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회)

제 2 장 특종기사를 찾아서

21

 

푸른 섬광이 새벽하늘을 찢으며 번쩍 빛났다. 뒤이어 꽈르릉 하는 우뢰소리가 하늘땅을 흔들었다. 대줄기같은 비가 좍좍 쏟아졌다. 새벽 6시도 되지 않았지만 서울시내의 중심에 있는 성당안에는 하얀 면사포를 쓴 많은 교인들이 모여있었다. 은은한 성가가 어둠이 깔린 땅을 뒤흔드는 천둥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성당안을 울리고있었다.

라경숙은 강정웅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와있었다.

마침 6월민주항쟁기념일이 다가오는 때여서 강정웅의 새벽미사도 그런 내용으로 이어지고있었다.

《… 암울했던 군사독재시절에 우리는 인간의 기본권이 짓밟히고 침해당할 때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위해서든 박해당하는 사람의 편에 서서 그를 대변하여 유린당한 권리를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시대를 통해 많은것을 배웠습니다.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서 순국한 렬사들, 수난받았던 많은 사람들, 로동자, 빈민, 해직언론인들…

우리모두는 지난 질곡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그렇게 자신을 다 바친분들에게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그 빚을 갚기 위해서도 우리는 성실하고 옳바르게 자기의 본분을 다하여야 합니다. 그분들의 넋을 잊고 사는것과 같은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라경숙은 강정웅의 그 말이 마치도 자기를 깨우쳐주는 말인듯이 여겨졌다.

며칠전에 그는 라경숙의 부탁대로 현철의 친아버지에 대해 알아보았다고 하면서 그 사실을 지금까지 본인에게 숨기고있은것을 책망하였다. 그리고는 좀 늦은감은 있지만 빨리 현철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며 곧 만나자고 하였다. 그래서 라경숙은 부랴부랴 여기로 온것이였다. 이제 강정웅이 어떤 사연을 터놓을지 아직은 알수 없었으나 지금 그의 가슴속에서는 무서운 불안감이 치밀어오르고있었다. 분명 강정웅이 이런 결단을 내린것을 보면 그럴만한 리유가 있는것 같았다.

그로 말하면 고아로 거리를 방랑하다가 수녀의 손에 이끌려 우연히 수녀가 된 라경숙과는 달리 자기가 원하여 신부가 된 사람이였다.

10대의 어린 나이에 한강철교를 맹폭격하는 미군폭격기들의 굉음과 병원이나 학교마당에서 피를 토하며 신음하던 부상자들을 보며 받은 충격이 너무 강렬하여 처음으로 삶과 죽음, 신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 그였다고 한다. 그후 중학교를 졸업한 후 스스로 신부가 되기로 결심하고 신학을 배웠고 유럽으로 류학을 떠났다.

그러나 유럽에서 서울로 돌아온 당시 강정웅에게는 《유신》독재통치하의 이 땅이 지극히 낯설지 않을수 없었다. 친구들이 명동거리며 유한계층들이 붐비는 여기저기로 데리고 다니며 《서울도 많이 발전했지?》 하고 물었으나 오히려 어딜 가나 눈에 먼저 띄우는 초라한 판자집들이 그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시위가 그칠 사이가 없는 거리들과 길가는 시민들까지 덮어놓고 련행해가는 경찰들, 으슥진 골목에까지 다닥다닥 나붙은 수배사진들, 사람들의 자유와 권리를 가차없이 짓밟아버리고 우롱하는듯 한 법조항들… 이 모든것이 그에게는 너무나도 괴롭고 우울한 풍경들이였다. 이런 인상을 친구들에게 얘기하였더니 《너 류학 갔다오더니 외국인처럼 썩었구나.》 하는 비양으로 돌아왔다.

