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회)

 

제 6 장

3

 

숨가쁜 긴장속에 시간이 급하게 흘러갔다.

최남호는 자기의 한생에서 피치 못할 준엄한 운명의 시각이 무자비하게 다가오고있는것을 불현듯 깨달았다.

(이것이 반드시 오고야말 시각이였는가? 언젠가는 생사를 겨루는 피의 대결을 떳떳이 맞으리라고 내 심장은 고요히 속삭이지 않았느냐. 그러고보면 내 생활은 큰 굴곡없이 너무나도 평범했다. 그 평범한 나날속에서 나의 군화끈은 풀어진적도 있었고 그로해서 아픈 회오의 감정에 시달리기도 했지. 이제는 물러설 길이 없다. …)

최남호는 문득 어쩔수 없이 가슴 한구석이 찢어지는듯 짜릿해지는것을 느꼈다. 그는 아프게 눈을 감았다. 그러자 훈련장으로 떠나오던 아침이 번개치듯 눈앞에 떠오르는것이였다.

안해는 문밖을 나서는 그에게 야전가방을 넘겨주며 눈가에 애처로와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전에는 볼수 없었던 류다른 표정이였다.

최남호는 돌아서려다가 문득 그 자리에 굳어지고말았다. 그는 안해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요즘 집을 온통 잊으신것 같군요.》

최남호는 나직이 한숨을 쉬였다.

《여보, 난 일생을 당겨살아야 할 사람이요.》

《어쩐지 마음을 놓을수가 없군요.》

안해도 따라 한숨을 쉬였다. 최남호는 안해의 손을 다정히 잡았다. 몹시 껄껄하고 거칠어진 손이다.

《마음을 놓을수 없다? 꼭 어린 아이를 강변에 내보내는것 같단말이지? 허허허… 그래 단아는 아직 자고있소?》

《요새 그 앤 어깨죽지가 축 처졌어요. 잠도 설치고… 그러단 쓰러져 누울것 같아요.》

안해는 최남호의 군복자락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단아도 이제는 철이 드는게요. 생활과 인생을 어른다운 눈으로 보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

최남호는 문득 안해의 머리너머로 현관 복도쪽을 바라보았다. 현관벽, 전등을 꺼버린 문곁에 단아가 말없이 서있었다. 최남호는 놀랐으나 딸의 눈길과 마주치자 빙그레 웃어보였다. 최단아는 함께 미소를 짓지는 않았으나 크고 그윽한 눈빛이 밝아졌다. 어두워서인지 딸의 얼굴은 그저 하얀게 주근깨조차 보이지 않는다. 볼이 해쓱해지고 몸은 더 호리호리해진것 같다. 최남호는 가슴이 뭉클했다. 어쩐지 딸이 자그마한 애된 소녀처럼 느껴졌던것이다.

최남호는 측은한 생각이 들어 딸에게 눈을 껌벅이였다.

(단아야, 이제 모든 일이 잘될게다. 너도 군복을 입었던 처녀답게 꿋꿋이 일어서야 한다. 눈을 번쩍 뜨고 자기를 더 높은 곳으로 올려세워야 해!)

(아버지, 저에 대해선 마음을 놓으세요. 군인의 딸답게 살겠어요. )

최단아는 눈물이 글썽해서 가볍게 부르짖었다.

최남호는 안해가 방금 한 말이 떠올랐다.

(넌 마음을 놓으라고 하지만 너의 어머니는 마음을 놓을수 없다고 하는구나. 남편을 먼 길에 떠나보내며 이 나라 안해들은 마음을 못놓고있다. 단아, 너도 언젠가는 그 심정을 맛볼거야. 아니 너는 지금부터 벌써 네 심장에 고이 간직된 소중한것을 두고 불안해하고있지.

