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회)

 

2

 

《류성》호가 조국의 항구를 떠난지 한달이 넘었다.

그간 배는 망망대해의 바다우에서 남쪽방향으로 계속 항해하였다. 얼마전에는 ××섬을 통과하였다. 뜨거운 태양빛이 계속 내리쪼이고 아득한 저 멀리로는 이름을 알수 없는 섬이 폭양속에서 눈을 아물아물하게 하였다.

해는 서쪽으로 기울어지고있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눈뿌리가 아득히 펼쳐진 바다에는 온통 석양이 붉게 물들어있었다. 무릇 이렇게 아름다운 색채를 띤 저녁을 감상할 때가 좋지만 항상 이런 날이 배사람들에게 차례진다고는 할수 없었다.

광풍이 세차게 몰아칠 때면 보통 3~4메터 어떤 때는 8~9메터, 아니 그이상의 파도가 일면서 당장이라도 배를 물속깊이 수장시킬것처럼 갈갠다. 천길나락으로 떨어져내리는것 같은 환각으로 해서 온몸에 전률을 느끼며 두눈을 꽉 감는 선원들까지 생긴다. 더우기 열대성회오리속에 들어가면 더하다. 요란한 배의 진동과 그대로 바다물속으로 쑥 들어가버릴것만 같은 느낌에 다시는 살아날것 같지 못하여 저도모르게 공포에 잠길 때도 있는것이다.

해연이가 준 작업모자를 꼭 눌러쓴 진호는 배의 현장판에 서서 사위여가는 잔광을 바라보며 깊은 사색에 잠겨있었다. 그는 늘 이맘때면 《류성》호의 앞으로의 항해과정에 대해 자기딴의 생각에 잠기는 버릇이 있었다. 아마 이것은 그가 부선장이라는 새 직무를 받아안은 다음부터 생긴 습관인것 같았다.

망망한 날바다였지만 《류성》호는 거침없이 계속 전진해나갔다.

진호는 어느덧 고성능말단장치를 꺼내들었다. 지금껏 여러차례 고성능말단장치를 가지고 해연이와 통신기의 시험을 진행해왔지만 이렇게 조국과의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 자주 시험통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진호였다. 그렇게 해야 해연이의 연구사업이 빨리 결속될것이 아니겠는가.

현재까지는 시험통신이 이상할 정도로 잘되였었다. 시험통신기는 참으로 신비하다고 할 정도로 진호의 마음을 끌어당기였다. 고성능말단장치를 꺼내 화면을 펼칠 때마다 이상한 광경을 체험하게 되군 했던것이다. 눈앞에 펼쳐졌던 바다가 없어지고 해안공원의 소로길로 혹은 강변의 버들숲사이로 해연이와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자기를 보게 되는것이다. 이건 도대체 무슨 현상일가? 이렇게까지 상상이 될수 있는가? 어떻게 된것인지 모든것이 눈앞에 방불하게 펼쳐진다. 정말로 신기할 정도였다.

이번에는 저 멀리 울울창창한 숲너머로 초고층살림집들이 드문드문 보이기도 한다.

(아, 저 집이 내가 사는 아빠트가 아닌가. )

너무도 신통해 진호는 자기 주위를 둘러보기까지 했다. 어디 아빠트뿐이랴. 산뜻한 여름옷차림을 한 심해연이가 불쑥 나타나 곱게 웃으며 묻는다.

-진호동무, 그새 건강하셨어요?

-건강하오. 동무도 건강하겠지?

-예, 저도 건강해요. 동무와 헤여진지도 벌써 한달이 지났군요.

-정말 그렇게 되였구만. 지금까지 통신감도는 좋구만.

-정말 기뻐요. 지금까지 뇌파통신시험에서 별다른 일이 없으니 말이예요. 아직은 속단하기 이르니 동무가 좀더 수고해주어야겠어요.

-걱정마오. 우리 약속하지 않았소.

-전 지금 뇌파통신기에 대한 박사학위론문을 준비하고있어요.

처녀의 얼굴은 환희와 격정으로 하여 밝게 빛나고있었다.

