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 회)

제 2 장 특종기사를 찾아서

20

 

리기철은 자기의 인생에서 요즘처럼 바쁘고 즐거운 때가 없었던것만 같았다. 하루하루가 얼음이 녹듯이 사라져가고 일지에 박아놓은 깨알같은 글자로 남아버렸다. 그러나 그 깨알같은 글자들은 《대통령》선거라는 정치계의 돌풍을 향하여 돌진하는 조대풍 비행선의 자취이며 기록이였다. 정국은 《대통령》선거가 진행되는 올해에 접어들면서 이미 거대한 소용돌이속에 휘감겨들었다. 여당과 야당들속에서는 소위 올곧은 《대통령》감을 내세운다며 《경선》이요 뭐요 하며 정초부터 떠들고있었다. 그러나 실상은 각파로 갈라져 권력싸움을 하는데 불과하였다. 그들은 자기 리속에 따라 사람을 내세우고 그를 당선시키는데 열을 올리고있었다. 누가 당선되는가에 따라 정치적생명과 성공이 좌우되는것이였다. 그들에게는 《누구의 뒤에 줄을 설것인가?》라는 운명적인 순간이였다. 한번 줄을 잘못 서면 정치인으로서는 좌절을 면치 못하며 그런자는 개도 거들떠보지 않는것이 이 땅의 정치생리였다.

리기철은 1인자를 만드는 참모진의 거두라는 자긍심에 힘든줄 모르고 천방지축 뛰여다니고있었다. 그는 《대통령》선거와 관련되여있는 모든 후보들의 자료를 구체적으로 수집하여 종합한데 토대하여 일정표를 짜놓고는 그들과 암암리에 또는 우연인듯이 만나 유혹하고 간청하고 협박하며 승리의 결승선으로 향한 디딤돌을 하나하나 고여가고있었다.

《대통령》선거에 나선 대상들은 표면상으로도 여당과 야당을 포함하여 여러명이나 되였다. 그들은 이미 정계에서 무시할수 없는 막강한 힘과 인맥을 형성하고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당내 《경선》이라는 수렁탕에서 한번은 뒹굴어야 할 운명들이였다.

이 수렁탕에서 적수들을 거꾸러뜨리고 빠져나온 사람들이 《대통령》선거에 나서게 될것이였다. 그런가 하면 정면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아주 은밀하게 《대통령》선거를 향해 살금살금 족제비걸음을 하는자들도 있었다. 지금은 조용히 물고뜯고 잡아채다가 이제 본격적인 후보등록에 들어가면 이들도 실체를 드러낼것이다. 하긴 그들중에 조대풍도 있는것이였다.

조대풍은 아직은 자기가 《대통령》선거에 나서려고 한다는것을 언론계에 알리지도 않았고 풍설이 도는것도 달가와 하지 않고있었다. 그저 인터네트에 시국과 관련한 자기의 견해를 올리거나 신문에 론평 같은것을 싣게 하여 시민들의 인기를 모으고 미국에 갔다온 후에도 서울을 찾아오는 미국의 유명인사들을 놓치지 않고 빠짐없이 만날뿐이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수면우에 떠오른 후보들만이 아니라 자기처럼 수중에서 가재걸음을 하고있는자들까지도 모두 문서장에 올려놓고 그들의 먼지를 털어낼것을 요구하고있었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벗도 없다는 아메리카식정치생리에다 CIA식정보모략을 유일한 통치방식으로 삼고있는 그였다. 지금은 경쟁자이지만 언젠가는 벗이 될수도 있는 후보들의 개인정보는 그들을 거꾸러뜨리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되거나 아니면 벗으로 사귀기 위한 소중한 끈이 되는것이다.

문제는 선거표였다. 어쨌든 선거라는것은 표를 누가 많이 얻는가에 따라 승부가 결정되는것이였다. 리기철이 있는 힘을 다해 거미줄같은 정보망을 늘이고 먼지같은 정보에도 목숨을 거는 리유도 사실상은 표를 쥐자는데 있었다.

표를 많이 얻기 위한 수법 역시 각양각색이였다.

