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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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이였지만 여느때와는 달리 일찌기 신록이 짙어졌다.

계절은 계절이여서 무더위를 띠기 시작했다. 이즈음에 와서는 훈훈한 바람보다 자못 서늘한 해풍이 불어와 해안도시의 이채롭고 다정한 풍경을 돋구어주고있었다.

해안공원은 조용했다.

지금 부두에서는 닻을 내리우고 서있는 8000t급의 무역선 《류성》호가 출항전야에 있어 사람들로 붐비고있건만 공원에는 한적한 고요가 깃들어있었다.

《류성》호 부선장인 김진호는 이곳에서 자기의 애인인 심해연을 기다리고있었다.

어찌보면 공원은 련인을 기다리기 위해 마련된 장소처럼 조용한것 같기도 하고 수집음감에 휩싸여있는듯도 했으나 가만히 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갓 피여나기 시작한 붉은 해당화와 그 주변에 다문다문 피여있는 이름모를 작은 꽃송이들도 빠금히 얼굴을 내밀고 복잡한 항구와는 달리 예가 더 좋다는듯 가볍게 불어오는 해풍에 흐느적거리고 공원의 중심에 둥실하게 꾸려진 못가에 설치된 분수에서는 음악소리에 맞춰 하얀 물줄기들이 박자를 타고 경쾌하게 춤추며 치솟는다.

진호는 공원의 여기저기에 설치된 LED전광판에 새겨지는 시간을 쳐다보았다. 그가 이곳에서 해연이를 기다린지도 벌써 15분이 가까와오고있었다.

(약속한 시간이 지났는데 왜 이렇게 늦을가?…)

그는 다시 눈길을 들어 저 멀리 항구쪽을 바라보았다. 간간이 터져오르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진호의 귀에까지 날아왔다.  그러자 산뜻한 흰색제복차림에 둥글모까지 받쳐쓴 진호의 얼굴에는 느슨한 웃음이 피여났다. 정박해있는 《류성》호의 승선사다리밑에서는 태양빛전지승용차들과 소형뻐스들이 여러대나 몰켜서있고 그것을 타고온 가족들과 친우들이 서로 웃고 떠들며 선원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고있었던것이다. 웃음을 짓고있는 진호였지만 이번에 새로 부임된 무역선《류성》호의 부선장이라는 책임감으로 해서 마음의 무거움을 느끼고있었다.

한개 무역선의 부선장이라면 그가 지금껏 맡고있던 항해사보다 더 어렵고 책임이 크다. 서른살을 갓 넘긴 나이여서 부선장이라는 책임감을 뻐근히 느끼면서도 한번 잘해보리라는 자신심이 한층 키를 돋군다. 심해연이도 자기가 부선장의 직무를 맡았을 때 얼마나 기뻐하며 믿음에 찬 눈길로 바라보았던가.

진호는 고개를 수굿하고 주위를 거닐었다. 그가 해운대학을 졸업한지는 5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무역선의 부선장이 되였으니 그만하면 발전이 빠른축이다. 그만큼 진호는 바다사람다운 능력과 기질을 다 갖추고있는것으로 하여 언제나 사람들의 부러움에 찬 각광을 한껏 받고있는 쾌남아였다. 총각이지만 진호의 바다생활경력을 놓고보면 군사복무때의 어뢰정시절까지 있어 결코 적다고 할수는 없었다. 이 나날 그의 생은 비교적 순탄하게 흘렀다. 중키에 다부진 몸매, 길숨한 얼굴에 두드러지게 나타나있는 숱진 눈섭, 더우기 관자노리에 생긴 까만 기미가 유표해서 인차 사람들의 눈길을 끌군 했다. 사람들은 그의 관자노리에 나있는 기미를 복기미라고 추어대군 하였다. 그 기미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껏 진호의 일은 남들보다 잘되였다고 볼수 있었다.