-그렇소?!… 축하하오. 당장 달려가 동물 축하해주고싶구만!

진호는 너무 기뻐 엄지손가락을 내흔들었다.

-동무가 기뻐하니 됐어요. 참, 잊을번 했군요. 박수근통신장동무의 안해를 며칠전에 새로 개설된 우리 연구소의 건강연구분소에 입원시켰어요.

-건강연구분소에?…

-예, 지금 인공척추개발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박사선생님들이 통신장동무의 아주머니에 대한 집중적인 치료를 맡아하고있어요. 이제 통신장동무의 아주머니가 병을 털고 꼭 일어날거예요.

-그러니까 인공척추로 교체한다는 소리가 아니요?

-그래요. 말하자면 사람의 매 세포가 생명체로 발육하는것은 얼마든지 가능한거예요. 그러니 인공척추도 꼭 성공할거예요.  두고보세요. 아마 먼바다항해를 마치고 돌아올 때면 박수근통신장동무도 부두에서 안해의 마중을 받게될거예요.

-그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겠소? 내 통신장동무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해주겠소.

(통신장동무가 마음을 놓게 됐구나!)

-그럼 몸을 잘 돌보세요.

-고맙소. 인차 또 만나기요.

통신시험을 끝내고나니 진호는 자기가 꼭 꿈을 꾼것만 같았고 바로 그 꿈속에서 해연이를 만나 고향의 해안도시에 다녀온듯한 기분이였다.

(그것 참, 정말 신통한데. … 해연이의 체취가 있는것이여서 그런가?)

진호는 머리를 기웃거렸다.

눈앞에 펼쳐진 검푸른 바다와 해연이가 서로 엇바뀌여지면서 어느것이 현실이고 어느것이 환각인지 분간하기가 힘들 정도로 정신상태가 교차되는것은 무엇때문인가. 진호는 고성능말단장치에 의한 통신시험이라는것을 알면서도 시험을 끝내고는 이렇게 한동안씩 안절부절 못하군했다. 뇌파통신이 이렇게도 신묘한것인가?… 그의 머리속에서는 곱게 웃고있는 해연이가 도저히 사라질줄 모른다.

《또 시험통신인가? 이번에도 잘됐겠지?》

어느새 진호의 곁으로 다가온 박수근이 웃으며 그의 손에 쥐여있는 고성능말단장치를 띠여보며 물었다.

《음, 아직은 감도가 좋네.》

《동문 참 행복한 사람일세. 조국과 멀리 떨어져있지만 늘 사랑하는 처녀를 만나 아무때건 얘기를 나눌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난 자네가 정말 부럽네.》

《허허… 동무두 참.》

수근의 말에 웃음으로 대하는 진호였지만 사실 그는 지금 이 시각에도 환각에서 깨여 못난듯 두눈을 감았다 떴다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게 되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아름다운 해연의 모습이 진호의 눈앞에서 좀처럼 지워질줄 몰랐던것이다. 어쩐지 해연이와 함께 광석천의 유보도를 걷고있는것 같은 심정이기도 했다. 여전히 생각에서 깨여나지 못하는 진호를 바라보며 수근은 빙그레 웃었다.

《우리가 이제 저 아프리카해역에 들어서게 되겠는데 그곳에서도 시험통신은 계속해야겠지?》

《그래야 할것 같네. 해연동무가 그걸 바라니까.》 하고 말하던 진호는 그때에야 해연이가 말하던 생각이 나서 얼른 수근에게 돌아섰다.