아, 하지만 남자들은, 우리 군인들은 더 마음을 놓을수 없구나. 항상 격동상태에서 가슴을 조이지 않을수 없구나. 그것은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우리들에게 맡겨주신 그 중대한 사명감때문이야. 그래서 우리는 떠나간다. …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못놓고있다. )…

최남호는 자기에게 그토록 귀중한 사람들의 얼굴이 이렇듯 생생하게, 아프게 떠오르는것이 이상했다. 이제 생각해보면 거기에는 야릇한 아쉬움이 남아있는듯 싶었다. 일생에 하고싶었던 이야기는 얼마나 많았는가. 그것이 때가 되면 터쳐놓고싶었던 심장속 고백이였던가. 하지만 어쩌면 그는 그것을 영원히 가슴에 묻어두게 될지도 모른다.

문득 그 추억의 봄날이 안개마냥 갑작스럽게 그의 심장의 흉벽을 어루만진다.

…소녀는 빨간 기와에 푸른 호박넝쿨이 길길이 엉킨 사택마을마당가에 손가락을 입에 물고 서있다. 그때 최남호는 몇걸음 걷다말고 다시 돌아서버렸다. 소녀는 애처로와 보이는 검은 눈을 치뜨고 낯선것 같으면서도 낯설지 않은 젊은 군관을 빤히 쳐다보고있었다. 최남호는 다시 돌아섰으나 다리에 철근을 달아놓은듯 발걸음이 무거웠다.

3년전 군사대학으로 떠날 때에는 마을 녀교원의 품에 안겨 쌔근쌔근 잠들어있던 전우의 딸이였다. 그때 그는 미처 그 아기의 얼굴조차 가려볼 정신적여유가 없었다. … 소녀의 아버지는 그의 귀중한 전우였고 어쩌면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였다. 그들은 최전연을 지키는 민경구분대의 독신군관들이였다. 한가마밥에 한자리에서 운명을 함께한 떨어져 살수 없는 혈연의 동지들이였다. 어느때부터였는지 친구가 수심에 잠겨 식사도 드는둥마는둥 눈은 항상 열에 떠있었다. 최남호는 끝내 친구의 입을 열게하고야 말았다. 그는 산골마을인민학교의 한 처녀를 마음에 두고있었다. 벌써 그들도 가정을 가져야 할 나이와 위치에 머무른것이였다. 군관답지 않게 몸이 체소하고 머뭇거리는 성격이 그 녀자의 심장의 문을 열지 못해 안타까와하고있었다. 어느날 최남호는 인민학교를 찾아갔다. 노랗고 빨간 꽃을 소심하게 터치고있는 채송화꽃밭, 그는 교실문을 탕탕 두드리려는 순간 숨을 죽이고 말았다. 유리창너머 녀교원이 서툰 솜씨로 풍금을 타며 아이들에게 노래를 배워주고있었다. 단조롭게 울리는 풍금소리에 묻혀 녀교원의 가는 목소리가 겨우 창문틈으로 새여나왔다. 녀교원이 불쑥 얼굴을 돌리는 순간 최남호는 실망으로 이마살을 찌프렸다. 눈매가 깔끔하고 목이 상큼한, 성격이 도고하고 말쑥한 상상속의 처녀를 찾아왔으나 그의 눈앞에는 머리태를 늘어뜨린 수수하고 평범한 인상의 가냘픈, 어린 소녀같은 녀자가 겁에 질린 눈길로 그를 겨우 쳐다보고있는것이다. 최남호는 은근히 속이 뒤틀리여 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가 보기엔 아무런 매력도 고운 맛도 없는 이 땅 어디서나 볼수 있는 흔한 녀자였던것이다. 그는 얼마후 화단곁에 마주 서서도 이따금씩 의심을 잔뜩 품고 훅 불면 넘어질것 같은 연약한 처녀를 띄여보았다. 처녀는 말이 없었다. 그저 눈길을 다소곳이 내리깔고 그의 말을 듣기만 하였다. 상대방을 낮추 보는듯한 군관의 열정에 넘친 거친 목소리들에 가끔 와뜰와뜰 놀라기만 했다. 했으나 석달후 녀교원은 소심하고 말주변이 없는 전연부대군관과 한가정을 이루었다.