그를 감동시키고 변화시킨것은 소박하고 진실하며 대바른 민중이였다. 그가 어느 한 신부를 중앙정보부가 불법련행한 사건에 반발하여 칠칠야밤에 젊은 사제들과 함께 초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적이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많은 시민들이 동정하며 합류해주는것이였다. 그들은 평범하고 배운것도 별로 없는 일반사람들이였다. 하지만 량심적이고 진실했으며 정의와 진리를 위해 빈말이 아니라 몸을 내댔다. 그들과 함께 롱성도 하고 가두시위행진도 하면서 민주화와 통일에 대해 생각하게 되였고 해직로동자들의 눈물겨운 삶의 호소와 애어린 싹과도 같은 청소년들의 희망을 사정없이 얼구어버리는 사나운 동토대로 화해버린 이 땅에 대해 깊이 깨닫게 되였다. 그때부터 강정웅은 민중의 삶의 현장을 자주 찾았다. 해고로동자들이 천막롱성을 하면 그곳에도 가보았고 초보적인 생존권을 요구한 로동자들이 구속되면 그들의 가족들을 돌보면서 경찰서를 항의방문하기도 하였다.

1987년 여름 6월항쟁이 한창 가렬하게 벌어지고있던 어느날 새벽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에 만신창이 된 학생들과 로동자들을 성당 지하실에 들여놓았던 강정웅은 그들이 화염병을 제작하는것을 발견하게 되였다. 그때 그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그래서는 안된다고 만류했다. 다음날 집회에 나갔던 강정웅은 아연실색하지 않을수 없었다. 경찰의 무차별적인 폭행으로 피투성이가 되여 끌려가는 그들을 보았던것이다. 격분을 금치 못하던 그는 화가 나서 시위자들에게 화염병을 더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제작도중에 중지당한탓에 화염병은 이미 바닥이 난 상태였다. 강정웅은 《밤새 만들것이지 왜 그만두었느냐?》고 꾸짖고는 주먹을 휘두르며 경찰들과 맞섰다. 그러다가 경찰에 련행되게 되자 자기의 행동을 정당화하면서 이렇게 웨쳤다.

《싸우기로 작정한 이상 몸을 던져야 합니다. 그 각오가 없이 어찌 이길수 있겠소. 분노를 몸으로 표현하는것도 주님의 가르치심입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로 그는 경찰들속에서 《깡패신부》라는 류다른 별명으로 불리우기도 하였다.

파쑈독재에 대한 반항으로 이어온 민주화투쟁의 열풍속에 그의 이름과 모습은 시위민중들속에서 전혀 생소하지 않았고 어딜 가나 환영을 받았다. 미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돌아갔다. 홀로 남은 라경숙에게 다가온 강정웅은 의자에 앉으며 옆자리를 권했다. 하지만 라경숙은 두손을 모아쥐고 그냥 서있었다.

그를 한동안 올려다보던 강정웅이 조용히 물었다.

《그러니 김지우라는 사람이 현철의 친아버지란 말입니까?》

라경숙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현철의 친엄마가 떠나기 전에 애아버지의 이름을 알려주었었습니다.

김지우라고… 며칠후에 재판을 받게 된다고 분명히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친엄마는 시체가 되여 돌아왔다?! …》

《예.》

《그 녀인의 이름이 최은경이였습니까?》

《예.》

《그렇군요.》

한동안 앞을 이윽토록 바라보던 강정웅은 무겁게 말을 이었다.

《내 좀 알아보았습니다. 당시 김지우를 변호하였던 사람을 만날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 말이 그날 재판정에 김지우의 무죄를 증언할 유력한 증인이 출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증인을 찾아 떠났던 피고의 안해도 돌아오지 못했구요. 하긴 이미 죽은 사람이니 재판정에 나타날수가 없었겠지요.》

《그런데 현철의 친아버지가 정말로 이북간첩입니까?》

라경숙이 나직하나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게 판결되였더군요. … 그 재판에 참가했던 검사의 기소장과 변호사의 변론내용을 비롯해서 당시 재판자료들을 분석해보았는데 애매한게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당시는 권력으로 모든것이 좌지우지되던 시대였습니다. 권력자들의 립장에서 력사가 정립된것입니다.》

마치도 기도를 올리는듯 한 강정웅의 웅글고 침울한 목소리가 작은 성당안을 울리며 과거의 문을 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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