원래 바다가에서 나서자란 진호여서인지 그는 남달리 바다를 사랑하였다. 늘쌍 바다에 나가 살다싶이 하면서도 그것도 부족하여 일요일이면 동무들을 휘동해서는 뭍에서 까마득히 보이는 섬까지 헤염쳐가는 놀음을 벌려놓아 사람들의 가슴을 조이게 한 때가 수두룩했다. 진호에게 있어서 바다는 생의 전부이고 한시도 떨어져 살수 없는 정깊은 곳이였다.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도 진호는 변함없이 수영장을 찾았으며 심지어 해외에 나가서도 늘쌍 헤염을 칠수 있는 기회만은 양보하지 않았었다.

그가 지금 기다리고있는 처녀연구사 심해연이도 바다생활과정에 알게 되였다.

(그가 왜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을가?…)

초조한 마음을 누를길 없어하는데 뒤에서 씩- 하는 공기빠지는 소리와 함께 낮으나 귀에 익은 승용차의 급정거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새빨간색의 공기방석식승용차에서 그렇게 안타까이 기다리던 해연이가 내리는것이 아닌가. 급하게 온탓인지 그의 이마에는 땀방울까지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아이… 미안해요. 오래 기다리셨지요?》

진호앞에 이른 해연은 짐짓 고개를 숙인채 나직이 말했다. 진호는 얼굴에 웃음을 담으며 얼른 머리를 저었다.

《피, 거짓말.》

《아니, 정말이요.》

진호는 우정 아닌보살을 하였다.

해연은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방울을 훔치며 장난기어린 진호의 대답에 두눈을 곱게 흘기였다.

《동무가 이곳에 나온지는 꼭 30분이 돼요. 어때요, 맞지요?》

명랑하게 묻는 심해연을 보며 진호는 얼핏 공원시계를 쳐다보았다. 오후 2시 20분을 넘어서고있었다. 내가 10분전 2시부터 이곳에 나와있었으니 정말 30분이 되지 않는가? 진호는 놀라운 표정을 짓고 해연을 쳐다보며 말했다.

《허! 정말 신통한데.》

《호호…》

해연이는 진호의 어리둥절해진 모양이 재미있는지 깔깔 웃음을 날리였다.

《헌데 그걸 어떻게 알아맞혔소?》

진호는 해연을 신기한듯 바라보며 물었다.

《다 아는 방법이 있지요 뭐.》

《그렇다!… 혹시 동문 어디에서 나를 지켜보다 나타난게 아니요?》

《예? 아이참, 동문 생각을 해도 뚱딴지같이 해요.》

심해연은 입술을 뾰족이 내밀며 여전히 웃음이 살랑거리는 눈길로 진호를 마주보았다.

《허참!…》

진호는 그만 허거프게 웃고말았다.

해연은 과학원 생체공학연구소 상급연구사이다. 수년세월 인간의 뇌파를 리용한 대화통신기를 연구하고있다. 진호가 머리를 기웃거리는데 해연이가 속삭이듯 말했다.

《미안해요. 사실 하던 일을 마저 결속짓고 오느라고…》

《아, 일없소. 오히려 동무를 돕지 못하는 내가 더 미안하오.》

《그렇게 리해해주니 고마와요. 그런데 이제 떠나시면 언제쯤에 돌아오게 되나요?》

《글쎄, 이번에는 아프리카까지 갔다와야 하니 반년은 실히 잘 걸릴것 같소.》

해연의 얼굴에는 순간이였지만 서운한 기색이 스쳤다.

《그러니 우린 오래동안 떨어져있어야겠구만요.》

《…》

《망망대해에 오래동안 떠가느라면 몹시 외로울거예요. 고독하고 또 위험도 하고…》

《조국이 우릴 지켜보고있지 않소. 언제나 조국의 눈길을 받으며 생활하고있어 우린 배심이 든든하오.》

《호― 하지만 반년동안 떨어져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제 마음이 별로 무거워지는것 같군요.》

서운한 감정이 내밴 해연의 소리에 진호도 머리를 무겁게 끄덕이였다.