리기철은 짬을 내여 절을 다녀오는가 하면 풍수쟁이를 찾아가기도 하였다. 유명무명의 중들과 풍수쟁이들도 선거전에서 한밑천 마련해볼 료량으로 각종 랑설을 퍼뜨리며 다녔다. 누구의 덕이 높아 자기 절의 종이 절로 밤새껏 울렸다든지 누구의 조상묘는 성지여서 그 덕을 보는자가 《대통령》이 된다는 식이였다. 결국 그리스도도 석가모니도 성황당의 귀신들도 선거유세에 떨쳐나선셈이였다. 그런데 이들을 조종하는것은 사실상 돈이였다. 돈이면 돌부처도 움직이고 진탕의 구린내도 향내로 바꿀수 있는것이였다.

선거전이 박두할수록 각파에서 떠들썩하니 벌려놓는것이 그 무슨 출판기념식이였다. 후보라고 나선 사람들은 자기의 정치리상을 담았다든가 아니면 자기의 비상한 경륜을 수록했다는 도서들을 싸구려작가에게 대필시켜 발행하고서는 비싼 술을 강물처럼 퍼넘기며 술놀이, 기생놀이같은 기념식을 차려놓았다. 그 기념식에는 비단 정계와 학계, 출판보도계뿐아니라 실업계의 인사들도 줄지어 찾아와 축하를 하고 기부를 하였는데 이때의 기부금이야말로 유명짜한 강도의 뺨을 때리고 사기군의 눈알을 뽑을 정도의 거액이였다. 소위 투명한 선거를 한다면서 늘여놓은 선거부정방지법의 그물을 교묘하게 빠져나가 정치비자금, 선거비자금을 마련하는데서는 그야말로 귀신 한가지였다.

그나저나 조대풍도 선거자금에 목줄이 타고있었다. 원체 모든 선거들이 그러하지만 정계의 1인자를 고르는 《대통령》선거야말로 최대의 돈선거였다. 그래서 법적으로도 《대통령》선거자금으로 몇백억의 자금까지는 리용할수 있다고 공공연히 성문화해놓고있었다. 법적으로 허용한 그 몇백억의 자금이면 웬만한 기업가의 눈이 뒤집힐만 한 거액이지만 정치인들에게는 고작 코끼리에게 비스케트를 내미는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실상 몇천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현금을 장마철의 탕수처럼 흘러보내며 승부를 가르는것이 《대통령》선거였다.

리기철은 조대풍에게 전기 비슷한것을 만들어 출판기념식을 여는것이 어떠냐고 넌지시 암시하였으나 그에게는 마이동풍이였다. 조대풍은 싸구려작가를 시켜 꾸미는 출판기념식보다는 골프놀음에 맛들어있었다. 하긴 그것이 막강한 권력을 쥐고 흔들던 때의 향수에 젖어들게 하는탓인지도 몰랐다.

골프는 단순히 경기로만 끝나지 않았다. 주최측이 제공한 상금으로 내기를 하는데 말이 경기이지 실상은 돈을 섬겨주는 형식에 불과했다. 접대받는 사람이 내기에서 충분한 돈을 챙기지 못했다고 생각되면 주최측은 골프대회 경쟁상품이라는 명목으로 갖가지 뢰물을 찔러주었다. 겉으로 보이는것은 골프채나 보석 같은것이였으나 실상은 골프운동복을 넣는 주머니에 현금을 채워주는것이였다. 그 주머니에 만원짜리 지페를 넣을 경우 1억원이상의 현금이 들어간다. 모르는 사람은 골프운동복가방을 들고 가는것으로 알고있지만 실은 그속에 거액의 돈이 들어있는것이다.

조대풍이 오늘 아침 조회차로 들렸을 때도 잊지 않고 일정에 박아넣은것이 골프였다. 재벌가의 상속자와 겨루는 골프는 몇시간내에 그의 주머니를 수억원의 현금으로 가득 채울것이다. 그것이 조대풍을 즐겁게 하여 손때묻은 골프채를 만지작거리게 하였다.

그의 기분이 붕 뜬것을 리용하여 리기철은 슬쩍 한마디 박았다.

《문태석이라는 녀석이 현금상자를 들고 우리쪽에 줄을 서려고 하고있습니다.》

《문태석?!》

조대풍은 이름이 귀에 선듯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 리기철은 머리를 갑삭거리며 말했다.

