 팔을 걷어붙이고 당장이라도 큰 변이 난것처럼 소란을 피울것이다. 그럴 때면 오히려 병이 낫는것이 아니라 더 심해진다. 허나 이 류희춘만은 여느 신하들과 달랐다.

작년 정월에도 희춘은 임금의 몸상태를 주시하다가 비위를 보호하는 음식료법을 적어서는 선조에게 올린적이 있었다. 그때 선조는 임금의 건강을 위해 늘 마음을 쓰는 희춘의 충의지심에 탄복을 금치 못했었다. 그런 그가 여느 신하들은 무심히 스쳐지나는 선조의 기분상태를 보고 대뜸 건강이 나쁘다는것을 알고 이렇게 근심스레 묻고있는것이였다.

《용한 의원을 물색했다니 참 좋은 일이요. 헌데 어데 있는 의원이요?》

《예, 이번 의과에 급제한 의원인데 저 경상도 산음에서 올라왔다고 하오이다. 지금은 전의감에서 의원으로 있소이다. 소신도 그를 만나보았는데 여간 의술이 높지 않았소이다.》

《경이 보증한다니 어련하겠소만 대비의 병이 완쾌되면 한번 병을 보이기요. 그리고 그런 명의가 전의감에 있어서는 안되지. 후날 보아 내의원으로 옮겨놓는게 좋을것 같소.》

이듬해인 1575년 정월 초이일 의성대비는 통명전에서 세상을 떠났다.

선조가 초상을 치를것을 지시하기 바쁘게 류희춘이 추측한바 그대로 사헌부와 사간원의 대간들이 녀자의원이 대비의 병치료를 등한시했다고 들고일어나 선복이의 죄를 다스릴것을 제의해나섰다. 선조가 대비의 사망은 오랜 기간 고독하게 살다나니 생긴 병으로서 어쩔수 없는것이라고 승인하지 않았으나 신하들은 머리를 쪼으며 간언하였다. 이럴 때엔 임금인 선조도 어쩌는 수가 없다. 만약 대간들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들은 저들의 요구가 실현될 때까지 탑전에서 머리를 들지 않을것이다. 이는 력대로 내려온 봉건왕조의 전례였다. 선조도 이 전례를 깨뜨릴수도 변경시킬수도 없었다.

선조는 그들의 주장대로 의성대비의 병증세가 중하지 않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죄목을 씌워 녀의원 선복과 의관 손사명, 안복수 등을 옥에 가두어 문초하라는 지시를 내리고말았다. 대비가 세상을 떠난지 엿새후에 생겨난 일이였다.

선복의 소식을 들은 허준은 만사를 제쳐놓고 류대감의 집으로 달려갔다.

의과에 급제한 후 허준은 전의감에서 의관으로 일하고있었다. 그가 류대감의 집에 당도하니 이미 죽순이가 와있었다. 죽순의 이모이자 류희춘의 안해인 송덕봉이 그를 위로하고있었다.

류희춘의 안해 송덕봉은 조선봉건왕조시기 유명한 녀류시인이였다. 시문에 능하고 남자들 못지 않게 뛰여난 학문을 소유하고있는 송덕봉은 책읽기를 상당히 즐겼다. 남편인 류희춘이 이십여년간 류배살이할 때도 송덕봉은 추호의 변심도 없이 남편을 진정으로 위해주고 그가 마음의 탕개를 늦추고 맥을 놓을가봐 각방으로 도와주고 힘을 주었다. 그가 지은 시문들은 많았지만 아무리 녀성이 재능이 있어도 그 재능을 발휘할수 없는 남존녀비의 세상인지라 개인시문집은 남아있지 않고 다만 남편의 문집인 《미암일기》에 그 흔적이 남아있을뿐이다. 그가 산음에 있는 죽순이를 한성에 데려온것만 보아도 그 시기에 상당히 개명한 녀성이라는것을 알수 있는것이다.