사실 요새 와서 진호가 해연을 만나는 회수는 상당히 적어졌다. 머나먼 해외항해길이 앞에 있어 준비할것도 많지만 해연의 과학연구사업에 지장을 줄것 같아 우정 삼가했던것이다.

언젠가는 진호가 이곳 해안가도시에 한달나마 체류한 일이 있었지만 해연이가 연구사업으로 출장갔기에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하지만 속이 깊은 진호는 해연을 리해할줄 알았다. 연구사업에 집착해서 시간가는줄 모르는 그의 열정을 알았을 때 진호는 사랑하는 처녀에 대한 자기의 믿음이 헛된것이 아님을 얼마나 기쁘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진호는 지나온 나날을 얼핏 생각해보며 해연이와 함께 소공원의 길을 따라 다정히 걸었다. 주변에 피여난 꽃들도 작별을 앞둔 두 련인을 다정히 애무하는듯 해풍에 살랑거리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던 그들이 어느 한 곳에 멈춰섰을 때 처녀는 들고있던 손가방을 열고 자그마한 곽을 꺼내들었다.

《저, 이걸…》

처녀는 선뜻 내밀지 못하고 올려다본다.

《그건 뭐요?》

《손목시계예요.》

《손목시계?!…》

진호는 뜻밖이라는듯 눈을 크게 뜨며 입을 항 벌리였다.

처녀는 수집게 웃음을 머금고 여전히 진호를 바라보았다. 진호는 무슨 영문인지 알수 없어 머리를 기웃거렸다.

《시계라?… 허! 나는 아직 동무의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지 못했는데…》

《아이, 됐어요. 이건 약혼기념품이 아니예요.》

해연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럼 도대체 뭐요? 하는 눈길로 진호는 해연을 내려다보았다. 해연은 방실방실 웃기만 한다. 처녀가 입고있는 미색의 여름옷은 해연의 다홍빛얼굴과 조화를 이루어 더 아름다왔다. 진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하며 처녀가 내민 곽을 다시 보며 입을 열었다.

《고맙긴 한데 그 시계는 후날 동무의 부모님들에게 인사를 드린 다음에 받겠소.》

그러자 해연이가 발씬 웃으며 눈을 곱게 흘겼다.

《아이참, 이건 그런 뜻에서 주는게 아니예요.》

《?!…》

처녀는 무작정 진호의 팔목에서 그가 차고있던 시계를 풀어내리고 가지고온 시계를 채워주었다.

《허허… 이럴 땐 받아야 하는가?》

진호는 더 어쩔수 없는듯 해연이에게 팔을 맡긴채 정다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일을 다 끝낸듯 해연이가 물러서자 그는 자기 팔에 채워진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류다른것이였다. 문자판대신 반반하면서도 은백색이 반짝거리는 금속뚜껑이 닫겨있었다.

《모양이 참 류별난 시계구만?…》

《…》

해연이가 방실거리며 시계의 태엽감개처럼 생긴 자그마한 조절기를 누르자 뚜껑이 열리면서 시계바늘과 함께 문자판이 나타났다. 뚜껑안쪽면에는 자그마한 해연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허! 이 처녀가 누구인지 정말 고운데…》

능청스럽게 노는 진호를 바라보며 해연이가 롱조로 말했다.

《보고싶으면 아무때나 볼수 있어요.》

진호는 시계뚜껑을 다시 닫았다 열어보며 해연이에게 중얼거리였다.

《어쨌든 처음보는 시계요. … 혹시 내가 배를 타다보니 이런 시계가 필요되겠다고 생각한건 아니요?》

얼핏 보기에도 시계가 류별나게 생긴데다가 뚜껑까지 있다보니 신기한 시계처럼 생각되였던것이다. 시계를 찬찬히 살펴보던 진호는 해연이에게 눈길을 들었다.