《요즘 실업계에 별처럼 떠오른자인데 알게 모르게 어르신의 덕을 많이 본자입니다. 우리가 여태껏 관리해온자이니 마음놓으셔도 됩니다.》

《그런 시시껄렁한 일들은 자네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게.》

조대풍은 골프채를 잡고 허리를 구부렸다가 힘껏 치는 시늉을 하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것을 보며 리기철은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문태석은 이미 살아있는 화석과도 같았다. 아무 쓸모도 없는 다 끊어진 실오리에 불과한것이였지만 리기철은 버리지 않고 문태석의 명의로 마카오에 유령회사를 차려놓고 운영하도록 하였다. 그것이 어쩌면 자기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조대풍이라는 거물을 칭칭 동여매는데 요긴하게 쓰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자못 기뻤다.

 

아침부터 꼴사납게 내리던 보슬비는 밤이 되도록 좀처럼 멎을념을 몰랐다. 우산도 없이 길을 떠났다가 온몸이 흠뻑 젖은 김현철은 질척질척한 진창을 밟고 망연자실해 서있었다. 오붓한 마을이 있으리라고 짐작하고 떠난 길이였는데 그의 앞에 나타난것은 온통 헤쳐지고 뒤번져진 광활한 들판이였던것이다. 군데군데 솟아있는 흙무지들이 그를 비웃는듯싶었다.

김현철은 취재수첩을 뒤져 행적지를 다시 확인해보았다. 분명 이곳이였다. 그는 1987년 당시의 신문에 난 문태석의 나이와 주소를 근거로 그의 행처를 추적해보았었다. 그의 나이를 근거로 출생한 해를 계산해내고 언론이 잘못 보도했을 가능성까지 고려하여 신문에 났던 주소와 이름을 련관시켜보았다. 결과 문태석이 사건이후에 정착했던 거주지를 아직 떠나지 않은것으로 확인되였었다. 희망을 안고 달려왔지만 그를 맞아준것은 뿌연 어둠속에서 축축한 비를 맞으며 맥빠진 숨을 내쉬는 대지뿐이였다. 이곳은 새 공장지구를 형성하기로 되여있어 오래전에 주택들이 철거되였다고 했다. 김현철은 지나가는 한사람을 붙잡고 관할파출소가 어디인가고 물었다.

파출소로 찾아간 그는 신분증을 내보이고 당직경찰에게 물었다.

《이곳에 거주했던 한사람을 찾으려 하는데요.》

그의 말을 자세히 듣고난 경찰은 불청객의 용모를 올리훑고 내리훑어보다가 시끄럽다는 투로 대답했다.

《집주소를 바꾸지 않았다면 우리도 알수 없습니다.》

김현철은 허탈한 심정을 안고 밖으로 나왔다.

(이제 문태석을 찾는것은 한가지 방도밖에 없다. 문태석이나 그의 가족이 사용하는 전화번호를 찾아내 거처지를 추적하는것이다. 그런데 이런 추적은 경찰이나 검찰 같은 수사기관만이 할수 있다. )

순간 김현철은 리도희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는 지금까지 취재한 자료들을 종합하는것으로 취재를 마무리할것을 충고했다. 어쩌면 이런 결과를 미리 내다보고 그런 말을 한것인지도 모른다. 늙은 하늘소가 갈길을 안다고들 했다. 그의 말을 따르는것이 좋을듯싶었다.

(그래, 우선 기사를 내고보자. )

이런 속생각을 품고 돌아온 김현철은 이때까지 취재한것을 정리해 기사를 썼다.

《오래간만에 옛이야기를 꺼내보자. 87년 새해를 맞이한 직후의 일이다. 87년 정초 언론계는 <홍콩교민 랍북도중 극적탈출>이란 제목의 기사를 쏟아냈다. 그 내용은 모기업체의 홍콩지사장이라는 문모씨가 안해가 포함된 이북의 공작조직에 유인돼 싱가포르주재 이북대사관까지 갔다가 탈출했다며 이북에서 문씨를 랍치하기 위해 미인계를 구사했다는것이였다. 당시 언론에 보도된 이북의 공작조직이 시도한 문씨랍치경위는 이러했다. …》

이렇게 서두를 뗀 그는 87년에 일어난 사건을 소개한 후 당시 김춘옥이 북의 《공작원》이라고 보도됐는데 그와 관련한 증거가 확실하지 않으며 따라서 사건의 진실여부도 의심된다는것을 위주로 기사내용을 전개하였다.

《이건 뭐요?》

부장은 눈을 흡뜨고 김현철을 올려다보았다. 중언부언하는 그의 말을 채 듣지도 않고 부장은 원고를 한옆으로 밀어버렸다.