최남호는 해쓱했던 친구의 얼굴이 행복감으로 붉어지고 눈이 삶의 희열로 빛나는것을 여겨보며 속으로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친구의 행복이 그만큼 그를 기쁘게 했던것이다.

생활은 불의에 역습을 가했다. 두 군관이 순찰조를 이끌고 군사분계선이 지나간 계곡의 갈밭을 헤칠 때였다. 돌발적인 총격전이 벌어진것은 순찰조가 그 지역을 벗어나기 전이였다. 갈밭에 숨은 적의 총부리가 최남호의 등으로 세찬 불줄기를 날리는 순간 그 소심한 성격의 체소한 군관이 한몸으로 막아서며 권총을 쏘았다. 짧은 접전이 끝나자 최남호는 전우를 품에 안고 그의 마지막운명을 지켜보고있었다. 전우는 창백한 얼굴에서 초불처럼 고요히 타오르는 눈길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얼굴에 다문히 박혀있는 연한 주근깨가 이 순간 선명히 살아났다.

《남호, 우리 집 사람이 아들을 낳으면… 꼭 훌륭한 군인으로 키워주게. …》

그것은 먼 세월의 메아리였다. 지금도 최남호는 전우의 묘비앞에 굵은 눈물을 뿌리던 그 바람 사나운 초소의 뒤언덕을 잊지 못한다. 부대의 군관들이 희생된 전우를 위해 묵상했다.

그들은 말이 없고 저으기 수집음을 타는것 같던, 부대에서 그리 눈에 띄우지 않던 평범한 군관의 그 어디에 그런 용감성과 강의한 희생성이 숨어있었는지 뒤늦게야 깨달은 심정이였다. 생흙이 시뻘겋게 드러난 봉분에 병사들이 정성다해 잔디를 옮겨심고있었다. 묘비앞에 놓인 검은 테를 두른 액자속에서 평범한 군관은 미소를 짓고있었다. 부대사진사가 서둘렀는지 아니면 사진이 그것밖에 없었는지 약간 모로 서서 활짝 웃는 모습이 전우들을 더 울렸다. 최남호는 대체로 감정을 억제하는 과묵한 성미였지만 제 정신을 잃고 눈물을 뿌리며 땅을 쳤다. 그렇게 형제같이 간격이 없고 생사고락을 함께 한, 목숨처럼 귀중한 혁명동지였던것이다. 한해후 그는 인생의 소중한것을 묻은 운명의 초소를 뒤에 남기고 군사대학으로 떠나갔다. 전우의 안해는 아들이 아니라 자기처럼 연약한 딸을 낳았다. 그리고 한해도 못되여 정신적충격과 산후탈로 남편의 뒤를 따라갔다.

어린 딸애는 홀로 남았다.

마음씨 고운 같은 학교의 처녀교원이 단아를 맡아 길렀다.

최남호는 군관사택마을을 거쳐 떠나면서 입술을 악물었다. 전우를 위하여, 그의 피의 복수를 위하여 눈물을 삼키며 돌아선 길이였다. 군사대학을 졸업한 후 부대에 잠간 들렸을 때 그는 어쩌면 이제는 전우의 딸을 볼수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녀교원은 여전히 동무의 딸애를 키우며 산골군관들의 아이들앞에서 풍금을 타고있었다.

새 부대를 맡아 지휘하는 그 바쁜 속에서도 그는 늘 입에 손가락을 물고 자기를 빤히 쳐다보던 그 귀여운 소녀를 잊을수가 없었다. 깊은 밤 야영지의 천막가에서 몸을 뒤채이던 그는 끝내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래, 그 소녀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 누구겠는가? 그 애에게는 아버지가 있어야 한다. 아버지!…)

최남호는 옆자리에서 쿨쿨 자고있는 부대정치위원 리만순을 바라보다가 담배를 꺼내물었다. 련속 줄담배를 피웠다.