《내가 보기엔 방수장치가 잘된 시계같구만.》

《정말 그렇게 느껴져요?》

진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연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럼 됐어요. 이 시계는 방수도 방수이지만 이렇게 뚜껑이 있어 시계자체를 그 어떤 외부적간섭으로부터도 보호하고있어요.》

《외부적간섭?… 허, 글쎄 난 그 외부적간섭이라는것이 어떤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계는 정말 괜찮은것 같소. 방수, 방타라?…》하며 진호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러니 마음에 있다는거예요?》

《있소, 누가 준 시계라고.》

《동무가 좋아하니 됐어요. 또 있어요.》

《?…》

《이건 모자예요.》

《엉?…》

해연이가 내미는걸 보니 정말 배사람들이 쓰는 작업모였다. 천질도 얼마나 보드라와보이는지 꼭 비로도천같았다.

《이건 정말 좋구만. 우리 배사람들에게야 이런 모자 이상 좋은 선물은 없지. 사양하지 않겠소. 고맙소.》

진호는 정깊은 눈길로 해연을 이윽히 바라보았다.

《동무가 좋아하니 저도 기쁘군요. …》

녀자들이란 다 그런가?… 자기의 성의를 받아주기만 해도 그것으로도 저렇게 기뻐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찌르르해왔다.  이 순간 반년나마 머나먼 항해길에 나가있게 될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기의 체취가 담긴 물건을 쥐여보내고싶어하는 처녀의 심리가 뜨겁게 안겨왔다. 사실 진호가 이번 항해를 마치고 돌아오면 해연이와 약혼식을 하기로 되여있었다.

《해연동무, 내 이 시계와 모자를 한시도 몸에서 떼놓지 않겠소. 그리고 동무가 보고싶을 때면 이 시계에 있는 사진을 보며 동무를 생각하겠소.》

진호는 팔목에 찬 시계를 자기의 가슴에 꼭 갖다댔다. 해연이는 진호가 본래 차던 시계를 가방속에 넣으며 다짐을 두었다.

《고마와요. 꼭 그래주세요. 동무가 날 보고싶어 사진을 볼 때면 우린 서로 정말로 가까이 만나 얘기를 나누는것처럼 그동안의 일을 두고 얘기를 나누게 될지도 몰라요.》

(허허… 녀자들이란 참.)

진호는 벙글써 웃었다. 아마도 선원들은 생김이 류별난 이 시계를 보면 호기심을 가지고 보자고 할것이다.

《동무들에게 함부로 보이지 마세요.》

진호의 속마음을 들여다본듯 해연이가 말했다.

《알겠소. 내 이 시계를 동무로 생각하고 보고싶을 때면 슬그머니 나 혼자 들여다보지. 모자는 항상 쓰고있겠소.》

《정말이지요?》

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다시 천천히 걸음을 내짚었다.

《참, 해연동무, 동무의 연구가 완성단계에 들어간것으로 알고있는데… 그래, 어떻게 되였소?》

해연의 얼굴에 고운 웃음이 피여올랐다.

《거의 됐어요. 아마 제 생각엔 진호동무의 항해기간에 완성될것 같기도 해요.》

《그렇게 빨리?!…》

진호가 놀라웁다는듯 해연을 뚫어지게 바라보는데 거기에는 자기 련인에 대한 믿음과 기쁨이 한껏 어려있었다.

《아이참! 그게 어떻게 빠르다고 볼수 있어요. 남들은 그보다 더 훌륭한것을 연구해내고있는데 난 5년세월을 뇌파통신기만 붙들고있지 않나요.》

《아니요. 5년세월이 흘렀다 해도 그 연구분야는 미개척지인것만큼 성공만 하면 대단한거요.》

《물론 그래요. 사실 뇌파라는건 전류가 너무 작아서 처음에 의학분야에서만 리용하고있었는데 세계과학계에서는 지금 뇌파의 활용범위를 넓혀 사람의 감정과 의사를 전달하는 통신수단으로까지 리용하려고 시도하고있어요.》

《그런데 우리 동무들은 손전화를 비롯해서 발전된 통신수단이 있는데 무엇때문에 뇌파통신이 필요한가고 묻고있소.》

웃음어린 얼굴로 바라보며 묻는 진호에게 해연은 머리를끄덕이였다.