《잠자는 호랑이의 수염을 건드리겠다는건데… 젊은 친구가 담이 큰건 마음에 드오. 그런데 허위기사라든가 고의적인 명예훼손이라고 저쪽에서 칼을 빼들고 덤벼들면 어쩔테요?》

《취재자료들은 모두 정확합니다.》

《증인이 있소? 또 증거물은? … 이거야 온통 의혹투성이인데 어떻게 기사라고 내미는가?》

《우리가 무슨 경찰입니까? 정보를 넘겨받아 기사를 써서 신문에 실으면 그만이 아닙니까?》

눈이 휘둥그래진 부장은 처음 만난 사람처럼 김현철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신경질적으로 내뱉았다.

《알겠소. 토의해보고 결정할테니 놓고 가도록 하오.》

문밖으로 나온 김현철은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마침 부장이 어느 사건현장으로 취재를 나가라는 지시를 내려 그곳으로 떠나면서도 속으로는 찜찜했다. 부장의 태도로 보아 필경 기사가 보류될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저녁노을이 붉게 타는 한강변에 두대의 승용차가 나란히 서있었다. 한대는 노을이 불그레하니 비낀 은백색이였고 다른 하나는 칠흑처럼 까만 승용차였다.

그 차에서 얼마가량 떨어진 곳에 두 사나이가 저녁노을을 등지고 서있었다.

《그래 전화로 못할 이야기라는게 뭔가?》

리기철은 강 건너편을 응시하며 박영준에게 묻고있었다.

박영준은 그에게 서류봉투에서 꺼낸 문서 비슷한것을 넘겨주었다. 그것을 읽어가던 리기철의 얼굴이 무섭게 이그러졌다.

《어느 놈이 이런 쓰레기를 써내깔렸소?》

《고정하십시오. 뒤처리는 말끔히 해놓았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이런 잡소리를 줴치는 놈이?》

《김현철이라고 3~4년전에 신문사에 입직한 애숭이입니다. 원래 철없는 인기주의자인데 아래웃턱을 가리지 못하고 뜀뛰는 얼간이입니다.》

《하여튼 어찌된 일인지 자세히 얘기해봐.》

박영준은 홍정실의 전화로부터 시작하여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다.

《아무래도 껄끄러워 미리 김현철의 신문사에 침을 놓았었습니다. 아니나다를가 며칠 지나서 등잔불에 날아드는 부나비같이 원고를 들고 부장을 찾아왔답니다. 일단 토의하고 알려준다고 해놓고는 원고를 빼돌렸습니다. 현재는 긴급한 사건현장에서 취재중이니 당분간은 여기저기 쑤시며 다니지 못할겁니다.》

《그러면 그 현장취재가 끝나면 다시 이걸 들고다닐수 있다는건가?》

박영준은 대답을 하지 않고 리기철의 기색을 슬며시 곁눈질하였다.

리기철은 강건너에 눈길을 박은채 말을 계속했다.

《그까짓 잡놈 하나가 큰건 아니요. 이 기사라는것도 아직은 구체적인 증거가 없는 가설뿐이고… 그런데 지금 정황에서는 자그마한 사건도 어르신의 기분을 흐려놓을수 있소. 그게 난사요. 그러지 않아도 숱한 적수들이 으르렁대며 기회만을 엿보는데 이런게 새여나가보오. 단박에 이발을 드러내고 달려들거란 말이요.》

그 무엇을 노려보는듯 한 눈길로 리기철이 지시를 내렸다.

《그놈은 자네가 맡아. 우선 이녀석의 배후를 파악해봐. 정말 기사나 써내깔리는게 목적인지 아니면 딴 꿍꿍이가 있는지. 혹시 어떤 정치세력이 이 기사의 배후에 있는건 아닌지. 어디서 날아오는 총알인지 먼저 파악해. … 이전에 말이야. S대학 도서관이란데서 그 사건을 파고드는 녀석이 있다는 정보가 있었는데 필시 이녀석일게야. 중요한것은 이녀석이 날뛰는 목적을 정확히 판단하는거야. 그리고 늦지 않게 제때에 손을 써야 해. 개미 한마리가 방뚝을 허무는 법이야. 알겠나?》

《제가 잘 알아서 조처하겠습니다. 그런데 전 이게 도무지 무슨 사건인지 전혀 파악이 안되여서…》

리기철이 홱 돌아서며 박영준을 쏘아보았다. 박영준은 송구한듯 머리를 조아렸다.