(소녀에게 제일 가까운 사람? 그 애의 친아버지는 나의 전우이고 생명의 은인이다. 그이자 나이다. 하다면 소녀에게 나보다 더 가까운 혈육이 누구겠는가!…)

그것은 너무도 명백한 진실이였다. 이틀후 어떻게 처녀교원을 구슬렸는지 리만순정치위원과 강성태참모장이 작당을 하여 소녀를 데려왔다.

소녀는 빨간 기와집앞에서 자기와 떨어지기를 그토록 아쉬워하던 무뚝뚝한 군관이 《아버지》라는것을 알자 고사리같은 손을 쫙 펴고 그의 품을 파고들었다. 소녀는 병영에서 자랐다. 가끔 처녀교원이 찾아와 말없이 보초소앞을 지켰으나 정치위원의 엄명으로 부대장조차 모르게 되였다.

시간이 흐르자 소녀는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아마도 그 처녀교원을 친어머니로 착각하는 모양이였다. 그렇게 정든 《어머니》였다.

하지만 훈련을 마친 아버지가 돌아오면 볼에 흐르는 눈물을 싹 씻어버리고 활짝 웃는 낯으로 맞이하였다. 그 애처로운 모습이 최남호의 가슴을 쓰리게 했다. 최남호는 군용밥통에 병사들이 따넣은 산딸기를 그 애의 도톰한 입술에 가져갔다.

《단아는 왜 울었나요?》

소녀의 얼굴에서 주근깨가 딸기씨처럼 살풋이 살아난다.

《응, 아빠, 엄마와 함께 살면 안되나요?》

《?!…》

최남호는 흠칫 놀라 군용밥통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너무도 뜻밖의 말에 충격을 받은 심장이 아프게 높뛰였다. 아버지를 빤히 쳐다보던 소녀가 쪼그리고 앉아 떨어진 딸기들을 조심조심 주어담기 시작했다. 소녀의 연약하고 하얀 손끝에 빨간 딸기물이 진하게 든다.…

최남호는 어머니를 그리는 딸의 심정을 생각하며 또다시 침대에서 몸을 뒤채이다가는 담배를 피워물었다. … 어느날 그 수더분한 리만순이 불쑥 부대에서 사라졌다. 강성태는 최남호앞에서 아닌보살을 했다. 보름이 지나서 소녀는 《어머니》의 품에 안겼다. 소녀의 《어머니》를 설복하느라 고지식한 리만순은 머리털이 다 희였다고 우스개소리를 했다. 그들은 서먹서먹하고 다소 경계하는듯한 심정으로 살림을 시작했다.

소녀의 밝고 순진한 웃음은 봄빛 같은것이였다. 눈석이는 녹기 시작했다. 드디여 오고야말 봄날이 시작되였다.…

인생이란 그런것인가? 그래서 옛 사람들은 때로 연분이라는 말도 쓴 모양이다. 아름다운 녀인은 남편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성품이 착한 녀인은 남편의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는 금언이 있다. 그들은 반생을 비둘기같이 살아오며 언제 한번 다툼같은걸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다정한 리해심이 움터나는 정속에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깊어진것이다.…

최남호는 가슴이 훈훈해지는것을 느꼈다.…

(그래, 귀중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 혁명에 대한 사랑, 이것이 없다면 그 무슨 생활이랴.

행복은 이 삶을 지키는데서 오는것이다. 그 삶의 원천인 위대한 최고사령관동지를 결사옹위하는데 행복의 의미가 존재하는것이다!)

최남호는 병사들을 돌아보려고 선실밖을 나섰다. 해풍이 사납게 태질하는 사령탑우에서 말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그는 계단을 오르다 멈춰섰다.