《뇌파통신이 가지는 의의를 잘 모르면 능히 그럴수 있어요. 뇌파통신문제는 몇몇 발전된 나라들에서만 시도하고있으니까요. …》

독자들의 리해를 돕기 위해 생체공학연구소 상급연구사인 해연의 견해를 여기서 잠간 펼쳐보려고 한다. 뇌파란 머리의 대뇌피질의 신경세포가 일으키는 전기적변화를 말한다. 전위변화의 폭은 약 50㎶로서 사람의 의식상태에 따라 변하며 특유한 형태를 나타낸다. 해연의 말대로 뇌파는 의학분야에서 사람의 병을 진단하는데만 리용하였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발전된 일부 나라들에서는 뇌파를 가지고 좀더 실용적으로 리용할수 없겠는가 하는데 주의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 첫 단계로서 역시 의학분야에서 먼거리의료봉사에 뇌파통신을 리용하는것이였다.

세계적으로 텔레메디신(Telemedicine)이라고 통용되고있는 먼거리의료봉사의 도입은 정보화시대인 오늘날 필수적인것으로서 세계적추세로 되고있었다. 다만 이렇게 하는데 많은 자금을 들여 중앙과 지방의 필요한 장소까지 먼거리의료봉사를 위해 까벨을 늘여야 하는 난문제가 있지만 일단 늘여놓으면 지방의 작은 병원에서 진행하는 환자치료도 먼거리의료봉사체계에 의해 중앙병원의 기술적인 방조를 받아 치료를 진행할수 있게 될것이다.

중앙병원에서는 지방의 해당 병원에서 문제의 환자에 대한 병상태를 료해한 조건에서 림상치료경험에 대한 조언과 권고를 해주며 토론도 해주게 된다. 이것은 지방에서부터 환자를 중앙병원에까지 후송해오지 않고도 치료하여 효과를 볼수 있다는 의미에서는 대단한 혁신이고 진보라고 할수 있다. 한마디로 먼거리의료봉사체계는 중앙과 지방에서 전기선을 통해 화면을 리용하여 자기 의사를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수단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일련의 제한성이 있다. 실례로 아무리 실무가 높은 중앙의 한 의사가 지방의 작은 병원의 의사들에게 치료방법을 대준다고 해도 설명을 설득력있게 하지 못한다면 지방병원의사들은 중앙병원의사의 지시를 만족하게 받아들일수 없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과학자들은 중앙병원의사가 말로써는 잘 표현 못한다해도 그의 머리속에서 풍부하게 예상되는 우월한 치료경험과 방법을 상대방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게 할수 없겠는가를 생각하게 되였다.

과학자들은 이 방법에서 한계단 더 도약하려고 시도했다. 그 방도로 찾은것이 바로 뇌파통신방법이였다. 손전화기에서는 기껏해야 영상을 보면서 통화를 한다면 뇌파통신은 통화를 해도 상대방의 머리속에서 일어나는 뇌파의 변화에 따른 전위파에 의하여 상대방의 얼굴표정은 물론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서로의 감정과 생각도 방불하게 상상되며 통화한다는것이다. 말하자면 중앙병원의사의 머리속에 있는 고도의 지적사고를 고스란히 전달받은 지방병원의사가 집도를 중앙병원의사가 의도하는대로 그야말로 순차성을 띠고 하나하나 솜씨있게 진행한다는것이다. 생각만 해도 얼마나 멋들어진것인가. 이러한것을 어떻게 손전화기나 먼거리의료봉사에 갖다댈수 있겠는가. 손전화기나 먼거리의료봉사에서 진행되는 언어통화보다 상대방의 머리속에서 일어나는 사고력에 기초한 대화통화수단이 인간생활에 절실히 필요하겠다고 생각한 여러 나라들에서 뇌파통신연구에 주의를 돌리게 되였다. 그러나 아직은 성공한 나라가 없었다.