이미 허준과 면식이 있던 송덕봉이 일어서며 맞아주었다.

《선복이 어머니, 그게 사실이오이까? 선복이가 옥살이를 한다는게.》

죽순이대신 송덕봉이 대답했다.

《사실인것 같구만. 어제 어지가 있어 그길로 옥에 끌어갔다는군.》

《아니, 사람이 불치의 병에 걸리면 응당 저세상으로 가게 되는것인데 그게 어디 선복의 의술탓이겠소이까.

터놓고 말해서 그런 중병에 걸리면 백성들은 어디 살아있는 사람이 있소이까. 하두 대비이니 그만치 오래 살지 않았소이까.》

송덕봉이 주위를 둘러보며 허준을 나무람했다.

《적은이, 그런 소린 말게. 지금 세월엔 벽에도 귀가 있는 법이야. 아무리 그렇다쳐도 그런 말을 망탕 해서야 쓰나. 무슨 된벼락을 뒤집어쓸라구 그러나. 자중하게나. 령감이 나가면서 임금님께 여쭈어보겠다고 하던데 다른 일이야 더 있겠나. 임금님도 불치의 병으로 대비가 돌아갔다구 승인하지 않았는데 대간들이 지나친 충의를 발휘하다나니 그렇게 된거네.》

죽순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실상 궁실의 어의라는게 남들은 다 부러워하지만 실제상 남모르는 고충이 더 많지요. 다른 사람도 아닌 나라님과 그 집안의 건강을 돌본다는게 말처럼 쉽나요. 사실 난 우리 선복이가 궁실의 녀의원이 되는걸 바라지 않았어요. 우리 선복이의 소원이 뭔지 아세요. 어머니보다 더 높은 의술을 배워서 나라안의 첫째가는 녀의원이 되는게 소원이라고 했지요. 그래서 그앤 전의감 의원양성소에서 얼마나 피타게 공부했는지 몰라요. 그앨 보면서 난 저러다가 우리 선복이에게 나같은 운명이 차례질가봐 은근히 왼심을 썼어요. 다행히도 그애가 나처럼 곡절없이 가정을 이루고 아들까지 낳아 키우는걸 보고 한시름 놓았댔지요.

헌데 저렇게 옥에 끌려갔으니…》

허준은 죽순이 심정이 리해되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여져 일생을 딸하나를 믿고 살아오는 죽순이다.

그런데 선복이 아버지는 누구인가? 죽순은 그에 대해 말한적이 없었다. 또 류이태도 그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내비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물어볼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차차 알게 될 때가 있으리라.

허준이 사색이 된 죽순을 바라보는데 류희춘이 들어섰다.

허준은 엉거주춤 일어서며 인사를 하였다. 송덕봉과 죽순이 한가닥 기대를 가지고 류희춘의 얼굴을 주시해보았다.

자리에 앉은 류희춘이 후-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격분에 차서 말을 했다.

《일초(일초는 박근원의 자임.) 그 량반, 내 그렇게 보지 않았는데 정말 앞뒤가 다른 사람이야. 허참, 내 그런 사람인줄 알았으면 당초에 그 량반의 병을 봐주라고 임자를 보내지 않는건데… 다행히도 오늘 전하와 단 둘이서 얘기할 틈이 생겨 조용히 여쭈었더니 전하께선 내 말에 딴 의향을 내지 않으시고 녀의원에게 무슨 죄가 있느냐 하시며 대간들이 론의가 좀 즘즘해지면 인츰 옥에서 내놓으라고 지시하겠다고 하셨소. 그러면서 사실상 나라안에 선복이만큼 의술에 능한 녀의원이 또 있겠느냐고 하시는데 난 전하의 그 말씀에 코마루가 찡해져서 눈물이 다 나오더군. 내가 막 탑전에서 물러나오려는데 갑자기 사헌부와 사간원의 대간들이 무리지어 전하를 뵙자구 하는게 아니겠나. 전하께서 대간들이 보면 재미없다고 하시며 날더러 자리를 좀 피하라고 하시기에 내 휘장뒤에 몸을 감추었지. 그런데 이 무슨 변이겠나. 대간들이 중구난방으로 녀의원과 의관들의 죄를 다스리자구 상소하는데 대사헌 일초 그 량반이 제일 기승을 부리겠지. 뭐이라고 하는가 하면 대비의 병을 허술히 대한 담당녀의원과 의관들을 처형하던가 류배를 보내자고 하는게 아니겠나.》