《이보라구 신철동무, 부국장동지를 리해해야 되오. 괜히 그 앞에서 주눅이 들지 말고… 결코 다른 의미로 그러는건 아니요.》

《아닙니다, 부장동지. 어쩐지 절 좋아하지 않는것 같습니다.》

《허허, 동문 우리 로친네 봤지? 사람이란 때로 제 속을 사람들앞에서 벌거벗기는걸 싫어하는 경우도 있단말이요. 우리 집사람이 남들앞에서 제 주견을 세우고 가정과 남편한테 발언권이 있는것처럼 하지만 말이요. 아침엔 어쩌는지 아나? 방문을 똑똑 두드리고 들어와선 나에게 〈밤새 잘 주무셨습니까?〉 하고 깍듯이 인사한다네.》

최남호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될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살이 센 군관출신의 그 녀인을 상기해보았다. 새색시처럼 방문을 열고 들어와 문안인사하는 모습은 전혀 표상이 서지 않는다. 그는 계단을 내려 선수갑판쪽으로 걸어갔다. 어디선가 바람소리에 뒤섞여 발동소리 같은것이 들려왔다.

최남호는 어두운 밤하늘을 살펴보았다.

《적들의 직승기떼입니다.》

함장이 옆에 다가와 더운 입김을 훅훅 내뿜었다.

《해상경계선을 넘어선지 오랬소?》

《벌써 퍼그나 됩니다.》

《경계태세를 늦추지 말아야 하겠소. 명령이 있기 전엔 사격하지 마시오.》

《알았습니다.》

직승기들은 순간에 날아와 함선의 상공을 맴돌기 시작했다.

폭풍이 잦아들어서인지 프로펠러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그 강한 바람결이 갑판에까지 와닿는다. 검은색직승기들은 함선우에 낮추 떠서 선회하기 시작했다. 직승기에서 강력한 탐조등불빛이 뿜어나와 선체를 언뜻언뜻 비쳐댔다.

《북조선군 함장은 들으라. 당신들은 해상경계선을 넘어 우리측 해역에 들어섰다.

국제련합군사령관 티렐리대장의 명령을 전한다. 함선이 표류된이상 우리 군항으로 인도하겠다. 순순히 응하면 군사적행동은 없을것이다. 곧 구축함과 예선이 도착할것이다.》

함장이 얼핏 최남호를 올려다보았다. 최남호는 그의 손에 마이크를 들려주며 어깨를 잡았다.

《우리는 훈련도중 함선이 폭풍에 고장났다. 날이 밝으면 곧 수리해가지고 기지로 돌아가겠다. 물러설것을 경고한다.》

한순간 직승기동음만 바다우를 진감하더니 이윽고 다시 위혁적인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상부의 명령을 다시 전한다. 당신들은 국제련합군 관할하의 해역을 침범했다. 이제 우리 구출조가 함선의 갑판에 내릴것이다. 무장도발이 없는이상 생명안전은 담보될것이다! 우리 인원이 내리겠다!》

《절대로 불허한다. 당신들의 무장도발이 없는 이상 우리의 대응사격도 없을것이다.》

그러나 검은 무장직승기들은 탐조등을 어지러이 비치며 더 낮추 선회하더니 금시 함선의 갑판에 내려앉을듯이 덤벼쳤다.

적들쪽에서 먼저 위혁적인 경고사격을 해왔다.

최남호의 명령에 따라 기관총이 몇발의 경고보복사격을 했다.

그러자 무장직승기들은 닁큼 놀라 하늘높이 날아올랐다.

《적함선들이 보입니다.》

《적들이 우릴 나포하려고 서두르는것 같소. 모두 내 명령을 기다리시오.》

직승기에서 또다시 사격을 해왔다. 탄알이 선체에 부딪치는 강한 금속음이 고막을 때렸다. 파편에 한 해병이 쓰러지고 함장도 팔에 부상을 입었다. 그 순간 대형직승기에서 줄사다리가 내려지고 검은 형체들이 매달리기 시작했다. 적구축함쪽에서도 함선주변에 어지러이 포사격을 시작해왔다.