 

《앞으로 뇌파통신이 성공하면 사람들은 멀리 떨어져있어도 상대방이 무엇을 하고있는지도 눈앞에서 보는것처럼 알수 있게 될거예요.》

《좋구만.》

진호는 진정으로 기뻤다. 그는 해연이가 오랜 기간 연구해오는 뇌파통신기가 어서 빨리 빛을 보기를 기대했다.

《동무의 연구성과를 보지 못하고 떠나자니 참 서운하구만.》

진호는 대견한 눈길로 해연을 돌아보았다.

《진호동무, 절 꼭 믿으세요. 제 생각엔 두달후면 빛을 볼것 같아요.》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소. 그래서 말이요, 난 이런 생각도 해보았는데… 내가 무언가 동무를 도울 일은 없겠는가 하고 말이요?》

진호가 해연이쪽으로 돌아섰다.

《…》

생각에 잠겼던 진호가 얼굴색을 밝게 가지며 다시 말을 이었다.

《가만, 뇌파통신말단장치(High-efficent terminal)말이요. 이번 항해길에 내가 그걸 가지고나가 동무와 시험통신을 해주면 어떨가?》

《그럼 얼마나 좋겠어요.》

해연은 곱게 웃음을 짓더니 손가방에서 손전화보다 조금 큰 휴대용고성능말단장치를 꺼냈다. 옆에 달린 자그마한 스위치를 누르자 웃뚜껑이 열리면서 화면이 펼쳐졌다.

《이 시험기로는 거리가 먼곳에서 시험을 할수록 저한테는 더 좋아요. 그래야 기재의 효과성을 검증할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보다 중요한건 우리가 이 기재로 해서 언제나 함께 있을수 있다는거예요.》

《그것 보오, 그러니 내가 할일이 있지 않소. 내 가는곳마다 통신시험을 꼭 하겠소. 다른 나라 항구는 물론 공해상에서도 하겠소. 참, 이런 시험을 뭐라고 하더라 ? 》

《환경시험이라고 해요.》

《환경시험이라, 내가 동무의 연구사업을 조금이나마 도와줄수 있으니 다행이구만.》

《결국 저의 뇌파통신연구 성공여부는 동무에게도 달려있군요.》

《그렇단 말이요.》

진호가 불쑥 해연의 두손을 잡고 힘을 주면서 흔들었다.

《아이!…》

해연이는 사위를 둘러보며 손을 뽑았다.

《누가 보겠어요.》

《보면 뭐라오.》

진호는 그냥 환희에 넘쳐 마음이 넘실거리였다. 환하게 웃는 진호를 바라보며 해연이가 곱게 미소를 지었다.

《진호동무, 부탁해요. 건강에 류의해주세요. 제가 항상 동무를 생각하고있다는것을 잊지 말아주세요.》

《알겠소. 알겠다니까. 나도 언제나 동무를 생각할거요. 더우기 이 시계와 함께 말단장치까지 있으니 내가 늘 동무를 볼수 있지 않겠소.》

진호의 진정에 넘친 소리에 해연은 다시 곱게 웃는다.

《고마와요.》

《허! 고마운건 나요. 나도 조국의 부강발전에 이바지하는 연구사업에 도움을 주게 되였으니… 그렇지?》

《예, 이렇게 서로 도와나가면 나라의 과학발전을 위한 연구사업은 더욱 잘될거예요.》

해연의 목소리가 가볍게 떨렸다.

《동무말이 옳소. 오늘은 참 좋구만.》

사랑스러운 눈길로 해연을 내려다보는 진호는 가슴이 뿌듯해옴을 느끼였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감정이란 모두 이런것인가?…

소년시절 다년간 대사관성원으로 나가계시는 부모님들을 따라 외국에서 생활한 그는 조국에 대한 사랑, 겨레에 대한 사랑이 어떤 감정인가를 너무도 깊이 체험했었다.