《참, 기뻐하라구. 동무의 안해를 건강연구분소에 입원시켰는데 박사선생님들이 새로 개발한 인공척추로 교체한다누만. 그러면 분옥동무는 아주 건강한 몸으로 일어설수 있다는거야. 해연동무의 말이 우리가 항해를 끝내고 돌아가면 분옥동무가 동물 마중나올수 있다고 했소.》

《그게 정말이요?… 우리 분옥이가 자리에서 일어선단 말이지. 이거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지 모르겠구만. 해연동무랑 의사선생님들이랑 모두 고맙구만. … 동무도 고맙고.》

《나야 뭘.》

《이거 나도 뭔가 동무들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해야 하겠는데…》 하고 잠시 무엇인가 생각하던 수근의 두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시험통신이 완전성공하면 우선 해연동무의 창조물을 이 통신장이 제일먼저 받아들이겠네. 그건 내가 위성통신체계보다 사람의 뇌파에 의한 통신이 더 멋쟁이라는것을 동무네들의 통신대화를 여러번 목격하면서 확신했기때문이네. 참 멋있어. 예술작품의 화폭처럼 펼쳐지는 실감있는 환경속에서 상대방과 자연스럽게 감정과 의사를 나눌수 있다는것이 얼마나 멋있나. 이걸 손전화나 위성통신에 비기겠나. 지금과 같이 사람의 머리속에서 상대를 그려보는 그대로 순간순간 거기에 알맞는 실지의 환경이 그대로 펼쳐지는데 3D가 아무리 우월하단들 뇌파통신에 갖다대겠나, 어림도 없지. 더우기나 집을 멀리 떠나 이렇게 망망대해를 떠가는 우리 배사람들에게야 그리운 사람들을 몸가까이 느끼면서 대화를 멋들어지게 나눌수 있는 이런 통신기재를 가진다는게 얼마나 리상적이겠나.》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네.》

저녁해의 여광은 저 멀리 수평선쪽으로 내려앉고있었다.

무역선에서 바라보는 고요한 바다는 정말 아름다왔다. 바다우에 겹친듯 더미더미 떠있는 구름들, 그 구름들은 지금 저녁노을에 붉게 물들여져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또 바다는 바다대로 노을빛을 비껴안고 마치도 쇠물이 일렁거리듯 출렁대는것이 정말 장쾌하게 안겨온다. 두사람은 잠시 황홀한 바다를 넋없이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 시각 박수근은 집생각을 하고있었다. 방금전의 진호의 말에서 집에 대한 그리움이 더해졌는지… 진호의 말대로 정말 안해가 병을 고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대지를 활보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아, 분옥이가 보고싶구나. 조국을 떠나온지 이제는 두달이 되여온다. 떠나올 때 남들처럼 항구에 나와 남편을 바래워주지 못하는 죄스러움때문에 송구해하던 안해의 아련한 모습이 눈뿌리를 뜨겁게 해준다.

《수근동문 지금 안사람에 대해 생각하나?》

진호가 수근을 쳐다보다가 이렇게 물었다.

《허허… 글쎄 동무말을 듣고보니 별로 그 사람이 생각나누만.》

《너무 걱정하지 말게, 다 잘될걸세.》

진호는 이렇게밖에 말해줄수 없었다. 남의 고충에 대해 말하기는 쉬워도 당사자의 경우 그 심리는 대단히 복잡한것이다. 진호는 언젠가 수근에게서 들은 그의 안해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것은 박수근의 청년돌격대시절 마감때 있은 일이였다.

당시 돌격대 중대장이였던 박수근과 오분옥사이에 인연이 맺어진것은 우리 나라의 북부에 새로 일떠서는 대화학기지건설장으로 통하는 철길공사장에서였다. 깊은 계곡을 가로질러가는 철다리건설과제를 맡은 려단에서는 제 기일내에 철다리공사를 끝내야 공사전반에 지장을 주지 않을수 있기때문에 중대간 사회주의경쟁을 조직했었다. 젊음이 넘친 청년들은 경쟁 첫날부터 승벽내기로 서로 윽윽하며 일손을 다그쳤다. 돌격대원들은 중대앞에 맡겨진 과제수행을 위해 침식도 잊고 밤낮으로 뛰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전날부터 억수로 내린 비로 해서 산골물이 범람했었는데 그 물은 한창 건설중이던 철다리를 위협하며 흘러내렸다. 사품치는 물때문에 기본공사를 할수 없게 된 돌격대원들은 하는수없이 교각우의 작업장을 정리하는 일을 하게 되였다. 이날 치료사업으로 두명의 녀동무들과 함께 현장에 나왔던 오분옥은 임무를 수행하자 돌격대원들을 도우려고 작업장에 들어섰다. 돌격대원들은 려단군의소 간호원들이 자기들과 함께 땀을 흘리고 쉴참에 노래까지 불러주니 사기가 나서 더 일손을 다그쳤다.