최남호는 이를 부드득 갈며 부상당한 성원들을 선실로 내려보냈다.

해병들은 최남호의 명령에 따라 기관총으로 가까이에 있는 직승기를 조준했다. 강력한 불길을 뿜자 직승기가 흠칫 했으나 여전히 고도를 유지하며 움직이지 않는다. 이윽고 불줄기가 유리창이 있는 앞코숭이를 타격하자 직승기는 불길에 휩싸여 검푸른 바다물속으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직승기들은 멀리 내빼고 적구축함과 함선들에서 집중사격이 시작되였다.

사령탑이 포탄에 맞아 산산쪼각이 나고 갑판에는 화염이 치솟았다.

최남호는 함선포곁에 서서 불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해병들을 둘러보았다.

《동무들! 미제침략자들에게 최고사령관동지의 전사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보일때는 왔소! 단 한명이 남을 때까지 싸웁시다! 동무들!ㅡ》

병사들의 눈에서도 불이 펄펄 일었다. 김한경대좌와 박신철이 포탑곁에서 해병들과 함께 포사격을 지휘하고있었다. 이윽고 강한 포성과 함께 구축함곁에 바투 붙어선 적함선에서 불기둥이 일어났다.

적함은 선체가 갈라지면서 검은 불길속에 타들며 천천히 바다물속에 가라앉기 시작했다.

《명중이다!》

부상입은 젊은 함장이 철갑모를 벗어들고 격정에 넘쳐 해병들을 돌아보았다.

《동무들! 위대한 김정일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의 수뇌부를 목숨으로 사수하자!》

《결사옹위! 김정일!》

병사들의 폭풍같은 함성이 갑판우에 우렁차게 터져올랐다.

적구축함이 쏘아대는 포탄에 함선의 여기저기에서 포연과 화염이 치솟아 올랐다. 이윽고 미제침략군 전투기들이 편대를 지어 하늘을 덮으며 강력한 화력타격을 가해왔다. 함선주위의 바다물이 불벼락에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다. 최악의 전투는 시간이 흐를수록 치렬해졌다. 적들은 불순한 목적을 노려서인지 함선에 대한 정면타격은 점차 피하고 대신 포위환을 형성하면서 결정적인 때를 기다리는것 같았다.

탄환과 포탄이 한정량만 있는것만큼 그것은 예상밖의 결과를 초래할수 있었다. 최남호는 총탄을 아껴 적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대응사격만 할것을 지시하고 선실로 급히 달려들어갔다.

최남호는 강철원통으로 된 문건함을 가지고 갑판에 나섰다.

김한경이 박신철과 함께 다가왔다. 최남호는 파편에 찢어진 박신철의 군복저고리를 내려다보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박신철동무, 사태는 동무도 잘 알겠지? 동무에게 어려운 임무를 주겠소. 이건 이 함선의 모든 군인들의 생명보다 더 귀중한거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문건함을 기지에, 조국에 전해야 하겠소!》

《부국장동지!ㅡ》

화염에 그슬린 박신철의 얼굴이 푸들푸들 떨렸다.

최남호는 근엄한 눈길로 그를 쏘아보았다.

《지금 정황에서 임무수행은 거의 불가능할수도 있소. 하지만 무조건 수행해야 해!》

《안됩니다. 전 끝까지 함에 남아 싸우겠습니다!… 왜 저를 따돌리려 합니까?》

최남호와 박신철의 불같은 눈이 서로 부딪쳤으나 두사람 다 그 눈길을 떼려하지 않았다.

김한경대좌가 근엄한 얼굴로 다가오더니 박신철의 어깨를 으스러지게 틀어쥐였다.

《신철이, 동무야 훈련받은 해군정찰병이 아닌가! 그래도 모르겠소?》

《?!…》

최남호는 눈길을 내리깔고 불타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이 순간 그는 저 박신철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알수 없었다.