두나이강변에 나가 사랑하는 조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떠오르는 아침해를 맞을 때면 가슴이 부풀어오르군 했다. 그래서 조국에서 가져온 책 한권, 생활필수품 하나라도 귀중히 여기고 아껴쓰군 했다. 그래서인지 지금 이 시각에도 진호는 해연의 숨결이 느껴지는 손목시계와 모자도 더없는 보물처럼 느껴졌다. 진호는 해연이에 대한 애틋한 정을 가지고 그와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떠나면 한달후에는 이름난 해역인 ××만에 도착하게 된다는것과 망망대해의 항해길에서 있을수 있는 여러가지 일들에 대하여 진호는 열정적으로 설명하였다.

이때였다. 《류성》호의 긴 배고동소리가 울리였다. 진호는 서운한 눈길로 해연을 쳐다보고 인츰 새 시계의 뚜껑을 열었다.

15분전 17시!

《자, 떠날 때가 되였소.》

해연의 눈가에도 서운한 기색이 력연했다.

《허허… 너무 섭섭해마오. 인츰 또 만나겠는데… 참, 우리 박수근통신장동무네 집에 찾아가주오. 지금 선원들 모두가 통신장동무안해의 건강을 두고 걱정하고있소. 내가 통신장동무의 아주머니에게 병원치료를 받도록 권고하고 그 치료대책까지 세워주긴 했지만 시간이 없어 입원하는걸 보지 못하고 떠나오. 동무가 내대신 박수근동무의 아주머니를 병원에 꼭 입원시켜 치료를 받도록 해주오.》

해연은 딱한 기색을 지었다.

아직 그 아주머니와 한번도 만나본적도 없는 내가 어떻게?… 거기에 가선 또 뭐라고 내 소개를 한단 말인가. 그런것을 보면 남자들이란 덜퉁스러운데가 있다.

《통신장동문 나와 동갑인데 좋은 동무요.》

진호는 지금 해연이의 마음속생각은 안중에 없이 제 소리만 하였다.

《알겠어요.》

해연은 나직한 말로 대답했다. 진호의 옆주머니에서 손대화기 신호소리가 울렸다.

《부선장동무, 모두 승선했습니다. 정각 17시에 출항하렵니다.》

손대화기에서 항해사의 말이 울려나왔다.

《알겠소.》

진호는 해연에게 돌아섰다.

《자, 그럼 잘 있소. 내가 올 때까지 앓지 마오.》

서운한 미소를 담고 자기를 올려다보는 해연의 두손을 진호가 다시 꼭 움켜쥐였다.

《그리고 뇌파통신기연구사업에서 꼭 성공하길 바라오.》

《예.》

처녀는 애써 웃음을 짓는다.

이때 진호의 손대화기에서 또 신호음이 울리였다. 수신단추를 누르니 이번에는 걸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부선장동무, 해연동무가 동무를 놓아주지 않는게 아니요?》

손대화기에서 울리는 목소리의 임자는 통신장 박수근이였다. 그는 진호가 해연이를 만나려고 공원에 갔다는것을 알고있었던것이다. 해연의 얼굴이 활딱 붉어진다.

《아, 통신장동무요? 이거 정말 미안하오. 곧 가겠소.》

손대화기를 통해 대화를 끝낸 진호가 해연이를 돌아보았다.

《자, 가겠소. 잘 있소.》

《그럼 몸성히…》

진호는 작별인사를 하였지만 해연이와 정작 헤여지기가 아쉬워 이번에는 해연이의 두어깨를 꽉 쥐여흔들었다.

그러자 처녀는 눈귀에 맺힌 물방울을 보이지 않으려는듯 고개를 살풋이 숙였다. 이어 돌아서 항구쪽으로 뛰여가는 진호를 바라보던 해연은 두눈가에 맺혀있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훔쳐냈다.