박수근도 자기 중대원들의 사기를 돋구어주는 간호원들이 작업장에 오는것을 은근히 바라군 했다. 돌격대원들과 함께 땀흘리며 일하던 오분옥은 이들에게 시원한 물이라도 떠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허리를 펴는 순간 《앗!》 하고 소리를 질렀다. 우에서 커다란 통나무가 떠내려오는데 그것이 갓 타입한 교각을 가까이하고있었던것이다. 이제 그것이 교각을 들이치면 지금껏 땀흘리며 건설해놓은 다리의 한 부분이 허양 무너져내릴수 있었고 그우에서 일하던 많은 돌격대원들이 피해를 입을수 있었다.

다리가 무너지면!… 잠시도 지체할수 없는 위급한 순간이였다.

《동무들, 피하세요!-》

큰소리로 웨치며 분옥은 앞뒤를 가릴사이없이 물속에 첨벙 뛰여내렸다. 그리고는 교각으로 다가오는 통나무의 방향을 돌리기 위해 한치한치 맞받아 헤염쳐갔다. 안깐힘을 다해 거리를 좁혀간 분옥이가 통나무의 앞머리를 힘껏 떠미는 순간 교각을 들이칠듯 하던 나무는 분옥을 기둥에다 힘껏 몰아붙이며 지나갔다. 너무도 순간에 벌어진 일이고 엄청난 일이여서 돌격대원들은 첫순간엔 어안이 벙벙해서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때늦게야 분옥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모두 그의 이름을 부르며 물속으로 뛰여들었다. 분옥은 돌격대원들에 의해 구원되였지만 의식을 잃고있었다.

《간호원동무!-》

《분옥동지!-》

돌격대원들이 눈물을 흘리며 목메여 분옥을 찾았다. 하지만 찢어진 옷자락에 피가 질벅한채 쓰러져있는 분옥은 대답이 없었다. 분옥은 즉시 군의소로 후송되였다. 사계감시원을 미리 정해놓았어야 하는건데…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무슨 일을.  아, 간호원동무!- 대원들을 데리고 일하던 박수근은 주먹으로 자기의 가슴을 치며 누구보다 통분해했다.

치료를 받고 분옥은 소생되였지만 통나무의 육중한 타격에 의한 척추손상으로 이전처럼 걸어다닐수 없게 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박수근은 입술을 꽉 깨물며 두눈을 지그시 감았다. 사전에 안전대책을 세우지 못한 자기때문에 처녀가 불구자로 된것이다. 가슴을 치며 괴로움을 터쳤지만 회복시킬 방도가 없었다. 수근은 돌격대복무를 마치고 처녀의 고향마을부터 찾았다. 일어서지도 못하는 분옥이가 웃음을 담고 옛 전우를 스스럼없이 맞아줄 때 박수근의 가슴은 세차게 뛰였다. 그는 이미 자기가 오분옥과 한생을 같이하리라 마음다졌다는것을 그 시각 더욱 똑똑히 깨달았던것이다.

박수근은 분옥이에게 자기의 심중을 고백하였다.

그러자 방금전까지 밝게 웃던 분옥은 눈길을 떨구며 고개를 외로 틀었다. 앞길이 구만리같은 박수근의 발목을 자기가 잡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그의 뇌리를 쳤던것이다. 그럴수록 박수근은 더 열렬히 자기의 심정을 터놓았다. 시간이 흐르자 분옥은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저었다.

《안돼요.》

목소리는 랭정했다. 박수근은 입술을 꽉 깨물고 무작정 처녀를 안아들었다.

《어마나-》

그러거나말거나 수근은 팔에 힘을 주며 이렇게 선포했다.