죽순이와 송덕봉, 허준이모두가 그자리에서 몸을 움씰했다. 류희춘이 손짓으로 진정하라고 하더니 말을 이었다.

《전하를 뵙기 전에 내가 그러지 않아도 대사헌을 만났소. 대간들의 제의가 다 옳은것이 아니니 사헌부 웃꼭지인 대사헌령감이 잘 조처함이 어떠냐고 했더니만 잘 알았노라고, 대간들을 잘 무마시키겠다고 하더군. 그런데 낌새를 보니 뭔가 대가를 바라는것 같은 느낌이 들기에 그래서 내가 앞으로 인사차림을 톡톡히 하겠노라고 말을 붙여보았더니 우리 사이에 무슨 그러겠나며 손을 내젓지 않겠나. 그렇게 하구 난 헤여져 전하를 뵈왔거든. 가지 않았으면 몰라두 우정 찾아가서 만나기까지 했는데 일초 그 량반이 글쎄 그렇게 발딱 뒤집을줄이야. 대사헌이 아마 내가 휘장뒤에 몸을 숨기고있는걸 전혀 모르니 제 속에 있는 소리를 막 하는 판인데 내 너무 어이가 없어서…》

송덕봉의 입에서 가는 숨소리가 슴새나왔다. 그도 박근원을 잘 알고있었다.

남편이 류배살이를 할 때인 1552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들어선 근원은 나무타기를 잘하는 잰내비마냥 복잡다단한 벼슬길을 무탈하게 걷고있었다.

리조참판을 거쳐 다른 벼슬과 달리 관리들의 행적을 신칙하는 대사헌으로 뛰여오른것만 보아도 그의 벼슬경륜이 어떠한가를 잘 알수 있었다. 사헌부의 대사헌벼슬은 쉬이 오를 벼슬도 아니고 또 오래 버티는 그런 자리도 아니다.

물론 사헌부와 쌍벽을 이루는 사간원도 있었다.

사헌부와 사간원의 관리들을 일명 《대간》이라 부르는데 이 대간들중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것은 사간원의 장관인 정3품 대사간보다 정2품관인 사헌부의 장관인 대사헌이였다.

박근원은 이 대간들의 제일 상좌인 대사헌의 벼슬자리에 있었다. 천성적이라고 할지 아니면 권력욕이라고 할지 그앞에서는 아무리 청백리라고 인정되는 사람도 순식간에 부정협잡의 능수로 전이되였으며 아무리 부처님 가운데토막같이 무던한 사람도 패덕한으로 락인되고 탄핵당하기 일쑤였다. 그의 장기는 《대의명분》의 틀거리에 사람을 몰아넣고 칼질하는것이였다.

삼강오륜이 지배하고 군주의 무제한한 권력이 지배하는 봉건사회에서 그러한 《대의명분》틀거리를 자막대기로 해서 몰아치면 걸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였다. 하다면 그가 그렇게도 청렴결백하고 봉건적충군에 물젖었던가. 차라리 그렇다면 별문제이다. 왜냐면 결과는 어떻든 그 바탕이야 《대의명분》에 부합되니 말이다.

허나 박근원은 그와는 전혀 반대였다. 다시말하여 안팎이 완전히 달랐다. 앞에서는 충의와 청렴결백을 밥먹듯 외웠지만 그의 속에는 시꺼먼 구정물이 꽉 차있었다. 근원의 됨됨을 모르지 않았지만 누구도 감히 입밖에 내지 않았다. 왜냐면 새로 등극한 임금이 그러한 근원을 참말로 충의신하로 믿고있었기때문이였다.