한동안 말없이 그를 노려보던 리기철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때 사건을 취급한 기사들을 찾아서 참고하도록 하게.》

《예?!》

《이 사건은 내가 직접 취급했네. 그때 기사들은 모두 우리가 세워준 대본에 따라 집필되고 여러차례의 검토를 거친 후에야 게재되였지. 거기선 실수가 없었을거네. 후처리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했으니까.》

《예,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에 연연할건 없네. 그저 김현철이라는 자식을 한번 눌러놓으면 돼.》

《명심하겠습니다.》

《자네 구좌번호를 내게 알려주게. 아니, 서기에게 말고 직접 내게 말일세. 돈이 필요되겠지? 자금걱정은 하지 말고 과단성있게 행동해야 돼.》

차에 오른 리기철은 다시 생각해보았다. 정말 이 문제를 박영준에게 맡겨도 괜찮을가 하는 걱정이 앞섰던것이다. 한동안 조대풍의 선거유세준비를 하느라고 분주하다보니 그 자식에게 주의를 돌리지 못하고 방심하였는데 어느새 기사라는것을 써서 뒤통수를 후려친것이였다. 생각할수록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자기에게는 한갖 잡다한 기자나부랭이와 씨름할 겨를이 없었다. 다행히도 박영준이 이 건을 들고나왔으니 자연스럽게 그에게 떠밀어놓을수 있었다. 어쩌면 언론계통에 심복들을 박아넣고있는 박영준이가 적중할지도 몰랐다. 차라리 잘된 일인듯싶었다.

한편 박영준은 강변에 그대로 서있었다. 담배를 한대 피워문 그는 사색을 이어갔다.

리기철은 확실히 조대풍의 조직내에서 제2인자라는 실세로 나가고있었다. 《조사모》라는게 명칭은 그 무슨 협회 같아보이지만 실상은 고도로 째인 정보조직의 체계를 그대로 답습하고있었다. 그 조직의 우두머리가 리기철이였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정치비자금까지도 모두 관리하고있었다.

박영준은 정보원에서 실각되여 건달처럼 시장거리를 떠돌 때 마치도 은인으로 행세하면서 돈봉투를 던져주던 리기철의 모습이 뼈에 새겨있었다.

그가 알고있는 리기철은 조대풍을 잘 만난 덕에 군부에서 곧장 청와대로 입성하였으며 정보조직의 고급관리로 급조동되였었다.

하지만 박영준은 그와는 반대로 특별한 인맥이 아니라 현장을 뛰여다니면서 정보세계의 밑바닥에서부터 아글타글 애를 쓰며 바라올라왔다.

리기철과 같이 첩보의 원리도 제대로 모르는자가 꼭대기에 앉아 그냥 앉아뭉개고 설쳐될 때 박영준은 앞에서는 머리를 조아리였으나 속으로는 주먹질을 하였다. 그러다 조대풍과 함께 리기철이 실각되자 좋아라 손벽을 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믿고 의지했던 정보원에서 쫓겨나 다시 리기철의 발밑으로 기여들어가지 않으면 안되는 신세가 되였을 때 박영준은 자기의 운명을 통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아니, 통탄만 한것이 아니라 이를 부드득 갈며 절치부심하였다. 다시는 이런 운명을 되풀이하지 않을 결심이였다. 선택받는자가 아니라 선택하는자로 살고싶었다. 그를 위해서는 조대풍의 다음 자리에는 박영준 자기가 올라서야 하는것이다. 폭풍에 바위가 날아갈수는 있어도 산이 날려가는 법은 없다. 자기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경쟁자의 목줄을 물어메쳐야 한다.

그는 품속에서 두장의 사진을 꺼내들었다. 한장은 김현철의 사진이였고 다른 하나는 신문지상에서 뽑아낸 문태석의 사진이였다. 이윽토록 문태석의 사진을 들여다보던 그는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문태석, 이자를 찾아내야 한다!)

문태석이 썩어 문드러져 땅에 묻히지 않고 하루 세끼 밥을 꼬박꼬박 먹으며 달나라가 아니라 이 행성우에서 숨을 쉬며 다닌다면 반드시 찾아낼 자신이 있었다.

(리기철각하, 기다리시오. 내 곧 멋진 선물을 준비해갈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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