한편 진호는 배의 현측사다리밑에서 기다리고있는 관리국책임일군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배에 올랐다. 박수근통신장이 진호에게로 다가왔다.

《안됐소. 급하게 찾았다고 해연동무가 나를 욕했을테지?》

《허허… 인정사정이 없는 량반이라고 속이 몹시 토라지더군.》

진호가 롱으로 대꾸했다.

《그래?… 이거 정말 미안하구만.》

박수근은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저 멀리 해안도시에 높이 솟은 고층의 자기 집쪽을 바라보는것이였다.

《됐어, 그건 내가 해보는 소리요.》

진호는 박수근을 가볍게 툭 쳤다. 그는 지금 박수근의 심중을 잘 안다. 배웅하는 사람들의 틈에 끼우지 못하고 집에서 앓고있는 안해를 생각하고있는 수근인것이다.

안해를 불같이 뜨겁게 사랑하는 수근은 안해의 배웅을 받지 못하는 서글픔보다 남편을 바래우려 항구에까지 나오지 못해 미안해하는 안해의 안타까와하던 모습에 더 마음이 걸려있을것이였다.

《너무 마음쓰지 말라구. 이번 항해를 마치면 함께 분옥동물 찾아보자구.》

《고맙네.》

박수근은 진호의 말에 가슴이 뜨거워나서인지 인차 얼굴에 웃음을 띠웠다.

《전원이 다 승선했겠지?》

《그럼, 방금전에 인원점검을 했소.》

진호는 머리를 끄덕이며 팔목에 찬 시계의 뚜껑을 열고 문자판을 들여다보았다. 5분전 17시였다. 진호는 손대화기를 꺼내 사령실을 찾았다.

《선장동지, 돌아왔습니다.》

《그럼 됐소. 선수!》 선장의 구령이 울렸다.

《예!》

《양묘 시작!》

《알았습니다. 양묘 시작!-》

진호는 선장의 말을 복창하고는 손대화기를 주머니에 넣고 목수(닻조종자)와 함께 양묘(닻을 끌어올리는 작업)를 시작했다.  이어 닻을 끌어올리는 동음이 은은하게 울리였다. 진호는 배의 현장판으로 다가가 잔교우에 늘어서서 선원들을 바래우는 가족들과 친우들을 내려다보았다. 배웅나온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잘 다녀오라고 소리를 웨치고있다. 그들에게 웃음을 지어보이던 진호는 저도모르게 저 멀리 소공원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곳에서는 해연이가 빨간 목수건을 잡아쥐고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있었다. 처녀여서인지 아직 배웅나온 가족들속에 섞이기가 부끄러워 저렇게 외따로 서있는것이다. 진호는 활짝 웃으며 그를 향해 열정적으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붕!―》

17시, 드디여 배는 부두를 떠나기 시작하였다. 배꼬리에서 새하얀 거품이 무룩무룩 솟아올랐다.

《잘 다녀오세요!―》

《앓지 마오!―》

《아버지! 건강하세요―》

서로의 뜨거운 정으로 화답하는 소리가 떠나는 《류성》호와 부두사이에 메아리쳤다.

 

바로 이 시각,

항구에 떠있는 어느 한 외국선박에서 웬 사나이가 쌍안경으로 멀어져가는 《류성》호를 한참동안이나 지켜보고있었다. 그는 허리춤에서 손대화기를 꺼내들고 무어라 알지 못할 소리로 중얼거렸다.

잠시후 그 외국선박의 무전실에서는 다음과 같은 극비전문이 작성되였다.

《〈마천루〉앞. 6월 10일 17시 정시에 조선의 8000t급의〈류성〉호가 출항하였다. 성공을 바란다. 〈그림자〉》

전문은 곧 암호화되여 저 멀리 이국땅으로 날아갔다. 앞으로 《류성》호에서 어떤 일이 생기겠는지 아직은 그 누구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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