근원은 그런것으로 해서 대사헌이라는 벼슬에 붙어있었고 그 사정없는 《대의명분》의 칼로 숱한 사람들을 해쳤던것이다.

류희춘은 말은 해놓고도 뭐가 꺼리는지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가며 쉬- 했다.

《내 말을 어데 가서 발설하면 안되네. 사헌부의 눈과 귀가 우리 집 어딘가에도 달려있는지 모르는 판이야.》

희춘의 말은 전혀 무근거하지 않았다. 대사헌 박근원은 백관들의 동향을 알아본다면서 조정의 도처에 자기의 심복들을 박아넣든가 아니면 죄가 좀 있는 사람들을 협박하여 제 끄나불로 만들었던것이다. 심지어 그의 심복들은 고관대가들의 하인들까지도 손안에서 조종하고있었다.

《그럼 앞으로 선복은 어찌 되오이까?》

허준의 물음에 희춘이 뭐인가 생각을 굴리더니 대답하였다.

《내 생각엔 곧 풀려나올거네. 전하께서 나한테 한 약속이니 반드시 실행하실거네. 그러니 임잔 마음놓구 어서 가보게.》

그러더니 류희춘은 허준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리구 청원 이 사람! 전하의 몸이 여의치 않네. 내 일전에 전하에게 자네의 의술이 용하니 한번 보이는것이 어떻겠냐고 여쭈었더니 대비의 병이 심한데 언제 그럴새가 없다시며 후날에 보자고 하시더군. 대비가 세상을 떠난 지금 전하의 건강이 신통치 않네. 그러니 자네 미리 준비를 하고있게나.》

류희춘의 말대로 대비의 초상을 치르느라 선조는 제 몸을 돌볼새가 없었다. 가뜩이나 체질이 약하고 원인모르게 머리가 지끈거리던 선조는 이즘에 와서 눈에 띄울 정도로 몸이 수척하여졌다. 때로는 수라를 들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의 류지번이 몇번씩이나 진찰하고 치료하였으나 선조의 병은 차도가 없었다. 더구나 대비의 상가인지라 음식을 들지 않은데 그 원인이 있다고 당시의 기록들은 쓰고있지만 실지로는 선조의 몸이 약한데 원인이 있었다.

그로부터 이십일후 허준은 류희춘의 부름을 받고 대궐로 들어가 선조의 병증상을 진찰하고 치료대책을 세웠다. 그때가 바로 1575년 2월 15일 갑신일이였다.

《이름난 의원 … 허준이 들어와서 임금의 맥을 진찰하였는데 임금은 전에 비해서 더 파리고 맥박이 매우 약하였다. 또한 번열이 대단하여 생것과 찬것을 들기 좋아하며 문을 열고 바람을 쏘였다고 한다.》(《선조실록》권9 을해년 2월 갑신일)

본래 궁실에 대한 진찰은 내의원에서 하는것이 법도였다. 전의감에 적을 두고있는 허준이 궁실의 진찰, 그것도 국왕의 병을 진찰한다는것은 관례를 벗어난 사변이 아닐수 없었다. 허나 허준은 그 뛰여난 의술로 하여 비록 전의감 의원이였지만 내의원의 의원들도 바라지 못하는 국왕 선조의 병을 진찰하고 치료했던것이다.

한편 인종의 공의대비가 편치않아 하기에 선조는 급히 선복을 석방하여 진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류희춘의 말대로 선조는 궁실의 녀의원인 선복의 의술을 크게 믿고있었던것이다.

국왕 선조에 대한 진찰로 하여 허준은 그 즉시로 내의원으로 옮겨갔으며 나라안에서 무시할수 없는 명의로 인정받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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