구명조끼를 든 젊은 함장이 다가오자 박신철은 최남호를 돌아보았다.

최남호는 그의 뜨거운 눈길이 자기의 목덜미를 애타게 더듬는것을 느꼈다.

박신철의 거친 숨소리가 등따갑게 마쳐온다.

《부국장동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절…》

박신철은 말을 더듬거렸다. 그는 무엇인가 주저하다가 억지로 내뱉듯 중얼거렸다.

《절… 용서하십시오.》

최남호가 불쑥 몸을 돌렸다. 그는 구명조끼를 입은 박신철의 어깨를 와락 잡으며 억세게 껴안았다. 그는 눈을 감고 갈린 목소리로 다정히 말했다.

《아니다. 신철아! 난 단 한순간도 너를 남의 사람이라고 생각해본적이 없다!》

《아버님!》

《단아를 부탁한다. 그 앤… 좋은 녀자다!》

《?!…》

최남호는 말을 마치자 박신철을 와락 바다물에 밀어던졌다. 이윽고 박신철의 모습이 화염과 포연속에 사라져버렸다.

최남호는 검푸른 물결이 부글부글 끓는 불타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는 고요한 미소가 굳어져있었다.

(부디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품으로 돌아가다오. 먼 적후에서 이 전사가 드리는 인사를 우리 장군님께 전해다오!…

이 《영원한 대좌》는 지금 이 시각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그립니다. 이 마음 천리만리 당신곁으로 달려가고있습니다. 최고사령관동지!…)

바다도 하늘도 포연과 화염에 불타고있었다.

김한경과 함장이 다가와 최남호의 곁에 나란히 섰다.

김한경은 자기보다 키가 좀 작은 최남호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눈을 슴벅슴벅하며 입가에 굳센 미소를 지었다.

《부국장동지, 이젠 우리도 마지막결전을 준비해야지요?》

《그렇소. 부장동무, 사람이 살면 천년을 살겠는가. 전사의 심장이 무엇을 위해 불탔는가.

동무들! 최고사령관동지의 전사답게 빛나는 최후를 맞이합시다!》

최남호는 미더운 눈길로 지휘관들과 병사들을 둘러보았다. 김한경이 빙그레 웃으며 군복주머니에서 또 그 생생한 담배갑을 꺼내들었다.

《부국장동지, 우리에게 이 시각 후회되는것이 있을가요?》

이번에는 최남호가 눈을 슴벅거렸다. 그는 김한경의 손을 으스러지게 틀어잡았다.

《허허. 참, 부장동무두. 무슨 말을 그렇게 하오. 우리야 어느 때든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를 위하여 한목숨 바치기를 맹세다진 사람들이 아니요!》

《예, 평상시에 그리고 회의들에서 늘 그 말을 하댔는데 내 일생에 그것을 검증할 시각이 정작 오니 마음이 이상해집니다. 지금 이 순간처럼 가슴이 드넓어지고 진정으로 행복해보기는 처음인것 같군요.》

김한경의 눈굽에 이슬방울이 번쩍였다.

최남호는 뜨거운 눈길로 그를 마주 보았다.

《행복… 그래, 이게 전사의 행복이지. 축복받은 전사의 삶이지. …

고맙소. 동무는 이 준엄한 시각 우리들에게 힘을 주는구만.》

《부국장동지…》

최남호는 허리를 펴고 검푸른 망망대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짧은 숨을 내쉬였다.

《지금 나에게 단 한가지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의 모습을 단 한번만이라도 더 뵙는것이요!》

김한경은 말없이 서있는 이 강의한 사나이가 거인처럼 느껴졌다. 그는 최남호를 올려다보았다.

적함들이 전투서렬을 지으며 급하게 전진하기 시작했다.

드디여 총쥔 군인의 한생을 빛나게 장식해야 할 최후의 시각이 다가온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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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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