《결혼식은 래달 20일에 합시다.》

《아니 그건?…》

《무조건이요. 알겠소?》

수근의 얼굴에는 그 무엇으로써도 허물수 없는 단호한 결심이 어려있었다. 처녀는 입술만 감빨다가 울음을 터치며 수근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난 몰라요. …》

《됐소. 우린 행복할거요.》

 

수근은 바로 이런 사람이였다.

결혼식이 끝나자 박수근은 해운대학으로 떠났다. 그는 이미 돌격대에서 제대되면서 해운대학추천서를 받아가지고 왔던것이다. 박수근은 대학을 졸업하자 해안도시에 집을 잡아 분옥이를 데려왔으며 자기는 무역선의 선원으로 되였다. 진호가 항해사로 일할 때 박수근은 통신장으로 일하였으며 이번에 진호가 부선장으로 임명되자 누구보다 기뻐했다.

《축하하네.》

《고맙네.》

진호는 박수근의 인사에 대답하면서도 속마음을 그대로 표현했다.

《왜 그런지 겁이 나누만. 해외에 나가서도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겠는지…》

그때도 수근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가 있지 않나. 〈류성〉호가 아무리 해외에 나가있다 해도 조국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면 배짱이 생길걸세.》

생각에서 깨여난 진호는 수근을 바라보며 미소를 담고 물었다.

《물론 이 시각도 안해가 걱정되겠지?》

《걱정되지. 하지만 옆에서 고마운 사람들이 돌봐주고있어 마음은 놓이네.》

수근은 저 멀리 수평선너머로 기울어져가는 태양을 바래며 이렇게 대꾸했다.

《아주머니가 건강연구분소의 유능한 박사선생님들에게서 집중치료를 받고있으니 너무 마음쓰지 말게.》

《곁에서 늘 우리 처에 대해 관심해주니 고맙구만.》

수근이 진호를 돌아보며 웃었다.

《사람두 고맙긴, 우리야 대학때부터 딱친구가 아니였나.》

《또 제일 많이 다투기도 한 사이였지.》

《그래, 허허…》

진호의 머리속에는 잊을수 없는 대학시절이 떠올랐다.

어느날 대학운동장에서는 체육경기가 있었다. 그날은 일요일이여서 수많은 동무들이 운동장에 나와 축구경기를 구경하였다.  진호네 항해학부와 수근이네 통신학부간의 축구경기였다. 이전부터 벼르어오던 사이여서 경기는 처음부터 치렬했다. 수근이네가 공격을 부지런히 들이댔으나 진호네 문지기가 공을 잘 잡는통에 도저히 득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공은 항해학부의 꼴문앞에서 많이 움직였고 혼잡도 여러번 이루어지군 했다.

학생들은 와- 와- 함성을 지르며 응원에 열을 올렸다. 경기가 후반전의 마지막을 몇분 앞두었을 때였다. 통신학부선수가 우측에서 굴러오는 공을 날쌔게 잡아가지고 문전돌입을 시도하자 항해학부에서는 집단방어를 하며 꼴문을 지켜섰다. 그러자 통신학부선수는 기회를 보다가 방어선밖으로 밀리우는척 하면서 꼴문을 향해 대각선으로 길게 찼다. 공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더니 항해학부의 꼴문대에 빗서맞고 떨어졌다. 문지기도 이번만은 공을 쳐내지 못하고 당황해서 어쩔바를 몰라했다. 이제 아차 하는 순간이면 문선 바로 앞에 떨어진 공이 그물쪽으로 굴러들어갈판이였다.

이때 번개같이 몸을 날린 진호가 자기편 문지기를 밀쳐내며 문선에 이른 공을 밖으로 냅다 걷어찼다. 참으로 아슬아슬한 순간이였다. 때를 같이하여 경기시간이 다되였음을 알리는 긴 호각신호소리가 운동장에 울려퍼졌다.

그런데 이때 박수근이가 경기심판에게 뛰여가 항변하는것이였다. 마감에 찬 공이 분명히 문선안쪽으로 들어갔기때문에 자기네가 득점한것으로 승부를 갈라주어야 한다는것이였다. 심판을 섰던 대학청년동맹위원장이 득점으로 인정할수 없다고 했으나 박수근은 제눈으로 똑똑히 보았다면서 조금도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 진호는 더이상 가만 있을수 없어 그에게 다가가 그건 동무가 잘못보았다는것, 공은 정확히 문선상에 있었지 안쪽으로 들어오지 않았다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수근은 손을 내저으며 자기는 통신학부가 승리한것으로 인정할뿐이라고 내뱉고 시퍼래서 돌아섰다.

《고집이 보통이 아니로군. …》

진호는 멀어져가는 수근의 뒤모습을 보며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후 대학을 졸업할무렵인 어느날 저녁 진호가 박수근에게 이렇게 물은적이 있었다.

《이보라구, 동문 아직도 그때 축구경기에서 통신학부가 이겼다고 생각하나?》

《엉? 그야 물론 우리가 이겼지.》

박수근은 여전히 고집했다.

《동무도 참, 여전하군 그래.》

《됐네. 이젠 다 지나간 일이니 더 론의하지 말게.》

수근의 뻣뻣한 말에 진호는 또 웃고말았다.

그때를 생각하며 진호는 수근을 보면서 웃음을 지었다. 수근은 자기를 보며 웃는 진호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나?》

《아무것도 아닐세.》

이때였다. 조타실에서 신호가 날아왔다. 진호가 인차 손대화기로 물었다.

《나 부선장이요. 무슨 일이요?》

《좌현 후미쪽에 웬 낯선 배가 나타났습니다.》

《?…》

후미쪽으로 눈길을 돌리니 해저무는 수평선쪽의 아득한 곳에 웬 작은 선박이 보였다. 진호는 목에 걸었던 쌍안경을 벗어들고 눈에 가져가 초점을 맞추었다.

《우리와 항해방향이 같구만.》

수근이가 진호에게서 쌍안경을 넘겨받아 작은 선박쪽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가만보니 우리를 부지런히 따라오는것 같소.》

정말 그 작은 선박은 빠른 속도로 《류성》호쪽으로 다가오고있었다.

《우리와 항해방향이 같으니 함께 가자는것이 아닐가?》

《글쎄…》

수근의 말에 진호가 머리를 기웃거리며 눈을 쪼프렸다. 그 배는 《류성》호급의 외국상선이였다. 수근은 바삐 통신실로 뛰여갔다. 진호는 서둘러 손대화기로 물었다.

《조타실! 지금 다가오고있는 배가 어떤 배요?》

조타실에서 자동식별기(AIS)를 통해 알아보았는지 인차 화답이 날아왔다.

《××국적을 가진 상선으로서 23명의 선원들을 태우고 ××만해역으로 간답니다.》

《배이름은 뭐요?》

《〈유쾌한 사나이〉호라고 되여있습니다.》

《〈유쾌한 사나이〉? 허, 배이름이 아주 랑만적이구만.》

이때 손대화기에서 박수근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부선장동무! 저쪽에서 우리와 방향이 같으면 동행하자고 합니다.》

《동행하자구?…》

《부선장동무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함께 동행하자는데야 무슨 의견이 있겠소. 아무튼 선장동지의 의견을 들어보기요.》

《알겠습니다.》

박수근은 헌헌하게 대답했다.

언제나 공식적인 장소에서는 례의범절을 지킬줄 아는 그였다. 진호는 곧 선장방으로 갔다. 얼마후 《류성》호와 《유쾌한 사나이》호사이에 통신교신이 진행되였다.

 

-《유쾌한 사나이》호 앞. 동행을 승인한다.

-알았다.

 

날이 어슬녘에 《류성》호와 《유쾌한 사나이》호는 앞뒤로 나란히 서서 남태평양쪽으로 항해를 계속했다. 곧 《류성》호에서 위성통신설비(Inmarsat)로 날리는 텔렉스가 어둠을 헤가르며 멀리 조국으로 날아갔다.

 

《대동강》앞. 《류성》호는 위도 ××, 경도 ××에서 외국선박 《유쾌한 사나이》호를 만나 함께 남쪽으로 항해를 계속한다.

 

어둠속에서 항해등을 켠 두척의 선박들은 나란히 망망대해로 미끄러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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